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사람] 만공대선사 독립운동가 지정 추진하는 옹산스님 : 월간조선

4월 19일은 한국 종교사에 기억될 만한 고승(高僧)의 탄생일이다. 145년 전인 1871년 이날, 만공(滿空) 대선사가 태어났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음울했다. 나라는 저물고 있었고 일본은 조선에 이어 조선 불교마저 일본 불교에 병합하려는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그가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김일엽의 회고

일제강점기 조선 불교의 수호자였던 만공선사.

만공선사의 제자인 김일엽 스님은 1955년 8월 2일 《동아일보》에 ‘만공선사와 불교정화’라는 글을 기고했다. 김일엽은 “만공선사는 십 년 전에 작고하신 분으로 200년 만에 처음으로 출세하신 몇 분 선지식 중에 불법을 제일 널리 평등으로 알려주신 분이오, 오늘 와서 일대풍운을 갈무리고 잠자던 용(龍)의 트림으로 일체우주적 혁명인 불교부흥운동의 활기성도 만공스님이 깨치신 법력인 것은 공인되는 바이다”라고 썼다.

다음은 김일엽이 같은 글에 남긴 기록이다. “삼십본산 주지들은 불교진흥책을 궁리하기는커녕 미나미 총독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역대 총독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만 만공선사는 총독부가 떠나가게 대갈일성을 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 주지들은 무엇 때문에 역대 총독을 그리 칭송하는가. 수행하는 중 하나를 파계시켜도 지옥고를 면할 길이 없다는데 그들은 적어도 칠천승려의 계를 다 깨뜨려주었는데 그 은혜가 그리 고마워서인가? 처자를 먹여 살리노라 삼보(三寶)의 물건을 도적질하지 않을 수 없는 도적단을 만들어준 그 공이 못잊혀서인가? 천년 넘는 조선 불교를 일본 불교화시켜 준 그 일이 그리 반가와서인가? 만공선사께서 이리 말씀하시는데 비겁한 무리인 그들 중 한 사람은 얼굴에 혈색이 다 거두어지도록 무서움에 떨면서 스님의 말씀을 가로막아 ‘여기가 어느 존전(尊前)이라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냐’며 도리어 나무래는 것이었다(…).”

만공선사의 비화

제7차 만공대선사 학술대회가 2015년 9월 수덕사 황하정루에서 열렸다.

만공대선사는 어릴 적부터 이적(異跡)을 몰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북 태인읍 상일리에서 태어났는데 아명이 바우였다. 아버지 송신통(宋神通)은 바우가 두 살 때 이런 예언을 남겼다. “이 아이는 속세에 살면서 세속의 일을 할 아이 같지가 않아…. 불문(佛門)에 들어 고승이 될 것 같아.” 신통하게도 이 말은 적중했다.

바우는 13세 때 어머니와 함께 전북 김제 금산사(金山寺)에 갔다. 금산사는 충북 보은의 법주사와 함께 우리 미륵신앙의 양대 중심지다. 미륵 부처는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후 56억7000만 년 후 사바세계에 강림한다는 분이다. 미륵불을 본 순간 바우는 기쁨에 들떠 소리를 지르며 부처님께 세 번을 절했다고 한다.

이후 바우는 어머니에게 금산사에 가자고 자주 졸랐다. 이유를 묻자 이러는 것이었다. “꿈에 미륵 부처님이 나타나 절 업어주셨어요.” 바우는 열네 살 때 출가해 태인 봉서사, 논산 쌍계사, 공주 동학사를 거쳐 서산 천장암에서 경허(鏡虛)선사와 조우한다. 한국 불교를 지킨 두 수호자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그런 만공선사를 되살리려 작년부터 애쓰는 이가 있다. 덕수총림 수덕사 주지를 지낸 옹산(翁山)스님이다. 경허만공선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만공대선사께서는 마땅히 독립운동가로 대우받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국가보훈처가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만공선사의 맥을 잇는 인물로 항렬로 따지면 사손(師孫) 관계다.

원불교 사전과 인터넷에는 만공선사 독립운동가로 인정

— 왜 만공선사가 독립운동가가 돼야 합니까.

