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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의 판도라 상자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6〉

민영환, 영어 스트레스로 황제대관식 연회장서 후식도 안 먹고 퇴장

글 : 윤경남  譯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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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慶男
⊙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캐나다 토론토 거주.
⊙ 저서: 《부부의 십계명》 《노년학을 배웁시다》 《성지의 향기》
    《The Fragrance of the Holy Land》.
⊙ 역서: 폴 트루니에의 《고독》 《꿈꾸는 어른》, 헨리 코레이의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 역술서: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윤치호 일기 제4권에 나타난 역사의 흐름》.
⊙ 現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한국번역가협회 회원,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회 이사.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참석차 모스크바를 방문한 조선사절단 일행과 러시아 관리. 앞줄 왼쪽부터 김득련, 윤치호, 민영환, 러시아 무관 파스코프, 러시아 외무관리 플랑콘. 뒷줄 왼쪽부터 김도일, 슈타인, 손희영.
  1부 민영환과 윤치호,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가다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민비를 살해한 친일세력들에게 강제 연금되었다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다.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말미암아 조선의 주권은 러시아의 수중에 들어간다. 득세한 친러파들은 모든 이권에 개입하여 러시아에 그 이권을 넘겨주려 설쳐댔다. 그중 러시아공사관 통역관 김홍륙(金鴻陸)의 횡포가 극심했다.
 
  국가재정은 고갈되고 임금의 신변도 위태해지자 조선의 절박한 사정을 러시아에 알려야 할 형편에 이르렀다. 마침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2세 대관식에 사절단을 보낼 기회가 생기자, 임금은 가장 신임하는 사촌동생 민영환(閔泳煥)을 단장으로 선임한다. 그러나 민영환은 대관식 사절단장 임무 외에 러시아와의 이권에 개입된 협상 사절단이 따로 구성된 것을 알고 그들과의 갈등을 예측해 단장 직을 고사한다(3월 30일자 일기 참조).
 
  윤치호는 민영환에게 임금의 절대적 신임과 전권을 받고 있고, 자기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으니 단장 직을 맡으라고 종용한다(3월 30일자 일기). 어렵게 출발한 사절단이 캐나다에 도착하자, 본국에서 윤치호를 중요한 협상 때 제외시키라는 훈령을 내린다. 민영환은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만다. 윤치호는 임금이 직접 부탁한 일이라 끝까지 보좌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본국에서는 계속 어려운 지침을 내린다(5월 2일, 5월 22일자).
 
조선 최초의 러시아 공관인 모스크바시 파바로스카야로 42번지 건물과 당시의 태극기.
  아관파천을 주도한 왕족 이범진(李範晉)이 실권을 장악했으나, 정적들을 가혹하게 처벌하여 반감을 샀고, 김홍륙과 마찰을 빚어 해직당한다(3월 3일자). 조선의 양반은 손수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민영환은 해외여행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든 허드렛일을 시종(侍從) 손희영(孫喜永)에게 의존한다. 민영환은 자유분방한 윤치호를 부러워하면서도 시기한다(4월 11일자).
 
  사사건건 윤치호를 배제하려는 훈령을 내리는 까닭은 이랬다. 첫째, 외부대신 이완용(李完用)이 자신이 착복한 4000달러를 어물쩍 덮고 넘어가려는 것을 윤치호가 반대한 일, 둘째, 러시아공사관의 통역관 김홍륙이 외부협판으로 발령 날 뻔한 순간에 윤치호가 반대하여 무산된 일, 셋째, 임금께 러시아공사관에 오래 머물지 말고 속히 환궁하시라고 간청하자, 러시아 공사와 친러파들이 윤치호를 경계한 일 등이다(3월 2일자 일기). 넷째로 제2진으로 출발한 러시아통상사절단(성기운, 주석면, 민경식)이 러시아에 이권을 넘겨주려는 협상에 윤치호가 반대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3월 30일자).
 
  사절단은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황금마차를 타고 러시아 첫 조선임시공관으로 향한다. 다음 날 아침, 조선사절단은 임시공관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고달프고 코미디 영화 같은 러시아에서의 나날을 꾸려 간다(5월 21일자).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는 민영환은 임무가 막중하나 외국어를 못하는 자괴감과 심적 부담이 크다.
 
  황제 외에는 모두 모자를 벗고 대관식장에 들어가는 것이 서양의 에티켓이라고 알려주지만, 사모(紗帽)를 벗는다는 것은 조선 양반의 체면을 깎아내리려는 것이라며 민영환은 대로한다. 동서양 문화의 갈등을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다. 사사건건 심적 고뇌와 마찰이 생기는 데다, 본국에서는 윤치호를 시기해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도록 민영환을 압박한다(5월 24일, 5월 25일자).
 
  그 와중에 리훙장(李鴻章)은 민영환에게 마치 종주국 대신이 속국 사람 취급하듯 무례하게 대한다(5월 24일자).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이 열린 도미시언 성당의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바닥에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황제는 왕비에게 그날 밤 대형 무도회를 취소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왕비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무도회를 추진한다. 결국 황제가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대관식 선물을 받으려고 일찌감치 몰려든 군중들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압사사고까지 발생한다.
 
