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대인 사회] 미국을 경악시킨 유대인 간첩사건 : 월간조선

미국 역사상 적지 않은 간첩사건이 冷戰시대에 소련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 중에는 미국 내 유대인이 연루된 대형 스파이사건이 두 건 있었다. 시대나 성격, 그리고 대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두 사건 모두 미국안보에 치명적인 危害를 가져왔고, 관련자 모두가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이 두 사건은 미국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정치면에서도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 내 유대인에 대한 여론이 일시적으로 악화되기도 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와 로젠버그 간첩사건]

원폭 관련 정보를 소련에 넘긴 혐의로 법정에 선 로젠버그 부부.

유대인 관련 核(핵) 간첩사건을 다루기 전에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 유대인이 오늘날과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미국 발전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이다. 미국 유대인의 공헌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맨해튼 프로젝트’다. 이 계획을 立案(입안)하고 과학기술적 성취를 이끌어낸 두뇌들은 거의 모두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정착한 유럽계 유대인 물리학자·화학자·수학자 등 과학자 집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8월 2일 독일·스위스계 유대인이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헝가리계 유대인 물리학자 레오 질라드는 공동명의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냈다. 이 서신에서 두 사람은 히틀러가 조만간 원자폭탄을 만들지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미국이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루스벨트는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1939년 10월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핵무기 개발을 위한 기초단계 조직으로 ‘우라늄위원회’가 설립됐다. 그 후 1942년 초에 ‘맨해튼 프로젝트’(공식명칭: Manhattan Engineer District/MAD)라는 코드네임으로 명명된 핵폭탄 제조연구가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에 유럽 출신의 유대인 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이스라엘에 넘긴 조너선 폴라드.

3년에 걸쳐 20억 달러(현재가치 약 250억 달러)의 비용과 연인원 13만명이 투입된 이 비밀사업의 총괄조정은 레슬리 그루브 장군이 맡았지만, 과학기술 부문의 연구와 실험은 독일계 유대인 물리학자 줄리어스 오펜하이머 박사가 지휘했다. 아인슈타인은 사업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연구과정에서 매듭이 풀리지 않을 때만 자문에 응했다고 한다.

사업의 기초과학적 연구는 미국 명문대인 프린스턴·컬럼비아·시카고·버클리大(대) 등에서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1938년 노벨상 수상자인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와 질라드는 원자로 건설 연구를 맡아 1942년 12월 2일 세계 최초의 원자로가 시험 가동됐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州(주) 앨라모고르도 사막에서 20㏏(TNT 기준) 급의 ‘트리니티’ 플루토늄 원폭의 실험이 진행됐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이로써 인류는 핵무기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

1945년 8월 6일 새벽 2시50분, 토마스 페레비와 12명의 공군 요원들은 15㏏의 우라늄형 폭탄인 ‘리틀 보이’를 실은 美(미)공군 폭격기 ‘에놀라 게이’호에 올랐다. 그들은 태평양에 위치한 마리아나제도의 티니안 섬을 이륙한 후 일본을 향해 5시간 반을 비행했다. 그날 오전 8시15분경 인구 35만명의 히로시마 상공에서 작은 폭탄이 투하됐다. 히로시마는 도시의 90%가 파괴되었고 약 15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8월 9일, 21㏏의 플루토늄 탄 ‘팻맨’이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됐다. 4만명이 즉사했고, 낙진에 의해 7만5000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두 차례에 걸친 핵폭탄 투하로 일본은 전쟁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무조건 항복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대인 과학자들은 핵무기 개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들은 수적으로 월등히 많기도 했지만, 이들 모두가 핵심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후일 미국 유대인이 미국 내에서 영향력을 배가시키는 디딤돌이 됐다.

원폭개발에 참여한 유대인 과학자들. 왼쪽부터 오펜하이머, 파인먼, 비그너, 블록.

유대인 과학자들 대거 참여

앞에서 언급한 아인슈타인과 질라드, 오펜하이머 외에도 노벨상 수상자 수 명이 참여했다. 양자전기역학의 大家(대가)인 리처드 파인먼,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헝가리계 유대인 오이겐 비그너, 스위스계 물리학자 펠릭스 블록 등이 그들이다. 그 외에도 후일 수소탄 연구에 참여한 헝가리계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폴란드계 물리학자 겸 수학자인 스타니스와프 울람, 헝가리계 화학자 존 폰 노이만, 오스트리아·스웨덴계 여성 과학자 리즈 마이트너 등도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유대인 과학자들이다.

