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年 국내 곡물 자급률 24%… 쌀 자급률 100%도 깨져
⊙ 밀 생산 10% 감소 땐 가격 3배 상승, 쌀·대두·옥수수도 2배 이상
⊙ 제주도 면적 4배에 달하는 연해주 유휴 농지
⊙ “물류 인프라 없어 지리적 이점 못 느껴”
⊙ 現代중공업, 여의도 81배 달하는 농장 운영
⊙ 밀 생산 10% 감소 땐 가격 3배 상승, 쌀·대두·옥수수도 2배 이상
⊙ 제주도 면적 4배에 달하는 연해주 유휴 농지
⊙ “물류 인프라 없어 지리적 이점 못 느껴”
⊙ 現代중공업, 여의도 81배 달하는 농장 운영
- 파종 전 밭갈이를 하고 있다. 현대 농장의 대형 트랙터는 12시간 기준 70~80ha를 작업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곡물을 수입하는 데 5조5000억원을 썼다. 연간 국내 곡물 소비량은 약 2000만t인데, 공급이 수요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1년 국내 곡물 자급률은 24%다. 쌀조차 100% 자급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쌀 수요는 516만4000t이었지만, 생산은 429만5000t에 그쳤다. 83%다. 그 밖에 주요 곡물 자급률은 ▲콩 7.9% ▲보리 7.9% ▲옥수수 0.9% ▲밀 0.9%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곡물 해외 조달이 불안정해지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UN, “올해 중대한 식량 위기 올 수 있다”
그런데 국제 곡물수급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세계 인구는 해마다 1억명씩 늘어난다. 경제수준이 높아진 중국의 육류 소비가 급증하자 가축 사육을 위한 사료용 곡물 수요도 늘었다. ‘바이오디젤’ 제조에 투입되는 곡물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 및 병해충 증가, 재배 적지(適地) 변화, 이상기후로 인한 농경지의 홍수·가뭄 피해 증가 등 곡물 생육에 부정적 요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유엔(UN)은 “2012년 기상이변으로 주요 식량 수출국의 곡물 재고량이 위험 수준으로 낮아져 올해에 중대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기후변화가 식량공급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대응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곡물 감산이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에 따르면 세계 밀 생산량이 10% 감소하면 국제시장가격은 3배로 뛸 것으로 예측됐다. 쌀, 대두, 옥수수도 생산량이 10% 줄 경우 각각의 가격은 2.4배, 2.3배, 2.1배 상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폭 감산에도 가격이 2~3배로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곡물의 경우 생산기간이 길고 계절적 특성이 있어 수요와 공급이 가격보다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물량이 조금만 많으면 가격이 폭락하고, 적으면 폭등한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식량위기가 발생하면 자급률이 낮은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2~3배 늘어난다.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된다 해도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2009년 <해외농업개발 10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2018년까지 주요 곡물 수입량의 10%(138만t)를 생산할 수 있는 38만ha의 해외농지 확보를 목표로 세웠다. 곡물별 도입 목표는 ▲밀 12% ▲대두 9% ▲옥수수 10% 등이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는 융자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농업 부문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
해외농업개발을 위탁·시행하는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16개국에서 110개사(社)가 농장 운영, 곡물 유통 부문에 진출했다. 이들 업체가 해외에 확보한 부지는 약 30만ha, 이 중 절반 이상이 러시아 연해주 농지다.
연해주는 지리적 근접성, 넓은 경작 가능 면적, 도로 및 개간된 경지 등 대형 농장에 필요한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어 해외 식량기지 입지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駐)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따르면 2013년 5월 현재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자원개발, 이지바이오그룹 계열사 ‘한국 축산의 희망 서울사료’(서울사료) 등 총 7개 기업 및 단체가 연해주에 진출해 대두,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다.
이상기후 발생으로 파종, 수확 어려울 때도
5월 28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현지 취재차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 극동 관구 9개 주 중의 하나인 연해주는 한때 발해(渤海)의 강역이었다. 구한말 우리 동포들이 이주해 벼농사를 지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 항일투쟁을 벌였던 독립운동사의 주요 무대다.
연해주 면적은 16만4673km²다. 러시아 내에서는 국토 면적의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주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남한의 1.6배나 되는 큰 땅이다. 이 중 농업용지는 164만8400ha(49억8600만평)다. 여기서 순수 경작 가능 면적은 75만1000ha이지만, 실제 경작률은 50% 선이다. 제주도 넓이의 4배에 해당하는 농지를 놀리고 있는 셈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2시간30분이 지나자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연해주 주도(州都)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철도의 종점이자 러시아 대륙의 관문이다. 러시아 극동함대 사령부가 주둔하는 군항이면서 연해주 최대 어업기지이기도 하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제법 굵은 비가 내렸고, 날씨도 쌀쌀했다. 당시 시각은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오후 2시였지만, 온도는 13~14℃였다. 현지인들은 코트나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출국 당시 후덥지근했던 한국 날씨와 대비됐다.
공항에 마중 나온 이창준 (재)국제농업개발원 연해주 지부 대표는 “지금 한창 파종해야 할 때인데, 비가 와서 농장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러시아 거주 17년째인, 이 대표는 연해주에서 농업컨설팅을 하고 있다.
북위 42~48도에 있는 연해주는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날이 적다. 이에 따라 각 작업 일정도 국내보다 짧은 편이다. 모든 걸 적기에 빨리 끝내야 하는데, 파종 기간에 비가 내리면 트랙터로 작업할 수 없어 손실이 발생한다.
배수가 제대로 안 된 밭에 대형 트랙터가 들어가면 수렁에 빠져 이동하기 어렵다. 파종을 강행해도 기껏 뿌린 씨앗이 흙과 함께 트랙터 바퀴에 달라붙어 버리기 일쑤다.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일정이 지연되면, 그만큼 파종 면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초 계획한 면적에 파종한다고 해도 적기에 한 게 아니라서 좋은 작황을 기대하긴 어렵다.
