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중국대사관 ‘첫 문’ 열리던 날 : 월간조선

1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2길. 명동을 찾은 관광객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중앙우체국 뒷길의 육중한 진홍빛 대문이 스르르 열렸다. 작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중국대사관이 처음 내부를 공개하는 날이었다. 일찌감치 대사관에 도착해 문 앞에 선 기자는 돼지피로 붉은색을 입혔다는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의 담벼락만큼이나 진한 선홍색 대문에 취해 있다가, 입구에 걸린 황금색 문패의 ‘중화인민공화국대사관’이란 글자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명동 한복판에 사람의 키로는 내부를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 높은 담벼락이라니, 안으로 한 발 내딛기도 전에 위화감부터 들 정도였다.

“니 슬 띠이거(당신이 첫 번째 손님이네요).” 오후 3시15분쯤 이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간 기자를 마중나온 선빈 중국대사관 공보 담당자가 말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기자가 약속 시각인 4시보다 45분이나 먼저 대사관에 도착했던 것이다. ‘첫 손님’으로 입장해 대사관 바깥 정원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명동 속 중국성(中國城)을 보고 신기해하며 “커이 셴 찬관이샤마?(먼저 둘러봐도 될까요)”라고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11년 만의 ‘화려한 귀환’

중국대사관 입구의 선홍색 대문(왼쪽)과 사자상. 청나라 때부터 있던 이 사자상만 빼고 대사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고층 건물을 올려다봤다. 10층 규모인 업무용 빌딩, 24층 규모로 지어진 직원용 숙소. 연면적 1만7199m2로 공사 당시부터 주한 외국대사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매머드급’ 대사관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건물 입구로 가는 길 우측엔 자그마한 동산이 조성돼 있었는데, 숙소동에 집주하게 된 직원들의 쉼터로 활용할 모양이었다. 동산 위에 세워진 정자(亭子)에 오르니 서울중앙우체국과 밀리오레 같은 명동의 명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중국대사관 터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래는 132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한양에 온 청나라 대표가 사들인 땅이었다. 당시 파병된 청군 3500명이 이곳을 비롯해 용산 등 서울 각지에 주둔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원세개(袁世凱·1859~1916)가 본국으로 도망, 청군이 종주권을 상실했을 땐 영사관으로 격하되기도 했다. 군인 출신이었던 원세개는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조선에 부임해 우리 국정을 간섭하고 일본·러시아를 견제했다. 1940년대 중·일전쟁 때는 일본이 중국에 세운 괴뢰 정권인 왕징웨이(汪精衛) 정부의 영사관으로 쓰였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직전인 1947년에는 중화민국(대만) 임시영사관이었고, 정부수립과 함께 대만대사관으로 격상됐다.

십수 년 동안 대만대사관으로 자리를 굳히나 했는데,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이 땅은 다시 중국의 차지가 됐다. 중국대사관에 자리를 내주게 된 대만대사관은 주한 타이베이대표부로 격하돼, 현재 서울 광화문빌딩에서 간단한 영사 업무만을 처리하고 있다. 이후 10년 동안 기존 건물을 사용해 온 중국은 2002년 “대사관을 다시 짓겠다”며 종로구 효자동으로 짐보따리를 옮겼다. 이때부터는 계속 공실이었다.

중국대사관은 당초 2005년 완공이 예정됐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커지면서 공사 작업이 잠시 중단됐다. 이후에도 설계와 건축 인허가 등을 놓고 서울시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다가 2010년 신축공사의 첫 삽을 떴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대사관(9871m2)은 물론 정동의 러시아대사관(1만2012m2)을 가뿐히 제치고 주한대사관 중 가장 크다는 것이 공기(工期) 내내 화제가 됐다.

“이 사자상(獅子像) 말고는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기자가 대사관 구석구석을 둘러보자 뒤따라온 대사관 직원이 동산 길목에 놓인 두 개의 사자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사자상은 청나라 때부터 이곳에 있었다. 대만대사관이 있었을 때도, 2010년 이전까지 자신들이 입주해 있을 때도 이 돌상은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건물을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쯤인 듯했다. 동산에서 내려와 건물 입구 쪽을 바라봤다. 빌딩 앞 잔디 밭 가운데 오성홍기가 바람에 나부꼈다.

중국 건설 해외사업부가 직접 시공

대사관의 화려한 내부. 로비에는 홍등이 걸려 있다.

