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 ‘無黨派’ 30대는 왜 MB정부를 싫어하나 : 월간조선

올해 서른둘인 A씨는 최근 말로만 듣던 전세대란을 실감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는 지난 2009년 4월 결혼하면서 이화여대 앞에 24평짜리 아파트를 1억3000만원 전세로 얻었다. 전세기간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은 보증금을 6000만원 올려달라고 했다. 그 사이에 식구가 늘어 15개월 된 아들과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다.

A씨는 “사회 초년병 월급쟁이가 당장 몇천만 원을 어디서 구하느냐. 식구는 늘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그는 직장과의 거리를 포기하고 경기도 분당에 20평형짜리 아파트를 1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전세대란’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본가가 대구인 그는 여지껏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사정이 다르다. 전셋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그는 “내년에 또 한나라당을 찍을는지는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올해 서른여섯의 B씨(36세)는 성공한 미시족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명문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그는 지난 2009년 9월 L그룹에 억대 연봉으로 스카우트됐다. 남편과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생 아들, 입주 도우미와 함께 산다. 올 초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워킹맘(Working Mom·일하는 여성) 왕따’를 경험했다. 직장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학부모 모임에 대한 연락조차 받지 못한 것. 하지만 B씨는 그 정도의 일로 직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그에게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아이가 숙제를 성의없이 해온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학교 과제를 보면 초등학교 1학년생 숙제인지 엄마 숙제인지 분간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워킹맘으로서 열심히 도와줬는데 이런 통신문을 받고 나니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에게 한 번뿐인 시기에 돈 벌러 다니면 뭐하랴 싶은 생각이 들어 오는 9월에 회사를 퇴사키로 했다. 그는 “어차피 똑같이 전업주부가 될 거라면 그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교육이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허무주의 + 삶의 방향성 상실

정치권이 대한민국 30대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에 치러진 6ㆍ2 지방선거와 지난 4ㆍ29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며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손학규(孫鶴圭) 민주당 대표는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에서 배지를 달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나라당 최대 위기’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한나라당에 대한 30대의 배신감은 20대, 40대보다 훨씬 심했다.

홍준표(洪準杓) 한나라당 신임 대표는 당 대표 선거에 나서면서 이랬다.

“20~30대 젊은 사람들 중에서 한나라당을 좋아하면서도 지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과거회귀 정당, 부패정당, 부자정당 이미지에 도취돼 있으니까 창피해서 당당하게 지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패를 척결해 젊은 세대들이 당당하게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

《월간조선》(月刊朝鮮) 6월호에 따르면 30대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싫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30대는 어떤 정당이 탄생하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들의 성향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박길성(朴吉聲)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의 세대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과거에는 어떤 질문에 대해 ‘대충 그렇다’는 답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건 좋다, 싫다’고 명확하게 답을 합니다. 애매모호함보다는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과거와 다릅니다. 모든 세대는 그들만이 가진 박탈감이 있습니다. 30대를 어떻게 자극해서 표심(票心)을 끌어낼까를 고민하기보다 그 세대의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사람을 알아야 선거 전략을 짤 수 있지 않습니까. 30대의 자화상을 한번 보십시오. ‘해본들 되겠어?’라는 허무주의가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삶의 방향성은 상실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역동적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세대가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싫은 이유가 ‘그냥’이라고 감성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 감정의 응어리가 뭔지를 알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정당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30대. 1971~1981년 사이에 출생했고, 1990~200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다. 사회생활을 한 지 최소 3~15년. 회사에서 대리나 과장의 위치에 있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두고 있거나, 결혼 적령기, 또는 혼기를 놓쳤다는 얘기를 듣는다.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이고, 고(故) 노무현(盧武鉉)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진 이들이다.

이명박, ‘경제 대통령’이라고 해서 찍어줬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30대를 여럿 만나 지지정당, 대북(對北)관, 재벌에 대한 생각, 반값 등록금, 육아 문제 등 다양한 화두로 대화했다. 의견이 많이 엇갈렸는데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돈’과 ‘가족’이었다.