“1937년 3월 11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그날 조선총독부에서 회의가 열렸어요. 참석자는 조선 13개 도지사와 31개 본산(本山) 주지였습니다. 주제는 ‘조선 불교 진흥’이었고요.”

— 총독부에서 어떻게 조선 불교를 진흥하겠다는 겁니까.

“허울만 그럴듯했지 한국 불교를 처(妻) 끼고 고기 먹는 일본 불교처럼 만들어 민족정신을 말살하겠다는 흉계였습니다. 이런 일제의 야욕을 한마디 할(喝)로 무산시킨 것이 만공선사이십니다.”

— 당시 조선총독이 불교의 내선일치(內鮮一致)를 장황하게 외치는 미나미지로(南次郞)였지요.

“미나미지로뿐 아니라 그 자리에는 경무총감도 참석했습니다. 경무총감이 무슨 자리입니까.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우두머리였습니다. 하필 그는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寺內正毅)의 아들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 미나미 총독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조선 불교가 과거에 고유한 역사를 가졌다고 하나 현재는 부패하였으므로 이를 혁신하려고 했던 데라우치 전 총독의 공은 막대하다. 승려들이 도성을 출입하게 된 것은 다 전임 총독님의 사찰령 선포에 따른 은전이라고 볼 수 있는바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일본 불교와 조선 불교가 합해져야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궤변이었지요.”

미나미 혼낸 후 전 국민이 흠모해

— 은근한 협박 같은데 분위기가 살벌했겠습니다.

“총독뿐 아니라 치안 책임자까지 불교 진흥을 논하는 자리에 나타난 것은 여차하면 잡아넣겠다는 무언의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당시 마곡사 주지를 맡고 있던 만공대선사께서 일할(一喝)을 했습니다. ‘청정(淸淨)이 본연(本然)하거늘 어찌하여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나왔는가’라고요.”

— 그게 무슨 뜻입니까.

“청정이 본연하다는 것은 우리 조선사람들도 너희 일본사람들도 다 태어날 때는 선하게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자연스럽게 놔두면 될 텐데 갑자기 왜 산과 강과 대지를 말하느냐, 본디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왜 산하대지가 생겼느냐고 꾸짖은 겁니다. 이것은 1500년 역사의 한국 불교를 일본 불교와 합칠 순 없다는 뜻이었지요.”

— 조선총독의 가슴이 뜨끔했겠습니다.

“만공선사의 불호령은 이후에도 계속됐어요. ‘전 총독(데라우치)은 조선 승려들을 파계시킨 죄인이다. 그는 지금 죽어 무간아비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조선 불교를 진흥시키려면 수행을 통해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수밖에 없다. 총독부는 간섭하지 말고 우리에게 맡기는 것만이 유일한 진흥책일 것이다!’라는 말까지 하셨지요.”

—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총독은 부들부들 떨며 ‘마곡사 송만공 주지는 조금 전에 내뱉은 망언을 당장 취소하라’고 했지요. 하지만 만공선사께서 거듭 ‘조선 불교를 진정으로 진흥코자 한다면 간섭하지 말고 그냥 조선 승려들에게 맡겨두시오’라고 하자 총독과 경무총감은 식은땀을 흘렸고 이미 일본 불교에 넘어간 다른 본사 주지들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훗날 박해당 서울대 규장각 연구원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31개 본사 주지 중 끝까지 창씨개명에 저항한 이는 만공선사뿐이었습니다. 이 일은 크게 알려졌지요.”

만해 한용운의 독립운동도 자금 지원

만공선사의 제자인 김일엽 스님을 비롯해 당대의 명사들의 스토리가 남아 있는 수덕여관.

— 어떻게요?

“얼마 뒤 만해(卍海·한용운)스님이 만공을 찾아와 이런 화두를 던졌다고 합니다. ‘나는 조각은 어느 곳에 떨어졌는가.’ 만공선사는 이렇게 받았지요. ‘거북털과 토끼의 뿔이로다.’ 그러자 만해스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장하도다. 사자후(獅子吼)여, 총독의 간담을 떨어뜨렸구나. 한번 할을 하매 여우 새끼들의 간담이 서늘하였도다. 그런데 한 방망이 후려침이 더 좋지 않았을까?’라고요.”