  이 불상사가 1917년 일어날 러시아혁명의 전조인 듯했다(5월 22일, 5월 26일자). 황제 알현과 대관식 장면에 이어 약소국의 콤플렉스와 강대국의 두 얼굴을 윤치호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96년분 윤치호 영문일기 중 핵심적인 부분만 발췌해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주요 등장인물
 
  ● 베베르: 1885년 초대 러시아 공사로 부임. 고종 임금이 가장 의지했던 외교관.
  ● 스페이어: 베베르 후임으로 부임한 러시아 공사.
  ● 브라운: 영국인 탁지부 재정고문.
  ● 필립 제이손: 서재필 박사. 중추원 고문. 월급 300달러에 10년 계약.
  ● 이범진: 법무대신. 주미공사와 러시아공사 역임. 이위종의 부친으로 아관파천을 주도.
  ● 김홍륙: 함경도 천민 출신. 러시아공사관 통역관. 간계로 외부협판에 진출하려다 윤치호의 반대로 좌절.
      임금과 세자를 독살하려다 발각돼 참수당함.
  ● 박정양: 임시내각 총리대신.
  ● 민영환: 대관식 특사. 임금의 외사촌동생인 민겸호의 아들. 을사조약을 비관해 자결.
  ● 민영익: 별명이 황태자로 민비의 친정조카. 민씨 가문의 중심인물.
  ● 이완용: 학부대신에서 외부대신으로 전임.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을 주도한 인물.
  ● 이하영: 자수성가한 문신. 알렌 박사를 만나 그의 개인보좌관이 됨.
  ● 이채연: 주미공사관 서기관 역임, 한성판윤, 한성전기 사장.
  ● 슈타인: 러시아공사관 영사. 사절단 보좌관으로 수행함.
  ● 서광범: 주미공사. 갑신정변에 가담한 개혁정치가. 1897년 미국에서 병사. 서재필과 친척.
  ● 브로크만: 윤치호 친구. YMCA 간사.
  ● 파스콤: 조선사절단을 영접하는 러시아 장군.
  ● 플랑콘: 러시아 외무성 의전관.
  ● 리훙장: 청국대표.
  ● 로바노프: 러시아 황족. 외부대신.
  ● 사절단원: 특사 민영환(35세)/ 수원 윤치호(31세)/ 참서관 김득련(46세)/ 통역관 김도일(20세 전후)/
      개인비서 손희영(10대 소년).
  ● 제2사절단: 단장 성기운(49세)/ 수원 주석면/ 수원 민경식.
 
  3월 7일. 토요일.
  춥고 하루 종일 구름 낀 날이다. 서울.
 
  어젯밤 집에 와서 잤다. 학부협판 사무실에 평상시대로 출근했다. 오후 1시30분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다. 베베르 공사가 내게 비밀리에 말하기를, 상감께서 러시아의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에 사절을 보낼 생각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사절단을 보내는데, 민영환을 대표로 하고, 나도 1급보좌관으로 함께 보낼 것이라고 한다. 이하영이나 이채연이 일본 주재 공사가 될 것이다. 김홍집과 그 일당들이 서재필 제이손 박사에게 한 달에 300달러씩 지불하기로 하고 10년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3월 11일. 수요일.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씨. 서울.
 
  일상대로 학부 사무실에 출근하고, 불어공부를 계속하다. 어젯밤에 민영환 공이 러시아 특사로 발령이 났다. 만일 이범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감께서는 아직도 산신령과 강물 귀신에게 고사 지내는 위험한 놀음에 빠져 계신단 얘기가 된다.
 
 
  3월 16일. 월요일.
 
서울.

 
  오전 10시에 학부 사무실에 출근,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지내다. 전하께서 내가 러시아 사절로 갈 때 입을 비단 예복 값과 준비금 50달러를 하사하셨다. 나는 경호원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총탄 같은 위험이 나를 잔뜩 둘러싸고 있다. 그 위험을 피할 길이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을 써서 맞대결하며 내 임무를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3월 21일. 토요일.
  서울.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이 열렸던 모스크바 도미시언 성당.
  어젯밤에는 집에서 자다. 짐을 싸려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사무실에 일상대로 출근하다. 오늘은 세자의 생신이다. 이범진이 내게 말하기를, 전하께서 오늘 아침에 지난 날의 장면들을 떠올리시고 그 일이 연상되어 눈물지으셨다고 한다. 노 대신들도 모두 따라서 울었다고 한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이라며, 이범진이 절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슬퍼하셔야 할 세자 전하께서는 무리들 중에서 제일 희희낙락하시더군.”
 
 
  3월 23일. 월요일.
 
차가운 날씨. 서울.

 
  오늘 아침에 베베르 공사가 말하기를, 러시아 정부가 슈타인(Stein)을 조선사절단에 합류하여 돕도록 하라는 훈령을 받았다고 한다.
 
 
  3월 30일. 월요일.
  맑은 날씨.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아침에 민영환 공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러시아 황제 대관식 전권특사 직을 사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민영환 공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권특사로 간다고 해도, 다른 당파가 나를 감시하는 비밀임무를 수행하면서 전하의 전적인 신임을 얻으려고 할 거요.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뒤에서 중상을 받고 벌을 받느니 차라리 여기 앉아서 전하의 명을 거역한 죄로 벌을 받는 것이 더 나을 거요. 나는 지금 모든 임무를 띠고 갈 준비가 되어 있소. 하지만 내가 안 가도 내 대신 갈 사람에게 그 임무를 넘겨주겠소. 전하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단지 명목상의 특사로 러시아에 갈 생각은 없소. 그 비밀당은 성기운, 주석면, 민경식이 주축이 되어 있소. 민경식은 내 친척이오만, 아직 나한테 한 번도 속내를 이야기한 적이 없소.”
 
