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7000억원 예산… 지난 3월 지원해 석 달 만에 중단 위기
⊙ “무상 시리즈의 폐해가 몇 달 만에 드러나기 시작”(서울시 서초구의 한 의원)
⊙ “지금은 고마운데, 나중에 내 월급에서 세금으로 떼가지 않을까?”(35세 회사원)
⊙ “무상 시리즈의 폐해가 몇 달 만에 드러나기 시작”(서울시 서초구의 한 의원)
⊙ “지금은 고마운데, 나중에 내 월급에서 세금으로 떼가지 않을까?”(35세 회사원)
- ‘0~2세 무상보육’ 문제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은 기사 안의 특정내용과 상관없음.
서울시 서초구에 사는 최모(37)씨는 지난 1월 갑자기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24개월 된 딸을 키우는 최씨는 원래 아이가 30개월이 되면 어린이집에 맡길 생각이었다. 전업주부라 굳이 딸을 맡길 필요가 없고, 어린 나이에 보육기관에 맡기는 것이 꺼려져서였다. 하지만 신문에서 ‘0~2세 전면 무상보육’이라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급해졌다.
최씨는 “그동안 어린이집 비용이 아까워서 아이를 보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막상 공짜로 맡길 수 있다니 우선 아이를 보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파트 인근의 어린이집은 대기 순번이 한도 끝도 없이 길었다. 그는 알음알음으로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어린이집을 찾아 등록했다. 그는 “거리가 멀지만 매일 보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단 등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다.
경기도 과천시에 사는 이모(35)씨는 요즘 어린이집 때문에 고민이다. 육아 휴가를 끝내고 오는 9월 회사에 복귀할 예정인 이씨는 올 초부터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았으나 아직도 제자리다. 주위 아기 엄마들로부터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동네는 반 년 전에 신청하면 자리가 있다”고 들었던 터라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인근 어린이집 원장들은 “올 초부터 무상보육을 실시한다고 해 평소보다 등록 대기자 숫자가 몇 배는 늘어 오는 9월까지 자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입주 도우미를 두고 하루종일 아이를 맡겨야 할지 고민 중이다.
돈 지원한 지 석 달 만에 중단 얘기
‘어린이집 사태’로 관련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0~2세 아이들에 대해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며 어린이집 보육료 전액을 내주더니, 불과 석 달 만에 ‘보육료 중단’ 얘기가 나온다.
‘무상보육’ 비용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더 이상 돈이 없다”고 백기를 들었고,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설익은 ‘무상 시리즈’에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들은 나름 불만이 극에 달해 집단행동을 보일 조짐이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볼멘소리다.
서울시 서초구의 한 구의원은 “무상 시리즈의 폐해가 몇 달도 되지 않아 드러났다”고 말했다.
‘0~2세 무상보육’(정확히 말하면 어린이집 보육료를 정부가 100% 지원)은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소위(제7차)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이 안건에 대한 출처를 두고 말이 많다.
한 국회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예산결산특별소위의 안건은 몇 가지 루트를 거쳐 논의된다. 우선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를 해서 예산 편성안으로 올리는 경우가 있다. 예산결산위원회가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발언(혹은 서면)으로 질의를 해서 예산안으로 올라가거나, 또는 예산결산위원회의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올린다. 여야 간사가 정치적으로 타협해서 예산안에 올리기도 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무상보육안’은 해당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의 안건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보건복지위 조사관은 “상임위에서 올린 안건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여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사안”(주승용 의원실)
민주통합당 주승용(朱昇鎔)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한나라당과 정부(기획재정부)가 쿵짝이 돼 당·정 협의를 통해 결정하고 예산안에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상보육 예산’이 통과된 제7차 예결특위(지난 12월 31일) 회의록 내용의 일부다.
