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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대한민국 대통령이 체포되던 날!

시민들, “뭐하는 거야, 경찰들이! 이건 내란이야!” 절규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글 : 백재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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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계엄령 있었던 날과 똑같아요. 그날도 아파트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었거든요”(택시기사)
⊙ 경찰의 우회 진입 시도 소식 듣고 30분간 매봉산 타고 관저 앞 100미터 지점까지 접근했으나 저지당해
⊙ 경찰, ‘국민의힘·대통령에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멸시 느껴져
⊙ 1000원에 태극기·성조기 파는 노인들…카페에선 무료로 커피·유자차 등 제공
⊙ 경찰과 수사팀, 시민 다쳤다는데도 신경 쓰는 시늉도 안 해
⊙ “경찰이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 통진당 해산 때는 대체 왜 안에 접근도 못 한 거야?”
⊙ 尹 지지 시민들, 형사들 진입하는데 소리만 지르고 저지 못 해
⊙ “나는 6·25전쟁을 똑똑히 기억해요. 우리나라가 공산화될까 그게 너무 두려워” (80대 할머니)
⊙ “안동이 고향… 이재명만 아니라면 민주당의 어떤 분이라도 괜찮아요”(80대 할머니)
⊙ 탄핵 지지자들, 로제의 ‘아파트’에 맞춰 “체포해, 체포해”
⊙ “탄핵에 대해서는 딱히 찬반 없지만, 군대 동원한 건 잘못이라고 생각”(20대 남성)
⊙ 아들 군대 보낸 어머니, 尹 때문에 손실 봤다는 주식 투자자, 채 상병 사건으로 돌아선 해병대 출신 노인…
⊙ 경찰들, 현장 지켜보던 기자 끌고 나가
한남초등학교 인근 대통령 관저 진입로. 경찰들이 증원되자 시민들이 “갈 수 없다”를 수차례 외쳤다. 사진=백재호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라 / 영원한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라 / 길 잃은 무리들에 끼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라.”(단테의 《신곡》 중 지옥의 문에 적힌 글)
 
  1월 15일 새벽 4시,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가는 골목. 그곳은 지옥으로 가는 입구였다. 지키려는 이들의 비명과 뚫으려는 자들의 고성(高聲)이 어둠을 갈랐다. 불신과 증오로 새벽 공기는 음산하게 젖어 있었다.
 
 
  새벽 4시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곳까지 오는 과정도 험난했다. 택시에서 내릴 때부터 고단한 하루를 직감하긴 했다. 새벽 4시인데도 도로가 사람들로 가득하다. 집회 앞 전광판 불빛이 한낮처럼 밝다. 택시기사의 말이 귀에 꽂힌다. “제가 밤에 운행을 해서 아는 건데요, 오늘이 계엄령 있었던 날과 똑같아요. 그날도 아파트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었거든요.”
 
  그는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으로 기자를 돌아본 후 블루스퀘어 앞에 차를 세운다. 그리곤 신호가 바뀌기 전에 바삐 북한남삼거리를 빠져나간다.
 
  보도 한쪽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파는 노인들이 차지했다. 약속이나 한 듯 가격은 모두 1000원.
 
  “이 판에 돈 버는 건 어르신들이네요.”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소리친다.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비대위갤러리’ ‘호남보수 완도 박영진채널(유튜브)’ 등에서 선결제를 하고 갔다. 덕분에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은 무료 커피와 유자차를 마실 수 있었다. 사진=하주희 기자
  이제 길을 건너야 한다. 육교 위에 사람들의 행렬이 움직이고 있다. 횡단보도 양편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노년의 어르신들, 20대로 보이는 남성들, 은박담요를 둘러쓴 20대 여성들도 보인다. 경찰과 용산구청 직원들이 육교와 횡단보도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도로를 건너 루터교회 앞으로 향한다.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우파들의 자리다. 긴 줄이 보여 뭔가 했는데, 무료 오뎅 트럭으로 가는 줄이다. 집회 한켠엔 무료로 오뎅이나 커피, 한방차를 제공하는 트럭들이 서있다. 교회나 보수 유튜브 채널 등에서 돈을 댔다. 커피라면 언제든 몇 잔이나 마실 수 있다. 때를 잘 맞추면 김밥과 컵라면도 나눠준다. 대로에서 조금 들어가 있는 카페에서도 무료로 커피와 유자차를 내준다.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비대위갤러리’ ‘호남보수 완도 박영진채널(유튜브)’ 등에서 선(先)결제를 해놨다.
 
