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

스테이크 맛의 비밀

잘 숙성된 고기는 웰던으로 먹어도 감칠맛이 난다

  •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iron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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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스타일과 미국 스타일은 스테이크 크기도 요리법도 달라
⊙ 갓 잡은 동물은 조직이 단단해져 숙성시키지 않으면 질기고 맛없어
⊙ “에이징은 건초만 먹어 마블링이 없는 소고기의 경우 효과가 크지요”(레오 강 셰프)
⊙ “한우나 와규는 얇게 썰어 센 불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노종헌 셰프)
⊙ “숙성을 잘하면 포화지방산이 불포화지방산으로 바뀌어 오히려 건강에 좋다”(허세병 숙성 장인)
“어떻게 익혀드릴까요. 레어(rare), 미디엄(medium), 웰던(well done)?”
 
  영어와 한국어로 쓰여 있는 커다란 메뉴판을 받아든 것도 벅찬데, 이번엔 웨이터가 혀까지 굴린다. 다른 사람이 먼저 주문했으면 “같이요”라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이럴 땐 뭐라고 할까. 열에 일고여덟은 쫓기듯 “미디엄!”을 외치고 만다. 레어로 하자니 붉은 속살과 흥건한 피가 부담스럽고, 웰던으로 하자니 촌스럽다고 비웃지 않을까 우물쭈물하다가 눈치껏 외친다. 웨이터에게 물어도 되는데 왠지 부담스럽다. ‘중간이면 괜찮겠지’ 심리도 한몫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웨이터에게 미디엄 레어나 미디엄 웰던으로 주문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익혀 먹는 스테이크가 맛있는 걸까.
 
  해외파 셰프들은 “스테이크는 레어나 미디엄 레어로 먹어야 식감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해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한국인 중에는 “스테이크를 레어로 먹으면 비리고 심심하다”는 사람이 많다.
 
  스테이크 전문 셰프들은 “제대로 된 고기를 제대로 요리하면 비리고 심심한 맛이 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제대로’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양식 요리를 가장 잘한다는 스타급 셰프들을 만나 스테이크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유럽식 對 미국식
 
  스테이크는 소와 송아지, 양의 연한 부분을 두껍고 크게 썰어 구운 고기를 말한다. 참치나 연어처럼 기름기가 많고 덩치가 큰 생선을 토막 내 구운 것 역시 스테이크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스테이크는 소의 등심과 안심을 구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테이크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고급 요리다.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 먹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공격적이면서 품위와 격식을 따지는 묘한 음식이다. 스테이크의 역사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 시작된 음식 문화가 미국으로 건너와 대중화되었다는 것 정도로만 추정할 뿐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스테이크 요리는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대별된다. 유럽식은 다시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 국가별 스타일로 세분화되지만 대체로 프랑스 요리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 요리사와 레스토랑을 스타로 등극시키는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의 평가 포인트도 프랑스 요리가 기준이다. 그래서 유럽식이라고 하면 보통 프렌치 스타일을 일컫는다.
 
  유럽식은 코스 요리 중 하나로 발달해 스테이크 크기가 작다. 반면 미국식은 단품 요리로 발전해 그 크기가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산악 지역이 많은 유럽은 소가 귀한 반면 광활한 평원의 미국은 소가 많다 보니 먹는 문화가 달라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유럽과 미국의 정통 스테이크는 크기뿐만 아니라 요리법도 상당히 다르다. 유럽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익히는 반면 미국은 그릴에 굽는 것이 기본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유럽의 셰프들은 미국식 스테이크 요리법을 두고 “거칠고 무식하다”고 비꼰다. 미국의 셰프들은 유럽식 요리법에 대해 “조악하고 소극적이다”라고 맞받아친다.
 
