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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국내 최초 북한 현역작가의 북한체제 비판 小說과 詩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의 목숨 건 폭압체제 비판… 북한판 솔제니친 탄생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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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명은 ‘반디’,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어”라고 심경 고백
⊙ 舊소련 비판 소설 해외에서 출간했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 사례와 유사
⊙ 원고지 750장 분량 소설과 50편의 시로 金日成 시대 북한 참상 고발
⊙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 입수, 국내에서 곧 소설 출간 예정
폭압적 김일성 시대를 고발한 반디의 단편소설집 《고발》. 김일성·김정일 저작물 속에 숨겨 밀반출했다.
  《월간조선》은 최근 피랍탈북인권연대(대표 도희윤)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작가의 체제비판 소설(小說)과 시(詩)를 입수했다. 이 작가는 현역작가임을 감안해 ‘반디’라는 본인의 필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 작품은 곧 국내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북한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풍자한 북한 현역작가의 소설과 시가 남한에서 출판되는 일은 분단 68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자유세계로 나온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와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북한에 살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폭압적이고 반민주적인 북한체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일은 없었다.
 
  출판 과정에서 책 제목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북한 작가 반디가 지인을 통해 남(南)으로 보낸 소설의 제목은 《고발》이다. 《고발》은 글자 그대로 1994년 7월 김일성(金日成)이 사망하기 전부터 직후까지의 차별과 폭압이라는 북한사회의 비리와 수령 독재체제가 불러온 사회적 모순 등을 신랄한 풍자를 곁들여 고발하고 있다.
 
  《고발》은 200자 원고지 750장 분량이다. 오래전부터 쓴 것을 보여주듯 빛바랜 원고지 위에 작가가 연필로 직접 꾹꾹 눌러쓴 흔적이 역력했다. <탈북기>, <유령의 도시>, <준마의 일생>, <지척만리>, <복마전>, <무대>, <빨간버섯> 등 단편소설 7개를 모은 단편소설집이었다. 이 단편소설들은 각기 다른 소재로 각각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형태는 김일성 시대 비판이라는 큰 주제에 하나로 묶여 있는 옴니버스 형태를 띠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 끝날 때마다 단편소설 각각의 마지막에는 ‘1993. 7. 3.’처럼 날짜가 적혀 있다. 원고를 마친 날짜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 가운데 제일 먼저 쓴 작품은 <탈북기>로 1989년 12월에 작성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작가 반디가 체제 저항 소설을 오래전부터 써왔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단편소설집 중 시기상으로 마지막에 쓴 작품은 인자함으로 포장된 김일성 수령 독재의 잔혹함을 표현한 <복마전>으로 김일성이 사망한 후인 1995년 12월로 돼 있다. 작가 반디가 북한 현지에서 김일성 시대에 이어 김정일(金正日) 시대, 김정은 시대를 비판하는 작품을 계속 집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 반디는 자신의 시 50편을 《지옥에서 부른 노래》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어 보냈다.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을 지옥(地獄)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쓰는 ‘시’라는 말 대신 ‘노래말’이라는 용어를 썼다. 역시 북한체제의 폭압을 고발하는 내용들이다. 그는 이 《지옥에서 부른 노래》 머리글에서 절규처럼 읽히는 자신의 소회를 시의 형태를 빌려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북녁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북한체제 고발을 결심한 이유
 
‘김일성화, 김정일화 전시회’에 전시돼 있는 김일성 부자 그림.
  반디가 속해 있는 북한의 문인단체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는 북한의 공인 작가 단체다. 북한의 문학 등 예술 전반을 통제하는 최상위 통제 기구는 김정일이 후계자 수업 당시 부장을 맡았던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다. 조선문학예술총동맹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작가들은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도와 검열을 받는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는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내 문학가 조직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북한에서 글 재주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신 성분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작품 발표 기회나 발표 지면도 적다. 북한에서 작가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북한에서 시인 겸 극작가로 활동하다 탈북해 남한에 와 2004년 시 12편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등단한 자유북한방송 김성민씨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이었다. 2008년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펴내면서 화제를 모았던 장진성씨도 탈북 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이었다. 북한에서 작가가 되는 정통 코스는 중앙에서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에 작품을 싣는 것이다. 반디는 이 정통 코스를 밟은 작가다.
 
