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신뢰를 잃은 마르크시즘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유가사상으로 메우고 있다”(다니엘 벨 칭화대 교수)
⊙ 마오쩌둥, 政敵 린뱌오를 孔子의 추종자로 몰아 ‘批林批孔’의 단초 만들어
⊙ 덩샤오핑, 儒家의 용어 ‘小康社會’를 개혁개방의 모토로 내세우며 공자를 부활시켜
⊙ 후진타오, 독일의 괴테인스티튜트를 본뜬 공자학원을 전 세계 84개국 523개소 설립
⊙ “앞으로 중국이 걸어갈 정치개혁을 유가 이념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
(중국공산당 간부)
⊙ 사실과 다른 영화 <공자>의 장면들… 病死한 공자의 수제자 顔回를 溺死한 것으로 묘사
⊙ 마오쩌둥, 政敵 린뱌오를 孔子의 추종자로 몰아 ‘批林批孔’의 단초 만들어
⊙ 덩샤오핑, 儒家의 용어 ‘小康社會’를 개혁개방의 모토로 내세우며 공자를 부활시켜
⊙ 후진타오, 독일의 괴테인스티튜트를 본뜬 공자학원을 전 세계 84개국 523개소 설립
⊙ “앞으로 중국이 걸어갈 정치개혁을 유가 이념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
(중국공산당 간부)
⊙ 사실과 다른 영화 <공자>의 장면들… 病死한 공자의 수제자 顔回를 溺死한 것으로 묘사
- 공자 표준상의 기초가 된 당나라 吳道子(오도자)가 그린 공자의 초상화.
‘비림비공(批林批孔)’이라는 말을 들은 게 얼마 안된 거 같은데, 요즘 중국에서는 영화로 만들어진 <공자(孔子)>가 관객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뻥튀기 잘하는 홍콩 언론들은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할리우드 블록 버스터 <아바타>의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공자>를 대항마로 활용하고 있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관객 수 1000만을 돌파한 <아바타>의 태풍이 몇 주째 불고 있는 가운데 2월 초 영화 <공자>가 서울에서도 시사회를 갖고 한국 관객 모으기에 나섰다.
‘비림비공’이라면 우리 젊은이들 대부분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비림비공’이란 말은 “림(林)과 공(孔)을 모두 비난한다”는 말로, ‘림’은 린뱌오(林彪), ‘공’은 공자를 각각 가리킨다. 린뱌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시대에 마오 다음가는 인민해방군 장군으로, 마오의 라이벌이었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사람이다. 비림비공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말기로 접어들던 1973년 7월 마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함으로써 시작됐다.
“린뱌오나 국민당이나 모두 공자를 존경하고, 법가(法家)에 반대하는 무리이다. 법가는 역사를 전진시켰고, 공자는 역사를 후퇴시킨 사람이다.”
법가의 사상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계속된 춘추전국시대 후기에 나타난 사상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정리하고 통일왕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통치논리가 법가의 사상이었다. 한비자(韓非子)로 대표되는 법가의 사상은 ‘예(禮)’와 ‘인(仁)’을 강조하는 유가(儒家)와는 달리 법과 규율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다.
춘추전국시대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바뀌면서 생산력이 발전해서 잉여 농산물들이 생겨나는 바람에 천하가 혼란에 빠진 때라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해석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에 빠진 중국을 진시황이 통일하는 데 위력을 발휘한 것이 바로 법가의 사상이었다. 진시황이 저질렀다는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란 죽간(竹簡) 형태로 돼 있던 유가들의 책(종이가 발명된 것은 진 왕조 다음의 한(漢)나라 때의 일-필자 주)을 태우고, 공자를 추종하는 유가 세력들을 산 채로 파묻어버린 사건을 뜻하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 왕조를 세운 진시황으로서는, 이른바 ‘백가(百家)’라는 말로 표현되는 수많은 이념세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 정리를 위해 법가를 동원했다. 경전 ‘한비자’에는 유가들의 책은 죽간에 썼지만, 법가들의 법조문들은 동기(銅器)의 겉면에 새겨서 전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마오쩌둥이 진시황의 시대에서 2000년 가까이 흐른 뒤인 1973년에 돌연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가 국외로 탈출 도중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한 린뱌오를 “내전(內戰)을 통해 피를 흘리며 싸운 국민당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법가에 반대하고 공자를 추종하던 인물”이라고 비난하고 나서자 마오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금방 깨달았다.