<주승용 위원 :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지금 3세, 4세에 대해서 월평균 보육료를 지원해 달라고 증액 요구를 해왔는데 이번에 증액한 것을 보면 0세부터 2세까지만 증액했어요. 증액해 줘야 될 데는 증액 안 해주고 증액 안 해줘야 할 데는 증액을 해주는 그런 생색내기 보육 예산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을 0세부터 2세를 0세부터 4세로 고쳐야 된다 저는 이렇게 지적을 하고 싶고요.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朴宰完) : 보육 예산을 이번에 대폭 늘렸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대안을 저희가 검토를 하고 여야 간사님들하고 협의를 했습니다. (중략) 역시 재원이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위원님 말씀하신 것들을 그대로 담지는 못했지만 단계적으로 늘려갈….
주승용 위원 : 0세, 1세, 2세를 해주려면 그 돈을 3세, 4세에다 해주라 그 말이지요, 제 말은.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 : 저희가 4세는 2013년에, 3세는 2014년에, 5세는 2012년에 그렇게….
주승용 위원 : 그것은 정권 바뀌고 할 이야기이고…>
당시 박재완 장관의 말에 따르면 ‘여야 간사들과의 협의사항’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보건복지위 주승용 의원은 “0~2세 무상보육에 대해 여당과 협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줄곧 0~5세 무상보육을 주장해 왔습니다. 0~2세 얘기는 꺼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결특위에서 떡 하니 0~2세 지원안이 올라와 있었던 겁니다. 사전에 전혀 몰랐던 일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0~2세가 언급됐다고 생각합니까.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대선(大選) 공약 사안이었는데 예산을 짜다 보니 0~5세에게 모두 지원할 돈이 없었겠지요. 보육료 지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적은 돈으로 생색내기를 하려다 보니 0~2세로 결정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3, 4세는 어린이집에 많이 가지만 0~2세는 숫자가 적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가 제 1~6회 예산결산위원회의 회의록을 열람한 결과, 질의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오간 적도 없다.
이주영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계수조정소위에서 여야 간사, 정부 측과 합의해 결정된 사안” 이라고 말했다.
2년 만에, 소득 하위 50% → 70% → 전액 지원
대표적인 복지정책 중 하나로 꼽히는 ‘무상보육’ 얘기가 등장한 것은 지난 2007년 6월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주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장밋빛 청사진을 내놨다.
이명박 당시 후보는 “영유아 보육과 교육은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朴槿惠) 당시 후보도 ‘영유아 무상보육’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빈곤의 대물림을 없애기 위해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실현, 만 5세 미만 아동 의료비 무료화 등을 담은 ‘맞춤형 복지안’이 탄생했다. 하지만 ‘무상’ 이슈는 민주당이 우세를 잡아갔다. 민주당은 ‘무상급식’ 공약으로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이때부터 ‘무상 시리즈’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지난 2010년 8월, 원래 소득 하위 50%에 한 해 전액 지원을 했던 0~5세 보육비를 하위 70%까지 확대키로 결정했다. 보육비는 정부 기준(0~2세 38만원, 만 3세 19만1000원 등 연령별 차등지급)에 따르는데, 한나라당은 무상보육 예산에 총 56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자 민주당은 지난 2011년, 보다 강력한 ‘무상 시리즈’를 내놨다. 민주당의 안에 따르면, 0~4세 소득 하위 80%에 대해 보육료 지급, 5세 전액 부담 등이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당초 계획에 없던 0~2세 전(全) 계층에 대한 지원이 결정된 것이다.
“지자체와 협의 없이 일방 결정”(시도협의회)
태생부터 뭔가 석연치 않은 ‘무상보육’은 올 초부터 시행 채비를 서둘렀다. 이 같은 결정에 가장 놀란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었다.
시도협의회 관계자는 “‘무상보육’에 대한 지원금은 서울을 제외한 전역에서 중앙정부가 50%, 지방자치단체가 50%를 내기로 결정했다”며 “지방정부로서는 난데없이 돈을 내라는 것이어서 정말 황당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방정부의 예산 편성은 통상 10월에 논의돼 12월 중순이면 끝납니다. 지자체가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인데 갑자기 12월 31일날 예산이 정해지더니, 지자체에 나머지 절반을 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예산 편성이 끝났는데 무슨 수로 돈을 냅니까. 게다가 당장 두 달 뒤에 시행한다고 하니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정부 대 지자체의 비율은 어떻게 결정됐습니까.