인터뷰에 나선 이들은 “인생에서 돈은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은 30대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30대 763명을 대상으로 라이프스타일 설문조사를 벌였다.

<30대는 현실 문제와 미래 준비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세대다.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고, 행복을 위해 물질적 생활수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계층 간 갈등에 대해 다른 세대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30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미래에 대해 더 비관적이다.>

제일기획의 조사에 따르면 30대의 81%가 ‘돈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답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는 20대와 30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신문의 어느 면을 가장 많이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30대의 34.1%가 경제면이라고 답했다. 연예 스포츠(25.5%), 사회(20.7%), 정치(12%) 순(順)이었다.

20대의 답은 전혀 달랐다. 연예 스포츠면을 많이 본다는 답이 37.5%로 압도적인 1위였고, 사회 18.8%, 경제 17.1% 순이었다.

‘취업과 이직을 할 때 어떤 조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30대의 52.8%는 ‘업무강도가 세더라도 급여 수준이 높은 곳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20대의 답은 51.1%였다.

30대의 ‘돈에 대한 집착’은 최근에 치러진 선거의 결과로 엿볼 수 있다.

지난 2008년 대선(大選)에서 이명박(李明博) 후보에게 표를 던진 30대는 전체의 40.4%였다. 20대(42.5%)나 40대(50.6%)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요즘과 같은 ‘반(反) 한나라당’은 아니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슬로건은 ‘경제 대통령’이었다.

지난번 분당 을 보궐선거에서 손학규 후보를 지지한 30대는 72%였다. 20대는 58.2%, 40대는 68.6%였다. 2년 반 만에 이들의 심리 상태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는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실행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0대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라고 했다. 응답자의 80%는 ‘한나라당이 싫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제 살린다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찍었더니 오히려 팍팍해졌다’, ‘내 남편 월급 빼고 모든 것이 다 올랐다’는 것이 골자였다.

대한민국의 30대는 왜 이렇게 돈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것일까.

특이한 점은 이들이 IMF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번 직장은 평생직장이라던 아버지,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짤려

1997년 11월,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 정부종합청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IMF 시대는 30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오모씨(35)는 서울대를 휴학하고 군(軍)에 입대했을 때 IMF를 겪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했는데 부모님이 면회를 오실 때마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중소기업에 다니셨는데 퇴직을 당하셨다고 하더군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월급으로 단란하게 지냈던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저는 군인이어서 어떤 도움도 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은 서울 외곽의 25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더군요. 고등학생이었던 여동생이 힘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많이 위로했지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군대에 늦게 입대할 걸, 차라리 빨리 다녀올 걸 하는 생각 등으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군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라 가족 걱정에 힘들었던 군 생활이었습니다.”

윤모씨(36)는 현재 준 공기업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이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2년 이상 준비했다”고 했다.

“IMF 때 W건설 회사에 다녔던 아버지가 명퇴를 당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아버지는 가정보다도 회사가 우선인 분이었습니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주말에도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달려나가셨습니다. 한번 직장은 평생직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분이었어요.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집에 있는데, 아버지의 그 모습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저런 꼴을 당하려고 그렇게 충성한 것이냐는 생각도 들고요. 아버지도 그때 충격이 컸지요. 저한테 ‘공무원이 최고다’, ‘월급이 적고 많고를 떠나 안 잘릴 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그때부터 어떻게 해서든 공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대기업 구직 공고는 아예 보지도 않았습니다. 대기업이래 봐야 언제 잘릴지 모르는 거잖아요.”

전상진(田尙鎭)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30대가 돈에 집착하는 데는 IMF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IMF는 모든 세대를 휩쓴 쓰나미였지만 언제, 어떻게 겪었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릅니다. 30대는 대다수 대학시절에 IMF를 겪었습니다. 50대 초·중반인 그들의 부모 세대가 직격탄을 맞는 것을 그대로 보았지요. 그들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부모를 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습니다.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돈의 무서움, 위력에 대해 절감한 것이죠.”

―40대와 많이 다릅니까.