원폭개발에 참여한 유대인 과학자들. 왼쪽부터 텔러, 울람, 노이만, 마이트너.

미국의 핵무기 獨占(독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1949년 8월, 소련은 플루토늄형 폭탄인 RDS-1 실험에 성공했다. 소련이 패망한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을 끌고 가 핵폭탄 연구에 투입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는 미국에 있는 소련 스파이들이 미국의 원자탄 연구결과를 소련에 넘겨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 태생의 영국유대인 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는 1944년 초 오펜하이머 박사가 지휘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로스알라모스 팀에 합류했다. 그해 여름 소련 첩보기관은 훅스를 간첩으로 포섭했다. 그를 수상하게 여긴 FBI(미 연방수사국)는 영국 MI5(방첩기관)와 공조해 훅스가 1930년대에 독일 공산당원이었음을 밝혀냈다. 1949년 훅스는 MI5에 체포되어 대규모 원자기밀간첩단의 전모를 털어놓았다. 이것이 이른바 ‘로젠버그 부부 핵무기 간첩단’ 사건의 발단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폭 개발을 건의한 아인슈타인(왼쪽)과 질라드.

훅스는 영국 첩보기관 수사에서 1944년과 1945년 ‘레이몬드’라는 假名(가명)을 가진 미국인 소련 간첩으로부터 원자탄 개발 관련 자료를 받아 소련으로 넘겨주는 중간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FBI는 필라델피아종합병원서 근무하던 러시아계 스위스 유대인 화학자 해리 골드가 ‘레이몬드’라는 이름으로 소련스파이로 암약한 사실을 밝혀냈다.

골드의 정체는 먼저 구금된 훅스에 의해 확인됐고 골드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골드는 駐(주)뉴욕 소련 부영사 아나톨리 야코블레프에게 포섭되어 익명의 유대인 한 명과 연락하는 점조직 체계 속에서 일했다. 이 익명의 미국인이 골드에게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탄의 설계도와 內波(내파)렌즈 등을 제공했다.

골드의 진술을 바탕으로 1950년 6월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라는 유대인 첩자가 적발됐다. 그린글래스는 로스알라모스 팀에서 전기기사로 일했다. 그는 소련 첩자인 매형 줄리어스 로젠버그의 사주를 받아 함께 소련 스파이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린글래스는 수사당국의 형량경감(Plea Bargain) 회유를 받고 매부와 누이 에델 그린글래스 로젠버그를 간첩단의 首魁(수괴)로 몰았다.

꼬리 잡힌 로젠버그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소련 간첩이 된 클라우스 훅스.

로젠버그는 원래 유대교 성직자인 랍비가 되려 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뉴욕시립대학을 졸업한 인물이었다. 그는 18세가 되던 해에 미국공산당 청년동맹에 가입해 급진적인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1939년 여름 로젠버그는 공산당집회에서 만난 세 살 연상의 유대인 여성 에델 그린글래스와 결혼했다. 194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로젠버그는 군사암호반에서 일하다 1943년 소련첩보기관의 뉴욕 거점 책임자인 알렉산더 페클리소프에게 포섭됐다. 그는 이후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미국공산당을 탈당했다.

사건의 또 다른 단서는 캐나다에 망명한 소련 외교관 이고르 구첸코로부터 나왔다. 구첸코는 1945년 캐나다 주재 소련대사관에 근무하다 기밀문서 일부를 소지하고 캐나다 정부에 망명 신청을 했다. 당시 FBI의 對(대)간첩작전반장 로버트 램피어는 구첸코의 제보를 바탕으로 소련 정보기관(당시는 NKVD였다가 나중에 KGB로 명칭 변경)의 암호체계와 핵무기 간첩단의 교신내용을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국서 체포된 훅스가 소련에 보낸 보고문이었다.

