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양산 공원묘지에 있는 문재인 부친 묘는 명당과는 거리가 멀어
⊙ 주산과 안산의 산세가 손학규 부모 묘를 구중궁궐처럼 느끼게 해
김성수
⊙ 77세. 건국대 경제과 졸업.
⊙ 전매청, 건설부 근무. 한국풍수지리학회 회장. 저서로 《명당》 《운명 디자인》
《명당에서 인물 난다》 등이 있음.
⊙ 주산과 안산의 산세가 손학규 부모 묘를 구중궁궐처럼 느끼게 해
김성수
⊙ 77세. 건국대 경제과 졸업.
⊙ 전매청, 건설부 근무. 한국풍수지리학회 회장. 저서로 《명당》 《운명 디자인》
《명당에서 인물 난다》 등이 있음.
- 문재인 부친 묘(사진 왼쪽), 손학규 부모 묘(사진 오른쪽).
이번 호에는 문재인(文在寅), 손학규(孫鶴圭) 민주통합당(민주당) 두 대선(大選) 경선 주자의 조상 묫자리 풍수(風水)를 함께 소개한다. 민주당 경선 일정 때문이다. 민주당 본경선 투표 결과가 나오는 9월 16일이 《월간조선(月刊朝鮮)》 10월호 발행 직전일이기 때문에 유력 대선 주자인 두 명 중 한 명은 소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0일 발표한 민주당 예비경선에서는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金斗官), 정세균(丁世均), 박준영(朴晙瑩) 등 5명의 경선 주자가 컷오프를 통과했다.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 경선 주자들의 예비경선 순위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문재인, 손학규 후보 등이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상 묫자리의 위치 등 풍수를 떠나서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출마 선언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문재인, 손학규 두 사람이 야권(野圈)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타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2012 대선 유력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다가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예비 후보들이 8·15 광복 이후에 출생했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라는 어둠의 시대를 털어내고 광복 이후에 태어난 현대사의 주역들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최초의 대통령 선거가 올 12월에 치러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당당하게 자라서 세계사의 주역이 될 지도자를 우리의 손으로 뽑게 될 선거가 2012 대선인 것이다.
물론 광복 후 우리 민족의 역사가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만은 아니다.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북한의 6·25 남침, 4·19에서 5·16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현대사 등 굴곡 많은 시대에 빚어진 우리 민족의 아픔은 아직도 ‘씻김굿’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6·25 남침은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에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야 하는 별리의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들은 가족들과의 헤어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인 조상들의 흔적마저 전쟁으로 잃어버렸거나 찾아갈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두 사람이 그렇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조상의 땅은 분단으로 잃어버린 땅이 돼 버렸고, 손학규 후보의 경우는 조상 묘가 비무장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역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남북분단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온 몸으로 안고 살아가는 후보들인 것이다. 조상 묘를 통해 풍수로 두 사람의 미래를 점쳐 보는 일에는 그런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조상묘 중 曾祖父母 묘가 영향 커
문재인 후보 본인의 고향은 경남 거제다. 그는 6·25 전쟁 중이던 1953년 1월 그곳에서 태어났다. 문 후보 부친(문용형)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다. 6·25 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함정을 타고 내려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노무자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으로 피란 내려와 노무자로 일하면서 문 후보를 낳은 것이다. 문 후보의 가족들은 문 후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고 한다.
실향민인 문 후보의 조상 묘는 북한에 있다. 남한에 있는 것은 문 후보 부친의 묘소뿐이다. 풍수가로서 야권 유력 대선 경선 주자의 조상 묘인 고조, 증조 묘를 둘러볼 수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
우리는 문 후보 부친이 영면하고 있다는 경남 양산시의 한 공원묘지로 향했다. 경주역까지는 KTX를 이용하고 현지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문 후보 부친의 묘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문 후보 부친의 묘를 찾아가는 길에 같은 실향민이었던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訪北)’이 떠올랐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 명예회장이 1998년 2차에 걸쳐 소 1001마리를 몰고 방북한 까닭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성 이야기들이 많다. 풍수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필자의 짐작으로는 정 명예회장이 고향인 강원도 통천에 있는 선영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고향을 떠나올 때 소 한 마리 판 돈을 들고 넘어온 정 회장으로서는 그 1000배, 아니 수십 수백만 배의 부(富)를 쌓게 해 준 조상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방법이 소 1001마리였던 것 같다.
