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某 부장판사는 3년 연속 워스트 1위입니다. 3년 연속 최악의 판사로 평가받은 사람이 계속 재판업무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법원의 인사제도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닌가요? 그런 사람은 변호사뿐만 아니라 일반 당사자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 서울중앙지법 -서울辯會, 법관평가 논의할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 구성키로
⊙ “법관평가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통제받지 않던 사법 관료주의에 메스 든 것”
⊙ “판사는 재판결과뿐 아니라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절차나 과정까지 바르게 해야”
⊙ 서울辯會, “법관평가 결과를 법원인사에 반영하면 하위법관 실명 공개 불필요”
⊙ 서울중앙지법 -서울辯會, 법관평가 논의할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 구성키로
⊙ “법관평가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통제받지 않던 사법 관료주의에 메스 든 것”
⊙ “판사는 재판결과뿐 아니라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절차나 과정까지 바르게 해야”
⊙ 서울辯會, “법관평가 결과를 법원인사에 반영하면 하위법관 실명 공개 불필요”
- 법관평가가 사법부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두고 법정에 앉아 있다.
몇 년 전 법복(法服)을 벗고 판사에서 변호사가 된 L씨는 “법대(法臺) 위에서 내려다보다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니 세상이 참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법대가 그렇게 높은 자리인지 정말 몰랐다”는 것이었다.
“법관 시절, 제가 어떻게 소송지휘를 했는지, 어떻게 판결문을 썼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실체적 진실과 법적인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을 때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L변호사는 이런 말도 했다.
“판사 시절, 제가 내린 판결이 적어도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변호사를 하고 보니, 그게 착각일 수 있겠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어요. 아마 판사 출신 변호사 대부분이 공통으로 느낄 겁니다.”
그는 또 서울지방변호사회(이하 서울변회)의 ‘법관평가’에 대해 “그동안 참여하지 않다가 올해 처음으로 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법정에서 재판장의 말투와 표정, 눈빛 하나하나에 당사자나 원고·피고 측 변호사 모두 울고 웃습니다.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니까요. 말투·표정에 사법 불신(不信)의 원인이 담겨 있어요. 판결내용이 아닌 판결절차나 진행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뤄지면 결과적으로 사법 서비스 질(質)이 올라가지 않겠어요? 아직 손볼 곳이 많아 보이지만….”
그러나 L변호사가 처음 참여한 서울변회의 법관평가 결과가 아직 공표되지 않고 있다. 매년 1월 중순쯤 ‘베스트(Best·上位) 법관’ 명단과 함께 공개됐었다. 특히 서울변회 나승철(羅承哲) 회장이 올해 법관평가는 ‘워스트(Worst·下位) 법관’을 실명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3월이 넘어도 워스트는 물론 베스트 법관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2월과 3월 초 서울 서초동 법원 주변에서 만난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서울변회와 대법원 사이에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냐. 기(氣)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며 관심을 보였다. “서울변회가 하위법관 실명 공개를 막으려는 대법원 회유를 뿌리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말도 들렸다.
법원–변호사, 협의회 구성해 법관평가 논의
그동안 대한변호사협회와 각 지방변호사회는 법관평가 결과를 대법원과 각 지방법원장에게 전달하며 법관인사에 반영할 것을 꾸준히 주문해 왔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변호사들의 법관평가가 객관성·신뢰성이 부족하다며 외면해 왔다.
서울변회가 ‘하위법관’ 실명 공개 입장을 밝히자 그제야 대법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기자는 속내를 듣고 싶어 서울변회 측에다 “나승철 회장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두 차례 전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서울변회 법제팀에 문의했지만 “(진행상황을) 알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3월 11일 자 《법률신문》에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변회가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 구성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 양측은 “소송절차의 개선과 바람직한 재판진행 및 변론절차의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협의체로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에서 무엇을 논의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2009년 서울변회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진 법관평가가 또 다른 운명을 맞게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최근 2~3년 사이 모든 지방변호사회가 법관평가를 시작했다. 서울변회가 제공한 법관평가 매뉴얼을 토대로 ‘법원평가특위’를 구성해 평가를 진행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나 부산지방변호사회, 광주지방변호사회 등은 서울변회를 따라 하위법관 실명 공개도 천명한 상태. 서울변회가 스타트를 끊으면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번 협의회 구성으로 서울변회가 기존 법관평가 방식을 바꾸면 다른 지방변회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를 잡아가던 법관평가가 공중분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무법인 양헌의 김승열(金承烈) 대표변호사는 “앞으로 협의회 진행상황을 지켜보겠지만, 협의회가 순기능을 발휘 못 하고 ‘비공개 편집기능’을 고집하면 문제소지가 있을 수 있다. 법관평가는 무엇보다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과의 협의회 구성은 다분히 오해소지가 있어요. 일종의 여과 과정을 거치며 본질(법관평가)이 왜곡될 수 있고, 왜곡되지 않는다고 해도 외부인이 볼 때 오해할 수 있잖아요. 또 현 집행부에 대해 아쉬운 점은 하위법관 실명 공개를 주장하기 전에,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미흡하다고 보입니다.”