현지 농장들이 파종 기간에만 일기를 걱정하는 건 아니다. 15~30일 정도밖에 안 되는 수확 기간에도 날씨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최근 연해주에선 강수량이 증가하고, 수확기에 폭설이 내리는 등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해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다가도 빗소리 나면 놀라서 깬다”
이틀 후 아침, 날이 갰다. 오전 8시인데도 눈이 아플 정도로 햇볕은 강렬했다. 농업법인들이 모여 있는 연해주 제2의 도시 우수리스크시(市)로 출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와의 거리는 약 110km이지만, 이동시간은 비포장 구간이 많아 차량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구경했다. 여기저기서 소규모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비계(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가설물)를 설치한 건물들이 자주 보였다.
그런데 인부들의 외모가 현지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양계 얼굴을 한 그들은 모두 키가 작고, 몸은 마르고, 햇볕에 그을린 검붉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주민 대다수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계 백인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인부들의 외모는 어울리지 않았다. 동행한 이창준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송출한 노동자들이다.
지난해 10월, 현지 일간지 《트루드》가 러시아 연방이민국이 펴낸 <2012년 상반기 러시아의 사회·경제 현황에 관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에 체류하는 북한 노동자는 2만여 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연해주에 체류하는 북한 노동자는 약 4700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3000여 명이 주로 건설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의 임금에서 ▲김일성 부자 우상화 자금(충성자금) ▲보험료 ▲숙식비 등의 명목으로 90% 이상 가로채 ‘김정은 비자금’으로 관리한다. 김정은이 해외 북한 노동자에게서 거둬들이는 돈은 연간 1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오전 10시30분,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1886년 우수리 지방의 농업중심지로 건설된, 이곳은 역내에 대규모 농장이 산재할 뿐 아니라, 연해주 곡창지대인 미하일로프카, 호롤, 항카군(郡) 등이 인접해 있다. 이에 따라 곡물을 다른 지역으로 수송하기 위한 철도가 발달했다. 시베리아 철도(TSR)와 중국 하얼빈행(行) 철도가 이곳에서 갈라진다.
한편 우수리스크는 연해주 항일투쟁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代父)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던 최재형 선생과, 3·1운동 당시 연해주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항일유격전을 펼친 문창범 선생의 집,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 등이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고려인문화센터에 들렀다. 2009년 10월 문을 연 문화센터에는 한인 이주사를 보여주는 전시관, 공연장, 병원, 식당 등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에코호즈 사무실로 갔다.
박광순 에코호즈 대표가 기자 일행을 맞았다. 그에게 인사차 날씨 얘기부터 꺼냈다. 박 대표는 “오늘 비가 그쳤지만, 밭에 물이 빠지려면 하루 정도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트랙터 본체만 5억원, 부속품까지 합하면 대당 10억원입니다. 그런 장비들이 일 못하고 서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일 넣어 보고 작업할 수 있으면 해야죠. 연해주에 오기 전엔 일기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는데, 요즘엔 자다가도 빗소리가 나면 놀라서 깨게 됩니다.”
에코호즈, 서울사료 등에 年 10만t 판매 목표
에코호즈는 서울사료가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과 공급기지를 기초로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2008년 현지에 설립한 지주사(社)다. 산하에 4개 영농법인이 있는데, 한 영농법인이 평균 2000ha(605만평) 규모의 단일농장을 경작한다.
에코호즈는 우수리스크 인근 농지 1만3239ha(소유 3279ha, 임차 9960ha)를 확보하고, 지난해 8738ha를 경작했다. 수확량은 ▲옥수수 4686t ▲콩 5672t ▲하곡(보리, 귀리, 밀) 1594t 등 총 1만1952t이다.
지난 3월, 모기업 서울사료는 에코호즈로부터 옥수수 3100t을 구매, 국내로 반입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직접 생산한 곡물이라도 국내 반입을 위해서는 300~400%대의 높은 관세를 물어야 했다.
서울사료의 옥수수 반입은 올해 초 농림부 수입관리제도 개선에 따라 옥수수 저율관세할당(TRQ) 추천기관으로 선정된 해외농업개발협회를 통해 무관세 혜택을 받고 들여온 첫 사례다.
저율관세할당이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높은 관세율로 수입 개방한 농축산물 중 일부 품목에 대해 최소한의 국내시장 접근을 보장키 위한 목적에서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주로 사료용 옥수수나 대두처럼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거나, 수요보다 국내 생산이 부족한 품목이 그 대상이다.
에코호즈는 올해 9094ha를 경작해 ▲옥수수 1만8000t ▲콩 1800t ▲하곡 1740t ▲조사료(목초, 건초) 2만4000t 등 총 4만5680t을 생산할 계획이다. 다음은 박광순 대표와의 문답이다.
—여기서 생산한 물량은 전부 서울사료가 매입하는 겁니까.
“이지바이오 계열에 서울사료, 도드람사료가 있습니다. 두 회사에서 생산하는 배합사료가 연간 100만t인데, 여기에 옥수수 10만t 정도가 들어갑니다. 따라서 올해 옥수수 생산 계획은 약 2만t인데, 장기적으론 연간 10만t을 수확하려고 합니다.”
—콩은 안 사 갑니까.
“러시아는 콩에 수출관세 20%를 매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콩은 현지 판매를 하고 있는데, 수요가 많아 현금화가 쉬워요. 작년에 생산한 물량을 거의 팔았습니다.”
—서울사료의 옥수수 매입은 가격경쟁력을 고려한 겁니까, 같은 계열이라서 사 준 겁니까.