  완전히 결심이 굳어진 듯한 민영환 공에게, 나는 전하께 그 계획과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베베르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므로 그에게 전말을 보고했다. 베베르는 몹시 난처해하면서 내내 민영환 공을 설득해 보려고 애썼다. 상감 전하가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는 사람은 민영환 공뿐임을 납득시키려고 했다. 민 공은 베베르의 설득을 물리쳤다.
 
  괘씸한 러시아 통역관, 김홍륙. 저질의 계교나 부리는 지겨운 간신배, 주석면. 신들린 이자들이 피둥피둥 살만 찌는 궁중 나인들까지 부추겨 나약하고 희망도 없는 왕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상감과 세자의 눈과 귀가 되어 날치고 있는 것이다. 상감 전하는 온순해 보이지만 진실을 감추고 있는 지배자일 뿐이다. 우리 상감의 착한 성격이나 고질적인 나쁜 성질들이 하나같이 영국 역대의 역사에 잘 알려진 어떤 왕을 생각나게 한다.
 
  민영환 공이 전권공사 직을 사퇴한다거나, 전하께 그의 계획을 말씀드리지 않게 설득하는 일로 하루해를 다 보냈다. 그래 보았자 전하께서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실 텐데. 그러자니 베베르 공사가 조선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에 비위가 뒤틀려 희망도 원조도 끊을 판이었다.
 
  베베르 씨가 전하의 어떤 잘못된 비난도 막아 주기로 약속하고 대관식 참석 후에 적어도 1년간 유럽을 여행하도록 허락해 준다는 조건부로, 민 공은 마음을 돌려 러시아에 가기로 했다. 베베르는 위의 두 가지 조건들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제 민영환 공은 러시아에 가기로 마음을 잡았다. 그때 나는 민 공에게 김도일(金道一)이 이렇게 고관직에 승진하면 효율적으로 봉사하는 일이 더 힘들어질 거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럼에도 김홍륙과 주석면과 김도일은 모두 승진했다. 그중에도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베베르 공사 부부가 김홍륙을 충직한 인간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일이었다.
 
 
  4월 1일. 수요일.
  맑은 날씨. 제물포.
 
  다정하신 어머님, 사랑이 넘치는 어머님께 작별 인사를 올리고 집을 떠나다. 러시아공사관에 가서 자잘한 일들을 처리했다. 오전 8시에 상감과 세자 양전께 하직인사를 올리다. 곧바로 러시아공사관을 떠나다. 강 가까운 곳에서 환송연회가 열리다. 아버지를 비롯해 이완용, 박정양, 고용희, 이재정, 이상재, 이긍직 외에 몇 사람이 참석했다. 맛있는 조선 음식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4월 5일. 일요일.
  상해.
 
  오전 10시 우성(友聲)에 도착하다. 오후 1시에 상해의 콜로니 호텔에 들다. 알렌 박사와 함께 맥타이에르 의숙을 방문하다. 아내와 아기가 맥타이에르 의숙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프렌치 호텔에 혼자서 몇 주간 묵고 있는 민영익(閔泳翊)을 만났다. 그는 유별난 자만심과 인색함, 그리고 고집스러운 성격이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4월 11일. 토요일.
  상해.
 
  정리와 회상:
 
  1. 민영환 공은 전형적인 조선의 양반이다. 만사에 시중들 사람이 필요했다. 셔츠나 저고리를 입을 때, 양말 한 켤레를 신을 때, 외투 단추를 채우는 일까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시중들 사람이 없을 때, 어떻게 혼자서 잠을 자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민 공은 상감 전하로부터 여행 중 쓸 사비(私費)로 2만 달러를 받았다. 추측건대, 특별기금의 범위를 넘어서 은밀한 비자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가 내 아내를 위해 100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신나는 일이다.
 
  2. 민영환 공의 개인비서 김득련(金得鍊)은 뚱뚱한 사람이다. 그가 물고기처럼 마셔댄다고 해서 슈타인은 그에게 ‘미스터 물고기’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가 사절단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3. 통역관 김도일은 자그마한 체구에 눈치가 빠르고 씩씩하다.
 
  4. 사랑하는 내 아내는 트리니티 신학교 기숙사 안의 안락하고 좋은 방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 휴 선생은 좋은 분이다. 아내에게 6~7개월 동안 쓸 생활비 150달러를 건네다.
 
  5. 엠프레스 차이나호는 호화 여객선이다. 배의 일등 선실은 눈부시고 호화롭다. 이등칸은 어둡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작업장일 뿐이었다.
 
  6. 민영익이 며칠 전에 말했다. 상감 전하께서는 전하의 왕실 의상들을 비싼 값에 팔아서라도 다수의 학생들을 유학 보내셔야 옳은 일이라고. 그럴듯한 말씀이다.
 
 
  5월 1일. 금요일.
  캐나다 횡단열차 안에서.
 
  오늘 아침 민영환 공은 내게 비밀스런 지령을 전한다. 전하께서 민 공에게 전문으로 훈령하시기를, 중요한 협상이 있을 때는 김도일을 빠짐없이 통역시키라는 비밀 지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은총이 높으신 왕이로소이다! 왕은 그 젊은이를 나보다 더 신임하시는구나. 성은이 망극하신 상감 전하께서는 국가 기밀과 관련된 일도 하찮은 경력밖에 없는 젊은이를 더 신임함으로써 내 충성심을 시험해 보시려는 게다. 상감 주변에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새삼 이상한 일이 아니다.
 