여전히 권위주의 팽배한 법정 분위기
김 변호사는 “협의회 논의 과정에서 법원과 변호사 간 긴장관계가 풀리면 (법관평가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위평가를 받은 법관의 실명 공개가 상당한 무리수인가요?
“특정 판사 입장에서는 분명히 억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판사는 공인(公人)입니다. 논란 소지는 있겠지만 법관평가 자체만으로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다고 보기 어려워요. ‘워스트’로 낙인찍혀 명예가 손상될 수 있으나 편파적인 재판 진행으로 고통받는 당사자와 변호인 마음도 헤아려야 합니다. 비록 변호사들의 낮은 응답률에 기초한 평가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표본 집단 수를 더 확보하고 신뢰성을 보완한다면 가능하다고 봐요.”
—요즘 법원 분위기는 어떤가요?
“중재(仲裁) 재판절차 등에 비해 법정은 여전히 열악하고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어요. 법원 직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일부는 고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해요. 형사사건은 모르지만 민사사건에 있어 법관이나 법원 직원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자기인식이 필요합니다.”
법관평가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변호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갑을(甲乙)관계나 다름없는 법정의 현실 때문인지 변호사의 참여가 미지근하다. 법관평가표에 사건번호와 담당법관의 이름을 명시토록 했다는 점도 작용한다.
첫 시행한 서울변회의 ‘2008년 법관평가’(2009년 1월에 발표)에 참여한 변호사 수는 전체 회원 6300명 중 491명(7.7%). 이들이 평가한 법관 수는 456명. 최소 변호사 5명 이상에게서 평가를 받은 법관은 47명에 그쳤다고 한다.
이듬해 555명(법관평가 건수 1828건)으로 소폭 늘었으나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2013년에는 전년에 비해 2.5배 증가(전체 서울 회원 9100명 중 5%인 460명(2686건)이 참여)한 1104명(4659건)이 법관평가에 응했다.
물론 지난해 서울 지역 개업 변호사 수가 1만474명에 이른다는 점을 상기할 때 큰 폭의 증가라 보기 어렵다. 특이한 점은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12년 첫 배출된 로스쿨 1기생이 지방 대신 서울에 몰려들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판사의 모든 근무평정, 대법원장 1인에 집중돼”
변호사 수가 늘어남에 따라 판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해졌다. 상대적으로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이 오랫동안 법원조직 내부(대법원장)에 귀속돼 왔다는 점에서, 법원 외부조직(변호사)에 의한 법관평가는 평가방식의 신뢰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법원은 1995년 이래 대법원의 ‘판사근무성적평정규칙’(대법원규칙 제2244호)을 제정해 근무평정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 규칙에 따른 근무평정을 법관인사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외부에서 알 길이 없었다. “세부적 평정기준이 뭐며, 각 법관에 대한 평정결과가 뭔지, 평정결과를 인사에 반영하는 방식이나 절차에 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서강대 로스쿨 이상수 교수)는 것이다.
법조계 일부 인사들은 “우리나라의 법원행정 조직이 수직적 기형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관은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로 시작해 지방법원 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 대법원재판연구관, 지방법원부장판사, 고등법원부장판사,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 대법관, 대법원장 등에 이르는 수많은 위계가 존재하는데, 이 길게 이어진 승진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으로 법관의 자질과 능력이 판가름난다. 김승열 변호사는 “근무평정 결과에 따른 임용이나 인사이동, 보직변경의 권한이 모두 대법원장에게 집중돼 있다.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라는 조직을 활용, 이들에 관한 인사나 업무자료를 수집, 활용한다”고 말했다.
법관 근무평정이 이뤄지고 그것을 집적하며 분석·평가하는 기구도 법원행정처다. 그는 “법관의 인사행정은 계층제의 정점에서 인사업무를 통제하는 모습으로 비쳐 사법관료 체제라는 비판을 듣게 만들었다”고 했다.
“법관 인사권한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돼 폐쇄적인 관료조직을 만들었어요. 변호사가 그런 조직을 향해 법관평가를 하겠다고 하니 화들짝 놀란 것이죠. 법관평가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통제받지 않던 사법 관료주의에 메스를 든 겁니다.”
그는 “어찌 보면 겨우 보행기에서 일어나 걸음마를 시작한 법관평가 작업이, 사법 관료조직(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 내로 들어가버리면 부작용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죠. 미국처럼 판결문 완전 공개로 사법권 행사를 적절하게 통제해야 해요. 판결문이 공개된다면 전관예우 폐해 등 ‘사법 불통(不通)’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보여요. 판결문은 영원히 남는 것이어서 사후(事後)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판결문 공개여건이 안 갖춰진 현실에서 법관평가는 불가피합니다. 대법원도 법관평가를 여러 평가요소 중 참고자료의 하나로 검토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위법관 명단 공개하라”
사실, 법관평가는 지난 2008년 서울 어느 법원 민사재판에서 불공정 재판, 막말 재판 시비가 벌어진 것이 단초가 됐다고 한다.