공자를 되살린 덩샤오핑
이미 80세가 되어 노쇠한 마오쩌둥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마오의 내연의 처 장칭(江靑)과 장칭의 주변에 모여든 왕훙원(王洪文), 장춘차오(張春橋), 야오원위안(姚文元) 등 이른바 ‘4인방’들은 마오의 말을 ‘비림비공’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그러고는 당시 총리로, 권력의 제2인자이던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당내(黨內)의 대유(大儒)’라고 몰아붙이며 정치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4인방의 배후조종에 따라 세상 모르고 날뛰던 중고생 홍위병들은 공자의 고향인 산둥(山東)성 취푸(曲阜)로 달려가 공자를 모신 유교 사당들을 때려 부수고 불태웠다. 그러나 비림비공의 바람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1976년 1월 비림비공의 제1의 목표이던 저우언라이가 암으로 사망하고, 9월에는 마오쩌둥도 86세로 사망했다. 비림비공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던 4인방은 새로운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측근으로 군 실력자인 예젠잉(葉劍英)에게 체포당했다. 4인방은 나중에 감옥에서 자살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마오쩌둥이 죽고 중국공산당 최고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은 공자를 부활시켰다. 덩샤오핑은 자신의 입으로 ‘공자를 부활시켜야 한다’느니 ‘유교를 되살려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 마오의 손을 떠나 떠돌던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채택된 개혁개방 정책의 ‘총설계사(總設計士)’로 나서서, 자신의 지휘로 추진되던 경제개혁의 목표를 “소강(小康)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소강’이란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말이다. 소강은 ‘대동(大同)’의 전 단계로 “커다란 모순 없이 잘 어울려 사는 사회”라는 뜻의 유가(儒家) 용어다. 대동이 “대도(大道)가 행해지고 천하가 공정함을 이룬 사회”라는 뜻이었다면, 소강은 “예의가 서 있고, 군신(君臣)관계가 올바르며, 가족관계가 화목하고, 생활이 윤택한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덩샤오핑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공자의 부활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중국 지식인들은 소강이 ‘유가’의 용어라는 점에 주목했다. 마오가 “역사를 후퇴시켰다”며 유죄 판결을 내린 공자에 대해 덩샤오핑이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덩샤오핑은 권력을 장악한 다음해인 1979년 12월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총리와 만나 처음으로 ‘소강’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덩샤오핑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현대화는 중국식의 현대화이며, 우리가 말하는 현대화의 개념은 일본과 같은 현대화 개념이 아니라 이번 세기 말까지 소강지가(小康之家)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1986년 6월 캐나다 등 해외에 사는 룽(榮)씨 종친회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소강사회의 경제적 의미를 규정해 주는 말을 했다. “우리의 목표는 2000년까지 소강사회를 건설하는 것인데, 소강사회란 국민소득 분배면에서 아주 잘사는 사람도 없고, 아주 가난한 사람도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다시 1990년 1월의 당간부 회의에 나와서 “이번 세기 말에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하면 소강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덩샤오핑은 ‘소강’이란 말 이외에도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인위본(以人爲本)’ 등 유가적인 용어를 정치에 활용했다.
후진타오, ‘和諧’라는 유교개념을 현실정치에 도입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중국에 경제개혁의 목표로 제시한 ‘소강사회의 달성’은 영화 <공자>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영화 <공자>에 공자가 노(魯)나라를 떠나 위(衛)나라로 가서 임금 영공(靈公)을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위 영공) “우리 위나라는 인구가 많고 사회가 혼란해서 다스리기 쉽지가 않소. 어떻게 다스려야 어지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 수 있겠소?”
