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란 회사가 올해 116년이 됐는데 한번도 업종을 안 바꿨을 뿐만 아니라 해외사업 빼고는 영업이란 게 없었고 오히려 전기를 안 팔기 위해 절약을 얘기해 왔다. 과연 이런 상태로 10년, 20년 후에 이대로 갈 수 있나 싶다”(趙煥益 한전 사장)
⊙ 밀양주민 “송전탑 건설 반대는 있지만 찬성은 없다는 것이 현재도 솔직한 지역 분위기”
⊙ 한전의 새로운 도전, 서울 삼성동 사옥 팔고 전남 나주로 이전
⊙ 서남해안과 남해안 지역에다 風力발전을 신재생 에너지로 육성
⊙ 한전의 해외사업 順航… 2013년까지 매출 12조, 순이익 1조70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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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력 나주 본사 신사옥 조감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에 대한 전격적인 강제철거가 이뤄졌다. 일부 주민들은 목에 쇠사슬을 건 채 맞섰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남 밀양의 산야(山野)와 논밭을 중심으로 9년을 끌었던 송전탑 찬반 갈등이 경찰 20개 중대 2000여 명을 동원하고 나서야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되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밀양시민과 한국전력 직원들의 표정은 지치고 어두워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한전 직원의 말이다.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환경갈등의 경험을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더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국론분열의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결말이 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한국전력은 밀양 송전탑 사태를 겪으며 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경험해야 했다.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국가폭력’으로 비치는 현실을 지켜보며, 향후 전력정책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앞으로 한전을 어떻게 변모시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미 《포천(Fortune)》지(誌)가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매출액(53조7000억원) 규모가 세계 235위(2013년)인 ‘거대 공기업’ 한전은 모든 국내 가정에 전력을 중앙집중형·하향식으로 공급하는 에너지 독점기업이다. 전기를 쓰는 고객을 호수(戶數)로 환산하면 전국 가구 수와 거의 일치하는 2100만 호에 이른다.
지난 2001년 4월, 전력산업의 구조를 개편한다며 한전과 한몸이었던 6개의 발전회사(남동, 동서, 중부, 서부, 남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를 분리시켰지만, 그 위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현재 한전은 판매·배전·송전의 독점사업자 역할을 떠맡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한전의 공헌은 절대적이지만, 현재 한전의 미래가 장밋빛이라 단정할 순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룡 한전을 구조개편해야 한다”는 개혁 찬성론자와 신중론자들이 대립해 왔다. 매년 전력소비가 급증하는 현실에다 전력생산 원가와 전기요금의 불일치, 과도한 편익추정에 근거한 사업추진 등 경영효율화의 문제가 불거졌다. 게다가 2011년 9월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를 맞이한 이후 전력수급의 불안정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 이후 공공기관 부채증가의 대표사례로 한전을 지목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전은 2013년 현재 56조6000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2008년 이후에만 30조원 이상이 늘었다. 필요하다면 뼈와 살을 도려내야 하는 비상경영 상황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와 외과적(外科的) 위기타개가 필요한 시점에서 한전은 오는 11월 전남 나주로의 본사 이전을 앞두고 있다. 한전의 상징이었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매각 방침이다. 한전의 ‘나주시대’ 개막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정부 시책과 맞물려 추진되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전자파 괴담에서 시작된 밀양의 비극
기자는 먼저 경남 밀양행 KTX를 탔다.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밀양을 통해 도래(到來)할 ‘나주시대’를 엿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밀양 송전탑 사태는 나주시대를 여는 시금석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조환익(趙煥益) 한전 사장은 지금까지 밀양에만 30여 차례나 다녀갔다. 조만간 다시 밀양을 찾을 계획이라는 얘기도 들려왔다.
국책사업 갈등은 비단 밀양 송전탑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시화호 간석지 개발, 새만금 사업, 인천국제공항 건설, 천성산 KTX 터널공사 등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희귀 동식물 서식지가 훼손된다”는 주장에서 소음·수질 악화·재해 우려 등 수많은 반대논리가 분출했다.
밀양 송전탑도 예외는 아니다. 반대 논리를 종합하면, 송전선로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떼죽임을 당한다는 전자파 괴담(怪談)에서 초고압 송전탑으로 채소 재배가 어렵고 주민의 암환자 발생률도 높아지며 소음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는 주장 등이다. 여기에 반핵(反核)·탈핵(脫核)을 주장하는 외부 세력이 밀양주민과 합세하면서 송전탑 건설 논란은 일약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기자는 ‘밀양 송전선로 건설 특별대책본부’가 꾸려진 한전 밀양지사를 찾았다. 대책본부 직원 상당수가 서울에서 파견돼 주말(월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백재현(白在鉉) 밀양특별대책본부장은 “모두 11차례의 공사 중지로 3년 이상 송전탑 건설이 지연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날짜를 꼽으면 1280여 일에 이른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0년 12월 완공됐어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 송전탑 건설계획을 결정하고 2005년 8월 주민설명회를 열면서 빚어졌던 갈등부터 따지면 밀양사태는 대략 9년을 끌어왔다.
시발(始發)은 한전이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경남 창녕의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기 위해 90.5km에 이르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계획을 추진하면서다.
울산시 울주군, 경남 기장군·양산시·밀양시·창녕군 등 일대 5개 시·군에 송전 철탑 161개를 세우는데, 밀양에 세워야 하는 철탑은 단장·산외·상동·부북·청도면 등 5개 면에 걸쳐 69개다. 이 가운데 청도면을 제외한 4개 면 약 30km 구간의 철탑 52개는 건설 중이고, 5개의 철탑은 아예 착공조차 못 하고 있다. 주민들이 철탑 부지에다 움막(농성장)을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765kV짜리 송전선로가 필요할까. 765kV 규모의 송전탑은 기존 154kV, 345kV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 송전용량으로 따져 일반 송전탑(154kV)의 약 18배, 345kV의 약 5배에 이른다고 한다.
백재현 본부장은 “장기적인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해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발전전력을 수송할 대(大)전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전(原電) 때문이란 얘기였다. 곁에 있던 박용성(朴鏞盛) 대외홍보팀장이 풀어서 설명했다.
“신고리-북경남 선로는 해안가에 밀집한 발전력을 영남권 내륙으로 이동시키는 데 목적이 있어요. 영남 지역은 발전소가 전부 동해안과 남해안에 몰려 있어 내륙지역은 전기가 부족해요. 이런 현상을 해소하고 호남과 충청 지역과의 345kV 송전계통 연계를 위해 신고리-북경남 선로가 필요합니다.”
“765kV 송전선로는 신고리 원전 5·6·7·8호기 건설까지 고려”
백 본부장이 말을 받았다.
“원전은 현재 신고리 3, 4호기가 건설 중이고 5, 6호기도 사업승인이 났어요. 신고리 3, 4호기의 발전력을 송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송전선로 건설이 필수입니다. 그 이유는 신고리 3호기를 준공해 발전을 시작하면 송전선로 용량의 50%를 초과하는데 이 경우 선로가 고장이 날 경우 영남권 일대가 광역 정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신고리 3호기 준공 전에 추가적인 송전선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반대론자들은 기존의 3개 345kV 송전선(고리~신울산, 고리~신양산, 고리~울주)으로 전력을 보내면 된다고 주장하던데요.
백 본부장은 손사래를 쳤다.
“2013년 겨울철에 걸리는 최대 부하율(평균 수요전력의 최대 수요전력에 대한 비율)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부하율이) 76%고, 신고리 원전 3호기를 연결하면 80%를 넘는다고 해요. 보통 송전선로를 통해 연결된 최대 수요전력 비율이 50%대면 안정적이라 보는데 송전선로를 건설하지 않을 경우 기존 선로에 과부하가 걸려 전력계통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어요.”
그는 “주민들이 ‘지금까지 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반박하는데 안전사고가 안 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765kV 송전선로는 신고리 원전 5·6·7·8호기 건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철탑은 아파트 40층에 버금가는 80~120m짜리 ‘골리앗’이다. 그 거인의 키에 주민들이 움찔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전탑 반대시위는 작년 12월 밀양 고정마을 유한숙(71) 할아버지, 2012년 보라마을 이치우(74)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격해졌었다.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현장을 지키는 주민을 경찰이 끌어내는 과정에서 실신하고 다치는 일도 일어났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현지 밀양은 흥분이나 분노와 거리가 있었다. 이런 온도차는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렵다. 사실, 송전탑이 세워지는 밀양 30개 마을 중 28개 마을에서 이미 철탑을 세워도 좋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한전이 9년간 밀양에서 보낸 소중한 결과물이다. 특별대책본부 김수창(金秀昌) 대화협상 조정관의 말이다.
“최근의 일인데, 지난 5월 21일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과 고정마을에서 송전탑 건설공사를 할 수 있게 합의를 했어요. 여수마을은 송전탑 건설 반대를 시작한 최초의 마을입니다.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반대활동을 했는데 이번에 결단을 내려주었어요.”
한전은 6월 12일 현재 밀양 부북면과 단장·상동면 일대 5곳에 있던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을 모두 철거했다. 그렇다고 송전탑 갈등이 치유된 것은 아니다.
백 본부장은 “비록 철거는 했지만, 아직 합의가 안 된 밀양 상동면 고답마을과 모정마을 등 2곳에 대해 계속 대화를 하겠다. 주민과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밀양 지역 발전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9년간 93% 주민 합의’,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 9년 동안 100% 주민 합의를 이끌지 못한 한전을 어떻게 봐야 할까. 대화 노력이 부족했다고 봐야 할까. 93%(30개 마을 중 28개 마을) 합의를 이끌었으니 할 만큼 했다고 봐야 할까.
공사 시작(2008년 8월) 후 한전 측은 주민대표와 500여 차례, 마을대표와 1000여 차례, 종교단체와 30여 차례 협의를 가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권익위원회 권고, 국회 공청회, 한전-주민 간의 토론회, 전문가 협의체 구성, 시민단체(경실련)가 중재한 보상협의회 등 수많은 논의를 거쳤다.
작년 11월과 올해 1월에는 송전탑 반대 주민을 지원하는 ‘희망버스’가 두 차례 밀양을 찾기도 했다. 당시 희망버스를 타고 온 전국 시민·사회단체와 인권단체 시민 수가 2000여 명이 넘었다.
수많은 반대논리와 싸우며 한전은 주민들의 마음을 조금씩 돌려놓았다. 자살한 주민이 살았던 보라마을과 고정마을 모두 지난 2월과 5월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변한 것은 주민만이 아니었다.
