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살 시도 국정원 권 과장의 北京 활약 內幕 : 월간조선

지난 3월 22일 자살을 시도했던 국정원 권 모 과장은 《동아일보》와 이런 격정적 인터뷰를 했다.

“지금 북한을 들여다보는 망루가 다 무너졌다. 간첩 조작 사건 이후 중국의 협조자들이 아무도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다. 북한이나 중국으로선 대한민국 검찰을 통해 대한민국 국정원을 쳐내는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다. 이제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경보음이 사라졌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27년간 대공(對共)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 나는 ‘용도 폐기’가 됐다. 이제 다 노출이 됐으니 더 활동을 못 할 것이다. 용도 폐기됐고 스타일은 다 구겼고 갖은 모욕을 다 당했다.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때 중국에서 블랙요원(신분을 숨기고 정보활동을 하는 요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 직후인 지난 3월 22일, “그동안 목숨을 걸고 일했다. 국정원 요원들은 국익을 위해 중국에서 사형을 당할지언정 국내에서 죄인처럼 살 수는 없다”는 등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그는 부분 기억상실이 있기는 하지만 의식을 회복했다. ‘간첩 깐수’ 사건, 일심회·왕재산 간첩단 사건 등 그의 대공요원으로서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일부 시민들은 그를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그와 일을 한 경험이 있는 동료들은 ‘간첩 깐수’ 사건 등 권 과장 자살 시도 후 알려진 사건 외에도 권 과장의 대공요원으로서의 활약은 ‘탁월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공적이 있다해서 이번 간첩 증거조작 의혹을 묻어둬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숨겨가며 벌였던 중국에서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평가대로 의미가 있다. 스스로 대공요원으로 ‘용도 폐기됐다’고 말한 권 과장은 ‘용도가 폐기되기 전’ 중국에서 어떤 일들을 했을까.

당연히 그는 수많은 협조자 포섭을 통해 그의 표현대로 ‘북한을 향한 망루’를 구축했다. 그중에는 북한 최고위층의 자제 포섭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공작’도 있고, 납북어부나 탈북자의 대한민국 입국을 보이지 않게 돕는 일도 있었다.

기자는 이미 지난 4월 3일 《월간조선》의 인터넷 자매 매체인 <조선pub>을 통해 권 과장이 중국에서 블랙요원으로 활약할 당시 북한 최고위층의 자제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그 북한 최고위층이 누구인가에 대해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권 과장의 동료는 ‘중국에 나와 있던 북한 최고위층의 딸’이라는 표현까지만 쓸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권 과장이 북한 최고위층의 딸 포섭에 성공한 시기에 대해 “정확한 시점은 밝히기 곤란하지만 권 과장이 포섭에 성공한 후 국정원 수뇌부가 반대해 활용을 멈춘 것으로 안다”면서 “원세훈 원장 시절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권 과장이 그녀를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된 걸 무척 아쉬워했고 분해하기도 했다”며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국가관도 투철했지만 능력도 탁월한 대공요원이었다”고 덧붙였다. “포섭한 후 어느 사건에 활용했는지 아는가” 하는 질문에 권 과장의 동료는 “밝힐 수 있는 것은 활용 중 중단했다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납북어부 김병도씨 귀환 지원

납북어부 김병도씨. 권 과장의 도움으로 30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권 과장은 납북어부의 대한민국으로의 귀환을 보이지 않게 도운 일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납북 후 3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납북어부 김병도씨와 관련한 이야기도 있다. 납북어부 김병도씨의 문제는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월간조선》과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崔成龍) 대표 등이 나서 귀환에 성공시켰던 사건이다.

이때 권 과장이 비공식 채널로 김병도씨 귀환을 도왔던 것이다. 당시 구출 과정은 《월간조선》 2003년 6월호에 소개돼 있다. 권 과장과 관련된 부분을 소개한다.

<결국 기자들은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이날 밤 9시25분에 북경(北京)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사스 진앙지로 최(성용) 회장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병도씨에 대한 신분증 검사는 “같이 심양에 여행 온 한국 사람인데, 여권을 잃어버려 북경으로 여권을 만들러 간다”고 둘러대기로 했다.

오후 4시쯤, 심양의 공관에서 “김병도씨의 임시여행증을 만들어 주겠다. 사진을 두 장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심양 시내의 사진관에서 속성 사진을 찍어 공관 관계자에게 전달해 준 것이 오후 6시, 한 시간쯤 뒤 여권과 똑같이 생긴 임시여행증이 발급됐다.>

임시여행증은 심양에서 북경 한국 대사관까지 무사히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증명서였다. 다음은 당시 임시여행증을 수령한 최 대표의 기억이다.

“그때가 4월이었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잘 안 보일 때였어요. 전화에서 영사관 직원과 약속한 대로 심양 총영사관 앞에서 뒷짐을 지고 영사관 담장을 바라보고 서 있었죠. 심양에는 북한 보위부원들이 활개를 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죠.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다가오는 것 같더니 뒷짐을 쥐고 있는 손에 뭔가를 쥐여주고는 잽싸게 사라지는 거예요. 임시여행증이었죠. 탈북한 김병도씨를 한국인으로 만들어주는 증명서를 내 손에 쥐여주고 사라진 거죠. 그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 권○○ 과장이었습니다.”

수많은 탈북자를 한국으로 귀환시킨 최 대표는 “권 과장의 신분이 노출된 이후 당분간 중국에서 탈북자 귀환 등을 위한 정보활동은 어렵게 될 것”이라면서 “벌써 탈북자 구출을 돕던 중국 현지 협조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 과장과 최 대표의 두 번째 만남

최 대표와 권 과장의 만남은 2005년 초 다시 이루어진다. 최 대표가 가짜 선교사에 속아 북한으로 납치될 뻔한 일이 있었는데 권 과장의 사전 정보 제공으로 납치를 모면하는 일이 그 무렵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4년 말 최 대표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순복음교회 선교사 김 아무개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는 북한에 있는 납북어부나 국군포로 등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듯했다. 당시 탈북자 지원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던 최 대표는 그 선교사에게 북한에 있는 납북어부 등을 알아볼 요량으로 그 선교사가 요구하는 금품을 마련해 건네줬다.

2005년 초 그 김 아무개 선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국 다롄(大連)으로 오라는 거였다. 출국을 준비하고 있는데 권 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롄에 가지 말라”는 거였다. 최 대표는 권 과장의 말을 듣고 다롄에 가지 않았다. 나중에 다롄에 가지 말라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최 대표를 북으로 납치하려는 음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단둥(丹東)에 있는 협조자를 통해 김 아무개라는 선교사의 행방을 수소문했는데 그는 중국 공안에 체포된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김 아무개 선교사라는 사람은 탈북자 윤 모씨로 2002년 한국에 왔으나 10개월 만에 부녀자 3명을 살해하고 중국으로 도피 중인 인물이었다.

윤씨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후 권 과장과 최 대표는 윤씨가 북한 신의주 보위부와 통화한 내역, 물건 거래 영수증 등 그의 행위를 조사해 한국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윤씨를 살인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윤씨는 현재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최 대표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면서 “어찌 됐든 권 과장은 참 열심히 뛰어다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윤씨 사건 이후 최 대표는 한때 북한의 테러 위협 때문에 경찰의 보호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