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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추적]「나훈아 괴담」의 시작과 끝

나훈아-황기순 갈등 다룬 스포츠지 기자의 블로그 글이 출발점
『나훈아와 황기순이 MBC에서 싸우는 것 봤다』(동료 연예인들)

서철인    iron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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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와 황기순
  月刊朝鮮 편집회의에서 「나훈아 怪談(괴담)」이 주제로 등장했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
 
  『나훈아씨 성기가 일본 야쿠자에 의해 잘렸다는데, 야쿠자가 들어와 활개칠 만큼 우리나라 치안이 그렇게 허술한 거야』
 
  『인터넷을 보면 나훈아씨가 건드린 야쿠자의 애인으로 김선아와 김혜수, 두 배우가 거론되고 있어요』
 
  『술자리에서 온통 나훈아씨 얘기야』
 
  『인터넷에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까닭이 뭐야』
 
  「나훈아 괴담」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의견이 모였다.
 
  「나훈아 괴담」 관련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훈아 괴담」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전파돼 왔는지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지난 1월1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들어가 검색창에 「나훈아」를 치자 엉뚱하게도 개그맨 황기순씨 관련 항목이 떠올랐다. 황씨가 나훈아씨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블로그에는 한 스포츠 전문지 K기자가 쓴 기사가 全載(전재)되어 있었다.
 
  이 글은 2006년 10월24일자로 한 스포츠 전문지에 실린 기사였다.
 
  「개그맨 A의 눈물고백, 『가수 C는 가정파괴범』」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K기자 블로그 기사의 요점은 「개그맨 A가 아내 B와 이혼하게 된 것은,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A의 도박 때문이 아니라 아내 B와 유명가수 C의 불륜 때문이었다」는 내용이었다. A가 이 기자에게 고백했다는 이야기는 A4 용지 두 쪽 분량이나 됐다.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 1월25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있었던「나훈아 기자회견」에 4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한 개그맨의 고백
 
   
  A가 도박사건에 연루된 뒤 빚쟁이들이 무서워 해외를 떠돌고 있을 때, C는 아내 B를 시켜 서울에 있는 A의 어머니와 누나 등 가족들에게 끈질기게 이혼을 강요했고, 무기력한 상태였던 A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혼에 합의하게 됐다.
 
  (해외 도피생활을 끝내고 검찰조사를 받으러 1999년 12월23일 서울로 돌아오게 됐을 때) A는 아내 B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국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B는 24일부터 3일간 C의 연말 가요디너쇼가 예정돼 있으니 들어오더라도 28일을 넘겨 귀국하라고 말해 더 이상의 미련을 접었다.
 
  (A가 아픈 과거를 기자에게 털어놓은 이유) 7~8년 만에 방송국에서 우연히 만난 C의 뻔뻔하고도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고 A는 흠집이 나더라도 도덕과 정의를 위해 진실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2005년… 편집자 注) 9월2일 A와 C가 서울 여의도 MBC 로비에서 딱 마주쳤다. A가 어색하게 눈인사를 했으나 C가 무시하고 돌아서자, A는 『왜 피하느냐』고 따지려고 밖에 대기하고 있던 벤츠 승용차까지 따라가 문을 열었다. C로부터 대뜸 심한 욕설과 발길질이 날아오자 분노한 A는 『당신 같은 파렴치한 인간은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며 언성을 높였고, C의 매니저와 방송사 경비가 뜯어말려 간신히 차를 출발시키고 진정이 됐다.
 
  A는 엄연히 결혼까지 하고 사는 후배 연예인의 아내를 강취해 간 C가 「가정 파괴범」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당시 A가 문제를 삼았다면 C는 간통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C가 뒤늦게라도 반성하고 미안해하기는커녕 안하무인의 태도에 A는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네티즌, 익명의 주인공들 추적
 
  A, B, C 등 익명으로 이야기를 풀어 냈지만 네티즌들은 방정식을 풀 듯 A는 「황기순」, B는 「황기순 前妻(전처)」, C는 「나훈아」 식으로 실명을 거론하는 댓글을 달았다.
 