— 점잖게 꾸짖기보다 무력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인 거 같습니다.

“그 말에 만공선사는 껄껄대며 대꾸했습니다. ‘이 사람아, 곰은 방망이를 쓰지만 사자는 일갈을 사용한다네’라고요.”

— 그 유명한 만해스님이 졸지에 곰이 됐네요.

“그렇지요. 만해스님은 웃으며 돌아간 지 얼마 뒤 만공선사에게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보냈습니다. ‘남아가 이르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님처럼 근심하며 지냈던고/ 한소리 큰 할에 삼천대천세계를 깨뜨리니/ 눈속에 복사꽃 조각조각 날리네.’”

— 미나미지로야 그렇다 치고 데라우치의 아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자기 아버지가 무간지옥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회의에서 일본 헌병이 만공선사를 제지하려고 칼까지 빼들었지만 총독이 만류했고 회의가 끝난 후 씩씩대는 경무총감에게 미나미지로는 오히려 진승(眞僧), 즉 참된 스님을 어설프게 잘못 건드리면 조선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말렸습니다. 그들은 스님을 탄압하는 대신 오히려 회유하려고 했습니다.”

— 어떻게요?

“일본 정부가 돈을 댈 테니 일본 유람을 하라고 당시 충남도지사를 통해 권유했는데 만공스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지요. ‘나라 잃은 백성은 송장이나 다름없네. 송장을 데려다가 일본 천지를 돌아다니도록 하여 ‘자, 보아라. 저자들이 바로 조선 불교계의 송장들이다’ 하며 구경시키자는 건데 내 어찌 그런 망신을 당하러 일본에 간단 말인가’라고요. 사실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조선총독부는 이때 큰 충격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 그게 뭡니까.

“1940년 9월 25일에 인쇄돼 그해 10월 1일 발간된 조선총독부 시정(施政) 30년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조선 불교의 진흥에 관해서는 시정 이래 시종일관 보호 선도에 힘쓰고 있는 중이지만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한 유감이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 일본인들의 어법을 감안하면 큰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명대사와 만공선사

수덕사 수연스님은 올해 아흔을 넘긴 노스님으로 만공스님의 독립운동 참여 내용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다.

—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께서 적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배로 삼을 것이 있다면 당신의 머리뿐’이라고요. 조선총독부가 31개 본산 주지를 모아놓고 조선 불교의 일본화를 도모하려 했을 때 만공선사께서 분연히 단상에 올라 외친 할은 사명대사가 가토에게 한 말보다 더 격렬한 정신적 폭탄 투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지요?”

— 잘 알려진 속담이지요.

“적과 싸울 때는 상대방의 사기를 꺾어놓아야 합니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정책이 무르익을 때 만공선사께서 한 역할은 이른바 ‘다 된 밥’에 재를 끼얹은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말 한마디로 나라의 자존을 지키고 일본의 사기를 꺾은 거지요.”

— 사실 만공스님은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선정되셨지요?

“만해스님이 만공선사도 모시려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만공스님이 계시던 곳은 시골이어서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누락됐다고 해요. 참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선학원(禪學院) 설립은 만공스님이 얼마나 항일지사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선학원은 어떤 기관인가요.

“일제의 조선 불교 말살에 항거해 독자적인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구심체였습니다. 이 선학원 설립을 주도하신 분이 바로 만공선사이십니다. 1941년 일본의 식민 불교 정책에 맞서 한국 불교의 고수 투쟁을 선언한 선학원 고승대회를 만공선사께서 주도하셨는데 이때 남긴 유명한 게송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망(亡)에 망이 없으면 망이 곧 진(眞)이요, 진에 진이 있다면 진이 곧 망이로다!’라는 말씀입니다.”

— 만공스님이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신 일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만공스님은 서울에 가는 길이면 만해 한용운 스님을 늦은 시각 삼청공원에서 만나 독립운동자금을 건네줬어요. 이에 대해서는 수연스님의 증언이 있습니다.”

구십 세를 넘긴 수연스님은 평소 만공선사의 수제자였던 원담스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우리 노스님(만공)이 실제로 숨어 있는 독립운동가야. 노스님이 한양에 가실 때 내가 모시고 다녔잖아. 총독부 회의에 참석했던 날도 그렇고 선학원 고승대회에 참석했을 때도 그랬다고.”