박용성 대외홍보팀장은 밀양사태를 겪으며 한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공급자 중심에서 송배전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수요자 중심으로 발상을 바꾸게 됐다”는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사업의 직접 영향을 받는 주민과 전문가,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의체를 통해 거리를 좁혀갔다고 한다. ‘밀양 송전탑 갈등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꾸려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작년 8월 5일 발족한 ‘밀양 특별지원협의회’는 밀양시가 추천한 주민대표 10인, 한전 직원 5인, 밀양시 공무원 2인, 경남도 공무원 1인,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1인, 지역 국회의원실 보좌진 1인, 위원장 1인 등 모두 21명으로 꾸려졌다.
박 팀장은 “작년 8월 5일 발족해서 지금까지 17차례의 전체회의와 33차례의 실무협의를 거쳐 수년간 핵심쟁점으로 이견을 보였던 부문을 합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견’이란 금전적 보상에 관한 갈등을 포함한다. 사실 송전탑이 들어서면 주변 땅은 제값을 못 받는다. 대출을 해주는 은행이 없고 땅 매매도 어렵다. 그래서 한전은 ‘지역특수 보상비’라는 명목으로 185억원을 마련, 송전탑이 지나는 밀양마을에 지원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하던 마을별 지원방식의 틀을 깨고 주민 개개인에게 직접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마을 길을 넓히고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을 짓는 데에 지원했지만, 방법을 바꿔 마을별 지원금의 최대 40% 이내에서 주민 개개인에게 보상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중단된 국책사업 재개를 위해 주민의 호주머니에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대가로 정부는 경북 경주시에 특별지원금 3000억원을 건넸었다. 그러나 애당초 주민들에게 현금보상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했고, 돈은 주로 지연된 지역 SOC 사업에 쓰였다. 또 양산·울주 등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구간의 다른 지역은 밀양과 달리 주민 개별보상이 없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개별 금전보상 문제는 지난 수년간 핵심쟁점으로 큰 이견을 보였지만 ‘특별지원협의회’에서 합의를 한 것이 주효했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현금지원이 전부는 아니었다. 송전탑 주변 마을에다 농산물 직거래 판매 시설 건설·운영비 70억원 지원, 밀양 지역 송전선로 인근 주민들이 원할 경우 현금 또는 현물 등을 출자해 ‘태양광 발전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전 관계자는 “밀양 태양광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토지 임대료와 함께 연간 배당수익률이 5%+α가 될 수 있게 해 수익을 한전과 공유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전탑 사태 겪으며 밀양사회가 성숙해져”
기자는 차를 타고 밀양 5개 면에 흩어진 송전탑 공사현장을 둘러보았다. 국도변 곳곳에 전투경찰 버스가 눈에 띄었다.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하는 듯해 보였지만 긴장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50대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유교의 전통이 깊은 내륙 사람의 기질을 타고난 밀양은 자존심이 셉니다. 여간해선 굽히지 않고, 영차영차 하며 뭉치는 기질도 있지요. 그런 밀양에 아파트 40층 높이의 100m짜리 대형철탑을 놓겠다고 하니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반핵을 요구하는 단체와 종교인들까지 몰려와 민심을 흐려놓았어요.”
이 주민은 그러나 “송전탑 사태를 겪으며 밀양의 정서가 성숙되는 측면도 느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에는 송전선로가 지나면 사람들이 죽는다는 전자파 괴담이 떠돌았지만, 전자파가 아니라 ‘극저주파 전자계’이고 인체에 무해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사실, 내 집 앞에 송전탑이 지나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양쪽 말을 모두 듣고 밀양시민이 스스로 판단을 하게 됐어요. 생각이야 각자 다를 수 있지만, 큰일을 겪으며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반대는 있지만 찬성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지역 분위기”라고 했다.
기자는 승용차로 산속 임도(林道)를 굽이굽이 달려 밀양 단장면~양산 원동면 사이 송전선로 작업장에서 김진권씨를 만났다. 현장감독인 그는 “밀양주민의 마음을 다독이려 마음고생을 했는데, 그 덕에 서로 공감대가 넓어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민들에게 싸대기도 맞았지만 그래도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마을 논 한가운데로 송전탑이 지나는 산외면 보라마을의 합의를 이끌었는데 처음엔 마을 39가구 중 30가구만 동의를 했어요. 마지막까지 반대하던 9가구가 찬성으로 마음을 돌렸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어요.”
동행한 박용성 대외홍보팀장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마음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전의 노력이 여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전 전 직원이 하계휴가를 밀양에 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물론, 송전탑 인근 가옥의 도배·장판 교체, 옥내 전기설비 점검, 고효율 조명기기 교체, 심지어 개안(開眼)수술을 비롯해 백내장·녹내장·사시·망막증·원추각막 수술 등 안과질환 주민 110여 명을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또 무릎이나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이 물리치료를 받을 시, 치료비 전액을 한전에서 부담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밀양시청과 협의해 밀양 송전선로 주변 마을의 농산품 온라인 직거래 장터를 개설했다. 박 팀장은 “앞으로 한전 지역사무소와 1사(社) 1촌(村)을 맺어 농산물 구매, 농번기와 하계휴가철에 농가 일손 돕기, 시골 어르신 지원 등과 같은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지금까지는 송전선로를 결정할 때 일방적인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주민과 함께 선로를 고민하고, 충분히 설명하는 자리를 갖게 됐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진 점입니다. 사안에 따라 주민과 이해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지혜를 모색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고요. 나주시대에 앞서 밀양사태가 큰 교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나주, 에너지 사업의 허브 될까?
그러나 밀양의 거친 파고(波高)를 넘긴 한전에 당장 새로운 과업이 기다리고 있다. 한전의 상징이었던 서울 무역센터 앞 삼성동 사옥을 팔고 전남 나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연면적 9만9307m2, 지상 31층 규모의 신사옥에 입주할 예정이다. 광주·전남 최고층 빌딩으로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나주에는 한전뿐만 아니라 한전KDN, 한전KPS, 전력거래소 등 에너지 관련 기업이 대거 내려간다. 에너지 기업들의 클러스터를 이뤄 나주가 ‘에너지 밸리’로 도약하게 된다.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인 한전 실무자는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기업(한성전기회사)으로 시작해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된 한전이 이제는 나주에서 새로운 백년지계를 준비하게 됐다”며 “최적의 정주(定住)여건 마련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옮겨갈 한전 직원 수는 몇 명인가요.
“처음 승인받았을 당시엔 1425명인데 지금은 유동적이에요. 더 늘어날 수 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나주 이전을) 실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진짜로 가는구나’ 하는 반응이에요. 아파트 분양을 받은 분도 꽤 많고요. 자녀 교육을 위해 인근 광주광역시로 이사하려는 분도 있어요.”
한전은 이주 초기 직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을 확보, 기숙사로 활용하고 이사비용 및 이주비도 지원할 방침이다.
—교육여건은 어떤가요.
“나주(광주·전남 혁신도시) 안에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가 다 올 3월에 개교했어요. 이미 우정사업정보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5개 기관이 정착했고, 앞으로 16개 정부기관이 더 내려가면 정주여건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기대해요. 나주나 전남도에서도 교육 쪽에 투자를 많이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요.”
—나주시대가 한전에 위기를 돌파할 기회가 될까요?
“조환익 사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정부시책에 따라가는 것이지만,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보자’고요. 나주를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에너지 밸리로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한전은 나주에서 전력 에너지 산업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장기 비전을 세웠다.
이와 관련 조환익 사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전과 관련 기업의 에너지 클러스터 구축으로 광주·전남의 광역경제권 에너지 사업과 연계 및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전력망에 IT기술을 접목시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차세대 전력망), 신재생 에너지 분야 등 지역의 동반성장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한전의 랜드마크였던 삼성동 사옥은 어떻게 될까. 한전은 2015년 11월까지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헐값 매각이나 특혜시비 등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비상경영 선언한 한전의 부채
한전의 부채는 매우 심각하다. ‘나주시대’의 청사진을 흐리게 하는 방해물이 있다면 바로 부채다. 2004년 18.6조원에서 작년 56.6조원으로 10년간 38조원이 증가했다. 연평균 13%가량 증가한 셈이다. ‘조환익의 한전’이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수위의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덕분에 6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으나 가야 할 길이 멀다. 한전 ‘재무개선 비상대책위’ 관계자의 말이다.
“유가안정이 안 되고 원전가동이 중단되는 등 악재가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흑자로 돌리자고 선언했어요. ‘비대위’가 중심이 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종합대책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6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소폭 흑자로 전환됐어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우선 임직원 임금인상분과 성과급의 일부를 반납해 85억원의 비용을 줄였어요. 또 전력 관련 자회사인 한전KPS 지분 7%, 한전기술 지분 4%를 팔아 2033억원의 매각이익을 실현했습니다. 구(舊) 순화변전소 터를 개발해 보유하던 잔여지분을 팔아 177억원의 매각이익을 실현했어요. 또 수선유지비, 경상경비, 업무추진비 등을 대폭 줄여 6282억원의 비용을 줄였습니다.”
한전은 2017년까지 14조원대의 부채감축 자구노력 계획을 세워놓았다. ‘부채감축 비대위’에서 5개 분야 17개 프로젝트를 선정, 부채감축을 독려하고 있다. 5개 분야는 사업 구조조정, 자산매각, 원가절감, 수익창출, 금융기법 활용 등이다.
—돈 안 되는 자산은 다 정리한다는 뜻인가요?
한전 ‘재무개선 비대위’ 관계자는 “매각 가능한 자산은 모두 매각(5조3000억원)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전력 관련 자회사인 한전기술과 한전KPS는 경영권 유지수준(51%)을 넘는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전력사업과 연관성이 낮은 한전산업개발, LG유플러스 지분도 전량 매각할 계획입니다. 또 해외사업 부문은 비핵심 자산에 한해 일부 자원사업을 매각할 생각이에요. 다만 국부유출이나 헐값 매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매각을 우선 고려하고 매각 전문회사를 통해 적정 가격을 확보할 것입니다.”
사실, 공공기관 부채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국가정책, 요금규제, 외부 환경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전, 도로공사, 가스공사 등 부채 과다 공기업은 모두 수익 창출방법을 요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정 요금은 부채관리의 필수다. 그러나 요금문제는 매우 정치적이고 민감한 사안이라 한전 역시 속 앓이 하며 쉬쉬하는 분위기다.
