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수항과 시집 《손으로 듣는 바다의 기척》
김정애 시인의 시는 유난히 ‘시적(詩的)’이다. 산문적 서술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단어와 문장은 마치 대패로 곱게 다듬은 나무결처럼 정제돼 있다. 조명제 평론가는 《손으로 듣는 바다의 기척》(현대시학사)을 두고 “결백한 언어의 시적 성취”라고 평했다. 시인은 일상에서 말할 때도 시어(詩語)가 쏟아질까.
김정애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환유적 인식이다. 사물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부분과 동작, 이미지로 세계를 포착한다. 풍경이나 사건을 한 번에 서술하기보다 몸의 움직임이나 미세한 징후를 통해 전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작은 동작과 감각의 흔적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자연과 인간의 기척이 하나의 장면으로 떠오른다. 이 같은 특징은 ‘봄의 경전’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길게 누워있는 망마산 자락
오밀조밀 피어나는 콩깍지
까치발로 기지개 켜는 춘란
바다 내음 쪼고 있는 갯가의 굽은 허리
예울마루 계단에서 훌쩍이는 어깨
섶을 열어놓은 채 움찔움찔 벌어지는 틈새의 시간
햇빛 내려오면 빛이 되어 어른거리다가
그늘 깊어지면 깊어지면서 나분거리다가
꽃비 쏟아지면 숨죽인 채 몸 열고
세기의 내면에서
퐁실퐁실 살아나는 틈새에서
오종종 펼쳐지는
경전을 듣는다
―‘봄의 경전’ 전문
시인은 망마산 자락과 갯벌 풍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까치발로 기지개 켜는 춘란’, ‘갯가의 굽은 허리’, ‘예울마루 계단에서 훌쩍이는 어깨’ 같은 신체 이미지로 풍경을 환유한다. 얼어 있던 땅이 풀리며 새싹이 돋는 순간도 ‘섶을 열어놓은 채 움찔움찔 벌어지는 틈새의 시간’으로 표현된다. 봄은 선언되는 계절이 아니라 작은 기척들이 모여 읽히는 ‘경전’이 된다.
‘달빛 아래’ 역시 환유와 상징이 결합된 시다.
외발로 서있는 왜가리 달빛을 펴고 있네
목발 사내는 만져지지 않는 다리를 긁고있네
나란하다는 건
반쪽이 된다는 것
뒤따르는 기울기까지 품어야 한다는 것
파도가 계절을 삼키던 날
바쁠 것 없는 봄을 거느리며
뒤따르는 기척을 놓쳤던 것
외마디 말보다 반쪽을 앞질렀던 것
달빛이 목발의 세월을 데려와
흔들림 없는 기척을 두고 가네
그녀를 데려간 봄을 놓고 가네
기울기 없이 살아가는 섬에서
나란함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느껴질 때
기울기는 기울기로 채워야 한다고
외발로 서 있는 왜가리 반쪽이 되어주기로 하네
―‘달빛 아래’ 전문
외발로 서 있는 왜가리는 목발을 짚은 사내로 비유된다. “나란하다는 건 / 반쪽이 된다는 것 / 뒤따르는 기울기까지 품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균형은 온전함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받아들이는 상태로 이해된다. 외발의 왜가리와 목발의 사내는 서로의 기울기를 비추는 존재가 된다.
이번 시집의 중심 작품인 ‘손으로 발로 듣는’에서는 감각의 확장이 두드러진다.
슬슬
관을 키워야겠다
손으로 듣는 연습을 해야겠다
매화가 들려주는 향기 만나러 가는 오후
산수유가 질러대는 아우성 달래줘야겠네
한나절 귀퉁이를 내줘야겠네
어쩌끄나
슬슬 판이 커지겠는데
저기 저 물려오는 새의 귀청
바다의 울렁임
두 귀에 넘쳐나는 사태를
온몸으로 터져나오는 환희를
손으로 발로 듣는 연습을 해야겠네
몸으로 듣고 보는 시늉을 해야겠네
아니
누가 나에게 귀를 좀 빌려다오
아니아니
손으로 발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천수관음을 알려다오
장구벌레 장구 치는 소리는 어느 짬에 즐겨보나
강물이 슬슬 몸을 여는 봄인데
―‘손으로 발로 듣는’ 전문
매화가 들려주는 향기와 산수유의 아우성을 귀로만 듣지 않는다. 손과 발, 몸 전체로 듣고 보려 한다. 오는 봄의 기척을 온몸, 온 정신, 온 감각으로 감지하려는 시인의 태도가 또렷하다.
김정애 시인의 작품에는 역사적 기억을 담은 시도 적지 않다. ‘탈춤의 젖’은 여수의 비극적 현대사를 탈춤의 장단 속에 불러낸다.
달빛이 손가락을 자르는 시간
어둠과 함께 살아나는 탈판 세상
오살헐 높 육살얼 돔 몸풀이가 시작돼 요
눈썹과 손가락을 낱낱이 치켜세워요
목구멍에 넘길 거라곤 군홧발에 짓이겨진 욕지거리와
칼바람 숭숭 대는 흰 고무신 겉껍질뿐
담장 너머로 불쑥불쑥 솟아나는 붉은 눈동자
손가락 종이 좌로 우로
심장 구를 찔러 대요
외세 권력 깔고 앉아 참새 떼 입을 막고
노예 사슬보다 두껍다는 빨갱이 딱지
자근자근 밟으면서 쾌자락을 불러요
신명지를 읊어 대요
동난(同亂)의 무명씨야
전설의 아구살이야
구봉산 까마귀야 날다람쥐야
부역자 꼬리표가 젖무덤 위에서 눈을 떠요
총종히 눈을 떠요
앞서며 뒤서며 손가락 춤을 춰요
눈물 콧물 범벅 치레가 돼요 탈세상이 돼요
쑥국새 울음이 마래산 산채를 둘러매고
맺고 풀리는 첩첩 열두 마당
할미는 까맣게 타버린 심장 모감지를 눈물로 씻고
동백 등짝을 모판 삼아 싹을 틔워요 한 바가지 쾌자락을 쏟아요
앙상한 부챗살 옆에 끼고
형제 무덤 건너 용골 쇄골 건너 건너
갈빗살 열어동고 젖을 물려요
칠십칠 년 견뎌 온 핏물 같은 젖을 물려요
젖을 물려요
―‘탈춤의 젖’ 중에서
‘단밥 한 그릇’, ‘암매장 소달구지’, ‘물속의 하얀 집, 애기섬’, ‘만성리 굴’, ‘동박새 넋이 되어’ 등도 같은 맥락의 작품들이다. 조명제 문학평론가는 “시인이 여수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의 장소성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국토 전체와 민족 전체에 불어닥친 참담한 역사이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김정애 시인은 2013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이후 시집 《꽃을 번역하는 저녁》, 《그 섬에 든 순간 너도나도 꽃이었지》를 펴냈다. 조명제 평론가는 “시집 《손으로 듣는 바다의 기척》에서 시인은 환유적 상상력과 다층적 의미 구조의 변주로 언어의 집을 새롭게 세운다”고 했다.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움직임을 시의 언어로 옮겨 놓으려는 시적 시도를 담았다. 여수의 바다에서 자라난 시인은 바다의 리듬 속에서 꽃잎이 밀어 올리는 세상의 미세한 징후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시를 길어 올린다.
시인의 감각은 일반인의 귀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고, 눈보다 먼저 손과 발이 움직인다. 그렇게 확장된 감각의 끝에서 시인은 바다와 봄, 그리고 역사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흔적을 건져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