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체르노빌 히스토리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체르노빌 원전에 어른거리는 중국 원전, 북한 핵무기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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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 플로히 교수가 쓴 '체르노빌 히스토리'

  

 오랜만이었다.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아쉬운 책을 만난게 말이다. ‘체르노빌 히스토리’,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썼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처음과 끝, 그 이후를 추적한 책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플로히 교수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당시 사고 지점에서 500Km도 떨어지지 않은 드네프르강 하류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은 하버드대 우크라이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이 책으로 베일리 기포드 논픽션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어려울 수 있는 사건의 근원을 충분한 자료조사를 통해 파악해내고, 그것을 흡입력 있게 기술했다. 체르노빌 원전이 생기기 전부터 소련 원자력 발전업계는 어떤 분위기였는지, 체르노빌 사고에 소련 정부 인사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여준다. 당시 집권하고 있던 고르바초프 정권과 우크라이나 정권 모두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공과를 짚어준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 누구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한번은 입에 올린다. 이 엄청난 사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소위 ‘반핵 진영’ 인사들 중 몇이나 될까.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새롭게 다가온 사실이 몇가지 있다.


첫째 사고의 원인이다. 플로히 교수는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을 이렇게 정리했다.

 

<체르노빌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잘못 진행된 터빈 시험이었다. 그러다 사고의 근원적 원인은 소련 정치 체제의 중대한 결함과 원자력 산업의 중대한 결함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의 결함 중 하나는 원자력 에너지 산업이 군사 부문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체르노빌형 원자로는 핵폭탄을 생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을 변형해 만들어졌다. 이에 더해 일정한 물리적 조건에서 매우 불안정한 원자로였는데도 안전하다고 선언되었다.

사고 직후 공포가 확산되자 전제적인 소련 정권은 정보의 흐름을 통제해 국내외의 수백만 주민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막을 수도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방사능 피폭을 야기했다.>

 

소련이 개발한 RBMK형 원자로는 설계에서부터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이미 소련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됐음에도 권위주의 통치 체제는 결함을 외면하는 쪽을 택했다.

둘째, 원전 사고가 직접적 원인인 사망자 수가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 해당 대목이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로 2명이 바로 사망했다. 모두 237명이 체르노빌에서 모스크바로 이송되어 특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들 중 134명이 급성 방사능 피폭 증상을 보였다. 총 50명이 급성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했고, 4000명이 이후 방사능 피폭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린피스의 주장과 그 주장을 인용해 또 주장하는 한국의 환경운동연합의 생각은 다르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참사 20주기를 맞아 유럽 전역의 보건학 및 의학 전문가 60명이 참가한 대규모 건강피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이 70년간 지속되어 벨로루스에서만 21만 420명, 그 외 다른 나라들에서 71만 660명이 사망하여 모두 93만 80명이 사망할 것이라 예측했다. 또한 갑상선암은 2056년까지 모두 13만 7천건, 유방암 등 고형암은 12만 3천건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출처: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러시아 정부에 비판적인 러시아 출신의 전문가와 환경운동연합 중 누구의 주장이 맞을까. 플로히 교수도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체르노빌 재앙으로 인한 최종 사망자 수치는 훨씬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4000명과 93만명의 차이는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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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모양의 구조물을 덮어 밀봉한 체르노빌 원전 4호기. (photo 위키피디아)

 

 

 

셋째, 체르노빌 사고가 우크라이나와 소련을 갈라놓는 쐐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체르노빌 원전은 우크라이나 지역에 속해 있다. 사고 도중, 그리고 직후 소련 정부의 미흡한 대처 때문에 수많은 우크라이나 인들이 방사능에 피폭되고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벨라루스 지역엔 엄청난 낙진이 떨어졌다.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는 ‘소련 정부가 우크라이나인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하려 사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돌았을 정도다. 체르노빌 사고 5년 후인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독립했다. 그로부터 25일 후 소련은 붕괴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러시아는 현재까지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 뒷배경에 체르노빌이 있다.

 

 

넷째, 체르노빌 원전이 2000년 12월 15일까지 가동됐다는 점이다. 4기의 원전 중 사고가 난 4호기를 제외한 1, 2, 3호기는 2000년까지 가동되며 우크라이나에 전기를 공급했다. 우크라이나 국회는 애초 2010년까지 가동하려 했지만, 국제 사회의 원조를 조건으로 폐쇄했다.

 

다섯째, 체르노빌 원전에 중국 원자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서해안을 따라 중국의 원자력 발전소가 줄지어 있다. 이 발전소 중 한 곳에서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한국 역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신세가 되어 낙진을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다. 반핵 진영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어쩌니, 오염수가 어떻니 훈련받은 앵무새처럼 떠들면서 중국의 원전과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늦기 전에 다음과 같은 플로히 교수의 결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체르노빌 원전을 폐쇄하고 손상된 원자로에 새로운 석관을 씌운 것은 원자력 산업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한 페이지를 닫게 해주었지만, 체르노빌 재앙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핵민족주의와 고립주의가 제기하는 위험에 맞서고 원자력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국가들 사이에 국제적 협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에너지 생산을 위해 원자력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해가는 세계에서 포퓰리즘, 민족주의, 반세계주의 신봉자들이 늘어가는 오늘날에 이 교훈은 특히 중요하다.>


원자력 발전에 관심있는, 아니 일상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한다. 

 

글=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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