“현지 판매 가격은 국제시세와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갈 때는 물류비가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시세보다 조금 더 받았습니다.”
—한국과 가까운데 왜 물류비가 많이 듭니까.
“연해주엔 물류 인프라가 없어요. 지리적으로 아무리 가까워도, 그 이점이 물류비로 상쇄되는 거죠. 지금 상태에선 다른 옥수수 산지보다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러시아, 곡물터미널 건설 계획 밝혔지만…
농업 현장을 보기 위해 박광순 에코호즈 대표와 함께 우수리스크 근처 바가틀카 농장에 갔다. 과거 이곳은 감자, 보리, 귀리를 재배하고 축산도 병행하는 집단농장이었다. 전체 규모는 6000ha이고, 현재 경작 면적은 그 절반가량이다. 집단농장 시절에는 300명이 일했지만, 현재 농장 직원은 27명이다. 농장에선 다음 날 작업을 위해 장비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미하일 키릴로비치 농장장의 안내로 농장 전경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미하일 씨는 1976년 연해주로 이주, 바가틀카 집단농장에서 일했다. 그에 따르면 소련이 무너지고 농장은 폐허가 됐다. 농민들은 장비를 집에 가져갔고, 종자는 내다 팔았다. 논밭엔 잡초가 우거졌다. 다음은 미하일 씨의 말이다.
“한국인들이 여기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쓰레기만 쌓여 있는 폐허였거든요. 제대로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면 예전 모습을 점차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과 문화적 차이는 없습니까.
“농장장 제의를 받았을 때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죠. 집단농장 시절에는 군대처럼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염려했던 것과 달리 일하면서 자연스레 적응하게 됐습니다.”
박 대표에 따르면 물류비 상승 요인은 물류 인프라와 물량 부족이다. 연해주 수출항에는 수확 농산물을 보관하고, 자동으로 선적하는 곡물터미널이 없어 물류비가 많이 든다.
저장 시설이 없으므로 곡물을 한국으로 보내려면 농장에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까지 트럭으로 곡물을 운송하고, 배에 싣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선적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이는 용선료 등 물류비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벌크선(미포장 화물적재 전용선) 1척을 다 채우지 못하는 옥수수 생산량도 문제다. 지난 3월 에코호즈의 옥수수 3100t을 싣고 간 벌크선은 6000t급이다. 이는 단위 무게당 용선료를 2배 지불한 셈이다. 다음은 박 대표의 말이다.
“여기서 옥수수는 수요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한국으로 가져가려고 재배한 거니까 아직 큰 고민은 안 하는데, 투자회사라고 해서 계속 비싸게 살 수는 없잖아요. 물류 부문이 해결돼야 연해주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이 인접한 자루비노항에 2016년 수출시작을 목표로 2300여억원을 투자해 연간 800만t 수출과 200만t 수입을 위한 곡물터미널 건설 프로젝트를 현재 진행 중이다. 완공되면 향후 국내로의 곡물 반입이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더디게 진행되는 러시아 행정을 감안할 때 ‘2016년 완공’이 계획대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現代는 연해주 농업진출의 성공모델”
이튿날 오후, 우수리스크 북쪽으로 70km 떨어진 호롤군에 갔다. 현대자원개발은 호롤군에 현대호롤아그로(제1농장), 미하일로프카에 현대미하일로프카아그로(제2농장)를 운영하고 있다. 농장 총 면적은 2만3576ha로, 여의도 면적의 81배에 달한다. 현지 지주사는 현대프리모리예(현대)이며, 농지 소유·임차 비율은 각각 78%, 22%다.
현대는 지난해 6000ha를 경작해 ▲콩 6500t ▲옥수수 4000t을 수확했다. 올해 경작 계획은 7500ha다.
현대 농장으로 가는 길엔 이동 중이란 걸 느끼게 해 줄 지형지물이 없었다. 멀리 지평선만 보였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 때, 현대 로고가 그려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제1농장 입구를 알리는 것이었다. 2009년 현대자원개발은 뉴질랜드계 러시아인 마틴 테이트의 농장을 인수해 제1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준호 현대프리모리예 부법인장이 파종 작업을 하는 구역으로 안내했다.
제1농장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차로 약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실제 농장을 관통하는 12km 도로를 따라 농장을 구경하는 데도 20~30분이 흘렀다. 도로 옆에는 일찍 파종을 끝내 옥수수싹이 파릇파릇하게 올라온 밭도 있었다.
최 부법인장은 “작년에 옥수수 경작 면적은 800ha로 경작 비중이 작았던 데다, 수확기에 폭설이 내려 10% 손실을 봤다”면서도 “일부 구역에선 6t/ha, 전체적으로 5t/ha 이상 수확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옥수수 재배는 5t/ha를 손익분기점으로 잡는다. 최 부법인장과의 문답이다.
—눈을 맞으면 옥수수 상품성이 떨어집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옥수숫대가 꺾이거나 땅에 떨어져 수확을 못 했을 뿐, 품질엔 차이가 없습니다. 실제 검사에서 단백질 함량이 높아 사료용으로서 품질이 좋은 것으로 나와 최고가에 팔았습니다.”
—먹어 본 적 있습니까. 객관적으로 맛이 어떻습니까.
“맛은 괜찮습니다. 다만, 사료용은 수분함량이 14% 이하일 때 수확하는 거라 식용으로 하려면 조금 일찍 거둬야 합니다. 이제 사일로를 갖췄기 때문에 수분함량이 조금 많더라도 빨리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사일로란, 곡류를 보관하는 탑 형태의 저장고를 말한다. 현대가 미국에서 들여온 사일로 4기는 저장용량 1만2000t으로, 정선(精選), 건조, 탈곡 기능을 갖고 있다.
—판매는 어디로 합니까.