 
  1차 저지선 안으로
 
  “윤석열! 윤석열!”
 
  연호하는 사람들 틈을 통과하는데, 70~80대로 보이는 여성이 온몸이 흔들리도록 기침을 한다. 다가가 말을 건넸다.
 
  “감기 걸리신 것 아닌가요? 추운데 귀가하시는 게 어때요?”
 
  기침 때문에 말도 못 하면서, 태극기 든 손으로 연신 괜찮다는 손짓을 한다. 그제야 한켠에 이불이 보인다. 길에서 밤을 새운 흔적이다. 이날 새벽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 하필 최근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관저로 들어가는 골목은 볼보빌딩과 한남초등학교 사이에 있다. 골목이 가까워질수록 경찰의 장막이 두터워진다. 검문 아닌 검문을 몇 번이나 통과하며 어렵게 전진했다. 볼보빌딩 입구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다. 나경원·김정재 의원도 보인다. 김기현 의원도 나타났다. 다들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경호처! 힘내라!” 구호 소리가 들려왔다. 원외 당협위원장들도 속속 도착했다. 어느덧 5시가 넘었다.
 
  의원·위원장들과 함께 1차 저지선으로 향했다. 경찰은 두 겹으로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다시 몇 겹으로 된 인(人)의 장막으로 그 주변을 둘러놓았다. 1차 저지선 앞에 겨우 도착했다. 경찰들은 의원·위원장들과 보좌진들만 마지못해 1차 저지선 안으로 통과시켰다. 기자는 공무원증이 없다는 이유로 저지됐다. 바리케이드에 바싹 붙어 안쪽을 들여다봤다. 큰 비닐을 어깨에 두른 남성과 여성들이 보인다. 눈이 마주친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물었다.
 
  “어젯밤부터 여기서 밤을 새웠어요. 저희는 지방의회 의원들이에요.”
 
 
  “밤새 대기했어요”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 공수처와 대통령 경호처가 뒤엉켜있다. 화단 위에도 형사들이 즐비한 것이 보인다. 사진=하주희 기자
  5시 35분. 1차 저지선 바로 앞에서 경찰이 뭐라 뭐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귀기울여 들어보니 형사소송법을 읊는 중이다. 적법한 법 집행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갑자기 뒤쪽이 시끄러워졌다. 검정 롱패딩을 입은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수사팀과 경찰관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국회의원들이 모여 몇 마디 대화를 나누나 싶더니, 몇몇 의원이 바리케이드 앞을 터주고 옆으로 물러선다. 그렇게 1차 저지선이 싱겁게 뚫렸다. 5시 47분경이다. 이때 기자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2차 저지선이 보인다. 버스를 가로로 세운 차벽이다. 엉겁결에 차벽 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작은 체구의 여성이 눈앞에 서있다. 옆얼굴을 보니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묻자 마찬가지 답이 돌아온다. “어젯밤 9시에 미리 와서 밤새 대기했어요.”
 
  갑자기 서있기가 힘들어진다. 뒤쪽에서 경찰들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서있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금방이라도 밀려 넘어질 것 같다. 누군가 소리쳤다.
 
  “밀지 마세요! 이태원 사고처럼 되길 원하십니까!”
 
 
  “영장 집행은 불법”
 
  2차 저지선인 차벽 바로 앞에 윤상현 의원이 서있는 게 보인다. 공수처 수사팀과 경찰들에게 계속 뭐라 말하고 있다. 자세히 들어봤다.
 
  “이번 영장은 지난번 영장이랑 다릅니다. 지난번에는 형사소송법 제110조, 111조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구절이 있었어요. 이번에 신한미 판사가 발부한 영장에는 그게 없어요. 그러면 경호처장의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할 수 없는 겁니다.”
 
  형사소송법 제110조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 의원이 차벽의 왼쪽 끝과 맞닿은 허벅지 높이의 좁다란 화단 위로 올라섰다. 그곳에서 영장 집행의 불법성을 다시 설명하기 시작한다.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윤 의원에게 확성기를 건네줬다. 윤 의원이 말을 시작하자 공수처 수사팀이 소리를 질러댄다.
 