법원 내에서 언터처블(untouchable·‘못 말린다’는 의미)이란 별명을 가진 재판장이 원고 측 변호사에게 “변호사 몇 년 했느냐” “말귀도 못 알아듣느냐”고 핀잔을 주며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원고 측은 서울변회에 60쪽짜리 진정서를 냈고 변호사 회장이 법원장을 항의 방문했다. 서울변회는 이를 계기로 변호사가 판사를 평가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했었다.
당시 서울변회 회장은 하창우(河昌佑) 변호사다. 그는 법원과 서울변회 간 협의회 구성으로 법관평가가 중대 기로에 처하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위법관을 공개하는 것만이 견제장치 없는 우리나라 법정을 민주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1만여 명의 변호사들에게 “하위법관 명단 공개”를 촉구하는 이메일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하 변호사의 말이다.
“2009년 1월부터 총 5차례에 걸쳐 변호사들이 평가한 우수법관과 하위법관을 대법원에 전달해 왔어요. 물론 우수법관은 공개하고 하위법관 명단은 대법원에만 전달했어요. 하지만 대법원이 변호사들의 건의를 묵살하고, 하위법관으로 평가된 판사들이 계속 재판에 관여하고 있어요.”
그는 “전국 법관 3000명 중 서울 관내에만 2000명이 있는데 얼마나 재판을 못했으면 워스트 법관이 됐겠느냐”며 “그런 사람을 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이 ‘하위법관 실명 공개’의 목적”이라고 했다.
“워스트든, 베스트든 평가하는 변호사의 눈은 비슷합니다. 베스트 법관은 (재판에서) 이긴 쪽은 물론이고 진 쪽에서도 훌륭하다고 평가받기에 베스트 법관이라고 인정해 준 겁니다.”
하 변호사는 “하위평가 법관들은 해마다 반복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모 부장판사는 3년 연속 워스트 1위입니다. 3년 연속 최악의 판사로 평가받은 사람이 계속 재판업무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법원의 인사제도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닌가요? 그런 사람은 변호사뿐만 아니라 일반 당사자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어떤 고통을 주나요?
“불공정한 재판을 할 개연성이 높잖아요. 그러니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들이 괴롭지요. 대법원은 그런 판사를 배제해야 하는데 나 몰라라 하고, 계속 재판하도록 합니다. 대법원이 반성해야 할 문제지요. 왜 반영 안 합니까. 하위법관 평가는 변호사들의 양심에 따라 공통된 시각으로 평가한 산물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해마다 워스트 탑(Top)10에 드는 법관들은 대개 고정돼 있다. 베스트 법관은 상당히 유동적이지만, 워스트 법관은 그 고인 물이 뚜렷해 평가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런 법관이 소송을 진행하면 변호사들도 당혹스럽겠네요.
“그렇죠. 긴장이 되고 거북스럽습니다. ‘이 재판장이 어떻더라’는 소문이 이미 나 있잖아요. ‘아이고 죽었구나’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다짐하지만 소용없어요.”
—법원과 서울변회가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를 구성한다고 하던데요?
“어찌 보면 하위법관을 실명 공개한다고 하니 대법원에서 미끼를 던진 것인데, 변호사들을 달래려고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보세요. 서울 빼고 모든 지방변호사회가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서울만 안 하고 있잖아요. 대법원 작전에 휘말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협의회를 구성하든, 안 하든 법관평가는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인 거죠?
“물론입니다. 그래야 판사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국민을 위한 최고의 사법 서비스를 제공할 테니까요.”
“사법권 독립 빌미로 법관평가 거부, 정당화될 수 없어”
법관평가는 아직 미완(未完)이다. 손질하고 뜯어고쳐야 할 곳이 적지 않다. 서울과 지방 간 평가항목과 기준, 방식이 다르고, 변호사들이 참여한 평가가 공정한지에 대한 검증도 어렵다. 그저 변호사의 양심에 맡길 뿐이다.
그러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상수(李相洙)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한 서울변회의 법관평가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했다. “사법권 독립을 빌미로 사법책임을 면하려 하거나 법관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법권 독립이 간절히 필요하다면, 그와 같은 정도로 법관평가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법권 독립이 더욱 잘 견지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법원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법원이 법관평가를 독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법원이 법관평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법원 산하에 독립한 기구로 법관평가위원회 설치도 제안했다. 형태는 법관과 변호사, 그리고 비법률가가 참여하는 방식이다(이 교수의 <사법권 독립과 법관의 직무평가> 참조).
부산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윤태석(尹泰碩) 교수도 “매년 이뤄지는 근무평정 및 외부 시각에 의한 법관평가의 자료를 수집하고 결과를 분석할 별도의 기관 또는 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관평가위(委)는 근무평정의 경우 평정권자에 대한 이의권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재심사 기능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윤 교수의 <법관평가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 참조).
또 “변호사와 당사자가 공정심을 잃고, 법관을 감정적으로 평가한 경우,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여과장치 기능을 가져야 법관평가에 대한 부정적 우려를 없앨 수 있다. 법률가 외에 비법률가도 법관평가위에 포함시켜 평가결과 분석에 신뢰성·객관성을 더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윤 교수는 그러나 “법원조직 외부의 시각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할 법원평가제는 필요하나 평가 하위법관의 명단 공개는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판사들 안면이 있으니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사회의 보수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 조직이나 법관도 시대변화에 따라 법복에 쌓인 ‘오래된 권위’ 대신 내·외부 관찰자의 시각을 반영한 ‘정직한 권위’로 변해야 한다”고 고언(苦言)했다.