 
  5월 9일. 토요일.
  뉴욕과 루카니아 기선.
 
  오후 1시 루카니아 기선에 오르다. 뉴욕에 대한 회상과 정리.
 
  1. 아름다운 도시 뉴욕을 방문한 일이 꿈만 같다. 브로드웨이, 현수교, 거창한 상점들, 높다란 롤스로이스 자동차, 호화로운 호텔, 아름다운 카페, 유명한 센트럴파크,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넓은 송판 그늘집과 월드빌딩 등. 도시의 소음과 잡음, 가게 문 여닫는 소리, 거리와 정거장과 연구소, 심지어 공중에 떠 있는 것조차 내겐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꿈만 같다. 다양한 형태와 여러 측면의 인생을 탐구해 볼 만한 조용한 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 짧은 사흘 동안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이며, 이 도시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될 것인가?
 
  2. 서광범(徐光範)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그는 워싱턴에 조선대표로 와 있었다. 그는 유럽식 복장을 하고 있는데 언제 보아도 맵시가 있다. 그는 구두와 양복을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바꿔 입고 나온다.
 
  3. 브로크만을 만나다. 그를 만나게 되어 참 잘되었다. 그는 YMCA에서 일한다. 캔들러 박사와 호스, 틸레와 램버드에게 전보를 쳤다. 캔들러 박사만 답신을 보내 왔다. 언더우드 박사의 동생을 만날 시간이 없었던 게 유감이다.
 
  4. 월도프 호텔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였다. 누구든 돈만 넉넉히 지니고 있다면 안락하게 호강할 수 있는 곳이다.
 
  5. 일본에 대한 칭송이 뉴욕에 사는 모든 인종들의 입에 회자하고 있다. 조선 왕실이 당한 비극적 참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는 것인가!
 
 
  5월 16일. 토요일.
  런던의 리버풀. 퀸스보로.
 
  이레 동안 순항한 끝에 오늘 아침 8시, 우리는 영국 북서부의 리버풀 항구에 안전하게 닿았다. 드디어 유럽에 온 것이다. 좁다란 협궤열차가 시골을 지나 우리를 런던에 데려다주는 동안, 창밖 풍경은 내가 지금껏 보아온 것처럼 한 뼘의 마당일망정 모두 예쁘게 가꾸어 놓았다. 싱싱한 파란 잔디밭, 기름진 목장에서 풀을 뜯는 미끈한 암소들-이런 매혹적인 광경들이 나로 하여금 이 즐거운 옛날 메리 잉글랜드에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후 3시30분쯤 런던에 도착해 템스 강변에 있는 로열 호텔에 들어갔다. 오후 7시, 빅토리아 역에서 출발하여 퀸스보로에 가다. 기선에 올라타고 넘실거리며 플러싱에 저녁 11시경에 도착했다.
 
 
  5월 18일. 월요일.
  바르샤바. 러시아의 폴란드.
 
  러시아 철도와 정거장은 모두 국영이다. 군 장교들이 초록빛과 은빛 군복에 장식을 달고 정중한 자세로 우리를 환영했다. 오후 2시 바르샤바에 도착하다. 각국 특사들은 정거장에서 모두 이곳을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사무적인 절차를 안내받기 위해 황제가 보낸 외무성 관리들을 만났다. 뉴욕이나 런던에서 묵었던 호텔에 비해 아주 싸게, 1루블 주고 머릿기름을 발랐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는 폴란드 왕국의 수도가 아닌가. 불행한 국가의 운명을 생각하면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5월 19일. 화요일.
  기차에서.
 
  아침 8시30분에 파스콤 장군과 외무성 의전 담당인 플랑콘 씨가 우리와 동행했다. 두 사람 모두 응접용 특등 칸에서 우리를 영접하기로 한 외무성 의전관들이다. 바르샤바를 떠나 모스크바로 출발하다. 잘 차려 놓은 식당차-그리고 아름다운 자작나무들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5월 20일. 수요일.
  모스크바.
 
  오후 3시 모스크바에 닿았다. 러시아 정부가 준비한 우리 숙소인 임시공관(조선 최초 러시아공관. 주소는 모스크바시 파바로스카야로 42번지- 옮긴이)을 향해 차를 달리다.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편안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알기로는 모스크바에 묵는 체류비는 러시아 정부에서 지불한다고 한다. 우리를 기다리는 미국 공사의 명함을 발견했다. 참 좋은 사람이다.
 
 
  5월 21일. 목요일.
  모스크바.
 
고종의 외사촌동생으로 대관식 특사였던 민영환.
  러시아 황실이 제공한 임시공관에서 오전 내내 쉬며 지냈다. 오늘 아침 우리 임시공관의 발코니 위에 태극기를 게양하다. 성스러운 모스크바 시내에 우리나라 국기가 빛을 발한 것은 러시아 역사상 처음이다.
 
  오후 2시, 민영환 공과 ‘물고기’ 김득련, 그리고 나는 니콜라이 황제 폐하와 황후 입성을 보기 위해 모스크바 대공작의 궁전에 갔다. 행진은 두 줄로 늘어선 병정들의 행렬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그 광경은 내가 전에 본 어떤 의식과도 비교할 수 없이 대단한 것이었다. 병정, 관리, 시동, 말들과 마차들을 모두 금과 은으로 입혀 놓은 것 같았다. 황제는 홀로 말 위에 똑바로 앉은 자세로 가장 소박한 차림을 하고 들어섰다.
 
