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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식

북한에서 체험한 김일성-김정일 父子의 생일

김일성 생일선물은 정치범수용소에까지 간다

글 : 강철환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연구위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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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생일에는 술 한병, 계란 다섯 알, 백미(白米) 2일분, 고기 1~2kg, 담배
⊙ 경제난 이후 생일선물 공급 책임 지방에 넘겨, 시장 활성화되면서 선물통치에 구멍
⊙ 간부선물은 4부류로 나누어 지급, 1부류는 100% 외제, 3~4부류는 100% 북한산
김정일의 68회 생일인 작년 2월 16일 평양시민들이 경축 무도회를 벌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인민학교(우리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김일성(金日成) 생일(4월15일)과 김정일(金正日) 생일(2월16일)에 선물을 받아 안고 기뻐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필자도 1975년 유치원을 졸업하고 처음 입학했던 평양시 대동문 인민학교(현재는 김성주소학교·2000년 초에 인민학교를 소학교로 명칭 변경함)에서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에 사탕·과자 꾸러미와 교복, 소년단 넥타이 등을 선물로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은 명절 전에 받은 사탕·과자를 일절 손대지 말고 부모님께 보여 드리고 수령님(김일성) 생일날에 먹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지만, 그대로 하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하나 두 개 빼먹은 선물과자 꾸러미를 받아든 부모들도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마음이 흐뭇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김일성·김정일 생일뿐이었다. 북한에서 자기 부모 생일은 몰라도 김일성 부자(父子)의 생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북한에선 김일성·김정일 생일이 다가오는 한 달 전부터 명절 분위기에 들뜨곤 한다. 재단사들이 학교마다 찾아와 학생의 옷을 만들기 위해 체격과 신발 사이즈를 조사하기 시작하면 선물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선물 종류와 디자인 등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백미 2일분, 고기 1~2㎏
 
  김일성 생일에 주는 사탕·과자는 일반 상점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고급품이었다. 한번 세탁하면 확 줄어드는 면·혼방이 섞인 섬유나 비날론(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한 폴리비닐알코올계 합성섬유) 등의 제품으로 옷을 해 입던 북한 주민들에게 나일론과 테트론(tetron) 천은 간부들밖에 입을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다. 테트론 천으로 만든 교복 한 벌에 모자, 나일론 넥타이, 신발과 학용품 등을 선물 받으면 평범한 집안 아이들은 그 교복 한 벌로 1년을 지낼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매고 다니는 넥타이는 원래 면으로 만들어져 구김이 많고 세련되지 못했었다. 그러던 차에 구김이 없고 세련된 나일론 넥타이가 김일성의 생일선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김일성의 생일이 없었다면 아이들에게 옷도 제대로 입힐 수 없는 학부모들은 김일성에게 눈물나게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의 마음은 한없이 설레게 된다.
 
  북한은 김일성 부자의 생일이 다가오면 “수령님께서 ‘어린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최고로 만들어 주라’고 지시하셨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김정일이 김일성 생일에 나눠줄 선물을 제때에 공급하기 위해 선물공장을 찾아가 생산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내용을 담은 기록영화를 본 적도 있다.
 
  김일성 부자의 생일에는 어린이와 학생들뿐 아니라 전체 인민에게도 ‘명절 공급’이 행해진다. 그러면 우리의 추석이나 설날 같은 분위기가 해마다 펼쳐진다. 집집마다 술 한 병, 계란 다섯 알, 백미(白米) 2일분, 고기 1~2kg, 담배 등이 공급된다. 평소에 먹기 어려운 식료품들이 가정마다 공급되기 때문에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부자의 생일에는 말 그대로 잔치 분위기가 된다.
 
 
  수용소에서 맞은 김일성 부자 생일
 
  1977년 8월 기자의 가족은 할아버지의 반역죄로 함경남도 요덕(曜德)군에 위치한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
 
  당시 요덕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과‘혁명화구역’으로 분리돼 있었다. ‘완전통제구역’은 완전한 제거 대상들이 수용되는 곳이고, ‘혁명화구역’은 ‘정치적 생명’이 살아 있는 대상이 수용되는 곳이었다. ‘완전통제구역’에 수용되어 있는 정치범은 소위 김일성 부자가 내려준 정치적 생명이 없는 짐승에 불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김일성 부자의 생일에도 선물을 주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혁명역사교육도 시키지 않았다. 반면에 ‘혁명화구역’에 수용되어 있는 정치범은 ‘정치적 생명’이 살아 있는 자들이어서 김일성 부자의 생일에 선물이 공급됐다. “당연히 죽어 마땅한 죄인들의 가족이지만 당과 수령의 은혜는 이토록 깊다”며 선물을 내려주는 것이다.
 
  평양에서는 종종 맛볼 수 있는 사탕·과자였지만, 같은 선물을 받아도 정치범수용소에서 받는 선물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옥수수와 시래기, 쥐 고기를 뜯던 아이들이 1년에 한 번 김일성·김정일이 내주는 사탕·과자를 받아 안으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건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경험이다.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난 지 몇 달도 안돼 수용소에 끌려온 아이들은 단맛을 알지 못해 생전 처음 먹는 사탕을 뱉어버리기도 했다.
 
