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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힘을 동반하지 않는 외교는 열매가 없고 외교를 동반하지 않는 힘은 지속력이 없다"

고려의 천재 외교관 서희(徐熙)이라면 지금의 북핵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서희의 지혜

“힘을 동반하지 않는 외교는 열매가 없고, 외교를 동반하지 않는 힘은 지속력이 없다(Diplomacy without strength is fruitless; but strength without diplomacy is unsustainable, 조지 슐츠)”

고려의 문관이자 외교관이었던 서희가 거란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나누는 장면. 사진=책과함께어린이
“80만 군사가 도착했다. 만일 강변까지 나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국왕과 신하들은 빨리 우리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
 
993년(성종 12) 고려는 건국 75년 만에 거란의 침입으로 국운을 위협하는 절체절명,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다. 이때 빼어난 외교술로 고려를 위기에서 구한, 칼보다 무서운 혀를 가진 구국의 영웅, 우리 역사상 가장 유능한 외교관이자 협상의 귀재 서희가 등장한다.
 
거란 침략 전까지

“옛날 서필의 아버지 서신일이 시골에 살았는데, 사슴이 집으로 뛰어 들어오기에 화살을 뽑고 숨겨주었더니, 사냥꾼이 추격해 왔으나 잡지 못하고 가버렸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하며 ‘그 사슴은 바로 내 아들입니다. 그대 덕분에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고관대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서신일의 나이 여든에 서필을 낳았고, 서필과 서희 및 서눌이 과연 이어서 재상이 되었다.”(고려사 ‘서눌’ 열전)
 
왕건이 반거란 정책으로 거란에서 보내온 낙타를 굶겨 죽인 942년 대쪽 재상 서필의 아들로 태어난 서희. 그는 이천 서씨의 명문으로 집안도 좋았지만, 19세에 과거급제하고, 이후 차례를 뛰어 넘어 승진했다는 기록을 볼 때 어릴 적부터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
 
그는 972년 내의성 시랑의 벼슬로 그동안 국교가 단절된 송과의 외교 관계를 재개하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는데, 이때 송 태조는 그의 예의바른 태도와 뛰어난 언변에 감동해 고려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고 그에게도 검교병부상서라는 벼슬을 내렸다.
 
서희는 젊은 시절부터 외교적 역량이 탁월한 협상의 귀재였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송과 거란이 대치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거란의 침입(993년)

“우리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였다. 아직 우리에게 귀순치 않는 나라는 기어코 소탕할 것이니 속히 투항하라. 너희 나라가 백성을 돌보지 않으므로 이제 천벌을 주러 온 것이다. 만일 화의를 구하려거든 빨리 와서 항복하라.”
 
거란의 80만 대군(실제 6만여 명)의 침략에 고려 조정(朝廷)은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뉜다. 거란의 요구대로 항복을 하자는 투항론과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게 주고 화의를 청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 그것이다.
 
“지금 거란의 병세만을 보고 경솔하게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삼각산 이북 또한 모두 고구려의 옛 강토인데, 그들이 한없는 욕심으로 끝없이 강요한다면 다 내어주어야 하겠습니까? 국토를 떼어 적에게 준다는 것은 만세의 치욕입니다. 바라건대 저희들로 하여금 적과 일전을 겨루게 한 뒤 그때 가서 다시 화친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서희는 당시 송과의 대치로 고려와의 전면전이 불가능한 거란의 입장을 정확히 간파해 ‘선항전 후협상’을 주장한다. 이는 그의 국제정세를 읽는 뛰어난 안목과 철저한 사전 정보수집 능력, 결단력 있는 행동력의 산물로 봐야할 것이다.
 
미국이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는 이렇게 말했다.
“힘을 동반하지 않는 외교는 열매가 없고, 외교를 동반하지 않는 힘은 지속력이 없다(Diplomacy without strength is fruitless; but strength without diplomacy is unsustainable)”
 
이 말처럼 당시 서희는 ‘힘’과 ‘외교’를 동시에 사용한다. 이 점이 그의 위대한 점이 아닐 수 없다.
 
사전 기싸움

전쟁이 피가 흐르는 정치라면, 외교는 피가 흐르지 않는 전쟁이다. 전쟁이 '제로섬 게임'이라면 외교는 얼마든지 ‘윈·윈’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두 나라는 협상의 테이블에 앉게 된다.
 
서희와 거란 장수 소손녕은 씨름에서 선수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신경전과 함께 많은 힘을 쏟아 붓는 샅바 싸움을 하듯 치열한 사전 기싸움을 벌였다.
 