  황태후는 온통 은빛 나는 의상을 걸치고 황금마차에 혼자 올라앉아, 양편에서 만세소리가 진동하자 그들에게 내내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지나갔다. 행차는 정해진 장소까지 한 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특별사절들 가운데 중국사절들은 화려한 비단에 수를 놓은 옷을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누런 이를 드러내고 길게 땋아 늘인 머리를 짧게 잘라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본 사절단들은 유럽식 복장에 가장 세련되고 부러운 동방의 나라로 군림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듯했다.
 
  페르시아 사절단은 화려한 정장에 잘생긴 친구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유의 친구도 그 친구의 왕이 최근에 살해되고 그의 정부는 영국파와 러시아파로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할 때, 불쌍한 우리 측 대표들은 다른 행복한 국가 대표들로부터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5월 22일. 금요일.
  모스크바.
 
  따뜻한 날씨다. 민영환 공은 자진해서 김도일을 중요한 자리에서 통역관으로 쓰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김도일의 조선말 실력은 얼마나 형편없는지 모른다. 실제로 러시아 황태후의 호칭을 “황제 에미”라고 불렀으니까.
 
  오후 2시. 황제와 황비는 크렘린 궁에서 알현할 기회를 주었다. 우리는 궁중의 고급관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궁전에 들어갔다. 민영환 공이 의전장과 함께 황금마차를 탔다. 크렘린 궁에 도착한 것은 1시30분이다.
 
  황제 폐하 양위가 거처하는 궁 안의 웅장하고 큰 방으로 민영환 공과 나 단 둘이 들어갔다. 가구도 없이 휑하니 넓은 방안에서 황제와 황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황제 주위에는 비서관이거나 시종으로 보이는 한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 민영환 공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아주 고통스런 자세로 인사를 올렸다. 나는 같은 내용을 황제에게 영어로 낭랑하게 통역해 드렸다.
 
  그때 민영환 공이 우리 상감 전하의 축하서신을 니콜라이 황제에게 드렸다. 황제는 그 서신에 대해 조선왕 전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황제는 “조선의 사절들을 만나서 기쁘다”고 말하고, 러시아까지 오는 데 얼마나 먼 거리인가 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모스크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니콜라이 2세는 멋지고 분명하게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민영환 공은 자신의 이름을 대면서 말했다. “하시라도 폐하께 조선의 당면한 문제들에 관해 전권특사로서 요청드림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조선 정부의 여건과 요청 사항을 전부 황제 폐하에게 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황제가 대답했다.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러자 몇 초 동안 침묵이 흐르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 얼른 내가 말을 거들었다. “물론, 오늘 말씀드린다는 건 아닙니다.” “물론 오늘은 아니겠지요.” 황제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황비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내 옆에 서서 귀 기울여 경청하였다. 오늘은 황제가 우리 사절단만 만나는 특별한 호의와 신뢰를 보여주어 우리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보다 먼저 영접한 사절단은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일본 사절단도 아직 만나지 않았다.
 
  오후 4시에 외무대신 로바노프 왕자(로바노프 로스토브스키는 니콜라이 2세 때 외무대신을 지낸 인물로,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는 데 주역을 담당했다- 옮긴이)를 방문했다. 명랑한 노인인데 강직한 인상을 준다.
 
 
  5월 23일. 토요일.
  모스크바.
 
  구름이 낀 날이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오전에 세르게이 알렉산더 대공을 방문하다. 그는 황제의 삼촌이며 모스크바 총독이다. 부인은 황비의 친언니로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거리는 깨끗하고 넓었으나, 포장된 거리 위의 보도(步道)는 좁다.
 
  비가 오거나 일할 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일행의 이상야릇한 복장 때문에 가는 곳마다 웃음거리와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러시아 접경 중앙아시아 대표들은 나도 처음 보는 생경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울긋불긋한 색깔에다 헐렁하고 두꺼운 양복에 흰 줄과 붉은 줄을 친 터번을 쓰고 있었다.
 
 
  5월 24일. 일요일.
  모스크바.
 
청나라 특사단 대표로 참석한 리훙장.
  대관식이 열리는 도미션 대성당은 규모가 작은 교회이다. 그 교회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모자를 벗어야 한다. 민영환 공은 조선의 예법과 관습에서 벗어난다는 구실로 대관식이 거행되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갓〔사모(紗帽)〕을 벗어야 한다는 의례를 완강하고 단호하게 끝내 거부했다. 이는 그의 개인비서인 ‘물고기’ 김득련이 민 공에게 사모를 벗지 말도록 건의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민 공의 마음을 바꾸도록 간곡하게 설득해 보았다. 그가 최고로 중차대한 임무를 가지고 상감의 어명을 받들고 대관식에 온 사람임을 강조하고, 잠시 동안만 그 고루한 조선 관습을 접어 두는 일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님을 간청했다. 그러나 민 공은 “그래도 난 안 들어가”라며 고집 센 당나귀보다 더 완강하게 거절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나도 할 수 있다면 차라리 여기 오지 말고 집에 조용히 앉아 있는 편이 더 좋을 뻔했다. 리훙장을 만났다. 리훙장과 민영환 공 사이에 오고간 대화는 대략 다음과 같다.
 
  리훙장: 그 당시 국왕께서는 러시아 공사관에 계셨소?
 
  민영환: 그렇습니다.
 
