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학생에서 매출 8000억원대 그룹 회장으로 李義範 SG그룹 회장 : 월간조선

1982년 평범한 고교 졸업생이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기기도 전에 그는 이념의 늪에 빠져 버렸다. 좌파 책을 읽고 데모에 앞장섰다. 1984년 결국 무기정학을 당했다. 마음을 잡아 보려고 군에 자진 입대했으나 제대 후에도 그 늪을 헤어나지 못했다.

‘제대 군인’은 인천지역 공단에 위장취업했다. 서울 구로에서 야학(夜學)도 했다.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전두환(全斗煥)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자본주의의 파티’인 올림픽을 유치했다. “옳지. 그런 세계인의 축제를 독재국가에서 무리하게 치르고 나면 망하고야 말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다. 예상은 빗나갔다.

세계는 서울올림픽을 극찬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망하기는커녕 성장의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곧이어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망했다. 변하고 있는 세상은 이 ‘운동권 출신’ 학생의 과거를 온통 부정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진 않았지만 일단 취업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택한 직장이 한국통신(현 KT·1990년)이었다. 불합리와 노동 착취보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거대 조직의 합리성이었다.

이후 직장 새내기 청년은 ‘자본주의’의 마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벤처기업(가로수닷컴)을 만들었고, 이를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이어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세계물산과 충남방적도 인수했다. 고려피혁(차량용 시트)과 마이크로오피스(문구) 등 해당 분야에서 톱을 달리는 기업들도 이미 그 앞에 무릎을 꿇은 뒤였다.

SG그룹 이의범(李義範·46) 회장의 이야기다. ‘SG그룹’이라는 이름은 아직 일반인들에겐 낯설지만, 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업 세계물산과 충남방적을 계열사로 둔 회사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SG그룹 계열사는 상장법인이 SG&G(가로수닷컴) SG세계물산 SG충남방적 3개사, 비상장법인이 KM&I(옛 동흥전기), SG고려(옛 고려피혁), SG데이타, 마이크로오피스 7개사다. 2009년 매출액은 6440억원. 올해 매출을 8000억원으로 잡고 있으며 내년에는 1조원 돌파가 목표다.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수천 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회장의 이미지라기보다 그냥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인상이었다. “인수한 기업들은 모두 스스로 경영하도록 일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로수닷컴>을 혼자 이끌어 나갈 때만큼 바쁘지 않네요.”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 봤다.

1991년 서울 최초로 생활정보지 창간

구로디지털 단지에 소재한 3000평 규모의 SG세계물산 사옥.

대학 졸업 후 한국통신(현 KT)에 입사한 그가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것은 1991년 여름. 과거 수배를 피해 내려간 고향(대전)에서 과외할 때의 경험들을 토대로 생활정보지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대전에는 국내 최초의 생활정보지인 <대전교차로>가 있었어요. 한번은 안 쓰는 소파를 팔려고 <교차로>에 전화했는데, 그쪽 직원이 계속 값을 깎아서 부르는 겁니다. 금액에 따라 광고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직원이 더 비싸게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더 싸게 팔라니 제 상식으로는 이상하더라고요.”

이 사건은 그가 경멸하던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직원은 ‘소비자들이 더 싼 값에 물건을 사도록 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또 다른 전략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새로운 유통시장, 소비자와 생산자의 새로운 권력구조 같은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이후 생활정보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벼룩시장>이니 <교차로>니 하는 생활정보지들이 지방도시마다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생활정보지가 발붙이지 못하는 곳이 서울이었다. “생활정보지라는 게 신속하게 정보를 접하고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도시에서는 필수적이고 유용하지만 워낙 규모가 크고 복잡한 서울에서는 안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더군요. 그 시장에 내가 뛰어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다니고 있던 한국통신은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공기업이었고 배울 것도 많은 직장이었지만,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7명의 창업멤버를 모았다. 운동권 친구들이었다. “더 이상 이념은 없다”고 친구들을 설득했다. 다행히 분양받았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91년 9월 서울 최초의 생활정보지인 <가로수> 1호를 강남에서 발간했다.

