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보세요. 소 팔아 자식들 다 대학 보내고, 허리 부러질 정도의 노동 경험을 하셨잖아요. 인생에 있어선 부모세대에서 이미 기출문제를 갖고 있어요. 그걸 풀어봐야 합니다. 마흔이 넘어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영영 삶의 답을 못 찾아요”(全京一 소장)
⊙ 思秋期,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전신 거울’에 비춰보는 시기
⊙ 40대 이후의 離職, 사무직보다 제조업 중심으로 이뤄져
⊙ “새로운 시작에 약한 사람은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 보여”
⊙ “새로운 시작 결심했다면 결별 각오해야… 행운은 때론 험상궂은 얼굴로 다가와”
⊙ 가족 반대하는 창업은 말라. 창업 실패가 곧 가정의 분열로 이어진다
⊙ 은퇴 재테크는 시간과 수익률 싸움… “빨리 시작할수록, 기대수익률 높일수록 좋다”
⊙ “40대가 되면 맞벌이를 하고 재취업 위한 자격증을 따라”
⊙ 思秋期,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전신 거울’에 비춰보는 시기
⊙ 40대 이후의 離職, 사무직보다 제조업 중심으로 이뤄져
⊙ “새로운 시작에 약한 사람은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 보여”
⊙ “새로운 시작 결심했다면 결별 각오해야… 행운은 때론 험상궂은 얼굴로 다가와”
⊙ 가족 반대하는 창업은 말라. 창업 실패가 곧 가정의 분열로 이어진다
⊙ 은퇴 재테크는 시간과 수익률 싸움… “빨리 시작할수록, 기대수익률 높일수록 좋다”
⊙ “40대가 되면 맞벌이를 하고 재취업 위한 자격증을 따라”
- 중년은 누구나 젊은 시절이 그리워 시간을 거꾸로 걷고 싶어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서울 종로의 한 술집에서 넥타이 부대를 만났다. 대기업과 언론사, 정부부처에 근무하는 40대 중반의 고교 동창들. 모두 동향(同鄕)이다. 이 늙은 오빠들은 “임플란트를 했다”느니, “시골에 내려가서 살까” “이담에 더 늙으면 뭐하지?”라며 불안한 미래 앞에 쩔쩔매고 있었다. 기자는 이들과 합석,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레이건 미 대통령은 56세 때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정치가의 길에 들어섰어요. 남들 같으면 인생을 정리할 시기에 도전한 겁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당시에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마흔 이후 자신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경력 경로)에 대해 적어도 2~3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데 전 아무 계획이 없어요. 또 어느 책에 보니 ‘삶에 억울해하지 말라’고도 하던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요. 아무리 불가항력의 일이라도 거기에 인생의 가르침이 숨어 있다는데 머리가 굳었나 봐요. 남 탓, 세상 탓만 하게 돼요.”
이런 한탄도 나왔다.
“조직은 숨 돌릴 겨를 없이 저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나사를 돌리도록 요구합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월세도, 자식 학비도 내야 합니다. 이 거대한 운명(運命)의 연자방아를 멈추게 할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세월이 저를 황혼(黃昏) 앞에 데려다 놓았어요.”
“가끔 친구끼리 ‘부부가 평균 주 몇 회 사랑을 나누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사나흘에 한 번이 평균이라는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수치가 사랑 횟수인 것 같아요. 40대는 외도 위험이 가장 크고 이혼도 많다고 하는데, 아내와의 관계에서 점점 자신감이 사라져요.”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K 부장이 말을 받았다.
“나이 먹은 사람 취급할 때가 제일 기분 나빠요. 얼마 전 20대 후반 후배와 소주를 마셨는데, 저보고 그래요. ‘자기는 생생한 20대여서 술 안 취한다’고. 그래서 그날 엄청 마셨는데, 20대 후배가 앉아서 자더라고요. 결국 이기기는 이겼는데 다음날 술이 안 깨서 종일 힘들었어요. …제가 미쳤지요.”
그날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자정 넘게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각자 아내의 전화와 문자가 쇄도하더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취한 K 부장이 이런 말을 기자에게 던졌다.
“작년인가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다가 하숙생들이 둘러앉아 밤새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보고 울컥했어요. 대학시절 친구나 선배 자취방에서 밤늦도록 술 마시고 세상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냅다 뛰다가 어느덧 중년의 고개에 다다랐네요.”
이들은 모두 중년의 거친 강을 힘겹게 건너고 있었다.
마흔은 下山하는 시기
한국인은 어떤 한계상황이 와도 스스로 견뎌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 육체적 심리적 외통수와 마주한다. 외면해 왔던 자신의 나약함이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예민해지며 사춘기 감성이 되살아난다.
마흔 이후 나타나는 중년의 증상은 이외에도 많다. 피부 탄력이 떨어지고 성(性)기능이 저하되며 근력 또한 약해진다. 한창 무렵, 몸으로 부딪쳤던 일도 노쇠함에 따라 젊은이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생각에 빠진다. 20~30대 후배들과 비교해 상대적 열등감이 커진다. 욱하며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무기력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학창시절 겪었던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전신 거울’에 비춰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을 타는 4050’이라는 뜻의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회자한다.
중년이 시작되는 40대 이후는 안정과 불안이 뒤섞이는 시기이자 위험하고 힘든 경험의 시기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미래(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40대 이후는 등산으로 치면 정상에 오르는 시기가 아니라 안전하게 하산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李那美) 박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박사는 서울대 외래교수, 한국융연구소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40대에 진지하게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하산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신체적으로 30대와 달리 눈에 띄게 능력이 떨어집니다. 순발력, 기발한 창발력, 암기력 등의 지적 능력도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도 30대보다 많이 떨어져요. 하던 것만 하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식으로 생활의 범위도 좁아지고, 융통성이 떨어집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全京一) 소장은 “40대 이후는 출세(出世)가 아닌 입세(入世)를 생각할 나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으로 산다는 것’의 신드롬을 낳았던 《마흔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다.
“출세는 20대 때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향해 나갈 때 하는 말입니다. 이 시기는 모든 게 자신만만하고 혈기 왕성하죠. 마흔이 넘으면 자기가 속한 세상에 대해 제대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특히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하지요. 그러나 등산에 비유하자면 정상에 오르던 시기에서 이제는 안전하게 하산하는 나이에 해당한다고 봐요. 마흔은 입세, 하산을 시작할 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년은 앞만 보며 달려왔던 길에서 잠시 멈춰서서 왔던 길을 돌아보는 시기란 얘기다.
“가장 앞선 것도 오래지 않아 낡은 것이 돼 버려…”
마흔 이후는 중년의 누구에게나 정신없이 살아왔던 젊은 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마력(魔力)을 지닌다. 어찌 보면 20~30대보다 번민의 날이 더 많을지 모른다. 기자는 몇 년 전 서양화가 황주리(黃珠里)씨의 집(서울 이촌동)을 찾아가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애완견 ‘배티’를 그려 넣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서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그림 얘기를 했다. “제 경우 황혼이라는 느낌이 처음 찾아온 것은 마흔 살 때였다. 지금 생각하니 마흔 살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라고 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쉰하나였다.
“대학교 1학년 봄, 나를 좋아해서 죽을 것 같다는 멀쩡한 총각을 바람맞히고,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미적지근한 ‘당신’을 향해 높은 구두를 신고 미친 듯 달려가던 봄날을 기억한다”고 했다.
“잠시 조는 사이 거짓말처럼 뒷문으로 사라질 스무 살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녀는 “(스무 살 그때처럼) 이렇게 어려운 사랑을 다시는 하지 못한다 해도 봄이면 그 윤곽이 더욱 아름다운 저 산도 당신이고, 길에서 만나는 귀여운 아이들도 당신이며, 살아 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물의 호흡이 당신”이라고 했다.
또 “길게 살다 보면 어쩌면 삶은 공평한 것인지 모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가 한때 가장 앞선 것으로 자부하던 것도 오래지 않아 낡은 것이 돼 버린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림은 제게 어떤 의미일까요? 제게 있어 그림은 시(詩)가 불가능한 시대의 시,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황 화가와의 대화를 떠올리다 그녀가 쓴 《나의 선택》이란 수필집을 읽어보았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척도를 재는 자는 늘 자신에게 있다. 그 아무도 당신의 남다른 재능을 아주 늦게까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 일등이든 꼴찌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을 수 있는 큰 마음이다. …>
마흔여섯에 出仕한 박근혜 대통령
기자는 ‘대통령 박근혜(朴槿惠)’, 이전에 ‘국회의원 박근혜’를 여러 번 취재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위해 장문의 질문지를 보내거나 그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보좌진과 오래 이야기도 나눴다.
사실, 1979년 10·26 사태 이후부터 1997년 12월 정계에 입문하기까지 박 대통령은, 실존적 진공상태와 다름없는 18년의 유폐(幽閉)된 시간을 보냈다. 사실상의 영부인에서 ‘고아가 된 처녀 가장’으로, 그러니까 스물여덟부터 마흔여섯까지 마음의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그 기간 동안 겪었을 마음의 행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기자는 박 대통령이 마흔 되던 해에 쓴 글(일기체 수필)을 찾아보았다. 1991년 4월 28일로 기록된 글에서 ‘세상은 선인(善人)의 것 아닌 악인(惡人)들의 것’이라 썼다.