  리훙장: 민영환 공은 대원군 파요, 아니면 반대파요? (민영환 공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돌려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리훙장: 누가 왕비를 시해했소?
 
  민영환: 공식적인 보고를 올렸으므로, 전하께서는 누가 범행을 도왔는지 아시게 됩니다.
 
  리훙장: 믿을 수가 없군. 조선인들은 일본을 좋아하지 않소?
 
  민영환: 어떤 사람은 일본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요. 청국에서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마지막 말에 한 방을 맞고서야 노인은 조용해졌다. 나는 리훙장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사람들이 리훙장 칭찬을 해외에 요란하게 퍼뜨려서, 그가 자질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5월 25일. 월요일.
  맑은 날씨인데 더운 편이다. 모스크바.
 
  오전에 일행들과 함께 나가 사진을 찍었다. 점심식사 후 공식방문 일정을 마치고 페트로브스키 공원을 드라이브했다. 민영환 공은 오늘 오후 내내 그리고 저녁 만찬 때에도 내게 아주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 그는 다음 네 가지 이유로 나를 질책했다.
 
  1. 내가 옛날 조선식 음력 8월이 러시아의 여름 계절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 전하의 특별사절이신 민 대감께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게 잘못이다. 8월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겪어 보면 알 수 있듯 아주 유별나게 더운 달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깜박 잊고 음력 8월이 여름철에 들어가는 달이라고 내가 역설한 것이다.
 
  2. 나는 민 공을 포함해서 모든 절차에 대한 조언을 러시아 관리들로부터 잘 들어 두었어야 했다. 그런데 운 사납게도 일이 잘못 돌아가려고 그랬는지 의전관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터무니없는 실수를 했다. 다른 공사관을 방문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할 것과 명함도 돌리지 말라고 강력하게 주지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보니 러시아 의전관들이 말하기를, 만나고 싶으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다른 사절들을 직접 찾아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파스콤 장군과 플랑콘 씨가 알려주기를, 터키 특사, 페르시아 특사, 중국 대사들이 모두 모자를 벗고 대관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였다. 내가 민영환 공에게 대관식이 거행되는 성당에서 잠시나마 사모(紗帽)을 벗고 참석하자고 간청했건만…. 그런데 오늘 터키 특사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모자를 벗어야 한다면 성당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변화무쌍한 상황이 모두 내 책임이란 말인가? 나는 그저 민영환 공에게 러시아 의전관들이 말해 준 것만 통역해 주었을 뿐이다. 나는 어느 날이건 단 한마디도 다른 말로 통역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다른 말을 옮긴 적이 없다!
 
  3. 세 번째로, 민영환 공은 내가 자신이 하는 말을 낱낱이 통역해 주지 않았다고 푸념했다. 그건 나로서도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4. 내가 자주 민영환 공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 그건 내게 대한 아첨이다. 나는 그럴 만큼 박식하지도 않거니와, 그렇게 뻔뻔스런 태도를 보일 재간도 없다. 이렇게 민 공이 위의 네 가지 항목을 잘못했다고 들이대며 나를 질책할 때 깨달은 사실은, 이 일에 대하여 내가 아무리 변명해 보았자 상황만 더 악화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쓴 대목처럼, 그를 거역하지 않겠다고 출발하기 전에 우리 상감께 약속까지 하고 온 터였지만, 나는 좀 더 조심스럽게 굴어야겠다. 외국에 가서 그 나라 언어를 할 줄 모르면 자연히 벙어리처럼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외국어를 못하는 민 공에게 조심해야겠다.
 
 
  5월 26일. 화요일.
  러시아 황제 대관식. 모스크바.
 
1896년 5월 26일 열린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즉위식.
  성대한 대관식 잔치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날씨였다. 오늘 일정에 따라 조선 관복 정장을 한 민영환 공과 함께 터키공사관에 7시15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각국 대표들이 터키의 오트만 특사를 필두로 8시경 크렘린 궁전 앞에 모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민영환 공과 나는 성당 안에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공식 초청객들을 위해 마련한 대기실에 들어갔다. 대관식이 거행되는 성당은 크렘린 궁전의 일부이며 비싼 카펫을 깔아 놓은 발코니 대기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광경은 얼마나 매혹적인지 모른다. 날씨도 나무랄 데 없이 화창하다. 태양은 농부나 왕자에게도 똑같이 공평하게 찬란히 비치었고, 내 두 눈은 거울이 여러 개 반사하는 것 같은 경비병의 헬멧 때문에 눈부셨다. 그 옆에 황실의 숙녀와 신사들이 황금과 레이스와 보석과 벨벳 리본으로 치장을 하고 들어선다.
 
  헐렁한 금빛 법의를 입은 사제들과 러시아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여기저기 행진하며 들어온다. 아리따운 러시아 아가씨들은 피가 통하는 육체라기보다 흰 눈 덮인 날개 달린 어린 천사보다 더 새하얀 분칠을 한 듯하다. 일반 시민에게 개방한 대성당 건축물을 둘러싸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군중들-농부, 시민, 호기심에 들뜬 구경꾼들이 떼지어 서 있었다.
 