생활정보지 시장의 ‘혈투’

그러나 무료로 소비자광고를 게재하는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수익성이 계속 악화됐다. 동업자들은 하나하나 떨어져 나갔다. 사업 시작 후 3년까지 거의 ‘빈털터리’가 될 정도로 돈을 쏟아붓기만 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경기가 엄청난 호황이었잖아요. 주변사람들과 비교도 되고 괴로웠지요. 하지만 사업을 하려면 3년 정도는 ‘학습기간’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동업자가 모두 떠나고 혼자 남게 되자 이 회장은 이용자가 줄어들 것을 각오하고 광고비를 유료(有料)로 전환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광고를 유료로 전환했지만 광고 수가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유료라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줬던 모양”이라고 이 회장은 평가했다. 또 동업자들이 없어지면서 의사결정이 신속해져 사업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 갔다.

유통과정도 개선했다. 하루에 한 번 배포하는 경쟁자들과 달리 <가로수>를 하루 세 번씩 길거리 배포대를 돌며 주변을 청소하고 비어 있는 배포대에 갖다 놓았다. “주중에 배포대에 가 보면 깨끗한 <가로수>와 비를 맞거나 먼지가 쌓이거나 해서 너덜너덜해진 타 정보지가 놓여 있는 거죠. 당연히 소비자들이 <가로수>를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또 업계 최초로 텔레마케터를 고용해 상가나 음식점 등에 전화해 구인광고를 따냈다.

1990년대 중반, 생활정보지 시장에서 기반을 다져 나가던 이 회장은 곧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서울에서도 생활정보지가 인기를 끈다”고 알려지면서 지방의 생활정보지들이 속속 서울로 입성했다. 서울에서 생활정보지 창간이 잇따랐다. 신문과 잡지 등 주요 매체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공보처에 등록된 생활정보지만 700개가 넘는 지경이었다. 이른바 생활정보지 시장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중 <벼룩시장>, <교차로>와 ‘3파전’이 벌어졌다. 세 업체가 팽팽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악재가 터졌다. 서울시가 1994년 ‘서울 정도 600년’ 사업 일환으로 거리정비 사업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생활정보지 가판대가 도시 미관을 흐린다는 이유로 모두 사라졌다. 또 부천에서 시작한 <벼룩시장>은 서울에 진출한 후 <가로수닷컴>을 제치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진퇴양난이었다.

1998년 이후에는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 등 중앙일간지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본과 마케팅의 우위를 보이며 물량공세를 펼치는 이들로 인해 기존 업체들도 출혈을 하며 버텨 나갔다.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중앙일간지 계열사들이 이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물러난 것이다.

“몇천만 원짜리 광고를 다루던 일간지들이 몇천 원, 몇만 원짜리 광고가 대다수인 이 시장에 적응을 못했다고 봅니다. 우리는 몇 년에 걸쳐 저인망식 광고영업의 노하우를 다져왔는데, 일간지들이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내세운들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일간지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서울시도 배포대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배포대를 합법적으로 정비해주는 형편이 됐고, 생활정보지의 이미지도 고급화됐거든요.”

이후 군소 생활정보지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벼룩시장>은 내부 갈등으로 <벼룩시장>과 <파랑새>로 양분되는 등 시장의 변화를 겪고 나서야 생활정보지 시장은 <가로수>·<벼룩시장>·<교차로> ‘3강체제’가 정립됐다.

코스닥 진입 후 M&A에 나서

<가로수>는 2000년 초 <가로수닷컴>으로 이름을 바꾸고 같은 해 4월 코스닥에 상장됐다. 이 회장은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2000년 초에 증권업협회의 예비심사를 통과하고 금융감독원에 최종 신고하러 유가증권 신고서를 들고 갔는데, 직원이 서류를 보더니 ‘여기도 벤처예요?’라고 묻는 겁니다. 중소기업청에서 평가한 ‘우수벤처기업 선정’ 인증서도 있었는데 말이지요. 당시 IT벤처기업들이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잖아요. 벤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 말문이 막히더군요.”