  반디는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반디는 그가 태어난 곳의 정확한 지명과 태어난 해, 6·25전쟁 중의 생활 등에 대해서도 밝혔지만 그의 안전을 위해 이 지면에서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는 유년 시절 6·25 남침 전쟁을 겪었다. 평소 문학에 소질을 보였던 반디는 20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북한 잡지에 그의 글이 실렸다.
 
  한때는 문학의 꿈을 접고 노동 현장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꿈을 접을 수 없었던 그는 틈틈이 여러 편의 문학작품을 썼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숨길 수 없었던 그의 재주가 주변에 알려지게 되면서 인정을 받게 된 그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많은 작품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 등에 기고했다.
 
  그는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중반을 지나고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자신과 인연을 맺고 살았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참상을 목도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작가로서 자신이 살아왔던 북한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가진 힘은 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배고픔과 체제 모순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과 먹고살기 위해서 고향땅을 떠나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체제 고발을 위한 펜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모순과 출신 성분으로 구분되는 인류 최악의 연좌제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참상을 고발하는 대변자로 자신의 역할을 결정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처절하게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주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자신의 작품 속에 녹였다. 현장 고발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성과 사실의 고발, 함께 담기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는 작가로서 사실 못지않게 완성도 높은 작품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산고(産苦)가 따를 수밖에 없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은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독자는 언제나 한 명, 작가 자신뿐이었다. 반디 자신은 북한사회에서 자신이 쓰는 소설의 독자가 자신 한 명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를 기다렸다. 자유세계에 자신의 북한체제에 대한 고발이 널리 퍼져나갈 그날을 기다렸다. 그날은 가까운 친척의 탈북으로부터 시작됐다. 반디의 작품 원고를 입수한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의 증언을 토대로 원고 입수 과정을 재구성했다.
 
 
  北에서 南으로, 원고 입수 과정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 반디는 이번 김일성 시대를 비판한 소설에 이어 김정일 시대를 비판하는 소설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평소 반디와 가깝게 지내던 여자 친척 한 명이 반디를 찾아왔다. 그녀는 반디에게 사흘 후 중국으로 탈출하려 한다고 조심스럽게 알렸다. 반디도 북한 탈출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움직이기에는 처자식 등 많은 제약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반디는 그 친척의 탈북이 자신의 작품을 대외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디는 자신이 그동안 써온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차피 북한을 탈출할 결심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써온 작품의 이야기를 해주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신뢰해도 좋을 만큼 가까운 친척이었다.
 
  반디는 혈혈단신으로 북한을 떠나는 그 여자 친척에게 자신이 쓴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소설과 시의 원고를 건네주었다. 원고를 받아든 친척은 지금은 자신도 북한을 무사히 빠져나간다는 보장이 없으니 확실하게 탈출할 길을 마련한 후 다시 원고를 가지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떠났다.
 
  언젠가는 세상의 빛을 보게 하리라는 결심으로 썼던 자신의 작품들을 반디는 다시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깊숙이 감춰놓아야 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다.
 
  한편, 반디의 친척은 중국으로 넘어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변방에 있는 중국군 부대에 체포됐다. 다행히 그 부대에서는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반디 친척의 행색이 돈깨나 있어 보이자 간부집 부녀자라고 판단했다. 북송(北送)하는 대신 그들은 그녀에게 우리 돈 1000만원가량에 해당하는 중국돈 5만 위안을 뇌물로 요구했다.
 
  일단 북송을 면한 이 여성은 당장 큰돈은 없지만 돈을 마련해 볼 테니 여기저기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 그 부대의 부대장이 옌지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자신이 알고 지내던 탈북 브로커를 만났다. 그 부대장은 그 브로커에게 탈북한 여자 한 명이 자신의 부대에 잡혀 있는데 어디 연결해서 돈이나 받고 내보내려고 하는데 한번 알아봐 달라고 했다.
 
  마침 그 친구는 도희윤 대표가 알고 지내던 조선족 브로커였다. 그 브로커는 곧바로 그런 사실을 도 대표에게 알려왔다. 비용은 자기가 나서서 조정해 볼 수 있으니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좀 써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끄는 단체 살림도 빠듯했던 도 대표는 고민을 하다가 가끔 피랍탈북연대에 도움을 주는 분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마침 그분이 얼마나 필요하냐며 나중에 일이 잘 되면 꼭 갚으라는 당부와 함께 내놓은 돈이 1000만원이었다. 도 대표는 그 돈으로 중국 부대에 잡혀 있던 반디의 친척인 그 탈북 여성을 구해 남한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도 대표와 반디는 그렇게 연결됐다.
 
