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미산마을, 박원순 시장의 대표사업인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상징
⊙ 성미산마을 일부 활동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전교조 출신 해임교사 등 ‘좌파 성향’
⊙ 서울시로부터 올해 220억원 지원받아
⊙ 박원순 시장, 2017년까지 3180명의 마을운동가 양성하겠다고 밝혀… “박 시장의 친위대”라는 시각도
⊙ 성미산마을 일부 활동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전교조 출신 해임교사 등 ‘좌파 성향’
⊙ 서울시로부터 올해 220억원 지원받아
⊙ 박원순 시장, 2017년까지 3180명의 마을운동가 양성하겠다고 밝혀… “박 시장의 친위대”라는 시각도
- 성미산에서 바라본 성미산마을 모습. 성미산학교, 성미산마을극장을 비롯해 공동체 소속의 기관 및 상점이 30군데 이상이 있다.
서울시 마포구에 성미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성산동, 망원동, 서교동이 있다. 성미산은 해발 66m인 뒷동산에 불과하다. 이곳에 1993년부터 시작된 ‘공동육아계획에 따른 마을공동체’가 있다. 현재 성미산마을 주민은 100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자료는 없다.
성미산마을은 마을공동체의 우수사례로 꼽혀 왔다. 특히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이 작년 8월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만들면서 재정적인 지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서울시의 이 사업은 성미산마을과 같은 마을공동체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우리마을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이다.
박 시장은 2012년 9월 11일 ‘마을공동체 5개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2012년 100개 마을 조성을 시작으로 2017년도까지 975곳의 마을공동체를 조성할 예정이다. 시는 접수된 마을사업 제안서를 심사해 마을마다 100만~600만원씩을 지원한다. 마을공동체 종합센터는 지속적으로 마을공동체를 후원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에만 세 차례 마을공동체를 모집했다. 또 마을공동체를 후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마련 중에 있다. 이들 단체와 주민들이 서울시로부터 올 한 해 지원받는 예산을 다 합치면 약 2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주요 활동가 중 국가보안법 위반자 많아
성미산마을은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프로젝트 예산을 지원받는 22개 마을공동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성미산마을 조성은 이곳 주민 유창복씨가 주도했다. 유창복씨는 2001년 도시개발에 반대하며 성미산학교와 마을두레생활협동조합 등 주민자치 조직을 만든 성미산마을 투쟁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성미산마을 커뮤니티 성미산마을극장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유씨는 성미산마을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가 주도하는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에 임명됐다. 마을지원센터는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수탁자로 선정됐다.
성미산마을을 이끌고 있는 주요 활동가들은 정치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성미산마을 내에 있는 ‘민중의 집’ 운영위원인 오진아(43)씨는 2010년 6월 진보신당 소속으로 마포구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현재 구의원으로 활동 중이며 성미산마을 주민의 지역기반을 구축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 성미산투쟁을 이끌었던 ‘성미산대책위’ 위원장 문치웅(44)씨는 명지대 총학생회장과 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2006년 5월 마포구의원 민노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10년 6월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에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성미산마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의 전력(前歷)에 있다. 마을의 주요 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거나, 전교조 출신 해임교사 등 이른바 ‘좌파 성향의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공동체 활동을 기반으로 기성 정치권 진입을 모색 중이다. 성미산마을은 마을공동체의 ‘모범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헤럴드경제》와 《미래한국》은 최근 성미산마을이 ‘종북좌파 양성소’가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았다. 극단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성미산마을. 기자는 성미산마을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좌편향 홍보물로 가득 찬 성미산 대표 카페
지난 7월 초 이곳을 찾았다. 성미산마을과 연결되는 지하철 망원역은 한산했다. 2번 출구로 올라가니 호두과자를 파는 노점상이 보였다. 무료한 수요일의 풍경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성미산마을’. 한 블로거는 성미산마을을 찾아가려면 망원역 2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고 게시했다. 하지만 기자가 확인한 결과, 1번 출구로 나가는 것이 편리했다.
“성미산마을? 거긴 왜 가려고? 앞쪽으로 쭉 가다가 망원우체국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죄다 그쪽 가게야.”
부채질하던 중년의 남성이 시큰둥하게 길을 일러줬다. ‘마을사람들에 대해 좀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도 잘 몰라. 자기들끼리 행사도 하는 것 같고, 잘사는 것 같던데. 이 동네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라고 했다.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성미산마을길에 들어섰다. 특별히 이질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평일에다 업무시간이어서인지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가게로 들어섰다. 성미산마을을 대표하는 ‘작은나무’라는 카페였다. 원목으로 인테리어 된 공간에 여성 점원이 카운터를 지켰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놓고 카페를 둘러보았다. 차분한 분위기와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그런데 책이 진열된 곳에 시선이 멈췄다. 보통의 카페에는 책을 비치할 경우, 손님의 기호에 맞춰 읽기 쉬운 소설이나 시집을 꽂아 놓는 게 일반적이다. 작은나무 카페에 꽂아 놓은 책들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주기자》(주진우)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김미화) 《이상호의 기자 X파일》(이상호) 《안철수의 생각》(안철수) 등이 눈에 띄었다. 물론 《시크릿》(론다 번)과 같은 자기계발서들도 있었다. 하지만 책꽂이의 가장 전면(前面)에 위치한 책들은 정치색이 강한 도서들이었다.
카페를 한 바퀴 훑어보니 입구 쪽에 전단지들이 보였다. 그 전단지들은 진열한 책들보다 더 이념·사상적인 색채가 강해 보였다. 다음은 전단지들의 목록이다.
