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버 세계의 大叛亂 軍畢者 가산점 違憲 판결 이후 들끓는 네티즌들의 여론

『설익은 女風 공작이 총선때 엄청난 逆風 부를 것』

배정환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사이버 공간상의 軍畢者 叛亂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共同體(공동체)에 보다 더 공헌한 사람이 보다 더 고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것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로마시대 정치가)
 
  사이버 공간이 들끓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 憲法裁判所(헌법재판소, 이하 憲裁)가 除隊軍人(제대군인)에게 7~9급 공무원시험 등에 있어서 3~5%의 加算點(가산점)을 부여하도록 한 「제대군인 支援(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違憲決定(위헌결정)을 내리자, 軍畢者(군필자)들이 「3년 동안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것을 이 나라, 이 사회가 너무도 몰라준다」면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1998년 9월 개설 이래 1년 3개월 동안 6백44개의 글이 올라왔던 憲裁 사이트의 「의견과 질문」 코너에는 憲裁 결정이 나온 1999년 12월23일 하루 동안 이번 決定과 관련하여 4백74개의 글이 더 올라왔고, 수차례 서버가 마비되었음에도 1월7일 오후 1시 현재 올라온 글은 모두 3천3백40건에 달하고 있다.
 
  憲裁 결정을 환영하는 女性特別委員會(여성특별위원회) 사이트에도 작년 12월23일 이후 1천여 개의 의견이 올라왔고, 청와대, 행정자치부, 국방부 사이트에도 이와 관련된 글들이 쇄도했다.
 
  在鄕軍人會(재향군인회), 女性民友會(여성민우회), 각 언론사, 그리고 이번 憲法訴願請求者(헌법소원청구자)들의 모교인 이화여대 사이트에도 軍畢者들의 항의의 글이 빗발쳤고, 견디다 못한 여성민우회와 이화여대는 1월7일 현재 게시판 등 일부 기능을 중단한 상태이다.
 
  그밖에도 아래에 소개할 「싸우(www.ssaw.co.kr)」를 비롯하여 「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members.tripod.co. kr/zingbanmo)」, 「군가산점 폐지 철폐를 위한 홈페이지(members.tripod. co.kr/getit2000)」 등 관련 사이트들이 속속 생겨 軍畢 네티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이들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들이 모두 憲裁 결정에 반대하는 것들은 아니다. 특히 작년 12월27일을 고비로 女性界 등에서 제기하는 반론이나 이에 동조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는 있지만, 역시 主流는 憲裁 결정에 반대하는 의견.
 
  당초 사나흘이면 잠잠해지리라던 일부의 예상과 달리 年末年始(연말 연시)와 밀레니엄 맞이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열흘 이상 軍畢者들이 사이버 공간상에서 거칠게 울분을 토해 내고 있는 것을 보면 가히 「사이버 叛亂(반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무엇이 이들을 화나게 했나?
 
 
  물론 이들 가운데는 당장 이번 결정으로 當落(당락)이 바뀌게 된 敎員(교원)시험응시자들이나, 2000년도 7~9급 공무원시험준비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加算點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평범한 軍畢者들.
 
  이들은 특히 憲裁가 결정문에서 「우리 사회의 弱子(약자)들인 여성과 장애인들」에 대한 保護(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軍畢者들을 우리 사회의 「사회적 强者(강자)」로 자리매김한 것과, 「헌법 제39조 1항의 국방의 의무는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이른바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 개인이 특별한 희생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데 크게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진보의 실험장-軍가산점 위헌」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軍畢者들은 이미 2년여의 犧牲(희생)에 의해서 국가에 기여를 했으며, 그로 인하여 이미 다른 경쟁자들과 평등하지 않게 되어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단지 몇%만이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가산점 제도, 그 제도의 상징성이 전혀 논리적 타당성 없이 어이없게 부정되었던 것에 대해 그들은 정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弱子로서의 묵은 피해의식으로 인한 강력한 감성적 폭발력과 함께」라는 말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여성이나 장애인들은 물론 일부 軍畢 男性들도 여성이나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현실을 들어 환영을 표시했다.
 
