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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들여다보기

쿠르드 독립, 가능할까?

이라크와 터키가 쿠르드 독립의 가장 큰 걸림돌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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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이라크·이란·시리아 등에 3000만명이 흩어져 살아
⊙ 터키, 시리아 좌파 쿠르드 YPG가 IS 격퇴에 공 세우자 ‘살라훗딘의 후손들’이라는
    민병대 만들어 견제
⊙ 쿠르드족이 잠잠하던 이란에서도 최근 이란쿠르드민주당이 혁명수비대원 살해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저서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지난 9월 3일 독일 쾰른에서는 수천 명의 쿠르드인이 모여 터키가 투옥하고 있는 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AP/뉴시스
  2015년 9월 2일 3세짜리 시리아 난민 아이가 터키의 지중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아이의 가족은 IS를 피해 시리아에서 터키로 들어왔다가 보드룸(Bodrum)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그리스 고스섬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높은 파도에 보트가 전복되면서 아버지만 살고 아이와 아이 엄마, 5세 된 형이 익사했다.
 
  출발지 보드룸 해변으로 밀려들어 와 잠자는 듯 모래에 얼굴을 묻고 등을 보이며 누워 있는 알란 쿠르디(Alan Kurdi)의 최후 모습은 터키 기자의 카메라에 담겨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이 사진 한 장으로 난민 수용을 놓고 격론을 벌이던 유럽의 여론이 기울어 많은 시리아 난민이 새 삶을 찾았다.
 
  아이의 성은 쿠르디가 아니라 셰누(Shenu)인데, 쿠르드(Kurd)족이기에 쿠르드 사람이라는 뜻인 쿠르디로 불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아이의 비극적인 죽음의 원인이 된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쿠르드족의 슬픈 역사도 계속 진행 중이다.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시리아·터키·이라크·이란 등 4개국에 걸쳐 살고 있지만 세계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약 3000만명에 달하는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인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쿠르드,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국가를 이루지 못한 것인가?
 
 
  터키에서는 ‘산사람들’이라고 불러
 
  쿠르드라는 말은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의 점토판에 카르다카(Kardaka)로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두 단어의 관계는 정확하게 규명하기 힘들다. 쿠르드인은 언어적으로 이란어계에 속하는 사람들로 주로 자그로스 산맥 지역에 거주했다. 쿠르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터키가 쿠르드라는 말 대신 ‘산(山)사람들’이라고 부른 것도 이런 이유다.
 
  쿠르드라는 이름으로 외부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7세기 이후 이슬람 시대에 들어서다. 쿠르드인들의 땅이라는 뜻인 쿠르디스탄(Kurdistan)이라는 표현은 셀주크튀르크의 마지막 술탄인 산자르(Sanjar, 1157년 죽음) 시대에 처음 쓰였다. 산자르는 바하르(Bahar)를 수도로 하는 쿠르디스탄주를 만들었다. 오늘날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의 로레스탄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이후 시대에 따라 쿠르디스탄의 면적은 부침을 거듭하다가 16세기에 들어서는 오스만튀르크 제국과 사파비 제국의 다툼 속에 영토의 통일성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 오늘날 쿠르디스탄이라는 말은 쿠르드인이 사는 국가 중 이란에서만 공식적인 주명으로 쓰고 있다. 현대 이란어로는 코르데스탄(Kordestan)이라고 부르고, 주도는 사난다지(Sanadaj), 면적은 2만9137km2로 경기도의 3배 크기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과 프랑스가 주축이 된 승전국들은 1920년 8월 10일 프랑스 세브르(Se、vres)에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아나톨리아 반도를 완전히 해체하는 내용을 담은 조약에 서명했다. 이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남쪽에 쿠르드인만의 영토를 획정하여 쿠르디스탄 독립국 설립 가능성을 열어두었는데,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를 포함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시리아는 프랑스가, 이라크는 영국이 이미 차지했기 때문이다.
 
  기울어져 가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술탄은 굴욕적인 세브르 조약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이에 반대하여 앙카라에 정부를 세우고 2년간 터키 독립전쟁을 벌여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켰다. 그 결과 세브르 조약은 폐기되고, 로잔 조약이 1923년에 맺어졌다.
 
 
  3000만명의 나라 없는 사람들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에 3000만명이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이다.
  이에 따라 1914년부터 쿠르디스탄 독립을 위해 오스만튀르크에 맞서던 쿠르드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자신들이 지배하는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쿠르드인을 위해 땅을 떼어 독립국을 세워주리라 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라크라는 나라를 만들면서 영국은 쿠르드 지역을 이라크에 붙여버렸고, 프랑스 역시 시리아를 다스리면서 쿠르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가는커녕 자치권마저 확보하지 못한 쿠르드인들은 새로이 만들어진 여러 근대 국가 안에서 2등 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터키에 약 1500만명, 이란에 약 600만명, 이라크에 약 600만명, 시리아에 약 200만명 등 무려 3000만명에 달하는 쿠르드인들이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니게 되었다.
 