▲<맑시즘 2013>(노동자연대다함께 발행) ▲<쌍용차 국정조사! 해고자 복직!>(쌍용자동차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범국민대책위원회 발행) ▲<우리 주민들은 홍익대학교재단이 또다시 성미산을 훼손하며 ‘홍대 외국인 기숙사’까지 욱여넣으려는 것을 반대합니다!>(홍대외국인기숙사신축반대 성미산비상대책위원회 발행) ▲<인권에 대해서 말걸기- 내안의 편견과 마주앉기>(숨쉬는도서관 발행) ▲<우리가 밀양이다>(밀양765kV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대안교육연대 공동발행) ▲<우리동생>(마포우리동물병원생활협동조합 발행)>
입구 쪽은 이러한 정치색 짙은 전단지로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단순히 문화재나 콘서트 연극 등을 홍보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농성이나 투쟁을 위한 자료처럼 보였다. 마을주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탄원서도 보였다. 입구 왼편에는 <홍대 외국인 기숙사> 반대 전단지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민주화운동 공식기념곡 지정 범국민 지지 서명’을 위한 명부(名簿)가 놓여 있었다. 창가에는 ‘KBS수신료 2500원에서 6500원으로 폭탄인상. 절대 못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의 차분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홍보물이었다.
‘작은나무’는 2004년 10월에 개업(開業)한 카페다. 당시엔 ‘유기농 아이스크림 전문점 그늘나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장사가 되지 않아 곧 폐업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2년 후 성미산학교 교사들은 카페에 ‘위탁 운영’을 제안한다.
2007년 3월 성미산학교 교사들 10명이 100만원씩을 출자해 카페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카페이름을 ‘작은나무’로 바꿨다. 누적 적자로 인해 출자자들은 카페의 완전 폐업을 고려했지만, (사)사람과마을(現 대표 김우)에서 운영진을 재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놨다고 한다. 주민 출자로 확대하면서 수천만 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으며 2012년 말 출자자는 200명에 달한다. 가끔 와인파티, 바자회, 동아리 공연 등의 행사를 개최해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또 성미산마을을 알리는 공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을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카페를 정치성향이 짙은 홍보물과 전단지로 도배해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성미산마을은 최근 박원순 시장의 대표사업인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상징 격인 커뮤니티다.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관광이나 마을주민이 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카페에 어김없이 들른다. 이 같은 경우 행인들은 카페의 홍보물에 노출되게 된다.
성미산식당의 부담스런 가격
카페를 나와 차도를 쭉 따라 걸었다. 성미산마을 커뮤니티에 속하는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과 ‘되살림가게’ ‘동네부엌’을 지나니 큰 빌딩이 보였다. 빌딩의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식당이 있었다. 2층 식당은 성미산마을의 대표식당 ‘성미산밥상’이었다.
성미산밥상은 2010년 개업했다. 식당을 차리기 위해선 카페보다 더 많은 출자를 받아야 했다. 100여 명의 개인과 단체가 ‘마을식당 준비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현재 성미산밥상은 작은나무와 더불어 마을의 대표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블로그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게에 들어서자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적수천석(滴水穿石)’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이다. 서민들이 찾는 일반식당의 슬로건이라기엔 다소 어색해 보였다.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가게에 꽂혀 있는 성미산밥상 전단지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이런 내용이 있다. <꿈이 있습니다. 마을식당을 열어 어려운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나누고 싶다는 꿈이었습니다. (중략) 밥상을 차리는 이도 밥상에서 숟가락을 드는 이도 즐거운 곳. 내 배를 채울 뿐만 아니라 허기진 주위를 돌아보는 눈이 샛별처럼 반짝이는 곳. 모두가 골고루 행복할 수 있는 곳….>
전단지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식당메뉴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단 성미산밥상을 위한 ‘출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단지만 보면 식당은 경영난에 허덕여 손님들의 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뉴는 식사와 안주로 항목을 구분해 놓고 있다. 한데 가격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식사 중 한우뚝배기불고기는 1만원, 치킨가스 1만원, 라면은 6500원 등이었다. 안주 가격은 더했다. 치킨 2만3000원, 칠리새우 3만3000원, 해물누룽지탕은 2만8000원이었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지만 일반 식당과 비교하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다.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성산동 사람들이 이 가게를 자주 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민들이 식사나 술자리를 위해 찾기에는 식사와 술안주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이를 증명하듯 오후 1시경 점심시간에 식당을 찾았으나 기자를 포함해 세 곳에서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산한 느낌이었다.
점원은 당시 6명이었다. 주방장 김요리사(성미산마을에서는 주민들 각자의 ‘별칭’이 있음)를 비롯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주민이었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친절한 편이었다. 정식 직원이라기보다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점원들이 매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성미산학교, 기자와 인터뷰 거절
성미산마을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의 교육을 자체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엔 개소한 4곳의 어린이집(또바기어린이집·성미산어린이집·날으는어린이집·우리어린이집)에서 육아를 공동으로 담당한다. 어린이집은 설립 형태에 따라 국공립과 사립어린이집으로 나뉜다. 성미산마을 어린이집 4곳의 공식명칭은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이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후어린이집도 1곳(도토리방과후교실)이 있다. 등원하는 아이들은, 관계자에 따르면 스무 명 안팎이다.
원생들은 어린이집을 수료하면 대부분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로 진학한다. 초·중·고 통합 12년 과정이다. 일반적인 중학교 1학년생은 7학년, 고등학교 3학년생은 12학년이다. 정원의 10%는 장애인으로 받는다. 기숙시설은 없다. 정부로부터 인가를 신청하지 않아 학력인증이 불가능하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성미산학교는 대지 220평, 연건평 550평 규모이다. 학교 운영은 학교설립위원회가 담당한다. 의사결정은 학교설립위원회·학교운영위원회·교사회가 진행한다. 교육과정은 국가교육과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편성 및 운영하고 있다. 교사회는 학기가 시작되기 이전에 학부모를 초청해 새 학기 교육과정을 알린다. 학기 후에는 교육과정 평가회를 갖기도 한다. 학교운영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학교’라는 모토를 반영하고 있다.
