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대중을 위해 지나친 분배나 복지에 치중함에 따라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고 실질임금을 떨어뜨린다.
포퓰리즘은 정치적인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의’니 ‘제3의 길’이니 하는 구호를 등장시키고 있다.
⊙ 페론(아르헨티나)은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근로자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물량공세
⊙ 차베스(베네수엘라)는 석유판매 대금으로 정부조직과 별도로 12개 분야의 빈민지원 프로젝트 추진
⊙ 복지 왕국이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복지 축소하는 수술 나서
⊙ 무상복지 시리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를 유지하는 틀 마련이 중요하다
李奎植
⊙ 63세. 경북대 화학과,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 연세대 보건과학대 교수, 세계보건기구 단기 자문관, 연세대 보건과학대학장,
연세대 보건환경대학원장,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역임. 現 의료기관인증원 초대 원장.
포퓰리즘은 정치적인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의’니 ‘제3의 길’이니 하는 구호를 등장시키고 있다.
⊙ 페론(아르헨티나)은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근로자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물량공세
⊙ 차베스(베네수엘라)는 석유판매 대금으로 정부조직과 별도로 12개 분야의 빈민지원 프로젝트 추진
⊙ 복지 왕국이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복지 축소하는 수술 나서
⊙ 무상복지 시리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를 유지하는 틀 마련이 중요하다
李奎植
⊙ 63세. 경북대 화학과,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 연세대 보건과학대 교수, 세계보건기구 단기 자문관, 연세대 보건과학대학장,
연세대 보건환경대학원장,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역임. 現 의료기관인증원 초대 원장.
- 아르헨티나는 1차 세계대전 후 세계 7대 부국이었다. 그러나 복지 포퓰리즘으로 엄청난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만성적 악성 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지난 2002년 3월 수백 명의 시민이 환전소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장면.
최근 유럽 국가들은 복지 축소로 몸살을 앓았다. 영국은 대학 등록금 인상 문제를 놓고, 프랑스는 연금개혁안을 놓고 격렬 시위가 벌어지는 등 한 번 주어진 복지혜택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 민주당이 무상급식에서 재미를 본 후에 연말에는 무상의료와 무상보육까지 들고 나와 복지논쟁을 뜨겁게 달구었다.
우리나라는 1998년과 2008년의 경제위기를 어렵게 넘기고 2010년도에는 경제성장률이 6.1%가 될 것으로 잠정 추계돼 지난 8년 이래 최고의 실적이 예상된다. 우리나라가 아직 6%대의 고도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인구구조 측면에서 볼 때 아직은 생산가능 인구가 피부양 인구의 증가율보다 더 높은 ‘인구 보너스’ 기간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의 유키코 교수는 일본이 ‘인구 보너스’ 기간이 끝난 1990년 직후에 버블이 붕괴해 곧바로 제로성장 시대를 맞았음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도 인구 걱정을 해 본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해 ‘인구 보너스’ 기간이 2015년이면 끝이 난다. 그리고 2006년부터 이미 노동력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30~40대 연령층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7년 이후에는 생산가능 인구(15~64세 인구)가 감소할 것이며, 2018년부터는 총인구가 감소할 전망이다.
2018년부터 총인구 감소…‘제로성장’우려
유키코 교수는 “기술대국이었던 일본도 ‘인구 보너스’기가 끝나자 이렇게 어려움이 닥쳤는데, 서울대 공대 대학원의 정원 미달 사태 등을 보고 기초과학력의 향상과 기술혁신에 의한 성장을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러면서 FTA에 의한 경제 연계 강화, 중국이나 일본과의 FTA 체결을 통한 서비스업의 확장, 연금·건강보험의 개인 부담 경감, 재정규율을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외국인 학자의 눈에도 한국이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여 이에 대비하는 정책을 서두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복지논쟁이나 하는 꼴이 한심하게 비치는 것 같아 민망할 따름이다.