“386세대는 ‘낙관적 현실주의’ 세대입니다. 민주화 열풍의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경제는 호황국면이었고 민주화도 이뤄냈습니다. 이들이 사회에 나와 자리를 잡는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386세대가 경험한 사회생활은 1970~80년대에 사회에 진출한 세대에 비해 경쟁이 심하고 사회가 치열해졌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적이기는 합니다. 이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민주화를 이뤄냈듯이 ‘어떻게든 잘되겠지’ 싶은 낙관적 현실주의죠. 하지만 30대는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앞으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미래가 두렵기까지 한 것입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30대를 ‘생존의 불안감을 느낀 세대’로 바라봤다.

“일반적으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족합니다. 자녀는 부모 세대보다 혜택받고 유복하게 자라기 때문에 경제적 욕구보다는 좀 더 상위의 욕구, 즉 문화 같은 것을 강조합니다. 부모 세대가 물질적이라면 자녀 세대는 탈물질적이 됩니다. 하지만 30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다수의 부모가 IMF 때 직장에서 쫓겨나면서 그들 스스로가 풍요롭지 못하다 보니 자식에게 풍요를 줄 수 없었습니다. 자식은 본인의 생존, 안전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386세대는 어찌됐든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에게 일자리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들은 다릅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도 IMF의 늪에 허덕여 생존의 기반인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세대입니다.”

사회 첫발 내디딜 때의 IMF, 다른 세대보다 충격적

명품아웃렛매장.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30대는 이전 세대들이 겪지 못한 IMF를 경험하고 사회에 나왔기 때문에 생존능력이 강하다. 국내가 아니면 해외에 직장을 알아볼 정도로 다급한 세대이다. 이들의 생존력은 외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날의 40대 이상 세대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IMF라는 초유의 사태는 비단 30대뿐 아니라, 전(全) 세대에게 아픈 기억이다. 그들이 20대 때 이 일을 경험한 것이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10대는 전반적인 개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맞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충격이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40~50대는 역경을 딛고 온 세대여서 상대적으로 충격이 낮았을 수 있죠. 문제는 20~30대인데 이들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시기에, 한창 기운찬 시기에 취업난과 맞물려 IMF 여파를 맞았기 때문에 충격이 다른 세대보다 컸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IMF 직전까지는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다가, 난데없이 이런 일을 겪게 됐습니다. 뒤따른 구직난은 이들의 마음고생을 가중시켰을 것입니다.”(곽금주ㆍ郭錦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그럼 오늘날의 30대는 의식이 발달하는 20대 때 어떤 일들을 경험했을까.

1992년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에 등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북두신권>, <드래곤볼> 등의 일본 만화, 홍콩영화 <동방불패> 등이 사랑을 받았다.

수학능력이라는 새로운 대입 평가제도가 1994년 시행되었고, 같은 해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 붕괴 등을 경험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등의 사고가 일어났으며, 드라마 <모래시계>에 빠져 있었다. 삐삐의 등장, IMF 경제 위기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당선을 봤고, 건설회사 도산, 금모으기 운동 등에 참여했다. 박찬호, 박세리 등 스포츠 스타의 탄생(1998년)을 봤고, 1999년에는 초등학교 동창 찾기 열풍이 불었다.

오늘날의 30대가 20대 때 겪은 일들. 왼쪽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드라마 <모래시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돈이 있어 물건 사는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것이 많아 돈 버는 세대

30대가 ‘돈 중심적 사고’를 가진 이유는 IMF 이외에도 찾을 수 있다.

광고회사인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허웅 팀장의 얘기다.

“30대가 걸어온 길은 치열한 경쟁과 취업 전쟁이었는데 이들의 소비 행태도 윗세대와 다릅니다. ‘가치소비’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허락되는 한 돈을 소비하는 행태입니다. 물론 이들이 어떻게 가치를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요. 30대는 실용적이라 명품을 갖고 싶지만 싸게 사려고 합니다. 아웃렛 매장이 인기를 끈 데 이들 세대가 한 몫을 했죠. 30대는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를 늘리는 세대입니다. 과거 아버지 세대처럼 일에, 또는 사회 혁명에 ‘올인’하는 세대가 아닙니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사고를 갖다 보니 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광고회사인 HS애드는 30대를 ‘돈에 민감한 그룹’으로 지정했다.

