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점검] 단골시위꾼들의 국책사업 반대, 그 후 - ② 사패산 터널공사 그 후 : 월간조선

19년 만에 ‘4월의 서울 눈’이 내린 지난 4월 3일,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를 관통하는 사패산 터널을 찾았다. 인근 도봉산 일대엔 폭설에 가까운 눈이 쏟아졌는데, 터널 입구에 도착했을 땐 맑게 개었다.

약 4km에 달하는 사패산 터널은 세계 최장 광폭(廣幅) 터널로 2005년 7월에 완공됐다. 2001년 6월에 공사가 시작됐지만, 환경단체와 불교계의 반발로 5개월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2002년 대선후보들은 터널공사의 전면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노무현(盧武鉉) 대통령 당선 후 노선 재검토 관련 위원회가 구성됐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노 대통령은 직접 불교계를 찾아가 설득했고, 중단 2년 만에 공사는 재개됐다.

피해보상금 轉用 논란

10년 전 극과 극으로 치달았던 시위와 농성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터널 출입구 옆 국도와 접한 상점과 식당들도 평온해 보였다. 대다수 주민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언급하길 꺼렸다. “터널공사 때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고, “터널이 하나 더 들어서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공사 당시 반대논리 중 하나였던 터널 출입구의 배기가스와 소음 문제도 기우(杞憂)인 듯했다. 《월간조선》 2012년 4월호가 보도했던 서울 대기현황 자료대로, ‘심각한 공해’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민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10년 넘게 상점을 운영했다는 한 주민은 “현재보다 터널공사 전 공해가 체감상 더 심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이다.

“터널이 없을 땐 의정부에서 송추 방면으로 가려면 39번 국도를 타야 했습니다. 정체가 상당히 심했죠. 현재 터널로 이어진 고속도로에 공해가 없다곤 할 수 없지만, 그때 매연과 소음이 상당했습니다. 지금 들리는 이 소음은 어디서 난다고 보십니까.”

마침 대화를 나누던 곳에선 39번 국도로 대형트럭이 지나칠 때마다 꽤 큰 소음과 진동이 전해졌다. 그는 “당시 농성을 제기하던 사찰에 꽤 큰 규모의 피해보상금이 전해진 것으로 안다”면서 “보상금 소식이 알려진 후 반대시위가 사실상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이 피해보상금도 2005년 전용(轉用) 논란이 제기됐다. “의정부시의 A사찰이 받은 피해보상금 10억원을 남양주시의 B사찰이 대부분 사용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공사가 재개되면서 시행사가 해당 사찰에 보상한 20억원 중 선지급한 10억원이 문제가 됐다.

명세서를 살펴보면, 10억원은 ▲A사찰 2억원 ▲B사찰(장학회비) 2억원 ▲B사찰 사중(寺中) 1억원 ▲B사찰 주지 5000만원 ▲○○스님 기념관 기금 1억원 ▲총무원 재무부 1억원 ▲B사찰 총무국장 3000만원 ▲B사찰 재무국장 7000만원, 지출된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B사찰 측은 “합의서에 보상금의 용도에 대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불교계 내부 논란이 제기되자 “지출금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피해보상금과 공사지연으로 인한 추정손실액(약 5000억원)은 통행료로 전가됐다.

산개나리 자생지 복원 中

국립공원 자생지에서 자라고 있는 산개나리. 북한산도봉사무소는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희귀·멸종위기식물인 산개나리의 복원을 추진 중이다.(사진=북한산도봉사무소 제공)

환경단체의 또 다른 반대논리는 북한산 희귀식물 자생지 보존이었다. 산개나리, 끈끈이주걱, 꽃개회나무 등 식물이 사패산 터널 구간에 있어 공사 중 자생지가 훼손될 위험이 크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산개나리 서식지가 터널공사 중 사라졌다. 공사 반대 측 인사와 일부 학자들은 “시공사 측이 ‘터널 주변에 희귀식물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며 고의훼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 문의해 당시 자생지를 직접 찾아가봤다. 원각사 방향에서 사패산 정상으로 향하는 도중에 있는 원각폭포 인근이었다. 지도상 터널노선과 크게 멀지 않았다. 나무가 많았지만, 산개나리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북한산국립공원도봉사무소 관계자는 “2011년까지 공단 직원이 정기적으로 조사했지만, 산개나리는 찾지 못했다”며 “터널공사와 산개나리 실종의 연관성은 현재 누구도 명백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산개나리는 원산지가 한국인 특산식물이며 북한산국립공원의 깃대종(지역의 대표 생물종)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학자 이시도야 쓰도무(石戶谷勉)가 북한산 인근에서 발견해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관련 논문을 썼다. 논란이 된 사패산 자생지는 1993년 식물학자 오병훈(吳秉勳)씨가 발견했다. 현재 태백과 임실 등에서도 개체군이 관리되고 있지만, 최초 발견지인 북한산(사패산) 자생지가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 고의로 훼손했든, 환경파괴로 인한 멸종이든, 터널공사 중 산개나리 자생지가 사라진 것은 분명했다. 연관성을 입증하려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관련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 논란은 2008년 북한산국립공원 직원이 도봉산 일대에서 새로운 자생지를 발견하면서 일단락됐다. 현재 공단 측은 피난처를 조성하고 DNA 분석을 통한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결과 발견 당시 4곳이었던 자생지는 현재 8곳으로 늘었다.

사진 촬영과 취재를 위해 현장 방문을 요청했지만, 공단 측은 “고의훼손 의혹이 있는데다, 관상용으로 채집하는 경우가 있어 정확한 위치는 공개할 수 없다”며 “현재 복원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1조5200억원 손해”

산개나리는 다시 피었고, 다른 동·식물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도 보고된 바 없다. 배기가스나 지하수 유출로 인한 생태계 파괴도 현재까진 조사되지 않았다. 터널 인근 주민들은 당시 ‘전쟁 아닌 전쟁’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았다.

사패산 터널 반대 시위는 ‘친환경 터널공사’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인근 사찰의 수행 환경 저해와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재개했고, 환경단체는 주변 지하수 수위를 모니터링하며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창규(崔昌奎) 명지대 교수는 2007년 《문화일보》 칼럼을 통해 “공기 지연으로 추가된 비용과 물류비 절감 효과를 합하면 공사가 중단된 2년간 약 1조5200억원의 손해를 본 셈”이라고 추산했다. 환경단체와 불교계의 반대논리가 터널공사 과정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위해 국민이 1조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