“‘매칭펀드’ 방식인데요, 국회가 그 비율을 정합니다. 보조율 산칙 법칙에 따라서 정해지는데 모든 권한은 국회에 있습니다. 이 ‘매칭펀드’ 역시 말이 많습니다. 국가보조사업마다 보조율 산식이 다른데, 그것이 잘 적용됐는지 아닌지를 지방은 알 수가 없어요. 통상 지방 국회의원들의 영향력에 따라서 국가 보조율이 다르다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지자체와 협의 없이 결정된 적이 처음입니까.
“2011년 3월에 정부가 부동산거래 활성화를 위해 세금 50% 감면한 것을 연장한 적이 있습니다. 부동산세는 지방 정부가 거둬들이는 지방세인데, 중앙정부가 저희와 전혀 논의 없이 연장했습니다. 당시에 지자체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지방채를 발행하고, 그 부담을 정부가 떠안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방정부가 받아야 하는 세금은 못 받도록 하고, 이번에는 우리가 내야 할 돈을 말 한마디 없이 결정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습니까. 중앙에서 명령을 내리면 따라가는 곳이 지방입니까?”
“주고 싶어도 돈이 없다”(지자체)
취재를 한 결과,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였다.
인천시의 보건복지담당 공무원은 “새해 첫날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무상보육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이 ‘그 돈을 어디서 끌어오지?’였습니다. 인천시는 시 예산의 28% 이상을 사회복지에 쓰고 있습니다. 예산 편성이 끝난데다, 이미 큰 부분을 복지에 쓰고 있어서 다른 곳에서 빼내올 예산이 없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다른 부분의 복지 쪽에서 끌어다 썼는데, 그래 봐야 몇 달을 버티겠습니까.”
‘부자동네’인 서울시 강남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6~7월이면 구청이 배정한 예산이 고갈된다”며 “아무리 예산을 줄여 이리저리 옮기더라도 계속 보육료를 지원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시도협의회 관계자는 “돈을 주고 싶어도 돈이 없기 때문에, 6월 초 시도협의회의를 통해 보육료를 지급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시장, 도지사 역시 선출직인지라 국민들이 거세게 항의할 경우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고 말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내놓은 ‘보육료 고갈시기’는 이렇다.
<6월 서울 서초구·강남구·강서구 등 10곳, 7월 서울 마포구·동작구·송파구·인천 동구 등 19곳, 8월 서울 종로구·용산구·부산 동래구·대구 중구 등 58곳, 9월 서울 서대문구·강동구·부산 해운대구·강원 춘천시 등 66곳…>
정부와 지자체의 추산에 따르면, 0~2세의 보육료 전면 지원을 위해서는 약 7000억원이 필요하다.
대다수 학부모는 이런 자세한 속사정을 알 리가 없다.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윤모(35·강북 종암동 거주)씨는 반가웠다.
“큰아이는 혜택을 받지 못해 아쉬웠지만 둘째 아이라도 혜택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집에 매달 30여만 원을 내고 있는데 그 돈을 절약하는 것 같아서 반가웠죠. 처음에 절차는 조금 귀찮았습니다. 정부에서 제 계좌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곧장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어서요. 어린이집 전용 결제 계좌, 카드를 만들고…, 보건복지부 사이트 보육료 결제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공짜라니까 그 정도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 걱정도 좀 됐어요. 어차피 세금으로 운용할 텐데, 그 세금을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 싶어서요. 저 같은 월급쟁이 봉투에서 더 떼가는 것이 아닌가 불안합니다. 일단 나라에서 돈을 대준다고 하니까 좋기는 한데….”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주부들은 드러내놓고 반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직접 돈을 지원해야지, 왜 어린이집에 돈을 주느냐”는 것이 골자다.