  국내 스테이크 시장은 미국식과 유럽식이 양분하고 있다. 스테이크 전문 하우스에서는 미국식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서울 시내 특급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유럽식이 강세다. 이들 업소에 근무하는 셰프들의 자존심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스테이크 맛의 기본을 결정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낸다. 고기의 질과 숙성(熟成) 정도, 그리고 요리가 스테이크 맛을 결정하는 3대 핵심 포인트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많은 요리사가 “숙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고급 스테이크의 대세는 숙성
 
  국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용으로 사용되는 소고기는 한우와 미국산(産) 앵거스(Angusㆍ영국 스코틀랜드 지역이 원산지인 소 품종으로, 유럽 북부와 북미 지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사육되고 있다) 호주산 와규(和牛·일본이 개량한 비육우 와규를 호주에서 키운 것)나 앵거스 등이다. 한우나 와규는 좁은 공간에서 곡물을 많이 먹고 자라 근육보다 마블링이 발달한다.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수입되는 앵거스는 넓은 목장에 방목하는데다 풀을 많이 먹어 마블링보다 근육이 발달한다. 육질이 질기지만 깊은맛이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한우의 품질등급은 1등급 투 플러스, 1등급 원 플러스, 1등급, 2등급, 3등급, D등급 순으로 매겨진다. 앵거스는 프라임(PRIME), 초이스(CHOICE), 셀렉트(SELECT), 스탠더드(STANDARD) 순이다. 등급 분류는 국가마다, 혹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마블링 분포도가 그 기준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마블링 분포는 사료 비율 중 곡물의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곡물을 얼마나 먹였느냐가 고기의 등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셈이다.
 
  동일 등급의 고기를 놓고 볼 때 가격은 한우, 호주 와규, 앵거스 순이다. 세 가지 고기로 스테이크를 만들었을 때 맛의 순서 역시 같은 결과가 나올까. 그건 아닌 듯하다. 어떤 셰프는 “한우는 숙성 후 스테이크로 먹기에 싱겁다”고 평가했고, 또 다른 셰프는 “한우는 한국식으로 숯불에 구워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숙성 장인’으로 불리는 한 고깃집 사장은 “숙성만 잘하면 구이든 스테이크든 한우의 풍미가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스테이크든 한국식 구이든 요즘 고급 음식점의 화두는 숙성인 듯했다. 기자가 만난 셰프들 입에서는 웨트 에이징(Wet ageing)이니 드라이 에이징(Dry ageing)이니 하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몇몇 스테이크 마니아는 “미디엄이냐 웰던이냐가 아니고 숙성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기가 숙성이 되면 어떤 맛이 나며, 웨트 에이징과 드라이 에이징의 차이는 뭘까.
 
  네이버 백과에 따르면 숙성은 ‘식품 속의 단백질·지방·탄수화물 등이 효소·미생물·염류(鹽類) 등의 작용에 의하여 부패하지 않고 알맞게 분해되어 특유한 맛과 향기를 갖게 만드는 일’이다.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인 고기 역시 일정기간 숙성하면 맛과 향기가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육질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육·해·공을 막론하고 갓 잡은 동물은 육질이 딱딱하다. 사후경직(死後硬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도살 직후 고기는 싱싱할지 몰라도 부드럽지는 않다. 고소한 맛도 덜하다. 우리가 정육점에서 구매하거나 고깃집에서 먹는 고기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유통 과정에서 최소의 숙성 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도살된 고기는 보통 탈골 후 부위별로 나누어 유통된다. 이때 신선도를 지키기 위해 진공포장 후 1~2℃ 정도에서 냉장보관하게 되는데, 이를 웨트 에이징이라 한다. 냉장 상태로 수입되는 고기는 오는 동안 웨트 에이징이 충분히 되었다고 보면 된다. 국내에 유통되는 수입 소고기는 운송 단가 문제로 냉장육보다 냉동육이 훨씬 많다. 전문가들은 수입 냉장육과 수입 냉동육 비율이 2 대 8 정도라고 한다. 아직까지는 냉동육으로 스테이크를 만드는 곳이 많다는 얘기다.
 