훅스는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의 합동 심문을 받았다. 영국 MI5의 제임스 스카든은 훅스를 심문해 사건의 전모를 파악했다. 훅스의 접촉망은 훅스-해리 골드-그린글래스-로젠버그로 이어지며, 이 간첩망이 얻은 정보를 로젠버그가 종합해서 뉴욕거점 소련 기관원 야코블레프에게 전달하는 체제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훅스와 그린글래스의 자백으로 1950년 7월 17일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체포됐다. 3주일 후 줄리어스의 부인 에델도 연행되어 간첩죄로 재판에 회부됐다. 에델은 원래 가수지망생이었으나 집안이 어려워 해운회사에 취직해 비서로 일했다. 그녀는 공산당 성향의 해운노조 활동에 참여하다 이념적인 공감대가 있는 줄리어스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로젠버그의 대학 동창인 共犯(공범) 모턴 소벨도 유럽으로 도주하던 중 멕시코에서 체포되어 뉴욕으로 압송됐다. 소벨도 유대인이었다.

피고·판사·검사·변호인 모두 유대인

누이와 매형을 간첩사건의 주범으로 몬 데이비드 그린글래스.

당시 미국 국내에서는 매카시 열풍이 불고 있었고, 나라 밖에서는 한국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반공주의가 고조됐고, 이런 환경은 로젠버그 부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1951년 1월 뉴욕 맨해튼 남부지원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피고인 3명에게 1917년에 발효된 ‘간첩행위법’을 적용했다. 자신은 살고 매부를 주모자로 몰려고 사법당국과 밀약한 처남 그린글래스의 불리한 증언으로 인해 로젠버그는 재판 내내 고전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에 직접 관련된 법조인들은 모두가 유대인이었다. 재판장 어빙 카우프만을 비롯해 공안사건 전문검사 어빙 세이폴과 검사보 로이 콘(후일 매카시의 보좌관을 지냄) 그리고 로젠버그 부부의 변호인 임마뉴엘 블록, 소벨의 변호인 에드워드 쿤츠가 그들이다. 유대인 피고를 유대인 검사가 기소하고, 유대인 판사가 재판하며, 유대인 변호인단이 변론하는 특이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만 배심원단에는 단 한명의 유대인도 포함되지 않았다.

1951년 3월 29일 배심원단은 피고인 3명 모두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장 카우프만은 선고 직전, 연방대법관, 형법전문가 그리고 에드거 후버 FBI국장과도 형량에 대해 비공식협의를 가졌다고 한다. 후버는 로젠버그의 부인인 에델은 아이 둘을 둔 어머니이며 남편에 협조한 從犯(종범)이므로 극형만은 면하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로젠버그 부부는 사형, 소벨은 징역 30년, 그린글래스는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로젠버그 사건의 재판장 어빙 카우프만.

변호인단은 1심 선고에 불복하고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담당 판사인 제롬 프랭크도 유대인이었는데, 미국 사법체계상 고등법원의 임무가 법률의 적법성 여부를 심사하는 것이었으므로 최종판단을 연방대법원에 넘겼다. 대법원은 내부검토 끝에 사건이첩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사건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로젠버그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미국 공산당과 좌익세력은 당시 반공열풍에 기가 죽어 조용히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았다. 다만 유대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해럴드 유레이만이 로젠버그에 대한 관용을 호소했다. 자크 뒤클로 프랑스 공산당 당수를 비롯한 이탈리아·영국 등 서유럽 공산당들은 로젠버그 부부 처형 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면서 국제여론을 통해 미국에 압력을 넣으려고 시도했으나 미국의 사법부나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1953년 6월 13일 연방대법원이 처형 연기와 재심에 관한 청원을 기각하자 行刑(행형)당국은 처형일자를 6월 17일로 정했다.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전임자인 트루먼과 같이 로젠버그 부부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는 진정을 두 차례 거부했다.

사형은 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을 피하기 위해 6월 19일 금요일 해 지기 전에 집행됐다. 로젠버그 부부는 사형수만 수감되는 싱싱감옥의 전기의자에서 처형됐다. 3년을 끈 로젠버그 사건은 이로써 종결됐다. 당시 줄리어스는 35세, 부인 에델은 38세였다. 이들 부부의 두 아들은 유대인 독지가에게 入養(입양)됐다.

로젠버그 부부를 기소한 검사 어빙 세이폴(왼쪽)과 검사보 로이 콘(왼쪽).