“세금으로 보육료 받다 보니 내야 할 서류가 한가득”(어린이집 원장)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꼬리표 달린’ 세금을 보육료로 받다 보니, 할 일이 몇 배는 늘었다는 것이 그들의 얘기다.
서울시 서초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A씨는 매주 토요일마다 빈 어린이집으로 출근을 한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워낙 많아서다.
“저희 입장에서는 학부모에게 보육료를 받든, 나라에서 주는 세금으로 받든 똑같습니다. 원아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이번 보조가 반가울 거예요. 아무래도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학부모들이 어디든 찾기 마련일 테고, 자기네 어린이집도 만원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인기가 없었던 어린이집은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과거에도 정원이 꽉 찬 상태로 운영됐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보육료 받는 것은 똑같은데 서류작업이 너무 늘었습니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기자에게 원아들의 ‘파일’을 가져왔다. 한 아이에 대한 파일이 무려 5개였다.
“나라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훨씬 늘었어요. 일지는 당연히 매일 쓰고요, 교사들의 회의 장면까지 사진을 첨부해야 해요. 제 주변에 한 분은 무상보육이 시행된 다음에 요구되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어린이집 원장을 접고 그냥 어린이집 선생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예요.”
“어린이집이 부정부패 온상처럼 비쳐 억울”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B씨는 “학부모에게 받는 돈으로 운영할 때가 훨씬 좋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겨서 부모나, 어린이집이나 서로 돕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을 서로 가졌어요. 그런데 요즘은 보낼 필요가 없는 학부모들도 일단 보내면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어졌어요. 여자들이 자식들 키워놓고 막상 일을 하려고 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예뻐서 자격증 따고, 구청에 허가받아서 어린이집을 시작했는데 참 힘드네요. 보육료가 ‘세금’이다 보니 작은 얘기들도 크게 번져나가고, 어린이집이 무슨 부정부패의 온상인 양 신문에 오르내리고 합니다. 어린이집 횡령이다, 애들 볼모로 떼돈 번다는 얘기를 할 때 괜히 이 직업을 택했다 싶습니다. 원아들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나서, 남는 무, 호박이 있다고 쳐요. 원칙대로 하면 이 재료들을 지정한 날짜까지 다 써야 하고, 남는 것은 버려야 해요. 남는 음식이라도 누구를 주거나, 가져가면 안 됩니다. 일부 나쁜 마음을 먹는 운영자가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월 평균 130만원, 원장은 200만원 안팎을 가져갑니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이들을 관리·감독하느라 힘이 들다고 볼멘소리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인원은 그대로인데 해야 할 업무가 늘어 공무원들도 애로사항이 많다. 100% 세금인 만큼 명확하게 관리, 감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무상복지는 ‘카드 돌려막기’
서초구의 한 구의원은 “무상보육의 허상”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지역은 초등학교에 원어민 강사를 대주다가 갑자기 중단했습니다. 무상급식 돈 때문에 더 이상 원어민 강사를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하대요. 학부모들은 무상급식을 하지 말고, 원어민 강사를 대 달라고 한다는데 구에서는 그런 여력이 없는 겁니다. 어떤 지자체는 초등학생 책걸상을 바꿔줘야 하는 비용으로 무상급식을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지자체가 돈이 남아도는데 주민들에게 복지를 해주지 않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줄 아십니까. 돈이 있으면 무상으로 다 해주고 싶지요. 문제는 돈이 없습니다. ‘카드 돌려막기’처럼 여기서 돌려막으면, 이쪽이 펑크 나고, 이쪽에서 막으면 다른 걸 못 해주는 겁니다. 정치권이 앞다퉜던 무상 시리즈가 몇 달도 되지 않아서 곳곳에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시행된 지 두 달 만에 ‘보육료 지원’ 문제가 불거지자,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공짜보육’이라는 말에 덜컥 집에서 먼 곳에 아이를 맡긴 최지윤(가명)씨는 “보육료가 중단되면 더 이상 아이를 맡기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이 한두 달 만에 오락가락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지난 6월 11일, 인천시를 비롯해, 대다수의 지자체는 추경예산에 0~2세 보육료 지원을 위한 시·도비 부담분을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는 어찌할 바 모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부 결정을 몇 달 만에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난감해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결정에 따라 예산을 집행할 뿐이다”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영유아 보육이 보건복지부 관할이기는 하나, 이번 일은 당과 국회에서 이뤄진 것이라 주어진 업무만 수행할 뿐이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구성된 지방재정개선 실무팀이 관련 대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결과는 내놓지 못한 상태다. 여야가 ‘하위 50% 지원에서 70%, 80%, 전면 지원’으로 경쟁하다시피 내놓은 무상보육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최씨는 “그동안 어린이집 비용이 아까워서 아이를 보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막상 공짜로 맡길 수 있다니 우선 아이를 보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파트 인근의 어린이집은 대기 순번이 한도 끝도 없이 길었다. 그는 알음알음으로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어린이집을 찾아 등록했다. 그는 “거리가 멀지만 매일 보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단 등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다.