<… 이제 나이 마흔. 앞날이 적지 않게 남아 있는 나이이나, 장래에 인간사회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없다. 그토록 모든 세상사, 인간사가 헛되고 또 헛되다고 느끼고 또 깨닫고 하다 보니 그 모든 일에 대한 관심이나 애착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중략) 얼마나 많은 충신이 간신들의 참언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던가. …>
박 대통령의 마흔, 그때만 해도 마음의 문을 닫았던, 절망의 바닥에 침잠하며 내면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처절한 경험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6년 뒤인 마흔여섯에 자의 반 타의 반 정계에 복귀했고, 격랑의 시기를 거치며 16년 뒤 제18대 대통령이 되었다.
심리적으로 유폐된 시간을 보낸 박 대통령이지만, 40대를 지나면서 절망의 심연을 박차고 올랐던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마흔 이후 어떤 심리적 변화가 찾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세월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지혜를 가르쳤으리라.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한 심리학자로부터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005년 미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한 연구자(Helson & Soto)가 1958년 캘리포니아 밀스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대생들의 삶을 40년 이상 종단(縱斷) 추적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연구결과는, ‘중년이 된 여성들의 삶의 태도가 20~30대와 비교해 긍정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착한마음연구소 정은미(鄭殷美)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20대의 자신보다 40년 뒤의 모습에서 ‘더 자신 있고, 단호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보다 감정을 통제할 줄도 알고 타인과의 경쟁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세월의 지혜가 쌓였기 때문 아닐까요?”
오랫동안 인간의 뇌는 성인기가 되면 퇴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물실험에서는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정 연구원의 계속된 말이다.
“캐나다의 한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키우던 다 자란 쥐를 집에 데려다가 맘껏 뛰어다니게 했더니 따분한 우리에 남았던 쥐보다 머리가 상당히 영리해졌다고 합니다. ‘다 자란 뇌는 더 이상 개선되거나 진화되지 않는다’는 현대의 신경과학 이론을 뒤집은 것이지요.”
20~30대와 40~50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 심리학자 혼(Horn)과 카텔(Cattell)의 말을 빌리면, 20~30대는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이 풍부하고, 40대 이상은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발달하는 시기라고 한다.
유동성 지능은 타고난 지능을 말한다. 수학적, 추상적 사고력이나 암기력 등의 기초능력이 뛰어난 지능을 의미한다. 결정성 지능은 세월을 통해 얻게 되는 값진 경험과 삶의 노하우를 말한다. 중년들은 실패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도 절망하지 않는 법’을 깨우친다.
마흔여섯 무렵, 박 대통령의 회심(回心) 내지 출사(出仕)도 결정성 지능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이런 결정성 지능은 특히 40~50대가 되어 폭넓어진다고 한다. 정 연구원은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듦은 축복이 아니냐”고 했다.
“마흔 이후 중년의 뇌는 20~30대의 뇌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무언가를 자꾸 잊어버리며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중년의 뇌는 경험과 실패, 성공을 통해 좀 더 폭넓고 사려 깊게 생각하며 판단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의미죠.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듦은 축복 아닌가요?”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니 바깥세상이 보였다”
마흔아홉에 언론사 부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함영준(咸永準) 전무는 몇 년 전 《마흔이 내게 준 선물》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의 광고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마흔이 내리막길인 줄 알던 40대들에게 인생 후반전을 지혜롭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발적 추방을 통해 스스로를 찾으려’ 백수가 됐지만, 그가 경험해야 했던 ‘광야(曠野)’는 너무나 거칠었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 제 마음속에 갑자기 우울함이나 허무 같은 감정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한 번의 인생, 다이내믹한 경험도 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벼랑 끝에서 삶과 맞서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저 자신과의 불화(不和)였어요.”
회사를 떠난 뒤 3년 동안 통장 잔고가 줄고, 앞으로 생활에 대한 보장도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과연 이게 내 모습일까, 할 정도로 열심히 세상을 살았다”는 것이다.
“광야로 나온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어요. 고생은 사람을 단련시키죠. ‘No pain, no gain’이란 말이 있듯이 고통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행운은 때론 험상궂은 얼굴로 찾아오잖아요. 만약 여러분이 새로운 시작을 결심했다면 모든 사람과의 결별을 각오해야 하고,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그는 대학 겸임교수·저술가·케이블TV 진행자로 지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40~50대를 사는 모든 중년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퇴직 후 안간힘과 각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고, 그래도 제가 꽤 괜찮은 인간임을 발견했어요. 자신과의 관계가 좋아지자 바깥 세계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는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편배달부, 퀵서비스 직원, 빌딩 경비원, 택시기사, 식당 종사원…. 과거에 무심코 대했던 사람들, 때로 짜증도 내고 실수에 대해 싫은 소리도 한 이들을 조심스레 대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되돌아 생각하게 됐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심드렁한 전화 응답, 모른 척 지나치는 태도에서 저는 아픔을 느꼈어요. 제가 시선을 낮추고 보니, 그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함 전무는 언젠가부터 일상생활에서 좀 더 온유한 태도, 자그마한 배려를 하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뒤로 가주세요” “감사합니다. 돈 많이 버세요”라며 공손하게 말하게 됐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디로 갑시다” “거스름돈 왜 안 줘요?”라며 툭하면 운전기사와 시비를 벌였지만, 지금은 택시비에서 몇백 원 남은 잔돈은 안 받는다.
그는 “팁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선의의 선순환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잔돈을 남기고 가면 그는 기분이 좋을 것이며 그것이 다른 손님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덕을 본 경우도 있다. 잔돈을 받지 않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지갑을 차에다 빠뜨리고 내렸다. 거기에는 현금과 신용카드가 있었다. 만약 손님이 아닌 기사가 지갑을 발견한다면 그에게 연락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온전한 사람들은 돈 몇 푼보다 서로 선의나 신뢰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예감대로 몇 시간 뒤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손님, 지갑을 놓고 내리셨어요. 제가 지금 잠실인데 손님 내리고 어디로 가면 될까요?”
관직을 잃거나 ‘루저’가 됐을 때 위대한 작품 써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은 자신이 못났거나, 나쁜 일을 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20~30대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툭툭 털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만 마흔이 넘으면 새로 시작하기도, 일어서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자책하며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묻지도 말아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나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이른바 ‘루저’가 되어 귀양 갔을 때 오히려 더 위대한 시를 썼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나 공자의 《논어》도 그들이 관직에 머물렀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작가 헨리 소로나 에드거 앨런 포는 실용주의적인 미국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아웃사이더였어요. 고갱·고흐·이중섭·박수근 같은 화가들도 살아 있을 때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나미 박사는 “새로운 시작에 약한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우선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을 자주 보인다. 새로움에 대한 불안이 무의식에 잠재해,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시작을 못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처음의 실수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아 그만큼 좌절한다”는 것이다.
—40~50대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도전할 만한 가치 있는 시기인가요.
“업적은 물론 역사에 남는 큰 업적이나 사회적으로 요란하게 명성을 누리는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껏, 가족이나 이웃에 소홀했다면, 40대부터라도 가족과 남들을 위해 꾸준히 헌신하면 몇 년만 지나도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정말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죠.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위해 주부 노릇을 따뜻하게 하는 가장, 도시생활을 접고 ‘에코 농부’로 자연과 이웃에 겸손한 삶을 사는 이들은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삶을 사시는 분들입니다. 또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어요. 또 50대부터 등산을 시작해 70대에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노인들, 40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치료사, 사회복지사, 목사, 사회사업가, 간병인 등 주변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 역시 좋은 전범(典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이 듦의 축복
—40~50대에 이직에 성공하려면 어떤 마음을 먹어야 좋을까요.
“우선, 성공의 기준을 다시 봐야 합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면, 과거 화려했던 시절, 혹은 주변에 잘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해 열등감·불안감·초조감을 지니기 쉽습니다. 이럴 때 융(Jung)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가 유효합니다. 내면의 평화, 만족감, 행복감들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는 성공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Generativity(생산성·심리학 용어로 ‘중년기에 나타나는 후진양성 욕구’를 말한다)’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지식·사랑을 나눠주는 성취감과 경쟁에서 이긴 성취감이 질적(質的)으로 다르다는 것을 빨리 체득해야 합니다.”
40~50대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의 계속된 말이다.
“상투적인 얘기지만, 건강이 나빠지면, 자신과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줄어듭니다. 또 주변 사람에게 큰 폐를 끼칠 수도 있고요.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결국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가 됩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자신이 먼저 깨달음을 성취한 이후 남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정신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중년에 건강관리를 하지 않으면 자칫 무의미하고 불행한 노년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때, 불규칙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생활, 음주·흡연·무절제한 생활 등을 하고 있다면, 훌륭한 노년을 보내기가 어려워집니다. 여러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설마, 나는 괜찮겠지’란 생각은 일종의 안전 불감증이죠.”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는 온갖 형태의 강박(强迫)심리가 꽉 짜인 그물처럼 4050의 마음을 압박하고 있다. 좌우(左右)·신구(新舊) 세대(世代)의 진영이 타협과 공존보다는 서로를 강박하는, 살벌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많은 중년이 이를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두거나 타의에 의해 쫓겨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은 “대한민국 40~50대를 규정한 표현이 여럿 된다”며 이렇게 열거했다.