<가로수>는 상장으로 수백억 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는 현재 SG그룹의 모태가 됐다. “그전까지의 <가로수>는 제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개인기업이었는데, 상장하고 나니 CB(전환사채)와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게 되면서 자금의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다른 우량기업을 인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인수한 기업이 KM&I와 고려피혁(2003년), SG위카스(2005년), SG글로벌(옛 충남방적, 2007년) 등이다. 특히 세계물산과 충남방적은 옛 대우그룹의 계열사로 1970~1980년대 국내 경제성장과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한 기업들이다.

IT산업이 각광받는 때 섬유와 피혁, 제조 등 굳이 ‘구식’ 기업들을 선택한 이 회장의 의중이 궁금했다.

“왜 굳이 그런 기업들을 인수했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았습니다. 사실 성장산업이 아니라 오히려 사양산업에 가깝고, 노동집약적 사업이다 보니 중국에 경쟁력에서 뒤지는 경우도 많아요. 이들 기업이 어려워졌던 이유도 그것이고요. 특히 계열사 중에는 금속노조 가입사(社)도 있어서 강성노조가 기승을 부리다 보니 기업을 꾸려나가는 게 경영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인수 기업 내부 인재 발굴, 구조조정

바둑 애호가이기도 한 이의범 회장은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바둑 국가대표팀을 지원키로 했다. 이 회장과 양재호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이 악수하고 있다.

그는 나름의 전략을 펼쳤다. M&A 후 본인이 경영권을 장악하지 않고 사내의 인재를 발굴해 기업을 구조조정하도록 했다. “옛날에 잘나가던 회사들은 그들만의 ‘포텐셜’과 강점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나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와 관련된 일화도 소개했다. 그가 처음으로 인수한 기업은 ‘제도샤프’를 생산하는 (주)마이크로였다. 2001년 인수 후 경영진 및 노조와 인사를 했는데, 노조위원장이 대학시절 같이 공부했던 1년 선배였다. 그는 (주)마이크로를 법정관리에 들게 했던 외국자본을 ‘악의 화신’이라며 맹비난했고, 이 회장은 외국자본의 합리적인 면을 배워야 한다고 맞섰다.

이 회장은 회사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선배인 노조위원장을 사장으로 앉혀 회사를 분사시켰다. 이 ‘전직 노조위원장’은 직원의 절반 가까이를 정리하는 구조조정에 나섰고, 회사는 빠르게 정상화됐다.

이 같은 방법으로 이 회장이 인수하기 전 거의 고사(枯死)를 앞두고 있던 계열사들은 하나둘씩 회생했다. 2009년엔 모든 계열사가 흑자를 이뤘다.

‘기업이 잘나갔던 이유’를 찾는 것이 M&A 성공의 지름길

그의 M&A 원칙은 보통 경영자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원칙과는 다소 달랐다. 그는 M&A를 할 때 “시너지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인수합병한 기업들이 실패하는 원인 중 중요한 것이 시너지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너지 효과를 위해 무리하다 보면 실패하기 쉬운데, 이게 이른바 ‘승자의 저주’ 아닙니까. 저는 시너지는 그저 ‘플러스 알파’라고 생각합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영향은 없다고 봐요.”

또 그는 ‘잘 아는 회사에 투자하라’는 일반적인 원칙도 꼭 옳은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봐요. 제가 모든 기업을 다 잘 알 수도 없고요. 안다는 것은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 회사는 그 회사 임직원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이고, 인수자는 그들을 잘 활용해서 경영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이외에 그의 남다른 M&A 원칙이 있을까? 그는 “기업의 본질가치를 따지라”고 말했다.