  그러나 「軍加算點 문제에서 만일 여성과 軍未畢者가 약자였다면, 軍畢者도 3년이란 시간과 그 황금의 시기를 잃은 인생의 한 부분에서 弱者」(이경무), 「생명수당 하루 2백10원, 한 달에 8천1백원을 받으며 軍생활한 우리들이 사회적 弱者」(공무원)라는 식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중앙일보 1999년 12월29일字에 古代(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를 들며 「우리 조금 우아해지자. 아무리 힘들어도 그건 가진 자의 특권이며 의무다. 병역은 어느 시대나 더 가진 者의 몫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싣자 최영준씨는 나우누리 등에 「한국은 사회적 强者가 군대에 간다?」라는 제목의 長文의 글을 통해 「아테네, 로마에선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兵役(병역)의 의무를 진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이 되기 위해선 병역의무란 관문을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兵役이 기득권층이 되는 관문이라고 여겨진 것에 반해 오히려 힘 없는 民草(민초)가 兵役의 의무를 부담했던 것이 한국 사회」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正義(정의)의 女神像(여신상) 사진과 함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저울의 한쪽은 가진 者의 돈과 권력이고, 다른 한쪽은 없는 者가 짊어질 무거운 짐이다. 한쪽에 돈과 권력이 쌓일수록 다른 한쪽에 없는 자가 짊어져야 할 짐이 더 지워져 균형은 잘 맞고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반면 「워니」라는 여성 네티즌은 「남성들이 돈 없고 빽 없어 군대 갔다 왔다는 소리들을 해대는데, 그렇다면 가산점으로 보상을 요구할 게 아니라 돈 있고 빽 있어서 불법으로 군대에 안 가는 현상을 지적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도.
 
 
  의무 이행에는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憲裁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해 「세금에 환불이 없듯이 병역에 대한 국가의 보상의무는 엄격히 말해서 없다고 본다. 봉사와 의무는 다르다. 軍畢者 우대도 직업군인이나 傷痍(상이)군경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이방인)라며 憲裁의 입장을 옹호하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에 앞에 소개한 「진보의 실험장 - 軍 가산점 위헌판결」을 올린 네티즌은 「軍畢者는 이미 2년여 동안 자신의 귀한 시간을 국가안보를 위해 봉사했고, 그에 따른 혜택, 즉 안보는 모든 국민이 受惠者(수혜자)였다. 군대를 自意(자의)로 갔는지 他意(타의)로 갔는지는 이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국가의 필요에 의해 自意에 관계없이 부과된 의무라면 그 희생은 더욱 컸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軍畢者는 量(양)에 있어서 다를지언정 그들이 質(질)에 있어서 국가에 기여한 희생이 국가유공자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아직까지는 뚜렷한 전쟁이나 도발이 없다고 해서 軍畢者들의 희생이 평가절하되어서는 결코 안된다」라며 憲裁의 주장을 논박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軍畢者들이 논리적인 반박보다는 「조국이 우리를 버렸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서 그들의 서운함을 표시했다.
 
 
  「祖國이 우리를 버렸다」
 
 
  軍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사상자들을 목격했다는 한 軍畢者는 「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세계화도 좋고 햇볕정책도 좋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대접이 없는 나라는 절대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고, 加算點 없이도 임용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있다는 한 師範大生(사범대생)은 「오늘 힘들어도 국가는 내 희생을 기억해 준다라는 위안이 있었기에 힘든 군대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번 결정으로 내 가슴에는 피멍이 들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밖에도 「憲裁의 다른 논리는 다 인정해도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 말만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심광웅), 「나도 法大生(법대생)이긴 하지만 가장 못마땅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만일 서양인들이 보면 이 나라는 갈 데까지 간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나라를 위해 어떤 미친 놈이 목숨을 바치겠는가?」(최영준), 「加算點? 그런 거 필요 없다. 우리 예비역들 그런 것으로 이렇게 분노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희생을 근본으로 삶을 구성하는 이 땅 대한민국의 여타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냉소에 절망할 뿐이다」(하승원)라는 내용의 글들이 이어졌다.
 