“독재정권을 거치며 사법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었어요. 그래서 사법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내세우며 외풍을 막느라 (사법의) 관료화를 강화한 측면이 있어요. 그런 시각에서 ‘판사들의 판결문이 이미 있고, 그들의 업무에 대한 통계자료가 다 수집되는데, 굳이 다른 평가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판사 역시 더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신참 법관으로 임용돼 배석판사를 거쳐 단독판사, 부장판사가 됐다고 해서 모든 재판을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볼 수 없잖아요. 아무리 올바른 판결을 내려도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절차나 과정이 올바른지, 당사자나 변호사에게 진정성을 갖게 하는지도 살펴야 해요. 판사라는 자리가 그만큼 엄정하니까요.”
“법원도 원만히 처리하고 싶어 한다”
취재 과정에서 서울변호사회 전준호(全俊鎬) 대변인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나승철 회장과 같은 법무법인에 적을 두고 있다.
—베스트, 워스트 법관 선정은 내부적으로 다 됐지요? 발표만 안 하는 것뿐이지요?
“네.”
—하위평가 법관들이 매년 대개 동일인물이라고 하던데요.
“네. 특별히 그해 처음 등장한 분들이 아니라, 매년 워스트에 들어간 분들이 이번에도 들어간 식이어서 법원에서도 대충 누군지 다 알고 있어요. 법관에 대한 헌법상 신분보장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렴 못 하는 부분도 있지만, 법원에서는 (평가결과를) 반영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요.”
—협의회 구성 얘기가 나오던데 법원 쪽과 몇 차례 모임을 가졌던 거죠?
“전화통화도 하고 일부는 개별적으로 만나 협의도 하고, 어떤 안건으로 어떻게 (법관평가를) 논의할지 어느 정도 의견일치는 봤고요, 이젠 회의장에 나와 회의하는 일만 남았어요.”
전 대변인은 “대법원이 시간 끌기 차원에서 (협의회 구성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형식적으로 나왔다면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하위법관 실명 공개는 안 합니까.
“저희가 평가한 결과를 법원에 제공했고, 지금도 제공하고 있지만, (대법원의 법관인사에) 반영이 안 된 것뿐이죠. 하위법관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법원에 제공하고, 법관인사에 반영되는 것이 제도화된다면 굳이 일반인에게 (하위법관 실명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는 “판사 욕보이기 차원에서 법관평가를 하는 게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법원에서는 변호사단체가 자체 조사한 내용을 일반에 공개해 해당 법관의 업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아요. (평가결과가) 해당 법관에 사직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쳐 헌법상 규정된 신분보장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이미 법원에서도 (법관평가를) 인사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희 입장에서는 그런 노력이 보이더라도, 명문화 내지 제도화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되돌아갈 수 있으니 좀 더 애써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현재 어떤 안을 논의하고 있나요?
“여러 가지 안이 나오고 있어요. 한 번 (워스트) 명단에 오른 분은 단순히 내용만 통지해 주는 것으로 하고, 두 번이나 세 번 이상 지적되면 인사에 반영하고요. 또 법관인사를 점수제로 하는데, 거기에 반영하는 식으로 협의를 보고 있어요. 저희도 한번 리스트에 오른 분이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고, 반복해서 올라와야….”
—다른 지방변호사회에서도 협의회 구성에 관심이 많은가요?
“서울변회와 법원이 어떤 안을 마련하면 지방도 하자고, 대법원에다 의견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아마 대법원에서도,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법관평가법 제정 주장도
변호사들은 내심 법관평가를 반기면서도 재판에 미칠 영향 때문인지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평가참여율이 낮은 것도 이 때문. 법원 역시 평가에 촉각을 세우지만 겉으론 “포퓰리즘식 인기투표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법관평가 덕분에 몇 년 사이 법정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지적에 법원도 공감한다. 판사들이 막말을 하거나 원·피고 측에다 지나친 화해를 강요하며, 무리하게 조정을 권하는 식의 ‘통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법관평가의 긍정효과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지금 법원이 시행하는 판사 근무평정이 “법관들 사이에 사건처리를 놓고 속도전을 벌이게 하고, 그 과정에서 법관들이 당사자에게 협박에 가까운 화해·조정을 권유하게 만들었다”(오욱환 변호사)는 비판이 있어왔다.
그러고 보면, 한국사회만큼 산업화·민주화의 속도가 가파른 곳도 없다. 미국이나 일본도 법관평가를 하지만, 베스트·워스트 법관평가 방식은 대만을 제외하고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는 방식이다. 법관평가가 ‘사법의 민주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인지 기자가 답을 내리기는 곤란하다.