“어정쩡한 세대, 진화와 도태 사이에 있는 세대, 마지막 주산(珠算) 세대이자 첫 번째 컴맹 세대, 민주를 말하며 몸에 밴 군사문화를 다 씻지 못한 세대, 변화의 이쪽과 저쪽 끝에 매달려 양다리 걸친 경계인 세대, 가랑이 찢어지는 세대, 조기은퇴 대상자에 속하는 세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세대….”
전 소장은 “태어남과 시퍼렇던 젊음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축복이지만, 나이 듦은 미리 준비해야만 축복이 된다”고 했다.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있잖아요. 가을의 정원에 뛰어들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기죠. 40~50대 중년이 되어 마음을 추스르지 않으면 급격히 망가지게 됩니다. 40대의 10년을 관리하지 않으면 후반기 인생에 반드시 보복을 당합니다. 20~30대의 절벽은 파도가 아무리 쳐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어요. 그러나 마흔이 되면 한 축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가까스로 땜질을 해서 버틸 수 있지만, 그것도 잠시, 쉰이 되면 땜질을 아무리 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면 (삶을) 위에서도 아래서도 보고, 통찰도 하고 반추도 아울러도 봐야 합니다. 자기성찰의 완전한 터닝 포인트로 만들어야 해요. 50대는 그런 40대의 성찰을 가지고 10년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40대의 10년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런 40대를 보내지 못했다면 50대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그래야 행복한 예순을 맞이합니다.”
“왜 잘렸는지 아니? 평생 조직 일만 했기 때문이야”
—자기 삶을 되돌아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부모님을 보세요. 소 팔아 자식들 다 대학 보내고, 허리 부러질 정도의 노동 경험을 하셨잖아요. 인생에 있어선 부모세대에서 이미 기출문제를 갖고 있어요. 그걸 풀어봐야 합니다. 마흔이 넘어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영영 삶의 답을 못 찾아요.”
전 소장은 “우리도 주위 사람처럼 똑같이 구조조정, 조직개편, 업무 스트레스 등 온갖 일을 다 겪는다. 그러나 골치 아프다고 잊어버리거나 ‘다음에, 다음에’ 미루다가는 언제 인생이 끝난지도 모르게 끝난다”고 했다.
“퇴근길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털컥 겁부터 납니다. 직장에서 쫓겨난 친구가 혹시 돈 꿔달라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죠. 모른다고 할 수 없고, 내 사정은 뻔하고…. 한밤중에 부모님을 모시는 형님에게서 전화가 오면 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아요. 밤늦게 오는 전화가 굿(good) 뉴스일 리 없잖아요. 이런 일들이 다 40~50대 때 겪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돼요. 하지만 골치 아프다고 당장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이월(移越)하고 건너뛰면 우리는 한 번도 인생에 대해 복습해 보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냥 새로운 문제만 풀어대는 식이죠.”
그는 친구 얘기를 다시 꺼냈다.
“실직한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시내를 정처없이 돌아다니다가 보니 도로변에서 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더라.’ 평소 출퇴근할 때는 구두 수선가게가 눈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면서 덧붙이기를 ‘근데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와. 그 사람은 아침마다 갈 데가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새로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한다. 문득문득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지 모른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춰서서, 왔던 길을 되풀이해서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안다고 해도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숲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길을 잃는다고 해도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다.
“삼성에서 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친구가 있어요. 울분을 토하지만 그런 일이 40~50대에 비일비재하잖아요. 다 듣고 나서 ‘왜 잘렸는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친구 말이 ‘사내(社內)정치 때문’이라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넌 여태 네 일을 하지 않고 남의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죽자고 조직 일만 했지, 자신만의 일,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중년의 나이는 조직의 일이 아니라, 비록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굳이 조직에 있었던 경험을 살릴 생각은 안 해도 됩니다. 두려워 마세요. 어떻게든 살게 돼 있어요.”
전 소장은 ‘마흔의 자기경영 원칙’ 5가지를 기자에게 말했다.
“첫째, 출세가 아닌 입세(入世)를 생각하라. 안전하게 하산하는 나이”라고 했다.
“인생을 100세로 봤을 때 옛날에는 마흔이면 어른입니다. 내려가는 길밖에 없어요. 구태여 하산(下山)이라기보다 종주(縱走)를 계속하는 시기입니다. 종주를 하다가 계곡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절벽 끝에 매달려 있기도 하지요. 멀리서 보면 계속 내려가는 길이지만, 오르막 내리막 다 있어서 죽을 때까지 계속 가게 돼 있어요.”
“둘째, 3짱을 추구하라”고 했다.
“마음짱, 몸짱, 돈짱을 추구하라는 얘기입니다. 마음도 넉넉하고 몸도 잘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어 아랫사람에게 베풀기도 하는 인생입니다.”
“셋째는 노년을 꿈꿔라, 넷째는 아이들을 독자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라, 다섯째는 배우자에게 잘해라”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왕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인생은 어느 순간 뚝 끊어져 버리고 마는 연줄과 같아요. 다 날지 못했다고 불만을 가져봐야 운명은 억울함을 반영해 주지 않아요. 돈을 모으고 언젠가 쓰겠다는 생각일랑 마세요. 부지런히 일해서 개미처럼 모으되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왕의 사치를 부려도 좋습니다. 열심히 산 보답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어요. 가끔 비상금을 털어 최고급 호텔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먹어보세요. 지하철의 걸인에게 만원짜리 지폐를 줘보기도 하고 외로운 이웃에게 익명의 김장 배추를 보내거나 쌀 한 가마니를 보내주기도 하고, 마치 왕처럼 말이죠.”
세상은 퇴직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좀 더 구체적인 중년의 삶을 위한 생존법을 듣고 싶었다. 아무래도 중년은 이직을 꿈꾸거나 자신의 경력의 정점을 찍을 나이다. 전직(轉職) 지원 전문업체 ‘인덱스루트 코리아’의 정도영(鄭都榮) 이사는 “40대 이후는 사회의 중추이자 보통 자신의 경력상 정점을 찍는 연령대”라며 “이 시기에 자신의 경력상의 성과들을 명확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전체 경력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분명히 하향의 곡선을 그리는 시기가 40대입니다. 40대 때 자기 경력상의 확실한 성과를 만든 자가 쉰을 넘어도 원하는 진로를 만들 수 있어요. 성과를 못 만드는 사람, 그리고 성과가 있었어도 다음의 수순을 대비하지 못한 사람은 50대라는 어려운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요.”
세상은 퇴직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밀려나도 새롭게 시작하는 역량을 가지지 못한 대다수 평범한 중년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실, 한국 사회는 너무나 많은 유사한 역량의 대기인력을 축적하고 있다.
“40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가능성의 싹을 찾는 시기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이 자신을 객관화해 냉철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40대는 보통 가장 많이 벌 때고, 어느 회사든 중추이기 때문에 때로 자신에 대해 부풀려진 자기평가를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회사라는 울타리 속의 자신을 평가할 때와 그곳을 나와 평가할 때는 대단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조직을 벗어날 때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이직에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확실한 카드가 필요합니다. 창업이 아닌 재취업이라면 이것저것 잘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개 시장에서는 그런 경우 ‘전문성이 없다’는 진단을 내려버리니까요. 지금 40~50대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은 많은데,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너무 적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이때 어중간한 카드, 예를 들어 ‘어느 회사에 대강 이런 일을 했는데’로는 시장에서 ‘원하는’ 자원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확실한 성과, 남이 제공하지 못하거나, 제공자가 드문 영역을 커버하는 능력 등이 있어야 해요. 또 시장의 ‘평판’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실력이 좋아도 인간적 평판에서 걸려 미끄러지는 경우는 재취업 시장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구인공고에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 불법이 되면서 40대 이상의 구직자는 사실상 허수나 마찬가지인 구인광고가 많아졌다. 2009년 3월 시행된 ‘연령차별금지법’은 모든 구인공고에서 나이제한이라는 규정을 없앴지만, 실제 고용시장에서는 이런 제한이 전혀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40대 이상 구직자들이 실효성 없는 자리에 지원하다가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한다. 정 이사의 말이다.
“취업포털 등에 자신의 이력서를 올려놓고 계속 기다리는 구직자가 있어요. 좋은 제안이 와서 취업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흔히 보험설계사나 실적급 판매영업직을 운용하는 곳에서 전화합니다.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한 줄의 무료 구인광고만 올려도 이력서가 쌓이는 상황에서 굳이 전화를 걸면서까지 구직자를 찾는 회사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중장년은 실패의 代價가 너무 크다
정 이사에게 4050들이 도움이 될 ‘창업원칙’을 알려달라고 했다. “창업의 3대 금기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첫째, 가족이 반대하는 창업은 하면 안 됩니다. 창업 실패가 가정의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둘째, 준비하지 않은 창업을 떠밀려서 하면 안 됩니다. 특히 퇴직자가 퇴직 후 다른 할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는 창업은 거의 말려도 됩니다. ‘절실한 필요, 충분한 준비’를 거쳐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요. 청년은 실패가 경험이 되지만, 중장년은 그 실패를 감당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代價)가 너무 큽니다. 셋째, 처음부터 크게 하는 창업은 위험합니다. 창업 경험이 없는 사람은 무조건 작게 시작해서 크게 벌려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번에는 성공 창업을 위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정 이사는 역시 3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 관련 분야의 책 10권 정도는 최소한 읽어보고 시작할 것을 권합니다. 요즘은 어떤 분야든 상세한 창업 안내서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창업은 절대로 위험합니다. 그리고 경험은 개인차가 큽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창업의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고 연구하면 그만큼 손실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둘째, 현장에서 체험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요식업 계열의 창업은 특히 그런데, 실제 한번 현장에서 3개월 정도 일해 보면 자신의 가능성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창업 전 사업계획서는 필수입니다. 특히 이 사업계획서에는 시장에서 ‘왜 경쟁업체가 아닌 자신의 사업에 고객이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이유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역시나 많은 창업 준비자가 이 과정에서 스스로 현실성이 떨어짐을 파악해 포기하기도 합니다.”