  “확성기 우리 겁니다! 내놓으세요!” “내놓으세요!”
 
  수사관이 들고있던 확성기였던 모양이다.
 
 
  “공수처 해체될 거야! 경찰이 깡패야?”
 
2차 저지선인 차벽 앞에서 공수처와 대통령 경호처가 대치하고 있다. 사진=하주희 기자
  경찰들이 곳곳에서 밀기 시작한다. 다급한 아우성들이 터진다. “밀지 마세요! 여기 여자들도 있어요! 압사 돼요!” “폭력 쓰지 마세요” “다쳐요! 우리는 시민입니다!”
 
  국민의힘 측 인사 한 명이 어디서 구했는지 다시 확성기를 들고 소리친다.
 
  “경찰 여러분, 대통령은 체포돼도 여러분은 반드시 책임 묻게 됩니다. 동조하지 마세요!”
 
  경찰에 떠밀리는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소리친다.
 
  “기밀 시설에는 기관장 허가 없이 못들어갑니다!”
 
  “불법 명령 듣지 마십시오!”
 
  “공수처장 내란죄로 수사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공수처에 동조하지 마세요!”
 
  “경찰, 밀지 마! 사람 다쳐요!”
 
  “경찰, 마스크 벗어!”
 
  “공수처 해체될 거야! 경찰이 깡패야?”
 
  “경찰 여러분 밀지 마십쇼! 여러분 내란죄입니다!”
 
  갑자기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여기 여성분이 깔렸어요!” “밀지 마세요!”
 
  차벽 바로 앞 중간쯤에서 한 여성이 울음 섞인 비명을 지른다.
 
  “사람이 깔렸다고!”
 
  경찰이 시위대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깔려 부상까지 입은 모양이었다. 경찰과 수사팀은 다쳤다는 사람을 신경 쓰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이들 귀엔 비명 소리도 안 들리는지, 구급대원이라도 불러줄 줄 알았는데 꿈쩍도 안 한다. 한 남성 경찰관이 기자의 옆에 서있는 여성(70대쯤으로 보였다)에게 되레 소리를 지른다. “뒤로 나가세요!”
 
  “내가 왜 나가요!” 여성이 거부하자 경찰관이 다시 소리친다. “야! 여경 불러!”
 
  상황이 점점 격해진다.
 
  “경찰들, 떳떳하면 마스크 벗고 얘기해요. 폭도들이야?”
 
  “대한민국이 아무리 무정부 상태가 됐다고 해도 말이야. 뭐 하는 거야, 경찰들이! 이건 내란이야!”
 
  “자유 대한민국 경찰 아니에요?”
 
  어느 틈에 앞쪽으로 온 박충권 의원이 말한다.
 
  “헌법 질서가 무너지고 사법 체계가 무너지는데 일조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들.”
 
  “체포해! 체포해!”
 
  머리 위쪽에서 외침이 들려온다. 어떻게 그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골목에 붙어있는 건물의 담에 붙어 체포작전을 지켜보는 민간인들이다. 거개가 셀카봉에 카메라를 부탁해 촬영하고 있다. 좌파 성향 유튜버들로 보였다.
 
  경찰들이 계속 밀려들어 온다. 남성 원외위원장들과 보좌진들이 필사적으로 버티며 밀지 말라고 소리친다. 와중에 경찰의 대형 승합차가 천천히 골목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국민의힘 보좌진으로 보이는 이가 소리친다. “차벽을 밀어버리려는 거예요? 버스에 사람이 타고 있다고요!”
 
  기자도 황급히 차벽 옆 화단 위로 올라섰다. 고프로처럼 생긴 카메라가 달린 긴 막대 수십 개가 눈에 들어왔다. ‘유튜버들이 밀고 들어온 건가?’ 다시 보니 채증(採證)을 하는 경찰들이었다. 언뜻 봐도 수십 명이다. 막대를 꼿꼿이 들고있는 게 장례식 만장(晩章) 행렬을 떠올리게 한다.
 
 
  “영장 집행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체포”
 
  대형 승합차에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젊은 여성 목소리다.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6시 20분쯤 휴대폰에 속보가 뜬다.
 