‘나’라는 존재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조상과 만나게 된다. 조상은 곧 나다. 나는 조상으로부터 몸과 정신을 받았다. 그러므로 조상의 무덤을 찾는 일은 나를 찾는 일이다. 소 1001마리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금전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인 것이다. 문 후보와 손 후보 두 사람도 대통령 당선 여부를 떠나서 남북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고향의 선영을 찾아가 조상께 인사 올리는 일부터 하기를 감히 권면한다. 풍수가로서, 나이 든 사람으로서 보기에는 그래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다.
인간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조상의 무덤은 당연히 증조부모를 꼽는다. 그 다음으로 조부모와 고조부모가 같은 무게로 영향을 갖는다. 거듭 말하지만 그래서 문 후보 부친의 묘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공원 뒤편에 명당은 있지만…
문 후보 부친은 천주교에서 조성한 묘역에 안치돼 있었다. 납골당이 있는 비교적 큰 공원묘역이었다. 공원묘역 뒤로는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는지 산중턱이 뻘겋게 깎여 있었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문 후보 부친의 묘를 찾을 수 있었다. 묘비에 ‘남평 문공 요한 용형 지묘’라고 쓰여 있었고 1920년 10월에 태어나 1978년 4월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문 후보 부친의 묘는 풍수가로서 필자가 갖고 있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원묘지는 대개 1970년대 이후에 조성하기 시작했다. 일제 시대에 조성한 공동묘지에서는 가끔 명당을 발견하곤 한다. 산을 깎거나 다듬지 않고 자연 지세를 그대로 활용해 묫자리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원묘지는 이른바 ‘조성(造成)’을 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산을 깎아내리고 땅을 고르는 등의 인공(人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원묘지는 풍수지리학적 견해는 무시되고 교통의 편리나 임야의 개발단가 등을 고려해서 입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평범한 무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흔하다.
문 후보 부친의 묫자리가 그랬다. 다만 천주교가 조성한 공원묘역 대부분이 그렇듯이 국세(局勢)는 좋았다. 어느 장소에서 한눈에 조망되는 풍광을 국세라고 한다. 하지만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뒷산이 터져 있어 공원묘역 쪽으로 바람길을 내고 있는 게 눈에 거슬렸다. 명당은 공원묘역 왼쪽 뒷산에 있었지만 큰자리는 아니었다.
북한에 있는 문 후보의 선영을 확인하기 전에는 양산에 있는 부친 묘소 하나만 가지고 그의 운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까지 문 후보가 살아온 궤적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부친의 고향인 흥남에 좋은 묫자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같은 공원묘지에 있지만
손학규 후보의 부모 묘도 천주교 공원묘지에 합장돼 있었다. 손 후보의 종교는 개신교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의 종교가 천주교이기 때문에 장지(葬地)로 천주교 공원묘지를 택한 것 같다.
손 후보 부모가 영면하고 있는 공원묘지는 아버지의 고향과 비교적 가까운 경기도 파주에 있다. 손 후보 부모의 고향은 경기도 장단이다. 장단은 임진강 유역으로 개성과 서울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6·25 전쟁 이전에는 남한 땅이었으나 휴전 후 장단군의 대부분은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 있어 지금은 자유롭게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휴전 후 6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손 후보 부모의 집터와 선영은 통일이 되더라도 확인이 불가능할 것이다.
손 후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시흥군(지금의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이다. 하지만 그곳 역시 재개발돼 아파트 숲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에 손 후보가 태어난 생가터를 찾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남북 분단으로 고향을 잃고 질풍노도처럼 불어닥친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생가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손 후보 부모의 합장묘가 있는 공원묘지는 보기 드물게 자연 지세를 그대로 활용해 묘역을 조성했다. 이 공원묘지 전체는 남향으로 주산(主山)의 흐름이 좋고 안산(案山)이 수려하다. 주변 지세가 명당을 품을 만한 형국을 빚고 있는 것이다.