정 이사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할 게 있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막상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 중 끝끝내 창업에 이르는 분들의 비율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준비하지 않은 창업을 고민하며 헤매는 동안 중장년은 실제 자신의 경력상 공백을 만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창업에 실패했을 때 경력관리상 상당한 타격을 주게 되고, 안 그래도 어려운 고용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합니다. 허비한 시간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시간을 아끼고 치열하게 준비해 중년의 공백기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은퇴 이후 재테크 이렇게 하라!
50대 중반을 넘어서면 직장에서는 퇴직금을 주며 편히 쉬라고 한다. 아직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 말이다. 막상 은퇴 준비, 은퇴 설계를 하려면 무엇부터 고민해야 할지 막막하다. 여윳돈이 있다면야 사정이 다르지만 월급쟁이 살림에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은행 잠실센터 신현조 PB팀장을 만났더니 50대 후반 A고객의 사례를 들려줬다.
“제가 상담한 A고객은 퇴직금 5억원, 그동안 모아둔 금융자산 7억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있다고 하더군요. 전업주부인 아내와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딸이 있어 지속적으로 교육비가 필요했고요. 그는 50평대의 아파트를 팔고 30평대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하는 것으로 은퇴 준비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베이비 부머 세대는 맨손으로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자랑스러운 세대이지만 남은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그저 모아둔 연금을 인출하고 금융자산을 까먹으며, 그것도 부족하면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주택연금 등을 활용하는 정도다. 이것만으로 노후를 대비하기엔 왠지 불안하다. 신현조 PB팀장은 “재무목표를 설정하라”고 충고한다. ‘재무목표’라는 말에 귀가 번뜩 뜨였다. 그의 말이다.
“은퇴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상 수입과 지출을 진단하는 일입니다. A고객의 경우 국민연금 110만원과 연금저축 60만원이 매월 수령 가능한 수입액이었어요. 여기다 금융자산 7억원은 정기예금과 펀드상품에 가입했는데 월 이자로 환산하면 약 88만원이 됐어요. 그런데 매월 지출되는 비용을 계산하니 고정비 350만원과 변동비 200만원을 더해 550만원이었습니다. 부족액은, 대충 계산해도 292만원이나 됐어요.”
—그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고려해야 할 플랜은 퇴직 후 월급을 준비하는 대표적인 상품인 ‘즉시연금’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부동산매각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 3억원과 퇴직금 중 1억원을 합해 2억원을 배우자에게 증여하고, 각 2억원씩 즉시연금에 가입할 경우 매월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은 100만원 정도 됩니다.
공시이율이 적용되는 상품이지만 상속연금형일 경우 10년 이상, 2억원 한도 내에서 비과세가 적용됩니다. 나머지 퇴직금 3억원은 종신연금형 상품에 가입해 부족한 생활비에 충당할 수도 있고요. 계약자, 피보험자, 수익자가 동일하고 55세 이후부터 수령하는 경우 금액에 제한 없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다만 중도인출, 중도해지가 불가능해 긴급자금 필요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할 사항입니다.”
은퇴 이후 재테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과 수익률이다. 빨리 시작할수록, 기대수익률을 높일수록 더 충분한 은퇴자산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펀드다. 신현조 PB팀장의 계속된 말이다.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할 수 있고, ‘월 이자 지급식’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펀드는 원금보장이 안 되고 시중에 많은 상품이 나와 옥석을 가리기가 어려워요. 저는 A고객에게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국내 가치주 펀드와 해외 펀드인 ‘글로벌 멀티에셋 인컴(income)펀드’에 각각 1억원씩 매월 적립식으로 투자하도록 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권했어요. 또 나머지 6억원은 월 이자 지급식과 만기 이자 지급식 정기예금으로 가입해 유동성 확보 및 금융소득종합과세에도 피해갈 수 있도록 재분배했습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발간한 《한국인의 은퇴준비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은퇴 준비지수는 ‘주의’ 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준비에 대한 인식 확산과 연금 확대 등 은퇴 후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신현조 팀장의 말이다.
“이 자료를 보면, 예비 은퇴자들은 은퇴 후 생계유지를 위해 최소 190만~230만원 정도의 월 소득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고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서는 약 290만~360만원 정도의 소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하는 비율이 35%에 불과했고 은퇴를 대비한 저축액도 월평균 15만원에 그쳤어요. 기대하고 있는 은퇴 후 소득을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지요. 노후 준비는 어느 한 분야만 준비해서는 곤란해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건강, 일과 여가, 타인과의 관계 등 여러 사항을 염두에 두고 은퇴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합니다.”
40~60대의 은퇴 설계와 實戰 준비
그렇다면 연령대별로 어떤 은퇴 설계가 필요한지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최성환 소장에게 물어보았다.
먼저 40대에게 필요한 은퇴 준비에 대해 최성환 소장은 “은퇴가 길어야 10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혼자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아내뿐 아니라 자녀들과도 함께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이다.
“‘애들이 뭘 알겠어?’ 할 수도 있지만 요즘 중학생 정도면 집안 돌아가는 형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노부모 부양과 자녀교육, 부부의 노후 준비’라는 3대 과제를 놓고 현재의 자산과 부채, 앞으로의 소득과 지출 등을 있는 그대로 가늠해 보는 것이죠. 사실,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뭘 못 하겠느냐 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잖아요. 자녀교육을 위한 과도한 지출로 내 노후를 망가뜨린 다음 내 자식들만은 다를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을 수 없는 노릇이죠. 필요하다면 여기저기 다니는 학원들은 선택과 집중으로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최 소장은 “이런 40대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맞벌이 전략이다. 남편 또한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저금리・고령화시대에 외벌이만으로는 은퇴 설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소장의 말이다.
“40대가 되면 이제 자녀들도 집에만 있는 엄마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을(?) 나이가 됐어요. 결혼 전 직장 경험을 되살리거나 시간제 아르바이트로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자녀들도 그런 부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지출을 줄인 부분과 맞벌이로 늘어나는 소득의 대부분은 “연금과 같은 은퇴상품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 최 소장의 지론.
“은퇴 후 월 생활비 지출 계획을 세운 다음 거기에 맞는 개인연금상품, 특히 은퇴 후 국민연금 수급까지의 소득 공백을 메워주는 가교연금 등에 가입하면서 소득공제 등 절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현재의 40대는 국민연금 수급시기가 63~65세로 늦춰지면서 소득공백기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죠.”
만약 아직 내 집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을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최 소장은 “가급적 큰 빚을 내지 않는 범위에서 중소형 규모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 “만약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소득과 자산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거나 대출이 많다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은퇴하지 않은 50대라면 회사에서 물러날 시기가 2~3년, 길어야 4~5년 정도다.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최 소장은 “급한 마음에, 여태껏 않던 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럴 때일수록 방어적 전략이 우선입니다. 아직 소득이 있다는 것과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은퇴를 설계해야 합니다. 특히 자녀들이 대학생 또는 고등학생이라면 은퇴 설계에 적극 동참시키면서 취업과 결혼 등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그려보도록 해야 합니다.”
—50대가 반드시 챙겨야 할 은퇴 준비는 뭔가요?
“아무래도 주택연금과 즉시연금, 자녀들의 결혼비용 준비겠죠. 맞벌이를 해서도 은퇴 설계가 막연하다면 주택연금을 추천하고 싶어요. 만 60세 이상 고령자가 소유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매월 평생 동안 연금방식으로 노후생활자금을 지급받아 주거와 생활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부 모두 사망 후 주택을 처분해 연금수령액이 집값을 초과해도 상속인에게 청구하지 않는 반면, 집값이 남으면 상속인에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한꺼번에 예치한 후 가입한 다음달부터 매월 연금을 수령하는 상품입니다. 퇴직금으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마음의 싹을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도 있죠. 강남의 부자들이 많이 가입하는 바람에 가입액이 1인당 2억원 이하로 줄어들 정도로 인기상품입니다.”
—자녀들 결혼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까요.
“여유가 있다면 자녀들의 결혼비용을 웬만큼 따로 떼놓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면 절대 무리해선 안 됩니다. 한 번 넘겨준 재산을 다시 돌려받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이 준 만큼 효도 또는 봉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최 소장은 “은퇴한 50대와 60대 이상이라면 연금과 자녀 결혼비용 외에 한 가지 더 준비하는 것이 좋다”며 노후실손의료보험을 추천했다. 노후생활비를 연금으로 꼼꼼하게 챙겨놓은 다음에는 큰 병이 날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돈을 준비해 둔 게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실손의료보험이 제일이죠. 최근에 출시된 노후실손의료보험은 기존 실손보험에 비해 20~30% 싼 보험료로 50~75세까지 가입이 가능합니다.”⊙
“레이건 미 대통령은 56세 때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정치가의 길에 들어섰어요. 남들 같으면 인생을 정리할 시기에 도전한 겁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당시에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마흔 이후 자신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경력 경로)에 대해 적어도 2~3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데 전 아무 계획이 없어요. 또 어느 책에 보니 ‘삶에 억울해하지 말라’고도 하던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요. 아무리 불가항력의 일이라도 거기에 인생의 가르침이 숨어 있다는데 머리가 굳었나 봐요. 남 탓, 세상 탓만 하게 돼요.”