2008년 입적한 원담 수덕사 방장은 “밤에 삼청공원에서 만공스님이 만해스님에게 독립자금이 든 봉투를 건네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이뿐 아니라 만공스님은 의친왕을 비롯해 김좌진 장군 등과도 깊이 교류하며 독립을 위해 애국애족 정신으로 살았던 선사”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불교신문》 등에 보도됐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국가보훈처

수덕사 견성암은 비구니의 도량으로 유명하다. 만공스님과 비구니들이 기념촬영한 모습.

옹산 전 수덕사 주지가 만공선사를 독립유공자로 만들겠다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 1만6000명을 새롭게 정립하겠다고 한 발언 때문이다. 그해 4월 옹산스님은 경허만공선양회장으로 추대됐는데 바로 5월 신청서를 국가보훈처에 냈다.

— 그런데 왜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습니까.

“참, 제가 할 말이 많은데 그걸 다 털어놓을 수는 없고. 한마디로 국가보훈처장이 만공스님이 누군지도 모르더라고요.”

— 만공스님을 몰라요?

“그런 분이 있는지도 모르고 제가 하는 일을 불교계의 일로 치부하는데 저는 결코 불교계를 위해 만공선사의 업적을 알리려고 나선 것이 아닙니다.”

— 혹시 국가보훈처장이 기독교인이라서 그런 건 아닌가요.

“그럴 리는 없겠지요. 사실 국가보훈처장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 다른 사람들도 그렇습니까?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회정무위원장·보훈처장·독립기념관장에게도 지원을 요청했지만 모두가 만공선사의 업적 자체를 잘 몰라요. 그 사람들이 바빠서 그런 건지 만공선사 독립운동가 선정이 자신들의 이익과 관계없어서 그런 건지 성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응대에 제가 화낼 순 없지만 만공선사의 가치 자체를 모르는 이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섭섭합니다. 광복을 맞은 지 이제 70년 넘었는데 이렇게 역사를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옛말에 이런 게 있지요. ‘편안한 집안에 상(賞) 줄 일 없다’고.”

— 그게 무슨 뜻입니까.

“편안하면 상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조심하는 집안에는 우환이 있을 리 없고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독립유공자를 새로 정립하겠다고 하신 것을 전 이렇게 이해합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돼야 할 분이 빠지는가 하면 독립유공자가 돼선 안 될 사람이 들어간 경우도 있으니 바르게 고치자는 취지 아니겠어요? 그런데 국가보훈처가 너무 형식에 얽매여 있어요.”

— 어떤 형식에 얽매여 있다는 겁니까.

“체포나 복역기록이 없으면 독립유공자가 아니라는 식이지요. 그건 너무나도 야만적인 발상입니다. 그렇다면 비폭력 저항운동을 주도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인도 독립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봐야 합니까? 저는 윤봉길, 이봉창 의사나 김좌진 장군처럼 총과 칼과 폭탄과 대포로 독립운동을 한 분들도 의미가 있지만 정신력으로 일제를 꺾은 것도 그에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체포나 복역기록이 없다고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선정이 안 된 겁니까.

“처음에는 그러다가 지금은 많이 풀렸어요. 그래서 지난 3·1절 때도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도 긍정적인 말들이 오갔고요. 그런데 3·1절 때 독립운동가 선정에 실패했고 최근에 국가보훈처 직원이 수덕사에 들러 뭔가를 놓고 갔어요. 그 사람이 놓고 간 자료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 뭘 놓고 갔는데요.

“친일 신문으로 유명한 《매일신보》 1941년 3월 5일자 기사를 복사한 것이었어요. ‘불문신체제 고승수양법회(佛門新體制高僧修養法會)’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자세히 읽어보니 기사 가운데 ‘위령제를 지낼 터이다’라는 대목이 있더군요.”

—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아마 보훈처에서는 만공선사께서 고승수양법회의 행사 가운데 일본군들이 사망한 것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리는 데 참석하지 않았겠느냐, 이리 보는 거 같아요. 즉 일본군 위령제에 나가면 친일행동한 게 아니냐는 거겠지요.”