  한국에 들어온 그 탈북 여성이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으로 간 후 도 대표는 그 여성을 잊고 지냈다. 그 여성 외에 많은 탈북자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들은 하나원 퇴소 후 도 대표에게 연락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북한 인권단체나 탈북 브로커나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 여성은 하나원 퇴소 후 도 대표에게 연락을 해왔다. 여러 차례 연락 후 만남을 위해 도 대표는 경기도 성남에 있는 그 탈북 여성의 집으로 갔다. 그 여성은 흰봉투를 내밀면서 그것이 자신이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전부라고 했다. 도 대표는 그 봉투를 다시 그 여성에게 건네주었다. 일부지만 안정된 국내 정착을 위해 지급된 정착금을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힘
 
  그 여성도 막무가내였다. 대신 부탁을 하나 더 들어달라고 했다. 심부름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심부름 비용으로 그 봉투를 받아달라는 거였다. 도 대표가 무슨 심부름인지를 물었다. 그때 나온 이름이 반디였다. 그 여성은 “그때 내가 그 원고를 받아들고 나왔다면 자신도 죽고 반디도 죽었을 것”이라면서 “자기가 다시 그 원고를 가지러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여성은 반디가 북한에서 어느 정도의 작가인지에 대해서도 소상히 이야기해 주었다.
 
  도 대표에게 뭔가 느낌이 왔다. 뭔가 작은 일이 아닐 거라는 직감 같은 것이었다. 그 여성은 반디에게 보내는 자신의 편지를 도 대표에게 써주었다. 그 편지를 반디에게 주면 편지를 들고 간 사람을 반디가 믿고 원고를 줄 거라고 했다.
 
  도 대표는 그 여성이 써준 편지와 흰봉투를 들고 나오면서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국경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디가 살고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필연적인 우연’이 일어났다. 도 대표의 중국 친구가 북한 친척 방문을 한다는 것이었다. 방문지를 물었다. 마침 반디가 살고 있는 곳도 방문지에 포함돼 있었다. 반디는 그 사회적 지위 덕에 규모가 있는 중소도시에 살고 있었다. 중국 친구는 식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잠깐 갔다 올 수 있는 거리라고 했다.
 
  도 대표는 그 중국 친구에게 반디가 원고를 주면 《김일성 선집》이나 《김정일 노작》 등 북한 선전용 책자를 많이 사서 그걸로 위장을 해서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그 중국 친구는 반디의 친척 여성이 탈북에 성공한 몇 달 후 반디를 찾아가 비닐봉지로 싼 편지를 건네주었다.
 
  <오빠. ○○이에요. 소식 늦어서 미안합니다. 이제 저는 편안한 곳에 와 있어요. 제가 무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분이 사람을 보낼 겁니다. 제 편지와 함께요.
 
  편지를 받으면 인차 지난번에 저에게 건넸던 물건을 넘겨주세요. 믿으셔도 됩니다. 오빠하고 저만 알고 있는 일이니까.
 
  그때 주셨던 물건이 두 개였지요.
 
  오빠도 좋은 세상에서 한번 살아봐야 할 텐데,
 
  남겨둔 식구들 생각하면 눈물만 나요.
 
  그런 날이 꼭 오겠지요. 오빠. 꼭 우리 만나요… 몸 건사하세요…
 
  ○○이가>
 
  편지를 읽은 반디는 잠시 생각에 젖어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자신만 아는 비밀장소에 감춰두었던 원고 뭉치를 꺼내왔다. 그때의 표정을 그 중국 친구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달리 방법이 없다는 표정이었다”고 훗날 전해주었다. 그 원고 뭉치는 《김일성 선집》 등에 싸인 채 중국을 거쳐 도 대표에게 건네졌다.
 