학교 측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관계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려면 성미산마을을 운영하는 위원회 및 단체와의 공식적인 연결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성미산학교 근처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성미산마을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음은 A군과의 일문일답이다.
—성미산마을 생활에 만족하는가.
“대체로 만족한다. 처음 부모님이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는 정말 싫었다. 알던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하고, 도무지 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그때와 다르다. 먼저 수업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 기본과목으로 영어나 수학 등이 있지만 필요 없는 과목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국사나 과학처럼 내가 잘할 수 없는 부분까지 해야 하는 기존 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매우 적고 선행학습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또 농촌체험이나 마을인턴십 등을 통해 실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활동도 참 좋다.”
—성미산마을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건 어떠한가.
“나쁘지 않다. 예전에는 경기도 ○○시에 살았다. 그때는 마을사람들끼리 소통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인사 한 번 나누는 일이 없었다. 이곳은 다르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한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별칭을 사용하고 있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나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이 없다. 모두 평등하게 지내고 있으며 화목하다. 그러한 점이 나이가 어린 내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마을사람들은 이름 대신 서로의 별칭을 부르며 지내고 있었다. 별칭은 마을주민으로 인정받으면 사용할 수 있다. 별칭들은 주로 마을사람들이 추천한 이름 중에 당사자가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A군은 마을주민이 수백 명 되다 보니 이름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별칭을 부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별칭들로는 ‘풍뎅이·도화지·애기동물·하품·삼돌이·소피아·별사탕·청록이·희망·양파·루시아·소나기·느리·나비’ 등 단순하면서 가벼운 이름들이 많다.
—마을주민으로서 불편함을 느끼는 측면이 있다면.
“아무래도 외부의 시선이다. ‘뭔가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일반사람들과 다르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학생이라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학생들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성서초등학교나 얼마 전 들어온 홍익대학교재단의 학생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우리끼리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홍익대학교재단은 게다가 성미산을 깎아 학교를 지었다. 성미산투쟁(제2차 성미산투쟁: 홍익대학교재단이 성미산 근처로 들어오며 겪었던 마을주민들과의 마찰을 일컬음)을 통해서 우리가 모여서 힘을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다. 어쨌든 외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인식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이제 10학년(일반고교 1학년에 해당)인 A군은 사회비판적인 인식이 강했다. 또 마을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내비쳤다.
“세상을 옳게 바꾸려는 생각에는 동의해야”
자신을 12학년(일반고교 3학년에 해당)이라고 밝힌 B군은 또 다른 이야기를 했다. B군은 군복무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다음은 B군과의 인터뷰다.
—학교 졸업 후엔 어떤 계획이 있는가.
“아직은 대학에 진학해야 할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언젠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검정고시를 쳐서 입학하게 될 것 같다. 대학에 가지 않고 내게 맞는 적당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름 있는 대학? 그거 그냥 다 겉치레라고 생각한다. 그런 곳에서 졸업해 봤자 비리나 저지르는 게 아니겠는가. 학교에서 종종 그런 얘기를 듣는다. 차라리 농촌실습이나 인턴십을 하는 우리가 훨씬 사회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무 살이 넘어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
—병역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사실 학력이 인증되지 않은 상황이라 대체병역을 하면 된다. 그런데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해야 해서 그게 또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입대하지 않고 기다려 볼 생각이다. 일을 하며 기다리다 보면 병역제도가 바뀌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음 대통령이 문재인이나 안철수 같은 사람이 된다면 바뀌지 않을까. 법률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도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의 제도 아래에선 답이 없다.”
—현역으로 입대하는 일반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구조적인 문제다. 사회가 대학에 들어가기를 강요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연히 의무적으로 군대에 입대해야 한다. 누가 군대에 가고 싶겠나.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가.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병역기간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나. 보수정권에서는 안보를 워낙 중요시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개선점을 찾으려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정권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일반인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으로 들린다. 본인의 정치적인 생각을 말해 달라.
“아직 나이가 어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보수정당에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또 많이 들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해 일반인들을 배려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정치라는 것이 그냥 밥그릇 싸움인 것 같다. 부모님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 과거에는 두 분 모두 민주노동당 소속이셨다.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고 소리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확실히 정치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도 그러한 일을 위해 사는 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님이나 학교의 영향을 받는 점이 있다. 또 마을 사람들끼리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고민이 많다. 주민들이 모일 기회가 많아 토론하는 일이 잦다.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본다.”
성미산학교에 다니는 또 다른 학생 C군(10학년)과의 대화다. 올해 17세인 그는 “나의 꿈은 대한민국을 바꾸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투쟁’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성미산 기슭에 홍익대학교재단이 들어왔다. 자기 땅이라며 산을 훼손하면서까지 학교를 지었다. 재단은 교육기관이지 않은가. 자연을 해치면서 사람을 교육한다는 생각이 옳은가. 그러한 투쟁과정을 겪으면서 사회문제에 대해 인식을 가지게 됐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고 싶다.”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가.
“개인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너무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를 운영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외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들의 의견에 대해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없다. 카를 마르크스나 에릭 홉스봄의 사상에 공감한다. 공산주의라고 무조건 배척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옳게 바꾸려는 생각에는 동의해야 한다. 기득권의 생각에 갇혀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은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학교생활은 어떤가.