(공자) “우선 백성들의 생활이 풍족해야 합니다.”
(위 영공) “우리 위나라에도 부자들은 적지 않소만 사회는 불안정하오. 어떻게 해야 하오?”
(공자) “그건 사회 기풍이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예의를 가르쳐야 하며, 사람들을 군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장면은 요즘의 중국에 딱 들어맞는 장면이다. 1978년부터 30년 넘게 경제발전을 해서 사회가 풍족해지고 돈 많은 사람은 많아졌지만 중국사회는 여전히 혼란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덩샤오핑이 이상사회로 제시한 소강사회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 고발적인 메시지를 영화 <공자>는 담고 있다. 덩샤오핑 살아생전에 중국은 경제개혁에 성공하면서도 사회기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가 발생했다.
덩샤오핑으로부터 최고 권력을 넘겨받은 장쩌민(江澤民)은 덩샤오핑의 소강사회를 그대로 물려받아 개혁개방의 지침으로 삼았다. 2002년 장쩌민으로부터 최고 권력을 넘겨받아 중국을 통치하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덩샤오핑의 소강사회 이념에다가 유가의 이념을 몇 가지 더 추가했다.
소강사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화해(和諧)’라는 개념을 현실정치에 도입했다. 유가에서 말하는 ‘화해’란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능력을 다 발휘하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어울려 잘사는 이상사회”란 뜻을 가진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어울리면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란 개념을 포함한 말이다.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 중국공산당은 이 화해라는 개념을 최고의 정치구호로 내세우고 있고, 덩샤오핑이 말한 ‘이인위본(以人爲本)’도 강조하고 있다. 외교에서도 후진타오의 중국은 ‘화해로운 국제사회’를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정치 쪽이 그렇게 돌아가자 마침내 2006년 10월 중국 국영TV는 논어 방송강좌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했다. 베이징 사범대학 미디어대학원 부원장으로 중국공산당원인 위단(于丹) 교수가 맡아 진행한 ‘백가강단(百家講壇)’의 논어강좌는 높은 시청률을 올렸고, 위단 교수의 논어강좌를 책으로 출판한 ‘논어심득(論語心得)’은 전국적으로 400만 부가 팔려 나가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위단 교수는 일약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고, 2007년·2008년 우수 TV프로그램 진행자, 우수도서 저작상 등 상복(賞福)이 쏟아졌다. 위단에 앞서 ‘백가강단’에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대한 강좌로 유명해진 이중톈(易中天) 샤먼(厦門)대학 교수는 위단의 ‘논어심득’에 써 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논어 예찬론을 폈다.
“위단의 논어강좌는 회색으로만 칠해져 있던, 이론의 세계에 머물고 있던 공자를 여러 가지 색깔로 칠해져 있는 현실의 세계로 모셔 왔다. 나는 회색의 세계에서 유채색의 세계로 모셔져 나온 공자가 학자로서의 공자인지, 역사 속의 공자인지, 진실한 공자의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위단이 현실의 세계로 모시고 나온 공자가 바로 우리의 공자이며, 대중의 공자이고, 인민들의 공자이며, 영원한 공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공자다. 우리는 그런 공자를 환영한다.”
전 세계 84개국에 ‘공자학원’ 설립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와 국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중국은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를 본뜬 ‘공자학원’(孔子學院·Confucius Institute)을 전 세계 각국에 설립하고 있다. 2004년 11월 서울에 처음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공자학원은 2009년 10월 말 현재 전 세계 84개국에 모두 523개소의 공자학원을 세웠다. 후진타오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정치지도자들은 해외 방문을 하면 반드시 공자학원을 방문해서 현지인들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누린다.