이런 한탄도 나왔다.
“조직은 숨 돌릴 겨를 없이 저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나사를 돌리도록 요구합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월세도, 자식 학비도 내야 합니다. 이 거대한 운명(運命)의 연자방아를 멈추게 할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세월이 저를 황혼(黃昏) 앞에 데려다 놓았어요.”
“가끔 친구끼리 ‘부부가 평균 주 몇 회 사랑을 나누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사나흘에 한 번이 평균이라는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수치가 사랑 횟수인 것 같아요. 40대는 외도 위험이 가장 크고 이혼도 많다고 하는데, 아내와의 관계에서 점점 자신감이 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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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 잔을 든 중년의 샐러리맨들. 이들은 모두 중년의 거친 강을 힘겹게 건너고 있었다. (사진=사석원) |
“나이 먹은 사람 취급할 때가 제일 기분 나빠요. 얼마 전 20대 후반 후배와 소주를 마셨는데, 저보고 그래요. ‘자기는 생생한 20대여서 술 안 취한다’고. 그래서 그날 엄청 마셨는데, 20대 후배가 앉아서 자더라고요. 결국 이기기는 이겼는데 다음날 술이 안 깨서 종일 힘들었어요. …제가 미쳤지요.”
그날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자정 넘게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각자 아내의 전화와 문자가 쇄도하더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취한 K 부장이 이런 말을 기자에게 던졌다.
“작년인가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다가 하숙생들이 둘러앉아 밤새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보고 울컥했어요. 대학시절 친구나 선배 자취방에서 밤늦도록 술 마시고 세상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냅다 뛰다가 어느덧 중년의 고개에 다다랐네요.”
이들은 모두 중년의 거친 강을 힘겹게 건너고 있었다.
| 45~64세의 고용률 동향 통상적으로 중년층을 40~50세, 혹은 40세 안팎으로, 장년층을 30~60세 범주로 보기도 하지만 구분이 엄격하지 않다.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고령자는 55세 이상인 사람, 준고령자는 50세 이상 55세 미만으로 정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국가 간 실업률 등 여러 경제지표를 비교할 때 연령범주를 보통 15~24세(청년층), 25~54세, 55~64세로 나눈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선진국에서는 40대 초반까지를 청년기 범주에 넣기도 한다. 지난 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정부용역 보고서 〈OECD 국가의 장년고용촉진을 위한 정책사례연구〉에 따르면, 국내 45~64세 연령층의 고용률이 남성은 2000년 79.7%에서 2012년 85.1%로 5.4%포인트 상승했다. 여성도 2000년 54.3%에서 2012년 58.0%로 역시 3.7%포인트 증가했다. ‘베이비 부머’ 세대, 즉 1955~63년생에 해당하는 장년 연령층이 노동시장의 고용률을 주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45~64세 장년층 취업자의 직업분포를 보면 2012년 서비스·판매 종사자가 24.8%로 가장 많고 단순노무자 17.2%,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15%),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11.9%), 농업·임업·어업 숙련종사자(6.5%) 순으로 ‘화이트칼라 계열’보다는 육체노동자로 분류되는 ‘블루 계열’ 취업자 비중이 높았다. 40대 이후의 고용률은 사무직보다 제조업 내지 생산직 중심으로 취업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5~64세 장년층 임금근로자의 학력별 분포를 보면 45~64세 전체 장년층은 고졸(50.5%), 대졸 이상(27.1%), 중졸 이하(14.2%), 초대졸(8.2%) 순이었다. 또 월평균 급여 총액은 268만6000원, 월평균 정상 근로일수는 21.7일, 휴일 근로일수는 0.69일, 월평균 정상 근로시간 175.2시간, 초과 근로시간은 16.9시간이었다. |
마흔은 下山하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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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이 시작되는 40대 이후는 안정과 불안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
마흔 이후 나타나는 중년의 증상은 이외에도 많다. 피부 탄력이 떨어지고 성(性)기능이 저하되며 근력 또한 약해진다. 한창 무렵, 몸으로 부딪쳤던 일도 노쇠함에 따라 젊은이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생각에 빠진다. 20~30대 후배들과 비교해 상대적 열등감이 커진다. 욱하며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무기력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학창시절 겪었던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전신 거울’에 비춰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을 타는 4050’이라는 뜻의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회자한다.
중년이 시작되는 40대 이후는 안정과 불안이 뒤섞이는 시기이자 위험하고 힘든 경험의 시기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미래(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40대 이후는 등산으로 치면 정상에 오르는 시기가 아니라 안전하게 하산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李那美) 박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박사는 서울대 외래교수, 한국융연구소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40대에 진지하게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하산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신체적으로 30대와 달리 눈에 띄게 능력이 떨어집니다. 순발력, 기발한 창발력, 암기력 등의 지적 능력도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도 30대보다 많이 떨어져요. 하던 것만 하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식으로 생활의 범위도 좁아지고, 융통성이 떨어집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全京一) 소장은 “40대 이후는 출세(出世)가 아닌 입세(入世)를 생각할 나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으로 산다는 것’의 신드롬을 낳았던 《마흔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다.
“출세는 20대 때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향해 나갈 때 하는 말입니다. 이 시기는 모든 게 자신만만하고 혈기 왕성하죠. 마흔이 넘으면 자기가 속한 세상에 대해 제대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특히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하지요. 그러나 등산에 비유하자면 정상에 오르던 시기에서 이제는 안전하게 하산하는 나이에 해당한다고 봐요. 마흔은 입세, 하산을 시작할 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년은 앞만 보며 달려왔던 길에서 잠시 멈춰서서 왔던 길을 돌아보는 시기란 얘기다.
“가장 앞선 것도 오래지 않아 낡은 것이 돼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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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주리 화가. |
“대학교 1학년 봄, 나를 좋아해서 죽을 것 같다는 멀쩡한 총각을 바람맞히고,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미적지근한 ‘당신’을 향해 높은 구두를 신고 미친 듯 달려가던 봄날을 기억한다”고 했다.
“잠시 조는 사이 거짓말처럼 뒷문으로 사라질 스무 살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녀는 “(스무 살 그때처럼) 이렇게 어려운 사랑을 다시는 하지 못한다 해도 봄이면 그 윤곽이 더욱 아름다운 저 산도 당신이고, 길에서 만나는 귀여운 아이들도 당신이며, 살아 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물의 호흡이 당신”이라고 했다.
또 “길게 살다 보면 어쩌면 삶은 공평한 것인지 모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가 한때 가장 앞선 것으로 자부하던 것도 오래지 않아 낡은 것이 돼 버린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림은 제게 어떤 의미일까요? 제게 있어 그림은 시(詩)가 불가능한 시대의 시,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황 화가와의 대화를 떠올리다 그녀가 쓴 《나의 선택》이란 수필집을 읽어보았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척도를 재는 자는 늘 자신에게 있다. 그 아무도 당신의 남다른 재능을 아주 늦게까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 일등이든 꼴찌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을 수 있는 큰 마음이다. …>
마흔여섯에 出仕한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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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2월 정계에 입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듬해 3월 대구 달서지구당 조직책으로 임명됐다. 사진은 조직책 임명 당시의 모습. 그해 4월 2일에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
사실, 1979년 10·26 사태 이후부터 1997년 12월 정계에 입문하기까지 박 대통령은, 실존적 진공상태와 다름없는 18년의 유폐(幽閉)된 시간을 보냈다. 사실상의 영부인에서 ‘고아가 된 처녀 가장’으로, 그러니까 스물여덟부터 마흔여섯까지 마음의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그 기간 동안 겪었을 마음의 행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기자는 박 대통령이 마흔 되던 해에 쓴 글(일기체 수필)을 찾아보았다. 1991년 4월 28일로 기록된 글에서 ‘세상은 선인(善人)의 것 아닌 악인(惡人)들의 것’이라 썼다.
<… 이제 나이 마흔. 앞날이 적지 않게 남아 있는 나이이나, 장래에 인간사회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없다. 그토록 모든 세상사, 인간사가 헛되고 또 헛되다고 느끼고 또 깨닫고 하다 보니 그 모든 일에 대한 관심이나 애착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중략) 얼마나 많은 충신이 간신들의 참언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던가. …>
박 대통령의 마흔, 그때만 해도 마음의 문을 닫았던, 절망의 바닥에 침잠하며 내면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처절한 경험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6년 뒤인 마흔여섯에 자의 반 타의 반 정계에 복귀했고, 격랑의 시기를 거치며 16년 뒤 제18대 대통령이 되었다.
심리적으로 유폐된 시간을 보낸 박 대통령이지만, 40대를 지나면서 절망의 심연을 박차고 올랐던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마흔 이후 어떤 심리적 변화가 찾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세월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지혜를 가르쳤으리라.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한 심리학자로부터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005년 미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한 연구자(Helson & Soto)가 1958년 캘리포니아 밀스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대생들의 삶을 40년 이상 종단(縱斷) 추적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연구결과는, ‘중년이 된 여성들의 삶의 태도가 20~30대와 비교해 긍정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착한마음연구소 정은미(鄭殷美)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20대의 자신보다 40년 뒤의 모습에서 ‘더 자신 있고, 단호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보다 감정을 통제할 줄도 알고 타인과의 경쟁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세월의 지혜가 쌓였기 때문 아닐까요?”