정혜주 HS애드 연구원의 얘기다.

“30대가 바라보는 돈은 40대 이상과 많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절약, 검소한 삶이 미덕이고 많은 이가 추구하고자 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30대는 돈이 있어서 어떤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들입니다. 주류나 금융상품, 자동차, 육아용품 등은 30대에 초점을 맞춘 것들입니다.”

대한민국의 30대는 실용적인 소비를 하는 계층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또는 허례허식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X세대’적인 측면이 녹아 있는 대목이다.

제일기획 관계자의 말이다.

“10대나 20대에 비해 실용적인 사람들입니다. 가격 대비 A/S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할인쿠폰이나 마일리지를 적극 활용합니다. ‘물건을 살 때 광고를 많이 한 상표를 선택한다’는 답변은 응답자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외모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무난하고 실용적인 옷,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등 실리적인 측면이 강한 세대입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초 고객을 분석했다.

‘저가와 명품, 동시에 선호하는 소비자’를 조사한 결과에서 30대가 압도적이었다. 30대 38%, 40대 23.2%, 50대 19.6%가 극과 극의 상품을 선호한다고 조사됐다. 이들 세대가 실용적이면서도, 자신이 돈을 써도 좋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생기면 아낌없이 소비를 하는 행태를 보여주는 조사였다.

“30대에 삶이 안정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안”

천주교 고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이 1998년 1월, 서울 명동 YWCA회관에서 열린 ‘외채상환 금모으기 범국민운동 발대식’에 참석해 금붙이를 접수시키고 있다.

올해 서른셋인 강모씨는 “요즘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뿐이다. 지난 2008년 12월에 노원구 상계동에 25평짜리 아파트를 2억3000만원에 샀고, 은행 이자로 매달 60여만 원을 내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 만난 두 살 연상의 동료와 결혼해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고 있다. 그의 얘기다.

“제 인생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 전셋집에 살다가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많이 오르는 것을 보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CEO 출신이니까 경기가 좋아지고 부동산도 올라갈 줄 알았어요. 갈수록 경기가 나빠지면서 사업은 안 되고, 집값은 한동안 떨어졌다가 요즘 그나마 회복이 되는 추세예요. 10만원 들고 마트에 가봐야 별로 산 것도 없는데 금세 예산을 초과하고…. 20대 때는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면 삶이 안정될 것으로 믿었는데 오히려 더 불안해요. 혼자 벌어서 셋, 넷이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차라리 결혼을 안 했더라면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되는데. 이 생활이 마흔 살이 된들 나아지겠어요?”

그는 얼마 전 ‘둘째를 갖자’는 말에 남편과 대판 싸웠다고 덧붙였다. “애 많이 낳는 것도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남편이 철없어 보이기까지 했다”고 했다.

전업주부 최모씨(36세)는 결혼 8년 만인 지난 2009년에 딸을 출산했다. 중소기업체 팀장이었던 그는 출산 이후 회사에 복귀하려다가 포기했다. “도우미 아줌마를 구하다 지쳤다”고 했다.

“동창인 남편과 결혼해 맞벌이를 해서 비교적 풍족하게 지냈습니다. 아이를 낳고 도우미를 구하는데 한국인 입주 도우미는 한 달에 160만~180만원, 조선족은 130만~160만원은 줘야 한다더군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제 월급이 200만원이 되지 않는데 도우미 아줌마 월급 주고 아이 기저귀, 분유값, 제 차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대기업은 아이 맡길 수 있는 센터가 있다는데 우리 회사는 그런 처지도 아니었고요. 아이 맡길 국가 기관도 없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자기 아이처럼 잘 돌봐준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최씨는 남편과 상의 끝에 직장을 그만뒀다. 요즘은 툭하면 남편과 싸우기 일쑤다. 그는 “맞벌이를 할 때는 몰랐는데 남편이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혼자 아이 보는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돌이 지난 만큼 다시 회사를 알아보려 한다”고 했다. 그는 1년3개월 전에 구립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했는데 대기 번호가 200번이 넘는다며 답답해했다.