한전 부채의 원인은 대략 몇 가지로 지적된다. 연료비(유연탄) 급등에 따른 구입 전력비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한전 기획처 관계자는 “2007년 대비 2012년의 전력 단가가 60% 상승했다. 그러나 전력판매 단가는 27% 상승에 그쳤다”고 밝혔다. 원가산정의 적정성 논란은 있지만 도로, 가스, 철도, 수도 요금 역시 공공요금 원가보상률이 70~80%에 이른다고 한다. 한전 기획본부 관계자의 말이다.
“유가급등이 가장 큰 원인이죠. 전력생산 비용은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한전이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부채규모를 50% 이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했지만, 유가가 오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익은 줄고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이 됐어요. 5년간 누적 부채가 11조원에 달했습니다. 한전은 보통 1년에 5조원의 투자비를 쓰는데 이 돈을 조달하려면 이익이 나야 하고, 부족하면 감가상각비 같은 비용에서 충당할 수 있어요. 하지만 2008년 이후 5년간 전체 투자비는 물론 비용이나 운영비까지도 차입(借入)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낮은 원가보상률도 문제지만, 경제성이 낮은 사업을 지나치게 수행해 부채가 심각해진 면도 없지 않다. 한전은 정부에 부채감축안을 제출하면서 ‘전력 공급 안전성 유지 범위 내에서 추진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전 관계자는 “총사업비 300억원 이상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부채정보를 적극 공개하겠다”며 “대규모 사업에 대한 투자심의를 통해 부채를 줄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2017년까지 총 3조원을 줄일 계획이다.
발전 6개사 역시 부채가 심각하다. 남부발전의 경우 1조4000억원(2004년)에서 3조9000억원(2013년)으로 10년간 2조7000억원이 늘었다. 연평균 10.7% 증가한 셈이다. 동서발전 역시 10년간 2조5000억원이 늘어 2013년 현재 부채가 4조1000억원에 이른다. 동서발전 측은 “발전소 건설(당진 9·10호기, 울산복합 신재생 에너지 설비)과 해외사업 지분투자(자메이카 3118억원, EWP America 지분투자 432억원)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적정투자 보수율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이 지속된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남동발전은 10년(2004~2013년)간 부채가 연평균 19.3%(부채 4조6000억원)나 증가했고 서부발전은 연평균 19%(부채 4조원), 중부발전은 연평균 18.8%(3조4000억원), 한국수력원자력은 연평균 12%(26조7000억원)에 달했다.
나주시대와 ‘미래 먹거리’
전력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는 원자력과 석탄, 가스, 석유, 수력 등이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있는 자원도 경제성이 낮은 무연탄과 수력 에너지 정도다.
에너지원의 97%를 수입하는 한국은 무엇보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한국은 연간 에너지 수입액이 2011년 기준으로 180조원(1724억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11위의 수입국이다. 한전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향후 전력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대내적으로 에너지 설비의 입지 확보, 남북통일에 대비한 에너지 수급체계 등 에너지 안보 정책과제도 대두할 겁니다. 전력산업의 경쟁력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신재생 에너지의 잠재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의 부하를 감내할 수 있을지 등의 의문을 스스로 던져야 합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30년대에 ‘원전 제로(Zero)’를 도모한다는 중장기 에너지 정책인 ‘혁신적 에너지·환경전략 안’을 2012년 9월 채택했다. 3대 주요 과제로는 탈 원전 사회의 조속한 실현, 신재생 에너지 사용 촉진, 에너지의 안정 공급 확보를 설정했다.
에너지 소비량 세계 1위인 중국은 수년간 지속된 석탄 중심의 에너지 소비구조에서 벗어나 에너지원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녹색성장을 위해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개척을 통해 이 분야 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로 나서기 시작했다. ‘신에너지법’ ‘재생 가능 에너지법’을 만들어 신재생 에너지 기업에 대한 지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 이코노미》 참조).
나주시대를 준비하는 한전의 향후 비전과 ‘미래 먹거리’도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전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 추진은 화석연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한전과 발전 6개사는 지난 3월 24일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위해 2020년까지 약 42.5조원을 투자해 11.5GW를 개발하기로 했다. 11.5GW는 원자력 발전소(100만kW 기준) 11.5기 수준과 동일한 시설 규모를 의미한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담당하는 한전 관계자는 “현재 19% 수준인 한전 및 발전 6개사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 용량 비중을 2020년까지 61.2%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의 전력망과 개발조직을 활용해 민간의 신재생 에너지 분야와 차별화된 공익사업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예를 들어 육상풍력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한전 보유 송전 철탑에 풍황 측정기구를 구축해 전국의 ‘풍황 실측지도’를 작성해 활용하는 계획 등입니다.”
그는 또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는 지역민들에게 소득이 돌아갈 수 있게 성과공유형 수익모델을 제시하고 연금 형태로 수익을 지급하는 복지연금형 신재생 에너지 사업 모델 도입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재원 42.5조원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일까. 한전 측은 “2020년까지 누적해 발생하는 당기 순이익 10조원(예상치)과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활용해 32.5조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도별 투자계획은 순이익 규모와 부채감축 목표를 고려해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조환익 한전 사장은 “신재생 에너지는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인 만큼 공익적 기업인 한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분야”라며 “회사의 부채상황 등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 풍력발전 중심으로
한전은 서남해안 지역에 2.5GW의 전력을 생산하는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 중이다. 100만kW급 원전 2.5기와 맞먹는 용량이다.
풍력은 이산화탄소나 방사성 폐기물과 같은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무공해 재생 에너지다. 바람만 불어준다면 무한정 이용할 수 있다. 국내 민간자본이 풍력발전에 뛰어든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2005년 경북 영덕과 2006년 강원도 대관령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세워졌다. 한전은 서남해안과 남해안 지역에다 국가전략 사업으로 풍력발전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풍력산업은 제조와 설치, 운영까지 기계, 토목,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의 산업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한전 관계자는 “국내 침체된 조선산업의 관련 기술을 활용해 해상풍력을 제2의 조선산업으로 육성해 ‘글로벌 3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러 신재생 에너지 가운데 풍력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서남해안은 대규모 개발에 적합하지만, 동해안은 소규모 개발에 적합한 지형입니다. 정부와 서남해안 풍력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고, 남해안은 지자체와 함께 적합 부지를 파악 중이죠.”
작년 7월 한전과 발전 6개사가 설립한 한국해상풍력㈜이 이 사업을 수행 중이며 이미 정부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따놓은 상태다. 이 관계자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15년까지 100MW, 2017년까지 400MW, 2020년까지 20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와 별도로 2015년까지 남해안 지역에 1GW 해상풍력 단지를 추가로 발굴키로 하고 전남도와 공동으로 입지 확보 타당성 조사를 지난 4월 마쳤다. 현재 전남 남해안(진도~광양) 일대에 입지를 타진 중이다.
한전은 해저 조류와 심부지열(深部地熱) 발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남 진도군 장죽도 일대에 해저 조류 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사업성을 테스트 중이다. 제 궤도에 오르면 1MW급 조류터빈 155기가 건설된다.
땅속 토양, 암반 및 지하수가 가지는 열을 이용한 심부지열 발전도 추진한다. 비화산 지대에 지하 4~5km 부근에 있는 섭씨 150~200도의 지하층에 인공으로 물을 주입한 후 지열수를 이용해 발전기 증기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한전은 올 초 경북도와 합동으로 지하열원 탐사 국가 R&D 과제를 기획했으며 울릉도에 2016년까지 5MW급 발전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신재생 관련 ESS 사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은 심야(深夜) 예비전력으로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최대부하 시간대에 송전해 피크전력 부담을 감소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ESS 설비를 통해 기업은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고 국가는 피크전력 시간대의 전력공급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휴대폰 등 소규모에서 전력 분야 대용량 저장장치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국내 기업의 생산량이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전의 대규모 ESS 구축계획에 대해 배터리와 중전기기 관련 국내 기업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병숙 한전 신성장동력본부장의 말이다.
“한전은 석탄화력 발전보다 대응속도가 빠른 ESS를 올해 말까지 서(西)안성 변전소와 신(新)용인 변전소에 각각 28MW와 24MW를 시범 구축할 계획입니다. 또 2017년까지 점진적으로 총 500MW 규모에 달하는 ESS를 설치할 것입니다.”
해외사업, 계륵에서 Cash Cow로
한전은 국내 에너지 독점기업에 머무르지 않고 1995년 필리핀 말라야 사업을 시작으로 해외 전력시장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동남아시아 중심의 개도국(開途國)이 대상이었으나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 등지로 점차 시장을 넓혀왔다.
올 4월 현재 전 세계 20개국에서 총 37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것이 한전 측의 설명이다. 발전 분야를 넘어 자원개발, 송배전 컨설팅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전 해외사업개발처 관계자의 말이다.
“현재 운영단계에 있는 필리핀 사업(1739MW급 규모)은 한전 최초의 해외사업 시발점이 됐어요. 특히 필리핀 ‘일리한 사업’의 경우 필리핀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필리핀 전체 발전량의 11.3%를 차지합니다. 총사업비의 75%였던 차입금이 올 4월 전액 상환됐어요.”
필리핀 일리한 사업은 한전이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20년간 운영하고 필리핀에 넘겨주는 BOT(Built Operate Transfer)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전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을 최초 도입한 사업으로 꼽힌다.
해외사업은 매출 대비 수익도 안정적이다. 한전 해외사업개발처 관계자는 “2013년까지 약 12조2000억원의 매출(지분기준)과 약 1조7000억원의 순이익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여기다 민간 건설사와 국내 금융까지 해외에 동반진출하는 성과를 일궜는데, 액수로 따져 약 225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관계자의 계속된 설명이다.
“작년 초 수주한 ‘베트남 응이손 석탄화력 사업’의 경우 한전과 두산중공업, 한국수출입은행 등이 시너지를 발휘해 약 12억 달러 규모의 경제파급 효과를 거뒀어요. 신규 고용창출도 연간 최대 3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0년까지 한전 전체 매출액 대비 20%, 액수로는 16조5000억원을 해외사업을 통해 거둔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해외사업이 처음부터 알짜배기였던 것은 아니다. 2007년 4월 중국 산시성 발전탄광 연계 사업에 산시성 정부, 도이치은행 등과 함께 합자회사를 설립한 한전은 사업 초기 금융위기와 자원가격 상승으로 적자에 시달렸다. 석탄가격 급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석탄가격이 2007년 대비 80% 이상 급등했으나 중국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불허해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몇 년간 고전하던 산시성 사업이 2012년부터 흑자로 전환, 향후 캐시 카우(Cash Cow) 역할을 할 것으로 한전은 내다보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산시성이 중국 내 최대 석탄 생산지인데다 이 지역에 중국의 핵심 에너지 수출기지가 있고, 2020년까지 중국 전력수요가 현재의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중국 다탕집단과의 합작으로 시작된 한전 최초의 중국 풍력사업(919MW)도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한전 해외사업개발처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현실을 고려하면, 한전의 비용절감이나 전력효율 향상만으로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상쇄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해외사업을 통해 꾸준히 벌어들이는 수익금은 한전의 부채감축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국제무대에서 ‘KEPCO’란 브랜드로 통하는 한전은 이미 세계 6위의 글로벌 디벨로퍼(Developer)입니다.”