“현지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로 들여가는 건 없습니까.
“장기적으론 그렇게 해야겠지만, 지금은 항만에 관련 인프라가 없고, 내륙운송비가 많이 들어 현지 판매가 수익성 측면에서 좋습니다.”
“타국 진출할 때 연해주 영농 경험 유용할 것”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배상두 농무관은 “현대 농장은 토지 및 노동 생산성이 높다”며 “연해주 농업 진출의 성공모델”이라고 평했다. 이와 관련, 마침 한국에서 연해주 현장을 방문한 양봉진(梁奉鎭) 현대자원개발 사장에게 현대 농장의 성과와 전망에 대해 물었다.
—현대자원개발이 연해주에 농장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향후 식량위기에 대비해 해외 식량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죠. 여기엔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습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농업에 관심이 많았잖습니까. 서산농장도 만들었고요. 오너 정몽준(鄭夢準) 의원도 아버지의 그 뜻을 이어받아 농사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연해주 농장을 제2 서산농장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자원개발이 연해주 농업의 성공모델”이라는 평가가 있던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農)’자가 붙으면 쉽게 생각하는데, 해외농업은 단순한 농사가 아닙니다. 장치산업이에요. 파종하고, 수확하고, 제초하고, 비료 살포하고, 밭을 가는 작업이 100% 장비로 이뤄지는 기계농업입니다. 따라서 기계를 운용하는 기사들에 대한 노무관리를 잘하는 회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중공업의 경험이 있는 우리 회사가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직 이익을 못 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보완해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요.
“현재 상태에선 매출액이 100억원도 안 됩니다. 현대중공업의 조그만 부서 매출보다도 못한 상황이에요. 일단 돈을 벌어야 하는 게 기업이니까 수익성 제고를 해야겠죠. 농장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비료 살포, 병충해 방제, 종자 선정 등을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생산관리, 원가관리 등을 통해 원가를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당초 진출 목적대로 현대농장이 ‘해외 식량기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식량안보 차원에서 얘길 한다면, 우리에게 곡물이 필요할 때 들여올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현지에서 곡물 공급이 모자라거나,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면 수출을 규제할 수 있어요. 그때를 대비해서 ‘한국은 금수조치에서 제외한다’는 예외조항을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건 농림부에서 할 게 아니라, 외교부에서 해 줘야죠. 또 땅을 사고, 장비를 갖추는 데 돈이 많이 드니까 돈 없는 농림부보다 기획재정부가 진출기업들을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해외자원 개발한다고 수십억 달러씩 쓰는데, 농업개발도 그에 못지않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입니다.”
—현대자원개발의 향후 해외농업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식량안보 측면에서 보면 연해주로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크라이나, 남미 농장 확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때 연해주에서 쌓은 영농 경험, 경영 노하우가 유용하겠죠. ”
1명이 100만평 경작하는 現代 농장
현장에선 450마력짜리 트랙터 3대가 파종 전 제초제를 뿌린 밭을 갈아엎고 있었다. 최 부법인장에 따르면 파종만 할 경우 트랙터 1대당 12시간 기준으로 80ha(24만2000평)를 작업할 수 있다. 경운(밭갈이), 비료·제초제 살포가 이뤄질 경우엔 70ha다. 현대농장은 다른 곳처럼 흩어져 있지 않고 밀집돼 있어 작업 효율이 좋다고 한다.
최 부법인장은 “콩, 옥수수 재배 기준으로 농기계사 15명만 있으면 5000ha 경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명이 100만평을 맡는 셈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대형 장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비가 고장이 났을 때 즉시 정비해야 하지만, 이는 연해주 여건상 어려운 일이다. 현지에는 단순 고장이라고 해도 정비인력이 부족해 신속 대처가 어렵다.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 9000km 이상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공수하는 데 수개월이 걸린다. 가까운 중국에서 구해 와도 경작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는 농기계사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에서 신식 농기계를 도입할 때마다 농기계사를 미국 판매회사에 연수를 보내 정비교육을 받게 한다. 예비부품도 창고를 따로 만들어 비축해 놓는다.
이창준 대표는 “자금력 있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현재 연해주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농장 중에서 이렇게 부품을 갖춘 곳은 현대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공모델’이라는 현대조차 지난해 매출이 50억원에 그쳐 적자를 본 상황이다. 앞서 말한 물류 인프라 문제도 있지만, 연해주 농업의 생산성이 미국(콩 2.7t/ha, 옥수수 7.7t/ha) 등 세계 주요 곡물산지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해외농업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현지에서 농업 컨설팅을 하는 장민석 동북아평화연대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 농업이 생산성 면에서 혁명적 발전을 할 때 연해주는 퇴보했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 농장들이 방치됐으니까요. 그 땅에 한국 기업들이 들어와서 개간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럼에도 면적당 산출량은 러시아 농장들의 2배 가까이 돼요. 아직 초기이고 발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생산성을 두고 평가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다른 사업처럼 단기간에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생산성이 떨어진다면, 굳이 연해주에 진출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닙니까.
“생산성만 보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미국보다 생산성이 떨어집니다만, 우리 기업들이 그쪽에 진출하려면 토지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아십니까. 그걸 생각해야죠. 대규모 농지를 이렇게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배상두 농무관이 집계한 세계 주요 곡물 산지들의 1ha당 평균 토지구입비는 ▲독일 1만1000달러 ▲미국 9000달러 ▲러시아 서부지역 1300달러 등이다.
이에 비해 연해주 땅값은 매우 저렴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연해주 농지임차료는 1ha당 1~1.5달러다.