  10시30분쯤 황태후가 먼저 장군과 귀족들을 거느리고 화려한 캐노피 아래 성당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당 정문 앞에서 황태후는 구세주의 성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집전하는 주교가 황태후에게 축복을 기원했다. 그러자 성당의 종각에서 종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군악대가 활기찬 곡조로 행진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30분쯤 지나서 황제와 황비가 캐노피 아래로 걸어온다. 민중의 만세 소리, 대포 쏘는 소리, 수백 개의 육중한 종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소리! 마치 혼성 합창단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성당 정문에서 황족들은 황태후의 예식과 똑같은 종교의식으로 행차하였다. 이곳에서 권력을 초월한 초연한 정신이 넘쳐나는 실상을 보았다. 한없는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러시아 전제군주가 2000년 전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은 겸손한 갈릴리 사람의 성상(聖像)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었다!
 
  정성껏 준비한 성당의 대관식은 세 시간이 넘어 끝이 났다. 황제 폐하 양위는 2시경에 성당을 나섰다. 풍성한 만찬이 궁성 안의 방마다 초청 인사들에게 베풀어졌다. 호화스런 만찬 식탁에 인색하지 않고 넉넉하게 음식을 차렸다. 플랑콘 씨가 내게 말하기를, 저 맛있는 딸기들도 손님 한 사람 분에 1루블 내지 2루블은 들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만찬 시간에 민영환 공의 맞은편에 앉은 아름다운 미국 여인 때문에 더욱 즐거웠다. 이 숙녀가 아니었다면 만찬도 연회도 의미가 없었으리라.
 
  민 공은 만찬을 나누는 동안 너무 불편하게 자신을 들볶고 있었다. 그는 수프를 먹자 곧장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나는 “그런 태도는 우리 일행을 위해 애쓰는 파스콤 장군과 플랑콘 씨를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민 공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느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그들이 주문해 놓은 후식을 먹지도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나왔다. 민 공은 기분이 언짢아지면 무슨 일이든 자기 멋대로 화풀이하지만 자기보다 웃어른이거나 강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도리어 성난 외국사람 앞에서처럼 주눅이 들거나 기를 펴지 못한다.
 
  우리가 보카라(우즈베키스탄) 대표, 몽고 대표, 인도 대표들과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은 우리를 보고 웃음을 참느라 가관이었다. 뿔이 난 요란한 사모와 도깨비 같아 보이는 관복을 입고 있는 우리를 불쌍한 나라에서 온 사절들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도 지금 같은 조선의 절망적인 여건들을 생각하면 내 몸이 온통 고통으로 으스러지는 듯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외양과 걸음걸이에서 그들 국가의 번영과 긍지와 영광스런 모습을 보면서 쓰라린 고통을 느꼈다. ‘천국’이라고 부르는 곳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서라도 천국을 만들었으리라. 코리안의 존재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 사람으로 보기에 충분했으므로.
 
  오후 4시경 임시공관에 돌아왔다. 7시30분까지 쉬었다. 책을 좀 읽으려고 했는데, 민영환 공이 나를 보자고 했다. 응접실에 앉아 있는 민 공이 굉장히 괴로워하며 화가 나 있음이 역력했다.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자신이 특사로 이곳에 오게 된 운명의 날을 저주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왜 자기 명함에다 ‘전권공사(Minister Plenipotentiary)’로 표기하지 않고 ‘특사(Ambassador Extraordinary)’로 적은 이유를 미리 말해 주지 않았느냐면서 신랄하게 나무란다. 이 양반이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파스콤 장군과 플랑콘 씨가 그의 직함을 왜 그렇게 인쇄했는지를 내가 적어도 두 번이나 설명해 드렸는데 말이다. 나중 일을 생각해서 메모해 두어야겠다.
 
  우리가 모스크바로 오는 도중에, 나는 파스콤 장군과 플랑콘 씨에게 민영환 공에게 새 명함을 만들어 드리면 좋겠다고 건의했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의 옛날 명함은 질이 나쁘고, 둘째로 대관식 기간에 그는 모스크바에서 ‘전권공사’가 아닌 ‘대관식 특사’ 자격으로 통용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두 사람의 판단력을 믿으며 말했다.
 
  물론 민영환 특사에게도 두세 번이나 설명해 드렸다. 그러고 나서 새 명함이 나왔고, ‘대관식 특사’로 인쇄되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자신이 단지 특사로만 불리는 줄로 알았다. 조선왕 전하께만 아니라 모스크바에 모인 모든 외교사절들에게 자기의 위상이 잘못 알려졌을 거라고 생각한 나머지 노발대발한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민 공은 그것을 전부 나에게 뒤집어씌우고 잊어버리거나, 내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서야 자신의 맘이 편해지는 모양이다. 그는 내가 그렇게 된 경위를 설명하지도 않았고, 명함 내용을 바꾸지도 않았다고 하면서 분풀이를 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내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와 따지는 것이 나중에 어렵게 뒤엉키게 할 문제가 되므로, 나는 슈타인을 불러서 이 상황을 알려주고 슈타인이 민 공에게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내가 두 사람 사이에서 통역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영환: 축하 인사장과 신임장에 있는 내 직함을 무어라 옮겨 적으셨소?
 
  슈타인: 대관식 특사라고 했습니다.
 
  민영환: 그런데 왜 내 명함에는 ‘특사’로 적혀 있지요?
 
  슈타인: 대관식 중에 민영환 공의 직무는 대관식 특사일 뿐이며, ‘전권공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관식 사절단을 별도로 파송하지 않은 다른 나라 대표들도 이 기간 중에는 다 같은 특사로 대우합니다. 러시아 정부는 민 공을 전권공사로 예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 공은 편지를 두 통 가져오셨습니다. 첫 번째 문서는 조선왕 전하께서 니콜라이 2세 황제 폐하의 대관식을 치하하시면서 민 공에게 전권공사 직을 내리신 것이지요. 한편 다른 신임장은 민 공이 페테르부르크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 전권공사 자격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민영환: 내게는 특사로 활동한다는 자격 부여가 없지 않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도 조선이 일본보다 앞서지 못한 것이오. 일본인들이 내 직함을 묻지 않겠소?
 