에필로그
나주시대 개막을 앞둔 한전은 내부적으로 위기냐, 기회냐를 두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비상경영 체제가 지속되면서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지고 있다. 기술과 자본·사람이 집적된 서울을 떠나 314km나 떨어진 전남 나주에 똬리를 트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밀양사태가 완전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땀을 흘려야 한다. 밀양의 상처와 경험을 한전 재도약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선 조환익 사장의 리더십이 한층 필요해 보인다.
한전의 미래 먹거리로 추진 중인 신재생 에너지는 어차피 가야 할 수밖에 없는 길이지만, 에너지 효율과 투자비용·시장논리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엄청난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감내해야 한다. 지금 한전으로서는 버거워 보인다. 최근 5년 사이 부채가 30조원이나 불어난 현실을 감내하기조차 벅차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 갈등에서 지체된 9년간의 시간을 떠올린다면, 진심과 성의를 담아 반대의견을 설득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변화시켜 온 노력을 떠올린다면, 나주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전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한다.⊙
[인터뷰] 조환익 한전 사장
“신재생 에너지로 활로 찾아야”
조환익(趙煥益) 한국전력 사장은 밀양 송전탑 농성장 철거가 있던 6월 11일 “미래는 신기술의 출현으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에너지미래포럼(대표 이재훈) 주최로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에너지 부문 혁신과 제6의 물결’이란 조찬 강연에서 조 사장은 “화석연료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채 100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는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화석연료의 가채연수(可採年數)는 100년, 심지어 5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태양 에너지는 잠재량의 0.07%만 사용해도 전 세계의 에너지 소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재생 에너지 보급 비중은 지속적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조 사장은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한전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신재생 에너지는 결국 한전과 한전 그룹사인 발전사들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 한전이 전기만을 팔아 앞으로 지속가능한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라며 이같이 밝혔다.
“에너지의 전환 과정은 수염이 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어린아이가 성인이 돼 수염이 나기까지는 십여 년이 걸리지만, 한번 나기 시작하면 빠르게 자라죠. 신에너지원이 등장해 주요 자원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막상 시작되면 변화는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조환익 사장은 서울 토박이로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1973년 행정고시(14회)에 합격, 상공부 특허국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과거 정부 내 5대 요직으로 꼽히던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을 역임했고, 이후 차관보가 됐다.
2001년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으로 갔다가, 쓰러져 가던 산업기술재단의 사업 규모를 10배 가까이 키우고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능력을 인정받아 2004년 산자부 제1차관으로 복귀했다. 2년 뒤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2007년 5월 수출보험공사 사장으로, 이명박(李明博)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코트라 수장(首長)이 됐으며, 2012년 12월 다시 한전 제19대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섰다. 박정희(朴正熙) 정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박근혜 정부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보기 드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박정희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現役
아무래도 밀양 송전탑 갈등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질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6월 11일 밀양 송전탑 예정부지에 움막을 짓고 공사를 막던 주민들을 연행했다. 한전은 곧바로 미착수 5개 현장에 대한 공사를 재개했다.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속도였다. 작년 10월 공사재개 이후 8개월 만에 밀양 인근 69개 송전탑 건설현장 모두에서 공사가 이뤄지게 됐다.
조 사장은 “한전은 밀양 송전탑 경과지 30개 마을 중 93%인 28개 마을과 공사에 합의했다. 마을 논 한가운데에 철탑이 들어서 반대가 거셌던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과도 100% 합의를 끌어냈고, 최근에도 송전탑 반대에 나섰던 상동면 여수·고정마을, 송전탑 반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평밭마을과도 공사합의를 이루었다”고 했다.
“현재 미합의 마을은 상동면 고답마을과 모정마을 2개 마을입니다. 송전탑 공사가 국민 모두를 위한 공익사업이라는 점에서 미합의 마을주민에게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어요. 계속 진정성을 갖고 대화할 생각입니다.”
현재 한전은 밀양 지역 69개 송전탑 중 68%가 넘는 47개에 대해 철탑 조립을 완료했고 22개는 철탑 조립 또는 기초 작업이 진행 중이다. 조 사장은 거듭 “작년 10월 공사재개 이래 주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공사를 진행해 왔다.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왔고 일손 돕기, 지역 특산물 구입 등도 벌였다”고 밝혔다.
—밀양 송전탑 논란을 겪으며 한전은 어떤 교훈을 얻었나요.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갈등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재산권과 건강권에 대한 인식변화를 제도와 정책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송변전 건설사업에 앞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이미 한전은 2009년부터 입지선정위원회를 운영,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제3자’가 주도하는 입지선정 방식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땅속에 전선을 두는 지중화, 초고압 직류송전(High Voltage Direct Current) 등 기술적 대안도 마련해 나가겠습니다.”
—밀양 송전탑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을 달래기 위해 ‘개별지원 방침’을 정했습니다. 논란도 예상됩니다.
“전력설비 건설과 관련해 ‘마을 공동시설 건립’ 등을 하는 방법으로 주민지원을 해왔으나, 기반시설을 이미 갖춘 곳이 많아요. 그리고 개인 재산권에 대한 권리의식 증대로 주민들은 개별적, 직접적 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개별지원은 폐기물처리시설, 댐 건설 등 기타 공익사업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어 시대적 변화라고 볼 수 있어요.”
6년 만에 적자 탈출
—오는 11월 본사를 이전, ‘나주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나주시대를 어떻게 이끌 각오인지 궁금합니다.
“한전이 서울 내에서 본사 사옥을 이전한 경험은 있지만, 서울을 벗어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창사 이래 처음입니다. 이번 본사 이전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기고, 새 터전에서 글로벌 에너지 그룹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워나갈 수 있게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전의 부채증가 원인과 부채감축 대책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한전의 부채가 이렇게 급격히 증가한 것은 2008년 이후 국제 연료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상승 부분을 정부정책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제때 반영하지 못해서입니다. 결국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 적자가 누적됐어요.
적자를 탈피하고 부채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2008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의 허리띠를 졸라맸어요. 작년에는 ‘재무개선 비상대책위원회’를 둬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자구계획을 추진해 6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습니다.”
—한전은 현재 중요한 변곡점 위에 서 있습니다. 미래 먹거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조환익 사장은 “한전이란 회사가 올해 116년이 됐는데 한 번도 업종을 안 바꿨을 뿐만 아니라 해외사업 빼고는 영업이란 게 없었고, 오히려 전기를 안 팔기 위해 절약을 얘기해 왔다. 과연 이런 상태로 10년, 20년 후에 이대로 갈 수 있나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전은 내부적으로는 대대적인 부채감축과 함께 외부로는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같은 신사업과 해외시장 개척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먼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문제를 새로운 시장창출의 기회로 삼아 신재생 에너지와 청정 에너지 기술개발을 추진할 겁니다. 예를 들면, 서남해안 해상에 건설될 해상 풍력단지를 비롯해 활용도가 낮은 저열량 석탄에서 전기뿐 아니라 수소 및 합성가스를 만들 수 있는 차세대 발전기술 개발, 화력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처리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기술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는 ‘전기차’를 예로 들며 이런 말도 했다.
“우리나라는 단일 전력망으로 전기차를 만들어 보급하면 어떤 나라보다 유리합니다. 급속히 발전 중인 신재생 에너지도 결국 한전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에너지 분야는 인문학과 사회학, 종교 등 각종 분야와 통섭해서 밀양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한전이 사는 길
앞서 지난 6월 11일 에너지포럼 조찬 강연에서도 조 사장은 “가전으로 시작해 에너지·금융·항공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대한 GE나, 하드웨어에서 서비스와 컨설팅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변화시킨 IBM을 ‘끝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으로 평가하면서 “한전도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전은 전력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사장의 지시로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스마트 그리드 및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전담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또 정부의 ‘지능형 전력망 기본 계획’에 따라 올해 230만 가구에 원격검침 인프라(AMI) 보급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2016년까지 1000만 가구, 2020년까지 2200만 전 고객을 대상으로 AMI를 구축할 계획이다. AMI는 전기, 가스, 수도 계량기 등을 검침원이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 원격으로 단말기를 이용해 검침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스마트 그리드는 합리적인 전력 소비를 유도하고 지능화한 송·배전 망을 운용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입니다. 2030년 세계 최초의 국가 단위 스마트 그리드 구축을 목표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체계를 구축할 것입니다.
또 전기를 저장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저장장치 보급과 전력공급을 디젤발전에서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기존의 광역적 전력시스템으로부터 독립된 분산전원을 중심으로 한 전력공급시스템) 사업도 미래 먹거리가 될 겁니다.”
조 사장은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세계 추세에 비춰볼 때 독보적 노하우를 쌓아온 한전의 경쟁력은 해외시장에서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최근 한전의 주가 상승은 이런 한전의 기업가치를 높게 보고 있는 방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환경갈등의 경험을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더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국론분열의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결말이 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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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7월1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에 있던 舊 경성전기 社屋에서 열린 한국전력주식회사 현판식. |
미 《포천(Fortune)》지(誌)가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매출액(53조7000억원) 규모가 세계 235위(2013년)인 ‘거대 공기업’ 한전은 모든 국내 가정에 전력을 중앙집중형·하향식으로 공급하는 에너지 독점기업이다. 전기를 쓰는 고객을 호수(戶數)로 환산하면 전국 가구 수와 거의 일치하는 2100만 호에 이른다.