  여러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 기사가 포털사이트에서 화제가 되었을 당시 네티즌들은 개그맨 A와 달리 유명가수 C를 추정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 듯했다. 댓글과 게시문에 「황기순씨의 아내를 빼앗아간 유명가수 C가 누구냐」는 질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황기순씨는 1997년 한국무용가 B씨와 결혼했다. 그는 그 해 해외원정 도박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고, 1999년 필리핀 도피 생활 중 B씨와 이혼했다. 이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A를 황기순씨로 추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K기자의 블로그에는 이외에 연예와 문화 관련 콘텐츠가 상당히 많았다. 황기순씨 관련 기사가 여러 건 있었다. 1997년 황기순씨가 B씨와 결혼한 후 부부가 K기자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있었고, 필리핀 도박사건 후 방송 복귀 당시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다.
 
  K기자는 유명가수 C의 부도덕성을 작정하고 고발하려는 듯 관련 글을 많이 올려놓았다.
 
  「『내 아이 아니라니』 개그맨 H의 회한」이라는 글은 이런 내용이다.
 
  <개그맨 H의 前妻 S씨는 H와 결혼 전부터 가수 C와 불륜관계였고, H는 이 사실을 모른 채 결혼했다가 낭패를 봤다. H의 前妻는 대학에서 고전무용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가수 C의 백댄서로 활동했다. 백댄서로 활동하면서 국내공연은 물론 해외공연을 함께 다니며 깊은 관계로 발전됐다.
 
  H는 예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행복한 신혼을 보내는 듯했다. 직업상 지방무대나 행사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고, 새벽녘에나 귀가하기 일쑤였던 H는 어느 순간 아내의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H는 전화 도청장치를 했고, 도청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임신한 아내가 『선생님, 저 임신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남편 아이가 아니고 선생님 아이 같은데 어떡하죠?』라고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H는 못 먹는 술을 입에 대거나 외박이 잦아지면서 도박에 빠져들었다>
 
 
  황기순 이름 밝힌 여성誌
 
  「가수 C, 개그맨 H 前妻 사건 이후 행적」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가수 C는 개그맨 H의 前妻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낳았다」, 「탤런트 K양, 가수 L씨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네티즌들은 이니셜의 주인공들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한 여성지는 2007년 5월호에 「황기순, 7년 만의 전격 고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개그맨 A(혹은 H)가 황기순으로 바뀌었고, 이야기가 더욱 구체적이라는 것 외에 뼈대는 K기자의 기사와 거의 일치했다.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황기순)前妻인 A씨와 톱스타 B씨의 관계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장식 식당이 유행하던 1980년대, 당시 같은 무대에서 공연했던 전통무용단의 C단장과 B씨는 자연스레 친분을 맺게 되었다. A씨는 바로 C단장의 딸이었다.
 
  B씨는 A씨가 어린 시절부터 유독 그녀를 예뻐했다고 한다. 급기야 A가 성인이 된 후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황기순씨가 A와 결혼한 후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과거지사」로 돌리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 하지만 문제는 A가 황기순씨와 결혼한 후에도 B와 계속해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B에게는 미국에 부인이 엄연히 있는 상황이었다.
 
  아내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모른 채 결혼식을 올렸던 황기순씨는 결혼 직후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A는 철저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황기순씨는 그런 아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황씨는 이후 계속되는 의심 속에 결국 아내에게 자백 아닌 자백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칼 한 자루와 휘발유 한 통을 차에 실은 채 아내인 A와 함께 차에 오른 황씨. 아무 말 없이 B의 사무실 앞으로 찾아간 그는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거나 아니면 여기서 끝을 내자』고 말했고, 그 말에 기겁을 한 A가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모두 고백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쓴 여성지 기자와 직접 통화했다.
 