“나는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특별히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따라갔으니까. 하지만 이곳에는 정해진 ‘틀’이라는 것이 없다. 학생들이 알아서 생각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또 선생님들과의 거리가 없다. 스콜라(박복선 교장을 부르는 별칭)나 다른 선생님들이 친구처럼 우리를 대한다. 기존 학교에서 느꼈던 강압이 없어 좋다. 선생님들이 다양한 책을 권해 주며 여러 가지 사상을 접하기를 권한다. 이런 점이 내가 사회문제에 대해 또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학교에서는 주로 무엇을 배우는가.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배우기는 한다. ‘학습’보다 ‘토론’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한다. 자세히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 종종 기자들이 찾아오곤 한다. 선생님들이, 혹시 물어보면 ‘학교얘기를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 가지라 한 적은 있지만 특정 정당에 가입하라 한 적은 없어”
(사)사람과마을이 2012년을 결산하며 내놓은 <2012년 성미산마을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미산마을로 이주한 가장 큰 이유로 ‘교육 및 육아 인프라’(44.5%)를 꼽았다. 그 뒤를 ‘직장이 가까워서’ ‘교통 및 근린 환경의 쾌적함’이 따랐다.
성미산마을의 유입인구는 2004년 이후 활발해지고 있다(전체의 78.4%). 이는 매스컴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또 성미산에 관한 책과 문헌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활성화 등도 유입인구 상승에 톡톡히 한몫했다.
기자는 실제로 성산동 주민과 마을주민들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성산동 주민 87명을 대상으로 개별인터뷰 및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54명(62%)이 성미산마을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성미산마을에 대해 비호감 의사를 표시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20명인 23%였다.
인터뷰에 응한 김성태(가명)씨는 “30년 가까이 성산동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며 “서울시 및 홍익대학교재단과 대립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마을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성산동 주민들이 성미산마을에 있는 주요 시설들 중에서 어떤 곳을 자주 이용하는지도 물었다. 조사결과 성산동 주민들은 성미산마을의 ‘두레생협’(53%)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되살림가게(20%), 작은나무 카페(17%), 성미산밥상(7%)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성미산마을 커뮤니티를 1주일에 3회 이상 이용한다는 주민은 34명에 그쳤다. 성산동 주민들이 성미산마을 주민들에게 바라는 것으로는 전체 응답자 87명 중 59명이 ‘주민들 간 적극적인 교류를 위한 행사 개최’를 꼽았다. 설문조사 분석결과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성산동 주민 간의 교류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의 중요 행사를 담당하는 (사)사람과마을의 김우 대표는 “성미산마을 주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산동 주민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또 외부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서울시와 마을공동체 센터로부터 받는 지원도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사람과마을은 자금난으로 사무실도 매각한 상태로 알려졌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성미산마을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박원순 시장 부임 이후 마을공동체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이에 마을주민인 유창복 위원이 마을공동체 종합센터장으로 부임하고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직접적인 수혜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지요. 하지만 현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500만원 정도를 받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마을자치위원회와 함께 논의해 그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마을주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고민하고 집행하죠. 외부에서는 수십 억이니, 성미산마을이 직접적 수혜를 받는다느니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미산마을이 성산동에 자리 잡은 지 벌써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성산동 주민들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마을축제나 동아리를 만들어 성산동 주민들과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지만 소통 그 자체는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희도 계속적으로 교류를 위해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성미산마을 주민들만 사용하는 별칭(김우 대표의 별칭은 ‘느리’), 주민들만 사용하는 화폐(‘두루’라는 화폐가 마을에서만 통용되고 있음) 등이 주민들과의 소통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별칭을 사용한 건 2004년부터입니다. 별칭이라는 것이 거창한 이름이 아니고 귀여운 사물이나 동물에 빗댄 호칭입니다. 또 개별적으로 좋아하는 단어들이기도 하고요. 별칭을 부름으로써 서로 간의 친밀성을 높일 수 있죠. 편견이 문제지, 실제로 사용하게 되면 부르는 사람들끼리는 금세 친해지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 거부감을 느낀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지역화폐를 사용하게 되면 지역공동체가 가까워진다는 건 이미 검증된 이야기입니다. 되살림가게 등에서 물건을 팔면 할인된 금액으로 두루를 받고, 그것을 통해서 화폐가 활성화되면 좋지 않을까요. 또 성미산밥상, 작은나무 등의 이용률도 높아집니다. 여러 면에서 상승효과가 있습니다. 그걸 마치 우리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겠죠.”
—마을사람들이 이용할 만한 시설에는 좌파 중심의 홍보물이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특정 사상과 이념을 강조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건 마을주민들이 개별적으로 홍보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운영위나 ‘사람과마을’ 차원에서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밀양송전탑 문제나 마르크시즘에 대한 포럼 개최 등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주민 몇몇이 그렇게 행동하는 문제라 우리도 제약을 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사람들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김 대표(진보신당)를 비롯한 마을의 운영위 몇몇은 이미 진보계열의 정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운영진들의 사상이 치우쳐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언론에서는 아이들의 육아 및 교육을 주로 하는 성미산마을을 ‘종북좌파 양성소’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운영위가 진보계열의 성향을 띠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지하는 정당이 개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저는 진보신당이지만 어떤 분은 통합진보당, 어떤 분은 녹색당, 이런 식입니다. 같은 진보라고 해도 생각이 다른데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종북좌파 양성소라고 보는 것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 적은 있지만 특정 정당에 가입하라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참교육을 실행하려 한 것뿐입니다. 언론에서 지나치게 우리를 몰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사상의 자유이기 때문에 누구도 제한할 권리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입니다.”
