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리조나 운동전문 스포츠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한 덕택에 프로야구와 인연
⊙ 스포츠의학은 관련 학문 공부와 더불어 실습이 매우 중요
⊙ 스포츠의학은 관련 학문 공부와 더불어 실습이 매우 중요
- 경기 전 다저스 구단의 다른 트레이너들과 함께 경기를 준비하는 팔소니.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는 총 30개의 구단이 있다. 그중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팀은 단연 LA 다저스이다. 다저스는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뿐만 아니라 서재응과 최희섭 등 가장 많은 한국인 선수를 보유했던 팀이다.
작년 12월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투수이자 일명 ‘괴물투수’로 불리는 류현진도 6년 총액 3600만 달러(한화 390억원)에 계약하며 다저스에 입단했다. ‘류현진 효과’로 인해 향후 한국 내에서 다저스 구단의 인기와 인지도는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LA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전체 30개 구단 중 가장 진보적인 팀으로 유명하다.
다저스는 지난 1947년 백인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메이저리그에 최초로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을 영입했다. 이 일로 인해 ‘백인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야구의 역사를 바꿨다면 흑인 재키 로빈슨은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다저스 구단의 흑인선수 영입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여성 부단장을 영입한 것은 물론 연고지인 LA 지역의 다인종 및 다문화를 고려해 복수의 동양인 직원을 채용하는 등 그들의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인사문화는 확실히 다른 구단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주었다.
다저스의 가장 파격적인 인사는 지난 2011년 12월에 일어났다. 여성인 수 팔소니(Sue Falsone)를 수석트레이너로 임명한 것.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로 불리는 NFL(프로미식축구), NBA(프로농구), MLB(프로야구), NHL(프로아이스하키) 역사상 여성이 수석트레이너 자리에 오른 것은 팔소니가 최초여서 당시 그녀는 미국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실제로 작년 봄 스프링캠프(춘계훈련) 때 다저스의 간판선수들보다 그녀를 취재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프로미식축구를 좋아한 소녀, 불가능을 품다
뉴욕 버펄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팔소니는 어려서부터 그 지역 프로미식축구 팀인 버펄로 빌스를 무척 좋아했고 장차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팔소니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여성이 프로구단에서 전문 직업을 갖는 게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제게 ‘너는 할 수 있으니 도전해 보라’며 늘 격려해 주셨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팔소니는 또 “걸음마를 배우기 전부터 수영을 했을 만큼 선천적으로 운동을 좋아했다. 학창시절 내내 육상과 축구선수로 뛰는 등 늘 활발하게 지냈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며 활발하게 성장하던 그녀의 마음에는 늘 ‘버펄로 빌스 구단에 입사하겠다’는 꿈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팔소니는 장차 정형외과 의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로를 수정해야만 할 일이 발생했다.
“고등학교 시절 장차 정형외과 의사가 되려고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축구를 하다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을 당해 재활센터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부상당한 선수들을 정성껏 돌봐 그들이 다시 경기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저로 하여금 칼을 든 외과의사 대신 스포츠의학 쪽으로 진로를 수정하게 만들었죠.”
결국 그녀는 대학(Daemen college)에서 운동선수들의 행동발달과 물리치료 등을 공부하는 PT(피지컬 트레이닝·physical training) 분야를 전공한 뒤 대학원(Univ. of North Carolina)에 진학해 스포츠의학을 공부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속된 불운에 맞선 엉뚱하고 용감한 실천
긴 시간 어려운 공부를 했지만 그녀의 오랜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행에서 빌려 쓴 학자금 대출 빚과 무직자라는 답답한 현실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오랜 시간 연인 사이로 지내던 남자친구와 헤어져 이별의 아픔 또한 그녀를 괴롭혔다.