경기도 과천시에 사는 이모(35)씨는 요즘 어린이집 때문에 고민이다. 육아 휴가를 끝내고 오는 9월 회사에 복귀할 예정인 이씨는 올 초부터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았으나 아직도 제자리다. 주위 아기 엄마들로부터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동네는 반 년 전에 신청하면 자리가 있다”고 들었던 터라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인근 어린이집 원장들은 “올 초부터 무상보육을 실시한다고 해 평소보다 등록 대기자 숫자가 몇 배는 늘어 오는 9월까지 자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입주 도우미를 두고 하루종일 아이를 맡겨야 할지 고민 중이다.
돈 지원한 지 석 달 만에 중단 얘기
‘어린이집 사태’로 관련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0~2세 아이들에 대해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며 어린이집 보육료 전액을 내주더니, 불과 석 달 만에 ‘보육료 중단’ 얘기가 나온다.
‘무상보육’ 비용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더 이상 돈이 없다”고 백기를 들었고,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설익은 ‘무상 시리즈’에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들은 나름 불만이 극에 달해 집단행동을 보일 조짐이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볼멘소리다.
서울시 서초구의 한 구의원은 “무상 시리즈의 폐해가 몇 달도 되지 않아 드러났다”고 말했다.
‘0~2세 무상보육’(정확히 말하면 어린이집 보육료를 정부가 100% 지원)은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소위(제7차)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이 안건에 대한 출처를 두고 말이 많다.
한 국회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예산결산특별소위의 안건은 몇 가지 루트를 거쳐 논의된다. 우선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를 해서 예산 편성안으로 올리는 경우가 있다. 예산결산위원회가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발언(혹은 서면)으로 질의를 해서 예산안으로 올라가거나, 또는 예산결산위원회의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올린다. 여야 간사가 정치적으로 타협해서 예산안에 올리기도 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무상보육안’은 해당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의 안건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보건복지위 조사관은 “상임위에서 올린 안건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여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사안”(주승용 의원실)
민주통합당 주승용(朱昇鎔)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한나라당과 정부(기획재정부)가 쿵짝이 돼 당·정 협의를 통해 결정하고 예산안에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상보육 예산’이 통과된 제7차 예결특위(지난 12월 31일) 회의록 내용의 일부다.
<주승용 위원 :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지금 3세, 4세에 대해서 월평균 보육료를 지원해 달라고 증액 요구를 해왔는데 이번에 증액한 것을 보면 0세부터 2세까지만 증액했어요. 증액해 줘야 될 데는 증액 안 해주고 증액 안 해줘야 할 데는 증액을 해주는 그런 생색내기 보육 예산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을 0세부터 2세를 0세부터 4세로 고쳐야 된다 저는 이렇게 지적을 하고 싶고요.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朴宰完) : 보육 예산을 이번에 대폭 늘렸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대안을 저희가 검토를 하고 여야 간사님들하고 협의를 했습니다. (중략) 역시 재원이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위원님 말씀하신 것들을 그대로 담지는 못했지만 단계적으로 늘려갈….