  ―황기순씨가 직접 털어놓은 겁니까.
 
  『아니오, 황씨가 인터뷰를 거부해 잘 아는 측근을 만나서 들었습니다』
 
  ―측근이 누구입니까.
 
  『아직은 밝힐 수 없습니다』
 
  ―나훈아씨 측에 확인했습니까.
 
  『확인하려 했지만 본인은 만날 수 없었고, 측근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나훈아씨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하고 있는데, 소송은 오히려 황기순씨 측에서 걸었습니다』
 
  ―소송이 진행됐습니까.
 
  『아니오, 황기순씨 측에서 곧 취하했습니다』
 
 
 
『겪지 말아야 할 일 겪었다』 (황기순)

 
서울 이태원동에 위치한「아라기획」사무실 건물.
  잡지가 발간되자마자 황기순씨는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2007년 4월28일 KBS TV 「연예가 중계」 팀은 황씨를 인터뷰했다. 진행은 조우종 아나운서가 맡았다. 자료 화면을 통해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여성지) 기사를 보셨나요.
 
  『봤습니다. 읽어는 봤지만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내가 인터뷰를 했느냐 안 했느냐 확인하기 위해 봤는데, 저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前妻를 빼앗겼다는 얘기가 있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겪지 말았어야 할 그런 일도 겪었고, 힘든 일도 있었는데, 어떤 얘기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니까』
 
  ―(여성지의 기사 속에 나오는) 톱스타 A는 누구입니까.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 이렇게 기사에 나오고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니까, 어쨌든 저 하나로 모든 것 다 감수하고,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쯤 방송국에서 톱스타 A와 마주친 적이 있다고 하던데.
 
  『저는 그것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할 수 없습니다』
 
  ―前妻와의 일로 도박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도박은 어느 누구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게 아닙니다. 가족이든 동료든 어느 누구의 영향 없이 저 스스로 빠진 것입니다. 도박에 빠진 것은 평생 지고 갈 제 마음의 짐입니다』
 
  ―이번 일로 현재의 아내가 많이 힘들어 할 것 같습니다.
 
  『(아내가) 눈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정말 처한테 내 진심을 마음을 꺼내서 보여 주고 싶어요.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너무 안타깝습니다』>
 
  황기순씨는 2005년 10월22일 중학교 미술교사인 윤모씨와 재혼했다.
 
 
  황기순 고백은 어디까지 사실인가?
 
  인터넷 매체와 스포츠신문 중심으로 다뤄지던 「나훈아씨 잠적」 기사는 지난 1월에 접어들면서 점차 방송과 주요 일간지들로 옮겨 가는 양상이 됐다.
 
  YTN스타의 「이니셜 추적 2.0」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사라진 신화 나훈아씨를 찾아라」라는 제목으로 나훈아씨의 행방을 찾아 서울의 집과 고향, 입원해 있다는 병원 등을 꼼꼼히 추적했다. 그 결과 강화도에 살고 있는 나훈아씨의 여동생을 찾았지만 『작년부터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과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만 전했다.
 
  朝鮮日報는 지난 1월21일자에 「괴소문의 진원지인 부산과 경남 양산 일대는 나훈아 찾기 대소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나훈아씨를 찾기 위해 공권력까지 투입됐다」고 보도했고, 매일경제는 「경찰이 야쿠자 상해설과 관련해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월18일부터 나훈아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사에 나선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나훈아씨가 치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돈 부산의 병원과 요양 중이라는 사찰 등을 조사했다. 전담 팀을 꾸려 야쿠자 보복설에 대해서 조사에 들어갔지만 「소문이 대부분 지어내거나 과장된 것」으로 잠정 결론짓고 지난 1월21일 수사를 끝마쳤다.
 