지난 2001년 4월, 전력산업의 구조를 개편한다며 한전과 한몸이었던 6개의 발전회사(남동, 동서, 중부, 서부, 남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를 분리시켰지만, 그 위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현재 한전은 판매·배전·송전의 독점사업자 역할을 떠맡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한전의 공헌은 절대적이지만, 현재 한전의 미래가 장밋빛이라 단정할 순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룡 한전을 구조개편해야 한다”는 개혁 찬성론자와 신중론자들이 대립해 왔다. 매년 전력소비가 급증하는 현실에다 전력생산 원가와 전기요금의 불일치, 과도한 편익추정에 근거한 사업추진 등 경영효율화의 문제가 불거졌다. 게다가 2011년 9월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를 맞이한 이후 전력수급의 불안정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 이후 공공기관 부채증가의 대표사례로 한전을 지목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전은 2013년 현재 56조6000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2008년 이후에만 30조원 이상이 늘었다. 필요하다면 뼈와 살을 도려내야 하는 비상경영 상황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와 외과적(外科的) 위기타개가 필요한 시점에서 한전은 오는 11월 전남 나주로의 본사 이전을 앞두고 있다. 한전의 상징이었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매각 방침이다. 한전의 ‘나주시대’ 개막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정부 시책과 맞물려 추진되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전자파 괴담에서 시작된 밀양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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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일대에 세워진 80~120m 높이의 765kV 송전탑.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끝이 안 보인다. |
국책사업 갈등은 비단 밀양 송전탑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시화호 간석지 개발, 새만금 사업, 인천국제공항 건설, 천성산 KTX 터널공사 등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희귀 동식물 서식지가 훼손된다”는 주장에서 소음·수질 악화·재해 우려 등 수많은 반대논리가 분출했다.
밀양 송전탑도 예외는 아니다. 반대 논리를 종합하면, 송전선로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떼죽임을 당한다는 전자파 괴담(怪談)에서 초고압 송전탑으로 채소 재배가 어렵고 주민의 암환자 발생률도 높아지며 소음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는 주장 등이다. 여기에 반핵(反核)·탈핵(脫核)을 주장하는 외부 세력이 밀양주민과 합세하면서 송전탑 건설 논란은 일약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기자는 ‘밀양 송전선로 건설 특별대책본부’가 꾸려진 한전 밀양지사를 찾았다. 대책본부 직원 상당수가 서울에서 파견돼 주말(월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백재현(白在鉉) 밀양특별대책본부장은 “모두 11차례의 공사 중지로 3년 이상 송전탑 건설이 지연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날짜를 꼽으면 1280여 일에 이른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0년 12월 완공됐어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 송전탑 건설계획을 결정하고 2005년 8월 주민설명회를 열면서 빚어졌던 갈등부터 따지면 밀양사태는 대략 9년을 끌어왔다.
시발(始發)은 한전이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경남 창녕의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기 위해 90.5km에 이르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계획을 추진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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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에 세워지는 송전탑은 단장·산외·상동·부북·청도면 등 5개 면에 걸쳐 69개에 이른다. 옛날 봉수대 처럼 국토 대동맥을 가로지르고 있다. |
그렇다면 왜 765kV짜리 송전선로가 필요할까. 765kV 규모의 송전탑은 기존 154kV, 345kV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 송전용량으로 따져 일반 송전탑(154kV)의 약 18배, 345kV의 약 5배에 이른다고 한다.
백재현 본부장은 “장기적인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해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발전전력을 수송할 대(大)전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전(原電) 때문이란 얘기였다. 곁에 있던 박용성(朴鏞盛) 대외홍보팀장이 풀어서 설명했다.
“신고리-북경남 선로는 해안가에 밀집한 발전력을 영남권 내륙으로 이동시키는 데 목적이 있어요. 영남 지역은 발전소가 전부 동해안과 남해안에 몰려 있어 내륙지역은 전기가 부족해요. 이런 현상을 해소하고 호남과 충청 지역과의 345kV 송전계통 연계를 위해 신고리-북경남 선로가 필요합니다.”
“765kV 송전선로는 신고리 원전 5·6·7·8호기 건설까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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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움막(농성장)을 경찰이 철거한 뒤 한전 직원들이 공사재개를 위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
“원전은 현재 신고리 3, 4호기가 건설 중이고 5, 6호기도 사업승인이 났어요. 신고리 3, 4호기의 발전력을 송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송전선로 건설이 필수입니다. 그 이유는 신고리 3호기를 준공해 발전을 시작하면 송전선로 용량의 50%를 초과하는데 이 경우 선로가 고장이 날 경우 영남권 일대가 광역 정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신고리 3호기 준공 전에 추가적인 송전선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반대론자들은 기존의 3개 345kV 송전선(고리~신울산, 고리~신양산, 고리~울주)으로 전력을 보내면 된다고 주장하던데요.
백 본부장은 손사래를 쳤다.
“2013년 겨울철에 걸리는 최대 부하율(평균 수요전력의 최대 수요전력에 대한 비율)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부하율이) 76%고, 신고리 원전 3호기를 연결하면 80%를 넘는다고 해요. 보통 송전선로를 통해 연결된 최대 수요전력 비율이 50%대면 안정적이라 보는데 송전선로를 건설하지 않을 경우 기존 선로에 과부하가 걸려 전력계통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어요.”
그는 “주민들이 ‘지금까지 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반박하는데 안전사고가 안 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765kV 송전선로는 신고리 원전 5·6·7·8호기 건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철탑은 아파트 40층에 버금가는 80~120m짜리 ‘골리앗’이다. 그 거인의 키에 주민들이 움찔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전탑 반대시위는 작년 12월 밀양 고정마을 유한숙(71) 할아버지, 2012년 보라마을 이치우(74)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격해졌었다.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현장을 지키는 주민을 경찰이 끌어내는 과정에서 실신하고 다치는 일도 일어났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현지 밀양은 흥분이나 분노와 거리가 있었다. 이런 온도차는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렵다. 사실, 송전탑이 세워지는 밀양 30개 마을 중 28개 마을에서 이미 철탑을 세워도 좋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한전이 9년간 밀양에서 보낸 소중한 결과물이다. 특별대책본부 김수창(金秀昌) 대화협상 조정관의 말이다.
“최근의 일인데, 지난 5월 21일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과 고정마을에서 송전탑 건설공사를 할 수 있게 합의를 했어요. 여수마을은 송전탑 건설 반대를 시작한 최초의 마을입니다.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반대활동을 했는데 이번에 결단을 내려주었어요.”
한전은 6월 12일 현재 밀양 부북면과 단장·상동면 일대 5곳에 있던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을 모두 철거했다. 그렇다고 송전탑 갈등이 치유된 것은 아니다.
백 본부장은 “비록 철거는 했지만, 아직 합의가 안 된 밀양 상동면 고답마을과 모정마을 등 2곳에 대해 계속 대화를 하겠다. 주민과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밀양 지역 발전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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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원전 1호기 준공식 모습. 1971년 11월에 착공해 1977년에 완공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다. 2008년 1월 정부가 10년간 재가동을 승인해 다시 가동하고 있다. 고리원전 1호기를 건설할 때 한전은 감히 기술자립을 꿈꿀 수 없었다. 모든 작업을 외국업체에 맡기는 턴키(turn key)방식으로 진행했다. 한전은 1972년부터 고리원전의 주 계약자로 선정된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사에 20대 젊은 엘리트 직원을 파견, 원전 건설에 필요한 노하우를 습득게 했다. |
‘9년간 93% 주민 합의’,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 9년 동안 100% 주민 합의를 이끌지 못한 한전을 어떻게 봐야 할까. 대화 노력이 부족했다고 봐야 할까. 93%(30개 마을 중 28개 마을) 합의를 이끌었으니 할 만큼 했다고 봐야 할까.
공사 시작(2008년 8월) 후 한전 측은 주민대표와 500여 차례, 마을대표와 1000여 차례, 종교단체와 30여 차례 협의를 가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권익위원회 권고, 국회 공청회, 한전-주민 간의 토론회, 전문가 협의체 구성, 시민단체(경실련)가 중재한 보상협의회 등 수많은 논의를 거쳤다.
작년 11월과 올해 1월에는 송전탑 반대 주민을 지원하는 ‘희망버스’가 두 차례 밀양을 찾기도 했다. 당시 희망버스를 타고 온 전국 시민·사회단체와 인권단체 시민 수가 2000여 명이 넘었다.
수많은 반대논리와 싸우며 한전은 주민들의 마음을 조금씩 돌려놓았다. 자살한 주민이 살았던 보라마을과 고정마을 모두 지난 2월과 5월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변한 것은 주민만이 아니었다.
박용성 대외홍보팀장은 밀양사태를 겪으며 한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공급자 중심에서 송배전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수요자 중심으로 발상을 바꾸게 됐다”는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사업의 직접 영향을 받는 주민과 전문가,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의체를 통해 거리를 좁혀갔다고 한다. ‘밀양 송전탑 갈등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꾸려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작년 8월 5일 발족한 ‘밀양 특별지원협의회’는 밀양시가 추천한 주민대표 10인, 한전 직원 5인, 밀양시 공무원 2인, 경남도 공무원 1인,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1인, 지역 국회의원실 보좌진 1인, 위원장 1인 등 모두 21명으로 꾸려졌다.
박 팀장은 “작년 8월 5일 발족해서 지금까지 17차례의 전체회의와 33차례의 실무협의를 거쳐 수년간 핵심쟁점으로 이견을 보였던 부문을 합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견’이란 금전적 보상에 관한 갈등을 포함한다. 사실 송전탑이 들어서면 주변 땅은 제값을 못 받는다. 대출을 해주는 은행이 없고 땅 매매도 어렵다. 그래서 한전은 ‘지역특수 보상비’라는 명목으로 185억원을 마련, 송전탑이 지나는 밀양마을에 지원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하던 마을별 지원방식의 틀을 깨고 주민 개개인에게 직접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마을 길을 넓히고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을 짓는 데에 지원했지만, 방법을 바꿔 마을별 지원금의 최대 40% 이내에서 주민 개개인에게 보상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중단된 국책사업 재개를 위해 주민의 호주머니에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대가로 정부는 경북 경주시에 특별지원금 3000억원을 건넸었다. 그러나 애당초 주민들에게 현금보상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했고, 돈은 주로 지연된 지역 SOC 사업에 쓰였다. 또 양산·울주 등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구간의 다른 지역은 밀양과 달리 주민 개별보상이 없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개별 금전보상 문제는 지난 수년간 핵심쟁점으로 큰 이견을 보였지만 ‘특별지원협의회’에서 합의를 한 것이 주효했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현금지원이 전부는 아니었다. 송전탑 주변 마을에다 농산물 직거래 판매 시설 건설·운영비 70억원 지원, 밀양 지역 송전선로 인근 주민들이 원할 경우 현금 또는 현물 등을 출자해 ‘태양광 발전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전 관계자는 “밀양 태양광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토지 임대료와 함께 연간 배당수익률이 5%+α가 될 수 있게 해 수익을 한전과 공유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밀양 송전탑 건설 논란 日誌 •2000년 1월 정부, 제5차 장기 전력수급 계획 확정 •2001년 5월 한전,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환경영향평가 용역 착수 •2005년 8월 한전, 환경영향평가 완료. 송전선로 건설사업 밀양 주민설명회 •2007년 7월 밀양시의회, 송전선로 사업 전면 백지화 촉구 •2007년 11월 정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사업 승인 •2008년 8월 한전, 공사 착공 •2009년 12월 국민권익위 주관, 밀양 지역 갈등조정위원회 운영 •2010년 11월 경실련 주관, 보상제도 개선추진위원회 운영 •2011년 5월 주민-한전 간 대화위원회 운영 •2011년 8월 경실련 중재 보상협의회 운영 •2012년 3월 11일~6월 11일까지 90일간 공사 중지. 6월 11일 공사 재개 •2012년 9월 24일 국회 현안보고 이후 공사 중지 •2012년 10월 9일, 10월 30일, 11월 9일 한전, 반대대책위와 실무협의 •2013년 9월 11일 정홍원 국무총리 밀양 방문 •2013년 10월 30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밀양 송전탑 국정감사 •2014년 1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피해주민, 밀양 송전탑 방문 •2014년 6월 11일 밀양시, 송전탑 농성장 5곳 철거 |
“송전탑 사태 겪으며 밀양사회가 성숙해져”
기자는 차를 타고 밀양 5개 면에 흩어진 송전탑 공사현장을 둘러보았다. 국도변 곳곳에 전투경찰 버스가 눈에 띄었다.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하는 듯해 보였지만 긴장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50대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유교의 전통이 깊은 내륙 사람의 기질을 타고난 밀양은 자존심이 셉니다. 여간해선 굽히지 않고, 영차영차 하며 뭉치는 기질도 있지요. 그런 밀양에 아파트 40층 높이의 100m짜리 대형철탑을 놓겠다고 하니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반핵을 요구하는 단체와 종교인들까지 몰려와 민심을 흐려놓았어요.”