워싱턴의 주미(駐美)중국대사관(2만3000m2)에 이어 해외에 건설된 중국대사관 중 두 번째 규모라는 주한중국대사관의 내·외부는 호화로우면서 완연한 ‘중국풍’이었다. “건설에만 총 300억원가량의 공사비가 투입됐다”고 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홍등이 달려 있었던 로비에는 이날 외부인 공개를 맞아 중국을 상징하는 팬더 등의 사진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되레 구석으로 밀려난 장식물 중 값비싸 보이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특히 대리석이 깔린 로비의 양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중국의 국보급 그림인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본뜬 대형 부조(浮彫)가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형 대리석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은 접견실과 40석 규모의 화려한 연회장이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색인 황금색이 여기저기 쓰였고, 벽면 전체가 고풍스러운 화조도(花鳥圖)로 채워져 있었다. 접견실은 이 건물 ‘어디쯤’ 집무실을 둔 대사 등 고위간부가 외부에서 온 손님을 맞을 때 환담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중국대사관 측은 공사 과정에서 도청 장치 부착으로 인한 기밀 누설 등을 우려해 중국건설 해외사업부에 시공을 의뢰했다. 첫 삽을 뜨고 건물을 올린 이들도 모두 중국인 국적자로 제한했다. 이 기간 동안 대사의 집무실 위치는 극비에 부쳐졌다. 이날 기자가 로비에서 만난 한 대사관 직원에게 “대사님 집무실은 몇 층이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잘 모르겠다. 중간 층 어디쯤”이라고만 답했다. 주한 중국대사 자리는 현재 공석으로, 추궈훙(邱國洪) 중국 외교부 대외안전사무국장이 곧 신임 주한 중국대사로 부임한다.

업무동과 붙어 있는 24층 높이 직원용 숙소는 말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진다. 전용면적 57m2 9가구, 89m2 33가구, 115m2 2가구, 126m2 8가구 등 총 52가구이며, 숙소동 13층엔 실내 수영장·헬스장·미용실까지 마련돼 있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평수가 커진다고 했다. 호화로운 로비만큼 방 안도 그러할까 싶어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게 되면 이 건물 꼭대기 층에 묵을 수도 있겠다”고 묻자, 대사관 관계자는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인테리어나 보안 시설 등이 그 정도 급에는 못 미친다”며 고개를 저었다.

52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숙소는 이미 80%가 입주를 마쳤다. 대부분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 직원과 가족이고, 오는 4월이면 남아 있는 빈집들도 채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깥 생활’을 접고 대사관과 이웃한 건물로 이삿짐을 옮긴 직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시큰둥했다. 이날 만난 직원 중엔 “주거 환경이 나아진 것은 맞지만 회사와 집이 붙어 있는 게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하소연하는 이도 있었다.

習 주석 지침 따라 “최대한 간소하게”

주한중국대사관 접견실.

13층에 있는 수영장은 아직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직원들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4시가 가까워져 발걸음을 돌려 행사가 열릴 1층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로비 우측에 위치한 연회장은 금색 글씨로 ‘신춘콰이러(新春快樂)’ 같은 중국 인사말이 적힌 춘롄(春聯)으로 꾸며져 있었다. 창문엔 붉은색과 금색 바탕에 ‘푸(福)’ ‘궁시파차이(恭喜發財)’ ‘쓰지핑안(四季平安)’이라고 적은 촹화(窓花·칼과 가위 등을 이용해 붉은 종이를 오려 창문을 장식하는 공예)가 내걸렸다. 실내는 장미를 수놓은 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원형 탁자와 붉은색과 금색 보를 씌운 의자로 빼곡했다.

이날 임시로 마련된 연회장은 원래 직원식당 자리라고 한다. 첫 외부 손님들을 초청하는 자리로 제법 호화로운 2층 연회장을 공개했을 법도 한데, 들어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날 연회장에서 만난 천하이(陳海) 중국대사대리의 말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만큼 성대한 개관식은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개관식이라고 부르지도 말아주세요. 편하게 ‘오픈날’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관료들의 근검절약과 반(反)부패 척결에 앞장서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의지가 이곳 대사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었다. 주한중국대사관은 작년 12월 말쯤 입주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따로 공식 개관식을 하지 않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중국대사관이 일반 대중에게 대사관을 공개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고, 관례에 따라 화려하게 치를 법도 했다. 불과 한 달 전인 12월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2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모인 가운데 장신썬(張鑫森) 주한중국대사의 이임식이 치러졌을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대사관의 정식 개관 행사에 대해 천하이 대사대리는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대사관에 초청된 인사는 약 70여 명으로, 대부분 명동 지역 노인회와 상인, 경찰서·소방서 인사였다. 우리 외교부 측 인사나 이웃국 대사관 직원들은 별도 초청이 오지 않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 대사는 이날 축사에서도 ‘이민위천(以民爲天·백성을 하늘로 삼는다)’과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그만큼 소박한 ‘집들이’임을 강조했다. 중국 특유의 대형 공연단의 연주도 없었고, 화려한 장식을 치장한 가무단 공연도 생략됐다. 대신 중국 전통 악기 고쟁(古箏) 연주와 2014년 말(馬)의 해를 기념해 ‘말처럼 순조롭고 신속하게 성공하라’는 신년 덕담인 ‘마도성공(馬到成功)’을 붓글씨로 선보였을 뿐이었다.