  뜻밖에도 「나훈아 괴담」의 첫 출발점인 나훈아씨와 황기순 前妻 B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캐는 언론은 없었다. 다시 최초로 기사를 쓴 스포츠 전문지 K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K기자 기사가 「나훈아 괴담」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제가 대답할 부분이 아닌 거 같은데요』
 
  ―그동안 나훈아씨 측의 항의나 대응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못 할 겁니다』
 
  ―나훈아씨 측에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겁니까.
 
  『언론이 언론을 상대로 취재하려 들면 안 되죠. 사실 여부가 궁금하거든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기사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까.
 
  『지금까지 (블로그에서) 기사를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모르겠습니까』
 
  질문이 길어지자 그는 짜증을 냈다. 그동안 신문과 방송사에서 걸려 온 확인 전화에 어지간히 시달린 눈치였다.
 
 
 
마침내 입 연 나훈아

 
자신의 유화 작품이 걸려 있는 아라기획 사무실에서.
  나훈아씨 관련 루머는 인터넷상에서 끊임없이 가지를 치고, 이종교배를 통해 다양하게 변조됐다. 언론사 기자들이 집요하게 나훈아씨의 행방을 수소문하자 경찰은 그의 출입국 기록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나훈아씨는 2007년 12월 일본으로 출국해,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에 머물다 지난 1월5일 귀국했다. 그는 국내에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악성 루머가 활개를 치고 있는데 나훈아씨가 나서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무렵 「나훈아씨가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1월25일 오전 11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그랜드볼룸. 신문·방송·인터넷 매체의 기자 400여 명과 「나사모」(나훈아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20여 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그랜드힐튼호텔은 나훈아씨가 2006년 12월 말 디너 콘서트를 가졌던 곳이다. 그는 이 공연을 끝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MBC·KBS·SBS 등 국내 지상파 방송은 물론 케이블 TV와 인터넷 방송 촬영 팀들의 취재 경쟁이 치열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케이블 위성채널 YTN과 YTN스타에 의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방송 시청률 전문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는 4%대의 시청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평균 시청률의 4배를 웃도는 수치였다.
 
  나훈아씨는 약속시간인 오전 11시 정각에 등장했다. 웅성거리던 장내가 삽시간에 조용해지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파도를 탔다. 그는 깔끔한 검은색 정장에 희고 성긴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이었다. 걸음걸이는 힘차고 당당했다.
 
 
  격앙된 나훈아, 『남의 마누라 탐했으면 나는 개새끼』
 
2002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앞두고.
  그는 기자들에게 『질문하지 마시고 오늘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테니 끝까지 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이라기보다 그동안 「나훈아 괴담」에 대해 보도해 온 언론사와 기자들을 훈계하고 질타하는 시간이었다.
 
  나훈아씨는 한 스포츠 신문이 2007년 2월20일에 보도한 기사를 문제삼았다. 이 신문은 「나훈아씨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을 취소하고 잠적했다. 소속사도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기자가 공연 기획사만 찾아갔어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발품을 팔지 않고 「잠적했다」, 「문을 닫았다」는 표현을 썼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공연 계획이 잡혀 있는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2006년 마지막 공연 후 뭔가 한계를 느껴 2007년 한 해는 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공연 계획을 일절 잡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연 기획사 측이 혹여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하여 자신도 모르게 계획을 잡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 취소 건은 당시 계약을 한 공연 기획사 「플랜위즈」에 의해 확인됐다. 「플랜위즈」 측은 『나훈아 측과 상의 없이 2006년 10월경에 대관 계약을 했으나 그해 말 「내년에는 일절 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2007년 1월에 취소했다』고 밝혔다.
 