이 주민은 그러나 “송전탑 사태를 겪으며 밀양의 정서가 성숙되는 측면도 느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에는 송전선로가 지나면 사람들이 죽는다는 전자파 괴담이 떠돌았지만, 전자파가 아니라 ‘극저주파 전자계’이고 인체에 무해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사실, 내 집 앞에 송전탑이 지나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양쪽 말을 모두 듣고 밀양시민이 스스로 판단을 하게 됐어요. 생각이야 각자 다를 수 있지만, 큰일을 겪으며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반대는 있지만 찬성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지역 분위기”라고 했다.
기자는 승용차로 산속 임도(林道)를 굽이굽이 달려 밀양 단장면~양산 원동면 사이 송전선로 작업장에서 김진권씨를 만났다. 현장감독인 그는 “밀양주민의 마음을 다독이려 마음고생을 했는데, 그 덕에 서로 공감대가 넓어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민들에게 싸대기도 맞았지만 그래도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마을 논 한가운데로 송전탑이 지나는 산외면 보라마을의 합의를 이끌었는데 처음엔 마을 39가구 중 30가구만 동의를 했어요. 마지막까지 반대하던 9가구가 찬성으로 마음을 돌렸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어요.”
동행한 박용성 대외홍보팀장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마음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전의 노력이 여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전 전 직원이 하계휴가를 밀양에 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물론, 송전탑 인근 가옥의 도배·장판 교체, 옥내 전기설비 점검, 고효율 조명기기 교체, 심지어 개안(開眼)수술을 비롯해 백내장·녹내장·사시·망막증·원추각막 수술 등 안과질환 주민 110여 명을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또 무릎이나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이 물리치료를 받을 시, 치료비 전액을 한전에서 부담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밀양시청과 협의해 밀양 송전선로 주변 마을의 농산품 온라인 직거래 장터를 개설했다. 박 팀장은 “앞으로 한전 지역사무소와 1사(社) 1촌(村)을 맺어 농산물 구매, 농번기와 하계휴가철에 농가 일손 돕기, 시골 어르신 지원 등과 같은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지금까지는 송전선로를 결정할 때 일방적인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주민과 함께 선로를 고민하고, 충분히 설명하는 자리를 갖게 됐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진 점입니다. 사안에 따라 주민과 이해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지혜를 모색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고요. 나주시대에 앞서 밀양사태가 큰 교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기업 맏형의 사회공헌활동
한전 사회봉사단은 모두 285개로 단원만 1만9506명에 이른다. 2010년에 만든 공기업 유일의 재난구조단인 ‘KEPCO119’는 대설(大雪)·수해(水害)·연평도 피해복구 등 각종 구호활동에 빠지지 않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27차례 각종 재난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한전은 해저케이블 순시선 2척 투입, 구조를 지원했고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 합동분향소 등에 비상발전기 3대를 배치, 비상전력을 공급했다. 또 가족연락용 휴대폰 충전기 90대, 가족용 침낭 100개를 지원하고, 매일 129명의 인력이 24시간 교대근무 중이다. 한전 홍보실에다 “한전만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뭐냐”고 물었더니 “회사에 대한 자긍심과 사명감, 상호 신뢰 및 소통, Risk Taking(위험감수) 하는 조직문화, 노사 상호존중 및 화합” 등을 꼽았다. 20대 대학생이 공기업 중에서도 한전 입사를 가장 선호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한전 봉사단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거노인 전기설비 개보수, 전력설비 인근지역 봉사, 175개 농어촌마을 자매결연 등을 해왔지만 ‘저소득층 개안수술’ 지원에 가장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일명 ‘아이 러브(Eye Love) 1004 프로젝트’. 한전 CSR팀 관계자는 “‘전기→빛→광명’으로 연상되는 기업특성에 맞게 2011년부터 매년 100명(해외 포함)씩 저소득층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개안수술을 하고 있다”며 “2021년까지 1004명의 눈을 밝혀줄 계획”이라고 했다. ‘사랑의 에너지 나눔사업’이라 부르는 저소득층 전기요금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가구 중 전기요금을 3개월 이상 체납한 가구에 대해 가구당 20만원 한도로 체납 전기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총 1만5536가구에 21억원을 지원했다. 한전은 지난 2004년부터 직원 기부금인 러브펀드(Love fund)와 이 금액의 2배에 해당하는 회사 기부금을 봉사활동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320억원을 적립했다. 이 펀드에 전 직원(97%)이 가입했는데 1인당 월평균 6계좌(계좌당 1000원)라고 한다. 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의 소규모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직원 급여의 끝전을 모아 기금을 마련한 소액 신용대출(Micro Credit)을 마련한 것. 이름을 ‘KEPCO 희망무지개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명명(命名)했다. 작년 12월에는 공모를 통해 예비창업자 3명, 사회적 기업 4개사에다 창업자금과 경영개선자금 등으로 총 1억2000만원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부부창업자가 ‘KEPCO 희망무지개 가게’를 오픈하기도 했다. |
전남 나주, 에너지 사업의 허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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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나주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밀양사태와 같은 국책사업 갈등의 경험을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작년 10월 밀양주민들이 국회 앞에서 송전탑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
나주에는 한전뿐만 아니라 한전KDN, 한전KPS, 전력거래소 등 에너지 관련 기업이 대거 내려간다. 에너지 기업들의 클러스터를 이뤄 나주가 ‘에너지 밸리’로 도약하게 된다.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인 한전 실무자는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기업(한성전기회사)으로 시작해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된 한전이 이제는 나주에서 새로운 백년지계를 준비하게 됐다”며 “최적의 정주(定住)여건 마련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옮겨갈 한전 직원 수는 몇 명인가요.
“처음 승인받았을 당시엔 1425명인데 지금은 유동적이에요. 더 늘어날 수 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나주 이전을) 실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진짜로 가는구나’ 하는 반응이에요. 아파트 분양을 받은 분도 꽤 많고요. 자녀 교육을 위해 인근 광주광역시로 이사하려는 분도 있어요.”
한전은 이주 초기 직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을 확보, 기숙사로 활용하고 이사비용 및 이주비도 지원할 방침이다.
—교육여건은 어떤가요.
“나주(광주·전남 혁신도시) 안에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가 다 올 3월에 개교했어요. 이미 우정사업정보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5개 기관이 정착했고, 앞으로 16개 정부기관이 더 내려가면 정주여건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기대해요. 나주나 전남도에서도 교육 쪽에 투자를 많이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요.”
—나주시대가 한전에 위기를 돌파할 기회가 될까요?
“조환익 사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정부시책에 따라가는 것이지만,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보자’고요. 나주를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에너지 밸리로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한전은 나주에서 전력 에너지 산업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장기 비전을 세웠다.
이와 관련 조환익 사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전과 관련 기업의 에너지 클러스터 구축으로 광주·전남의 광역경제권 에너지 사업과 연계 및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전력망에 IT기술을 접목시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차세대 전력망), 신재생 에너지 분야 등 지역의 동반성장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한전의 랜드마크였던 삼성동 사옥은 어떻게 될까. 한전은 2015년 11월까지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헐값 매각이나 특혜시비 등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비상경영 선언한 한전의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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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면적은 축구장(약 7000㎡) 11배 넓이인 7만9342㎡(2만4000평)다. 공시지가는 1조4837억원, 시세는 2조원을 훌쩍 넘는다. |
“유가안정이 안 되고 원전가동이 중단되는 등 악재가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흑자로 돌리자고 선언했어요. ‘비대위’가 중심이 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종합대책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6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소폭 흑자로 전환됐어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우선 임직원 임금인상분과 성과급의 일부를 반납해 85억원의 비용을 줄였어요. 또 전력 관련 자회사인 한전KPS 지분 7%, 한전기술 지분 4%를 팔아 2033억원의 매각이익을 실현했습니다. 구(舊) 순화변전소 터를 개발해 보유하던 잔여지분을 팔아 177억원의 매각이익을 실현했어요. 또 수선유지비, 경상경비, 업무추진비 등을 대폭 줄여 6282억원의 비용을 줄였습니다.”
한전은 2017년까지 14조원대의 부채감축 자구노력 계획을 세워놓았다. ‘부채감축 비대위’에서 5개 분야 17개 프로젝트를 선정, 부채감축을 독려하고 있다. 5개 분야는 사업 구조조정, 자산매각, 원가절감, 수익창출, 금융기법 활용 등이다.
—돈 안 되는 자산은 다 정리한다는 뜻인가요?
한전 ‘재무개선 비대위’ 관계자는 “매각 가능한 자산은 모두 매각(5조3000억원)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전력 관련 자회사인 한전기술과 한전KPS는 경영권 유지수준(51%)을 넘는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전력사업과 연관성이 낮은 한전산업개발, LG유플러스 지분도 전량 매각할 계획입니다. 또 해외사업 부문은 비핵심 자산에 한해 일부 자원사업을 매각할 생각이에요. 다만 국부유출이나 헐값 매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매각을 우선 고려하고 매각 전문회사를 통해 적정 가격을 확보할 것입니다.”