“2001년 어느 날이었어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남자친구와도 헤어져 실의에 빠져 있는데 친하게 지내던 고향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녀에게 심란한 내 처지를 말하고 돌파구를 찾고 싶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바로 다음 날 제가 살던 노스캐롤라이나로 날아왔죠. 그러고는 추운 지방에 있으면 괜히 마음만 더 심란해지니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날 바로 친구와 함께 짐을 꾸려 차를 몰고 따뜻한 애리조나로 떠났죠. 하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녀의 이런 즉흥적인 행동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당초의 꿈으로 인도한 결과를 낳았다.
애리조나에 도착한 팔소니는 그곳에서 피지컬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실은 비록 녹록지 않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당시에 유명했던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애리조나에 있는 운동전문 스포츠센터 ‘Athletes Performance’에서 재활 중인 것을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무작정 Athletes Performance를 찾아갔죠. 보수는 필요 없으니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원봉사 식으로 일을 했고 수개월 후에 실력을 인정받아 정직원이 될 수 있었죠.”
가끔은 엉뚱하게 때로는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던 그녀의 인생에 ‘Athletes Performance’에서 일하게 된 것은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팔소니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지금은 LA 다저스의 중심타자이자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안드레 이디어를 비롯해 다수의 야구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은 대학생 신분으로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전문적인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팔소니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고 그 후 프로선수가 되어서도 꾸준히 그녀를 찾아와 운동프로그램에 대한 상담과 관리를 부탁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특히 이디어의 경우 지난 2011년 무릎 부상 때문에 수술을 고려하고 있을 때 당시 출장 중이던 팔소니가 돌아와 자신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때까지 수술을 유보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신뢰가 무척 깊다.
LA 다저스 구단과의 만남
이처럼 팔소니가 현역 프로선수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며 평판이 좋자 다저스 구단 관계자는 지난 2007년 팔소니의 직장으로 찾아와 그녀에게 다저스 구단 선수들을 위한 운동프로그램을 제작해 줄 것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상담과 조언 등을 건네는 컨설턴트 자격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2008년도부터는 스프링캠프에도 참여하는 등 점차 현장에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결국 2011년 10월, 다저스 구단의 수석트레이너 자리에 오르며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트레이너’라는 역사를 쓰게 되었다.
이에 팔소니는 “여성 수석트레이너라는 직함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며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나로 인해 스포츠의학 분야에서 일하고픈 여성들이 늘어났고 특히 많은 여학생으로부터 자신의 롤모델이 되어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해 다저스의 스프링캠프를 방문했을 때 당시 그녀를 보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던 한 여학생은 자신의 방에 두 명의 야구스타 사진이 걸려 있는데 하나는 안드레 이디어이고 다른 하나는 팔소니의 사진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일반인 특히 여성들의 관심은 매우 크다. 수석트레이너가 된 지 1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녀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많은 여학생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여학생과 일반인들은 팔소니가 스포츠 현장 전면에 등장한 것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보냈지만 한쪽에서는 ‘과연 연약한 여성이 한 해에 162경기나 치러야 하는 긴 야구시즌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들보다 더 섬세하고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녀를 향한 구단과 선수들의 신뢰는 더 깊어졌다. 대학원에서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현장에서 쌓은 풍부한 임상경험이 많은 이들이 그녀를 ‘업계 최고’라고 인정하는 이유이다.
꿈의 대가로 포기한 사생활 ‘그래도 행복하다’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그녀를 향한 선수와 구단의 신뢰는 커졌지만 그럴수록 정작 그녀의 사생활은 없어졌다. 스프링캠프 기간은 물론 일단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그녀를 위한 시간은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보통 저녁 7시 경기라면 그녀는 낮 12시쯤 경기장에 도착해 서류 정리 등의 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후 1~2시쯤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선수들의 몸 상태 등을 관리하며 본격적인 트레이너 업무를 수행한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제일 마지막에 퇴근하는데 보통 밤 12시쯤 된다고 한다. 시즌 중 경기가 없는 날도, 선수는 쉴 수 있지만 트레이너는 부상선수들을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쉬지 못한다.