  나훈아씨는 『잠적 보도가 나올 무렵 스태프들과 함께 휴가 중이었다』며 취재진을 향해 『여기 그때 휴가 함께 갔던 사람 있지요?』 하고 물었다. 취재진 속에 있던 누군가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나훈아씨는 『그러는 동안 신문에 「남의 마누라 빼앗은 가정 파괴범」이라고 났다』며 격분하더니 『실제는 물론이고 꿈에라도 남의 마누라를 탐했다면, 가정을 파괴하려는 마음이 눈곱만큼만 있었다면 (저는)여러분이 집에서 키우는 개새끼입니다. 혹시 집에 개 없는 사람은 옆집 개, 건너편 집 개라도 좋습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만약에 그랬다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벌써 법적으로 문제가 일어났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를 보도한 언론에 대응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일로 또다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자존심 상할뿐더러 진실은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언제가는 밝혀진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격정적 토로는 계속되었고, 야쿠자에 의한 신체 훼손설 부분에서 바지 지퍼를 내려 보임으로써 이날 기자회견은 절정을 이루었다.
 
 
  나훈아와 황씨 前妻는 어떤 관계인가?
 
  나훈아씨가 퇴장한 후 장내에 있던 기자들은 『기자회견장에 와서 야단맞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방송사에서 나온 리포터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사모」 회원들을 붙들고 인터뷰하느라 바빴다.
 
  다음날 국내 주요 언론들은 나훈아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갖은 의혹 속에 그의 행방을 추적하던 때와 달리 소문을 사실인 양 보도한 언론의 「선정주의」를 비판했다. 나훈아씨가 언론을 향해 쏟아낸 훈계를 받아들이는 양상이었다.
 
  기자회견 후 술자리에서는 나씨가 아니라 그를 취재한 기자들이 안주거리로 오르내렸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마구 써대는 기자들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기자회견 후 많은 언론이 「나훈아 괴담」의 발원지를 세종문화회관 공연 취소 기사로 지목했다. 「황기순 고백」 기사는 쏙 빠져 있었다. 나훈아씨 기자회견 후에도 이 기사는 K기자의 블로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훈아씨가 황기순씨의 前妻와 부적절한 관계였는지, 당사자들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확인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나훈아·황기순·황기순 前妻, 이 세 사람을 접촉해 보기로 했다.
 
  나훈아씨 기자회견 직후 황기순씨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휴대전화와 집 전화 모두 받지 않았다. 다음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꽤 이름 있는 전통무용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씨 前妻의 경우, 연락처를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겨우 알아낸 것이 예전부터 일을 봐주고 있다는 측근 연락처였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불쾌감을 드러내며 끊어 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전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전통무용단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무용단의 매니저』라고 밝힌 박모씨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황기순씨와 관련해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고 했더니 그는 벌컥 화를 냈다. 『미친 놈 하나 때문에 죽겠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황기순 부부의 이혼은 황씨의 도박 때문』
 
2005년 재혼 후 행복하게 살고 있는 개그맨 황기순씨.
  ―두 사람의 정확한 이혼 사유가 뭡니까.
 
  『도박에 빠져 이혼해 놓고 방송에 뜨고 싶어서 딴소리야. 아시겠지만 당시 황기순씨가 도박에 미쳐서 사채를 많이 끌어다 썼어요. 그 때문에 황기순씨 부인이 돈을 안 갚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전화를 수없이 받았죠』
 
  ―사채업자들의 협박 때문에 이혼했다는 건가요.
 
  『협박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황기순씨가 필리핀에 있을 때 합의이혼했습니다. 코미디언 김정렬씨에게 물어보면 다 알 거예요』
 
  ―황기순씨의 前妻와 나훈아씨와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어머니가 나훈아씨 공연에 출연해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를 따라다녔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직접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요』
 
  ―그분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그거 알아서 뭐 하시게요. 그만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게 전부입니다. 마음잡고 잘 살고 있는 사람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십시오』
 
  ―재혼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누가 그러던가요. 재혼하지 않았습니다. 전화 끊습니다』
 
 
  2005년 9월 mbc에서 무슨 일이
 
동료 개그맨들과 영화「친구」를 패러디한 코미디극을 할 때 찍은 사진. 맨 왼쪽이 황기순씨.
  개그맨 김정렬씨에게 전화했다. 김씨는 황씨의 개그맨 선배로 그가 도박에 빠져 필리핀에서 도피 생활을 할 때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황씨가 2005년 현재의 아내와 재혼할 당시 눈물을 쏟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 사람이다.
 