  터키는 1990년대 초까지 국민의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인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였다. 1991년까지 쿠르드어를 금지하였고, 2003년까지 쿠르드식 이름을 쓰지 못하게 막았으며, 쿠르드 문자 역시 2013년까지 불법이었다.
 
  시리아는 쿠르드인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아랍식 이름을 쓰지 않으면 출생신고도, 학교 입학도, 사업도, 출판도 불가능하였다. 쿠르드어 교육이 금지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2011년 4월 하사카 지역 쿠르드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에 대통령이 서명하기 전까지 이들은 외국인으로 살았다.
 
  이라크 쿠르드인들은 사담 후세인이 몰락한 후에야 해방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인 1988년 3월 16일 아침 쿠르드 반군을 토벌한다는 목표 아래 이라크군이 북부 이라크 쿠르드 마을인 할랍자에 생화학가스를 살포했다. 순식간에 5000여 명이 살해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망자는 1만2000명으로 더 증가하였다. 무자비한 범죄였다. 또한 1991년 쿠르드인들의 항거 역시 무참히 진압했다.
 
  이에 비하면 이란의 쿠르드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삶을 유지한 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직후 쿠르드인들이 자치권을 요구하며 항거를 하다가 진압된 이래 표면적으로 쿠르드인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래 민족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족은 세속적인 개념으로 이슬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민족을 모른다.
 
  잠잠하던 쿠르드 문제가 최근 중동 정세의 변화를 타고 똬리를 틀고 있다. 북부 이란에서 쿠르드 반정부 조직인 이란쿠르드민주당이 이란 혁명수비대 군인을 사살하면서 거의 20년 만에 투쟁에 나섰다. 이란 정부가 쿠르드인 지역에서 쿠르드인들의 정치활동을 갈수록 더 탄압하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쿠르드 지방정부
 
  현재 유일하게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쿠르드 공동체는 이라크 쿠르드 지방정부(이하 KRG·Kurdistan Regional Government)다. 2003년 사담 후세인의 압제에서 해방된 이래 KRG의 도약은 놀랍다. 지난 8월 방한한 팔라 무스타파 바키르 KRG 대외관계장관은 “이라크 쿠르드인들이 자이툰 부대가 보여준 봉사정신, 친절, 우의를 잊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라크 쿠르드인들의 미래는 과거보다 훨씬 위대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강조했다. 그는 “쿠르드 지방정부는 세속 정부이기에 종교적 도그마에서 자유로우며, 주변 국가의 쿠르드 공동체와 별도로 개별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면서 이라크라는 지역의 한계를 벗어난 쿠르드 민족국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정답이라는 말이다.
 
  KRG의 목표는 한국처럼 발전하는 것이다. 한국에 바라는 것은 쿠르드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해 달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쿠르드인들은 집안에서 아주 훌륭한 치즈를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표준화된 공정을 통해 품질을 유지한 채 대량생산하고 판매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법을 모르기에 그러한 법을 한국인들이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인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거듭 강조했다. KRG는 바그다드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며 이견을 대화를 통해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
 
  쿠르드 지방정부가 독립을 원한다 해도 현재 국제정세는 독립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지난 3월 중동의 유력 일간지 《알-모니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바르자니 쿠르드 지방정부 대통령은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한 뒤 물러나겠다”고 하면서 “독립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1월에 독립국가 건립 국민투표를 제안하기도 한 바르자니는 쿠르드 독립국가 수립에 국제정세가 우호적이라고 강조했다.
 
 
 
어려운 독립의 길

 
작년 9월 2일 터키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알란 쿠르디는 쿠르드족 어린이였다. 사진=AP/뉴시스
  쿠르드 독립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쿠르드 지방정부는 예산을 중앙정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고, 대형 국책사업도 중앙정부의 뜻을 거슬러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 국제정세 역시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쿠르드 독립에 묵묵부답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바그다드 중앙정부와 이란이다.
 
  특히 이란은 공개적으로 쿠르드 지방정부의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는 이란의 우군이다. 이라크는 테헤란의 ‘꼭두각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란은 쿠르드 지방정부가 이라크 헌법을 준수하여 이라크 안에 남길 강력히 원하고 있다. 이라크의 분열은 중동 역내 및 국제안보를 해치고 IS와 이스라엘만 이롭게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이란의 입장은 사실 터키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터키는 독립을 꿈꾸는 쿠르드 반군 PKK(쿠르드노동자당), 이와 연계된 것으로 간주하는 시리아의 YPG(시리아 쿠르드민병대)를 IS와 다를 바 없는 테러리스트로 규정, 응징하고 있다. 그러나 KRG와는 밀접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터키의 친(親)이라크 쿠르드 정책을 시아파 이라크 정부와 이란을 의식한 행보로 여기고 있다. 터키가 전통적으로 수니파 이슬람에 속하는 쿠르드와 연계하여 수니 세계의 맹주가 되고자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란은 터키의 쿠르드 문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있다. 국내 쿠르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KRG를 후원하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KRG는 이란과 터키 사이에서 경제를 통한 상생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터키가 KRG에 우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석유를 공급받고 있고 터키의 대(對)이라크 수출의 상당부분이 쿠르드 지역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또 터키 기업이 수도 에르빌에서 각종 사업을 벌이며 경제이익을 거두고 있다.
 