자연 지세를 그대로 활용한 공원묘역이었기 때문에 손 후보 부모의 묘는 깎아지른 듯한 공원묘역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천천히 오르는데도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산 오르막길을 따라서 계단처럼 한칸 한칸 올라가며 묘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산이 원래 갖고 있는 지세를 깨트리지 않고 묘를 쓰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호흡이 거칠어질 무렵 우리 일행은 한 묘지 앞에 섰다. 묘지 주변에서 나오는 기가 만만치 않았다. 좋은 기였다. 손 후보 부모의 묘였다. 세례명이 베드로인 부친(손병화)은 1901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했고, 1904년 생인 모친(양현자)은 1977년에 임종했다.
2007년에 옆자리에서 이장한 묘에서 바라보는 안산은 역시 수려했다. 주산의 힘이 힘차게 내려와 있고 묘지는 남향으로 자리를 잘 잡았다. 안산의 지세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형국이었고 주산 곳곳에 보이는 바위는 결단력을 의미했다. 안산 너머로 보이는 강물의 기운도 만만치 않았다. 묘지에서 보이는 수구(水口)도 잘 막혀 있어서 묘지를 이장한 후에 태어난 후손 중에 큰부자가 나올 수 있는 자리였다. 주산과 안산의 산세가 손학규 부모 묘를 구중궁궐처럼 느끼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손 후보 부모의 묘소는 생기(生氣)가 솟는 진혈(眞穴)이어서 ‘공원묘지 중의 명당’이라는 흔치 않은 행운을 안고 있는 것이다.
손 후보 역시 부모님의 묘만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묘가 좋은 자리에 터잡고 있어서 그것으로도 복더위에 땀을 흘리며 찾아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논두렁 정기
우리 대통령 중 한 분이 예전에 청와대 춘추관 뜨락에서 기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국회의원도 논두렁 정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분이 말한 논두렁 정기란 조상의 음덕을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그 말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시비하려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풍수가로서 역대 대통령들의 선영과 생가들을 모조리 찾아가 살펴보았다. 결론은 “명당 없는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명당의 음덕을 입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게 그 음덕을 인정하고 조상에게 고마워하지만 어떤 이들은 “내가 가진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죽은 조상이 무슨 역할을 하겠느냐”는 사람도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풍수는 경험의 과학이다. 필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흥망성쇠와 명당과의 관계를 검토해 온 결과 그 둘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풍수란 인간이 지닌 유한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연과 조상의 염원을 결합해 분출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그 존재 이유이자 역할이다. 필자는 오늘도 이 땅의 나쁜 기운을 누르고 좋은 기운을 발양(發揚)케 하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맨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살길은 부지런하고 총명한 인간들의 재능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당 풍수는 바로 그 총명한 인간들을 이 땅에 배출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자부한다.⊙
<구술 정리·金成東 月刊朝鮮 기자>
지난 7월 30일 발표한 민주당 예비경선에서는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金斗官), 정세균(丁世均), 박준영(朴晙瑩) 등 5명의 경선 주자가 컷오프를 통과했다.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 경선 주자들의 예비경선 순위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문재인, 손학규 후보 등이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상 묫자리의 위치 등 풍수를 떠나서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출마 선언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문재인, 손학규 두 사람이 야권(野圈)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타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2012 대선 유력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다가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예비 후보들이 8·15 광복 이후에 출생했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라는 어둠의 시대를 털어내고 광복 이후에 태어난 현대사의 주역들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최초의 대통령 선거가 올 12월에 치러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당당하게 자라서 세계사의 주역이 될 지도자를 우리의 손으로 뽑게 될 선거가 2012 대선인 것이다.