“잘나갔던 기업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맨파워든, 브랜드파워든, 자본력이든 어떤 한 가지는 반드시 있다는 거죠. 어느 날 법정관리 중이던 고려피혁이 법원 경매에 나왔다고 해서 조사했습니다. 잘나가던 회사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이 기업에 남아 있는 강점은 무엇일까 알아봤어요. 의외로 부동산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 회사더군요. 그 부동산만 해도 기업가치는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물론 브랜드 등 그 이상의 강점도 많았지만요. 그래서 이 기업을 인수해서 살려내면 꽤 큰 가치를 갖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이 모두 IT다 벤처다 할 때 그가 첨단산업이 아닌 굴뚝산업을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굴뚝산업은 시장도 작고 마진도 적지만 안정적이라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IT산업은 한번에 엄청난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그 후 망하는 것도 금방이잖아요. 굴뚝산업은 어려워질 순 있어도 금방 망하진 않고, 다시 살려낼 수 있어요. 또 역사가 오래된 기업은 탄탄한 납품·판매·유통망을 가지고 있어요. 마케팅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아 수익성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오래갈 수 있는 기업들이에요. 또 IT산업이라는 게 연구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대기업이 아닌 벤처에서는 그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굳이 IT벤처를 주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산업에 투자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경영자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례로 KM&I 인수를 설명했다. KM&I는 1967년 설립돼 지금까지 GM대우에 가죽시트와 자동차부품 등을 공급하는 업체다. 그가 인수하기 전까지 회사는 노조와의 반목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이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선뜻 나서지 않는 상태였다.

“자동차산업은 지금도 성장 중입니다. 관련 부품 업체 역시 성장할 수밖에 없죠. 부품업계에서도 경쟁은 치열합니다. 그러나 KM&I는 시트를 주력 제품으로 하고 있어요. 시트는 부피가 커서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멀리서 가져온다면 엄청난 물류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생산해 바로 납품하는 것이 자동차업체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죠. 노조 문제만 심각하지 않으면 아주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인수하게 된 거죠.”

계열사 임원 회의 중인 이 회장. 새로 인수한 계열사의 경영은 그 기업의 실력 있는 임원들에 맡겨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이젠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을 키워 좋은 세상 만들 것”

이 회장은 향후에도 계속 기업을 인수할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에는 한 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기업을 계속 키우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는 “기업인은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세금을 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기업인은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어 가는 기업을 인수해서 살리면 고용도 살아나고 경기도 살아나지 않습니까? 세금을 많이 내게 되니 국가에 기여하고요. 그런 ‘기업인’으로 살고 싶어요.”

이 회장은 지난 5월 계열사의 CI(기업이미지통합) 작업을 마무리했다. 세계물산과 충남방적 등 전통 있는 회사명은 살리고, SG라는 그룹명을 넣어 각 계열사의 사명을 재정비했다. 지난해 성적은 계열사 모두가 흑자. 내년에는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 1조원이 기업인의 첫 고비”라는 기자의 말에 “절대 무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 회장은 말했다.

“사실 남들이 말하는 ‘폼 나는’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죠. 또 현재 갖고 있는 산업군이 대부분 2차산업이다 보니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삼을 사업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부동산과 금융 쪽 사업도 하고 싶습니다. 많은 기업인이 부동산개발에 손을 대다가 어려워지고 금융위기 때 무너지곤 했는데, 그런 막무가내식 부동산개발이 아니라 금융과 연계해 탄탄한 부동산업을 하고 싶어요.”

맨손으로 시작해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이제 남들이 말하는 ‘부자(富者)’ 반열에 올랐다. “사실 〈가로수닷컴〉이 흑자 나기 시작할 땐 ‘아, 이제야 내가 돈을 버는구나’ 느꼈지만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열심히 기업을 키워서 흑자를 내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재 그의 직책은 그룹 회장·계열사 대표 등이다. 예전만큼 바쁘지 않다고도 했다. “<가로수닷컴> 하나만 갖고 있을 때가 가장 바빴죠. 인수한 기업들은 스스로 꾸려가도록 맡기는 편입니다. 그들이 잘하도록 도와주고 지켜보는 게 회장의 일인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청년창업 지원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역시 넉넉하게 자란 편은 아니었다. 대학 때 노동운동을 하다가 집안이 어려워져 고향으로 돌아가 과외로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제가 처음 <가로수>를 시작할 때의 자본금 5000만원은 지금으로 생각하면 5억원 정도의 가치일 겁니다. 저는 당시 정말 운이 좋아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프리미엄 받고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지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데 1000만원이나 2000만원이 없어서 창업을 못한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이런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사진 : 서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