  도희윤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먼저 그런 글을 쓴 작가가 북한 내부에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 반체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세력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소규모 저항 조직과는 어느 정도 연계를 갖고 있었지만,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출신 중에서 이토록 북한사회를 증오하면서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확신 속에 소리없이 세상을 밝히고자 반체제 작품을 쓰고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가슴 벅찬 일이었고 그런 글을 전달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도 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오면서 국경 일대가 더욱 삼엄해지고 중국 또한 강제 북송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그분과 접촉하고 귀한 작품까지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사람의 힘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이죠. 반드시 작가 반디의 북한체제를 고발하는 메시지가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는 그런 소망이랄까요. 하늘이 돕지 않았으면 참말이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작품
 
  현재 남한에는 2만5000여 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있다. 그 가운데 수많은 탈북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통해 북한 세습독재체제가 가져온 파탄 난 북한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 펜(PEN: 처음에는 시인, 수필가, 소설가를 뜻했으나 지금은 극작가, 편집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쓰임) 총회에 가입한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에만 탈북 작가 28명이 가입돼 있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열린 제78차 국제펜대회 문학포럼에서 북한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탈북해 남한에서도 문인으로 활동 중인 도명학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문학 작품을 쓰며 겪었던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진실이 담긴 작품,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었다. 2004년 8월 보위부원에게 체포돼 자강도의 산속으로 끌려갔다. 북한에서 도저히 출판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체 위안을 얻으려 현실 풍자시를 쓴 것이 반동 작품으로 문제가 됐다. 감방에서 반죽음이 되도록 군홧발에 차이고 잠도 자지 못했다.”
 
  도씨는 풍자시를 썼을 뿐인데 문명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반디의 작품은 풍자를 넘어 북한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장에 가깝다. 게다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 김정일은 ‘수령영생문학’이란 걸 하라고 북한 문인들에게 지시해 김일성 추모시가 봇물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도 작가 반디는 김일성에 대한 고발을 넘어 조롱까지 그의 문학 작품에 담았다.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작품들인 것이다. 억압체제에 대한 저항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억압체제의 끝을 예감하고 있다는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 내부에서 현존하는 저항 작가의 글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획기적인 변혁의 시작임과 동시에 철옹성 같은 세습독재정권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大)사건이라 할 만하다.
 
  반디의 북한체제비판 소설집 국내 출간은 구(舊)소련에서 소련 공산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을 쓰고 해외에서 발표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했던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을 연상시키는 일이다.
 
  솔제니친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포병 장교로 자원입대했다가 친구에게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발각돼 1945년에 체포된 후 강제노동수용소 5년, 추방 3년형 등 도합 8년 동안 유형생활을 한다. 1957년에 복권된 후 1962년에 유형생활 8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처녀작이 대표작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반체제적인 성향이 문제되면서 소련 국내에서는 작품 발표의 길이 막혀버린다. 이에 항의하여 1967년 열린 소련작가대회에 검열폐지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국내 출판이 좌절되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과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의 주요 작품이 된 《암병동》 등을 해외에서 출간한다. 그의 작품이 해외에서 출판되자 소련작가동맹은 1969년 그를 제명했다.
 
  이후 솔제니친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소련 강제노동수용소의 내막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의 해외 출간을 이유로 1974년 자신의 조국인 소련에서 강제추방을 당한다.
 
  작가로서 모국(母國)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만큼의 큰 상처라고 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솔제니친은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출판한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목숨을 걸고 작품을 써야 하는 반디보다는 행복해 보인다. 그나마 솔제니친은 자신이 속한 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을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떳떳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쓸 수 있었지만 반디가 처한 상황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제니친과 반디가 닮은 이유
 
북한 현역작가인 반디의 소설집 국내 출간은 구 소련체제하에서 솔제니친이 자신의 작품을 해외에서 출판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유사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진 폭력과 거짓에 대한 입장은 유사하다. 추방되기 전인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은 수상 수락 연설문을 비밀리에 서방(西方)으로 보내는데 그 연설문 중 폭력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밝히는 대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연 문학이 공공연한 폭력의 무자비한 습격에 대항할 수 있는가라고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폭력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폭력은 거짓과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폭력은 거짓 외에는 숨을 곳이 없고 거짓은 폭력으로밖에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한 번 폭력을 수단으로 선언한 모든 사람은 거짓을 자신의 원칙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은 종속된 사람들에게 거짓 맹서만을, 거짓에의 동참만을 더 자주 요구합니다. …작가들과 예술가들에게는 더 많은 것이 가능합니다. 거짓과의 투쟁에서 예술은 항상 승리하였고 항상 승리할 것입니다. …거짓이 흩어지자마자 폭력의 알몸도 혐오스럽게 드러나게 되고 힘을 잃은 폭력은 쓰러지게 됩니다.…>
 
  반디는 <복마전>에서 수령제가 인민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복마전>은 ‘1호 행사’로 불리는 김일성 수령의 지방 순시 때문에 기차 등 교통에 불편을 겪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묘사한 작품이다. 다음은 그 일부분이다.
 