  진공포장 상태에서 웨트 에이징된 고기를 공기 중에서 저온숙성하는 것이 드라이 에이징이다. 단백질과 지방이 효소나 효모균에 의해 분해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과학적인 방법이지만 맛을 내는 비법이기에 세계 어느 나라든 숙성 과정이 표준화된 곳은 없는 듯하다. 소고기를 다루는 요리사마다 혹은 숙성 장인마다 주장하는 바가 제각각이다.
 
  참고로 국내에서 숙성된 소고기로 스테이크를 만들어 파는 곳은 많지 않다. 고기를 숙성할 경우 수율(收率·원자재에 어떤 화학적 과정을 가하여 원하는 물질을 얻을 때, 실제 얻은 양과 기대했던 양을 백분율로 나타낸 비율)이 줄어드는데다 수요가 많지 않은 까닭이다. 현재는 서울 시내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스테이크 요리에 숙성된 소고기를 쓰고 있다.
 
 
  프렌치 스타일은 그릴보다 팬 사용
 
롯데호텔에 있는 피에르가니에르-서울의 헤드 셰프 줄리앙 보스퀴스.
  유럽식 스테이크 요리법과 고기 숙성법을 알아보기 위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위치한 레스토랑 피에르가니에르. CEO들 사이에 스테이크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스테이크가 두껍고, 푸아그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강점이다.
 
  프랑스인 셰프 줄리앙 보스퀴스(Julien Boscus)는 “프랑스는 숙성 분야가 전문화되어 있어 장인이 따로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고기를 통째로 냉장고에 걸어놓고 한 달 정도 숙성시킵니다. 고기를 고르고 숙성하는 과정은 정육점에서 이뤄지죠. 파리의 피에르가니에르는 프랑스 최고의 레스토랑에만 고기를 공급하는 정육점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이 정육점은 프랑스 전역에서 도살되는 고기 중 퀄리티가 높은 것만 골라 숙성시킨 후 공급해 주고 있죠.”
 
  그는 “피에르가니에르 서울은 제주한우 특등급(1등급 투 플러스)만 공수해 호텔 자체 시설에서 숙성시킨 후 요리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한우는 육질이 부드러워 웨트 에이징을 3~4일 정도 한다고 한다. 그는 “한국 손님들은 부드럽고 고소한 고기를 좋아해 한우를 쓰고 있다”며 “프랑스 소는 근육과 조직이 단단한데, 한우는 마블링이 많아 손가락으로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고 설명했다. 한우 등심 스테이크가 나오는 이곳의 코스 요리는 22만~30만원으로 상당히 고가(高價)다.
 
  피에르가니에르 서울에서는 소고기뿐만 아니라 호주산 송아지 고기와 양고기로도 스테이크를 만들고 있다. 줄리앙 보스퀴스는 “지난 3월부터 송아지 스테이크를 요리하고 있는데, 송아지 고기는 지방 함유율이 낮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반응도 좋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태어나 그곳에 있는 6년 과정의 요리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툴루즈와 파리에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2008년부터 피에르가니에르에서 근무하고 있다.
 
줄리앙 셰프가 제주한우로 만든 프렌치 스타일 스테이크.
  피에르가니에르는 1998년 세계 최고 영예인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스타 셰프로 현재 파리, 런던, 도쿄, 홍콩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점은 2010년에 오픈했다.
 
  ―피에르가니에르만의 스테이크 요리법이 있습니까.
 
  “스테이크를 팬에 굽는데, 오일이 아니라 버터를 이용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고기가 목적한 만큼 익어도 손님에게 바로 내지 않습니다. 오븐에 데운 접시에 담아 잠깐 동안 쉬게 하죠. 그렇게 하면 고기에 풍미가 더해져 훨씬 맛있습니다.”
 
  ―스테이크를 맛있게 요리하려면 불의 강도를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하나요.
 
  “센 불에 짧은 시간 익히는 것이 맛있습니다. 약한 불에 오래 두면 육즙이 빠져나가 풍부한 맛이 나지 않아요.”
 
  ―셰프 개인적인 입장에서 스테이크는 얼마나 익혀 먹는 것이 맛있습니까.
 