“곡물유통과 가공에도 관심 가져야”
장민석 소장은 “우리 기업들이 너무 농장에만 매몰돼 있는 것도 문제”라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기업들이 경작 면적을 늘리고 싶어도 판로가 없어서 못한다고 해요. 한국으로 수출할 때는 물류비, 관세 문제가 있고, 현지에선 큰 소비시장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에 보낼 때 꼭 알곡이어야 할 필요는 없거든요. 예를 들어 대두를 콩기름으로 가공해 보내면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물류비는 줄일 수 있죠. 관세도 가공식품은 높지 않으니까 문제 될 게 없어요. 옥수수도 여기서 사료로 만들어 보내는 거예요. 진출 기업들의 종합적인 사업계획이 필요합니다. 연해주 농업은 생산, 유통, 가공이 결합해야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이창준 대표도 “국내 기업들이 농장 운영에만 집중하지 말고, 곡물 유통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연해주에 유휴 농지는 많은데, 생산성, 유통 가능성 측면에서 세밀하게 따지면 쓸 만한 땅이 얼마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여기서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베리아산(産) 곡물을 어떻게 끌어올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시베리아는 러시아 곡물 생산의 20%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여기서 일부만 끌어와도 식량안보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습니다.”⊙
후원=
2011년 국내 곡물 자급률은 24%다. 쌀조차 100% 자급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쌀 수요는 516만4000t이었지만, 생산은 429만5000t에 그쳤다. 83%다. 그 밖에 주요 곡물 자급률은 ▲콩 7.9% ▲보리 7.9% ▲옥수수 0.9% ▲밀 0.9%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곡물 해외 조달이 불안정해지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UN, “올해 중대한 식량 위기 올 수 있다”
그런데 국제 곡물수급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세계 인구는 해마다 1억명씩 늘어난다. 경제수준이 높아진 중국의 육류 소비가 급증하자 가축 사육을 위한 사료용 곡물 수요도 늘었다. ‘바이오디젤’ 제조에 투입되는 곡물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 및 병해충 증가, 재배 적지(適地) 변화, 이상기후로 인한 농경지의 홍수·가뭄 피해 증가 등 곡물 생육에 부정적 요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유엔(UN)은 “2012년 기상이변으로 주요 식량 수출국의 곡물 재고량이 위험 수준으로 낮아져 올해에 중대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기후변화가 식량공급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대응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곡물 감산이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에 따르면 세계 밀 생산량이 10% 감소하면 국제시장가격은 3배로 뛸 것으로 예측됐다. 쌀, 대두, 옥수수도 생산량이 10% 줄 경우 각각의 가격은 2.4배, 2.3배, 2.1배 상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폭 감산에도 가격이 2~3배로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곡물의 경우 생산기간이 길고 계절적 특성이 있어 수요와 공급이 가격보다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물량이 조금만 많으면 가격이 폭락하고, 적으면 폭등한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식량위기가 발생하면 자급률이 낮은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2~3배 늘어난다.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된다 해도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2009년 <해외농업개발 10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2018년까지 주요 곡물 수입량의 10%(138만t)를 생산할 수 있는 38만ha의 해외농지 확보를 목표로 세웠다. 곡물별 도입 목표는 ▲밀 12% ▲대두 9% ▲옥수수 10% 등이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는 융자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농업 부문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
해외농업개발을 위탁·시행하는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16개국에서 110개사(社)가 농장 운영, 곡물 유통 부문에 진출했다. 이들 업체가 해외에 확보한 부지는 약 30만ha, 이 중 절반 이상이 러시아 연해주 농지다.
연해주는 지리적 근접성, 넓은 경작 가능 면적, 도로 및 개간된 경지 등 대형 농장에 필요한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어 해외 식량기지 입지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駐)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따르면 2013년 5월 현재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자원개발, 이지바이오그룹 계열사 ‘한국 축산의 희망 서울사료’(서울사료) 등 총 7개 기업 및 단체가 연해주에 진출해 대두,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다.
이상기후 발생으로 파종, 수확 어려울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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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 연해주 항일운동사를 말해 준다. |
연해주 면적은 16만4673km²다. 러시아 내에서는 국토 면적의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주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남한의 1.6배나 되는 큰 땅이다. 이 중 농업용지는 164만8400ha(49억8600만평)다. 여기서 순수 경작 가능 면적은 75만1000ha이지만, 실제 경작률은 50% 선이다. 제주도 넓이의 4배에 해당하는 농지를 놀리고 있는 셈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2시간30분이 지나자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연해주 주도(州都)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철도의 종점이자 러시아 대륙의 관문이다. 러시아 극동함대 사령부가 주둔하는 군항이면서 연해주 최대 어업기지이기도 하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제법 굵은 비가 내렸고, 날씨도 쌀쌀했다. 당시 시각은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오후 2시였지만, 온도는 13~14℃였다. 현지인들은 코트나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출국 당시 후덥지근했던 한국 날씨와 대비됐다.
공항에 마중 나온 이창준 (재)국제농업개발원 연해주 지부 대표는 “지금 한창 파종해야 할 때인데, 비가 와서 농장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러시아 거주 17년째인, 이 대표는 연해주에서 농업컨설팅을 하고 있다.
북위 42~48도에 있는 연해주는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날이 적다. 이에 따라 각 작업 일정도 국내보다 짧은 편이다. 모든 걸 적기에 빨리 끝내야 하는데, 파종 기간에 비가 내리면 트랙터로 작업할 수 없어 손실이 발생한다.
배수가 제대로 안 된 밭에 대형 트랙터가 들어가면 수렁에 빠져 이동하기 어렵다. 파종을 강행해도 기껏 뿌린 씨앗이 흙과 함께 트랙터 바퀴에 달라붙어 버리기 일쑤다.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일정이 지연되면, 그만큼 파종 면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초 계획한 면적에 파종한다고 해도 적기에 한 게 아니라서 좋은 작황을 기대하긴 어렵다.