로젠버그 부부의 간첩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당시나 그 후에도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이점은 소련공산당 제1서기를 지낸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이나 KGB 파일 등에서도 추후 확인됐다. 다만 처남 그린글래스와 일부 공범의 구두증언을 제외하고는 확고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간첩죄가 유죄로 인정되어 처형까지 갈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논란은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종종 있었다. 죄상이 더욱 무거웠던 훅스가 영국 법정에서 14년형을 받은 데 비해 형량의 형평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을 反(반)유대주의의 발로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사건 담당 판사, 검사 모두가 유대인이었고, 많은 미국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동료 유대인이 국가에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 지배적 인식이었다. 일부 랍비들이 “로젠버그의 죄질은 불량하지만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탄원한 것이 미국 유대인사회 대응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유대인은 한동안 군사기밀과 관련된 민감한 국가부서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현재 미국에는 로젠버그 사건을 다룬 40여 종의 서적이 있다. 그중에는 로젠버그 사건이 사법당국과 보수진영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로젠버그의 유죄는 인정하되 사형은 지나쳤으며, 부인 에델은 종신형 정도로 감형시켜 주었어야 했다는 주장이 대다수 견해다.

[폴라드 사건]

폴라드 사건 당시의 이스라엘 과학정보처장 라피 에이탄.

1985년 11월 미국에서 이른바 ‘폴라드 사건’이 터졌다. 미국의 한 유대인이 특급기밀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대형 간첩사건이다.

조너선 폴라드는 1954년 텍사스주 갈베스턴에서 태어나 열 살이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인디애나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명문 私學(사학)인 스탠퍼드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후 보스턴 소재 텁츠대 플레처스쿨에서 외교학을 2년간 전공했지만 과정을 마치지는 못했다.

1979년 폴라드는 CIA 등 정보기관에 취업하려고 응모했으나 신원 확인과 거짓말탐지기 테스트 등에서 떨어졌다. 그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는 점도 채용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1979년 말 폴라드는 메릴랜드주 소재 미 해군정보처(NFOIO) 민간인 분석관으로 들어갔다. 그는 소련·남아공 담당관으로 근무하다가 해군범죄수사국(NCIS)을 거쳐 1984년 해군정보처 산하 對(대)테러경보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해군정보처의 상사들은 폴라드의 충성심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으며 CIA도 폴라드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한동안 주기적으로 내부 신원점검을 했다. 철두철미한 시온주의자인 폴라드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문제라면 狂的(광적)인 애착을 갖고 정보를 다루었다. 폴라드는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슬람국가의 테러 조직 전모나 이라크의 화학·세균무기 상황 등에 대한 특급정보를 다루는 과정에서 어째서 그런 정보가 미국과 이스라엘 간 정보교환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심하면서 미국이 그런 정보를 이스라엘에 알리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의 정보체제를 미국에 의존토록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다.

1984년 폴라드는 駐美(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의 공군 武官(무관)인 아비엠 셀라 대령과 연결되어 그 후 1년간 이스라엘 간첩으로 활동했다. 전투기 조종사로 1967년 ‘6일 전쟁’에 참전했던 셀라 대령은 레켐(LEKEM)이라는 이스라엘 과학정보처 소속이었다. 당시 레켐의 처장은 나치 戰犯(전범) 아이히만 체포 공작 모사드 현장 지휘관이었고 현재 은퇴자당 당수인 라피 에이탄이었다. 셀라 외에도 뉴욕주재 이스라엘 科學官(과학관) 한 명도 폴라드의 연락망으로 지정됐다. 레켐은 폴라드 사건 이후 1986년에 해체됐다고 한다.

폴라드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암호체계, 국제전자감시체제편람, 소련의 對(대)리비아 무기공여 현황,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계획, 리비아의 防空網(방공망), 이라크·시리아의 생화학무기, 그리고 이슬람국가 전역에 걸친 재래식 무기 현황 등의 초특급 기밀들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적인 시온주의자였던 폴라드는 물질적 대가를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은 자발적 협조자였지만, 이스라엘측은 폴라드의 부인 앤에게 때때로 보석류 등을 선물했고, 폴라드에게도 거마비 조로 月(월) 1500달러 정도의 사례비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亡命 시도

1985년 10월 1일 이스라엘 특공대가 튀니지의 튀니스에 위치한 PLO 임시본부를 습격해 본부건물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 강경파 지도자 수 명을 살해했다. 미 정보당국은 이스라엘이 극비 중의 극비에 속하는 PLO 튀니지 본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경위에 대해 의혹을 품었다.