“나는 대국의 귀인이니 그대가 나에게 뜰에서 절을 해야 한다.”
소손녕은 서희의 기를 꺾기 위해 위와 같이 무례한 요구를 한다. 이때 서희는 다음과 같이 침착하게 답한다.
 
“신하가 임금에게 대할 때는 절하는 것이 예법이나 양국의 대신들이 대면하는 자리에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소손녕은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고 이에 서희는 노한 기색을 보이며 숙소로 돌아와 두문불출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 나라의 운명이 달린 자리였지만 서희는 한 나라의 대신으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란이 전면전(全面戰)보다 화의를 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결국 소손녕이 서로 대등하게 만나는 예식 절차를 수락하면서 첫 번째 기싸움은 서희 승리로 돌아갔다.

고구려 승계 논쟁

흔히 협상에서는 '실리는 챙기되 명분은 주어라'는 말이 있지만, 정정당당한 명분이 없다면 결코 실리도 챙길 수 없다.
서희와 소손녕은 다시 침략의 명분과 관련해 치열한 역사 논쟁을 벌였다.
 
“당신네 나라는 옛 신라 땅에서 건국하였다.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나라에 소속되었는데 어째서 당신들이 침범하였는가?”
 
소손녕이 제기한 이 물음은 ‘누가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매우 중요한 논점인데, 이때 서희는 조목조목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바로 고구려의 후예이다. 그러므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부르고 평양을 국도로 정한 것 아닌가. 오히려 귀국의 동경이 우리 영토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어찌 거꾸로 침범했다고 하는가?”
 
한 치의 틈도 없는 그의 논리에 소손녕의 말문이 막히면서 고구려 후계론 논쟁도 그의 KO승으로 끝난다. 이는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을 일삼는 현대 중국의 억지주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이다.

거란의 진정한 침략 의도
 
“우리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있는 송나라를 섬기고 있는 까닭에 이번에 정벌하게 된 것이다. 만일 땅을 떼어 바치고 국교를 회복한다면 무사하리라.”
 
두 번의 KO패를 당한 소손녕은 서희에게 본심을 털어놓는다. 송과 손을 잡고 있는 고려를 자신들의 편으로 돌아 앉혀 혹시 있을 송과의 전면전에서 배후를 안정시키려는 것, 그것이 거란의 본래 목적이었던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기회를 찾지 않고, 기회를 창조한다. 서희는 소손녕에게 즉답을 하지 않고, 역으로 국교를 맺기 위해서는 여진을 내쫓고 그 땅을 고려가 차지해야 가능하다며 조건을 내걸었다.
 
“압록강 안팎도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그 중간을 점거하고 있어 육로로 가는 것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왕래하기가 더 곤란하다. 그러니 국교가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 탓이다. 만일 여진을 내쫓고 우리의 옛 땅을 회복하여 거기에 성과 보를 쌓고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가 통하지 않겠는가.”
 
이후 거란은 고려에서 철군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고려가 압록강 동쪽 280여 리의 영토를 개척하는데 동의한다는 답서까지 보내왔다. 결국 서희는 칼보다 날카로운 세치 혀로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지금은 과연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뛰어난 통찰력, 논리 정연한 언변, 예의와 당당함을 겸비한 협상 태도로 전무후무한 외교적 성과를 일궈낸 서희. 이후 그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을 몰아낸 뒤 흥화진(의주), 용주(용천), 통주(선천), 철주(철산), 귀주(귀성), 곽주(곽산) 등의 강동 6주에 성을 쌓아 이 지역을 고려 영토로 편입시켰다. 고구려 멸망 이후 처음으로 압록강을 국경으로 뒀다.
 
동서고금 최고의 병법가인 손자가 꼽은 최선의 병법은 바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전쟁의 영웅은 많지만 전쟁을 미리 막아낸 외교의 영웅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그의 담판은 어떤 장수의 전공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세치 혀로 강동6주를 획득한 외교와 협상의 달인 서희.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과 같은 한반도 위기 상황을 서희는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까. 냉엄한 국제현실 속에서 국익보다는 정파적 이익에 더 집착하는 대한민국 정치권에 대해서는 또 어떤 생각을 할까. 격동의 동북아 대립구도, 생존인가 침몰인가의 기로에서도 극한 대립과 갈등만을 반복하는 후손들의 모습은 과연 그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까. 서희와 같은 국제협상가, 서희와 같은 지혜로운 위정자가 절실한 시대다.

글=월간조선 뉴스룸

입력 : 201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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