주승용 위원 : 0세, 1세, 2세를 해주려면 그 돈을 3세, 4세에다 해주라 그 말이지요, 제 말은.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 : 저희가 4세는 2013년에, 3세는 2014년에, 5세는 2012년에 그렇게….
주승용 위원 : 그것은 정권 바뀌고 할 이야기이고…>
당시 박재완 장관의 말에 따르면 ‘여야 간사들과의 협의사항’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보건복지위 주승용 의원은 “0~2세 무상보육에 대해 여당과 협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줄곧 0~5세 무상보육을 주장해 왔습니다. 0~2세 얘기는 꺼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결특위에서 떡 하니 0~2세 지원안이 올라와 있었던 겁니다. 사전에 전혀 몰랐던 일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0~2세가 언급됐다고 생각합니까.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대선(大選) 공약 사안이었는데 예산을 짜다 보니 0~5세에게 모두 지원할 돈이 없었겠지요. 보육료 지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적은 돈으로 생색내기를 하려다 보니 0~2세로 결정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3, 4세는 어린이집에 많이 가지만 0~2세는 숫자가 적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가 제 1~6회 예산결산위원회의 회의록을 열람한 결과, 질의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오간 적도 없다.
이주영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계수조정소위에서 여야 간사, 정부 측과 합의해 결정된 사안” 이라고 말했다.
2년 만에, 소득 하위 50% → 70% → 전액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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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왔던 황우여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1년 8월, ‘전면 무상보육’이슈를 제기하는 기자회견 모습. |
이명박 당시 후보는 “영유아 보육과 교육은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朴槿惠) 당시 후보도 ‘영유아 무상보육’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빈곤의 대물림을 없애기 위해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실현, 만 5세 미만 아동 의료비 무료화 등을 담은 ‘맞춤형 복지안’이 탄생했다. 하지만 ‘무상’ 이슈는 민주당이 우세를 잡아갔다. 민주당은 ‘무상급식’ 공약으로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이때부터 ‘무상 시리즈’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지난 2010년 8월, 원래 소득 하위 50%에 한 해 전액 지원을 했던 0~5세 보육비를 하위 70%까지 확대키로 결정했다. 보육비는 정부 기준(0~2세 38만원, 만 3세 19만1000원 등 연령별 차등지급)에 따르는데, 한나라당은 무상보육 예산에 총 56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자 민주당은 지난 2011년, 보다 강력한 ‘무상 시리즈’를 내놨다. 민주당의 안에 따르면, 0~4세 소득 하위 80%에 대해 보육료 지급, 5세 전액 부담 등이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당초 계획에 없던 0~2세 전(全) 계층에 대한 지원이 결정된 것이다.
“지자체와 협의 없이 일방 결정”(시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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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어린이집 관계자가 규제완화, 보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시도협의회 관계자는 “‘무상보육’에 대한 지원금은 서울을 제외한 전역에서 중앙정부가 50%, 지방자치단체가 50%를 내기로 결정했다”며 “지방정부로서는 난데없이 돈을 내라는 것이어서 정말 황당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방정부의 예산 편성은 통상 10월에 논의돼 12월 중순이면 끝납니다. 지자체가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인데 갑자기 12월 31일날 예산이 정해지더니, 지자체에 나머지 절반을 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예산 편성이 끝났는데 무슨 수로 돈을 냅니까. 게다가 당장 두 달 뒤에 시행한다고 하니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정부 대 지자체의 비율은 어떻게 결정됐습니까.
“‘매칭펀드’ 방식인데요, 국회가 그 비율을 정합니다. 보조율 산칙 법칙에 따라서 정해지는데 모든 권한은 국회에 있습니다. 이 ‘매칭펀드’ 역시 말이 많습니다. 국가보조사업마다 보조율 산식이 다른데, 그것이 잘 적용됐는지 아닌지를 지방은 알 수가 없어요. 통상 지방 국회의원들의 영향력에 따라서 국가 보조율이 다르다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지자체와 협의 없이 결정된 적이 처음입니까.