이무렵 FBI는 폴라드가 수상하다는 해군정보처 직원의 제보를 받고 폴라드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폴라드가 관련 증거물을 감추고 FBI의 거짓말탐지기 수사도 용케 통과하는 바람에 수사는 한동안 진전을 보지 못했다. 수사망이 점점 자신을 향해 좁혀 들어오는 것을 의식한 폴라드는 1985년 11월 27일 차를 몰고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그는 사전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사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라는 지령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대사관으로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대사관 직원은 폴라드를 밖으로 쫓아냈다. 결국 그는 대사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FBI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체포 당시 폴라드는 서류가방에 약 60건의 특급비밀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은 의리와 恩怨(은원)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자신들에게는 큰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폴라드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사관 밖으로 매정하게 쫓아낸 것은 많은 의문을 낳았다.

당시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불가피한 조치였다. 사건에 관련된 인물 중 셀라 공군대령이나 뉴욕주재 이스라엘 과학관은 추후 전모가 밝혀지고 미국 측의 요청이 있더라도 외교관 면책특권을 내세워 身柄(신병)인도를 거부할 수 있었다. 반면 폴라드는 엄연히 미국 국적자였다. 이스라엘이 폴라드의 망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추후 미국측이 강하게 신병인도 압력을 가해 올 경우 이스라엘은 이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일단 폴라드를 순순히 내주고 난 후 시간을 두고 김을 빼가면서 사태를 수습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FBI는 여러 달에 걸쳐 폴라드를 심문했다. 수사팀은 이스라엘 정보기관과도 합동조사를 했으나 이스라엘 측의 비협조로 별 진전이 없었다. 폴라드가 11차례에 걸쳐 국가 특급기밀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사실을 확인한 수사반은 폴라드가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간첩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시온주의에 불타 자발적으로 이스라엘에 협력한 확신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사반은 폴라드가 이스라엘뿐 아니라 남아공, 파키스탄 등 4개국에도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사건 전모를 보고 받고 미국이 이스라엘에 각종 고급 심층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별도로 첩자를 심은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미국은 폴라드의 공개재판 중에 민감한 국가기밀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 비공개 재판과 함께 일종의 ‘사법 절충(Plea Agreement)’으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 즉 종신형을 선고하되 10년 복역 후 가석방 신청자격을 주는 방향으로 형량을 정하기로 한 것이다.

25년째 수형생활

폴라드 사건 당시의 美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

그러나 폴라드가 <예루살렘 포스트>의 울프 블릿처 기자(현 CNN 대기자)와 간접 인터뷰한 기사가 보도되고, 부인 앤이 CBS TV의 인기 시사프로인 ‘60분’에 비디오 인터뷰를 하자 사법절충은 깨지고 말았다. 특히 폴라드 부부가 인터뷰를 통해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 유대인사회의 동조를 유도하려 했다는 점이 사법당국을 자극했다.

폴라드를 기소한 조지프 디 제노바 검사는 “폴라드의 간첩행각은 미국안보에 가장 치명적인 손상을 끼친 4대 간첩사건 중 하나”라면서, “폴라드가 절취한 기밀은 양적·질적으로 첩보역사상 前無後無(전무후무)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폴라드 변호인 측은 폴라드는 미국의 敵國(적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우방인 이스라엘을 위해 활동한 것이므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조야의 여론은 간첩행위의 대상은 우방국이나 敵國(적국)이나 차이가 없으므로 엄벌이 마땅하다는 분위기였다.

선고공판을 앞두고 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는 46쪽 분량의 비밀 설명자료를 재판부에 배포했다. 선고 하루 전 와인버거는 4쪽의 추가 자료를 판사에게 제시하면서 “폴라드의 범행은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므로 반드시 重刑(중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을 첨부했다.