  ‘매봉산을 타고 경찰이 관저 뒤쪽으로 접근 시도 중.’
 
  다시 고개를 드니 어둠 속에서, 경찰에 밀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친 여성의 울부짖는 소리와 체포하겠다는 방송이 동시에 귓전을 때린다. 화단에 붙어 서있는 한 남성에게 경찰들이 다가서며 말한다. “나가세요!”
 
  남성 옆에 서있던 이가 보다 못해 경찰에게 말한다. “이분은 서울경찰청장 지낸 김석기 의원입니다.”
 
  뒷모습만 보여 몰라봤는데 다시 보니 김 의원 맞다. ‘아이구 선배님, 안녕하세요’ 같은 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마스크를 쓴 경찰의 눈빛엔 아무 변화도 없어 적잖이 놀랐다. 오히려 귀찮다는 듯 말한다. “네, 나가세요.”
 
  김 의원 옆에 서있던 남성이 다시 말한다. “당신들 선배 아닌가요?”
 
  마스크를 쓴 그 경찰관이 되받는다. “안 나가시면 끌어내겠습니다.”
 
 
  기자들, 매봉산 통해 관저 접근 시도
 
대통령 관저 뒤 매봉산에서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숲길. 사진= 고기정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어쩌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이의 비명도 무시해야 하는 사이가 됐을까? 어쩌다 국민 세금으로 구입했을 휴대용 확성기 하나도 빌려주지 못할 사이가 된 걸까? 넘어져 바닥에 깔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티는 이들을 구경하며 ‘체포해!’ 소리치는 사람들, 한때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일했던 이에게 ‘끌어내겠다’고 담담히 말하는 이곳은 어디인가? 지옥의 문 앞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힘을 합쳐 지옥으로 가는 길을 열고 있는 게 아닐까?
 
  6시 30분쯤 국민의힘 원외위원장 중 한 명이 ‘구급대원을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다른 이의 말이 독백같이 이어진다. “설마 구급대원도 안 불러놓고 이런 작전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국민의힘 측 다른 사람의 한탄도 들린다. “경찰이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 통합진보당 해산 때는 대체 왜 안에 접근도 못 한 거야?”
 
  그 시각 일군의 기자들이 대통령 관저 뒤편 매봉산을 타기 시작했다. 아침 6시 20분경, 공수처가 별도의 통로를 이용해 관저로 우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우리 《월간조선》을 비롯한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카메라와 노트북을 챙겨 매봉산 등산로로 향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산행(山行)이었다. ‘경사가 심해 못 간다’며 동료를 만류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아직 짙은 어둠 속에 가파른 경사가 이어졌다. 30여 분 올랐을까, 100m쯤만 더 가면 관저가 보일 법한 지점에서 경찰들이 나타나 앞을 막았다. ‘기자들은 들어가면 안 된다’며 제지해 결국 기자들은 발길을 돌려 하산했다.
 
  산에서 내려오니 공수처가 관저 정문 앞까지 도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탄핵 반대 그룹에 끼어있던 김영태(金英泰·62)씨가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 “차라리 나를 대신 감옥으로 보내라!”며 울부짖었다. 몇몇 시민들은 도로에 드러누웠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대통령 지지자들 간 마찰도 있었다. 한 지지자가 “윤석열 대통령이 제3의 장소로 무사히 탈출했다”고 말하자 다른 지지자들이 “정신 차리라”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말라”고 나무랐다. “대통령은 도망가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이는 시민도 있었다.
 
  대통령 지지 시민들은 형사들이 추가로 통행로로 진입하려는 것을 막기도 했다. 형사들이 줄 지어 관저 내부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지지자들은 “양심에 따라 (명령을) 거부하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형사들이 모두 들어가고 나서는 ‘왜 다들 가만히 있기만 하느냐’며 서로를 탓했다.
 
 
  정문 앞에서 끌려나와
 
  다시 정문 앞. 2차 저지선이 뚫린 시각은 6시 55분. 경찰은 차벽 옆의 틈과 사다리를 이용해 진입했다. 기자도 좁은 화단 위를 조심조심 걸어 차벽을 통과했다. 이제 정문이다. 정문 앞에 설치된 철조망을 뜯고 있는 경찰들이 보인다. 윤상현 의원이 초조한 듯 그 앞을 왔다갔다 한다. 윤 의원 외 다른 의원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의원·원외위원장들은 아직도 차벽에 막혀 경찰들과 대치 중이다.
 