  “저는 미디엄 레어가 가장 맛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블루나 레어로 많이 먹죠.”
 
  ―한국 손님들은 어떻던가요.
 
  “서울에 오기 전에 지인들로부터 ‘한국인은 웰던으로 많이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미디엄 레어로 주문하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스테이크를 즐길 줄 아는 거죠. 그런데 살짝 곁들이도록 나오는 피클을 너무 많이 드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신맛이 강한 피클을 많이 먹다 보면 스테이크 고유의 고기 맛을 음미할 수 없어요.”
 
 
  숙성된 고기에서는 육포 냄새가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레스토랑 마카로니 마켓의 총괄셰프 레오 강.
  서울 한남동 이태원에서 브라스리 레스토랑 ‘마카로니 마켓’을 경영하는 레오 강 셰프 역시 프렌치 스타일의 스테이크 요리를 한다. 브라스리 레스토랑은 프랑스나 영국의 역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식당. 이태리의 트라토리아와 같은 곳으로 프랑스의 대중이 즐기는 메뉴는 모두 갖춰놓고 있다. 가격 또한 1만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마카로니 마켓에서는 소고기 등심과 안심은 물론 엉덩이 살이나 치맛살, 양고기로도 스테이크 요리를 한다. 레오 강 셰프는 “소 엉덩이 살이나 치맛살 스테이크는 물론 양고기 스테이크도 굉장히 맛있다”고 말했다.
 
  마카로니 마켓은 정통 프랑스 요리만을 고집하지 않는 듯하다. 메뉴에는 이태리나 독일 스타일의 요리도 꽤 있다. 알고 보니 레오 강 셰프는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요리 공부를 했다.
 
  “비자 문제로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어요. 영국은 프랑스나 이태리에 비해 자랑할 만한 음식도 재료도 없다 보니 세계 모든 요리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덕분에 프랑스나 이태리보다 요리 문화가 발달했죠.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요리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모두 런던에 있습니다. 파티의 도시 런던은 그야말로 세계 요리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1994년 영국 런던으로 날아간 레오 강 셰프의 경력은 화려하다. 미슐랭 3스타인 피에르 코프만(Pierre Koffmann),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aire) 밑에서 부총주방장으로 일했고, 고든 램지(Gordon Ramsay)가 이끄는 세계 100대 레스토랑 두바이의 베레(Verre·87위)에서는 총주방장으로 근무했다.
 
레오 강이 호주산 소고기 채끝으로 요리한 스테이크.
  레오 강은 이 중 피에르 코프만을 가장 큰 스승으로 꼽았다. 피에르 코프만은 스물셋에 미슐랭 3스타가 된 후 9명의 미슐랭 스타를 배출한 스타 셰프. 레오 강은 “피에르 코프만에게 고기 숙성 노하우를 배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는 9월 말부터 2월까지가 사냥철입니다. 이때 잡히는 사슴, 멧돼지, 청둥오리, 산비둘기 등을 털째 묶어 2℃ 정도의 냉장고에 3개월쯤 걸어놓으면 숙성이 되죠. 숙성이 잘되면 육포 냄새가 나면서 털이 쉽게 뽑힙니다.”
 
  레오 강 셰프는 소고기 역시 같은 방식으로 숙성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호주산 앵거스를 선호한다. 마블링이 많은 소, 곡물을 많이 먹인 소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한국의 고기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원래 소고기는 강한 피의 맛이 있어야 좋습니다. 곡물을 많이 먹인 소는 피의 맛보다 기름 맛이 더 강하지요. 유럽의 소고기는 곡물을 먹지 않아 육질이 단단하고 터프합니다. 기본적으로 숙성하지 않으면 먹기 힘들죠. 그래서 유럽에서는 동물을 잡아 오래도록 걸어두는 숙성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한우도 에이징을 하면 맛이 더 좋아집니까.
 