  <오씨는 그 방송이 어서 끝나기를 바랬다. 벌써 며칠째인가… 그런데도 확성기는 온 세상 사람들의 귀에 못 박힐 때까지 하고야 말겠다는 듯 그하냥 지지벌거리고 있다.
 
  “…이렇게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저를 끝내 승용차에 태워주시고서야 길을 떠나셨습니다.” 드디어 오씨의 목소리는 끝났다. 그러자 이번엔 열기 띤 방송원의 목소리가 령감 손녀의 상처 앞에 새로운 칼을 빼들고 나섰다.
 
  “듣습니까, 청취자 여러분! 우리 수령님, 우리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이 목소리를! 정녕 어버이 수령님의 이런 사랑의 품이 있어 이 땅 하늘과 바다 그 어디에나 우리 인민의 불편 모르는 행복의 려행길 활짝 열려졌고 그 려행길 우에 오춘화 로인과 같은 이런 행복의 웃음소리 높이높이 울려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 풍작거리는 노래소리가 뒤따랐다.
 
  달려라 달려라 렬차여 달려라
 
  기차소리 울리면 사랑하는…
 
  “음!”
 
  불씨에 울리는 령감의 높은 신음소리가 방송소리를 밀어내며 방 안에 진동했다.
 
  “소쩍, 소쩍…” 그동안 뜸해 있던 두견새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오씨는 말 못 할 아픈 사연을 피덩이로 내뱉는 듯한 그 소리가 령감의 가슴에서 올려 나오고 있는 갓만 같았다.
 
  눈 뻔히 뜨고 손녀의 다리와 자신의 허리뼈를 분질러트려야 했던 그 아픔이 어찌 골수에 사무쳐 오지 않으랴. 하물며 ‘행복의 려행길타령’이 상처를 마구 휘저어대고 있는 지금에이랴!…
 
  령감은 어제 손녀와 함께 병원에서 실려와 집에 눕게 되자 자기가 ㅂ역에서 겪었던 일을 자상히 돌려주었다. 그 말에 의하면 승용차 안에서 오씨의 머리에 떠올랐던 환각은 환각이 아니라 거의 현실 그대로였다. 다만 조금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개찰구 벽이 밀려난 것이 아니라 개찰구 출입문 네 개가 거의 동시에 나자빠진 것이였고 령감이 손녀를 업은 것이 아니라 가슴에 껴안은 채 인파에 깔려버렸다는 그것뿐이였다. 그 살풍경 속에서 배가 아프다던 임신 중의 그 새각씨는 어떻게나 되었는지? 하기야 그 관리 속에서 허리와 사지를 비틀리우고 락태를 하게 된 것이 어찌 령감 손녀나 그 새각씨뿐일라구…>
 
  이런 살풍경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1호 행사 때문에 ㅂ역에서 김일성이 탄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기차를 32시간이나 잡아두었다가 갑자기 개찰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오씨는 남편과 손녀를 역에다 두고 곧 해산할 딸을 위해 부근에 있는 동생집을 향해 걸어가다가 김일성이 탄 승용차를 만났고 그 일행의 승용차를 얻어타게 됐던 것이다. 이어지는 소설 내용이다.
 
  <그런데 합치면 구천에도 차고 넘칠 그 고통의 아우성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밖에선 지금 저처럼 ‘행복의 웃음’ 소리만이 누리를 울려대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결국은 량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우는 듯한 고통을 당한 오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가?
 
  그 어떤 진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오씨는 별안간 몸서리를 쳤다. 불시에 그 잔학한 마술을 부리고 있는 마귀의 영상이 눈앞에 눈앞에 확 떠올라서였다.
 
  유들유들한 살집이 엄청나면서도 그 행동거지가 여유작작할 대로 여유작작한 눈앞의 늙은 마귀!… 그 마귀는 금방 능란한 솜씨로 오씨를 기재로 하는 ‘행복의 웃음’이라는 마술을 끝낸 데 이어 이번엔 산원에서 해산한 오씨의 딸을 기재로 하는 또 한 차례의 같은 내용의 마술을 준비하느라 이리 어기적 저리 어기적 하고 있었다.
 