1987년 3월 4일 폴라드는 수감 30년이 지나지 않으면 가석방 자격을 부여 받지 못하는 단서가 첨부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부인 앤은 5년형을 선고 받고 3년 반 복역한 후 건강상의 이유로 1990년 출소했다. 앤은 그 후 폴라드와 이혼하고 이스라엘에 갔다가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1993년 폴라드는 에스터 자이츠라는 캐나다 유대교 정통파 여성과 獄中(옥중) 재혼했다. 자이츠는 현재 시아버지인 모리스 폴라드와 함께 남편의 석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폴라드와 접촉했던 이스라엘의 셀라 대령은 미국 사법당국으로부터 기소됐으나 이스라엘은 외교관 특권을 이유로 셀라의 신병을 인도하지 않았다. 셀라는 귀국 후 공군 준장으로 진급했지만 미국측의 반발로 곧 전역했다.

폴라드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버트너 연방교도소에서 25년째 수형생활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특별사면이 없는 한 복역 30년이 되는 2015년 11월 이전에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한동안 폴라드가 이스라엘 간첩임을 공식적으로 시인하지 않았다. 시몬 페레즈(현 이스라엘 대통령)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노동당 정부는 1995년 말경에 가서야 폴라드에 대한 관대한 조치를 비공식적으로 미국에 요청했다. 1996년 1월, 이스라엘은 폴라드에게 이스라엘 국적을 부여했다. 폴라드는 자신의 이름인 ‘조너선’을 히브리어식인 ‘요나탄’으로 바꾸었다.

1998년 벤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폴라드가 이스라엘 간첩임을 공식 시인하고, 폴라드의 사면을 미국에 촉구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폴라드의 변호사 비용 등을 지원하는 한편,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대인 민간단체 주도로 전개되는 폴라드 석방운동도 후원하기 시작했다.

역대 美 국방장관들, 폴라드 사면 반대

폴라드 사면에 극력 반대한 조지 테닛 CIA국장.

폴라드의 사면문제는 과거 수차 거론됐다. 1995년 초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중동평화회담 와중에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폴라드의 사면문제를 비공식으로 제기했다. 클린턴도 처음에는 이해를 표시했으나 1995년 11월 라빈이 이스라엘 유대교 근본주의자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1998년 10월 14일부터 열흘 동안 메릴랜드주 와이 플랜테이션에서 이스라엘-PLO 간 오슬로 협정 이행을 위한 후속협상이 열렸다. 이 회담 도중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폴라드 석방문제를 협상조건의 하나로 내걸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미국 대통령 명의의 석방약속 별도서신(Side Letter)을 요구했다. 클린턴은 이스라엘 측의 요청에 대해 서신으로 확약하지는 않았으나 폴라드의 특별사면을 호의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미국 국내 여론이 들끓었다. 7명의 전직 국방장관(와인버거, 도널드 럼즈펠드, 제임스 슐레징거, 엘리어트 리처드슨, 멜빈 레어드, 딕 체니, 로버트 칼루치 등)들은 連書(연서)로 폴라드의 사면에 반대했다. 와인버거는 조상이 유대계였으나 아버지 대에 개신교로 개종한 집안 출신이고, 슐레징거는 아버지가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당시 CIA 국장이던 조지 테닛은 “만약 폴라드가 사면되면 즉시 사임할 것”이라고 대통령을 압박했다. 전직 해군정보처(NIS) 처장 4명도 폴라드의 석방에 강력 반대했다.

클린턴은 퇴임 직전 약 140명을 대상으로 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 단체들은 폴라드가 이 사면 리스트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폴라드가 제외되자 크게 실망했다. 부시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총리로부터 폴라드 석방 요청을 받았으나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폴라드 석방을 탄원하는 측은 그가 이스라엘에 기밀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우방국 관계이기 때문에 그에게 선고된 종신형은 다른 간첩사건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무겁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폴라드가 이미 25년을 복역했기 때문에 이제는 관용이 필요하다면서 “폴라드의 간첩행위가 이스라엘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때문에 미국의 안보가 뚜렷하게 위협을 받은 것은 아니므로 이제는 석방시켜주는 것이 마땅하다”고도 주장한다. 그들은 과거 클린턴이 폴라드의 석방에 대해 수차 긍정적인 언질을 주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원망하기도 한다.