  세 아들 중 두 아들이 일선에서 근무했다는 한 아버지는 「軍畢者 가산점 제도는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과 면목이 없는 정부가 그들에게 조그마한 인사치레라도 하겠다는 것이었다」면서 「이 시대 사람들은 입만 열면 나누며 살자느니 어쩌구 하는 말을 잘도 한다. 뼈가 시리도록 고생하는 우리 동포를 몰라라 하는 세상, 미안한 마음도 없는 이 세상이 나누며 사는 세상인가? 이런 세상이 어디로 갈까? 미안한 마음을 나누지 않고, 그저 제 갈 길 제가 찾아가는 이 나라가 어디로 갈까?」 라고 개탄했다.
 
  군복, 군번줄, 심지어 주민등록증 반납운동을 벌이자는 제안까지 나왔고, 국방부 사이트의 「국방부 장관과의 대화」 코너에 들어가 군번 반납 의사를 표시했다는 軍畢者들도 여럿이었다. 실제로 「10년간 입었고 家寶(가보)로 물려주려 보관해 오던 공군 正服(정복)을 망설임 끝에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예비역 공군도 있었다.
 
  현역 군인들의 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는데 이는 그들의 특수한 신분 때문인 듯. 前方(전방)부대에서 GP長으로 복무중이라는 한 육군중위는 외박을 나왔다가 憲裁 결정을 접했다며 「지금 前方의 내 부하들 중에는 凍傷(동상)에 걸려 발을 박박 긁는 병사도 있고, 지난 水害(수해) 때에는 對人地雷(대인지뢰)가 떠내려 와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마음 놓고 자지 못할 내 부하들… 그들이 눈에 밟힌다. 목숨 걸고 나라 지키면 뭐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나라를 지켰다는 그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를 행사했다는 그 자부심에 무엇으로든 보상받자는 자잘한 계산은 더 하지 말자」(이민화)는 주장도 드물지만 눈에 띄기도.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軍畢者들이 느끼는 허탈한 감정에 대해 「육군 병장, 상병이 뭐 人民勳章(인민훈장)쯤 되느냐? 벤소깐의 휴지 같은 거」라고 毒舌(독설)을 퍼붓는 여성네티즌(지윤희)도 있었지만, 대개의 未畢者들은 이해를 표시했다.
 
  한 여대생은 「대부분의 예비역 남성들은 7~9급 공무원시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그들이 느꼈을 분노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가산점 5%를 못 받는 그 梨大生들의 분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바쳤던 청춘의 獻身(헌신)의 근거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실존적 고통이다. 그들(梨大生들)은 공무원말고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또 다른 그들(軍畢者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했다.
 