캐나다 출신의 정치철학자로 베이징에 있는 칭화(淸華)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다니엘 벨(Daniel A. Bell) 교수는 2008년에 출판한 책 ‘중국의 새로운 유교(China's New Confucianism)’에서 요즘의 중국 사회와 유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해 놓았다.
“요즘 중국 관리들과 학자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제 더 이상 마르크시즘(Marxism)이 중국의 장래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다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마르크시즘은 이제 중국 사회에서 신뢰를 잃었으며, 정당성도 상실했다.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정부도 이제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이론인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마르크시즘은 이제 중국에서의 역할이 끝났다. 이제 중국에서는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에 대해 아무도 카를 마르크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05년 2월 ‘공자께서는 화해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했다’는 연설을 했다. 몇 달 뒤에는 당간부들에게 화해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중국에서 사실상 마르크스주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념이 됐으며, 그 빈 자리를 공자의 유가사상이 채우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중국공산당의 한 고위간부는 중국이 앞으로 어떤 정치행로를 걸어갈 것인가에 대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당은 현재 어떤 정치개혁에 나설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 당이 펼쳐보일 정치개혁의 청사진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일단 배제돼 있다고 보면 된다. 서구식 민주주의보다는 공자의 유가사상에 따른 정치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이다. 아직 해답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일단 공자의 유가사상은 미국의 것도, 유럽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 중국의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지도자가 앞으로 중국이 걸어갈 정치개혁을 유가 이념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영화 <공자>가 제작된 중국사회의 분위기는 그런 것이었다. 마오 시대의 ‘비림비공’에서 영화 <공자>가 제작되는 데까지는 37년이 걸렸다. 영화 <공자>는 노나라에서 중도재(中都宰)라는 높은 벼슬살이를 하던 공자가 왕의 신임을 잃고 51세에 이른바 ‘주유천하(周遊天下)’에 나서서 73세에 사망할 때까지를 그린 영화다. 영화 <공자>는 지난 1월 22일 중국에서 개봉된 이래 1주일 만에 무려 3800만 위안(元), 우리 돈으로 684억원을 벌어들이면서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에 도전장을 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른 영화 <공자>의 장면들
지난 2월 4일 서울에서 시사회를 가진 <공자>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에 사망한 공자는 기원전 469년에 태어나 기원전 399년에 사망한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못생긴 사람이었던 것으로 초상화에 그려져 있다. 그런 공자의 역으로 홍콩의 미남배우 저우룬파(周潤發)를 등장시킨 것도 부자연스럽게 보였고,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의 죽음이나, 위나라 왕 영공의 젊은 부인 남자(南子)가 공자를 유혹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논어에 보면 안회는 병으로 죽은 걸로 돼 있는데, 영화 <공자>에는 안회가 죽간으로 된 책을 얼음이 언 호수 위에서 옮기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물에 빠지고, 안회는 죽간을 건지기 위해 얼음 아래의 물속을 몇 차례나 잠수해서 건져 올리다 그만 익사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안회가 죽는 장면을 마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에서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바닷물 속에서 죽는 장면처럼 그린 대목에서는 실소(失笑)를 참기가 어려웠다.