마을공동체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2017년과 그해의 大選
서울시가 22개 마을공동체 프로젝트에 올해 투입하는 예산은 220억원가량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연임을 노리고 있다. 경제 일간지 《헤럴드경제》는 지난 4월 4일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사업 명목으로 특정 정치세력과 이익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골자는 진보계열의 정당인들이 포진해 있는 마을공동체를 박 시장이 후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미산마을을 비롯한 마을공동체들의 특징은 각종 시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성미산대책위’(대표 문치웅)는 2008년 6월 성미산학교 학생들을 앞세워 미(美) 쇠고기 반대시위·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폐기 야간집회 등을 개최한 바 있다. 또 성미산학교장 박복선은 생태운동 위주의 대안교육을 내세워 2006년 8월 ‘전태일 추모문화제’를 열였다.
마을공동체 프로젝트는 2017년까지 예정돼 있다. 왜 2017년일까? 2017년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마을공동체 프로젝트 완성의 해와 19대 대선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로선 딱히 이거다 저거다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각종 복지 사업 등에 돈이 없다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는 서울시가 마을공동체 사업에는 거액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보다 중요하다는 증거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마을공동체가 박원순 시장의 대선 전진기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다. 게다가 마을공동체를 주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난히 국가보안법 전력자, 전교조 해직교사 등이 많은 것도 이 사업을 순수하게만 보는 데 부담이 된다. 이들은 반정부 성향의 각종 시위에 참여한다.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에 시비 거는 사람들’의 활동에 국민 세금을 쓰는 꼴이다.
자기들만의 정치 성향, 자기들만의 지역 화폐, 자기들만의 별칭, 자기들만의 학교 시스템을 갖고 있는 성미산마을. 그래서인지 성미산 사람들은 주민들과의 화학적 결합이 부족해 보였다. 점차 서울 한복판에 섬(島)이 되고 있는 성미산마을. 그리고 이런 특징들이 2세들에까지 스며들고 있는 곳. 이곳의 실체는 정말 무엇일까.⊙
성미산마을은 마을공동체의 우수사례로 꼽혀 왔다. 특히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이 작년 8월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만들면서 재정적인 지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서울시의 이 사업은 성미산마을과 같은 마을공동체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우리마을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이다.
박 시장은 2012년 9월 11일 ‘마을공동체 5개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2012년 100개 마을 조성을 시작으로 2017년도까지 975곳의 마을공동체를 조성할 예정이다. 시는 접수된 마을사업 제안서를 심사해 마을마다 100만~600만원씩을 지원한다. 마을공동체 종합센터는 지속적으로 마을공동체를 후원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에만 세 차례 마을공동체를 모집했다. 또 마을공동체를 후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마련 중에 있다. 이들 단체와 주민들이 서울시로부터 올 한 해 지원받는 예산을 다 합치면 약 2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주요 활동가 중 국가보안법 위반자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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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시내 마을공동체 프로젝트에 예산 22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 |
성미산마을을 이끌고 있는 주요 활동가들은 정치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성미산마을 내에 있는 ‘민중의 집’ 운영위원인 오진아(43)씨는 2010년 6월 진보신당 소속으로 마포구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현재 구의원으로 활동 중이며 성미산마을 주민의 지역기반을 구축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 성미산투쟁을 이끌었던 ‘성미산대책위’ 위원장 문치웅(44)씨는 명지대 총학생회장과 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2006년 5월 마포구의원 민노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10년 6월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에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성미산마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의 전력(前歷)에 있다. 마을의 주요 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거나, 전교조 출신 해임교사 등 이른바 ‘좌파 성향의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공동체 활동을 기반으로 기성 정치권 진입을 모색 중이다. 성미산마을은 마을공동체의 ‘모범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헤럴드경제》와 《미래한국》은 최근 성미산마을이 ‘종북좌파 양성소’가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았다. 극단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성미산마을. 기자는 성미산마을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좌편향 홍보물로 가득 찬 성미산 대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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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내부에는 정치성향이 짙은 홍보물이 진열돼 있다. ‘홍대 외국인 기숙사’ 반대하는 전단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하기 위한 지지 서명서가 깔려 있었다. |
“성미산마을? 거긴 왜 가려고? 앞쪽으로 쭉 가다가 망원우체국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죄다 그쪽 가게야.”
부채질하던 중년의 남성이 시큰둥하게 길을 일러줬다. ‘마을사람들에 대해 좀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도 잘 몰라. 자기들끼리 행사도 하는 것 같고, 잘사는 것 같던데. 이 동네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라고 했다.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성미산마을길에 들어섰다. 특별히 이질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평일에다 업무시간이어서인지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가게로 들어섰다. 성미산마을을 대표하는 ‘작은나무’라는 카페였다. 원목으로 인테리어 된 공간에 여성 점원이 카운터를 지켰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놓고 카페를 둘러보았다. 차분한 분위기와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그런데 책이 진열된 곳에 시선이 멈췄다. 보통의 카페에는 책을 비치할 경우, 손님의 기호에 맞춰 읽기 쉬운 소설이나 시집을 꽂아 놓는 게 일반적이다. 작은나무 카페에 꽂아 놓은 책들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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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마을의 대표카페 작은나무. |
카페를 한 바퀴 훑어보니 입구 쪽에 전단지들이 보였다. 그 전단지들은 진열한 책들보다 더 이념·사상적인 색채가 강해 보였다. 다음은 전단지들의 목록이다.
▲<맑시즘 2013>(노동자연대다함께 발행) ▲<쌍용차 국정조사! 해고자 복직!>(쌍용자동차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범국민대책위원회 발행) ▲<우리 주민들은 홍익대학교재단이 또다시 성미산을 훼손하며 ‘홍대 외국인 기숙사’까지 욱여넣으려는 것을 반대합니다!>(홍대외국인기숙사신축반대 성미산비상대책위원회 발행) ▲<인권에 대해서 말걸기- 내안의 편견과 마주앉기>(숨쉬는도서관 발행) ▲<우리가 밀양이다>(밀양765kV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대안교육연대 공동발행) ▲<우리동생>(마포우리동물병원생활협동조합 발행)>
입구 쪽은 이러한 정치색 짙은 전단지로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단순히 문화재나 콘서트 연극 등을 홍보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농성이나 투쟁을 위한 자료처럼 보였다. 마을주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탄원서도 보였다. 입구 왼편에는 <홍대 외국인 기숙사> 반대 전단지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민주화운동 공식기념곡 지정 범국민 지지 서명’을 위한 명부(名簿)가 놓여 있었다. 창가에는 ‘KBS수신료 2500원에서 6500원으로 폭탄인상. 절대 못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의 차분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홍보물이었다.