물론 지표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비 지출이 OECD 평균의 38% 수준으로 한참이나 뒤져 복지지출의 증가 요구가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현상만 볼 수 없는 것이 복지비 지출의 증가속도이다. <표 1>에서 경제성장률과 비교한 복지비 지출의 증가 배수를 보면 유럽 복지국가들이 경제의 황금기(1960~75년)에 복지를 확충하던 속도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 증가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서구 복지국가들이 복지 확충기에 경제성장 속도보다 2.3배나 많은 복지비 지출을 늘렸는데 우리나라는 1997~2004년 경제위기 때 이미 2.6배, 2006~2030년의 전망치가 2.57배로 서구 복지국가들보다 더 빠른 증가 속도를 보이는 점이다. 이와 같이 빠른 복지비 지출은 <표 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복지비가 GDP 대비 5%에서 15%에 이르는 기간을 서구 복지국가보다 더욱 단축해 국가의 부담 속도를 훨씬 빠르게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유념해야 할 것은 비록 복지비 지출은 낮다 하여도 조세부담률이 우리 주변의 경쟁국들보다 높아 복지비 지출만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2005년 기준으로 조세부담률을 비교하면 우리는 18.9%로 주변국인 일본(17.7%, '06), 중국(16.8%), 대만(14.1%), 싱가포르(13.0%), 홍콩(12.7%)보다 높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외면하고,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대학 반값 등록금과 같은 주장을 펴면서 부유세를 신설하거나, 소득세 감세를 부자 감세라고 비난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주장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주장이 정책화되었을 때 그 부담을 져야 할 20대나 10대의 젊은 세대들이 포퓰리즘적 선동에 휘말려 들고 있는 점이다.

포퓰리즘… 소수 독재자의 전횡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populus에서 파생된 것으로 populus는 영어로 사람(people)이며 의미상으로는 국민(nation)을 뜻한다. 그리하여 포퓰리즘은 전체 국민에 의한 정부가 대상이 된다(Wikipedia). 포퓰리즘은 긴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포퓰리즘에는 우파와 좌파 포퓰리즘이 있다. 우파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경우가 히틀러의 파시즘이다. 히틀러는 독일인 마음에 깃들어 있는 반유대인 감정과 이민족 범죄에 대한 선동적 우려를 자극하여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포퓰리즘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선 토지를 가진 소수의 독재자들이 전횡하다 20세기 산업화의 물결로 몰락한 뒤에 산업자본가와 도시노동자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개혁가와 다양한 계층의 민족주의 정치가들이 한 사람의 권위적인 지도자를 추종하는 가운데 포퓰리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스트들로는 페루의 아프리스모(Aprismo), 브라질의 제툴리오 바르가스,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메넴, 멕시코의 라소로 카르데나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 포퓰리즘은 기술발전에 따른 산업화 단계에서 산업자본가와 노동조합 근로자 계층과의 결탁을 통하여 유지됐다.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에 대해 하나의 계보를 그릴 수는 없으며 정치적 이념도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다.
1930~4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은 브라질 바르가스에서 볼 수 있는데 권위적인 정략과 파시즘적인 배경을 깔고 독재적인 지도력 속에 이루어졌었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의 페론은 노동자 계급과 밀착된 포퓰리즘을 보여주었으며, 1960년대 브라질에서 등장한 포퓰리즘은 좌편향적인 형태를 보였으나 곧 군부에 의해 축출되고 1970년대는 군부 독재에 의한 선동정치(demagogy)로 기존 질서를 위협했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등장한 메넴에 의한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면서 구조조정을 하는 등의 형태로 등장해 ‘신(新)포퓰리즘’이라고 불리고 있다. 2000년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포퓰리즘 형태를 보이고 있다.
포퓰리즘은 인기영합주의 혹은 민중주의로 번역된다. 포퓰리즘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은 사회의 양극화로 빈곤층을 자극하여 정치적인 힘을 모을 수 있을 때이며, 포퓰리즘은 정치적인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의’니 ‘제3의 길’이니 하는 구호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기회주의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상층부, 기득권층 또는 엘리트층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최대한 활용한다.
둘째, 아주 단순하게 사회를 ‘적과 우리 편’으로 구분하고 적대주의를 조장한다.
셋째, 지도자에 대한 열광을 기초로 집단주의적 사고를 조장한다. 전통적인 사회단체 및 이익단체를 배격하고 혈연중심의 전통적인 공동체를 선양한다.
넷째, 선동적, 비합리적 및 반지성적인 유권자 정서를 활용한다. 따라서 사회적 불안감·공포감은 과장되고,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집단에 대한 억압 경향은 강화된다.
다섯째, 한편으로는 정치적 참여의 집적(集積) 형태를 선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질서를 요구하고 그러한 지도자를 지향한다.
‘페론’, 물량공세식 복지
포퓰리즘 하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아르헨티나의 페론이다. 페론은 1943년 육군대령으로 군사쿠데타에 참여하여 노동부 장관을 맡게 된다. 페론은 노동부 장관으로서 노조와 밀접해져, 아르헨티나의 산업화 과정에서 양산된 근로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1946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를 계기로 노동계급을 정치무대의 전면에 끌어들여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페론은 자신의 정당을 정의당(Partido Justicialista)이라고 칭하여 ‘정의’를 내세우고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페론은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근로자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물량공세를 펴 나갔었다. 또 언론자유를 통제하고 외국 산업의 배제와 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페론이 집권했던 당시 아르헨티나는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경제력을 갖춘 농업국이었으며,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인구가 대거 도시 근로자로 전락하면서 이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페론은 근로자들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의 정책으로 근로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페론은 집권 후 연간 20% 이상의 임금인상을 단행하여 노동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했다. 이로 인하여 페론은 1955년 실각했다가 1973년 재집권할 수 있었다.