사실, 공공기관 부채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국가정책, 요금규제, 외부 환경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전, 도로공사, 가스공사 등 부채 과다 공기업은 모두 수익 창출방법을 요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정 요금은 부채관리의 필수다. 그러나 요금문제는 매우 정치적이고 민감한 사안이라 한전 역시 속 앓이 하며 쉬쉬하는 분위기다.
한전 부채의 원인은 대략 몇 가지로 지적된다. 연료비(유연탄) 급등에 따른 구입 전력비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한전 기획처 관계자는 “2007년 대비 2012년의 전력 단가가 60% 상승했다. 그러나 전력판매 단가는 27% 상승에 그쳤다”고 밝혔다. 원가산정의 적정성 논란은 있지만 도로, 가스, 철도, 수도 요금 역시 공공요금 원가보상률이 70~80%에 이른다고 한다. 한전 기획본부 관계자의 말이다.
“유가급등이 가장 큰 원인이죠. 전력생산 비용은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한전이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부채규모를 50% 이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했지만, 유가가 오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익은 줄고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이 됐어요. 5년간 누적 부채가 11조원에 달했습니다. 한전은 보통 1년에 5조원의 투자비를 쓰는데 이 돈을 조달하려면 이익이 나야 하고, 부족하면 감가상각비 같은 비용에서 충당할 수 있어요. 하지만 2008년 이후 5년간 전체 투자비는 물론 비용이나 운영비까지도 차입(借入)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낮은 원가보상률도 문제지만, 경제성이 낮은 사업을 지나치게 수행해 부채가 심각해진 면도 없지 않다. 한전은 정부에 부채감축안을 제출하면서 ‘전력 공급 안전성 유지 범위 내에서 추진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전 관계자는 “총사업비 300억원 이상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부채정보를 적극 공개하겠다”며 “대규모 사업에 대한 투자심의를 통해 부채를 줄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2017년까지 총 3조원을 줄일 계획이다.
발전 6개사 역시 부채가 심각하다. 남부발전의 경우 1조4000억원(2004년)에서 3조9000억원(2013년)으로 10년간 2조7000억원이 늘었다. 연평균 10.7% 증가한 셈이다. 동서발전 역시 10년간 2조5000억원이 늘어 2013년 현재 부채가 4조1000억원에 이른다. 동서발전 측은 “발전소 건설(당진 9·10호기, 울산복합 신재생 에너지 설비)과 해외사업 지분투자(자메이카 3118억원, EWP America 지분투자 432억원)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적정투자 보수율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이 지속된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남동발전은 10년(2004~2013년)간 부채가 연평균 19.3%(부채 4조6000억원)나 증가했고 서부발전은 연평균 19%(부채 4조원), 중부발전은 연평균 18.8%(3조4000억원), 한국수력원자력은 연평균 12%(26조7000억원)에 달했다.
나주시대와 ‘미래 먹거리’
전력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는 원자력과 석탄, 가스, 석유, 수력 등이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있는 자원도 경제성이 낮은 무연탄과 수력 에너지 정도다.
에너지원의 97%를 수입하는 한국은 무엇보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한국은 연간 에너지 수입액이 2011년 기준으로 180조원(1724억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11위의 수입국이다. 한전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향후 전력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대내적으로 에너지 설비의 입지 확보, 남북통일에 대비한 에너지 수급체계 등 에너지 안보 정책과제도 대두할 겁니다. 전력산업의 경쟁력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신재생 에너지의 잠재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의 부하를 감내할 수 있을지 등의 의문을 스스로 던져야 합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30년대에 ‘원전 제로(Zero)’를 도모한다는 중장기 에너지 정책인 ‘혁신적 에너지·환경전략 안’을 2012년 9월 채택했다. 3대 주요 과제로는 탈 원전 사회의 조속한 실현, 신재생 에너지 사용 촉진, 에너지의 안정 공급 확보를 설정했다.
에너지 소비량 세계 1위인 중국은 수년간 지속된 석탄 중심의 에너지 소비구조에서 벗어나 에너지원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녹색성장을 위해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개척을 통해 이 분야 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로 나서기 시작했다. ‘신에너지법’ ‘재생 가능 에너지법’을 만들어 신재생 에너지 기업에 대한 지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 이코노미》 참조).
나주시대를 준비하는 한전의 향후 비전과 ‘미래 먹거리’도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전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 추진은 화석연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한전과 발전 6개사는 지난 3월 24일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위해 2020년까지 약 42.5조원을 투자해 11.5GW를 개발하기로 했다. 11.5GW는 원자력 발전소(100만kW 기준) 11.5기 수준과 동일한 시설 규모를 의미한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담당하는 한전 관계자는 “현재 19% 수준인 한전 및 발전 6개사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 용량 비중을 2020년까지 61.2%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의 전력망과 개발조직을 활용해 민간의 신재생 에너지 분야와 차별화된 공익사업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예를 들어 육상풍력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한전 보유 송전 철탑에 풍황 측정기구를 구축해 전국의 ‘풍황 실측지도’를 작성해 활용하는 계획 등입니다.”
그는 또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는 지역민들에게 소득이 돌아갈 수 있게 성과공유형 수익모델을 제시하고 연금 형태로 수익을 지급하는 복지연금형 신재생 에너지 사업 모델 도입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재원 42.5조원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일까. 한전 측은 “2020년까지 누적해 발생하는 당기 순이익 10조원(예상치)과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활용해 32.5조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도별 투자계획은 순이익 규모와 부채감축 목표를 고려해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조환익 한전 사장은 “신재생 에너지는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인 만큼 공익적 기업인 한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분야”라며 “회사의 부채상황 등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 풍력발전 중심으로
한전은 서남해안 지역에 2.5GW의 전력을 생산하는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 중이다. 100만kW급 원전 2.5기와 맞먹는 용량이다.
풍력은 이산화탄소나 방사성 폐기물과 같은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무공해 재생 에너지다. 바람만 불어준다면 무한정 이용할 수 있다. 국내 민간자본이 풍력발전에 뛰어든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2005년 경북 영덕과 2006년 강원도 대관령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세워졌다. 한전은 서남해안과 남해안 지역에다 국가전략 사업으로 풍력발전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풍력산업은 제조와 설치, 운영까지 기계, 토목,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의 산업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한전 관계자는 “국내 침체된 조선산업의 관련 기술을 활용해 해상풍력을 제2의 조선산업으로 육성해 ‘글로벌 3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러 신재생 에너지 가운데 풍력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서남해안은 대규모 개발에 적합하지만, 동해안은 소규모 개발에 적합한 지형입니다. 정부와 서남해안 풍력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고, 남해안은 지자체와 함께 적합 부지를 파악 중이죠.”
작년 7월 한전과 발전 6개사가 설립한 한국해상풍력㈜이 이 사업을 수행 중이며 이미 정부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따놓은 상태다. 이 관계자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15년까지 100MW, 2017년까지 400MW, 2020년까지 20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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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동남부 사이한바 초원에 있는 풍력 발전소. 한전이 지난 2007년부터 중국 다탕(大唐)그룹과 합작으로 세운 다탕츠펑(大唐赤峰)신에너지가 개발한 곳이다. |
한전은 해저 조류와 심부지열(深部地熱) 발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남 진도군 장죽도 일대에 해저 조류 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사업성을 테스트 중이다. 제 궤도에 오르면 1MW급 조류터빈 155기가 건설된다.
땅속 토양, 암반 및 지하수가 가지는 열을 이용한 심부지열 발전도 추진한다. 비화산 지대에 지하 4~5km 부근에 있는 섭씨 150~200도의 지하층에 인공으로 물을 주입한 후 지열수를 이용해 발전기 증기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한전은 올 초 경북도와 합동으로 지하열원 탐사 국가 R&D 과제를 기획했으며 울릉도에 2016년까지 5MW급 발전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신재생 관련 ESS 사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은 심야(深夜) 예비전력으로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최대부하 시간대에 송전해 피크전력 부담을 감소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ESS 설비를 통해 기업은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고 국가는 피크전력 시간대의 전력공급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휴대폰 등 소규모에서 전력 분야 대용량 저장장치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국내 기업의 생산량이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전의 대규모 ESS 구축계획에 대해 배터리와 중전기기 관련 국내 기업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병숙 한전 신성장동력본부장의 말이다.
“한전은 석탄화력 발전보다 대응속도가 빠른 ESS를 올해 말까지 서(西)안성 변전소와 신(新)용인 변전소에 각각 28MW와 24MW를 시범 구축할 계획입니다. 또 2017년까지 점진적으로 총 500MW 규모에 달하는 ESS를 설치할 것입니다.”
해외사업, 계륵에서 Cash Cow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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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력이 필리핀에 건설한 일리한 화력 발전소. 필리핀 전체 발전량의 11.3%를 차지하고 있다. |
올 4월 현재 전 세계 20개국에서 총 37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것이 한전 측의 설명이다. 발전 분야를 넘어 자원개발, 송배전 컨설팅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전 해외사업개발처 관계자의 말이다.
“현재 운영단계에 있는 필리핀 사업(1739MW급 규모)은 한전 최초의 해외사업 시발점이 됐어요. 특히 필리핀 ‘일리한 사업’의 경우 필리핀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필리핀 전체 발전량의 11.3%를 차지합니다. 총사업비의 75%였던 차입금이 올 4월 전액 상환됐어요.”
필리핀 일리한 사업은 한전이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20년간 운영하고 필리핀에 넘겨주는 BOT(Built Operate Transfer)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전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을 최초 도입한 사업으로 꼽힌다.
해외사업은 매출 대비 수익도 안정적이다. 한전 해외사업개발처 관계자는 “2013년까지 약 12조2000억원의 매출(지분기준)과 약 1조7000억원의 순이익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여기다 민간 건설사와 국내 금융까지 해외에 동반진출하는 성과를 일궜는데, 액수로 따져 약 225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관계자의 계속된 설명이다.