더 말이 안되는 장면은 이웃 위나라 영공의 젊은 부인 남자(南子)가 공자를 유혹하는 장면이었다. 홍콩의 미녀 배우 저우쉰(周迅)이 역을 맡은 남자는 늙은 위 영공의 젊은 부인이라는 점에서 공자가 도착한 위나라에서 소문이 안 좋던 여자였다. 그런 남자가 공자를 만나려고 하자 제자들은 “하늘이 싫어하는 인간(天厭之人)”이라면서 만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국가 운영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 공자를 부른 것이었고, 공자를 만날 때 예의를 잘 갖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공자는 이른바 ‘하늘도 싫어하는 인간’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남자의 이야기를 제자들을 통해 후세에 남겼다. 그런 남자와 공자의 이야기를 마치 성경(聖經)에 나오는, 요셉이 이집트에서 총리로 출세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장군 보디발의 호색적인 부인의 유혹을 받는 이야기처럼 꾸민 대목에서는 실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공자를 유혹했던 남자가 자신의 행실이 탄로나 가마를 타고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에서는 “공자가 오랫동안 중국사회에서 잊혀 있었기 때문에 영화제작자들의 공자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았던 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품게 만들었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남자는 공자가 죽은 뒤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자 뒤에는 孫子가 있다”
공자의 역을 홍콩의 미남 배우에게 맡긴 점이나 안회의 죽음, 그리고 남자로 하여금 공자를 유혹하게 만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영화가 공자를 대(大)사상가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공자를 노나라와 제(齊)나라 간의 전쟁을 지휘하는 전쟁전략가처럼 묘사하는 데서 더 진전하지 못한 점은 350억원이나 쏟아부어 제작한 영화 <공자>가 과연 제대로 만든 영화인가 의심하게까지 만들었다.
그런 공자를 가지고 어떻게 <아바타>에 대항하겠다는 것인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문들은 중국 네티즌들도 제기했고, 이에 대해서 감독을 맡았던 후메이(胡玟)는 중국어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과의 인터뷰에서 “인민들이 <공자>를 재미있게 보게 하려고 그랬다”는 말을 했다. 그래선지 중국 네티즌들은 영화 <공자>를 두고 “공자 뒤에는 손자(孫子)가 있다”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영화 공자를 제작한 의도 뒤에는 중국 당국의 책략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인 것이다. 어쨌든 영화 <공자>가 이래저래 중국사회에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만은 분명하지만, 영화 <공자>의 작품수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겠다.⊙
‘비림비공’이라면 우리 젊은이들 대부분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비림비공’이란 말은 “림(林)과 공(孔)을 모두 비난한다”는 말로, ‘림’은 린뱌오(林彪), ‘공’은 공자를 각각 가리킨다. 린뱌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시대에 마오 다음가는 인민해방군 장군으로, 마오의 라이벌이었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사람이다. 비림비공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말기로 접어들던 1973년 7월 마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함으로써 시작됐다.
“린뱌오나 국민당이나 모두 공자를 존경하고, 법가(法家)에 반대하는 무리이다. 법가는 역사를 전진시켰고, 공자는 역사를 후퇴시킨 사람이다.”
법가의 사상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계속된 춘추전국시대 후기에 나타난 사상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정리하고 통일왕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통치논리가 법가의 사상이었다. 한비자(韓非子)로 대표되는 법가의 사상은 ‘예(禮)’와 ‘인(仁)’을 강조하는 유가(儒家)와는 달리 법과 규율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다.
춘추전국시대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바뀌면서 생산력이 발전해서 잉여 농산물들이 생겨나는 바람에 천하가 혼란에 빠진 때라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해석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에 빠진 중국을 진시황이 통일하는 데 위력을 발휘한 것이 바로 법가의 사상이었다. 진시황이 저질렀다는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란 죽간(竹簡) 형태로 돼 있던 유가들의 책(종이가 발명된 것은 진 왕조 다음의 한(漢)나라 때의 일-필자 주)을 태우고, 공자를 추종하는 유가 세력들을 산 채로 파묻어버린 사건을 뜻하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 왕조를 세운 진시황으로서는, 이른바 ‘백가(百家)’라는 말로 표현되는 수많은 이념세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 정리를 위해 법가를 동원했다. 경전 ‘한비자’에는 유가들의 책은 죽간에 썼지만, 법가들의 법조문들은 동기(銅器)의 겉면에 새겨서 전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마오쩌둥이 진시황의 시대에서 2000년 가까이 흐른 뒤인 1973년에 돌연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가 국외로 탈출 도중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한 린뱌오를 “내전(內戰)을 통해 피를 흘리며 싸운 국민당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법가에 반대하고 공자를 추종하던 인물”이라고 비난하고 나서자 마오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금방 깨달았다.