“2011년 3월에 정부가 부동산거래 활성화를 위해 세금 50% 감면한 것을 연장한 적이 있습니다. 부동산세는 지방 정부가 거둬들이는 지방세인데, 중앙정부가 저희와 전혀 논의 없이 연장했습니다. 당시에 지자체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지방채를 발행하고, 그 부담을 정부가 떠안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방정부가 받아야 하는 세금은 못 받도록 하고, 이번에는 우리가 내야 할 돈을 말 한마디 없이 결정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습니까. 중앙에서 명령을 내리면 따라가는 곳이 지방입니까?”
“주고 싶어도 돈이 없다”(지자체)
취재를 한 결과,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였다.
인천시의 보건복지담당 공무원은 “새해 첫날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무상보육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이 ‘그 돈을 어디서 끌어오지?’였습니다. 인천시는 시 예산의 28% 이상을 사회복지에 쓰고 있습니다. 예산 편성이 끝난데다, 이미 큰 부분을 복지에 쓰고 있어서 다른 곳에서 빼내올 예산이 없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다른 부분의 복지 쪽에서 끌어다 썼는데, 그래 봐야 몇 달을 버티겠습니까.”
‘부자동네’인 서울시 강남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6~7월이면 구청이 배정한 예산이 고갈된다”며 “아무리 예산을 줄여 이리저리 옮기더라도 계속 보육료를 지원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시도협의회 관계자는 “돈을 주고 싶어도 돈이 없기 때문에, 6월 초 시도협의회의를 통해 보육료를 지급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시장, 도지사 역시 선출직인지라 국민들이 거세게 항의할 경우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고 말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내놓은 ‘보육료 고갈시기’는 이렇다.
<6월 서울 서초구·강남구·강서구 등 10곳, 7월 서울 마포구·동작구·송파구·인천 동구 등 19곳, 8월 서울 종로구·용산구·부산 동래구·대구 중구 등 58곳, 9월 서울 서대문구·강동구·부산 해운대구·강원 춘천시 등 66곳…>
정부와 지자체의 추산에 따르면, 0~2세의 보육료 전면 지원을 위해서는 약 7000억원이 필요하다.
대다수 학부모는 이런 자세한 속사정을 알 리가 없다.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윤모(35·강북 종암동 거주)씨는 반가웠다.
“큰아이는 혜택을 받지 못해 아쉬웠지만 둘째 아이라도 혜택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집에 매달 30여만 원을 내고 있는데 그 돈을 절약하는 것 같아서 반가웠죠. 처음에 절차는 조금 귀찮았습니다. 정부에서 제 계좌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곧장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어서요. 어린이집 전용 결제 계좌, 카드를 만들고…, 보건복지부 사이트 보육료 결제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공짜라니까 그 정도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 걱정도 좀 됐어요. 어차피 세금으로 운용할 텐데, 그 세금을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 싶어서요. 저 같은 월급쟁이 봉투에서 더 떼가는 것이 아닌가 불안합니다. 일단 나라에서 돈을 대준다고 하니까 좋기는 한데….”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주부들은 드러내놓고 반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직접 돈을 지원해야지, 왜 어린이집에 돈을 주느냐”는 것이 골자다.
“세금으로 보육료 받다 보니 내야 할 서류가 한가득”(어린이집 원장)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꼬리표 달린’ 세금을 보육료로 받다 보니, 할 일이 몇 배는 늘었다는 것이 그들의 얘기다.
서울시 서초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A씨는 매주 토요일마다 빈 어린이집으로 출근을 한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워낙 많아서다.
“저희 입장에서는 학부모에게 보육료를 받든, 나라에서 주는 세금으로 받든 똑같습니다. 원아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이번 보조가 반가울 거예요. 아무래도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학부모들이 어디든 찾기 마련일 테고, 자기네 어린이집도 만원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인기가 없었던 어린이집은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과거에도 정원이 꽉 찬 상태로 운영됐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보육료 받는 것은 똑같은데 서류작업이 너무 늘었습니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기자에게 원아들의 ‘파일’을 가져왔다. 한 아이에 대한 파일이 무려 5개였다.