‘작은나무’는 2004년 10월에 개업(開業)한 카페다. 당시엔 ‘유기농 아이스크림 전문점 그늘나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장사가 되지 않아 곧 폐업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2년 후 성미산학교 교사들은 카페에 ‘위탁 운영’을 제안한다.
2007년 3월 성미산학교 교사들 10명이 100만원씩을 출자해 카페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카페이름을 ‘작은나무’로 바꿨다. 누적 적자로 인해 출자자들은 카페의 완전 폐업을 고려했지만, (사)사람과마을(現 대표 김우)에서 운영진을 재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놨다고 한다. 주민 출자로 확대하면서 수천만 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으며 2012년 말 출자자는 200명에 달한다. 가끔 와인파티, 바자회, 동아리 공연 등의 행사를 개최해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또 성미산마을을 알리는 공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을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카페를 정치성향이 짙은 홍보물과 전단지로 도배해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성미산마을은 최근 박원순 시장의 대표사업인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상징 격인 커뮤니티다.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관광이나 마을주민이 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카페에 어김없이 들른다. 이 같은 경우 행인들은 카페의 홍보물에 노출되게 된다.
성미산식당의 부담스런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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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대표식당인 성미산밥상의 전경. |
성미산밥상은 2010년 개업했다. 식당을 차리기 위해선 카페보다 더 많은 출자를 받아야 했다. 100여 명의 개인과 단체가 ‘마을식당 준비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현재 성미산밥상은 작은나무와 더불어 마을의 대표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블로그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게에 들어서자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적수천석(滴水穿石)’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이다. 서민들이 찾는 일반식당의 슬로건이라기엔 다소 어색해 보였다.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가게에 꽂혀 있는 성미산밥상 전단지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이런 내용이 있다. <꿈이 있습니다. 마을식당을 열어 어려운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나누고 싶다는 꿈이었습니다. (중략) 밥상을 차리는 이도 밥상에서 숟가락을 드는 이도 즐거운 곳. 내 배를 채울 뿐만 아니라 허기진 주위를 돌아보는 눈이 샛별처럼 반짝이는 곳. 모두가 골고루 행복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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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정면 오른쪽에 ‘적수천석(滴水穿石)’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인데 서민들이 찾는 일반식당에 걸려 있기에는 어색해 보였다. |
메뉴는 식사와 안주로 항목을 구분해 놓고 있다. 한데 가격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식사 중 한우뚝배기불고기는 1만원, 치킨가스 1만원, 라면은 6500원 등이었다. 안주 가격은 더했다. 치킨 2만3000원, 칠리새우 3만3000원, 해물누룽지탕은 2만8000원이었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지만 일반 식당과 비교하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다.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성산동 사람들이 이 가게를 자주 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민들이 식사나 술자리를 위해 찾기에는 식사와 술안주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이를 증명하듯 오후 1시경 점심시간에 식당을 찾았으나 기자를 포함해 세 곳에서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산한 느낌이었다.
점원은 당시 6명이었다. 주방장 김요리사(성미산마을에서는 주민들 각자의 ‘별칭’이 있음)를 비롯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주민이었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친절한 편이었다. 정식 직원이라기보다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점원들이 매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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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성미산학교’의 전경. 성미산학교 측은 인터뷰 요청에 마을운영위원회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거절했다. |
원생들은 어린이집을 수료하면 대부분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로 진학한다. 초·중·고 통합 12년 과정이다. 일반적인 중학교 1학년생은 7학년, 고등학교 3학년생은 12학년이다. 정원의 10%는 장애인으로 받는다. 기숙시설은 없다. 정부로부터 인가를 신청하지 않아 학력인증이 불가능하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성미산학교는 대지 220평, 연건평 550평 규모이다. 학교 운영은 학교설립위원회가 담당한다. 의사결정은 학교설립위원회·학교운영위원회·교사회가 진행한다. 교육과정은 국가교육과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편성 및 운영하고 있다. 교사회는 학기가 시작되기 이전에 학부모를 초청해 새 학기 교육과정을 알린다. 학기 후에는 교육과정 평가회를 갖기도 한다. 학교운영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학교’라는 모토를 반영하고 있다.
학교 측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관계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려면 성미산마을을 운영하는 위원회 및 단체와의 공식적인 연결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성미산학교 근처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성미산마을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음은 A군과의 일문일답이다.
—성미산마을 생활에 만족하는가.
“대체로 만족한다. 처음 부모님이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는 정말 싫었다. 알던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하고, 도무지 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그때와 다르다. 먼저 수업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 기본과목으로 영어나 수학 등이 있지만 필요 없는 과목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국사나 과학처럼 내가 잘할 수 없는 부분까지 해야 하는 기존 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매우 적고 선행학습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또 농촌체험이나 마을인턴십 등을 통해 실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활동도 참 좋다.”
—성미산마을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건 어떠한가.