공자를 되살린 덩샤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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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 28일 충북대는 교내 평생교육원에서 임동철 총장과 김병민 옌볜대(延邊大) 총장 등 중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자학원 개원식을 가졌다. |
1976년 1월 비림비공의 제1의 목표이던 저우언라이가 암으로 사망하고, 9월에는 마오쩌둥도 86세로 사망했다. 비림비공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던 4인방은 새로운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측근으로 군 실력자인 예젠잉(葉劍英)에게 체포당했다. 4인방은 나중에 감옥에서 자살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마오쩌둥이 죽고 중국공산당 최고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은 공자를 부활시켰다. 덩샤오핑은 자신의 입으로 ‘공자를 부활시켜야 한다’느니 ‘유교를 되살려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 마오의 손을 떠나 떠돌던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채택된 개혁개방 정책의 ‘총설계사(總設計士)’로 나서서, 자신의 지휘로 추진되던 경제개혁의 목표를 “소강(小康)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소강’이란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말이다. 소강은 ‘대동(大同)’의 전 단계로 “커다란 모순 없이 잘 어울려 사는 사회”라는 뜻의 유가(儒家) 용어다. 대동이 “대도(大道)가 행해지고 천하가 공정함을 이룬 사회”라는 뜻이었다면, 소강은 “예의가 서 있고, 군신(君臣)관계가 올바르며, 가족관계가 화목하고, 생활이 윤택한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덩샤오핑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공자의 부활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중국 지식인들은 소강이 ‘유가’의 용어라는 점에 주목했다. 마오가 “역사를 후퇴시켰다”며 유죄 판결을 내린 공자에 대해 덩샤오핑이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덩샤오핑은 권력을 장악한 다음해인 1979년 12월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총리와 만나 처음으로 ‘소강’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덩샤오핑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현대화는 중국식의 현대화이며, 우리가 말하는 현대화의 개념은 일본과 같은 현대화 개념이 아니라 이번 세기 말까지 소강지가(小康之家)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1986년 6월 캐나다 등 해외에 사는 룽(榮)씨 종친회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소강사회의 경제적 의미를 규정해 주는 말을 했다. “우리의 목표는 2000년까지 소강사회를 건설하는 것인데, 소강사회란 국민소득 분배면에서 아주 잘사는 사람도 없고, 아주 가난한 사람도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다시 1990년 1월의 당간부 회의에 나와서 “이번 세기 말에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하면 소강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덩샤오핑은 ‘소강’이란 말 이외에도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인위본(以人爲本)’ 등 유가적인 용어를 정치에 활용했다.
후진타오, ‘和諧’라는 유교개념을 현실정치에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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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논어 열풍을 일으킨 위단 베이징 사범대 교수. |
(위 영공) “우리 위나라는 인구가 많고 사회가 혼란해서 다스리기 쉽지가 않소. 어떻게 다스려야 어지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 수 있겠소?”
(공자) “우선 백성들의 생활이 풍족해야 합니다.”
(위 영공) “우리 위나라에도 부자들은 적지 않소만 사회는 불안정하오. 어떻게 해야 하오?”
(공자) “그건 사회 기풍이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예의를 가르쳐야 하며, 사람들을 군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장면은 요즘의 중국에 딱 들어맞는 장면이다. 1978년부터 30년 넘게 경제발전을 해서 사회가 풍족해지고 돈 많은 사람은 많아졌지만 중국사회는 여전히 혼란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덩샤오핑이 이상사회로 제시한 소강사회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 고발적인 메시지를 영화 <공자>는 담고 있다. 덩샤오핑 살아생전에 중국은 경제개혁에 성공하면서도 사회기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가 발생했다.