“작년 초 수주한 ‘베트남 응이손 석탄화력 사업’의 경우 한전과 두산중공업, 한국수출입은행 등이 시너지를 발휘해 약 12억 달러 규모의 경제파급 효과를 거뒀어요. 신규 고용창출도 연간 최대 3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0년까지 한전 전체 매출액 대비 20%, 액수로는 16조5000억원을 해외사업을 통해 거둔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해외사업이 처음부터 알짜배기였던 것은 아니다. 2007년 4월 중국 산시성 발전탄광 연계 사업에 산시성 정부, 도이치은행 등과 함께 합자회사를 설립한 한전은 사업 초기 금융위기와 자원가격 상승으로 적자에 시달렸다. 석탄가격 급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석탄가격이 2007년 대비 80% 이상 급등했으나 중국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불허해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몇 년간 고전하던 산시성 사업이 2012년부터 흑자로 전환, 향후 캐시 카우(Cash Cow) 역할을 할 것으로 한전은 내다보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산시성이 중국 내 최대 석탄 생산지인데다 이 지역에 중국의 핵심 에너지 수출기지가 있고, 2020년까지 중국 전력수요가 현재의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중국 다탕집단과의 합작으로 시작된 한전 최초의 중국 풍력사업(919MW)도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한전 해외사업개발처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현실을 고려하면, 한전의 비용절감이나 전력효율 향상만으로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상쇄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해외사업을 통해 꾸준히 벌어들이는 수익금은 한전의 부채감축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국제무대에서 ‘KEPCO’란 브랜드로 통하는 한전은 이미 세계 6위의 글로벌 디벨로퍼(Developer)입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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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3일 해외 에너지 산업 분야 관계자 20여 명이 한전 구리남양주지사의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SG스테이션)을 방문해 한전의 미래형 에너지 관리 신기술을 배우고 있다. |
게다가 밀양사태가 완전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땀을 흘려야 한다. 밀양의 상처와 경험을 한전 재도약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선 조환익 사장의 리더십이 한층 필요해 보인다.
한전의 미래 먹거리로 추진 중인 신재생 에너지는 어차피 가야 할 수밖에 없는 길이지만, 에너지 효율과 투자비용·시장논리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엄청난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감내해야 한다. 지금 한전으로서는 버거워 보인다. 최근 5년 사이 부채가 30조원이나 불어난 현실을 감내하기조차 벅차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 갈등에서 지체된 9년간의 시간을 떠올린다면, 진심과 성의를 담아 반대의견을 설득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변화시켜 온 노력을 떠올린다면, 나주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전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한다.⊙
한국原電의 운명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고 여파로 사고 전 전망치보다는 다소 낮지만 발전량 기준으로 2010년 대비 2035년 세계 원전은 약 6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포기’ 또는 ‘축소’ 국가가 일부 존재하나 여전히 대부분 국가는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기존 원전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0~2035년까지 원전용량 61% 증가, 영국 경제조사기관(EIU)은 2020년까지 원전용량 27% 증가, 세계원자력협회(WNA)는 2030년까지 원전용량이 70%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IEA는 2012년 9월 ‘56th General Conference’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세계 원자력 발전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으나 성장이 멈추거나 쇠퇴하는 증거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고 발표했다. IEA는 또 2012년 성장 전망에서 세계 원전설비용량이 370GWe(2012년)에서 2030년에 약 456GWe로 약 23% 증가를 예측하고 있다.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이 그나마 안정적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은 원자력 발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향후 우리나라의 원전 정책은 에너지원별 비중, 여론동향, 부지 등 원전건설 여건 변화를 감안해 원전비중을 일정수준 유지하되, 향후 상황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계속해서 원전설비와 운영의 안전성과 투명성을 제고시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조환익 한전 사장
“신재생 에너지로 활로 찾아야”
| ◎ “신재생 에너지는 결국 한전과 한전 그룹사인 발전사들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 ◎ “향후 에너지 분야는 인문학과 사회학·종교 등이 통섭해서 밀양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
조환익(趙煥益) 한국전력 사장은 밀양 송전탑 농성장 철거가 있던 6월 11일 “미래는 신기술의 출현으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에너지미래포럼(대표 이재훈) 주최로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에너지 부문 혁신과 제6의 물결’이란 조찬 강연에서 조 사장은 “화석연료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채 100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는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화석연료의 가채연수(可採年數)는 100년, 심지어 5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태양 에너지는 잠재량의 0.07%만 사용해도 전 세계의 에너지 소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재생 에너지 보급 비중은 지속적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조 사장은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한전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신재생 에너지는 결국 한전과 한전 그룹사인 발전사들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 한전이 전기만을 팔아 앞으로 지속가능한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라며 이같이 밝혔다.
“에너지의 전환 과정은 수염이 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어린아이가 성인이 돼 수염이 나기까지는 십여 년이 걸리지만, 한번 나기 시작하면 빠르게 자라죠. 신에너지원이 등장해 주요 자원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막상 시작되면 변화는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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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력 중소기업을 현장 방문한 조환익 사장(맨 오른쪽). |
2001년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으로 갔다가, 쓰러져 가던 산업기술재단의 사업 규모를 10배 가까이 키우고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능력을 인정받아 2004년 산자부 제1차관으로 복귀했다. 2년 뒤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2007년 5월 수출보험공사 사장으로, 이명박(李明博)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코트라 수장(首長)이 됐으며, 2012년 12월 다시 한전 제19대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섰다. 박정희(朴正熙) 정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박근혜 정부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보기 드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박정희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現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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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조환익 한전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13 대구세계에너지총회(WEC 2013)’에 참석,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에너지 협력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 사장은 “한전은 밀양 송전탑 경과지 30개 마을 중 93%인 28개 마을과 공사에 합의했다. 마을 논 한가운데에 철탑이 들어서 반대가 거셌던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과도 100% 합의를 끌어냈고, 최근에도 송전탑 반대에 나섰던 상동면 여수·고정마을, 송전탑 반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평밭마을과도 공사합의를 이루었다”고 했다.
“현재 미합의 마을은 상동면 고답마을과 모정마을 2개 마을입니다. 송전탑 공사가 국민 모두를 위한 공익사업이라는 점에서 미합의 마을주민에게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어요. 계속 진정성을 갖고 대화할 생각입니다.”
현재 한전은 밀양 지역 69개 송전탑 중 68%가 넘는 47개에 대해 철탑 조립을 완료했고 22개는 철탑 조립 또는 기초 작업이 진행 중이다. 조 사장은 거듭 “작년 10월 공사재개 이래 주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공사를 진행해 왔다.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왔고 일손 돕기, 지역 특산물 구입 등도 벌였다”고 밝혔다.
—밀양 송전탑 논란을 겪으며 한전은 어떤 교훈을 얻었나요.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갈등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재산권과 건강권에 대한 인식변화를 제도와 정책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송변전 건설사업에 앞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이미 한전은 2009년부터 입지선정위원회를 운영,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제3자’가 주도하는 입지선정 방식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땅속에 전선을 두는 지중화, 초고압 직류송전(High Voltage Direct Current) 등 기술적 대안도 마련해 나가겠습니다.”
—밀양 송전탑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을 달래기 위해 ‘개별지원 방침’을 정했습니다. 논란도 예상됩니다.
“전력설비 건설과 관련해 ‘마을 공동시설 건립’ 등을 하는 방법으로 주민지원을 해왔으나, 기반시설을 이미 갖춘 곳이 많아요. 그리고 개인 재산권에 대한 권리의식 증대로 주민들은 개별적, 직접적 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개별지원은 폐기물처리시설, 댐 건설 등 기타 공익사업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어 시대적 변화라고 볼 수 있어요.”
6년 만에 적자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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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동절기 전력수급 위급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한전 조환익 사장이 직원들과 송전망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
“한전이 서울 내에서 본사 사옥을 이전한 경험은 있지만, 서울을 벗어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창사 이래 처음입니다. 이번 본사 이전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기고, 새 터전에서 글로벌 에너지 그룹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워나갈 수 있게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전의 부채증가 원인과 부채감축 대책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한전의 부채가 이렇게 급격히 증가한 것은 2008년 이후 국제 연료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상승 부분을 정부정책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제때 반영하지 못해서입니다. 결국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 적자가 누적됐어요.
적자를 탈피하고 부채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2008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의 허리띠를 졸라맸어요. 작년에는 ‘재무개선 비상대책위원회’를 둬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자구계획을 추진해 6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습니다.”
—한전은 현재 중요한 변곡점 위에 서 있습니다. 미래 먹거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조환익 사장은 “한전이란 회사가 올해 116년이 됐는데 한 번도 업종을 안 바꿨을 뿐만 아니라 해외사업 빼고는 영업이란 게 없었고, 오히려 전기를 안 팔기 위해 절약을 얘기해 왔다. 과연 이런 상태로 10년, 20년 후에 이대로 갈 수 있나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전은 내부적으로는 대대적인 부채감축과 함께 외부로는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같은 신사업과 해외시장 개척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먼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문제를 새로운 시장창출의 기회로 삼아 신재생 에너지와 청정 에너지 기술개발을 추진할 겁니다. 예를 들면, 서남해안 해상에 건설될 해상 풍력단지를 비롯해 활용도가 낮은 저열량 석탄에서 전기뿐 아니라 수소 및 합성가스를 만들 수 있는 차세대 발전기술 개발, 화력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처리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기술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는 ‘전기차’를 예로 들며 이런 말도 했다.
“우리나라는 단일 전력망으로 전기차를 만들어 보급하면 어떤 나라보다 유리합니다. 급속히 발전 중인 신재생 에너지도 결국 한전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에너지 분야는 인문학과 사회학, 종교 등 각종 분야와 통섭해서 밀양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한전이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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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환익의 한전’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수위의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한 상태다. 지난 1월 8일 ‘한전 경영혁신 추진단’을 구성했다. |
현재 한전은 전력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사장의 지시로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스마트 그리드 및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전담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또 정부의 ‘지능형 전력망 기본 계획’에 따라 올해 230만 가구에 원격검침 인프라(AMI) 보급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2016년까지 1000만 가구, 2020년까지 2200만 전 고객을 대상으로 AMI를 구축할 계획이다. AMI는 전기, 가스, 수도 계량기 등을 검침원이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 원격으로 단말기를 이용해 검침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스마트 그리드는 합리적인 전력 소비를 유도하고 지능화한 송·배전 망을 운용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입니다. 2030년 세계 최초의 국가 단위 스마트 그리드 구축을 목표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체계를 구축할 것입니다.
또 전기를 저장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저장장치 보급과 전력공급을 디젤발전에서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기존의 광역적 전력시스템으로부터 독립된 분산전원을 중심으로 한 전력공급시스템) 사업도 미래 먹거리가 될 겁니다.”
조 사장은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세계 추세에 비춰볼 때 독보적 노하우를 쌓아온 한전의 경쟁력은 해외시장에서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최근 한전의 주가 상승은 이런 한전의 기업가치를 높게 보고 있는 방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푸른솔
(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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