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교보문고
아마릴리스의 꽃말에는 총 2종류가 있다고 한다.
야생종의 경우 '침묵' '겁쟁이' '허영' '거짓말' 등을 의미한다. 반면 원예품종의 경우 '자부심' '정열' '눈부신 아름다움' '수다쟁이' 등으로 의미가 바뀐다. 아마릴리스를 단순 야생화로 보느냐, 아님 원예품으로 키우느냐는 결국 '사랑'과 '관심'에 달린 셈이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그렇다. 사나운 맹수도 애기때부터 사람과 함꼐 생활하니 고양이와 같은 귀여움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혔지만 훌륭한 스승을 만나니 유능한 인재로 성장한 내용의 영화도 있다.
사람의 손을 탔다면 그 무엇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사랑에는 무한(無限)의 책임이 따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자기도 모르게 주는 사랑
사랑은 주는 것이니 받는 것이니 말을 한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크다는 말도 한다.
추운 겨울에 애써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마릴리스는 우리 집에 '기쁨'이란 큰 선물을 주는 것 같다.
(중략)
아마릴리스를 키우면서 나는 예쁜 요정을 키우고 있는 듯하여
물을 줄 때도 공주가 놀랄까 조심스럽다.
이렇듯 예쁜 공주가 집안을 요리조리 돌아가며
귀티를 맘껏 풍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큰 행복이다.
아마릴리스 사랑 中
참 신기한 것이 시에 등장하는 아마릴리스를 빼고 '그 무엇을 넣어도' 이상함이 없다는 것. 결국 사랑은 대상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찮은 것이라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애장품(愛裝品)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추억할 수 있는 유품(遺品)으로 남겨질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에 담긴 사람 본연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선'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버려도 문제없는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괜히 버리기에는 함께해 온 시간이 아쉬워 그냥 두기도 하고, '고쳐 쓸 수 있다'는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두는 것으로도 자기도 모르는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평소 쓰지 않지만 안보이면 순간 이질감을 느끼는 그런 감정. 본인도 모르게 애너지를 쏟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건에 담긴 애정을 망각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어떨까.
목련가지의 심정으로
목련잎은 꽃이 진 후에야 돋아나
또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애써 한해를 돌아오지만
결국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꽃도 잎도 긴 기다림의 시간에 든다.
군자란을 바라보며 中
개인적으로 참 많이 와닿았던 수필이다.
기자는 '애정에는 기다림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현재 도쿄에 있다. 그리고 위 수필 부분은 도쿄로 오는 고속열차(나리타 익스프레스)에서 읽었다. 지인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5일도 짧다'는 생각을 했다. 자꾸 '목련과 목련잎과의 관계'가 불쑥불쑥 생각났다. 예정된 아쉬움이 목련의 잔향으로 깊어지는 듯했다.
어쩌다 새롭게 안 사실은, '그들도 목련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기자가 위에 언급한 수필 부분을 그대로 읽어주니 깔깔 웃으며 "우리가 목련꽃과 목련잎 같은 관계일 필요가 있을까"라며 "같은 목련의 처지로 만나면 된다"라고 했다. 또 "확실한 건 목련은 기다리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그동안의 근황을 술잔에 담아 가며 쉴 새 없이 들이켜도 갈증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았다. 맛있는 음식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다. 헤어짐이 다가올수록 얼굴에는 서로 수심(愁心)이 가득했다.
그렇게 헤어지는 길에서는 서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한 쪽만 기다린다면 외롭겠지만 함께 만날 날을 또 기다리는 것이니 그 자체로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또 "스마트폰 덕분에 서로 '목련과 목련잎' 신세는 면했다"며 당차게 인사를 했다.
친구들은 (일본)목련의 뜻 중 하나는 '우애(友愛)' 라고 했다. 그렇게 기자는 목련의 잔향 대신 목련의 가지를 더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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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련 수필가는 경남 사천에서 출생하여 대학까지 고향의 숨결과 언어들을 달궈왔다. 2011년 《에세이 문학》 여름호에 「육십 촉 알전구」로 등단했으며 부산문인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경수필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제신문 ‘환경글짓기’ 대상과 ‘가톨릭문학작품공모’ 최우수상을 받았다. 수필집 《아마릴리스 사랑》은 그녀의 첫 수필집이다.
글=백재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