현지 농장들이 파종 기간에만 일기를 걱정하는 건 아니다. 15~30일 정도밖에 안 되는 수확 기간에도 날씨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최근 연해주에선 강수량이 증가하고, 수확기에 폭설이 내리는 등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해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다가도 빗소리 나면 놀라서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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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순 에코호즈 대표(오른쪽)와 미하일 키릴로비치 농장장. 박 대표는 “생산량을 점차 늘려 향후 옥수수 수요 전량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구경했다. 여기저기서 소규모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비계(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가설물)를 설치한 건물들이 자주 보였다.
그런데 인부들의 외모가 현지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양계 얼굴을 한 그들은 모두 키가 작고, 몸은 마르고, 햇볕에 그을린 검붉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주민 대다수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계 백인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인부들의 외모는 어울리지 않았다. 동행한 이창준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송출한 노동자들이다.
지난해 10월, 현지 일간지 《트루드》가 러시아 연방이민국이 펴낸 <2012년 상반기 러시아의 사회·경제 현황에 관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에 체류하는 북한 노동자는 2만여 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연해주에 체류하는 북한 노동자는 약 4700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3000여 명이 주로 건설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의 임금에서 ▲김일성 부자 우상화 자금(충성자금) ▲보험료 ▲숙식비 등의 명목으로 90% 이상 가로채 ‘김정은 비자금’으로 관리한다. 김정은이 해외 북한 노동자에게서 거둬들이는 돈은 연간 1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오전 10시30분,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1886년 우수리 지방의 농업중심지로 건설된, 이곳은 역내에 대규모 농장이 산재할 뿐 아니라, 연해주 곡창지대인 미하일로프카, 호롤, 항카군(郡) 등이 인접해 있다. 이에 따라 곡물을 다른 지역으로 수송하기 위한 철도가 발달했다. 시베리아 철도(TSR)와 중국 하얼빈행(行) 철도가 이곳에서 갈라진다.
한편 우수리스크는 연해주 항일투쟁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代父)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던 최재형 선생과, 3·1운동 당시 연해주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항일유격전을 펼친 문창범 선생의 집,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 등이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고려인문화센터에 들렀다. 2009년 10월 문을 연 문화센터에는 한인 이주사를 보여주는 전시관, 공연장, 병원, 식당 등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에코호즈 사무실로 갔다.
박광순 에코호즈 대표가 기자 일행을 맞았다. 그에게 인사차 날씨 얘기부터 꺼냈다. 박 대표는 “오늘 비가 그쳤지만, 밭에 물이 빠지려면 하루 정도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트랙터 본체만 5억원, 부속품까지 합하면 대당 10억원입니다. 그런 장비들이 일 못하고 서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일 넣어 보고 작업할 수 있으면 해야죠. 연해주에 오기 전엔 일기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는데, 요즘엔 자다가도 빗소리가 나면 놀라서 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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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항 전경. 박광순 대표는 “연해주 수출항에 곡물 터미널이 없어 국내 반입에 어려움이 많다”며 “지금 상태에선 연해주의 지리적 이점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
에코호즈는 우수리스크 인근 농지 1만3239ha(소유 3279ha, 임차 9960ha)를 확보하고, 지난해 8738ha를 경작했다. 수확량은 ▲옥수수 4686t ▲콩 5672t ▲하곡(보리, 귀리, 밀) 1594t 등 총 1만1952t이다.
지난 3월, 모기업 서울사료는 에코호즈로부터 옥수수 3100t을 구매, 국내로 반입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직접 생산한 곡물이라도 국내 반입을 위해서는 300~400%대의 높은 관세를 물어야 했다.
서울사료의 옥수수 반입은 올해 초 농림부 수입관리제도 개선에 따라 옥수수 저율관세할당(TRQ) 추천기관으로 선정된 해외농업개발협회를 통해 무관세 혜택을 받고 들여온 첫 사례다.
저율관세할당이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높은 관세율로 수입 개방한 농축산물 중 일부 품목에 대해 최소한의 국내시장 접근을 보장키 위한 목적에서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주로 사료용 옥수수나 대두처럼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거나, 수요보다 국내 생산이 부족한 품목이 그 대상이다.
에코호즈는 올해 9094ha를 경작해 ▲옥수수 1만8000t ▲콩 1800t ▲하곡 1740t ▲조사료(목초, 건초) 2만4000t 등 총 4만5680t을 생산할 계획이다. 다음은 박광순 대표와의 문답이다.
—여기서 생산한 물량은 전부 서울사료가 매입하는 겁니까.
“이지바이오 계열에 서울사료, 도드람사료가 있습니다. 두 회사에서 생산하는 배합사료가 연간 100만t인데, 여기에 옥수수 10만t 정도가 들어갑니다. 따라서 올해 옥수수 생산 계획은 약 2만t인데, 장기적으론 연간 10만t을 수확하려고 합니다.”
—콩은 안 사 갑니까.
“러시아는 콩에 수출관세 20%를 매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콩은 현지 판매를 하고 있는데, 수요가 많아 현금화가 쉬워요. 작년에 생산한 물량을 거의 팔았습니다.”
—서울사료의 옥수수 매입은 가격경쟁력을 고려한 겁니까, 같은 계열이라서 사 준 겁니까.
“현지 판매 가격은 국제시세와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갈 때는 물류비가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시세보다 조금 더 받았습니다.”
—한국과 가까운데 왜 물류비가 많이 듭니까.