  오씨는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쳤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까지 바로 그 마귀의 마술 속에서 진실과는 판이한 완전히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솔제니친과 반디 두 사람 다 그것이 제도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폭력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위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몸보다 작품을 먼저 탈출시키다
 
반디는 마르크스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아들 때문에 평양에서 쫓겨나는 가족 이야기도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다.
  작가 반디는 현존하는 인류 최악의 노예제도 사회라고 할 수 있는 북한에서 자신이 탈출하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작품 먼저 탈출시켰다. 그가 속해 있는 폭압의 노예제 사회가 내부적 힘보다는 외부적 힘에 의해 더 빨리 변화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편소설집 머리글에서 그는 머리글을 대신한 시로 공산주의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이 시에서 ‘털보’는 얼굴에 털이 많았던 마르크스를 지칭하고 있는 말이다.
 
  <저 유럽의/ 옛 털보는 주장하기를/ 자본주의는 암흑천지요/ 공산주의는 광명천지라 하였거늘
 
  암흑천지에서만 빛날 운명인/ 광명천지의 나 반디는/ 만 천하에 고발하노라/ 그 암흑이 그믐밤이라면/ 천만길 먹물 속인/ 털보의 그 광명천지를!>
 
  단편소설집 《고발》의 첫 작품인 <탈북기>는 성실하고 똑똑한 가장이 출신성분 때문에 북한을 탈출해야만 하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나는 떨리는 손에 사본을 쥔 채 창가에 한참이나 멍청히 서 있었다.
 
  149호, 적대군중,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 등의 살벌한 글발이 눈앞에 뒤엉켜 도는 가운데 김선희가 하는 말이 다시 무섭게 울려와서였다.
 
  “글쎄 우리 세대주가 이런 사본을 빼돌린 것이 탄로되는 날엔 자기도 끝장이라며 하는 말이 149호라는 말에 있다는 거야. 그건 내각 결정 149호에 의해 이주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당에서 아주 역적으로 보며 대대로 계산하는 계층이라는 거야.”
 
  149호!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였다.
 
  도장도 그저 도장이 아니라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이었다. 옛날엔 노예들에게도 찍었다던 그런 무서운 철인이 지금 영호 아버지와 그의 삼촌에겐 물론, 여리고 여린 영호의 여린 잔등에까지 깊숙이 찍혀져 있는 것이였다.>
 
  반대로 <유령의 도시>는 피살자 유가족과 쟁쟁한 혁명학원 출신의 외교부 지도원인 고분녀 부부가 그 좋은 출신 성분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놀라서 경기를 하는 어린 아기 때문에 평양에서 쫓겨나 산간벽지로 유배를 떠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고분녀네 살림살이가 바로 그렇게 트럭에 실리우게 된 것은 어느 한 북행렬차가 떠나기 한두 시간을 앞둔 밤 11시경이었다. 물론 그들이 받은 판결 내용은 “…가정 혁명화에 등한하고 자녀 교양을 잘못했던 것으로 하여 행사에 주는 일을 저질렀을뿐더러 공산주의 시조인 맑스의 초상화를 비속화하고 수령님의 초상화를 솥뚜껑에 비기는 등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사업에서 심히 엄중한 과오를 하여…”였다.>
 
  <지척만리>는 여행의 자유가 없음으로 해서 겪는 한 가족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수봉은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세 차례나 받지만 번번이 여행증 발급을 받지 못한다. 하루는 술김에 무작정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가 체포를 당해 22일간 노동단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수봉은 아내가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가 너를 반갑지 않다는구나”하는 말에 “낳아준 어머니가 죽는대두 못 가보는 이 땅에서 아들이 필요하우? 아들이!”하며 절규한다. 그리고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우편통신원이 열려진 창문으로 전보 한 장을 들이밀었다. 자자구구 가슴을 허비는 글자가 두 사람의 눈을 찌르고 들었다.
 
  ‘모친사망’
 
  곡성은 울리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흐르는, 눈물보다 몇 곱절 더 진하고 독한 그 무엇에 전보장을 맞쥔 두 사람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을 뿐이였다.>
 
김정은이 지난 7월 26일 자칭 ‘전승절’ 행사에서 보여준 다양한 표정들. 반디는 김정은 시대의 참상도 기록하고 있다.
 