  한 여성은 동생이 現役兵(현역병)으로 고생한 이야기를 전하며 「그들이 깨어 우리를 위하여 銃을 들고 잠 못 이루며 추운 초소에서 얼어 들어가는 손발을 동동거리며 근무를 할 때 여러분은 깨어서 공부를 한 자라도 더했다면 도대체 오늘날의 이러한 우스운 訴訟이 있을 법이나 한 말이냐?」고 묻기도. 평소 左派(좌파), 무정부주의자로 통했다는 한 면제자(회사원)는 「나는 면제이고, 加算點과는 상관없는 인간이지만, 내 동생 역시 現役으로 제대했고, 아버님 역시 늦게 軍에 들어가서 새파란 고참들에게 얻어맞으면서 제대하셨다. 加算點이란 너무나 보잘것없는 예우마저 違憲이라고 해 버리는 것은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한 여성장애인은 「무슨 차별이니 평등이니 할 때마다 여성이나 장애인을 걸고 넘어가지 마라. 난 그들의 2년2개월여의 세월에 대한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이다. 그들의 세월을 빚삼아 지금의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내 삶이 지탱되고 있다. 그들의 세월을 5%의 가산점이 대신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글을 올려 읽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회적 弱者」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라든가, 「병역의 의무」의 이행과 보상에 대해 憲裁가 언급한 부분을 놓고는 많은 사람들이 감성적인 반응을 보인데 비해, 정작 이번 憲裁 결정의 핵심 부분인 가산점 자체에 대해서는 의외로 차분하게 자기 주장을 펴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밝힌 공무원 정석모씨는 「커트라인에 1점 이하에 미달되어 떨어지곤 할 땐 장애자, 여성 등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생활에 있어 불리한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부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와 같은 불합리한 제도로써 생활을 방해하고 있지 않나 원망까지 했다」면서 가산점 제도 폐지를 환영했고, 9급 경찰공무원시험을 준비해 왔다는 박모씨도 「수석합격자와 낙방자 간에 점수 차이가 5점밖에 안 나는 상황에서는 이것은 가산점이 아니라 합격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다」면서 가산점 폐지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병장으로 제대했다는 윤주석씨 등 많은 이들이 가산점제 폐지에 찬성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의 근거는 기존의 가산점제가 軍畢者에게 보상의 수준을 넘는 일종의 「특혜」로서 平等權(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軍畢者들의 희생으로 안보의 유지라는 귀중한 국가 기여도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軍 가산점 제도는 그 자체로서 충분히 논리적인 정당성을 갖추고 있으며, 軍복무로 인한 개인의 희생을 가산점으로 보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平等을 지탱해 온 제도」라거나, 「현역 복무를 마친 남성들에게 일정한 사회적-국가적 혜택을 주는 것은 각자에게 그에 합당한 몫을 주어야 한다는 수직적-배분적 평등원칙에 충실한 것」(이동우)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남이 가진 것을 빼앗아 평등을 추구한다면, 그래서 평등해진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평등일까요? 남이 가진 만큼 나도 가질 기회를 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더욱이 남이 가진 것이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희생의 代價(대가)라면, 그걸 빼앗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던진 네티즌도 있었고, 「합격선이 85~95점에 달하고, 소수점 이하의 점수차이로 當落이 좌우된다면 가산점 폐지 대신 시험문제의 난이도 조절을 통해 辨別力(변별력)을 높이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이도 있었다.
 
  가산점제에 대해선 평등권에 바탕을 둔 비판 외에도 「知的(지적) 능력의 평가인 필기시험에 있어서 군대 갔다 왔다고 평균 5%를 가산해 주는 것은 이치에도 닿지 않는다」(정석조)는 비판도 많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대학을 가는 데도 사회봉사활동 성적을 인정해 주는 마당인데,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에게 軍복무기간을 성적으로 반영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반론을 펴는 네티즌도 있었다.
 
 
  「軍隊 가면 정말 머리가 돌이 되더라」
 
 
  평등의 원칙을 내세워 軍畢者 가산점制를 비판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하자는 말은 좋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 法이 그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자고 하는 것은 그들을 이 사회에서 매장시키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평등한 조건이 아닌 두 사람을 평등한 조건에 놓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不평등이다」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흔히 하는 말로 「군대 가서 머리가 굳어진 것」에 대해 보완이 있어야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열다섯 살 때 만나 9년6개월 동안 사귀었던 애인이 변심해버렸다는 어떤 예비역 兵長은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정말 머리가 돌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入隊 6개월 뒤 나는 根(근)의 공식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놀란 나는 영어단어를 기억해 보려고 노력했다. because 철자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놀라서 나는 입대한 지 4개월 된 後任兵(후임병)에게 물어 봤다. 그랬더니 그놈이 이러는 것이었다. 예, 비코으즈! b,i,c,o,s,e입니다! 그래서 난 제대할 때까지 because가 bicose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라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군대 가면 머리가 돌이 된다」는 俗說(속설)이 사실임을 주장하기도.
 
  프로그래머가 꿈이라는 현오식씨는 「입대 전에는 상당한 실력이었으나 급변하는 세상에서 26개월은 나를 무능아로 만들었다」면서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사회에서 26개월이란 공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역설했고,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2개의 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特戰司(특전사) 출신 예비역은 「군대만 아니었으면 IMF사태가 닥치기 전에 취직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다른 보상책 마련에 대해선 긍정적
 
 
  가산점制에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어떤 식으로든 軍복무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號俸(호봉), 승진 등에 軍경력을 반영해 주자는 것이었는데, 일부 女性界나 노동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것이 「同一(동일)노동 同一임금」원칙에 반한다는 식의 반론은 보이지 않아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그럼 상실된 학업, 응시기회는 뭘로 보상받아야 하느냐?」(김형룡)거나, 「공무원시험 등에서 軍畢者들에게 복무기간만큼 응시제한연령을 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권인호)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그밖에 여성 등 軍未畢者들의 봉급에서 일정액을 떼어내 이를 轉役(전역)장병들의 사회복귀 훈련비로 쓰자는 이색적인 제안이 눈에 띄기도 했다.
 