오랫동안 인간의 뇌는 성인기가 되면 퇴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물실험에서는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정 연구원의 계속된 말이다.
“캐나다의 한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키우던 다 자란 쥐를 집에 데려다가 맘껏 뛰어다니게 했더니 따분한 우리에 남았던 쥐보다 머리가 상당히 영리해졌다고 합니다. ‘다 자란 뇌는 더 이상 개선되거나 진화되지 않는다’는 현대의 신경과학 이론을 뒤집은 것이지요.”
20~30대와 40~50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 심리학자 혼(Horn)과 카텔(Cattell)의 말을 빌리면, 20~30대는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이 풍부하고, 40대 이상은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발달하는 시기라고 한다.
유동성 지능은 타고난 지능을 말한다. 수학적, 추상적 사고력이나 암기력 등의 기초능력이 뛰어난 지능을 의미한다. 결정성 지능은 세월을 통해 얻게 되는 값진 경험과 삶의 노하우를 말한다. 중년들은 실패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도 절망하지 않는 법’을 깨우친다.
마흔여섯 무렵, 박 대통령의 회심(回心) 내지 출사(出仕)도 결정성 지능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이런 결정성 지능은 특히 40~50대가 되어 폭넓어진다고 한다. 정 연구원은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듦은 축복이 아니냐”고 했다.
“마흔 이후 중년의 뇌는 20~30대의 뇌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무언가를 자꾸 잊어버리며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중년의 뇌는 경험과 실패, 성공을 통해 좀 더 폭넓고 사려 깊게 생각하며 판단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의미죠.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듦은 축복 아닌가요?”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니 바깥세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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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한국방송광고공사 전무. |
그는 ‘자발적 추방을 통해 스스로를 찾으려’ 백수가 됐지만, 그가 경험해야 했던 ‘광야(曠野)’는 너무나 거칠었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 제 마음속에 갑자기 우울함이나 허무 같은 감정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한 번의 인생, 다이내믹한 경험도 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벼랑 끝에서 삶과 맞서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저 자신과의 불화(不和)였어요.”
회사를 떠난 뒤 3년 동안 통장 잔고가 줄고, 앞으로 생활에 대한 보장도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과연 이게 내 모습일까, 할 정도로 열심히 세상을 살았다”는 것이다.
“광야로 나온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어요. 고생은 사람을 단련시키죠. ‘No pain, no gain’이란 말이 있듯이 고통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행운은 때론 험상궂은 얼굴로 찾아오잖아요. 만약 여러분이 새로운 시작을 결심했다면 모든 사람과의 결별을 각오해야 하고,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그는 대학 겸임교수·저술가·케이블TV 진행자로 지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40~50대를 사는 모든 중년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퇴직 후 안간힘과 각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고, 그래도 제가 꽤 괜찮은 인간임을 발견했어요. 자신과의 관계가 좋아지자 바깥 세계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는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편배달부, 퀵서비스 직원, 빌딩 경비원, 택시기사, 식당 종사원…. 과거에 무심코 대했던 사람들, 때로 짜증도 내고 실수에 대해 싫은 소리도 한 이들을 조심스레 대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되돌아 생각하게 됐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심드렁한 전화 응답, 모른 척 지나치는 태도에서 저는 아픔을 느꼈어요. 제가 시선을 낮추고 보니, 그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함 전무는 언젠가부터 일상생활에서 좀 더 온유한 태도, 자그마한 배려를 하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뒤로 가주세요” “감사합니다. 돈 많이 버세요”라며 공손하게 말하게 됐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디로 갑시다” “거스름돈 왜 안 줘요?”라며 툭하면 운전기사와 시비를 벌였지만, 지금은 택시비에서 몇백 원 남은 잔돈은 안 받는다.
그는 “팁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선의의 선순환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잔돈을 남기고 가면 그는 기분이 좋을 것이며 그것이 다른 손님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덕을 본 경우도 있다. 잔돈을 받지 않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지갑을 차에다 빠뜨리고 내렸다. 거기에는 현금과 신용카드가 있었다. 만약 손님이 아닌 기사가 지갑을 발견한다면 그에게 연락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온전한 사람들은 돈 몇 푼보다 서로 선의나 신뢰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예감대로 몇 시간 뒤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손님, 지갑을 놓고 내리셨어요. 제가 지금 잠실인데 손님 내리고 어디로 가면 될까요?”
관직을 잃거나 ‘루저’가 됐을 때 위대한 작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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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
“당나라 시인 이백이나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이른바 ‘루저’가 되어 귀양 갔을 때 오히려 더 위대한 시를 썼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나 공자의 《논어》도 그들이 관직에 머물렀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작가 헨리 소로나 에드거 앨런 포는 실용주의적인 미국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아웃사이더였어요. 고갱·고흐·이중섭·박수근 같은 화가들도 살아 있을 때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나미 박사는 “새로운 시작에 약한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우선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을 자주 보인다. 새로움에 대한 불안이 무의식에 잠재해,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시작을 못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처음의 실수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아 그만큼 좌절한다”는 것이다.
—40~50대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도전할 만한 가치 있는 시기인가요.
“업적은 물론 역사에 남는 큰 업적이나 사회적으로 요란하게 명성을 누리는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껏, 가족이나 이웃에 소홀했다면, 40대부터라도 가족과 남들을 위해 꾸준히 헌신하면 몇 년만 지나도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정말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죠.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위해 주부 노릇을 따뜻하게 하는 가장, 도시생활을 접고 ‘에코 농부’로 자연과 이웃에 겸손한 삶을 사는 이들은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삶을 사시는 분들입니다. 또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어요. 또 50대부터 등산을 시작해 70대에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노인들, 40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치료사, 사회복지사, 목사, 사회사업가, 간병인 등 주변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 역시 좋은 전범(典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이 듦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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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
“우선, 성공의 기준을 다시 봐야 합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면, 과거 화려했던 시절, 혹은 주변에 잘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해 열등감·불안감·초조감을 지니기 쉽습니다. 이럴 때 융(Jung)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가 유효합니다. 내면의 평화, 만족감, 행복감들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는 성공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Generativity(생산성·심리학 용어로 ‘중년기에 나타나는 후진양성 욕구’를 말한다)’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지식·사랑을 나눠주는 성취감과 경쟁에서 이긴 성취감이 질적(質的)으로 다르다는 것을 빨리 체득해야 합니다.”
40~50대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의 계속된 말이다.
“상투적인 얘기지만, 건강이 나빠지면, 자신과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줄어듭니다. 또 주변 사람에게 큰 폐를 끼칠 수도 있고요.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결국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가 됩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자신이 먼저 깨달음을 성취한 이후 남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정신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중년에 건강관리를 하지 않으면 자칫 무의미하고 불행한 노년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때, 불규칙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생활, 음주·흡연·무절제한 생활 등을 하고 있다면, 훌륭한 노년을 보내기가 어려워집니다. 여러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설마, 나는 괜찮겠지’란 생각은 일종의 안전 불감증이죠.”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는 온갖 형태의 강박(强迫)심리가 꽉 짜인 그물처럼 4050의 마음을 압박하고 있다. 좌우(左右)·신구(新舊) 세대(世代)의 진영이 타협과 공존보다는 서로를 강박하는, 살벌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많은 중년이 이를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두거나 타의에 의해 쫓겨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은 “대한민국 40~50대를 규정한 표현이 여럿 된다”며 이렇게 열거했다.
“어정쩡한 세대, 진화와 도태 사이에 있는 세대, 마지막 주산(珠算) 세대이자 첫 번째 컴맹 세대, 민주를 말하며 몸에 밴 군사문화를 다 씻지 못한 세대, 변화의 이쪽과 저쪽 끝에 매달려 양다리 걸친 경계인 세대, 가랑이 찢어지는 세대, 조기은퇴 대상자에 속하는 세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세대….”
전 소장은 “태어남과 시퍼렇던 젊음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축복이지만, 나이 듦은 미리 준비해야만 축복이 된다”고 했다.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있잖아요. 가을의 정원에 뛰어들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기죠. 40~50대 중년이 되어 마음을 추스르지 않으면 급격히 망가지게 됩니다. 40대의 10년을 관리하지 않으면 후반기 인생에 반드시 보복을 당합니다. 20~30대의 절벽은 파도가 아무리 쳐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어요. 그러나 마흔이 되면 한 축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가까스로 땜질을 해서 버틸 수 있지만, 그것도 잠시, 쉰이 되면 땜질을 아무리 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면 (삶을) 위에서도 아래서도 보고, 통찰도 하고 반추도 아울러도 봐야 합니다. 자기성찰의 완전한 터닝 포인트로 만들어야 해요. 50대는 그런 40대의 성찰을 가지고 10년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40대의 10년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런 40대를 보내지 못했다면 50대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그래야 행복한 예순을 맞이합니다.”