다만 “법관평가가 중립적이고 절차지향적 기준에 따라 판사의 책임성을 평가하게 되면, 판결상의 자율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다”(이상수 교수)는 견해가 이미 학계에 나와 있다. 재판절차나 진행이 엄정하면 재판결과에 수긍하는 국민적 신뢰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법관평가를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변회 회장을 역임한 오욱환(吳旭煥) 변호사는 “최소한 법관으로서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평가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판사에 대해구체적인 시정을 요구하고, 평가결과를 공표할 권리를 가진 ‘법관평가위원회’를 설치해 형사소추 사유를 발견할 시 직권고발하거나 징계청구도 할 수 있도록 ‘법관평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관 시절, 제가 어떻게 소송지휘를 했는지, 어떻게 판결문을 썼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실체적 진실과 법적인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을 때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L변호사는 이런 말도 했다.
“판사 시절, 제가 내린 판결이 적어도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변호사를 하고 보니, 그게 착각일 수 있겠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어요. 아마 판사 출신 변호사 대부분이 공통으로 느낄 겁니다.”
그는 또 서울지방변호사회(이하 서울변회)의 ‘법관평가’에 대해 “그동안 참여하지 않다가 올해 처음으로 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법정에서 재판장의 말투와 표정, 눈빛 하나하나에 당사자나 원고·피고 측 변호사 모두 울고 웃습니다.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니까요. 말투·표정에 사법 불신(不信)의 원인이 담겨 있어요. 판결내용이 아닌 판결절차나 진행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뤄지면 결과적으로 사법 서비스 질(質)이 올라가지 않겠어요? 아직 손볼 곳이 많아 보이지만….”
그러나 L변호사가 처음 참여한 서울변회의 법관평가 결과가 아직 공표되지 않고 있다. 매년 1월 중순쯤 ‘베스트(Best·上位) 법관’ 명단과 함께 공개됐었다. 특히 서울변회 나승철(羅承哲) 회장이 올해 법관평가는 ‘워스트(Worst·下位) 법관’을 실명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3월이 넘어도 워스트는 물론 베스트 법관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2월과 3월 초 서울 서초동 법원 주변에서 만난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서울변회와 대법원 사이에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냐. 기(氣)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며 관심을 보였다. “서울변회가 하위법관 실명 공개를 막으려는 대법원 회유를 뿌리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말도 들렸다.
법원–변호사, 협의회 구성해 법관평가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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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평가가 논란을 빚고 있으나, 국민들로부터 법원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더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3년 12월 2일 신임 법관에게 법복을 입혀주고 있다. |
서울변회가 ‘하위법관’ 실명 공개 입장을 밝히자 그제야 대법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기자는 속내를 듣고 싶어 서울변회 측에다 “나승철 회장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두 차례 전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서울변회 법제팀에 문의했지만 “(진행상황을) 알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3월 11일 자 《법률신문》에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변회가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 구성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 양측은 “소송절차의 개선과 바람직한 재판진행 및 변론절차의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협의체로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에서 무엇을 논의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2009년 서울변회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진 법관평가가 또 다른 운명을 맞게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최근 2~3년 사이 모든 지방변호사회가 법관평가를 시작했다. 서울변회가 제공한 법관평가 매뉴얼을 토대로 ‘법원평가특위’를 구성해 평가를 진행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나 부산지방변호사회, 광주지방변호사회 등은 서울변회를 따라 하위법관 실명 공개도 천명한 상태. 서울변회가 스타트를 끊으면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번 협의회 구성으로 서울변회가 기존 법관평가 방식을 바꾸면 다른 지방변회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를 잡아가던 법관평가가 공중분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무법인 양헌의 김승열(金承烈) 대표변호사는 “앞으로 협의회 진행상황을 지켜보겠지만, 협의회가 순기능을 발휘 못 하고 ‘비공개 편집기능’을 고집하면 문제소지가 있을 수 있다. 법관평가는 무엇보다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과의 협의회 구성은 다분히 오해소지가 있어요. 일종의 여과 과정을 거치며 본질(법관평가)이 왜곡될 수 있고, 왜곡되지 않는다고 해도 외부인이 볼 때 오해할 수 있잖아요. 또 현 집행부에 대해 아쉬운 점은 하위법관 실명 공개를 주장하기 전에,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미흡하다고 보입니다.”
여전히 권위주의 팽배한 법정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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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
—하위평가를 받은 법관의 실명 공개가 상당한 무리수인가요?
“특정 판사 입장에서는 분명히 억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판사는 공인(公人)입니다. 논란 소지는 있겠지만 법관평가 자체만으로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다고 보기 어려워요. ‘워스트’로 낙인찍혀 명예가 손상될 수 있으나 편파적인 재판 진행으로 고통받는 당사자와 변호인 마음도 헤아려야 합니다. 비록 변호사들의 낮은 응답률에 기초한 평가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표본 집단 수를 더 확보하고 신뢰성을 보완한다면 가능하다고 봐요.”
—요즘 법원 분위기는 어떤가요?
“중재(仲裁) 재판절차 등에 비해 법정은 여전히 열악하고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어요. 법원 직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일부는 고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해요. 형사사건은 모르지만 민사사건에 있어 법관이나 법원 직원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자기인식이 필요합니다.”
법관평가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변호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갑을(甲乙)관계나 다름없는 법정의 현실 때문인지 변호사의 참여가 미지근하다. 법관평가표에 사건번호와 담당법관의 이름을 명시토록 했다는 점도 작용한다.