팔소니는 “시즌 중에 트레이너가 쉴 수 있는 시간은 원정경기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유일할 만큼 여유가 없다. 그래서 가급적 잘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고 한다. 특히 트레이너는 선수들의 육체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때론 그들의 고충과 심리상담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항상 최고의 심신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긴 시즌을 치르기 위해서는 트레이너 또한 체력이 좋아야 하며 그래서 틈날 때마다 요가를 하며 체력을 유지한다. 젊었을 때는 조깅을 하며 체력을 관리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 뛰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팔소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39세다.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인지 그녀는 아직 미혼이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연애할 시간을 얻으려면 부상선수가 없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웃으며 “좋은 지적이다. 그래야 하고 그게 또 내 임무이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야구장 내 라커룸에 가면 경기를 전후해 간혹 선수들이 알몸으로 다닐 때가 있는데 여성 트레이너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하자 “남자와 여자를 떠나 트레이너와 선수는 상호존중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프로이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일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명쾌하게 말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 류현진과의 인연
다저스의 올 시즌 스프링캠프 공식개장일은 2월 13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전부터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선수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기자가 지난 2월 1일 다저스의 스프링캠프에서 개인훈련을 시작한 ‘괴물투수’ 류현진을 취재하러 갔을 때 팔소니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 류현진이 투구연습을 시작하자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 투구과정을 촬영하는 등 유심하게 지켜보았다. 그녀는 류현진 이전에도 한국선수와의 인연이 있다. 지난 2008년 박찬호가 초청선수 자격으로 다저스 구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는데 그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고 했다. 팔소니에게 또 다른 한국투수인 류현진을 처음 본 소감을 묻자 “기대가 크다”고 했다. 기자가 그녀에게 류현진에 대한 한국 팬들의 관심과 인기를 설명하자 “그럼 한국 팬들을 위해서라도 류현진을 더 잘 돌봐줘야겠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팔소니는 이어 “류현진과 다저스가 올 한 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한국야구 팬들이 많이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팔소니는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 그 스포츠센터의 부사장 직책도 겸하고 있다. 스프링캠프를 기점으로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늘 다저스 구단과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즌 중에는 전화나 이메일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해 그곳의 업무를 보고 시즌이 끝나면 애리조나로 이동해 스포츠센터에 출근한다. 그녀를 찾는 이들은 비단 야구선수뿐만 아니라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다양하다.
업계에서 소문난 일 벌레로 알려진 그녀에게 바쁜 일정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좋아하는 일 특히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일을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늘 즐겁다.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스포츠의학이나 재활 등에 관심 있는 여성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스포츠의학은 매우 흥미로운 분야입니다. 특히 프로스포츠 산업은 갈수록 성장하기 때문에 향후 발전 가능성도 크고 이에 대한 수요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에서 관련 학문을 전공하려면 일반적인 대학생활의 낭만이나 재미는 포기해야 할 만큼 공부와 실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또 그것을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도 매우 큽니다.”
팔소니는 프로야구단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의 프로스포츠팀들에도 영입대상 0순위로 꼽힐 만큼 인기가 높다.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트레이너가 된 수 팔소니.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작년 12월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투수이자 일명 ‘괴물투수’로 불리는 류현진도 6년 총액 3600만 달러(한화 390억원)에 계약하며 다저스에 입단했다. ‘류현진 효과’로 인해 향후 한국 내에서 다저스 구단의 인기와 인지도는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LA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전체 30개 구단 중 가장 진보적인 팀으로 유명하다.
다저스는 지난 1947년 백인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메이저리그에 최초로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을 영입했다. 이 일로 인해 ‘백인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야구의 역사를 바꿨다면 흑인 재키 로빈슨은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다저스 구단의 흑인선수 영입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여성 부단장을 영입한 것은 물론 연고지인 LA 지역의 다인종 및 다문화를 고려해 복수의 동양인 직원을 채용하는 등 그들의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인사문화는 확실히 다른 구단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주었다.