“나쁘지 않다. 예전에는 경기도 ○○시에 살았다. 그때는 마을사람들끼리 소통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인사 한 번 나누는 일이 없었다. 이곳은 다르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한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별칭을 사용하고 있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나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이 없다. 모두 평등하게 지내고 있으며 화목하다. 그러한 점이 나이가 어린 내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마을사람들은 이름 대신 서로의 별칭을 부르며 지내고 있었다. 별칭은 마을주민으로 인정받으면 사용할 수 있다. 별칭들은 주로 마을사람들이 추천한 이름 중에 당사자가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A군은 마을주민이 수백 명 되다 보니 이름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별칭을 부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별칭들로는 ‘풍뎅이·도화지·애기동물·하품·삼돌이·소피아·별사탕·청록이·희망·양파·루시아·소나기·느리·나비’ 등 단순하면서 가벼운 이름들이 많다.
—마을주민으로서 불편함을 느끼는 측면이 있다면.
“아무래도 외부의 시선이다. ‘뭔가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일반사람들과 다르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학생이라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학생들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성서초등학교나 얼마 전 들어온 홍익대학교재단의 학생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우리끼리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홍익대학교재단은 게다가 성미산을 깎아 학교를 지었다. 성미산투쟁(제2차 성미산투쟁: 홍익대학교재단이 성미산 근처로 들어오며 겪었던 마을주민들과의 마찰을 일컬음)을 통해서 우리가 모여서 힘을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다. 어쨌든 외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인식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이제 10학년(일반고교 1학년에 해당)인 A군은 사회비판적인 인식이 강했다. 또 마을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내비쳤다.
“세상을 옳게 바꾸려는 생각에는 동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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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이나 쓰지 않는 물품을 기부해서 파는 되살림가게. 기부 시 ‘두루’라는 마을 전용 화폐를 받을 수 있다. |
—학교 졸업 후엔 어떤 계획이 있는가.
“아직은 대학에 진학해야 할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언젠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검정고시를 쳐서 입학하게 될 것 같다. 대학에 가지 않고 내게 맞는 적당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름 있는 대학? 그거 그냥 다 겉치레라고 생각한다. 그런 곳에서 졸업해 봤자 비리나 저지르는 게 아니겠는가. 학교에서 종종 그런 얘기를 듣는다. 차라리 농촌실습이나 인턴십을 하는 우리가 훨씬 사회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무 살이 넘어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
—병역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사실 학력이 인증되지 않은 상황이라 대체병역을 하면 된다. 그런데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해야 해서 그게 또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입대하지 않고 기다려 볼 생각이다. 일을 하며 기다리다 보면 병역제도가 바뀌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음 대통령이 문재인이나 안철수 같은 사람이 된다면 바뀌지 않을까. 법률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도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의 제도 아래에선 답이 없다.”
—현역으로 입대하는 일반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구조적인 문제다. 사회가 대학에 들어가기를 강요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연히 의무적으로 군대에 입대해야 한다. 누가 군대에 가고 싶겠나.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가.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병역기간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나. 보수정권에서는 안보를 워낙 중요시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개선점을 찾으려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정권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일반인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으로 들린다. 본인의 정치적인 생각을 말해 달라.
“아직 나이가 어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보수정당에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또 많이 들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해 일반인들을 배려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정치라는 것이 그냥 밥그릇 싸움인 것 같다. 부모님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 과거에는 두 분 모두 민주노동당 소속이셨다.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고 소리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확실히 정치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도 그러한 일을 위해 사는 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님이나 학교의 영향을 받는 점이 있다. 또 마을 사람들끼리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고민이 많다. 주민들이 모일 기회가 많아 토론하는 일이 잦다.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본다.”
성미산학교에 다니는 또 다른 학생 C군(10학년)과의 대화다. 올해 17세인 그는 “나의 꿈은 대한민국을 바꾸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투쟁’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성미산 기슭에 홍익대학교재단이 들어왔다. 자기 땅이라며 산을 훼손하면서까지 학교를 지었다. 재단은 교육기관이지 않은가. 자연을 해치면서 사람을 교육한다는 생각이 옳은가. 그러한 투쟁과정을 겪으면서 사회문제에 대해 인식을 가지게 됐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고 싶다.”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가.
“개인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너무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를 운영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외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들의 의견에 대해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없다. 카를 마르크스나 에릭 홉스봄의 사상에 공감한다. 공산주의라고 무조건 배척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옳게 바꾸려는 생각에는 동의해야 한다. 기득권의 생각에 갇혀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은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학교생활은 어떤가.
“나는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특별히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따라갔으니까. 하지만 이곳에는 정해진 ‘틀’이라는 것이 없다. 학생들이 알아서 생각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또 선생님들과의 거리가 없다. 스콜라(박복선 교장을 부르는 별칭)나 다른 선생님들이 친구처럼 우리를 대한다. 기존 학교에서 느꼈던 강압이 없어 좋다. 선생님들이 다양한 책을 권해 주며 여러 가지 사상을 접하기를 권한다. 이런 점이 내가 사회문제에 대해 또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학교에서는 주로 무엇을 배우는가.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배우기는 한다. ‘학습’보다 ‘토론’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한다. 자세히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 종종 기자들이 찾아오곤 한다. 선생님들이, 혹시 물어보면 ‘학교얘기를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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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의 별칭들이 적힌 액자.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이름이 아닌 별칭을 사용한다. |
성미산마을의 유입인구는 2004년 이후 활발해지고 있다(전체의 78.4%). 이는 매스컴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또 성미산에 관한 책과 문헌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활성화 등도 유입인구 상승에 톡톡히 한몫했다.
기자는 실제로 성산동 주민과 마을주민들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성산동 주민 87명을 대상으로 개별인터뷰 및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54명(62%)이 성미산마을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성미산마을에 대해 비호감 의사를 표시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20명인 23%였다.