  ―황기순씨가 前妻와 이혼한 진짜 이유는 뭡니까.
 
  『아내가 사채업자들의 협박전화에 시달리니까 나중에 합치더라도 우선은 「서류상 이혼을 하자」 해서 한 것으로 압니다』
 
  ―위장이혼을 했다는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그것이 실제 이혼으로 굳어진 까닭은 뭡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 이상은 저도 아는 게 없으니까 본인한테 들으십시오』
 
  K기자가 쓴 기사에 따르면, 황기순씨가 영원히 가슴에 묻고 가려 했던 이혼의 진짜 이유를 공개한 것은 2005년 9월2일 MBC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이다. 황기순씨가 방송국 정문에서 나훈아씨와 우연히 만나 빚은 소동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기사에서 황기순씨는 「아내를 빼앗아간 사람이지만 연예계 대선배여서 눈인사를 했는데 무시하고 지나갔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부족한 사람이 무시하기에 따지려고 승용차가 있는 곳까지 쫓아갔더니 되레 발길질에 욕설을 퍼부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황씨와 함께 현장에 있던 사람 중 하나로 알려진 김정렬씨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습니까.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날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고, 다만 前妻가 아기를 낳은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황기순, 『아내 위해 잊고 싶다』
 
  지난 2월4일 황기순씨와 통화가 이뤄졌다.
 
  ―통화하기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한국에 없었습니다. 한인의사협회 초청 공연을 겸해 사업차 아내와 함께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황씨는 미국 섬유회사 「크렘볼」 한국 지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나훈아 기자회견」 소식은 들었습니까.
 
  『아내의 직업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지나간 제 개인사로 아내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밝힐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뭔가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은 제 입장을 표명할 때가 아닙니다.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아내를 보호해 주고 싶어요』
 
  그는 지난 2월3일 귀국 당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훈아씨 기자회견에 대해 『나와 관련된 소문의 진실을 직접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마음을 바꿔 없던 일이 되었다.
 
  ―왜 기자회견을 취소했습니까.
 
  『아내가 싫어합니다. 지금은 아내만 생각할 겁니다. 당분간은 사업에 몰두하고, 2세를 갖도록 노력할 예정이니 좀 도와주십시오』
 
  ―2005년 9월2일 mbc 방송국에서 나훈아씨와 충돌한 일이 있었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그냥 넘어가 주세요』
 
  세 사람의 관계는 당사자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다 주변 사람들조차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며 언급하기를 꺼려해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날 mbc 방송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우선 그날 현장에 있었다는 가수 노사연씨에게 전화했다. 노씨는 현재 mbc 라디오 「지상렬 노사연의 2시 만세」를 진행하고 있다. 전화는 노씨의 매니저가 받았다.
 
  ―노사연씨 좀 부탁합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황기순씨 관련 인터뷰라면 사양합니다』
 
  ―간단하게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노사연씨는 그런 일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었는지만 확인해 주십시오.
 
  『네,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방송국 로비에 있었어요. 저희 말고도 사람들 많았어요』
 
  ―나훈아씨와 황기순씨가 다투는 걸 봤습니까.
 
  『봤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죠』
 
  ―무슨 얘기가 오갔습니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그만 끊겠습니다』
 
 
  개그맨 최양락씨의 證言
 
  수소문 끝에 개그맨 최양락씨가 현장에서 본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최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그날 현장에 있었습니까.
 
  『아니오, 저는 현장에 없었습니다. 다만 그날 황기순씨가 제가 진행하는 방송에 출연한 후 돌아가는 중에 소동이 빚어졌던 것으로 압니다. 그때가 아마 오후 5시쯤 되었을 거예요』
 
  ―황기순씨가 얘기하던가요.
 