첫 시행한 서울변회의 ‘2008년 법관평가’(2009년 1월에 발표)에 참여한 변호사 수는 전체 회원 6300명 중 491명(7.7%). 이들이 평가한 법관 수는 456명. 최소 변호사 5명 이상에게서 평가를 받은 법관은 47명에 그쳤다고 한다.
이듬해 555명(법관평가 건수 1828건)으로 소폭 늘었으나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2013년에는 전년에 비해 2.5배 증가(전체 서울 회원 9100명 중 5%인 460명(2686건)이 참여)한 1104명(4659건)이 법관평가에 응했다.
물론 지난해 서울 지역 개업 변호사 수가 1만474명에 이른다는 점을 상기할 때 큰 폭의 증가라 보기 어렵다. 특이한 점은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12년 첫 배출된 로스쿨 1기생이 지방 대신 서울에 몰려들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 양승태 대법관의 苦言 양승태(梁承泰) 대법원장은 최근 법관들에게 부쩍 ‘국민 소통’을 강조하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2월 28일 연임(連任)법관 기념행사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법원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이나 특정 사회단체 등에서 판결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관 개인을 부당하게 비판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면서도 “수십억 년의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 살아남은 종(種)은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라는 다윈의 말을 기억해 달라.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양 대법원장은 3월 10일 사법정책연구원 개원식에서 역시 “사법부는 재판 독립의 원칙을 뒷받침할 만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는지를 절박한 심정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또 “재판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이를 왜곡, 비난하는 진영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한 불만이 재판이나 법원에 대한 근거 없는 실망이나 비난으로 이어져 법원을 압박하고 있다”는 우려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구성원리지만 재판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보장할 때에 국민의 권리가 가장 완벽하게 보장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수단적 가치다.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확보하고 있는지 절박한 심정으로 돌아보며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의 ‘국민 신뢰’ 요구는 마치 법원이 권위주의를 내려놓으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
“판사의 모든 근무평정, 대법원장 1인에 집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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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방변호사회 박종순(오른쪽)·김득환 변호사가 작년 1월 서울 서초동 서울변호사협회에서 ‘2012년 법관 평가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그동안 법원은 1995년 이래 대법원의 ‘판사근무성적평정규칙’(대법원규칙 제2244호)을 제정해 근무평정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 규칙에 따른 근무평정을 법관인사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외부에서 알 길이 없었다. “세부적 평정기준이 뭐며, 각 법관에 대한 평정결과가 뭔지, 평정결과를 인사에 반영하는 방식이나 절차에 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서강대 로스쿨 이상수 교수)는 것이다.
법조계 일부 인사들은 “우리나라의 법원행정 조직이 수직적 기형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관은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로 시작해 지방법원 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 대법원재판연구관, 지방법원부장판사, 고등법원부장판사,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 대법관, 대법원장 등에 이르는 수많은 위계가 존재하는데, 이 길게 이어진 승진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으로 법관의 자질과 능력이 판가름난다. 김승열 변호사는 “근무평정 결과에 따른 임용이나 인사이동, 보직변경의 권한이 모두 대법원장에게 집중돼 있다.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라는 조직을 활용, 이들에 관한 인사나 업무자료를 수집, 활용한다”고 말했다.
법관 근무평정이 이뤄지고 그것을 집적하며 분석·평가하는 기구도 법원행정처다. 그는 “법관의 인사행정은 계층제의 정점에서 인사업무를 통제하는 모습으로 비쳐 사법관료 체제라는 비판을 듣게 만들었다”고 했다.
“법관 인사권한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돼 폐쇄적인 관료조직을 만들었어요. 변호사가 그런 조직을 향해 법관평가를 하겠다고 하니 화들짝 놀란 것이죠. 법관평가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통제받지 않던 사법 관료주의에 메스를 든 겁니다.”
그는 “어찌 보면 겨우 보행기에서 일어나 걸음마를 시작한 법관평가 작업이, 사법 관료조직(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 내로 들어가버리면 부작용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죠. 미국처럼 판결문 완전 공개로 사법권 행사를 적절하게 통제해야 해요. 판결문이 공개된다면 전관예우 폐해 등 ‘사법 불통(不通)’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보여요. 판결문은 영원히 남는 것이어서 사후(事後)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판결문 공개여건이 안 갖춰진 현실에서 법관평가는 불가피합니다. 대법원도 법관평가를 여러 평가요소 중 참고자료의 하나로 검토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위법관 명단 공개하라”
사실, 법관평가는 지난 2008년 서울 어느 법원 민사재판에서 불공정 재판, 막말 재판 시비가 벌어진 것이 단초가 됐다고 한다.
법원 내에서 언터처블(untouchable·‘못 말린다’는 의미)이란 별명을 가진 재판장이 원고 측 변호사에게 “변호사 몇 년 했느냐” “말귀도 못 알아듣느냐”고 핀잔을 주며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원고 측은 서울변회에 60쪽짜리 진정서를 냈고 변호사 회장이 법원장을 항의 방문했다. 서울변회는 이를 계기로 변호사가 판사를 평가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했었다.