이날 중국대사관이 ‘집들이’ 음식으로 내놓은 뷔페는 평소 중국 서민들이 즐겨 먹는 가정식 몇 가지로 꾸려졌다. 한국인은 어려워하는 샹차이(香菜·고수)를 잔뜩 넣은 야채요리와 찐 옥수수, 전분을 넣은 국과 볶음밥 등이었다. 이날 테이블에 올라온 바이주(白酒)는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생산한 브랜드인 푸위라오자오(富裕老窖)였는데, 이 술의 가격은 100위안(1만8000원)대로 알려졌다. 문득 지난해 말 베이징의 한 만두 가게를 찾아 직접 줄을 서서 만두를 사먹은 시진핑 주석의 친서민적 행보가 떠올랐다.

비자비로 건축비 감당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오픈하우스 행사. 중국대사관 측은 시진핑 주석이 근검절약을 강조하고 있는 데 부응하여 개관식이라는 표현조차 삼갔다.

새로 들어선 대사관과 함께 바뀐 것도 있다. 공교롭게도 중국대사관이 내부를 공개한 이튿날인 24일부터 중국을 방문할 때 꼭 받아야 하는 비자 발급 수수료가 개인당 2만원씩 올랐다. 과거 30일을 체류할 수 있는 개인관광비자가 5만원이었다면, 이제는 7만원을 지불하게 된 것이다. 양국 간의 거리와 저렴할 때는 왕복에 30만원에 불과한 항공료를 생각했을 때 조금 과한 수준이다.

비자값이 오른 내막은 이렇다. 중국영사관이 밀려드는 비자 발급 업무를 처리하기 힘들어 중국 여행 업체에 외주 형태로 ‘중국비자센터’를 개소하게 한 것이다. 비자센터는 서울역과 중구 퇴계로, 광주광역시와 부산광역시에 설치됐다. 영사관의 업무량이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같은 비자센터의 운영 비용을 우리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 점은 문제다. 중국국가여유국 통계를 보면 2013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397만명으로, 이를 1인당 2만원으로 계산할 경우 우리 측의 추가 부담금은 약 794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이 비용이 비자센터 운영뿐 아니라 대사관 건축비용 마련에도 투입된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근검절약과 소박함을 강조한 행사였지만 호화로운 건축자재와 인테리어로 무장한 건물까지 부정할 순 없는 일이다. 이날 본 24층 높이 대리석 빌딩과 중국식 지붕이 주는 위화감이 그랬다. 중국대사관은 사실 규모 면에서 베이징에 있는 우리 대사관과 다를 게 없다. 연면적 1만6295m2인 주중한국대사관은 삼성물산이 2004년 착공해 3년9개월 만에 완공했다. 하지만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주변 건물과 눈높이를 맞췄다. 인근에 있는 미국대사관도 마찬가지다. 중국대사관의 이 같은 설계는 아마 명동이라는 금싸라기 땅에서의 제한적인 공간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명실상부 ‘중국商圈’ 기대

한국과 중국대사관이 양국에 ‘매머드급’으로 지어진 배경엔 물론 변화한 한·중 관계가 있다. 작년 한·중 교역액은 2700억 달러(약 291조원)로 중·일 교역액에 육박했다. 한·중 간 인적교류가 800만명을 넘었고, 특히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430만명으로 처음으로 중국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390만명)을 뛰어넘었다.

중국대사관의 부활로 정문 앞 옛 ‘중정(中正·장제스)도서관’의 가치도 급부상하고 있다. 중정도서관은 구한말 ‘원대인진전(袁大人陣前·위안스카이 진영 앞)’으로 불린 대사관 앞길에 1975년 지어올린 건물이다.

5층 높이의 이 건물은 최근 리모델링을 마치고 중국대사관 재입주에 호응하는 모양새다. 중국 서점·식당 등이 입주해 있는 중정도서관의 부활로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화교들은 중국인 관광객은 물론 대사관 직원들의 수요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하이 대사대리는 “1990년대 낡은 대사관에 근무할 때는 밖으로 나서면 일본인 관광객뿐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어딜 가도 중국 말이 들리고 중국 관광객이 넘쳐난다”면서 “앞으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중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보다 많아지는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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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사관 ‘첫 문’ 열리던 날

수영장·헬스클럽·연회장까지 갖춘 명동 속 中國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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