  『아닙니다. 방송 중에 누군가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지금 정문에서 황기순씨가 나훈아씨와 싸우고 있는데, 왜 그런지 아느냐」고 묻더군요. 저야 알 길이 없지요』
 
  ―나중에 황기순씨에게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물어봤죠. 그냥 웃으면서 「나중에 얘기할게요」라고만 하더군요』
 
  ―황기순씨와는 자주 만나십니까.
 
  『방송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났죠. 기순이가 제 방송 중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는 고정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5년째 함께 방송해 왔는데, 얼마 전 저희 작가한테 당분간은 쉬겠다고 통보했다 하더라고요』
 
  ―쉬는 이유가 뭐라고 하던가요.
 
  『모르겠어요. 쉬겠다는 얘기도 우리 작가를 통해 들었으니까』
 
  ―황기순씨와 친하지 않습니까.
 
  『친하긴 하지만, 기순이가 통 말을 하지 않아 사생활 부분은 잘 몰라요』
 
  당시 mbc에 근무했던 사람들을 취재해 본 결과, 두 사람이 다투는 장면을 본 사람은 많았다. 방송국의 한 간부는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날 일은 한동안 방송국 내에서 화제였다』고 말했다.
 
  나훈아씨는 기자회견에서 황기순씨 前妻와의 불륜설을 부정했다. 당사자 중 한 사람인 황기순씨가 이를 반박하지 않는 한 지금으로서는 나훈아씨의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황기순씨의 고백을 토대로 썼다는 스포츠 전문지의 기사를 간과하기는 어렵다. 황씨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게 된 동기가 mbc에서 있었던 소동 때문이라고 한 까닭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증언해 준 만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나훈아씨 소속사인 아라기획 윤중민 대표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설 연휴 직후인 지난 2월11일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아라기획 사무실을 찾아가 보았다. 기자회견 당시 나씨가 『우리 회사는 제가 쉬면 함께 쉰다』고 했기 때문에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다. 그런데 건물 2층의 사무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비좁은 계단 끝에 있는 유리문은 잠겨 있었다. 벨을 누르자 한참 만에 20代로 보이는 여직원이 나왔다. 신분을 밝히자 그녀는 잔뜩 경계하는 태세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고 했다. 『문 좀 열어 보라』고 했더니 겨우 얼굴만 내민 채 『이곳은 이제 아라기획 사무실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하는 순간 그녀는 문을 닫아 버렸다. 유리문 안으로 겨우 보이는 복도에는 나씨가 그린 유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밖으로 나와 1시간 동안 주변을 서성였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근처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가 물어보니 『최근 드나드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전에는 기자들이 많이 왔는데, 요즘에는 기자들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훈아씨 친형이 운영하는 근처 카페에 들렀다. 철문은 잠겨 있고,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부동산 사무실 직원은 『다 비우고 공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월29일 mbc TV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나훈아 괴담을 통해 본 유언비어의 사회학」이라는 주제로 「나훈아 괴담」의 유통 과정을 다뤘다. 인터넷에 떠돌고, 증권가 정보지에서 흘러나온 루머들을 검증 없이 기사화하는 언론사 기자들을 문제로 삼았다.
 
 
  『세 사람의 프라이버시』라는 측근들
 
  방송은 「나훈아 괴담」 발원지로 꼽혀온 스포츠 전문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실명으로 공개했지만, 소문의 뿌리인 「황기순의 고백」 관련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나훈아 괴담」의 뿌리는 한 스포츠 전문지 기자가 쓴 「블로그 기사」였다. 이 기사 안에 「나훈아 괴담」의 뼈대가 담겨 있다. 그 후에 생성된 이야기들은 「양념」에 불과하다.
 