당시 서울변회 회장은 하창우(河昌佑) 변호사다. 그는 법원과 서울변회 간 협의회 구성으로 법관평가가 중대 기로에 처하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위법관을 공개하는 것만이 견제장치 없는 우리나라 법정을 민주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1만여 명의 변호사들에게 “하위법관 명단 공개”를 촉구하는 이메일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하 변호사의 말이다.
“2009년 1월부터 총 5차례에 걸쳐 변호사들이 평가한 우수법관과 하위법관을 대법원에 전달해 왔어요. 물론 우수법관은 공개하고 하위법관 명단은 대법원에만 전달했어요. 하지만 대법원이 변호사들의 건의를 묵살하고, 하위법관으로 평가된 판사들이 계속 재판에 관여하고 있어요.”
그는 “전국 법관 3000명 중 서울 관내에만 2000명이 있는데 얼마나 재판을 못했으면 워스트 법관이 됐겠느냐”며 “그런 사람을 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이 ‘하위법관 실명 공개’의 목적”이라고 했다.
“워스트든, 베스트든 평가하는 변호사의 눈은 비슷합니다. 베스트 법관은 (재판에서) 이긴 쪽은 물론이고 진 쪽에서도 훌륭하다고 평가받기에 베스트 법관이라고 인정해 준 겁니다.”
하 변호사는 “하위평가 법관들은 해마다 반복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모 부장판사는 3년 연속 워스트 1위입니다. 3년 연속 최악의 판사로 평가받은 사람이 계속 재판업무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법원의 인사제도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닌가요? 그런 사람은 변호사뿐만 아니라 일반 당사자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어떤 고통을 주나요?
“불공정한 재판을 할 개연성이 높잖아요. 그러니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들이 괴롭지요. 대법원은 그런 판사를 배제해야 하는데 나 몰라라 하고, 계속 재판하도록 합니다. 대법원이 반성해야 할 문제지요. 왜 반영 안 합니까. 하위법관 평가는 변호사들의 양심에 따라 공통된 시각으로 평가한 산물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해마다 워스트 탑(Top)10에 드는 법관들은 대개 고정돼 있다. 베스트 법관은 상당히 유동적이지만, 워스트 법관은 그 고인 물이 뚜렷해 평가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런 법관이 소송을 진행하면 변호사들도 당혹스럽겠네요.
“그렇죠. 긴장이 되고 거북스럽습니다. ‘이 재판장이 어떻더라’는 소문이 이미 나 있잖아요. ‘아이고 죽었구나’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다짐하지만 소용없어요.”
—법원과 서울변회가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를 구성한다고 하던데요?
“어찌 보면 하위법관을 실명 공개한다고 하니 대법원에서 미끼를 던진 것인데, 변호사들을 달래려고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보세요. 서울 빼고 모든 지방변호사회가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서울만 안 하고 있잖아요. 대법원 작전에 휘말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협의회를 구성하든, 안 하든 법관평가는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인 거죠?
“물론입니다. 그래야 판사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국민을 위한 최고의 사법 서비스를 제공할 테니까요.”
“사법권 독립 빌미로 법관평가 거부, 정당화될 수 없어”
법관평가는 아직 미완(未完)이다. 손질하고 뜯어고쳐야 할 곳이 적지 않다. 서울과 지방 간 평가항목과 기준, 방식이 다르고, 변호사들이 참여한 평가가 공정한지에 대한 검증도 어렵다. 그저 변호사의 양심에 맡길 뿐이다.
그러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상수(李相洙)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한 서울변회의 법관평가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했다. “사법권 독립을 빌미로 사법책임을 면하려 하거나 법관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법권 독립이 간절히 필요하다면, 그와 같은 정도로 법관평가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법권 독립이 더욱 잘 견지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법원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법원이 법관평가를 독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법원이 법관평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법원 산하에 독립한 기구로 법관평가위원회 설치도 제안했다. 형태는 법관과 변호사, 그리고 비법률가가 참여하는 방식이다(이 교수의 <사법권 독립과 법관의 직무평가> 참조).
부산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윤태석(尹泰碩) 교수도 “매년 이뤄지는 근무평정 및 외부 시각에 의한 법관평가의 자료를 수집하고 결과를 분석할 별도의 기관 또는 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관평가위(委)는 근무평정의 경우 평정권자에 대한 이의권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재심사 기능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윤 교수의 <법관평가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 참조).
또 “변호사와 당사자가 공정심을 잃고, 법관을 감정적으로 평가한 경우,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여과장치 기능을 가져야 법관평가에 대한 부정적 우려를 없앨 수 있다. 법률가 외에 비법률가도 법관평가위에 포함시켜 평가결과 분석에 신뢰성·객관성을 더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윤 교수는 그러나 “법원조직 외부의 시각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할 법원평가제는 필요하나 평가 하위법관의 명단 공개는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판사들 안면이 있으니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사회의 보수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 조직이나 법관도 시대변화에 따라 법복에 쌓인 ‘오래된 권위’ 대신 내·외부 관찰자의 시각을 반영한 ‘정직한 권위’로 변해야 한다”고 고언(苦言)했다.