“연해주엔 물류 인프라가 없어요. 지리적으로 아무리 가까워도, 그 이점이 물류비로 상쇄되는 거죠. 지금 상태에선 다른 옥수수 산지보다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러시아, 곡물터미널 건설 계획 밝혔지만…
농업 현장을 보기 위해 박광순 에코호즈 대표와 함께 우수리스크 근처 바가틀카 농장에 갔다. 과거 이곳은 감자, 보리, 귀리를 재배하고 축산도 병행하는 집단농장이었다. 전체 규모는 6000ha이고, 현재 경작 면적은 그 절반가량이다. 집단농장 시절에는 300명이 일했지만, 현재 농장 직원은 27명이다. 농장에선 다음 날 작업을 위해 장비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미하일 키릴로비치 농장장의 안내로 농장 전경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미하일 씨는 1976년 연해주로 이주, 바가틀카 집단농장에서 일했다. 그에 따르면 소련이 무너지고 농장은 폐허가 됐다. 농민들은 장비를 집에 가져갔고, 종자는 내다 팔았다. 논밭엔 잡초가 우거졌다. 다음은 미하일 씨의 말이다.
“한국인들이 여기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쓰레기만 쌓여 있는 폐허였거든요. 제대로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면 예전 모습을 점차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과 문화적 차이는 없습니까.
“농장장 제의를 받았을 때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죠. 집단농장 시절에는 군대처럼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염려했던 것과 달리 일하면서 자연스레 적응하게 됐습니다.”
박 대표에 따르면 물류비 상승 요인은 물류 인프라와 물량 부족이다. 연해주 수출항에는 수확 농산물을 보관하고, 자동으로 선적하는 곡물터미널이 없어 물류비가 많이 든다.
저장 시설이 없으므로 곡물을 한국으로 보내려면 농장에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까지 트럭으로 곡물을 운송하고, 배에 싣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선적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이는 용선료 등 물류비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벌크선(미포장 화물적재 전용선) 1척을 다 채우지 못하는 옥수수 생산량도 문제다. 지난 3월 에코호즈의 옥수수 3100t을 싣고 간 벌크선은 6000t급이다. 이는 단위 무게당 용선료를 2배 지불한 셈이다. 다음은 박 대표의 말이다.
“여기서 옥수수는 수요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한국으로 가져가려고 재배한 거니까 아직 큰 고민은 안 하는데, 투자회사라고 해서 계속 비싸게 살 수는 없잖아요. 물류 부문이 해결돼야 연해주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이 인접한 자루비노항에 2016년 수출시작을 목표로 2300여억원을 투자해 연간 800만t 수출과 200만t 수입을 위한 곡물터미널 건설 프로젝트를 현재 진행 중이다. 완공되면 향후 국내로의 곡물 반입이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더디게 진행되는 러시아 행정을 감안할 때 ‘2016년 완공’이 계획대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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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제1농장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배상두 농무관은 “현대 농장은 토지 및 노동 생산성이 높다”며 “연해주 농업 진출의 성공모델”이라고 평했다. |
현대는 지난해 6000ha를 경작해 ▲콩 6500t ▲옥수수 4000t을 수확했다. 올해 경작 계획은 7500ha다.
현대 농장으로 가는 길엔 이동 중이란 걸 느끼게 해 줄 지형지물이 없었다. 멀리 지평선만 보였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 때, 현대 로고가 그려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제1농장 입구를 알리는 것이었다. 2009년 현대자원개발은 뉴질랜드계 러시아인 마틴 테이트의 농장을 인수해 제1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준호 현대프리모리예 부법인장이 파종 작업을 하는 구역으로 안내했다.
제1농장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차로 약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실제 농장을 관통하는 12km 도로를 따라 농장을 구경하는 데도 20~30분이 흘렀다. 도로 옆에는 일찍 파종을 끝내 옥수수싹이 파릇파릇하게 올라온 밭도 있었다.
최 부법인장은 “작년에 옥수수 경작 면적은 800ha로 경작 비중이 작았던 데다, 수확기에 폭설이 내려 10% 손실을 봤다”면서도 “일부 구역에선 6t/ha, 전체적으로 5t/ha 이상 수확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옥수수 재배는 5t/ha를 손익분기점으로 잡는다. 최 부법인장과의 문답이다.
—눈을 맞으면 옥수수 상품성이 떨어집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옥수숫대가 꺾이거나 땅에 떨어져 수확을 못 했을 뿐, 품질엔 차이가 없습니다. 실제 검사에서 단백질 함량이 높아 사료용으로서 품질이 좋은 것으로 나와 최고가에 팔았습니다.”
—먹어 본 적 있습니까. 객관적으로 맛이 어떻습니까.
“맛은 괜찮습니다. 다만, 사료용은 수분함량이 14% 이하일 때 수확하는 거라 식용으로 하려면 조금 일찍 거둬야 합니다. 이제 사일로를 갖췄기 때문에 수분함량이 조금 많더라도 빨리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사일로란, 곡류를 보관하는 탑 형태의 저장고를 말한다. 현대가 미국에서 들여온 사일로 4기는 저장용량 1만2000t으로, 정선(精選), 건조, 탈곡 기능을 갖고 있다.
—판매는 어디로 합니까.
“현지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로 들여가는 건 없습니까.
“장기적으론 그렇게 해야겠지만, 지금은 항만에 관련 인프라가 없고, 내륙운송비가 많이 들어 현지 판매가 수익성 측면에서 좋습니다.”
“타국 진출할 때 연해주 영농 경험 유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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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시 청사. 국내 기업들의 현지 법인이 모여 있는 우수리스크는 연해주 제2의 도시이자, 농업과 교통의 중심지다. |
—현대자원개발이 연해주에 농장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향후 식량위기에 대비해 해외 식량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죠. 여기엔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습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농업에 관심이 많았잖습니까. 서산농장도 만들었고요. 오너 정몽준(鄭夢準) 의원도 아버지의 그 뜻을 이어받아 농사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연해주 농장을 제2 서산농장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자원개발이 연해주 농업의 성공모델”이라는 평가가 있던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農)’자가 붙으면 쉽게 생각하는데, 해외농업은 단순한 농사가 아닙니다. 장치산업이에요. 파종하고, 수확하고, 제초하고, 비료 살포하고, 밭을 가는 작업이 100% 장비로 이뤄지는 기계농업입니다. 따라서 기계를 운용하는 기사들에 대한 노무관리를 잘하는 회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중공업의 경험이 있는 우리 회사가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직 이익을 못 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보완해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요.
