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 (1931~2022). 사진=미국 백악관 (퍼블릭 도메인)
냉전 종식의 주역 중 한 축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 겸 대통령이 8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1985년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내걸고 소련 체제 내에서의 개혁을 추진했다. 국제정치 측면에서의 동서화해 추진은 그런 내부 개혁 정책과 동전의 앞뒷면이었다.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은 초급 당 간부 시절 이래 소련 체제의 모순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스타브로폴 지구당 서기 시절부터 농업 문제를 많이 다루었는데, 농업 부문은 소련 체제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다. 스타브로폴 지구당 서기 시절 고르바초프는 인상적인 경험을 하나 했다.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지역 내에 관개용지가 만들어지자, 그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고르바초프를 찾아왔다. 고려인들은 계약재배로 양파를 키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확한 양파 가운데 1헥타르 당 45톤을 집단농장이나 국영농장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자기들 소유로 하게 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고르바초프가 이를 승낙하자, 고려인들은 다른 지역 출신 일꾼들을 모아 작업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수확기가 될 때까지 밭 옆에 천막을 쳐놓고, 그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밤낮없이 일했다. 공동노동으로 경작하는 집단농장이나 국영농장의 농민들이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것과는 완전히 일하는 방식이 달랐다. 당연히, 고려인들은 양파 재배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계약에 따라 자기들의 몫을 챙겨가면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그러자 그 지역 주민들 가운데 고려인의 작업팀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밤낮 없이 일하는 고려인 작업팀의 노동방식을 견뎌내지 못하고 1주일만에 그만두었다.
그런데 얼마 후 연방검찰청과 당 기율위원회가 개입했다. 고려인 작업팀의 영농방식이 사회주의 원칙을 어기는 '불법적 약탈'이라는 것이었다. 고려인들은 쫓겨났고, 지구당 관계자 몇 명이 문책과 처벌을 받았다. 모든 일은 도루묵이 됐다. 양파 재배는 스타브로폴 지역 농민들의 손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코시긴 소련 총리가 휴가 차 스타브로폴을 찾아왔다 (스타브로폴에는 소련 고관들의 휴양지가 있었고,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고위층을 자주 접하면서 출세의 길을 달릴 수 있었다). 경제통이었던 코시긴은 소련 경제의 문제나 고르바초프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편이었다. 코시긴이 도착하던 날, 고르바초프는 그와 점심 식사를 했다. 식탁에는 갓 썬 신선한 양파를 비롯한 여러가지 채소가 올랐다. 코시긴이 물었다.
"그 양파사건은 어떻게 결말이 났소?"
고르바초프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잘 마무리 됐습니다. 이제는 모든 게 잘 돌아갑니다."
"잘 돌아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고려인들이 맡아서 할 때에는 스타브로폴 지방에서 소비할 양파를 제외하고도 1만 5000톤 내지 2만 톤을 더 생산해 다른 지역에 공급했습니다. 이제는 고려인들을 모두 쫓아냈고,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이제는 양파 자급이 안 되어서 우즈베크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코시긴은 아무 말 없이 양파만 먹었다.
후일 고르바초프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후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제창하게 된 데에는 이 때의 경험도 작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