물론 광복 후 우리 민족의 역사가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만은 아니다.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북한의 6·25 남침, 4·19에서 5·16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현대사 등 굴곡 많은 시대에 빚어진 우리 민족의 아픔은 아직도 ‘씻김굿’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6·25 남침은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에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야 하는 별리의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들은 가족들과의 헤어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인 조상들의 흔적마저 전쟁으로 잃어버렸거나 찾아갈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두 사람이 그렇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조상의 땅은 분단으로 잃어버린 땅이 돼 버렸고, 손학규 후보의 경우는 조상 묘가 비무장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역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남북분단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온 몸으로 안고 살아가는 후보들인 것이다. 조상 묘를 통해 풍수로 두 사람의 미래를 점쳐 보는 일에는 그런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조상묘 중 曾祖父母 묘가 영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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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 공원묘지에 있는 문재인 후보 부친 묘를 둘러보고 있는 필자. |
실향민인 문 후보의 조상 묘는 북한에 있다. 남한에 있는 것은 문 후보 부친의 묘소뿐이다. 풍수가로서 야권 유력 대선 경선 주자의 조상 묘인 고조, 증조 묘를 둘러볼 수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
우리는 문 후보 부친이 영면하고 있다는 경남 양산시의 한 공원묘지로 향했다. 경주역까지는 KTX를 이용하고 현지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문 후보 부친의 묘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문 후보 부친의 묘를 찾아가는 길에 같은 실향민이었던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訪北)’이 떠올랐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 명예회장이 1998년 2차에 걸쳐 소 1001마리를 몰고 방북한 까닭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성 이야기들이 많다. 풍수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필자의 짐작으로는 정 명예회장이 고향인 강원도 통천에 있는 선영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고향을 떠나올 때 소 한 마리 판 돈을 들고 넘어온 정 회장으로서는 그 1000배, 아니 수십 수백만 배의 부(富)를 쌓게 해 준 조상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방법이 소 1001마리였던 것 같다.
‘나’라는 존재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조상과 만나게 된다. 조상은 곧 나다. 나는 조상으로부터 몸과 정신을 받았다. 그러므로 조상의 무덤을 찾는 일은 나를 찾는 일이다. 소 1001마리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금전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인 것이다. 문 후보와 손 후보 두 사람도 대통령 당선 여부를 떠나서 남북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고향의 선영을 찾아가 조상께 인사 올리는 일부터 하기를 감히 권면한다. 풍수가로서, 나이 든 사람으로서 보기에는 그래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다.
인간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조상의 무덤은 당연히 증조부모를 꼽는다. 그 다음으로 조부모와 고조부모가 같은 무게로 영향을 갖는다. 거듭 말하지만 그래서 문 후보 부친의 묘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공원 뒤편에 명당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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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 부친이 묻혀 있는 공원묘지의 국세는 괜찮았지만 뒷산으로 바람길이 나있었다(왼쪽). 비석에 새겨진 문 후보 가족 이름(오른쪽). |
문 후보 부친의 묘는 풍수가로서 필자가 갖고 있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원묘지는 대개 1970년대 이후에 조성하기 시작했다. 일제 시대에 조성한 공동묘지에서는 가끔 명당을 발견하곤 한다. 산을 깎거나 다듬지 않고 자연 지세를 그대로 활용해 묫자리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원묘지는 이른바 ‘조성(造成)’을 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산을 깎아내리고 땅을 고르는 등의 인공(人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원묘지는 풍수지리학적 견해는 무시되고 교통의 편리나 임야의 개발단가 등을 고려해서 입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평범한 무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흔하다.
문 후보 부친의 묫자리가 그랬다. 다만 천주교가 조성한 공원묘역 대부분이 그렇듯이 국세(局勢)는 좋았다. 어느 장소에서 한눈에 조망되는 풍광을 국세라고 한다. 하지만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뒷산이 터져 있어 공원묘역 쪽으로 바람길을 내고 있는 게 눈에 거슬렸다. 명당은 공원묘역 왼쪽 뒷산에 있었지만 큰자리는 아니었다.