“왜 잘렸는지 아니? 평생 조직 일만 했기 때문이야”
—자기 삶을 되돌아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부모님을 보세요. 소 팔아 자식들 다 대학 보내고, 허리 부러질 정도의 노동 경험을 하셨잖아요. 인생에 있어선 부모세대에서 이미 기출문제를 갖고 있어요. 그걸 풀어봐야 합니다. 마흔이 넘어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영영 삶의 답을 못 찾아요.”
전 소장은 “우리도 주위 사람처럼 똑같이 구조조정, 조직개편, 업무 스트레스 등 온갖 일을 다 겪는다. 그러나 골치 아프다고 잊어버리거나 ‘다음에, 다음에’ 미루다가는 언제 인생이 끝난지도 모르게 끝난다”고 했다.
“퇴근길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털컥 겁부터 납니다. 직장에서 쫓겨난 친구가 혹시 돈 꿔달라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죠. 모른다고 할 수 없고, 내 사정은 뻔하고…. 한밤중에 부모님을 모시는 형님에게서 전화가 오면 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아요. 밤늦게 오는 전화가 굿(good) 뉴스일 리 없잖아요. 이런 일들이 다 40~50대 때 겪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돼요. 하지만 골치 아프다고 당장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이월(移越)하고 건너뛰면 우리는 한 번도 인생에 대해 복습해 보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냥 새로운 문제만 풀어대는 식이죠.”
그는 친구 얘기를 다시 꺼냈다.
“실직한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시내를 정처없이 돌아다니다가 보니 도로변에서 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더라.’ 평소 출퇴근할 때는 구두 수선가게가 눈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면서 덧붙이기를 ‘근데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와. 그 사람은 아침마다 갈 데가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새로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한다. 문득문득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지 모른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춰서서, 왔던 길을 되풀이해서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안다고 해도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숲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길을 잃는다고 해도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다.
“삼성에서 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친구가 있어요. 울분을 토하지만 그런 일이 40~50대에 비일비재하잖아요. 다 듣고 나서 ‘왜 잘렸는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친구 말이 ‘사내(社內)정치 때문’이라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넌 여태 네 일을 하지 않고 남의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죽자고 조직 일만 했지, 자신만의 일,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중년의 나이는 조직의 일이 아니라, 비록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굳이 조직에 있었던 경험을 살릴 생각은 안 해도 됩니다. 두려워 마세요. 어떻게든 살게 돼 있어요.”
전 소장은 ‘마흔의 자기경영 원칙’ 5가지를 기자에게 말했다.
“첫째, 출세가 아닌 입세(入世)를 생각하라. 안전하게 하산하는 나이”라고 했다.
“인생을 100세로 봤을 때 옛날에는 마흔이면 어른입니다. 내려가는 길밖에 없어요. 구태여 하산(下山)이라기보다 종주(縱走)를 계속하는 시기입니다. 종주를 하다가 계곡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절벽 끝에 매달려 있기도 하지요. 멀리서 보면 계속 내려가는 길이지만, 오르막 내리막 다 있어서 죽을 때까지 계속 가게 돼 있어요.”
“둘째, 3짱을 추구하라”고 했다.
“마음짱, 몸짱, 돈짱을 추구하라는 얘기입니다. 마음도 넉넉하고 몸도 잘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어 아랫사람에게 베풀기도 하는 인생입니다.”
“셋째는 노년을 꿈꿔라, 넷째는 아이들을 독자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라, 다섯째는 배우자에게 잘해라”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왕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인생은 어느 순간 뚝 끊어져 버리고 마는 연줄과 같아요. 다 날지 못했다고 불만을 가져봐야 운명은 억울함을 반영해 주지 않아요. 돈을 모으고 언젠가 쓰겠다는 생각일랑 마세요. 부지런히 일해서 개미처럼 모으되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왕의 사치를 부려도 좋습니다. 열심히 산 보답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어요. 가끔 비상금을 털어 최고급 호텔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먹어보세요. 지하철의 걸인에게 만원짜리 지폐를 줘보기도 하고 외로운 이웃에게 익명의 김장 배추를 보내거나 쌀 한 가마니를 보내주기도 하고, 마치 왕처럼 말이죠.”
세상은 퇴직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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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영 이사. |
“전체 경력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분명히 하향의 곡선을 그리는 시기가 40대입니다. 40대 때 자기 경력상의 확실한 성과를 만든 자가 쉰을 넘어도 원하는 진로를 만들 수 있어요. 성과를 못 만드는 사람, 그리고 성과가 있었어도 다음의 수순을 대비하지 못한 사람은 50대라는 어려운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요.”
세상은 퇴직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밀려나도 새롭게 시작하는 역량을 가지지 못한 대다수 평범한 중년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실, 한국 사회는 너무나 많은 유사한 역량의 대기인력을 축적하고 있다.
“40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가능성의 싹을 찾는 시기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이 자신을 객관화해 냉철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40대는 보통 가장 많이 벌 때고, 어느 회사든 중추이기 때문에 때로 자신에 대해 부풀려진 자기평가를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회사라는 울타리 속의 자신을 평가할 때와 그곳을 나와 평가할 때는 대단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조직을 벗어날 때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이직에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확실한 카드가 필요합니다. 창업이 아닌 재취업이라면 이것저것 잘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개 시장에서는 그런 경우 ‘전문성이 없다’는 진단을 내려버리니까요. 지금 40~50대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은 많은데,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너무 적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이때 어중간한 카드, 예를 들어 ‘어느 회사에 대강 이런 일을 했는데’로는 시장에서 ‘원하는’ 자원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확실한 성과, 남이 제공하지 못하거나, 제공자가 드문 영역을 커버하는 능력 등이 있어야 해요. 또 시장의 ‘평판’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실력이 좋아도 인간적 평판에서 걸려 미끄러지는 경우는 재취업 시장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구인공고에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 불법이 되면서 40대 이상의 구직자는 사실상 허수나 마찬가지인 구인광고가 많아졌다. 2009년 3월 시행된 ‘연령차별금지법’은 모든 구인공고에서 나이제한이라는 규정을 없앴지만, 실제 고용시장에서는 이런 제한이 전혀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40대 이상 구직자들이 실효성 없는 자리에 지원하다가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한다. 정 이사의 말이다.
“취업포털 등에 자신의 이력서를 올려놓고 계속 기다리는 구직자가 있어요. 좋은 제안이 와서 취업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흔히 보험설계사나 실적급 판매영업직을 운용하는 곳에서 전화합니다.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한 줄의 무료 구인광고만 올려도 이력서가 쌓이는 상황에서 굳이 전화를 걸면서까지 구직자를 찾는 회사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중장년은 실패의 代價가 너무 크다
정 이사에게 4050들이 도움이 될 ‘창업원칙’을 알려달라고 했다. “창업의 3대 금기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첫째, 가족이 반대하는 창업은 하면 안 됩니다. 창업 실패가 가정의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둘째, 준비하지 않은 창업을 떠밀려서 하면 안 됩니다. 특히 퇴직자가 퇴직 후 다른 할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는 창업은 거의 말려도 됩니다. ‘절실한 필요, 충분한 준비’를 거쳐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요. 청년은 실패가 경험이 되지만, 중장년은 그 실패를 감당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代價)가 너무 큽니다. 셋째, 처음부터 크게 하는 창업은 위험합니다. 창업 경험이 없는 사람은 무조건 작게 시작해서 크게 벌려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번에는 성공 창업을 위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정 이사는 역시 3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 관련 분야의 책 10권 정도는 최소한 읽어보고 시작할 것을 권합니다. 요즘은 어떤 분야든 상세한 창업 안내서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창업은 절대로 위험합니다. 그리고 경험은 개인차가 큽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창업의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고 연구하면 그만큼 손실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둘째, 현장에서 체험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요식업 계열의 창업은 특히 그런데, 실제 한번 현장에서 3개월 정도 일해 보면 자신의 가능성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창업 전 사업계획서는 필수입니다. 특히 이 사업계획서에는 시장에서 ‘왜 경쟁업체가 아닌 자신의 사업에 고객이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이유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역시나 많은 창업 준비자가 이 과정에서 스스로 현실성이 떨어짐을 파악해 포기하기도 합니다.”
정 이사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할 게 있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막상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 중 끝끝내 창업에 이르는 분들의 비율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준비하지 않은 창업을 고민하며 헤매는 동안 중장년은 실제 자신의 경력상 공백을 만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창업에 실패했을 때 경력관리상 상당한 타격을 주게 되고, 안 그래도 어려운 고용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합니다. 허비한 시간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시간을 아끼고 치열하게 준비해 중년의 공백기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은퇴 이후 재테크 이렇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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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은행 신현조 PB팀장. |
“제가 상담한 A고객은 퇴직금 5억원, 그동안 모아둔 금융자산 7억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있다고 하더군요. 전업주부인 아내와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딸이 있어 지속적으로 교육비가 필요했고요. 그는 50평대의 아파트를 팔고 30평대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하는 것으로 은퇴 준비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베이비 부머 세대는 맨손으로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자랑스러운 세대이지만 남은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그저 모아둔 연금을 인출하고 금융자산을 까먹으며, 그것도 부족하면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주택연금 등을 활용하는 정도다. 이것만으로 노후를 대비하기엔 왠지 불안하다. 신현조 PB팀장은 “재무목표를 설정하라”고 충고한다. ‘재무목표’라는 말에 귀가 번뜩 뜨였다. 그의 말이다.