  일상의 것들을 소재 삼아 울림 더 커
 
김정일의 영결식에서 운구차량을 호위하고 있는 김정은. 반디는 소설과 시를 통해 북한 세습체제의 폭압성을 고발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직후의 장례식 분위기를 보여주는 소설도 있다. <무대>가 그것이다.
 
  <홍영표는 김숙이와의 치정관계를 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느라 아들을 기름 짜듯 하던 일이 떠오르자 “에이 썅!”하고 다시 중얼대며 턱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홱 흠쳐 뿌려댔다. 발길이 언제 집에 와닿았는지 알 수 없었다.
 
  “경훈이 안 왔소?”
 
  홍영표는 문을 열자 몸보다 먼저 말부터 쏘아드렸다.
 
  “글쎄 말예요. 이 비 속에.”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면서 안해 김선실이 사색을 지어보이며 하는 말이다.
 
  “근심두 팔자다.”
 
  “뭐요? 근심 안 하게 됐어요? 꽃 꺾으려 갔다가 오늘두 식료공장 사람이 둘이나 돌사태에 맞았대요. 어제 독사한데 물렸다던 남산인민학교 애는 오늘 아침에 끝내 죽구요.”
 
  “됐어, 됐어.”
 
  홍영표는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늘여놓는 것이 듣기 싫었다. 김일성에 대한 조의가 시작된 지 1주일도 못 되여 군안의 꽃밭이라 꽃밭은 모조리 설거지를 당해버리고 말았다. 가정들의 꽃밭은 물론 거리와 공원의 꽃밭 그 어디에서도 깉트레기 꽃 한송이 찾아볼 수 없었다.
 
  조의 첫 시기는 몰랐으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자기들의 조문회가 은밀히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루에 한번 조문은 누구나 지키는 철칙으로 되었을뿐더러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조문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군내 인구 12여만이 군당으로부터 인민학교에 이르기까지 단위별로 꾸려진 수백 개의 조의장들에 그렇게 꽃을 꺽어 들이다 나니 꽃밭의 꽃이 남아날 리 만무했다. 학교와 직장들에서는 인원을 뽑아 야생화 채취를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 단위에 하루 동안 필요한 만큼의 꽃을 따들여야 하는 것이 꽃 채취에 동원된 사람들의 하루 책임량이였다. 아이 어른들이 산판을 돌아쳤다 그런데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사고가 빈번했다.
 
  안해의 근심이 공연한 것은 아니였다, 그래도 홍영표의 입에서는 그냥 모진 말만 튀여 나왔다.
 
  “까짓, 그렇게 뒈져 없어지면 차라리 좋지비.”>
 
  반디는 이처럼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일들이기에 더 큰 비극으로 와닿는다. 사실적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고발이기 때문에 그 울림은 더 큰 것 같다.
 
  그런 점은 반디가 쓴 50편의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가 자신의 필명을 왜 ‘반디’로 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반디>라는 시도 있다.
 
  <얼룩진 누리가 보기 역겨워/ 밤에만 눈을 뜨는 아릿다운 별/ 접었던 나래를 맘것 펴고서/ 하얀 달빛 속을 헤염칩니다
 
  밝은 달 흰안개 죄없는 세계/ 온갖 잡색 사라진 이런 밤이면/ 내 심장의 반디도 불을 켜고서 하얀 세상 속을 날아봅니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자유
 
반디의 소설과 시를 입수한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
  김일성을 풍자한 시도 여럿 있다. <붉은 백성의 노래>와 <김주석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두 시를 연이어 소개한다.
 
  <수령님 수령님 수령님/ 당신은 하늘 우리는 벌레/ 아무런 벼락이나 다 내리십소/ 그저그저 사랑한단 그말만 말아줍쇼/ 그 작은 소원만을 들어준대도/ 쭉 물어 찢을 생각 안 나오리다.
 
  수령님 수령님 수령님/ 당신은 채찍 우리는 마소/ 맘대로 때리고 내모시십소/ 그저그저 굶지 않고 안 춥게만 해주십쇼/ 그 작은 소원만을 들어준대도/ 씽 받아 넘길 생각 안 나오리다.
 