다저스의 가장 파격적인 인사는 지난 2011년 12월에 일어났다. 여성인 수 팔소니(Sue Falsone)를 수석트레이너로 임명한 것.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로 불리는 NFL(프로미식축구), NBA(프로농구), MLB(프로야구), NHL(프로아이스하키) 역사상 여성이 수석트레이너 자리에 오른 것은 팔소니가 최초여서 당시 그녀는 미국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실제로 작년 봄 스프링캠프(춘계훈련) 때 다저스의 간판선수들보다 그녀를 취재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프로미식축구를 좋아한 소녀, 불가능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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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저스 중심타자 맷 캠프와 수석트레이너 수 팔소니. |
팔소니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여성이 프로구단에서 전문 직업을 갖는 게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제게 ‘너는 할 수 있으니 도전해 보라’며 늘 격려해 주셨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팔소니는 또 “걸음마를 배우기 전부터 수영을 했을 만큼 선천적으로 운동을 좋아했다. 학창시절 내내 육상과 축구선수로 뛰는 등 늘 활발하게 지냈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며 활발하게 성장하던 그녀의 마음에는 늘 ‘버펄로 빌스 구단에 입사하겠다’는 꿈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팔소니는 장차 정형외과 의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로를 수정해야만 할 일이 발생했다.
“고등학교 시절 장차 정형외과 의사가 되려고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축구를 하다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을 당해 재활센터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부상당한 선수들을 정성껏 돌봐 그들이 다시 경기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저로 하여금 칼을 든 외과의사 대신 스포츠의학 쪽으로 진로를 수정하게 만들었죠.”
결국 그녀는 대학(Daemen college)에서 운동선수들의 행동발달과 물리치료 등을 공부하는 PT(피지컬 트레이닝·physical training) 분야를 전공한 뒤 대학원(Univ. of North Carolina)에 진학해 스포츠의학을 공부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속된 불운에 맞선 엉뚱하고 용감한 실천
긴 시간 어려운 공부를 했지만 그녀의 오랜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행에서 빌려 쓴 학자금 대출 빚과 무직자라는 답답한 현실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오랜 시간 연인 사이로 지내던 남자친구와 헤어져 이별의 아픔 또한 그녀를 괴롭혔다.
“2001년 어느 날이었어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남자친구와도 헤어져 실의에 빠져 있는데 친하게 지내던 고향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녀에게 심란한 내 처지를 말하고 돌파구를 찾고 싶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바로 다음 날 제가 살던 노스캐롤라이나로 날아왔죠. 그러고는 추운 지방에 있으면 괜히 마음만 더 심란해지니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날 바로 친구와 함께 짐을 꾸려 차를 몰고 따뜻한 애리조나로 떠났죠. 하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녀의 이런 즉흥적인 행동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당초의 꿈으로 인도한 결과를 낳았다.
애리조나에 도착한 팔소니는 그곳에서 피지컬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실은 비록 녹록지 않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당시에 유명했던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애리조나에 있는 운동전문 스포츠센터 ‘Athletes Performance’에서 재활 중인 것을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무작정 Athletes Performance를 찾아갔죠. 보수는 필요 없으니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원봉사 식으로 일을 했고 수개월 후에 실력을 인정받아 정직원이 될 수 있었죠.”
가끔은 엉뚱하게 때로는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던 그녀의 인생에 ‘Athletes Performance’에서 일하게 된 것은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팔소니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지금은 LA 다저스의 중심타자이자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안드레 이디어를 비롯해 다수의 야구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은 대학생 신분으로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전문적인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팔소니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고 그 후 프로선수가 되어서도 꾸준히 그녀를 찾아와 운동프로그램에 대한 상담과 관리를 부탁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특히 이디어의 경우 지난 2011년 무릎 부상 때문에 수술을 고려하고 있을 때 당시 출장 중이던 팔소니가 돌아와 자신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때까지 수술을 유보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신뢰가 무척 깊다.