  “한우나 와규처럼 곡물을 많이 먹인 소는 굳이 에이징을 하지 않아도 부드럽지 않나요? 기름기가 많은 고기를 에이징하면 쉽게 부패할 수 있습니다. 에이징은 건초만 먹어 마블링이 없는 소고기의 경우 효과가 크지요.”
 
  ―한우를 쓰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희 가게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한우나 와규는 기름이 많다며 꺼립니다. 사실 소 기름은 몸에도 좋지 않지요. 기름마다 융점(融點)이 있는데, 소 기름의 경우 43℃입니다. 체온보다 높죠. 이게 몸속으로 들어가 굳으면 혈관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적으로 와규를 지향하면서 양적으로는 미국을 추종해 걱정입니다.”
 
 
  1℃에 75~80%의 습도 유지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와인바 뱅가의 셰프 노종헌.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스테이크 하우스 ‘더 반’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노종헌 셰프는 미국식 스테이크 요리를 추구한다. 그는 업계에서 드라이 에이징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의사가 아닌 요리사 가운을 입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려대 의대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 뉴욕에 있는 세계적인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America)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 워커힐 호텔 조리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강남의 고급 와인바 ‘뱅가’의 셰프로 있다. ‘더 반’이나 ‘뱅가’는 모두 동아제분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노 셰프는 “모든 고기는 썩기 전에 가장 맛있다”며 드라이 에이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드라이 에이징은 고기를 공기 중에 노출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수분을 증발시키는 육류 숙성 방식입니다. 습도, 통풍, 온도 등 3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숙성이 제대로 되기 때문에 까다롭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죠.”
 
  1℃에서 75~80%의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 ‘더 반’이나 ‘뱅가’는 드라이 에이징한 고기를 쓰고 있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자체 숙성 시설을 갖추고 평균 21일(최소 2주~최대 4주) 동안 숙성시킨다. 이렇게 하면 맛이 농축되고 육질에 탄력이 생긴다고 한다. 숙성 중 잡균이 들어가지 않게 위생 상태를 철저히 체크하는 것이 노하우다.
 
  숙성이 끝난 고기는 겉부분을 도려내고 속의 것만 먹는다. 그러다 보니 수율이 줄어든다. 21일 동안 숙성할 경우 수율이 평균 60%라고 한다. 노종헌 셰프는 “드라이 에이징한 스테이크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고급 요리에 속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흔히 드라이 에이징한 고기는 뻑뻑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도축해서 껍질을 벗긴 다음 지방과 같이 숙성시키기 때문에 육즙이 증발되지 않지요. 개인적으로 갈빗살, 꽃등심, T본을 숙성시켰을 때 가장 맛있더군요.”
 
  ―고기는 어떤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미국에서 수입하는 앵거스 프라임급 고기만 쓰고 있습니다. 진공포장 후 냉장 상태로 들어오고 있죠. 그룹 계열사 중에 고기 수입 업체가 있어서 고기의 질이 안정적인 편입니다.”
 
  ―고기는 미국식으로 그릴에 굽나요.
 
  “저는 미국과 이태리 방식을 혼합해 굽고 있습니다. 허브향이 들어간 올리브유를 팬에 두르고 살짝 구운 다음 숯불에 굽고, 오븐에 익히는 세 가지 과정으로 요리하고 있죠. 이렇게 하면 겉에 크러스트가 생겨 바삭바삭하면서도 속은 부드러운 스테이크가 됩니다.”
 
  ―스테이크 맛을 결정하는 핵심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고기의 질과 숙성도 중요하지만 저는 요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고기 질이 조금 나쁘고 숙성이 덜 되었다 하더라도 요리로 커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모자란 자식 끌어올리고, 잘난 자식 더 잘나게 만드는 것이 요리 아닐까요.”
 
  ―한우나 와규는 스테이크용으로 어떻습니까.
 
  “한우나 와규는 마블링이 발달해 있어서 씹는 맛이 있습니다. 미국 소는 육즙이 풍부해 맛이 진하고요. 개인적으로 한우나 와규는 얇게 썰어 센 불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소는 덩어리로 진하게 먹는 것이 맛있고요. 미국 소를 한우처럼 구워 먹으면 진한 맛이 증발해 밍밍해집니다.”
 