북한에 있는 문 후보의 선영을 확인하기 전에는 양산에 있는 부친 묘소 하나만 가지고 그의 운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까지 문 후보가 살아온 궤적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부친의 고향인 흥남에 좋은 묫자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같은 공원묘지에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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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에 있는 손학규 후보 부모 합장묘. 2007년 이장했다(왼쪽). 천주교임을 상징하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비석. 손 후보 부모의 세례명으로 새겨져 있다(오른쪽). |
손 후보 부모가 영면하고 있는 공원묘지는 아버지의 고향과 비교적 가까운 경기도 파주에 있다. 손 후보 부모의 고향은 경기도 장단이다. 장단은 임진강 유역으로 개성과 서울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6·25 전쟁 이전에는 남한 땅이었으나 휴전 후 장단군의 대부분은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 있어 지금은 자유롭게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휴전 후 6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손 후보 부모의 집터와 선영은 통일이 되더라도 확인이 불가능할 것이다.
손 후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시흥군(지금의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이다. 하지만 그곳 역시 재개발돼 아파트 숲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에 손 후보가 태어난 생가터를 찾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남북 분단으로 고향을 잃고 질풍노도처럼 불어닥친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생가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손 후보 부모의 합장묘가 있는 공원묘지는 보기 드물게 자연 지세를 그대로 활용해 묘역을 조성했다. 이 공원묘지 전체는 남향으로 주산(主山)의 흐름이 좋고 안산(案山)이 수려하다. 주변 지세가 명당을 품을 만한 형국을 빚고 있는 것이다.
자연 지세를 그대로 활용한 공원묘역이었기 때문에 손 후보 부모의 묘는 깎아지른 듯한 공원묘역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천천히 오르는데도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산 오르막길을 따라서 계단처럼 한칸 한칸 올라가며 묘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산이 원래 갖고 있는 지세를 깨트리지 않고 묘를 쓰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호흡이 거칠어질 무렵 우리 일행은 한 묘지 앞에 섰다. 묘지 주변에서 나오는 기가 만만치 않았다. 좋은 기였다. 손 후보 부모의 묘였다. 세례명이 베드로인 부친(손병화)은 1901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했고, 1904년 생인 모친(양현자)은 1977년에 임종했다.
2007년에 옆자리에서 이장한 묘에서 바라보는 안산은 역시 수려했다. 주산의 힘이 힘차게 내려와 있고 묘지는 남향으로 자리를 잘 잡았다. 안산의 지세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형국이었고 주산 곳곳에 보이는 바위는 결단력을 의미했다. 안산 너머로 보이는 강물의 기운도 만만치 않았다. 묘지에서 보이는 수구(水口)도 잘 막혀 있어서 묘지를 이장한 후에 태어난 후손 중에 큰부자가 나올 수 있는 자리였다. 주산과 안산의 산세가 손학규 부모 묘를 구중궁궐처럼 느끼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손 후보 부모의 묘소는 생기(生氣)가 솟는 진혈(眞穴)이어서 ‘공원묘지 중의 명당’이라는 흔치 않은 행운을 안고 있는 것이다.
손 후보 역시 부모님의 묘만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묘가 좋은 자리에 터잡고 있어서 그것으로도 복더위에 땀을 흘리며 찾아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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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후보 부모 묘에서 바라본 안산. 안산의 지세는 사람이 모여드는 형국이다. |
필자는 풍수가로서 역대 대통령들의 선영과 생가들을 모조리 찾아가 살펴보았다. 결론은 “명당 없는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명당의 음덕을 입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게 그 음덕을 인정하고 조상에게 고마워하지만 어떤 이들은 “내가 가진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죽은 조상이 무슨 역할을 하겠느냐”는 사람도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풍수는 경험의 과학이다. 필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흥망성쇠와 명당과의 관계를 검토해 온 결과 그 둘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풍수란 인간이 지닌 유한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연과 조상의 염원을 결합해 분출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그 존재 이유이자 역할이다. 필자는 오늘도 이 땅의 나쁜 기운을 누르고 좋은 기운을 발양(發揚)케 하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맨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살길은 부지런하고 총명한 인간들의 재능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당 풍수는 바로 그 총명한 인간들을 이 땅에 배출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자부한다.⊙
<구술 정리·金成東 月刊朝鮮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