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 돌고래 세계에도 통역사가 있다? : 월간조선

수족관에서 복잡한 재주를 열심히 보여주는 돌고래를 보면 특이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돌고래의 귀여운 행동과 비공격적인 행동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도 남는다. 우리는 높은 지능과 고도로 발달된 사회 능력을 가진 것은 靈長類(영장류), 그 중에서 모름지기 인간뿐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돌고래의 뛰어난 모방 솜씨와 헌신적으로 보이는 행동, 지역마다 다른 언어관습, 혼인을 위해 암컷을 유혹하고 유괴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을 보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도 이젠 쉽게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고래는 고래류 가운데 몸집이 가장 작은 종류로, 모방능력이 뛰어나고 지능이 높은 영리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수족관에서 돌고래를 바다표범과 함께 큰 水槽(수조)에 넣어 길렀더니 바다표범의 잠자는 자세, 다양한 수영법, 심지어 섹스행동까지도 흉내냈다고 한다. 또 잠수부가 해조류를 제거하러 들어갔을 때는 잠수부 흉내까지 그대로 냈다.

돌고래는 잠수부가 산소 호흡기로 호흡할 때 밸브에서 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이때 부글부글 생기는 거품과 비슷한 거품도 내뿜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잠수부가 기계로 수조의 물을 휘저어 해조류를 제거하는 모습을 관찰한 다음, 그 기계를 직접 조종하여 해조류를 충분히 흐트러지게 해서 그것을 먹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돌고래는 이렇게 뛰어난 모방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아마 주위 환경으로부터 오는 도전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모방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통역사 돌고래의 존재

최근 돌고래의 세계에 통역사가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도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듯 돌고래도 살고 있는 바다 위치에 따라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바다에서 태어난 돌고래와는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더 재미나는 건 ‘바울링걸(bowlingual: 강아지 언어 통역기)’이라는 기계가 존재하듯 통역사 역할을 하는 돌고래가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태평양 한복판에 사는 돌고래는 극동 해역과 미국 연안 해역 돌고래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이 돌고래가 통역사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돌고래의 영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왜곡돼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물세계에서 통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통역사가 있는 동물은 없다.

실제 두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통역은 전적으로 다르다. 두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우리는 바일링걸(bilingual)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울링걸로 바뀌면서 마치 돌고래에게 통역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처럼 사는 지역에 따라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은 돌고래와 鳴禽類(명금류ㆍ노래하는 새) 외에는 아직 없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이들이 모두 방언을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L. 사이그 박사 일행은 100여 마리 정도 되는 돌고래 무리를 거의 15년 동안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개체식별을 위해 등지느러미의 모양을 일일이 사진 찍고, 수중 마이크를 이용해 소리를 녹음했다. 이 연구자들은 나이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 샘플도 조사했다.

어미와 새끼 간의 행동연구를 위해 어미를 잡아 별도의 큰 수족관에 가두자 새끼들은 어미를 찾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냈다. 이 소리는 마치 흐느끼는 소리로 들렸고, 새끼가 만 6세가 될 때까지 계속됐다.

돌고래 새끼들은 불과 몇 개 안 되는 음절이기는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소리를 낸다. 4~6개월 후 새끼들의 소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소리로 발전해 갔고, 어미는 제 새끼인지 아닌지를 목소리로 알게 된다.

새끼가 암컷일 경우에는 성장 후에도 어미 곁에 있으면서 어린 시절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수컷들은 어미로부터 독립하자마자 다른 돌고래의 무리에 속해 단어의 수를 확장시켜 나갔다. 이들의 언어는 모두 어미와 동료 간의 대화를 통해 학습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돌고래는 700종에 달하는 다양한 음절의 소리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각자 무리 지어 사는 돌고래들에게는 그들의 사냥 영역이 있다. 그렇다 보니, 지역마다 다른 언어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먼 지역 간에는 의사소통도 불가능할 정도다. 실제 자연에서 먼 지역 간에는 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 된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먼 지역 사이의 중간 지역에 사는 무리들의 돌고래들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양쪽의 언어를 조금씩 구사하는 바일링걸의 돌고래들이다. 그렇다고 이 바일링걸은 통역자는 아니다.

가장 사나운 돌고래, 범고래

범고래는 돌고래에 속하지만, 가장 사납다. 그래서 일명 살인고래(Killer Whale)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물고기는 물론 물개와 같은 큰 바다동물을 사냥한다.

고래연구가 폴 스퐁 박사는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해안에서 범고래 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다. 매년 300여 마리가 되는 범고래 떼가 이곳에서 연어를 잡기 위해 모여든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몰려와도 각자의 영역이 절대 바뀌는 법이 없을 정도로 이들은 장소에 충실한 동물이다.

사교적인 의사소통을 할 때 이들은 612kHz의 낮은 휘파람새 소리를 낸다. 먹이를 추적할 때는 35kHz에 달하는 높은 초음파를 쏜다. 이들 무리는 모계사회를 이룬다. 가족 구성원들은 어미가 낳은 자식과 손자들로 이루어졌다. 가족무리에서 태어난 수컷들은 엄마와 평생 함께 살기도 하지만, 암컷들은 성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새로운 가족무리를 형성한다.

스퐁 박사는 시각적ㆍ청각적 방법을 일치시켜 가며 ‘어떤 개체의 소리가 어떤 가족무리에서 왔는지’에 대해 소리의 출처를 밝혀냈다. 예컨대 16번 개체의 사냥음은 그 가족무리에게만 반응을 보이고, 그 가족의 반응음도 16번의 개체가 낸 소리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시 말하면 소리가 닮을수록 이들은 더 近親(근친)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스퐁 박사는 범고래가 무리 간에 서로 다른 방언을 말하며, 결국 혈통이 멀면 멀수록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 구한 돌고래

수컷 병코돌고래는 암컷의 행동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팀을 이룬다.