  권영진 의원이 가까스로 차벽을 지나왔다. 차벽을 지나 한동안 화단 위에 서있다가 드디어 윤 의원 옆으로 가려고 화단을 내려서려 하자 경찰들이 다가선다. 화단 아래로 한쪽 발도 못 내리게 몸으로 막아선다.
 
  “좀 내려갑시다. 길 좀 터주세요.”
 
  경찰들은 들리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국민의힘 관계자가 소리쳤다. “경기청 경찰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이재명 때문입니까!”
 
  “좀 내려갑시다.” 권 의원의 부탁이 5분 넘게 이어졌다.
 
  철조망을 끊은 경찰이 정문 옆으로 난 작은 문에 나가선다. 그 순간 기자도 화단에서 뛰어내려 정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여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문 앞은 그야말로 경찰들의 숲이었다. 경찰 한 명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오며 묻는다. “기자예요?”
 
  ‘어떻게 알았지?’ 속으로 적잖이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곧장 기자를 거칠게 잡더니 끌어내려 한다. 잡지 말라고 소리치자 여경이 다가온다. 기자를 밖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그 골목 안에 기자 외 다른 언론인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기자들은 골목 안 진입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경찰과 공수처는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는 역사적 현장의 유일한 기자를 쫓아낸 것이다.
 
  전쟁터에도 기자가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도 CNN이 함께였다. 민주국가 중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언론을 적대시하는 나라는 없다. 공산주의 정권이라면 다르다. 언론을 무시하고 경원시한다. 중국이나 북한 같은 나라 말이다.
 
  오전 10시 33분,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고 발표했다.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한순간에 깊은 탄식이 퍼져나갔다. 몇몇 지지자들은 바닥에 엎드려 발을 동동 굴렀고, ‘태극기를 걸겠다’며 육교 위로 올라가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전날 오후부터 15일 체포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한 20대 청년은 “밤새 대통령을 지키려 했는데, 정말 허탈하다”며 울먹였다. 그는 “윤 대통령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의 일은 공수처의 승리가 아니다. 우리가 잠시 후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호남 출신 의원·당협위원장들 많이 보여
 
  기자는 이번 ‘대통령 체포작전’을 내내 지켜보며 세 가지를 느꼈다.
 
  첫째, 경찰 작전 과정의 강압성이다. 탄핵의 정당성이나 체포영장의 적법성 얘기가 아니다. 경찰은 기동대 54개 부대로 이뤄진 3200명을 동원했다. 시위대와 도로를 바리케이드와 인의 장막으로 겹겹이 둘러쌌다. 탄핵 반대 시위대는 길에 드러눕고 싶어도 쉽게 드러누울 수 없었다. 옆 도로로 아예 나가질 못하니 말이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여당의 시세가 바닥이라 해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보인 경찰의 태도는 심상치 않았다. 노골적인 멸시라고 할까, 현장에서 느낀 적대감의 강도는 상당히 셌다. 국민의힘·윤 대통령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둘째, 국민의힘의 근성, 체질에 대한 의문이다. 일단 의원들이 현장에 거의 오질 않았다. 33명의 의원이 모였다고 하지만 거개가 관저 진입 골목이 아닌 인근에 머물렀고, 늦게 왔다. 관저 진입작전이 성공하고 방송 카메라가 들어가자 그제야 카메라 앞에(!) 모여들었다. 새벽 1시쯤부터 현장에 도착해 있던 윤상현 의원 정도가 예외다.
 
  경찰과 대치한 1차·2차 저지선 현장엔 지방에서 올라온 원외위원장들과 당협 관계자들이 있었다. 원외위원장들은 자체적으로 ‘탄핵반대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모임’을 만들었다. 10만원씩 회비를 걷고, 일주일 동안 관저 앞을 지켰다. 1월 15일 당일엔 30명 넘는 당협위원장들이 한남동으로 왔다. 기자가 저지선에서 직접 목격한 이들만 김선동·하종대·양정무·이용·김종운·박재선 위원장 등이다. 그 외에도 여럿 있었지만 현장이 워낙 어둡고 혼란했던 탓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흥미로운 건 호남 지역 혹은 호남 출신 원외위원장들이 유독 많이 달려왔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 정도로 국민의힘이 호남 당협을 살뜰히 챙겼는지는 당이 판단할 일이다.
 