LA 다저스 구단과의 만남
이처럼 팔소니가 현역 프로선수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며 평판이 좋자 다저스 구단 관계자는 지난 2007년 팔소니의 직장으로 찾아와 그녀에게 다저스 구단 선수들을 위한 운동프로그램을 제작해 줄 것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상담과 조언 등을 건네는 컨설턴트 자격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2008년도부터는 스프링캠프에도 참여하는 등 점차 현장에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결국 2011년 10월, 다저스 구단의 수석트레이너 자리에 오르며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트레이너’라는 역사를 쓰게 되었다.
이에 팔소니는 “여성 수석트레이너라는 직함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며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나로 인해 스포츠의학 분야에서 일하고픈 여성들이 늘어났고 특히 많은 여학생으로부터 자신의 롤모델이 되어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해 다저스의 스프링캠프를 방문했을 때 당시 그녀를 보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던 한 여학생은 자신의 방에 두 명의 야구스타 사진이 걸려 있는데 하나는 안드레 이디어이고 다른 하나는 팔소니의 사진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일반인 특히 여성들의 관심은 매우 크다. 수석트레이너가 된 지 1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녀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많은 여학생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여학생과 일반인들은 팔소니가 스포츠 현장 전면에 등장한 것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보냈지만 한쪽에서는 ‘과연 연약한 여성이 한 해에 162경기나 치러야 하는 긴 야구시즌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들보다 더 섬세하고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녀를 향한 구단과 선수들의 신뢰는 더 깊어졌다. 대학원에서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현장에서 쌓은 풍부한 임상경험이 많은 이들이 그녀를 ‘업계 최고’라고 인정하는 이유이다.
꿈의 대가로 포기한 사생활 ‘그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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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당한 다저스의 중심타자 맷 캠프를 데리고 나오는 수 팔소니. |
팔소니는 “시즌 중에 트레이너가 쉴 수 있는 시간은 원정경기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유일할 만큼 여유가 없다. 그래서 가급적 잘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고 한다. 특히 트레이너는 선수들의 육체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때론 그들의 고충과 심리상담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항상 최고의 심신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긴 시즌을 치르기 위해서는 트레이너 또한 체력이 좋아야 하며 그래서 틈날 때마다 요가를 하며 체력을 유지한다. 젊었을 때는 조깅을 하며 체력을 관리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 뛰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팔소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39세다.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인지 그녀는 아직 미혼이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연애할 시간을 얻으려면 부상선수가 없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웃으며 “좋은 지적이다. 그래야 하고 그게 또 내 임무이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야구장 내 라커룸에 가면 경기를 전후해 간혹 선수들이 알몸으로 다닐 때가 있는데 여성 트레이너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하자 “남자와 여자를 떠나 트레이너와 선수는 상호존중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프로이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일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명쾌하게 말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 류현진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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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팔소니는 최근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도 관리하고 있다. |
팔소니는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 그 스포츠센터의 부사장 직책도 겸하고 있다. 스프링캠프를 기점으로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늘 다저스 구단과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즌 중에는 전화나 이메일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해 그곳의 업무를 보고 시즌이 끝나면 애리조나로 이동해 스포츠센터에 출근한다. 그녀를 찾는 이들은 비단 야구선수뿐만 아니라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다양하다.
업계에서 소문난 일 벌레로 알려진 그녀에게 바쁜 일정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좋아하는 일 특히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일을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늘 즐겁다.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스포츠의학이나 재활 등에 관심 있는 여성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스포츠의학은 매우 흥미로운 분야입니다. 특히 프로스포츠 산업은 갈수록 성장하기 때문에 향후 발전 가능성도 크고 이에 대한 수요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에서 관련 학문을 전공하려면 일반적인 대학생활의 낭만이나 재미는 포기해야 할 만큼 공부와 실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또 그것을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도 매우 큽니다.”
팔소니는 프로야구단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의 프로스포츠팀들에도 영입대상 0순위로 꼽힐 만큼 인기가 높다.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트레이너가 된 수 팔소니.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