“현재 상태에선 매출액이 100억원도 안 됩니다. 현대중공업의 조그만 부서 매출보다도 못한 상황이에요. 일단 돈을 벌어야 하는 게 기업이니까 수익성 제고를 해야겠죠. 농장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비료 살포, 병충해 방제, 종자 선정 등을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생산관리, 원가관리 등을 통해 원가를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당초 진출 목적대로 현대농장이 ‘해외 식량기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식량안보 차원에서 얘길 한다면, 우리에게 곡물이 필요할 때 들여올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현지에서 곡물 공급이 모자라거나,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면 수출을 규제할 수 있어요. 그때를 대비해서 ‘한국은 금수조치에서 제외한다’는 예외조항을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건 농림부에서 할 게 아니라, 외교부에서 해 줘야죠. 또 땅을 사고, 장비를 갖추는 데 돈이 많이 드니까 돈 없는 농림부보다 기획재정부가 진출기업들을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해외자원 개발한다고 수십억 달러씩 쓰는데, 농업개발도 그에 못지않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입니다.”
—현대자원개발의 향후 해외농업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식량안보 측면에서 보면 연해주로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크라이나, 남미 농장 확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때 연해주에서 쌓은 영농 경험, 경영 노하우가 유용하겠죠. ”
1명이 100만평 경작하는 現代 농장
현장에선 450마력짜리 트랙터 3대가 파종 전 제초제를 뿌린 밭을 갈아엎고 있었다. 최 부법인장에 따르면 파종만 할 경우 트랙터 1대당 12시간 기준으로 80ha(24만2000평)를 작업할 수 있다. 경운(밭갈이), 비료·제초제 살포가 이뤄질 경우엔 70ha다. 현대농장은 다른 곳처럼 흩어져 있지 않고 밀집돼 있어 작업 효율이 좋다고 한다.
최 부법인장은 “콩, 옥수수 재배 기준으로 농기계사 15명만 있으면 5000ha 경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명이 100만평을 맡는 셈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대형 장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비가 고장이 났을 때 즉시 정비해야 하지만, 이는 연해주 여건상 어려운 일이다. 현지에는 단순 고장이라고 해도 정비인력이 부족해 신속 대처가 어렵다.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 9000km 이상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공수하는 데 수개월이 걸린다. 가까운 중국에서 구해 와도 경작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는 농기계사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에서 신식 농기계를 도입할 때마다 농기계사를 미국 판매회사에 연수를 보내 정비교육을 받게 한다. 예비부품도 창고를 따로 만들어 비축해 놓는다.
이창준 대표는 “자금력 있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현재 연해주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농장 중에서 이렇게 부품을 갖춘 곳은 현대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공모델’이라는 현대조차 지난해 매출이 50억원에 그쳐 적자를 본 상황이다. 앞서 말한 물류 인프라 문제도 있지만, 연해주 농업의 생산성이 미국(콩 2.7t/ha, 옥수수 7.7t/ha) 등 세계 주요 곡물산지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해외농업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현지에서 농업 컨설팅을 하는 장민석 동북아평화연대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 농업이 생산성 면에서 혁명적 발전을 할 때 연해주는 퇴보했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 농장들이 방치됐으니까요. 그 땅에 한국 기업들이 들어와서 개간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럼에도 면적당 산출량은 러시아 농장들의 2배 가까이 돼요. 아직 초기이고 발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생산성을 두고 평가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다른 사업처럼 단기간에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생산성이 떨어진다면, 굳이 연해주에 진출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닙니까.
“생산성만 보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미국보다 생산성이 떨어집니다만, 우리 기업들이 그쪽에 진출하려면 토지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아십니까. 그걸 생각해야죠. 대규모 농지를 이렇게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배상두 농무관이 집계한 세계 주요 곡물 산지들의 1ha당 평균 토지구입비는 ▲독일 1만1000달러 ▲미국 9000달러 ▲러시아 서부지역 1300달러 등이다.
이에 비해 연해주 땅값은 매우 저렴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연해주 농지임차료는 1ha당 1~1.5달러다.
“곡물유통과 가공에도 관심 가져야”
장민석 소장은 “우리 기업들이 너무 농장에만 매몰돼 있는 것도 문제”라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기업들이 경작 면적을 늘리고 싶어도 판로가 없어서 못한다고 해요. 한국으로 수출할 때는 물류비, 관세 문제가 있고, 현지에선 큰 소비시장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에 보낼 때 꼭 알곡이어야 할 필요는 없거든요. 예를 들어 대두를 콩기름으로 가공해 보내면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물류비는 줄일 수 있죠. 관세도 가공식품은 높지 않으니까 문제 될 게 없어요. 옥수수도 여기서 사료로 만들어 보내는 거예요. 진출 기업들의 종합적인 사업계획이 필요합니다. 연해주 농업은 생산, 유통, 가공이 결합해야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이창준 대표도 “국내 기업들이 농장 운영에만 집중하지 말고, 곡물 유통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연해주에 유휴 농지는 많은데, 생산성, 유통 가능성 측면에서 세밀하게 따지면 쓸 만한 땅이 얼마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여기서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베리아산(産) 곡물을 어떻게 끌어올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시베리아는 러시아 곡물 생산의 20%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여기서 일부만 끌어와도 식량안보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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