돌고래는 침팬지나 오랑우탄에 비교될 정도로 지능이 뛰어나다. 특히 협동심은 놀라울 정도다. 나이 든 암컷 돌고래는 새끼를 밴 암컷과 함께 있으면서 해산을 돕는다. 이후 새끼가 어미 몸에서 빠져 나오면 어미는 새끼가 첫 호흡을 할 수 있도록 주둥이로 새끼를 물 위로 밀어 올리는데, 이때 나이 든 암컷들은 어미를 옆에서 도와준다.

돌고래는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동료를 구출하기도 한다.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사고를 당하면 다른 돌고래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어 상처 입은 돌고래가 계속 숨을 쉴 수 있도록 물 위로 들어올리곤 한다.

돌고래들의 동료 간 협동행동은 돌고래만의 특징은 아니다. 다른 동물군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동료를 구해주는 행동은 마치 인간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행동으로 아직 다른 동물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種(종)이 아닌 다른 종을 구하는 행동은 인간사회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돌고래가 사람을 구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돌고래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진다.

최근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4m가 넘는 상어의 공격을 받은 20대 남성이 돌고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에 살고 있는 24세의 토드 엔드리스는 최근 <투데이 쇼>에 출연해 ‘생명의 은인’인 병코 돌고래(병처럼 긴 주둥이를 가진 돌고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엔드리스는 지난 7월 몬터레이 해안에서 서핑을 즐기던 중 불쑥 나타난 백상아리의 공격을 받았다. 12~15피트(약 3.6~ 4.6m) 크기의 백상아리 한 마리가 서핑을 즐기고 있던 자신을 공격했고, 엔드리스는 등 부위와 다리 등에 큰 부상을 입었다.

이때 병코 돌고래 한 마리가 나타나 상어의 공격을 훼방 놓기 시작했다. 병코 돌고래는 엔드리스의 주위를 빙빙 돌며 상어의 공격을 방해했고, 돌고래의 도움 덕분에 해안까지 가까스로 헤엄칠 수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상어의 공격으로부터 사람을 구해주는 돌고래에 대한 보고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뉴질랜드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 하지만 돌고래가 어떤 이유로 사람을 구해주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싸여있다.

암컷을 유괴하는 돌고래

10일 밴쿠버 수족관에서 갓 태어난 흰돌고래 새끼 한 마리가 태어난 지 불과 수분 만에 수조 위로 올라와 헤엄쳐 다니고 있다

그러나 돌고래의 놀라운 협동심이나 이타심은 이처럼 보기 좋은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돌고래 행동학자 리처드 코너 박사는 병코 돌고래를 상대로 10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최근 국제학계에 발표했다.

성숙한 수컷 병코 돌고래는 두세 마리가 함께 다니며 아주 가까운 연합관계를 유지하는데, 리처드 코너 박사는 이들이 왜 그렇게 서로 뭉쳐 다니는지 그 이유를 밝혀냈다. 암컷 돌고래가 발정기에 들어서면 수컷 무리는 암컷을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며칠 동안 유괴한다. 수컷 한 마리는 암컷 가까이에서, 다른 수컷은 좀 떨어져서 이들과 함께 헤엄을 친다. 암컷은 때때로 탈출을 시도하며 물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져 버리는데, 수컷들은 도망가는 암컷을 쫓아가 꼬리로 때리거나 물어뜯고, 몸을 부딪치는 등 폭력을 휘두른다.

결국 혼자서는 암컷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수컷 돌고래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끔 점핑과 다이빙이 번갈아 이뤄지는, 돌고래 떼가 펼치는 壯觀(장관)은 암컷을 괴롭히는 수컷 돌고래들의 恥部(치부)가 겉으로 드러나는 광경일 수도 있다.

꽃다발과 초콜릿은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하는 선물이다. 수컷 돌고래도 잡초와 나뭇가지, 진흙 등으로 암컷에게 구애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남극연구소 토니 마틴 박사와 브라질 국립아마존조사연구소의 베라 다 실바 박사는 영국의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수컷 돌고래가 단순한 유희가 아닌 사랑의 표시로 잡초, 나뭇가지, 진흙 등을 입으로 날라 암컷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성적인 표현으로 물건을 운반하는 행동은 사람과 침팬지를 제외하고 동물 세계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이례적인 행동이다. 연구진은 브라질 열대 우림 보호구역에 서식하는 강돌고래 6026개 무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서로 떨어져 사는 221개 무리에서 최소 한 마리 이상의 돌고래가 잡초, 나뭇가지, 진흙더미 등을 운반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 무리들에는 보통 어른 암컷 돌고래가 끼어 있었고, 물건 운반자는 거의 예외 없이 수컷 돌고래였다. 물건 운반 무리의 수컷들 사이에서는 다른 무리 수컷에 비해 공격적 행동이 40배 이상 많았다.

물건 운반 행동이 단순한 유희라면 암컷 돌고래나 어린 돌고래도 같은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또 어른과 새끼 돌고래의 조직 DNA를 분석한 결과, 수컷 돌고래들은 매우 자주 물건들을 운반한 후 예상대로 새끼 돌고래의 아버지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발견은 돌고래에게도 선천적인 게 아니라 수세대 동안 훈련ㆍ전달되어 온 복잡한 기술 같은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돌고래와 함께 이 지구상에서 살고 있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의 삶이 육상이 아닌 바닷속이기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