  수령님 수령님 수령님/ 당신은 철쇄 우리는 노예/ 맘대로 얽어매고 묶으시십소/ 그저그저 눈 귀 입만 틀어막지 말아줍쇼/ 그 작은 소원만 들어준대도/ 콱 둘러메칠 생각 안 나오리다.>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 고삐만 툭 채여도 그 뜻을 제꺽 알고/ 좌로 우로 앞으로 씨엉씨엉 나가네/ 내 한생 총칼로 길들인 보람 있어/ 찍짹소린 애초 모르는 참 좋은 인민이네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 채짝만 쳐들어도 그 뜻을 제꺽 알고/ 돌발길 비탈길도 히엉히엉 오르네/ 내 한생 총칼로 길들인 보람 있어/ 찍짹소린 애초 모르는 참 좋은 인민이네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 헐입고 헐먹여도 천리만리 달리는/ 누구에게 선보여도 손색없는 인민이네/ 내 한생 총칼로 길들인 보람 있어/ 찍짹소린 애초 모르는 참 좋은 인민이네.>
 
  남한 김지하 시인이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5종류의 도적이라고 풍자한 시 <오적(五賊)>을 참고한 듯한 시도 있다. 제목도 <오적 타령>이다.
 
  <씨구씨구 씨구씨구 이놈 세상 망할씨구/ 먹물 같은 가슴 헤쳐 오적타령에 들어간다
 
  달구렝이 담 넘듯이 번개불에 콩 닦듯이/ 잘도잘도 해제낀다 나라공금 나라식량/ 당기관은 당당하게 소리치며 먹어대고/ 행정부는 행방 없이 엄벙덤벙 먹어댄다/ 코끼리 과자 먹듯 알방계 눈 감추듯/ 홀닥홀닥 다 삼킨다 백성들의 협낭까지/ 보위부는 보이잖게 살금살짝 해치우고/ 안전부는 안전하게 슬금슬금 해제낀다
 
  이 도적놈 저 도적놈 그중에도 왕도적은/ 배뚱뚱이 김부자놈 천하제일 명적이라/ 온 나라의 공장 농촌 한엉치에 깔고 앉아/ 백주에도 뚝뚝 뜯어 제맘대로 탕진한다
 
  씨구씨구 씨구씨구 이놈 세상 망할씨구/ 먹물 같은 가슴 터쳐 오적잡이에 떨쳐나세.>
 
  반디가 기다리는 것은 역시 자유다. 그는 자유에의 갈망을 시 <일편단심>, <긴긴 겨울밤>, <내 얼마나 그대를 사모하는지…> 등에 담고 있다. 애절하고 절박하다 못해 초연하기까지 하다. 세 편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진달레 꽃필 때 돌아오마고/ 돌아서 손 저주며 떠나간 님아/ 그대 없는 내 삶은 캄캄 그믐밤/ 살아서 보람 없는 치욕의 한생
 
  꽃나이에 헤어져 긴긴 40년/ 하루같이 기다린 못 잊을 님아/ 이제는 귀밑머리 희여졌어도/ 기다리는 내 마음은 꽃나이 그때
 
  생전에는 그대 품에 못 안긴대도/ 그대만을 사랑하는 변치않는 맘/ 기다리다 숨진대도 기다리리라/ 이 세상 삶의 품은 그대뿐이기에.>
 
  <그대 만나 반기다 꿈에서 깨면/ 먹물 같은 어둠만 빈방에 가득/ 잠들면 또 만날가 눈을 감아도/ 꿈조차 다시 없는 긴긴 겨울밤
 
  정녕 그대 없이도 살 수 있다면/ 이 아품을 버리리 그대 잊으리/ 내 진정 그대 없인 살 수 없기에/ 그리움에 목마르는 긴긴 겨울밤.>
 
  <때없이 바라보는 저 동구길이/ 두 눈을 멀게 해도 나는 좋아/ 내 얼마나 그대를 사모하는지
 
  기다리는 그것만도 행복하다오
 
  바람이 흔드는 대문소리에/ 천백 번 속아도 나는 좋아/ 내 얼마나 그대를 사모하는지/ 기다리는 그것만도 행복하다오
 
  영원히 못 온다는 소식 온대도/ 날마다 동구길 나는 보리라/ 내 얼마나 그대를 사모하는지/ 기다리는 그것만도 행복하다오.>
 
  작가는 “기다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초연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대 만나 반기다 꿈에서 깨면 먹물 같은 어둠만 빈방에 가득”할 뿐인 게 그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디는 자신의 원고를 건네주며 “내 작품이 남쪽에서 출판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폭압적 북한사회를 제대로 봐달라는 간절한 당부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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