  憲裁 결정 직후부터 「여성들도 이스라엘처럼 군대 가야 한다」는 감정 섞인 주장들이 많았고, 이에 「女權 신장에 도움이 된다면 싫지만 군대 가겠다」라고 당찬 대꾸를 하는 여성(워니)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男女間의 생리적 차이나 軍전투력 유지 필요성을 들어 여성의 軍복무를 의무화하는 것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보다는 여성들에게 사회봉사활동 등 공익근무를 통해 가산점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주장에 수긍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憲裁가 이번 違憲 결정문 가운데서 잠정적인 조치로서의 여성할당제는 合憲(합헌)임을 분명히 했음에도, 할당제는 위헌이니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는데, 한 네티즌은 얼마 전 독일헌법재판소가 기업에서 昇進時(승진시) 적용되는 여성할당제에 違憲 결정을 내린 사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軍畢者들이 이번 憲裁 결정에 대해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이면에는 사회에 만연한 병역기피 풍조가 자리하고 있다는 인식 아래 이의 시정을 문제해결의 진정한 방안으로 보는 견해들도 많았다.
 
  한 가지 뜻밖인 것은 여성 등 많은 未畢者들이 공무원, 공기업 등에서나 시행되고 있는 軍경력의 號俸 반영 등을 私企業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공군으로 32개월간 복무했다는 이태희씨는 「軍복무를 마치고 입사해 보니 여성 등 未畢者들은 모두 나보다 2職級이 높고, 그들과 3백~4백만원 정도 年俸(연봉) 차이가 났다. 나이로 보아 한 번도 진급에 누락되지 않는다 해도 부장 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면서 「군대를 자랑스럽게 다녀왔다는 것이 내 아내될 사람과 자식에게 너무나 미안하다」고 한탄했다.
 
 
  외국인, 해외교포들도 관심
 
 
  한편 憲法 재판관들이 처음에는 2명은 「합헌」, 7명은 「가산점制 자체는 합헌이지만 그 비율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네티즌들은 「憲裁決定 前 金容俊(김용준) 헌법재판소장과 金大中 대통령이 식사를 같이했다며 혹시 여성운동계의 代母(대모)인 이희호 여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는데, 憲裁의 위상을 고려할 때 생각하기 어려운 일임에도 많은 軍畢者들은 이를 사실로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당초의 그런 입장이 어떻게 全員一致違憲(전원일치위헌)으로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한 憲法재판관들의 해명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憲裁 결정 이전 가산점을 고려해 교원임용고사를 경기도에서 보았다는 한 軍畢者는 憲裁 결정으로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되자, 憲裁가 즉각적인 효력을 갖는 違憲결정을 내리고 정부가 이를 바로 시행에 옮긴 것을 원망했다.
 
  가산점 폐지 결정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인 이들도 憲裁가 限定合憲決定(한정합헌결정:문제가 되는 조문을 완전히 違憲으로 하는 대신 「이렇게 해석하는 한 憲法에 위배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것-注)이나 憲法不合致決定(헌법불합치결정:해당 조건의 違憲性을 인정하면서도 그 집행에 유예기간을 두어 입법부 등이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注) 등 보다 유연성 있는 결정방식을 취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스러워 하거나, 평소 늑장 행정으로 유명한 정부가 이번 결정을 시행에 옮기는 데는 초고속이었다며 씁쓸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憲裁의 決定에 대해 해외교포들이나 외국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앞에 언급한 지윤희씨를 제외한 전부가 憲裁決定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 애틀랜타에 사는 손정현씨(예비역하사)는 걸프戰 당시 이웃집에 사는 신혼의 여군하사관이 자기에게 出征(출정) 신고를 하고 전쟁터로 갔다며 「권리에는 의무도 따르는 법이다. 한국여성들은 그런 의무를 다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질타했고, 영국 유학생 김삼수씨는 공부하는 스웨덴 여학생에게 한국의 兵役제도와 가산점制에 대한 憲裁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제가 있고, 대개 남성들이 그 受惠者가 되지만, 이를 男女차별의 문제로 보는 여성들은 없다」고 하더라고 알려왔다.
 