 
  터키, YPG의 작전 방해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 YPG 병사들. 터키는 YPG의 약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KRG는 이란과도 원유 거래를 하고자 하나 현재 파이프라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현실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유조차를 통해 거래하는 것은 도로 기반이 열악하여 경제적 타산이 맞지 않는다. 파이프라인이 건설된다면 양측의 관계도 현재보다 더 가까워질 것이다.
 
  자국과 이웃 국가 쿠르드에 대한 터키의 정책은 자국 내 쿠르드 반군 세력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터키로서는 반(反)IS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미국의 든든한 아군인 시리아의 YPG의 선전(善戰)이 몹시도 껄끄럽다. 특히 YPG가 터키 국경과 맞닿은 시리아 도시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것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훼방까지 놓고 있다.
 
  가장 도드라진 예가 바로 코바니(Kobani) 전투다. 코바니는 시리아 쿠르드 지역으로 터키 국경에 가까운 도시다. 이곳을 IS가 공격해 오자 코바니와 가까운 터키의 국경도시 지즈레(Cizre)의 쿠르드인들이 국경을 넘어 코바니 쿠르드인들을 돕고자 하였으나 터키 정부가 막았다.
 
  이에 분노한 터키 쿠르드인들이 터키군과 무력 충돌을 벌여 2014년 10월에만 35명이 사망하였다. 터키의 PKK 지도자 오잘란은 1999년 투옥됐다. 그는 옥중 메시지를 통해 PKK 동지들에게 유혈 투쟁을 멈출 것을 당부하면서 터키 정부에 휴전을 제안하였고, 한동안 잘 지켜졌으나 IS로 인하여 현재는 사실상 평화가 깨진 상태다.
 
 
 
터키, 시리아 쿠르드인들 간 내분 조장

 
아유브왕조를 창건한 쿠르드족 출신 이슬람의 영웅 살라훗딘. 19세기 프랑스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이다.
  터키의 최대 관심은 IS가 아니라 PKK와 함께 PKK와 연계된 시리아 쿠르드의 약진이다. 이를 막기 위해 시리아 쿠르드 PYD(민주통일당)와 PYD의 무장조직인 YPG가 터키 국경 인근 시리아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 IS를 공습하겠다던 공군기가 IS와 전투를 벌이는 YPG를 공격한 것도 그런 이유다.
 
  PKK, PYD, YPG는 모두 좌파 조직이다. 같은 쿠르드인이지만 이라크 지방정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코바니 전투 시 PKK 소속 전투원들이 시리아로 들어가 싸우는 것을 막는 대신 이라크 쿠르드군 조직인 페시메르가(Peshmerga)가 터키를 거쳐 시리아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한 것도 쿠르드의 사상적 차이를 계산해서다.
 
  시리아 쿠르드는 시리아 내전이라는 기회를 살려 쿠르드 자치정부를 세우고자 미국의 아군이 되어 반IS 전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터키 정부는 이를 막고자 12세기 십자군 전쟁의 무슬림 영웅으로 쿠르드 출신인 살라훗딘(살라딘)의 이름을 딴 새로운 시리아 쿠르드 군사 조직 ‘살라훗딘의 후손들’을 후원하여 IS에 맞서게 하고 있다. 터키는 더 나아가 이들에게 같은 시리아 쿠르드인인 YPG를 공격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살라훗딘의 후손들’ 사령관 마무드 아부 함자는 자신의 조직은 600여 명의 전사(戰士)로 구성되어 있고, 터키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YPG는 아랍인과 쿠르드인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해 분열을 일으키고 쿠르드인을 적대시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IS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쿠르드 자체 분열의 참극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살라훗딘은 십자군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이집트 카이로를 건설한 이스마일, 시아파, 파티마조를 몰아내고 아유브(Ayyub)조를 세운 무슬림의 영웅이자 3000만 쿠르드인의 자랑이다. 쿠르드인들은 그의 군대와 아유브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아유브조가 쓰러진 후에도 쿠르드인들은 시리아 지역에서 쿠르드 정권을 한동안 유지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이름을 딴 후손들이 터키의 전략에 동조하여 시리아 내 쿠르드 세력을 공고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의 고민
 
  미국은 터키가 YPG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이 못마땅하다. YPG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터키 때문에 러시아와 밀착한다면 시리아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렇지 않아도 YPG는 바샤르 정권과 암묵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서로의 이익을 얻기 위한 적대적 우호관계다. ‘살라훗딘의 후손들’이 YPG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이유다.
 
  1920년 세브르 조약이 성사되었더라면 쿠르드는 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난 현재 3000만 쿠르드인이 시리아, 이라크에서 독립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1187년 살라훗딘이 십자군의 항복을 받아 예루살렘에 승리자로 입성하였듯 쿠르드인이 기나긴 슬픈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과거보다 위대한 미래를 건설할 수 있을까? 역사가 타바리의 말마따나 오로지 신만이 잘 아시리라(알라후 아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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