정책실패가 과격 노동운동 낳아
페론의 집권 초기에는 농업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유럽대륙으로 막대한 곡물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여 복지확대의 종잣돈으로 썼다. 그러다 유럽이 전후 복구를 이루면서 식량생산이 증가하고 미국과 영국이 아르헨티나산 농축산물의 수입을 제한함에 따라 수출이 줄고, 국제곡물가격도 하락하여, 경제가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여기에 더하여 페론은 경제독립을 위해 수입대체 산업을 추진했는데, 수입대체 과정에서 자본재 수입의 증가가 필연적이었다. 1940년대 후반 곡물수출의 부진으로 외화획득은 어려워지는데, 자본재 수입의 증가로 외환 사정이 악화했다. 외환 사정의 악화로 복지지출이 어려워지자 페론은 화폐 발행을 통해 부족한 재정을 충당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1944년 이후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경기도 침체해 장기간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사정도 점차 악화했다. 그러나 정부재정의 부족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를 더 이상 해 줄 수 없게 되자 노동자의 반발까지 불러일으키게 됐다. 더구나 가톨릭 성당이 과격 노동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한다는 혐의로 가톨릭을 탄압하자 가톨릭도 등을 돌리게 되어 페론은 1955년 군부 쿠데타로 정권에서 축출됐다.
1990년대 이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도 페론에 뒤지지 않는 포퓰리즘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판매한 대금으로 정부 조직과는 별도의 12개 분야 빈민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빈민촌에 병원을 설립하고 쿠바로부터 2만명의 의사를 받아들여 무료진료 사업을 벌였고, 문맹퇴치 사업도 병행했다. 이 사업들은 일부 수혜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기득권층은 배제해 사회 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차베스는 반미(反美)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외국에도 통 큰 선심을 쓰기도 한다.
재정이 악화되자 돈을 찍어대
포퓰리즘에서는 권력자가 국가 시스템을 무시하고 국민을 직접 상대하면서 국가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정책보다는 감성에 호소해 정치를 구사하기 때문에 국가발전에 치명적인 손해를 미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포퓰리즘의 폐해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데 있다. 포퓰리즘은 대중을 위해 지나친 분배나 복지에 치중함에 따라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고 실질임금을 떨어뜨린다.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하여 화폐발행을 통하여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저성장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또한 기득권층과 빈민 또는 근로자층 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사회를 분열시키는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도 노무현(盧武鉉) 시대를 포퓰리즘이 지배하던 시대라고 하는 이유의 하나가 2%의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일류대 출신과 그렇지 않은 자, 서울 강남과 그 외 지역 등과 같이 사회의 갈등을 조장했으며, 대중과의 인기영합을 위해 부동산에 대한 과중한 세금이나, 혁신도시나 기업도시와 같은 정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제1차 대전 후 세계 7대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어떻게 망해 갔는가. 페론은 노동자들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과도한 임금인상, 주거와 의료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복지확충으로 인한 엄청난 재정지출은 물론 금융, 통신, 철도, 전기, 항공 등 주요산업을 국유화시켜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재정이 악화하자 페론은 돈을 찍어댔다. 임금은 올랐지만, 만성적인 악성 인플레이션이 근로자를 더욱 빈곤으로 몰고 갔다. 인플레이션은 장래의 성장동력과 국가경쟁력까지 소진시켰던 것이다. 페론시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그 폐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949년에는 31.1%, 1952년 38.7%로 그 이후 1955년 축출될 때까지 지속됐다.
페론이 재집권한 1973년에도 61.2%였고, 페론 사망 후 부인이 대통령을 이어받은 뒤인 1975년 182.9%, 1976년에는 444.0%라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나타냈다. 또한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해 군부와 노동자의 대결을 부추김으로써 사회적 갈등까지 야기했다.
물론 다른 평가도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추락한 것은 페론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에 희생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페론 집권 시기인 1949년부터 1976년까지(2차집권 포함) 국민총생산은 127%의 성장을 기록했고, 개인소득은 232% 증가했으며, 부의 재분배로 국민의 60%를 차지했던 극빈 서민들이 국가소득의 33%를 배분받았던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27년간 127% 성장이란 결코 높은 성장률이라 할 수 없으며 그간 엄청난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실질소득은 떨어졌고 가난의 평준화를 초래했다고 하겠다.