 
  숙성 전문 국내 1호 업체
 
숙성시킬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굿푸드시스템 직원들.
  입맛이 고급화되면서 더디지만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찾는 마니아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도 드라이 에이징 전문 업체가 생겼다.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굿푸드시스템이다. 이 업체는 자체 연구개발한 드라이 에이징 시설에서 한우와 미국 소를 숙성시켜 서울 시내 특급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다.
 
  김수길(金洙吉) 대표는 “시장 가능성을 믿고 2008년부터 준비해 지난해 오픈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내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셰프 출신이다. 오랜 요리 경험을 바탕으로 숙성 노하우를 터득,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대량 숙성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숙성 고기를 공급하는 업체로는 국내 1호다.
 
  김 대표는 기자에게 숙성 시설을 공개했다. 방진복 착용에 전신 소독까지 하고 들어간 숙성실은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처럼 깨끗했고, 잘 훈제된 육포 냄새가 났다. 김 대표는 “드라이 에이징은 고기를 썩히는 것이 아니라 발효시키는 과정이라 좋은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우는 이렇게 뼈째로 들여와 숙성시키고, 미국 소는 안심이나 립아이, 채끝 등 고급 부위만 진공포장된 냉장 상태로 들여와 에이징합니다. 소고기 외에 호주산 냉장 양고기도 숙성했는데, 요즘은 못 하고 있어요. 호주에서도 품귀 현상이 일어나 냉장 양고기 수입이 중단된 상태거든요. 지금 시중에서 파는 양고기는 전부 냉동입니다.”
 
국내 숙성 전문 업체 1호 굿푸드시스템의 김수길 대표.
  두 평 남짓한 숙성 시설의 내부는 평균 2℃에 70%의 습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숙성 기간은 한우와 수입 소에 따라 다르고, 등심·안심 등 부위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한우 안심은 20~25일, 등심은 35일, 안심과 채끝이 뼈 양쪽에 붙어 있는 T본은 48일 걸리는 식이다.
 
  ―냉장 상태로 들어오는 고기는 그 자체로 웨트 에이징이 되는 것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진공포장돼 들어오는 경우 그렇지요. 하지만 드라이 에이징을 하지 않으면 고기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없습니다. 진공포장을 뜯어 수분을 냉장 시설에서 증발시키지 않으면 고기가 싱겁지요.”
 
  ―웨트 에이징에 드라이 에이징까지, 수입 소의 경우 유통기한이 너무 긴 것 아닌가요.
 
  “소의 유통기한은 냉장 상태로 보관할 경우 도축일로부터 90일입니다. 호주나 미국산 소는 수입에서 통관까지 보통 30~35일 걸리니까 여유 기간이 55~60일 정도 되는 셈이지요. 정상적인 루트로 수입된 소라면 문제없습니다.”
 
  현재 국내 수입 시장은 등심, 안심, 채끝 등 고급 스테이크용을 수입하는 업체와 다리 살, 목심 등 정육용으로 수입하는 업체로 분류돼 있다. 고가 고기는 냉장으로 들어오고, 저가(低價) 고기는 냉동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김 대표는 “냉장육과 냉동육은 시장이 완전히 다른데, 과거에 비해 냉장육 시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숙성의 핵심은 온도와 공기
 
  스테이크가 아닌 한우 구이 전문점을 하면서 ‘숙성 장인’으로 불리는 이도 있다. 특등급 한우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강원도 횡성에서 고깃집 ‘우가’(牛家)를 경영하고 있는 허세병(許世炳)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순수 국내파인 그는 기자가 만난 이 중 고기 숙성의 원리를 가장 쉬우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 요리사였다.
 