 
  무기력한 국민의힘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권 원내대표는 체포 집행 전날(1월 14일) 열린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으로서 판단하는 것인 만큼 지도부로서 ‘가라’ ‘가지 마라’ 이런 입장은 없다”
 
  영장 집행에 대비해 이렇다 할 준비도 없었다. 하다못해 확성기도 공수처 걸 쓰려 했을 정도다. 이 또한 예고된 것이긴 하다. 이런 뉴스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재집결 계획을 공유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한 의원은 “이번엔 대치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 의원들이 충돌을 저지하는 일종의 ‘범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만약 민주당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1진 국회의원, 2진 보좌진·당직자, 3진 여성과 노약자 당원들로 차곡차곡 인간 방벽을 만들어 그 전날부터 골목 입구에 앉아 있지 않았을까?
 
  힘들고 카메라 없는 곳에선 주로 원외위원장들과 외곽 인사들이 힘을 쓰고, 현역 의원들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곳에 일찌감치 자리 잡고 있더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번 작전 과정에서 경찰이 보인 강압적인 행동에 대해 국가인권위나 경찰청 인권센터에 문제 제기나 할지도 의문이다. 이 정당이 대한민국 출범 후 단 3번 있은 대통령 탄핵소추 중 2번을 당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세 번째로 느낀 건 ‘이재명 대통령만은 안 된다’는 탄핵 반대자들의 속내였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로 이송된 후, 탄핵 반대 시위대도 공수처가 있는 경기도 과천을 향해 떠났다. 언제 사람이 있었냐는 듯 텅 빈 도로를 지켜보다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기자에게 할머니 3분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잠깐 망설이더니 물어온다.
 
  “시위대가 다 어디로 갔나요? 우리는 이제야 왔거든요.”
 
  정부과천청사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함께 열차에 타니 그제야 이들은 안도한 표정으로 기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번갈아 말을 쏟아냈다.
 
  “우리는 다 80살 넘었어요. 한번 구경이나 할까 나왔지. 새벽부터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을까.”
 
  “나는 6·25전쟁을 똑똑히 기억해요. 인민군이 총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녔지. 우리나라가 공산화될까 그게 너무 두려워.”
 
  할머니 한 분의 얼굴이 흐려졌다. “새벽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나라가 우찌 될라꼬 이렇게…. 그냥 2년 마저 하게 두지, 그러고 다음 사람이 하면 되잖아. 인간적으로 너무 안됐어.” 눈물이 어른거린다. 할머니는 연신 눈가를 훔치며 기자에게 물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몇 퍼센트예요?” 기자가 대답하지 않자 할머니의 눈에선 기어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삼각지역에 도착했다. 문간에서 내릴 준비를 하며 한 할머니가 기자에게 말한다.
 
  “나는 고향이 경북 안동이에요. 이재명 대표와 같지. 이재명 대표만 아니면 돼. 이재명만 아니라면 민주당의 어떤 분이라도 괜찮아요.”
 
 
  탄핵 찬성 집회장 연령대는 주로 40대 이상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실시간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이들은 로제의 ‘APT’ 노래를 “체포해, 체포해”로 가사를 바꿔 노래하기도 했다. 사진=이경훈 기자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에게 1월 15일은 지옥이 아닌 천국의 문이 열린 날이었으리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15일 오전 5시로 예정됐다는 소식은 앞선 14일 오후부터 보도됐다. 탄핵을 찬성하는 측은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부근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이번만은 집행이 꼭 실행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14일 오후 11시가 넘자 경찰이 진입로 확보를 위해 한남초등학교 인근에 자리한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경찰 잘한다!” “오랜만에 경찰이 제 할 일을 한다!” “이제 나라가 나라답게 돼간다.”
 
  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로제의 ‘APT.(아파트)’를 “체포해, 체포해”로 가사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선 “윤석열(대통령이)이 지금 관저에서 울고 있다는데요”와 같이 확인되지 않는,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도 오갔다. 15일 오전 3시 50분경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대통령 관저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윤상현도 같이 체포하라’는 말도 나왔다.
 