내 집 마련 간절히 원하지만, 전체 59%가 전·월세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30대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정서는 ‘가족’이다.

제일기획은 세대 분석을 통해 ‘30대는 여가 시간은 가족과 함께하는 편안한 휴식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의 얘기다.

“30대는 무척 가족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에서 고도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부모를 둔 세대가 30대입니다. 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가족보다는 직장,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IMF를 겪으면서 초라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가족을 삶의 중심에 두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식(式)의 사고방식을 갖게 됐습니다. 이들은 가족이 편하게 쉴 곳, 먹을거리 등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다른 세대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일기획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30대의 가족관은 확고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는 항목에 83%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식품의 원산지, 영양 성분을 확인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내 집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74%가 동의했습니다. 집이 어떤 의미이냐에 대해, 61%가 ‘투자보다는 거주의 목적이 더 크다’고 답했습니다. 가족의 가치가 높은 세대죠.”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현실은 괴리감을 보인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30대 중 자가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전체 37%뿐이다. 전세 34%, 월세 25%다. ‘전세대란’이니 ‘주택담보대출 이자 급등’ 등은 30대에게는 직격탄이다.

이명박 정부가 여태까지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은행 이자 상승, 전ㆍ월세 값과 물가 급등, 자녀 교육비 증가 등은 30대가 이 사회에 기대하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다.

초혼 연령 높아지며 출산의 주축 된 30대

정부가 우려하는 저출산 역시 30대와 상관이 있다.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30대의 여성이 첫 아이를 낳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2011년 4월)에 따르면 평균 초혼연령은 여자 28.9세, 남자 31.8세다. 출산율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30대다.

여성 인구 100명당 출산율은 20~24세 16.2명, 25~29세 79.8명, 30~34세 112.7명, 35~39세 32.6명이다. 20대를 합쳐 96명이고 30대가 145.3명이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장은 저출산을 이렇게 바라봤다.

“여성의 고학력화, 직장 생활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직장 여성이 일을 하다 출산을 하기 힘들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출산 후에 사실상 퇴출당하는 직장 내 문화가 있고, 출산휴가 제도가 미비합니다. 출산에 대한 사회문화적 배려가 부족하죠. 무엇보다 교육과 보육 등 양육비가 높습니다. 아이 한 명을 대학졸업시키는 비용이 2009년에 평균 2억6200만원입니다. 둘째, 셋째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죠.”

아이를 강남구 청담동의 한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서른넷의 주부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아이의 건강, 부모의 정보력, 조부모의 경제력, 조선족 아줌마의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오는데 정부에서 아이를 둘, 셋 낳으라는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날 정도다.”

오늘날의 30대에게는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는 어른들의 얘기는 구닥다리일 뿐이다.

‘나의 능력보다 부모의 재력이 중요하다’ 느껴

이런 이유 때문인지, 30대는 우리나라의 빈부 갈등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부갈등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해 30대의 49.9%가 ‘매우 심각’, 39.7%가 ‘다소 심각’이라고 답했다.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한 20대는 전체의 46.8%에 불과했다.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의 조사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30대의 사회관에 관한 대목에서 전체의 71%가 ‘우리 사회는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경제적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는 능력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곳이다’와 ‘우리 사회의 세대 간의 갈등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66%였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의 분석이다.

“20대에 녹록지 않은 사회 환경과 극심한 취업난을 겪은 30대는 인생에 대한 방향성을 상실했습니다. ‘몇 살에 결혼하고, 몇 살에 집 살래’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영원한 직장’이라는 개념은 IMF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386세대는 힘들긴 했어도 본인의 노력으로 작은 집 한 칸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30대에게 그런 희망은 없습니다. 이들이 노무현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왠지 자신의 꿈을 실현해 줄 것만 같은 차별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제대로 피지 못하고 산화한 어떤 이’로 다가옵니다. 전세대란, 물가 상승을 체험하면서 본인의 능력으로는 잘살지 못한다는 사고방식이 공고해졌습니다. 능력 있는 자신보다는 돈 많은 부모를 둔, 능력 없는 친구가 잘사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해합니다. 내 능력보다 부모 재력이 중요한 거죠.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는 빈부 갈등이 심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애당초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잘살기 힘들다는 사고가 생기는 겁니다.”