  슈타인: 러시아에는 각국 공사와 외국 공사관들이 있습니다. 조선공사관이 아직 설치되지 않았으므로 민 공은 사절단에만 끼게 된 겁니다. 일본이 앞서 들어가야 한다는 건, 서열이 알파벳 순서에 따르는 것이지 민 공의 직위를 반영하는 건 아닙니다.
 
  민영환: 슈타인 씨는 아무도 나를 ‘특사’로 부르지 않을 거라고 믿으시오? 예를 들어 일본이 말입니다.
 
  슈타인: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일본이 조선에서 무슨 일을 했건, 민 공의 공식 직함에 의문을 품고 부르는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물론 민 공의 직책은 대관식이 끝나는 대로 바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 공께서 명함을 그렇게 만든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파스콤 장군과 플랑콘 씨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민 공의 불쾌한 심경을 얘기하고 그 두 사람을 해임조치 하겠습니다.
 
  슈타인의 말에 민 공은 질겁하면서도, 불평의 말을 한마디 더 던졌다. 내가 그 내용을 통역했을 때 슈타인은 화가 나 버렸다. 나는 우리의 ‘손 각하’, 손희영 군을 조용히 불러 한 문장, 낱말 하나하나를 통역했을 뿐, 더 이상 어휘의 착오가 없음을 알려주었다. 슈타인은 민 공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그 문제에 대한 논쟁을 끝냈다.
 
  ‘물고기’ 별명을 가진 김득련은 민 공의 비위만 맞추는 비열한 하인이다. 민 공이 자주 역정을 내는 데는 그의 책임이 없지 않다. 민 공과 내가 사이좋게 지내야겠지만, 그럴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민 공은 유년기부터 무슨 일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아무도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천성은 용감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조선이란 나라 안의 조정에서 관리들에게 곧잘 일어나는 시치미 떼기, 의심, 배은망덕, 그리고 음모 꾸미기에 익숙한 저주스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한편, 나는 어떤 사람인가? 비교해서 말해야겠다. 나는 내 스스로 자유분방하게 살아 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선의 기준이나 예의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할 말은 하고 행동하는 습관에 길들어 왔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내가 부주의했던 것 같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 그에게 좀 더 지혜롭게 대했어야 한다는 교훈을 터득했더라면, 민 공과의 사회적 연대가 더 탄탄하게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오! 하느님, 도와주소서!
 
 
  5월 28일. 목요일.
  아름다운 날씨. 모스크바.
 
  오전 11시, 황제 폐하의 위대한 대관 예식에서 행복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을 축하하는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크렘린 궁전에 갔다.
 
 
  5월 29일. 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모스크바.
 
러시아사절단이 니콜라이 2세에게 선물한 장방형 백동향로, 원통 백동화로(왼쪽부터)이고, 오른쪽은 니콜라이 황제가 특사단에게 선물한 금시계다. 러시아는 당시 선물들을 크렘린궁 무기고에 보관했다.
  오전 10시, 조선왕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축하해 보내는 선물을 전하기 위해 파스콤 장군과 함께 크렘린 궁전에 갔다. 선물은 자수 병풍 2개, 창 가리개용 대나무 발 4개, 수를 놓은 돗자리 4개, 진주조개 장식의 자개장 1벌, 백동향로(白銅香爐) 2개 등이다. 이런 정도의 선물은 조선 사람이 사적(私的)으로 러시아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로는 알맞을 것이다. 조선 왕이 러시아 황제에게 주는 선물치고는 너무나도 빈약하다.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초상화를 그리려고 앉아 있었다. 저녁 7시30분, 황실 극장에 갔다.
 
 
  5월 30일. 토요일.
  아름답고 더운 날씨. 모스크바.
 
  점심식사 전 유명한 피티 포퓨레어(Fiti Populaire)를 보기 위해 페트로브스키 궁전에서 가까운 들판으로 나갔다. 넓은 초원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끝이 안 보였다. 남자들이 외치는 소리, 마차 바퀴와 말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황제는 군중들에게 면직 손수건과 찻잔 1개, 케이크 한 쪽, 대관식 순서지 1장, 큰 소시지 1개를 넣은 선물 꾸러미를 하사했다. 그 공급을 맡은 관리가 내게 말하기를, 그 선물 꾸러미가 40만 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귀한 선물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종내 무섭고 끔찍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오늘 아침 성급한 군중들은 선물 꾸러미를 쌓아 둔 작은 건물 앞으로 한 시간이나 미리 몰려갔다. 질서를 지키게 해야 할 경찰관이나 군인들은 충분하지 않았고, 군중은 선물 보따리를 챙기느라 큰 소동이 났다.
 
  이 난리 통에 10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깔려 죽고 말았다. 황제는 희생자의 각 가정에 1000루블씩 보상해 주도록 지시했다. 언젠가 이 사건에 대해 프랑스 정치가 탈레랑(Talleyrand)이 니콜라이 황제에게 한 말을 되뇌어 본다. “러시아에서 통치자는 개명했으나 국민들은 아직 깨지 못했도다.” 저녁 9시에 터키공사관 무도회에 참석하러 가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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