“은퇴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상 수입과 지출을 진단하는 일입니다. A고객의 경우 국민연금 110만원과 연금저축 60만원이 매월 수령 가능한 수입액이었어요. 여기다 금융자산 7억원은 정기예금과 펀드상품에 가입했는데 월 이자로 환산하면 약 88만원이 됐어요. 그런데 매월 지출되는 비용을 계산하니 고정비 350만원과 변동비 200만원을 더해 550만원이었습니다. 부족액은, 대충 계산해도 292만원이나 됐어요.”
—그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우선 고려해야 할 플랜은 퇴직 후 월급을 준비하는 대표적인 상품인 ‘즉시연금’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부동산매각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 3억원과 퇴직금 중 1억원을 합해 2억원을 배우자에게 증여하고, 각 2억원씩 즉시연금에 가입할 경우 매월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은 100만원 정도 됩니다.
공시이율이 적용되는 상품이지만 상속연금형일 경우 10년 이상, 2억원 한도 내에서 비과세가 적용됩니다. 나머지 퇴직금 3억원은 종신연금형 상품에 가입해 부족한 생활비에 충당할 수도 있고요. 계약자, 피보험자, 수익자가 동일하고 55세 이후부터 수령하는 경우 금액에 제한 없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다만 중도인출, 중도해지가 불가능해 긴급자금 필요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할 사항입니다.”
은퇴 이후 재테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과 수익률이다. 빨리 시작할수록, 기대수익률을 높일수록 더 충분한 은퇴자산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펀드다. 신현조 PB팀장의 계속된 말이다.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할 수 있고, ‘월 이자 지급식’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펀드는 원금보장이 안 되고 시중에 많은 상품이 나와 옥석을 가리기가 어려워요. 저는 A고객에게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국내 가치주 펀드와 해외 펀드인 ‘글로벌 멀티에셋 인컴(income)펀드’에 각각 1억원씩 매월 적립식으로 투자하도록 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권했어요. 또 나머지 6억원은 월 이자 지급식과 만기 이자 지급식 정기예금으로 가입해 유동성 확보 및 금융소득종합과세에도 피해갈 수 있도록 재분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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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중년여성이 은행 고객창구에서 은퇴설계를 하고 있다. 은퇴 이후 재테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과 수익률이다. |
“이 자료를 보면, 예비 은퇴자들은 은퇴 후 생계유지를 위해 최소 190만~230만원 정도의 월 소득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고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서는 약 290만~360만원 정도의 소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하는 비율이 35%에 불과했고 은퇴를 대비한 저축액도 월평균 15만원에 그쳤어요. 기대하고 있는 은퇴 후 소득을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지요. 노후 준비는 어느 한 분야만 준비해서는 곤란해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건강, 일과 여가, 타인과의 관계 등 여러 사항을 염두에 두고 은퇴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합니다.”
40~60대의 은퇴 설계와 實戰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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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환 은퇴연구소장. |
먼저 40대에게 필요한 은퇴 준비에 대해 최성환 소장은 “은퇴가 길어야 10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혼자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아내뿐 아니라 자녀들과도 함께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이다.
“‘애들이 뭘 알겠어?’ 할 수도 있지만 요즘 중학생 정도면 집안 돌아가는 형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노부모 부양과 자녀교육, 부부의 노후 준비’라는 3대 과제를 놓고 현재의 자산과 부채, 앞으로의 소득과 지출 등을 있는 그대로 가늠해 보는 것이죠. 사실,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뭘 못 하겠느냐 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잖아요. 자녀교육을 위한 과도한 지출로 내 노후를 망가뜨린 다음 내 자식들만은 다를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을 수 없는 노릇이죠. 필요하다면 여기저기 다니는 학원들은 선택과 집중으로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최 소장은 “이런 40대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맞벌이 전략이다. 남편 또한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저금리・고령화시대에 외벌이만으로는 은퇴 설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소장의 말이다.
“40대가 되면 이제 자녀들도 집에만 있는 엄마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을(?) 나이가 됐어요. 결혼 전 직장 경험을 되살리거나 시간제 아르바이트로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자녀들도 그런 부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지출을 줄인 부분과 맞벌이로 늘어나는 소득의 대부분은 “연금과 같은 은퇴상품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 최 소장의 지론.
“은퇴 후 월 생활비 지출 계획을 세운 다음 거기에 맞는 개인연금상품, 특히 은퇴 후 국민연금 수급까지의 소득 공백을 메워주는 가교연금 등에 가입하면서 소득공제 등 절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현재의 40대는 국민연금 수급시기가 63~65세로 늦춰지면서 소득공백기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죠.”
만약 아직 내 집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을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최 소장은 “가급적 큰 빚을 내지 않는 범위에서 중소형 규모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 “만약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소득과 자산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거나 대출이 많다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은퇴하지 않은 50대라면 회사에서 물러날 시기가 2~3년, 길어야 4~5년 정도다.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최 소장은 “급한 마음에, 여태껏 않던 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럴 때일수록 방어적 전략이 우선입니다. 아직 소득이 있다는 것과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은퇴를 설계해야 합니다. 특히 자녀들이 대학생 또는 고등학생이라면 은퇴 설계에 적극 동참시키면서 취업과 결혼 등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그려보도록 해야 합니다.”
—50대가 반드시 챙겨야 할 은퇴 준비는 뭔가요?
“아무래도 주택연금과 즉시연금, 자녀들의 결혼비용 준비겠죠. 맞벌이를 해서도 은퇴 설계가 막연하다면 주택연금을 추천하고 싶어요. 만 60세 이상 고령자가 소유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매월 평생 동안 연금방식으로 노후생활자금을 지급받아 주거와 생활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부 모두 사망 후 주택을 처분해 연금수령액이 집값을 초과해도 상속인에게 청구하지 않는 반면, 집값이 남으면 상속인에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한꺼번에 예치한 후 가입한 다음달부터 매월 연금을 수령하는 상품입니다. 퇴직금으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마음의 싹을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도 있죠. 강남의 부자들이 많이 가입하는 바람에 가입액이 1인당 2억원 이하로 줄어들 정도로 인기상품입니다.”
—자녀들 결혼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까요.
“여유가 있다면 자녀들의 결혼비용을 웬만큼 따로 떼놓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면 절대 무리해선 안 됩니다. 한 번 넘겨준 재산을 다시 돌려받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이 준 만큼 효도 또는 봉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최 소장은 “은퇴한 50대와 60대 이상이라면 연금과 자녀 결혼비용 외에 한 가지 더 준비하는 것이 좋다”며 노후실손의료보험을 추천했다. 노후생활비를 연금으로 꼼꼼하게 챙겨놓은 다음에는 큰 병이 날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돈을 준비해 둔 게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실손의료보험이 제일이죠. 최근에 출시된 노후실손의료보험은 기존 실손보험에 비해 20~30% 싼 보험료로 50~75세까지 가입이 가능합니다.”⊙
건보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전체 의료보장 인구 5159만7000명 중 노인인구는 631만8천명(12.2%)이다. 이 중 11.3%인 71만6713명이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한 상태다. 등급인정은 40만2000명(노인의 6.4%, 신청자의 56.1%)이 받았고 서비스 이용은 34만6000명(86.0%)이 이용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요양운영실 관계자의 말이다. “제도 시행 초기에 인정을 받은 수급대상자(인정자)가 노인인구의 3% 수준인 14만7000명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대상자가 약 3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입소시설도 2008년에 1244개소에서 현재 4766개소로 3.8배로 늘었고 재가시설은 3401개소에서 1만1280개소로 3.3배 증가했다. 만족도도 높다. 2013년 5월에 외부전문기관인 유니온리서치에서 서비스에 대한 설문 결과, 서비스수급자(가족)의 만족도가 88.5%로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장기요양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거칠까. 먼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신청을 해야 하고 공단 등급판정위원회로부터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야 한다. 인정조사는 신청한 어르신이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정도를 공단 직원이 방문해 이뤄진다. 등급판정위원회에서는 인정조사 결과와 특기사항, 의사소견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심의하여 신청인의 상태와 장기요양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적합한 등급을 결정하게 된다. 심신의 기능 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도움(장기요양)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지표화한 장기요양인정점수를 기준으로 1~5등급으로 등급판정을 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대상자를 확대하기 위해 치매환자 등급인정점수를 낮추는 등 기준을 완화해 대상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며 “지난 7월부터 수급자 중심의 등급제로 대폭 개편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수급자 신체기능 상태에 따라 종전 3등급을 3등급과 4등급으로 세분화하고 3등급은 서비스 이용량을 늘리는 한편, 4등급도 종전에 받았던 서비스 이용량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또한 경증 치매환자 중 인지기능 장애 및 문제행동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65세 미만 치매환자 포함)은 비교적 양호한 신체기능 상태로 인해 그동안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으나 치매특별등급인 ‘5등급’을 신설해 장기요양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치매특별등급에게는 수급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지활동형 프로그램’을 주 3회 또는 월 12회 이상 제공한다. 또 치매전문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가 가정을 방문하는 인지활동형 방문요양을 2시간 이용할 수 있다. 건보 관계자는 “치매특별등급 수급자는 월 76만6600원의 한도액 내에서 인지활동형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월 이용금액의 15%(법정 본인부담률) 수준”이라고 말했다. 장기요양인정 신청은 건보공단에 우편, 방문, 팩스, 인터넷(www.longtermcare.or.kr)으로 할 수 있다. (문의 1577-10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