—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말도 안 되는 논리적 비약이지요. 일단 《매일신보》 기사에 나오는 법회는 숨진 일본군의 혼령을 위로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부처님이 남긴 말씀을 실천하고 한국불교전통을 회복하려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법회에서는 계율을 강조하는 ‘범망경’과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 담긴 ‘유교경’을 설법하고 참회를 다짐하는 자비참 행사를 했지요. 그 후 법회의 정신을 추진할 전위조직으로 ‘범행단’도 결성했고요.”

— 증거가 있나요?

“수필가로도 유명한 김일엽 스님이 남긴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행사 식순에 위령제가 포함된 것은 법회를 추진한 실무자들이 알아서 결정한 거지, 고승들이 일일이 무슨 행사를 하라 마라 하지를 않거든요. 불교에서는 관례상 큰스님, 도인들은 행사의 참여 여부와 법문에 대해서만 응낙하지 위령제 같은 데는 신경을 쓰지도 않습니다. 동국대 김광식 교수께서 이것을 잘 지적해 주셨어요.”

— 뭐라고 했는데요.

“‘법회의 역사적 의의와 만공스님의 독립정신에 흠결이 될 수 없다’고요.”

— 옹산스님 혼자 하시기 벅찬 거 같은데 왜 조계종 전체가 나서지 않는 겁니까.

“전 만공스님의 기록만 보면 당연히 독립운동가로 지정될 줄 알았어요. 만일 조계종 전체가 나서면 국민들이 ‘불교계…’라는 식으로 볼 거 같았습니다. 전 만공스님이 불교인이라서 이렇게 나서는 게 아닙니다. 그분의 활동만 보면 종교를 떠나 그냥 애국지사인 거예요. 그런데 제가 순진했다는 것을 지금 많이 깨우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가 선정을 너무나 형식적으로 하는 사실도 알았고요.”

김광식 동국대 교수, 국가보훈처에 반론

만공선사가 독립을 기원하며 기도를 드렸던 서산 간월암.

김광식 동국대 교수는 국가보훈처에 다음과 같은 의견서를 보냈다.

“본인은 2015년 12월경 국가보훈처에 만공스님이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그런데 만공스님 보훈심사 결과, 1937년 2월 27일의 총독부에서의 ‘선기발로(禪機發露)’ 사건에 나타난 민족의식은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지만 1941년 3월 4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선학원에서 개최된 고승법회의 식순에 포함된 위령제와 1941년 4월에 출범한 조계종의 고문이라는 사실로 (독립운동가 지정이) 보류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그런 내용(위령제, 조계종 고문)이 만공스님의 독립운동가 지정에 장애가 될 수 없음을 피력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광식 교수는 만공스님이 조계종 종무고문이 된 데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만공스님이 1941년 4월 조계종 출범 시 종무고문이었음은 그해 12월에 발간된 ‘불교’ 신 31집에 나옵니다. 그러나 고문은 종무원직사에 포함되지 않았던 직이었고 만공스님은 해방되기 전까지 조계종의 회의, 행사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고 관련된 기록이 없습니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공스님은 오로지 수덕사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독립을 갈망하였습니다. 간혹 서울에 가면 한용운을 만나 나라를 걱정하였습니다. 이는 만해스님 따님의 회고기록에 나옵니다. 그리고 독립을 갈망하는 천일기도를 간월암에서 하였는데 기도를 마치고 나온 날이 1945년 8월 15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변영만이 그 소식을 듣고 만공스님을 찾아가 제자 되기를 자청하였다는 내용이 만해스님에게 10년간 배운 불자인 김관호의 회고기록에 나옵니다.

만공스님의 고문 위촉은 만공스님에게 동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 중인 당시 총독부 자료에 나오고 이를 근거로 한 본인의 논문에서도 밝혔지만 그는 일제당국과 종정(방한암) 간의 면담 과정에서 추가로 편입된 것입니다. 만공스님은 민족의식으로 종무고문의 진용에 처음에는 포함되지 않아 종정인 한암스님이 만공스님의 후배이기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때문에 만공스님의 동의를 받지 않았고 일체의 종단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내용은 만공스님의 독립정신에 대한 흠결이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