“독재정권을 거치며 사법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었어요. 그래서 사법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내세우며 외풍을 막느라 (사법의) 관료화를 강화한 측면이 있어요. 그런 시각에서 ‘판사들의 판결문이 이미 있고, 그들의 업무에 대한 통계자료가 다 수집되는데, 굳이 다른 평가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판사 역시 더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신참 법관으로 임용돼 배석판사를 거쳐 단독판사, 부장판사가 됐다고 해서 모든 재판을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볼 수 없잖아요. 아무리 올바른 판결을 내려도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절차나 과정이 올바른지, 당사자나 변호사에게 진정성을 갖게 하는지도 살펴야 해요. 판사라는 자리가 그만큼 엄정하니까요.”
“법원도 원만히 처리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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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월 29일 당시 서울변호사회 회장인 하창우 변호사가 ‘2008년도 법관평가’ 결과를 대법원 민원실에 제출하고 있다. |
—베스트, 워스트 법관 선정은 내부적으로 다 됐지요? 발표만 안 하는 것뿐이지요?
“네.”
—하위평가 법관들이 매년 대개 동일인물이라고 하던데요.
“네. 특별히 그해 처음 등장한 분들이 아니라, 매년 워스트에 들어간 분들이 이번에도 들어간 식이어서 법원에서도 대충 누군지 다 알고 있어요. 법관에 대한 헌법상 신분보장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렴 못 하는 부분도 있지만, 법원에서는 (평가결과를) 반영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요.”
—협의회 구성 얘기가 나오던데 법원 쪽과 몇 차례 모임을 가졌던 거죠?
“전화통화도 하고 일부는 개별적으로 만나 협의도 하고, 어떤 안건으로 어떻게 (법관평가를) 논의할지 어느 정도 의견일치는 봤고요, 이젠 회의장에 나와 회의하는 일만 남았어요.”
전 대변인은 “대법원이 시간 끌기 차원에서 (협의회 구성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형식적으로 나왔다면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하위법관 실명 공개는 안 합니까.
“저희가 평가한 결과를 법원에 제공했고, 지금도 제공하고 있지만, (대법원의 법관인사에) 반영이 안 된 것뿐이죠. 하위법관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법원에 제공하고, 법관인사에 반영되는 것이 제도화된다면 굳이 일반인에게 (하위법관 실명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는 “판사 욕보이기 차원에서 법관평가를 하는 게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법원에서는 변호사단체가 자체 조사한 내용을 일반에 공개해 해당 법관의 업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아요. (평가결과가) 해당 법관에 사직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쳐 헌법상 규정된 신분보장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이미 법원에서도 (법관평가를) 인사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희 입장에서는 그런 노력이 보이더라도, 명문화 내지 제도화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되돌아갈 수 있으니 좀 더 애써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현재 어떤 안을 논의하고 있나요?
“여러 가지 안이 나오고 있어요. 한 번 (워스트) 명단에 오른 분은 단순히 내용만 통지해 주는 것으로 하고, 두 번이나 세 번 이상 지적되면 인사에 반영하고요. 또 법관인사를 점수제로 하는데, 거기에 반영하는 식으로 협의를 보고 있어요. 저희도 한번 리스트에 오른 분이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고, 반복해서 올라와야….”
—다른 지방변호사회에서도 협의회 구성에 관심이 많은가요?
“서울변회와 법원이 어떤 안을 마련하면 지방도 하자고, 대법원에다 의견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아마 대법원에서도,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법관평가법 제정 주장도
변호사들은 내심 법관평가를 반기면서도 재판에 미칠 영향 때문인지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평가참여율이 낮은 것도 이 때문. 법원 역시 평가에 촉각을 세우지만 겉으론 “포퓰리즘식 인기투표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법관평가 덕분에 몇 년 사이 법정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지적에 법원도 공감한다. 판사들이 막말을 하거나 원·피고 측에다 지나친 화해를 강요하며, 무리하게 조정을 권하는 식의 ‘통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법관평가의 긍정효과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지금 법원이 시행하는 판사 근무평정이 “법관들 사이에 사건처리를 놓고 속도전을 벌이게 하고, 그 과정에서 법관들이 당사자에게 협박에 가까운 화해·조정을 권유하게 만들었다”(오욱환 변호사)는 비판이 있어왔다.
그러고 보면, 한국사회만큼 산업화·민주화의 속도가 가파른 곳도 없다. 미국이나 일본도 법관평가를 하지만, 베스트·워스트 법관평가 방식은 대만을 제외하고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는 방식이다. 법관평가가 ‘사법의 민주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인지 기자가 답을 내리기는 곤란하다.
다만 “법관평가가 중립적이고 절차지향적 기준에 따라 판사의 책임성을 평가하게 되면, 판결상의 자율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다”(이상수 교수)는 견해가 이미 학계에 나와 있다. 재판절차나 진행이 엄정하면 재판결과에 수긍하는 국민적 신뢰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법관평가를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변회 회장을 역임한 오욱환(吳旭煥) 변호사는 “최소한 법관으로서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평가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판사에 대해구체적인 시정을 요구하고, 평가결과를 공표할 권리를 가진 ‘법관평가위원회’를 설치해 형사소추 사유를 발견할 시 직권고발하거나 징계청구도 할 수 있도록 ‘법관평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