  “고기의 숙성은 단순 단백질과 지방이 효소 작용과 효모에 의해 분해되면서 단단한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고소한 맛이 나는 현상입니다. 근육 내에 존재하는 카텝신(Cathepsin)이라는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과 이노신산 등의 IMP(inosine 5'-monophosphateㆍ발효핵산 관련 물질) 물질로 분해해 근육을 약화시키고, 지방을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레산과 올레인산으로 바꿔 고소한 맛이 나게 하죠.”
 
  그는 “고기 숙성은 김치가 발효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진행된다”며 “김치든 고기든 숙성이 잘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기와 온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숙성이 왕성하게 이뤄지려면 효모와 효소가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들의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 적절한 온도와 공기라는 것이다. 효소 활동이 가장 왕성한 온도는 40~50℃ 사이다. 하지만 이 경우 고기가 익거나 부패할 수 있다. 아미노산 등의 IMP가 계속 분해돼 나쁜 아미노산인 하이포크산틴(Hypoxanthine)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하이포크산틴이 증가하는 것은 곧 선도지수가 떨어져 부패한다는 의미다.
 
  허 대표는 “숙성 중에는 좋은 아미노산이 나쁜 아미노산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있듯 맛의 밸런스가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김치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담근 직후 밖에 두었다가 알맞게 익었다 싶으면 냉장고 안에 넣어야 합니다. 너무 오래 밖에 두면 시어서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고기도 김치와 마찬가지로 맛의 밸런스가 떨어지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이 타이밍을 찾아내 더 이상 효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온도를 낮추고 공기를 차단해야 해요. 이것이 고기 숙성의 포인트입니다.”
 
  그는 “효소 작용을 돕는 시기를 활동기, 억제하는 시기를 안정기라 한다”며 “고기가 맛있게 숙성되려면 활동기와 안정기가 반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장김치가 맛있는 이유는 땅속에 묻은 항아리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자연적으로 활동기와 안정기를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고기 숙성 원리는 김장김치가 어떻게 맛이 드는지만 알면 이해하기 쉬워요.”
 
한국인이 선호하는 소고기 부위.
  허 대표는 고기 상태를 봐가며 활동기와 안정기를 하루나 이틀 주기로 바꿔준다. 활동기에는 온도를 7~8℃(뒤로 갈수록 낮춘다)로 맞춰주고, 안정기에는 진공포장 후 1~3℃에 보관했다 다시 푸는 식이다. 그렇게 20~25일 동안 숙성시켰을 때 고기 맛이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잘 숙성된 고기는 수율도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어떻게 익혀 먹든 맛이 좋다”고 말했다.
 
  ―고기는 덜 익혀 먹어야 맛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란 말인가요.
 
  “모든 식품은 날것으로 먹을 때보다 익혀 먹었을 때가 더 맛있습니다. 그것도 최대한 익혔을 때 더 달고 고소한 맛이 나게 마련이죠. 밥보다 누룽지가 더 맛있듯이 말입니다. 고기도 타기 직전까지 익히면 풍미가 더욱 강해져요.”
 
  ―너무 많이 익히면 질기지 않나요.
 
  “숙성이 잘된 고기는 질기지 않을뿐더러 더욱 감칠맛이 납니다. 저는 손님들을 위해 고기를 구워줄 때 거의 태우다시피 하죠. 생선회든 고기든 식감이 좋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이 많은데, 음식은 혀로 맛보는 것입니다. 식감은 엄밀하게 말해 맛이 아니죠.”
 
  허 대표가 동생과 함께 운영하는 ‘우가’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구 식당이 되었다. 그는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하루에 손님을 두 테이블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성들여 숙성시킨 고기이기에 동생과 둘이서 테이블을 하나씩 맡아 직접 구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가’는 숯불이 고기 본연의 향을 해친다는 이유로 팬에 굽는다. 이곳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보통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가격은 한우 등심 1인분(200g)에 4만8000원 정도다.
 
  허병세 대표는 “한우는 기름이 많아 과하게 먹으면 건강에 나쁘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숙성을 잘하면 포화지방산이 불포화지방산으로 바뀌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답했다.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나열하는 이 숙성 장인의 당당함이 퍽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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