  한 美軍(미군)병사는 「한국군은 한 달에 겨우 10달러를 받는다니 한국 군인들 정말 애국자다. 나라를 위해 고생한 사람들에게 보상해 주는 게 나라가 할 일인데, 이렇게 적은 돈 받고 고생하는 한국 친구들에게 더 많은 보상은 못해 주고 오히려 사기를 꺾어 버리니, 한국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모르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總選 때 보자」
 
 
  軍畢者들의 반발이 의외로 거세자 정부·여당은 잇달아 군필자 가산점 폐지에 대한 代案을 내놓으면서 軍畢者 달래기에 나섰지만, 軍畢者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국민회의에서 지난해 12월27일 軍경력을 호봉 등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하자 즉시 「年俸制가 날로 확산되어 호봉제란 개념 자체가 없어지고 있고, 이러한 경향은 곧 公職사회로 번질 텐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박이 나왔고, 軍畢者에게 세금감면이나 年金우대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데 대해서도 「결국 擔稅(담세)능력 있는 軍畢者들의 돈으로 軍畢者들을 우대하는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드디어 2000년 1월6일 정부·여당이 국가봉사경력 가산제를 도입, 사실상 軍畢者가산점제를 존치시키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총선 때까지 어물쩍 넘기다가 총선 끝나면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말을 바꿀 것」이라며 극도의 불신을 나타내거나, 「前方에서 목숨 걸고 나라 지킨 것하고, 거리에서 낙엽이나 쓸고 養老院(양로원)같은 데서 수다 떨며 시간 때우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하고 어떻게 같냐?」(한국남)며 불만을 표시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金大中 대통령이 新年辭(신년사)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軍복무자에 대한 가산점 違憲 결정에 대해서는 법률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전형적인 립서비스다. 입에 발린 소리엔 신물이 난다」라거나, 「총선 때 보자」, 「대통령은 지금 다른 거 뵈는 게 없다. 총선에만 미쳐 있다. 확실하게 그때 응징하자」는 반응이 이어졌다.
 
  드물지만 「朴대통령 시절에는 군대 안 가면 병신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은 군대 가면 병신 취급을 받는다」는 식으로 개탄하는 軍畢者들도 있었다.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
 
 
  憲裁 결정 이후 軍畢者들의 사이버 대공세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빗나간 性대결」이라는 식의 보도를 했고, 실제로 憲裁나 여성단체, 梨大, 그밖의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 가운데는 여성이나 여성단체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많은 軍畢者들은 이 문제를 性대결로 보는 시각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면서도 일부 여성단체들에 대해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앞에 소개한 「한국은 사회적 强者가 군대에 간다?」를 쓴 최영준씨는 「여성단체들의 말바꾸기에 실망했다. 몇개월 전 兵役에 따른 호봉제도 여성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지금 軍畢者들의 반발이 거세니까 兵役에 대한 보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號俸에 혜택을 주는 것은 반대하지 않겠다고 한다」면서, 「軍畢者 가산점 문제를 처음부터 軍畢者와 未畢者의 문제가 아니라 性대결로 몰고 간 것은 다름 아닌 憲法訴願을 낸 여성단체들」이라고 비판했고, 「進步의 실험장 - 軍가산점 위헌 판결」을 쓴 네티즌은 「하나의 편향은 다른 편향으로서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평등권 침해의 해결도 좋지만, 그 해결책이 또 다른 사회적 弱者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면, 그리고 代案조차 없다면 어찌 그것이 진보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정당한 軍畢者들의 반발에 대해서 그래, 개야 짖어라. 너희들은 男女 평등세상에 반하는 반동, 기득권, 쩨쩨한 쪼다자식들이라고 몰아치며, 자신들은 마치 反動的인 사회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커다란 進步의 획을 긋는 투사인 양, 진보를 가장하는 것은 위선이요, 철없음」이라고 비판했다.
 