  누더기 같은 죄수복을 입던 아이들이 선물로 받은 고급 테트론 교복과 신발은 수용소 내의 유일한 행사복장이었다. 양말과 신발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김씨 부자 연구실에서 열리는 혁명역사교육 시간을 위해 아껴 둔다. 강제노역에 지친 아이들이 깜박 잊고 행사용 선물인 나일론 양말을 신고 오지 않으면 교원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매를 맞았다.
 
  자신과 가족을 수용소로 보낸 원수 같은 김씨 부자이지만,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의 마음도 잠시나마 누그러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기들의 생일날에 선물 보따리를 풀면서 북한에서 김씨 부자의 생일은 대(大)명절로 자리 잡게 됐다.
 
 
  경제난으로 생일선물 공급 책임 지방으로 넘겨
 
2009년 김정일의 67회 생일을 기념하는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에 참석한 북한 학생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고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종래 생일에 무료로 지급하던 교복과 학용품을 국정(國定)가격(국가가 정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사탕·과자만은 공짜로 공급해 주다가, 중앙 공급이 불가능해지자 각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선물을 주도록 했다. 그러자 전국적으로 동일했던 생일선물의 품질이 지역의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지방에서 공급되는 생일선물은 품질이 너무 떨어져 역효과를 가져왔다.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당에서는 “아무리 경제사정이 어려워도 생일선물은 최고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지역 책임자는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
 
  최근 입국(入國)하는 탈북자(脫北者)들에 따르면, 김일성이 죽은 후에는 자연스럽게 김일성의 생일보다는 김정일의 생일에 더 중점을 두게 됐다고 한다. 김일성 생일에는 선물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일성 사후(死後) ‘유훈(遺訓)통치’를 통해 김일성의 후광(後光)을 한껏 이용했던 김정일은 2000년 초부터 본격적인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김일성 시대보다 더 큰 선물로 인민들과 간부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지만, 경제난은 더 이상 김정일이 ‘통 큰 선물’로 선심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김정일의 ‘선물정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통치방식은 ‘선물정치’와 ‘측근정치’ ‘공포정치’로 정리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선물정치’는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필수요건이다. 북한에서는 김씨 부자 외에 다른 간부들이 아랫사람에게 ‘선물’을 주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오직 인민에게 베풀 수 있는 자는 수령으로 고정해 놓은 것이다. 일부 간부들이 자기 이름으로 아랫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가 발각되면 즉각 반김(反金)인사로 몰려 수용소에 수감될 수 있다. 김정일은 자신의 생일이 오면 측근과 간부들에게 선물을 준다.
 
  물론 받는 사람에 따라 선물의 내용에 차이가 난다. 내부 단합을 위해 이러한 차이를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선물을 받는 이들도 자신의 지위에 따라 생일선물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최측근에게는 노루고기 하사

 
2009년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만수대 김일성 동상을 참배하는 북한 주민들. 하지만 김정일에게 밀려 김일성 생일의 경축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에서 간부 선물은 4종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제1부류는 김정일의 최측근이다. 김정일의 서기실을 포함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정위원·후보위원, 당중앙위 비서, 국방위원, 당군사위원, 내각 총리와 부총리급, 각 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에게는 100% 외제 식품, 의류, 기타 선물로 3개 이상의 지함(紙函)이 각 집으로 배달된다. 외국산 코냑과 담배, 고급 양복 천과 같은 귀한 것들이 들어 있다. 특히 ‘노루고기’는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자들만 먹을 수 있다.
 
  김정일이 특별하게 챙기는 자들에게는 각 지방에서 김정일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보내는 산삼이나 곰쓸개, 사향 등 진기한 약재(藥材)들을 하사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뇌혈관 질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사향은 웬만한 간부들이 비상약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다.
 
  ‘광명성’ 발사와 같이 특별한 공로를 세운 과학자들에게도 김정일은 노루고기를 공급하는데 이는 소고기, 돼지고기가 흔하지 않은 북한에서 최고의 선물로 여겨진다고 한다. 예로부터 북한의 최고위급 간부들 사이에서 노루피와 고기는 장수 식품으로 알려져 왔다.
 
  2부류는 인민군 군단장과 정치위원, 당중앙위 과장급, 도당(道黨)책임비서 등이다. 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외제 절반에 국산 절반이다. 선물의 양도 1부류보다는 지함 하나가 줄어든다.
 
  3부류는 사단장, 여단장급 군 간부들과 지방 보위부 간부들, 항일투사 가족들, 내각 간부들이다. 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100% 국산제품이다.
 
  4부류는 연합기업 지배인 및 당비서, 공화국영웅, 노력영웅, 1급 과학자들, 연대장급 군인들, 조총련 간부, 비전향장기수 등이다.
 