덩샤오핑으로부터 최고 권력을 넘겨받은 장쩌민(江澤民)은 덩샤오핑의 소강사회를 그대로 물려받아 개혁개방의 지침으로 삼았다. 2002년 장쩌민으로부터 최고 권력을 넘겨받아 중국을 통치하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덩샤오핑의 소강사회 이념에다가 유가의 이념을 몇 가지 더 추가했다.
소강사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화해(和諧)’라는 개념을 현실정치에 도입했다. 유가에서 말하는 ‘화해’란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능력을 다 발휘하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어울려 잘사는 이상사회”란 뜻을 가진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어울리면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란 개념을 포함한 말이다.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 중국공산당은 이 화해라는 개념을 최고의 정치구호로 내세우고 있고, 덩샤오핑이 말한 ‘이인위본(以人爲本)’도 강조하고 있다. 외교에서도 후진타오의 중국은 ‘화해로운 국제사회’를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정치 쪽이 그렇게 돌아가자 마침내 2006년 10월 중국 국영TV는 논어 방송강좌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했다. 베이징 사범대학 미디어대학원 부원장으로 중국공산당원인 위단(于丹) 교수가 맡아 진행한 ‘백가강단(百家講壇)’의 논어강좌는 높은 시청률을 올렸고, 위단 교수의 논어강좌를 책으로 출판한 ‘논어심득(論語心得)’은 전국적으로 400만 부가 팔려 나가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위단 교수는 일약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고, 2007년·2008년 우수 TV프로그램 진행자, 우수도서 저작상 등 상복(賞福)이 쏟아졌다. 위단에 앞서 ‘백가강단’에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대한 강좌로 유명해진 이중톈(易中天) 샤먼(厦門)대학 교수는 위단의 ‘논어심득’에 써 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논어 예찬론을 폈다.
“위단의 논어강좌는 회색으로만 칠해져 있던, 이론의 세계에 머물고 있던 공자를 여러 가지 색깔로 칠해져 있는 현실의 세계로 모셔 왔다. 나는 회색의 세계에서 유채색의 세계로 모셔져 나온 공자가 학자로서의 공자인지, 역사 속의 공자인지, 진실한 공자의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위단이 현실의 세계로 모시고 나온 공자가 바로 우리의 공자이며, 대중의 공자이고, 인민들의 공자이며, 영원한 공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공자다. 우리는 그런 공자를 환영한다.”
전 세계 84개국에 ‘공자학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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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 23일 중국 공자기금회가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서 높이 2.557m의 공자 표준상을 공개했다. 기존의 공자 초상화나 조각에 비해 코가 넓고 입이 크며 눈썹이 짙다. |
캐나다 출신의 정치철학자로 베이징에 있는 칭화(淸華)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다니엘 벨(Daniel A. Bell) 교수는 2008년에 출판한 책 ‘중국의 새로운 유교(China's New Confucianism)’에서 요즘의 중국 사회와 유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해 놓았다.