  여성운동의 문제점에 대해선 일부 여성들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중이라는 한 여학생은 「미국에서는 일부 뛰어난 여성들을 위해서 대다수 평범한 여성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운동이 女權운동이라는 인식 때문에 여성들에게서조차 女權운동이 경원당하고 있다」고 알려 왔고, 한 여성네티즌도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면 그만한 의무를 함께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2000년 1월5일 저녁 인터넷 홈페이지 「싸우」를 만든 박상영씨와 「나라를 사랑하는 모임(나사모)」의 代表代理(대표대리)인 임춘택씨 등을 만났다(나사모 대표인 최성수씨는 某회사 사원으로 현재 사원연수에 들어가 있다).
 
  싸우 운영자인 박상영씨는 江原道警 기동대에서 軍복무를 마치고 현재 復學(복학)을 준비중인 젊은이. 당초 싸우는 고향인 강원도 평창과 인근 영월, 정선 등의 관광자원들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는데(사이트 이름을 SSAW:Spring, Summer, Autumn, Winter의 머릿글자 로 지은 것도 그 때문), 憲裁 결정이 나온 후 사이트의 성격을 바꾸었다고.
 
  『가산점制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憲裁 결정이 나온 후 친구와 토론을 벌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을 듣고 싶었고, 이 사이트를 그들에게 제공해 주면 이곳에서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에 참여하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는 게 朴씨의 「싸우」 개설의 辯.
 
 
  『이번 일은 北風, 稅風에 이은 女風』
 
 
  朴씨는 자신이 홈페이지에 급히 「군가산점 위헌판정 반대토론장」을 마련하고 憲裁, 在鄕軍人會 등 관련 사이트에 열심히 「싸우」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에 대한 반응은 朴씨 자신도 놀랄 정도로 폭발적. 지난해 12월26일 문을 연 토론장에 하루 만에 3백43건의 글이 올라왔고, 12월31일까지는 1천5백98건, 2000년 1월5일까지 3천9백80건을 넘어섰다(이 글을 쓰는 7일 오후1시 현재 4천6백83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朴씨는 「싸우」를 조금씩 개편했고, 지금은 「토론장」 외에도 「법률자료실」,「나의 軍생활」 코너 등을 갖춰 사이트의 성격을 완전히 바꾼 상태.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朴씨는 이번 일이 金大中 정부가 總選에서 여성표를 노리고 벌인 「女風 工作」이라는 것부터 강조한다(女風이라는 말은 朴씨가 만들어 낸 말이지만, 이번 문제를 보는 많은 軍畢者들이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朴씨는 『지난 大選 때 상대후보인 李會昌씨 자제의 兵役免脫(병역면탈) 의혹을 물고 늘어져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金大中 대통령이 權座(권좌)에 앉은 후 兵役문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가를 잊어 버린 모양』이라며, 『金대통령은 지금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이는 「국민의 정부」가 저지른 일 가운데 가장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IMF보다도 南北대치상황이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단지 總選에서 여성표를 의식해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이고 있다. 가산점은 실제로 혜택을 받느냐 여부를 떠나 하나의 상징이었는데, 그것마저 앗아가 버렸으니 軍畢者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安保(안보)에 대한 인식이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투철한 것 같아 그의 國家觀(국가관)은 어떤 것인지 물어 보자 『국가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을 수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 위의 조상들에게 진 빚은 반드시 갚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대답을 해 주었다.
 
  이번 憲裁 결정을 계기로 일부 네티즌들이 벌이고 있는 徵兵制(징병제) 반대 움직임에 대해 朴씨는 『한마디로 현재의 경제상황에선 꿈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장래 희망을 묻자 『국가정보원에 들어가거나 공인회계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이번 일로 미운 털이 박히면 국가정보원에는 못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털어 놓는다. 그가 이번 일로 정말 미운 털이 박혀 국가정보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지는 筆者(필자)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런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완전히 민주화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버 공간 밖으로-나사모
 
 
  憲裁 결정 이후 재향군인회가 이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보고 「싸우」 등에서는 軍畢者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士兵 및 초급장교 출신자들의 權益(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모임이 있어야겠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 胎動(태동)단계에 있는 「나사모」로 이어졌다.
 