인터뷰에 응한 김성태(가명)씨는 “30년 가까이 성산동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며 “서울시 및 홍익대학교재단과 대립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마을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성산동 주민들이 성미산마을에 있는 주요 시설들 중에서 어떤 곳을 자주 이용하는지도 물었다. 조사결과 성산동 주민들은 성미산마을의 ‘두레생협’(53%)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되살림가게(20%), 작은나무 카페(17%), 성미산밥상(7%)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성미산마을 커뮤니티를 1주일에 3회 이상 이용한다는 주민은 34명에 그쳤다. 성산동 주민들이 성미산마을 주민들에게 바라는 것으로는 전체 응답자 87명 중 59명이 ‘주민들 간 적극적인 교류를 위한 행사 개최’를 꼽았다. 설문조사 분석결과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성산동 주민 간의 교류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의 중요 행사를 담당하는 (사)사람과마을의 김우 대표는 “성미산마을 주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산동 주민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또 외부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서울시와 마을공동체 센터로부터 받는 지원도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사람과마을은 자금난으로 사무실도 매각한 상태로 알려졌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성미산마을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박원순 시장 부임 이후 마을공동체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이에 마을주민인 유창복 위원이 마을공동체 종합센터장으로 부임하고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직접적인 수혜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지요. 하지만 현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500만원 정도를 받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마을자치위원회와 함께 논의해 그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마을주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고민하고 집행하죠. 외부에서는 수십 억이니, 성미산마을이 직접적 수혜를 받는다느니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미산마을이 성산동에 자리 잡은 지 벌써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성산동 주민들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마을축제나 동아리를 만들어 성산동 주민들과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지만 소통 그 자체는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희도 계속적으로 교류를 위해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성미산마을 주민들만 사용하는 별칭(김우 대표의 별칭은 ‘느리’), 주민들만 사용하는 화폐(‘두루’라는 화폐가 마을에서만 통용되고 있음) 등이 주민들과의 소통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별칭을 사용한 건 2004년부터입니다. 별칭이라는 것이 거창한 이름이 아니고 귀여운 사물이나 동물에 빗댄 호칭입니다. 또 개별적으로 좋아하는 단어들이기도 하고요. 별칭을 부름으로써 서로 간의 친밀성을 높일 수 있죠. 편견이 문제지, 실제로 사용하게 되면 부르는 사람들끼리는 금세 친해지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 거부감을 느낀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지역화폐를 사용하게 되면 지역공동체가 가까워진다는 건 이미 검증된 이야기입니다. 되살림가게 등에서 물건을 팔면 할인된 금액으로 두루를 받고, 그것을 통해서 화폐가 활성화되면 좋지 않을까요. 또 성미산밥상, 작은나무 등의 이용률도 높아집니다. 여러 면에서 상승효과가 있습니다. 그걸 마치 우리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겠죠.”
—마을사람들이 이용할 만한 시설에는 좌파 중심의 홍보물이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특정 사상과 이념을 강조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건 마을주민들이 개별적으로 홍보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운영위나 ‘사람과마을’ 차원에서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밀양송전탑 문제나 마르크시즘에 대한 포럼 개최 등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주민 몇몇이 그렇게 행동하는 문제라 우리도 제약을 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사람들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김 대표(진보신당)를 비롯한 마을의 운영위 몇몇은 이미 진보계열의 정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운영진들의 사상이 치우쳐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언론에서는 아이들의 육아 및 교육을 주로 하는 성미산마을을 ‘종북좌파 양성소’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운영위가 진보계열의 성향을 띠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지하는 정당이 개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저는 진보신당이지만 어떤 분은 통합진보당, 어떤 분은 녹색당, 이런 식입니다. 같은 진보라고 해도 생각이 다른데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종북좌파 양성소라고 보는 것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 적은 있지만 특정 정당에 가입하라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참교육을 실행하려 한 것뿐입니다. 언론에서 지나치게 우리를 몰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사상의 자유이기 때문에 누구도 제한할 권리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입니다.”
마을공동체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2017년과 그해의 大選
서울시가 22개 마을공동체 프로젝트에 올해 투입하는 예산은 220억원가량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연임을 노리고 있다. 경제 일간지 《헤럴드경제》는 지난 4월 4일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사업 명목으로 특정 정치세력과 이익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골자는 진보계열의 정당인들이 포진해 있는 마을공동체를 박 시장이 후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미산마을을 비롯한 마을공동체들의 특징은 각종 시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성미산대책위’(대표 문치웅)는 2008년 6월 성미산학교 학생들을 앞세워 미(美) 쇠고기 반대시위·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폐기 야간집회 등을 개최한 바 있다. 또 성미산학교장 박복선은 생태운동 위주의 대안교육을 내세워 2006년 8월 ‘전태일 추모문화제’를 열였다.
마을공동체 프로젝트는 2017년까지 예정돼 있다. 왜 2017년일까? 2017년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마을공동체 프로젝트 완성의 해와 19대 대선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로선 딱히 이거다 저거다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각종 복지 사업 등에 돈이 없다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는 서울시가 마을공동체 사업에는 거액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보다 중요하다는 증거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마을공동체가 박원순 시장의 대선 전진기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다. 게다가 마을공동체를 주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난히 국가보안법 전력자, 전교조 해직교사 등이 많은 것도 이 사업을 순수하게만 보는 데 부담이 된다. 이들은 반정부 성향의 각종 시위에 참여한다.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에 시비 거는 사람들’의 활동에 국민 세금을 쓰는 꼴이다.
자기들만의 정치 성향, 자기들만의 지역 화폐, 자기들만의 별칭, 자기들만의 학교 시스템을 갖고 있는 성미산마을. 그래서인지 성미산 사람들은 주민들과의 화학적 결합이 부족해 보였다. 점차 서울 한복판에 섬(島)이 되고 있는 성미산마을. 그리고 이런 특징들이 2세들에까지 스며들고 있는 곳. 이곳의 실체는 정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