“요즘 중국 관리들과 학자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제 더 이상 마르크시즘(Marxism)이 중국의 장래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다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마르크시즘은 이제 중국 사회에서 신뢰를 잃었으며, 정당성도 상실했다.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정부도 이제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이론인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마르크시즘은 이제 중국에서의 역할이 끝났다. 이제 중국에서는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에 대해 아무도 카를 마르크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05년 2월 ‘공자께서는 화해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했다’는 연설을 했다. 몇 달 뒤에는 당간부들에게 화해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중국에서 사실상 마르크스주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념이 됐으며, 그 빈 자리를 공자의 유가사상이 채우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중국공산당의 한 고위간부는 중국이 앞으로 어떤 정치행로를 걸어갈 것인가에 대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당은 현재 어떤 정치개혁에 나설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 당이 펼쳐보일 정치개혁의 청사진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일단 배제돼 있다고 보면 된다. 서구식 민주주의보다는 공자의 유가사상에 따른 정치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이다. 아직 해답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일단 공자의 유가사상은 미국의 것도, 유럽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 중국의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지도자가 앞으로 중국이 걸어갈 정치개혁을 유가 이념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영화 <공자>가 제작된 중국사회의 분위기는 그런 것이었다. 마오 시대의 ‘비림비공’에서 영화 <공자>가 제작되는 데까지는 37년이 걸렸다. 영화 <공자>는 노나라에서 중도재(中都宰)라는 높은 벼슬살이를 하던 공자가 왕의 신임을 잃고 51세에 이른바 ‘주유천하(周遊天下)’에 나서서 73세에 사망할 때까지를 그린 영화다. 영화 <공자>는 지난 1월 22일 중국에서 개봉된 이래 1주일 만에 무려 3800만 위안(元), 우리 돈으로 684억원을 벌어들이면서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에 도전장을 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른 영화 <공자>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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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9월 중국 산둥성 취푸시 공묘에서 열린 공자 탄생 2555주년 기념행사. 취푸시 시장과 부시장 등 중국 지방정부 당국자가 처음으로 참석한 행사였다. |
논어에 보면 안회는 병으로 죽은 걸로 돼 있는데, 영화 <공자>에는 안회가 죽간으로 된 책을 얼음이 언 호수 위에서 옮기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물에 빠지고, 안회는 죽간을 건지기 위해 얼음 아래의 물속을 몇 차례나 잠수해서 건져 올리다 그만 익사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안회가 죽는 장면을 마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에서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바닷물 속에서 죽는 장면처럼 그린 대목에서는 실소(失笑)를 참기가 어려웠다.
더 말이 안되는 장면은 이웃 위나라 영공의 젊은 부인 남자(南子)가 공자를 유혹하는 장면이었다. 홍콩의 미녀 배우 저우쉰(周迅)이 역을 맡은 남자는 늙은 위 영공의 젊은 부인이라는 점에서 공자가 도착한 위나라에서 소문이 안 좋던 여자였다. 그런 남자가 공자를 만나려고 하자 제자들은 “하늘이 싫어하는 인간(天厭之人)”이라면서 만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국가 운영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 공자를 부른 것이었고, 공자를 만날 때 예의를 잘 갖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공자는 이른바 ‘하늘도 싫어하는 인간’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남자의 이야기를 제자들을 통해 후세에 남겼다. 그런 남자와 공자의 이야기를 마치 성경(聖經)에 나오는, 요셉이 이집트에서 총리로 출세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장군 보디발의 호색적인 부인의 유혹을 받는 이야기처럼 꾸민 대목에서는 실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공자를 유혹했던 남자가 자신의 행실이 탄로나 가마를 타고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에서는 “공자가 오랫동안 중국사회에서 잊혀 있었기 때문에 영화제작자들의 공자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았던 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품게 만들었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남자는 공자가 죽은 뒤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자 뒤에는 孫子가 있다”
공자의 역을 홍콩의 미남 배우에게 맡긴 점이나 안회의 죽음, 그리고 남자로 하여금 공자를 유혹하게 만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영화가 공자를 대(大)사상가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공자를 노나라와 제(齊)나라 간의 전쟁을 지휘하는 전쟁전략가처럼 묘사하는 데서 더 진전하지 못한 점은 350억원이나 쏟아부어 제작한 영화 <공자>가 과연 제대로 만든 영화인가 의심하게까지 만들었다.
그런 공자를 가지고 어떻게 <아바타>에 대항하겠다는 것인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문들은 중국 네티즌들도 제기했고, 이에 대해서 감독을 맡았던 후메이(胡玟)는 중국어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과의 인터뷰에서 “인민들이 <공자>를 재미있게 보게 하려고 그랬다”는 말을 했다. 그래선지 중국 네티즌들은 영화 <공자>를 두고 “공자 뒤에는 손자(孫子)가 있다”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영화 공자를 제작한 의도 뒤에는 중국 당국의 책략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인 것이다. 어쨌든 영화 <공자>가 이래저래 중국사회에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만은 분명하지만, 영화 <공자>의 작품수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