  선물용 식료품은 평양 용성식료품 가공공장에서 생산되는 북한 ‘최고’의 생산품으로 채워진다. 김정일의 선물 대상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부류로 분류된다. 명절마다 김정일의 이름으로 지함이 공급되는 집들은 주변의 부러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1부류에 속하는 최고위층은 소위 일일공급(매일 공급) 대상으로 분류된다. 이들에게는 매일 우유·고기·계란·과일 등이 공급된다.
 
  2부류부터는 주일공급(일주일에 한 번씩 공급) 대상인데 경제난으로 최근 월(月) 공급 대상으로 바뀌어 간부들의 불만이 많다고 한다.
 
  경제난이 가속화되면서 3부류 이하 간부들에게는 선물 공급이 중단되거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김정일의 선물정치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막대한 돈, 선물로 탕진
 
김정일의 개인금고인 39호실 관리책임자 전일준(왼쪽). 39호실은 북한의 각종 자원을 수출해 김정일의 선물통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
  노동당 최고위 간부들은 생일선물 외에도 김정일로부터 고급저택에 메르세데스 벤츠와 같은 고급 승용차, 스위스제 오메가 금(金)시계 등을 별도로 받는다.
 
  고급 손목시계는 고위층은 물론, 일반 주민 가운데 특출한 공로를 세운 자들에게도 선물로 내려진다. 시계선물은 평생 가보(家寶)로 간직해야 한다.
 
  김정일은 자신이 가는 곳마다 생색을 내기 위해 선물을 뿌려댄다. 2000년 초 김정일과 함께 인민군 여성부대를 시찰했던 김정일의 아내 고영희는 여성부대원들에에 손크림(핸드크림)과 스카프 등을 선물해 환호를 받았다.
 
  이런 선물비용은 대체로 노동당 39호실에서 마련하고 있다. 북한의 알짜 기업들과 해외 무역권을 독점한 북한의 외화벌이 기업들을 모두 거느리고 있는 39호실은 김정일의 개인금고다. 39호실장은 당중앙위 부부장급 명함을 쓸 정도로 힘이 막강하다. 39호실은 전국의 금광(金鑛)과 희귀금속 광산을 보유하고 있고, 동·서해 바다의 모든 해산물의 독점 수출권을 갖고 있다. 전국의 송이버섯과 고급 목재, 약재 등도 모두 39호실의 몫이다.
 
  이런 물품들을 수출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 왔던 39호실은 핵실험과 일본인 납북자 문제로 일본이 대북(對北)제재에 동참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들이 주로 취급하는 해산물의 일본 반입이 전면 금지되면서 외화수입이 급감했다. 39호실 소속 기업들에 대한 제재로 김정일의 금고는 날이 갈수록 비어 가고 있다.
 
  북한은 39호실 자금을 만들기 위해 인민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사금(砂金)을 캐기 위해 노역에 동원되어야 한다. 고급목재, 약재, 산나물 등은 외화벌이를 위해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금으로 김정일은 인민들과 간부들에게 자신의 은덕을 과시하는 선물을 내려보내는 것이다.
 
 
 
무너지는 선물정치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굶어 죽는 것이 다반사가 된 북한사회에서는 이제 자그마한 혜택도 김정일의 배려로 둔갑한다. 전력난(電力難)이 심각한 북한에서 김씨 부자의 생일날만은 전기를 충분히 공급받는다. 인민들은 이를 ‘배려전기’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김정일에 대한 야유의 의미가 숨어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선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특히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돈만 있으면 중국산 과자나 사탕은 물론, 그 귀하다는 노루고기와 사향까지도 구할 수 있다.
 
  1년 내내 못 먹다가 김정일 생일만 되면 잘 먹을 수 있던 관행이 시장의 확대로 완전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시장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은 매일같이 김정일 생일처럼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선물통치에도 구멍이 생기고 있다. 과거에는 권력이 선물과 연결됐지만, 이제는 뇌물로 연결되고 있다.
 
  김정일이 내려주는 선물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고, 선물이나 공급만 가지고는 생활할 수 없게 된 간부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뇌물을 챙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간부들의 부정축재가 심해지면서 수십만 달러를 보유한 간부들이 늘어났다. 달러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게 된 이들에게 김정일의 선물이 예전처럼 매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김정은의 생일은 1월 8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의 생일을 앞두고 그의 생일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선물하사, 축하행사 등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생일은 조용하게 넘어갔다.
 
  과거 김정일의 경우도 1974년 본격 등장 수년이 지나서야 생일을 국가명절로 지정했다. 선물을 하사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 권력이 완전히 공고화된 후부터였다.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김정일은 자신의 측근들에게만 선물을 주는 데 그쳤다. 아버지 김일성에게 예우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김정일이 살아 있는 한 김정은의 생일을 국가적으로 기념하거나, 그날 주민들에게 선물을 하사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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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2-05) 찬성 : 98   반대 : 51
죽은 김정일의 초호화판 생일잔치!!!! 그돈으로 어려운 주민들을 도왔다면 좋으련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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