“나라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훨씬 늘었어요. 일지는 당연히 매일 쓰고요, 교사들의 회의 장면까지 사진을 첨부해야 해요. 제 주변에 한 분은 무상보육이 시행된 다음에 요구되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어린이집 원장을 접고 그냥 어린이집 선생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예요.”
“어린이집이 부정부패 온상처럼 비쳐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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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8월,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등 범보수단체연합은 단계적 무상급식 실현을 위한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
“예전에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겨서 부모나, 어린이집이나 서로 돕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을 서로 가졌어요. 그런데 요즘은 보낼 필요가 없는 학부모들도 일단 보내면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어졌어요. 여자들이 자식들 키워놓고 막상 일을 하려고 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예뻐서 자격증 따고, 구청에 허가받아서 어린이집을 시작했는데 참 힘드네요. 보육료가 ‘세금’이다 보니 작은 얘기들도 크게 번져나가고, 어린이집이 무슨 부정부패의 온상인 양 신문에 오르내리고 합니다. 어린이집 횡령이다, 애들 볼모로 떼돈 번다는 얘기를 할 때 괜히 이 직업을 택했다 싶습니다. 원아들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나서, 남는 무, 호박이 있다고 쳐요. 원칙대로 하면 이 재료들을 지정한 날짜까지 다 써야 하고, 남는 것은 버려야 해요. 남는 음식이라도 누구를 주거나, 가져가면 안 됩니다. 일부 나쁜 마음을 먹는 운영자가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월 평균 130만원, 원장은 200만원 안팎을 가져갑니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이들을 관리·감독하느라 힘이 들다고 볼멘소리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인원은 그대로인데 해야 할 업무가 늘어 공무원들도 애로사항이 많다. 100% 세금인 만큼 명확하게 관리, 감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무상복지는 ‘카드 돌려막기’
서초구의 한 구의원은 “무상보육의 허상”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지역은 초등학교에 원어민 강사를 대주다가 갑자기 중단했습니다. 무상급식 돈 때문에 더 이상 원어민 강사를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하대요. 학부모들은 무상급식을 하지 말고, 원어민 강사를 대 달라고 한다는데 구에서는 그런 여력이 없는 겁니다. 어떤 지자체는 초등학생 책걸상을 바꿔줘야 하는 비용으로 무상급식을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지자체가 돈이 남아도는데 주민들에게 복지를 해주지 않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줄 아십니까. 돈이 있으면 무상으로 다 해주고 싶지요. 문제는 돈이 없습니다. ‘카드 돌려막기’처럼 여기서 돌려막으면, 이쪽이 펑크 나고, 이쪽에서 막으면 다른 걸 못 해주는 겁니다. 정치권이 앞다퉜던 무상 시리즈가 몇 달도 되지 않아서 곳곳에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시행된 지 두 달 만에 ‘보육료 지원’ 문제가 불거지자,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공짜보육’이라는 말에 덜컥 집에서 먼 곳에 아이를 맡긴 최지윤(가명)씨는 “보육료가 중단되면 더 이상 아이를 맡기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이 한두 달 만에 오락가락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지난 6월 11일, 인천시를 비롯해, 대다수의 지자체는 추경예산에 0~2세 보육료 지원을 위한 시·도비 부담분을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는 어찌할 바 모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부 결정을 몇 달 만에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난감해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결정에 따라 예산을 집행할 뿐이다”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영유아 보육이 보건복지부 관할이기는 하나, 이번 일은 당과 국회에서 이뤄진 것이라 주어진 업무만 수행할 뿐이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구성된 지방재정개선 실무팀이 관련 대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결과는 내놓지 못한 상태다. 여야가 ‘하위 50% 지원에서 70%, 80%, 전면 지원’으로 경쟁하다시피 내놓은 무상보육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