  공수처가 밝힌 체포영장 집행 예정 시각이 다가오자,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이들 중 일부가 반대 집회 현장을 지나 귀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두 집회 참가자 간 물리적인 충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전 5시, 탄핵 찬성 집회 현장에는 깃발 10여 개와 한국노총(한노총), 정의당, 노동당 관계자 약 100명이 모여 있었다. 일부는 도로에 텐트를 설치하고 농성을 이어갔다. 연령대는 주로 40대 이상이었다. 20대로 보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당당하면 체포 응해야’
 
  찬성 집회 무대차(車) 인근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 3명이 보였다. 이들에게 어떻게 집회에 참여하게 됐는지 물었다. 이들은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싶어 왔는데, 반대 집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진입하기 어려워 찬성 집회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탄핵에 대해서는 크게 찬성, 반대 의견이 없습니다. 다만, 군대를 동원한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경찰과 경호처 간에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수처와 경찰은 오전 5시보다 이른 4시 20분경부터 집행 절차를 시작했다. 오전 5시경 100명 수준이었던 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오전 6시 30분쯤 되자 약 200명으로 늘었다. 이 중에는 이른바 노조원이나 정당 관계자 등 정치와 직접 관련된 직업을 갖지 않은 시민도 30%가량 포함됐다.
 

  아들이 현재 군 복무 중이라고 밝힌 50대 여성 김모씨는 대구에서 새벽에 올라왔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으나 실망이 크다고 했다. 앞선 1차 영장 집행 당시 의무병(義務兵)을 동원해 영장 집행을 막았다는 소식을 접하곤 분노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 기대를 저버린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하면 체포에 응하면 될 것 아닙니까. 윤 대통령이 법에 대해 잘 아니, 오히려 자신이 불리한 걸 알기에 이렇게 시간만 끄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들뻘 되는 무고한 이들이 법 집행 과정에서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탄식하며 우왕좌왕하는 쿠팡 로켓배송원
 
  김정운(45)씨는 출근을 앞두고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현장이 궁금해 탄핵 찬성 집회장으로 나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현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고집불통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집회 현장에 나왔죠. 일반 시민도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 행동하게 됐습니다. 집에서 편하게 뉴스만 보고 있을 수 없었죠.”
 
  한노총 조끼를 입고 있는 이에게 체포영장이 집행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한노총 활동가라고 자신을 밝힌 이 사람은 “윤석열(대통령)을 빨리 끌어내야만 한다”고 했다. ‘이재명을 지지하느냐’고 묻자 “이재명이 중요한 게 아니고, 윤석열을 체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체포영장 집행은 오전 5시보다 이른 시각에 이뤄졌지만 집행 절차는 원활치 않았다. 쿠팡 로켓배송 기사는 인파로 접근이 힘들자 탄식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30대 직장인 김지수씨는 휴가를 내고 집회 현장을 찾았다. 그는 이번 계엄 사태와 탄핵으로 주식에서 큰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분노로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날이 밝아지자, 탄핵 찬성 집회 현장에 참가자가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전 10시쯤 되니 비교적 젊은 층이 현장을 채웠다. 일부는 이른바 ‘노동자연대’에 속한 직업활동가로 보였다. 흰 바탕에 검정 글씨 푯말을 만들고는 선전전을 벌였다.
 
 
  “김건희도 끌어내라”
 
  이날 오전 10시 33분. 체포영장이 집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무대차에서 ‘다시 만난 세계’ 노래가 울렸다. 현장에선 “윤석열뿐만 아니라 김건희도 끌어내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해병대 복장을 하고 찬성 집회에 나타난 60대 노인은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지만, 실망을 많이 했다.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 때부터 현 정부에 대해 지지를 철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윤석열 정부를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해 집회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체포영장이 집행됐다는 소식에는 “씁쓸하다.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켰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로 향하는 모습이 중계되자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들은 “내란 수괴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세력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공범이다”라고 주장했다.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 이들은 점심 때가 되자 자리를 떴고, 시위 등에 전문적으로 참여하는 이른바 ‘활동가’들은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밝힌 한 3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적, 국민적 불행입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마치 한국이 지도자 하나 때문에 내전적 상황에 돌입한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탄핵 반대 집회도 지나쳐 왔는데, 참가자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나라가 반으로 쪼개진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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