  이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30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있었던 在鄕軍人會의 憲裁 결정 항의집회 후로 전형적인 官邊(관변)단체의 집회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집회내용에 만족할 수 없었던 30여명의 軍畢者들이 따로 모여 장래 활동 방향을 논의했던 것. 이어 금년 1월2일 그들 가운데 일부가 다시 모여 「나사모」 결성을 추진하게 됐다.
 
  임시대표는 某 회사에 재직중인 최성수씨. 그가 社內연수에 들어가면서 關稅士(관세사)시험을 준비중인 임춘택씨가 대표대리를 맡고 있다. 12월30일 모임에 참석했던 이들이 「싸우」를 통해 의견을 주고 받고 연락을 취하기로 하면서 「싸우」의 박상영씨는 자연스럽게 「나사모」의 홍보 책임자를 맡게 되었다.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나사모」 활동에 열성적으로 나서는 사람들 가운데 정작 公務員(공무원) 시험응시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필자도 참관했던 지난 12월30일의 모임 때만 해도 참석자 중 상당수가 공무원시험 준비자였으나, 수험준비에 쫓겨서인지 그후에는 연결이 잘 되지 않고 있는 듯싶다.
 
  임춘택씨는 『이번 憲裁 결정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사회적 의무의 懈怠(해태)현상이 만연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의무를 이행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그 이행을 감사히 여기지 않는 사회풍조는 결국 어떠한 道德律(도덕률)이나 미덕도 존재하지 않는 기계적인 경쟁사회를 만들고 말 것이다. 「나사모」는 고요히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憲裁의 잘못된 결정과 이기적인 사회풍조를 두고 볼 수 없어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이다』라면서, 『앞으로 「나사모」는 軍가산점 위헌결정의 부당성을 홍보하고, 軍畢者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을 요구하는 한편, 사회 각 분야에서 드러남 없이 수고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풍토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싸우」 토론장에 行試(행시)나 7~9급 공무원시험에서 軍畢者와 未畢者에게 동일한 응시제한연령이 적용되는 것 등에 대해 憲法訴願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올라와 호응을 얻었는데, 그런 憲法소원이나 군필자 국가유공자지정 입법청원 등을 통해 그러한 여론환기가 가능하리라는 것.
 
  募兵制(모병제) 주장에 대해서는 임씨 역시 부정적.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어머니들처럼 보통 여성의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라면 軍畢者 가산점에 대한 어떠한 代案도 없이 덜컥 憲法소원을 제기하면서 이 문제를 性대결로 몰고 가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권리에는 그만한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그들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일침을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글을 마치며
 
 
  39년 전 더 이상 남의 원조에 의지해 사는 나라이기를 거부하고 國家改造(국가개조)의 불길을 당긴 일단의 靑年 將校(청년 장교)들이 이 나라에서 5천년 찌든 가난을 몰아냈다. 20년 전에는 旣成體制(기성체제)의 입장에서 보면 異端的(이단적)인 사고를 가진 한 무리의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지식인 사회와 대학의 이념적 지도의 색깔을 뒤바꿔 놓았고 불과 2년 전인 大選에서,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버이들과 前後方(전후방) 軍人들의 마음이 돌아서자 정권이 바뀌고 마는 것을 목격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식의 역사인식에는 그리 공감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처럼 처음에는 少數(소수)에 불과했던 보통사람들이 의외로 커다란 일들을 이루어 내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 왔다.
 
  비록 이제 막 사이버 공간에서 현실세계로 발을 내딛은 少數의 젊은이들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사이버 공간상에서 일대 叛亂을 일으켜 정부·여당과 우리 사회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기를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혹한의 날씨 속에서 헌신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한 힘들을 한데 엮어, 「공동체에 보다 더 헌신한 사람이 보다 더 고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