폴라드를 ‘추악한 반역자’라고 비난한 프리랜서 에릭 마르골리스.

반면 폴라드의 석방을 반대하는 쪽의 논리는 다르다. 1993년 레슬리 애스핀 미국방장관은 “폴라드는 수감 중에도 14회에 걸쳐 과거에 지득한 기밀사항을 서신으로 외부에 알리려고 시도했다”고 밝혔다. 폴라드의 간첩행위를 가장 강력하게 규탄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하나는 에릭 마르골리스라는 프리랜서 기자이고, 다른 하나는 폴라드 수사에도 참여한 바 있는 전직 해군방첩대 수사관 론 올리브다.

마르골리스는 알바니아계 유대인으로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주 활동무대는 캐나다다. 마르골리스는 1999년 1월 14일자 <토론토 선>지에 기고한 글에서 폴라드가 미국의 군사정보체제와 외교암호체계, 중동에서 활동하는 100여 명의 미국 정보원 명단까지 이스라엘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폴라드가 절취한 정보 중에는 이스라엘 안보와 무관한 것도 많이 있었으며, 그중에는 동구권 국가에서 활동 중이던 CIA 요원들에 관한 것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폴라드가 이스라엘에서는 애국자로 추앙을 받는지 모르지만 미국에는 가장 추악한 반역자”라고 결론지었다.

전직 해군수사국 수사관인 론 올리브는 2006년 <폴라드를 체포하면서>라는 책자를 냈다. 그는 이 책에서 “폴라드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간첩행위”라면서 “폴라드는 매일 2~3건, 주당 3~4일간 총 100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밀을 이스라엘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특별한 관계를 감안할 때, 어지간하다면 폴라드는 벌써 석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역대 국방장관이나 정보기관장들이 한목소리로 폴라드의 석방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폴라드의 간첩행각은 미국 안보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심대한 피해를 끼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폴라드를 관할하던 이스라엘 과학정보처 레켐의 책임자 라피 에이탄은 2006년 “우리는 폴라드가 없었더라도 그런 정도의 정보는 얻을 수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폴라드의 정보가 질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정확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폴라드가 중동 지역의 미국정보원 명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설은 부인했다.

미국 유대인들, “폴라드는 진정한 조국을 착각”

폴라드를 비판한 칼럼니스트 리처드 코헨.

폴라드가 ‘反(반)유대주의의 희생양’이라는 주장이 미국 유대인 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미국 유대인들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폴라드에게 동정을 표시하면서도, “하필이면 동료 유대인이 이런 황당한 일을 저질러서 우리 입장까지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반응을 보인다. 유대인인 <워싱턴 포스트>의 중견 칼럼니스트 리처드 코헨은 “한 명의 한심한 유대인이 충성심을 바쳐야 할 진정한 조국을 착각한 데 대해 분노와 수치감이 앞선다”라고 기고했다.

폴라드도 로젠버그의 경우와 같이 범죄사실에 비해 종신형이라는 형벌이 무거워 보이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 정부나 사법당국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을 비롯해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각 少數(소수)민족들이 저마다 자기네 모국을 위해 미국을 배신한다면 미국의 국가체제 자체가 흔들리게 되므로 폴라드의 행위에 대해 一罰百戒(일벌백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 유대인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을 갖고는 있지만 그래도 미국을 진정한 조국으로 인식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 또는 시온주의 등 특정 이념에 집착한 극소수의 유대계 미국인이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동료 유대인들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미국 내 반유대주의를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로젠버그 부부 사건이나 폴라드 사건의 여파로 전체 미국 유대인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생기면 반드시 이를 영화화하는 할리우드지만, 폴라드 사건만은 아직 영화화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 영화계를 지배하는 유대계 영화인들이 한 미국 유대인의 恥部(치부)를 드러내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94년 프랑스 유대인 영화감독 에릭 로샹이 만든 <애국자>라는 영화가 폴라드 사건을 간접적으로 다루었다. 파리에 살던 한 유대인 청년(프랑스 배우 이반 아탈 扮)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선발되어 공작원으로 활동하는 내용을 그린 이 영화 후반부에 제레미 펠만(리처드 마줄 扮)이라는 미국 유대인 간첩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폴라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