지역 갈등, 이념 갈등이 통하지 않는 세대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늘날의 대한민국 30대는 사실상 ‘無黨派(무당파)’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다 싫다는 성향이다.

윤성이(尹聖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봤다.

“정당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합니다. 50대 이상은 지역갈등이 지지정당을 결정하는 데 크게 작용했고, 40대 이상 386세대는 이념 갈등이 작용했죠. 30대는 지역색이 얕고, 이념갈등에 의해 정당 선호나 정당 일체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정당의 정책이나 수행 능력을 봅니다.”

―한나라당을 극렬히 싫어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까.

“30대는 주택문제, 교육문제를 많이 생각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여태껏 이것들을 만들어온 정당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오늘날은 경제 상황이 나쁘고, 청년 실업이 늘었으며, 삶이 팍팍해진 날들이니까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참신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이들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습니까.

“지역갈등, 이념갈등에 의해 정당을 선택하는 것을 1차적 지지라고 하고 정책을 2차적 요인으로 치자면, 30대는 1차적 요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입니다. 2차적 요인에 절대적으로 반응합니다. 현실에 맞는 정책을 제시해야 하고, 그보다도 그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그들에게 주는 정당이 지지를 받을 겁니다.”

김용직(金容稙) 성신여대 정치학과 교수의 얘기다.

“30대는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기존의 정당들이 그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당파로 남는 것이고 늘 유보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시민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을 확실하게 교육받은 세대이기 때문에 지지정당이 없어도 반드시 투표는 하는 편입니다. 30대 내부에서 동기나 동료들 사이에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됩니다. 현재 존재하는 정당은 30대에게 ‘그들의 정당’일 뿐, ‘우리의 정당’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동물, 환경, 인권에 관심 높아

30대는 지지정당이 없지만, 높은 투표율을 보인다.

30대가 무당파이지만, 긍정적인 투표권자라는 얘기를 하는 이도 있다. 정치컨설팅회사인 ‘민 컨설팅’ 김행 대표의 얘기다.

“30대는 한국에 지지할 만한 정당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에 대해 회의적인 거죠. 이들을 보수나 진보의 잣대로 재단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의 30대는 교육수준이 높고, 독재를 경험했던 윗세대보다 유순한 정치감각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정치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합니다. 가령 SNS나 트위터를 보면 ‘4대강’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지 않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SNS상에서 직설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세대입니다. 동물, 환경,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지요. 저는 30대가 건국 이후 가장 정치적으로 성숙된 집단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이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당이 문제라고 봅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30대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의 얘기다.

“30대에게는 희한하게도 사회적 책무 같은 감정이 존재합니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가족과 함께 피란을 떠난다’가 전체의 45.7%, ‘후방 지원 근무를 하겠다’가 37.4%였습니다. 20대는 전체의 61.3%가 ‘피란을 간다’고 했습니다. ‘징집에 응해 전투에 참가하겠다’는 답변도 30대 전체의 16.9%였습니다. 이는 이들이 사회에 비판적이면서도 본인이 일정 부분에서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조사 항목에서도 30대는 20대와 많이 달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 사업에 일부 주민들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30대의 51.6%가 ‘국가 차원에서 필요하고 다수가 찬성하면 강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20대는 42.2%만이 이에 동의했다.

비교적 궁핍하지 않게 살다가 20대에 IMF의 늪에서 허덕였고, 취업난과 치열한 경쟁을 거친 이들이 30대다. 그들은 여전히 위로는 상사, 아래로는 후배들에게 치이고, 대다수가 내 집 마련의 꿈을 꾼다. 세대 간에, 빈부 간에 격차가 크다고 느끼고, 기존의 정당은 지지하지 않지만, 정치 참여도는 높다. 이들을 계속 무당파로 남겨둘 것인가는 정치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