  나훈아씨는 기자회견에서 『꿈에서라도 남의 마누라를 탐했다면 (내가) 개새끼다』라고 했다. 그러나 스포츠 전문지 K기자의 블로그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나훈아씨가 황기순씨 前妻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는지는 나훈아·황기순·황기순씨의 前妻, 이 세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세 사람의 측근 인사들과 두루 접촉했지만 한결같이 『세 사람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다』, 『지나간 일이니 거론하지 말아 달라』는 입장을 보였다.
 
  나훈아씨 측 입장을 듣기 위해 마감 날인 2월15일까지 아라기획 사무실과 나씨의 매니저에게 전화 등의 방법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그 결과 2월15일 오후 5시 윤중민 아라기획 대표와 연락이 닿았다.
 
  ─나훈아씨와 관련해 몇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기자회견 때 밝힌 게 전부입니다. 더 이상 할 말 없습니다』
 
  ─2005년 MBC에서 있었던 소동은 사실입니까.
 
  『모릅니다. 운전 중이니 끊겠습니다』
 
  어렵게 이뤄진 통화였지만 별 다른 답변을 얻지 못했다. 「나훈아 괴담」은 당사자인 세 사람이 직접 나서서 말하지 않는 한 계속 「루머」로 남을 것이다. ●
 
 

  [인터뷰] 黃相旻 연세大 심리학과 교수
 
  『황기순씨 이야기도 신뢰성 크지 않다』
 
 
  나훈아, 루머 제조의 소재 무궁무진
 
   ―나훈아씨와 관련된 악성 루머가 끝없이 유포되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요즘 한국인이 갖고 있는 「컬처코드」가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 컬처코드는 특정한 문화 안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축적하는, 이미지를 말한다. 나훈아씨의 컬처코드는 「트로트의 황제」, 「배우 김지미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가수」, 「나이에 비해 젊고 섹시한 연예인」, 「과거 조폭이 휘두른 칼에 찔린 스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한 사람이다』
 
  ―섹스 스캔들이 많은 이유는 뭘까.
 
  『과거 활동을 중단했던 나훈아씨가 복귀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가 50代 아저씨가 아닌 20代 혈기왕성한 감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40~ 50代들에게 나훈아씨는 20代 스타 「비」와 같이 「섹시한 훈남」으로 보였을 것이다. 섹스 스캔들이 안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섹스 스캔들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걸 확인하지 않고 기사화하는 언론에 문제가 있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다룬 것 아닐까.
 
  『과연 독자들이 소문의 진실에 대해 궁금해했을까? 어쩌면 독자들은 「나훈아 괴담」이 기자회견으로 끝난 것에 대해 섭섭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술자리 안주감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소문이 全국민적 관심사인 양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해 환상과 같은 틀을 만드는 버릇이 있다. 「비는 모든 여자들이 좋아할 것이다」, 「나훈아는 야쿠자 두목의 여자를 어떻게 건드렸을까」 등 환상의 대상은 늘 연예인이다.
 
  문제는 옛날과 달리 상상만 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데 있다.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전파되는 현상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하지만 全국민적 관심사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정체성이 약하고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 혹은 이상적으로 보이는 인물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습성이 있다』
 
  ―황기순씨가 사적인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소문의 시발점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검찰이 나서도 스토리 진위 파악 못 해
 
  『황기순씨의 이야기조차 신뢰성을 가질 수 없다. 필리핀에서 도박을 하다 들어왔다면, 낮아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스토리를 만들 때 오만 가지 이야기를 엮는다. 이 경우 검찰이라 해도 스토리의 진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나훈아씨는 황기순씨 前妻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일본 만화 중 기업의 유부남 상사와 미혼 여직원의 불륜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다. 여직원이 관계를 계속 유지해서 「세컨드」로 사는 경우는 상대가 사장이나 고위급 임원이었을 때다.
 
  과장이나 부장 상사는 진급 시 여자가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해 주변에 있는 가장 별 볼일 없는 사원과 결혼시킨다. 일본 만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를 이런 유형에 쉽게 대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기순씨가 잘나가는 연예인이었다면 나오기 힘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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