복지 포퓰리즘과 한국
복지 포퓰리즘을 걱정하면, 그 반론으로 유럽 국가들은 복지국가를 유지하고도 선진국으로 남아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복지 포퓰리즘을 강조하는 것은 복지확충을 하지 않기 위한 핑곗거리로 삼기 위함이라고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유럽 복지국가가 등장하게 된 과정과 오늘의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근대 복지국가는 1942년 영국에서 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시작된다. 그 이듬해 처칠 수상이 모든 계층과 모든 목적을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강제적인 국민보험을 발표하면서 복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복지제도가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의 경제재건을 위하여 ‘마셜 플랜’에 의한 원조와 나토 창설로 군비 부담을 덜어 줌에 따라 유럽 각국의 경제가 살아나면서부터이다.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경제의 황금기를 맞이하면서 근로자 중심의 사회보험제도를 전 국민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복지제도를 확충했다. 이 당시 유럽은 경제성장과 함께 인구도 1% 내외로 적정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과잉인구로 인한 부담이나 저성장 인구에 기인하는 복지제도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와 뒤이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의 장기침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전환되면서 나타난 구조적 실업에 따른 복지비 지출이나 인구 고령화로 인한 연금이나 의료보험과 같은 복지비 지출의 증가 등의 요인이 겹쳐 1980년대 들어 복지국가론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유럽의 복지 수술…모럴해저드 해소에 초점
유럽 국가들 가운데 어려움이 가장 많았던 국가가 영국이었다. 영국은 1979년 보수당의 대처가 수상이 되면서 전반적인 개혁을 시작했다. 대처 수상은 영국병의 근원이 복지확충을 위한 정부의 개입과 함께 노조의 지나친 시장개입,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으로 인해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있다고 보고 정부 규제의 철폐, 기간산업의 민영화, 노조 개입의 축소와 같이 시장기능을 회복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하여 영국병을 치유하였던 것이다. 뒤에 등장한 노동당의 블레어 정부는 노동당의 오랜 이념이었던 사회민주주의를 버리고 제3의 길을 택하여 사실상 대처의 개혁과 유사한 길을 따랐다.
블레어 정부는 사후적 복지지출이 중심이던 복지국가 개념을 버리고 사전적인 사회투자가 중요함을 강조하였으며, 복지국가를 경쟁국(competition state) 개념으로 바꾸면서 전통적인 소득보호와 같은 정책을 버리고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교육이나 훈련과 같은 데 선제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회투자론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택했다.
블레어는 전통적으로 영국 노동당이 시장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던 태도를 버리고, 시장을 인정하여 보수당 정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최근 영국의 캐머런 정부는 10년 이내에 복지급여 수급자들을 근로를 통해 없애고, 연간 775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육아수당 지급을 2013년부터 중단하며, 철도보조금을 중단하여 기차요금을 인상하고 대학 등록금은 올해부터 3배나 올리는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
영국의 사례는 다른 유럽 국가들인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으로 번져,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는 사회투자형 복지제도의 도입을 촉진했다. 독일은 실업급여를 놓칠까봐 재취업을 하지 않는 장기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2003년부터 실업급여와 기초생활급여를 통합했으며, 건강보험의 급여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네덜란드는 근로 무능력자가 아니면 직업훈련을 받아야만 생계비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실업자들의 모럴 해저드를 없애는 노력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늦추고, 연금의 100% 수급시작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개혁을 단행했다. 최근에는 복지 왕국이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복지를 축소하는 수술에 나서고 있다.
국민부담 늘리지 않는 무상복지는 속임수
서구 복지국가들이 개혁에 나서는 이유는 1960년대 식의 복지제도를 유지할 경우 복지제도의 존속 여부는 물론 국가경제의 쇠퇴로 이어질 우려 때문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적자 상태임에도 복지개혁을 하지 못한 관계로 경제가 파탄의 위기에 빠졌으며, 이웃 일본도 민주당이 집권을 위해 아동수당 지급, 고교 무상교육,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로 재정이 더욱 악화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구조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어 복지확충을 하지 않아도 복지지출의 자연증가 속도가 빨라 제도의 존속은 물론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단계에 이르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던 1970년대부터 복지를 확충해 왔더라면 아마 복지수준은 지금보다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구증가율이 너무 높아 복지확충보다 증가하는 인구에게 일자리를 주는 일이 급하여 압축성장에 매진했던 것이다. 만약 1970년대에 경제성장보다 복지확충에 매달렸더라면 최고의 복지인 고용에서 많은 문제를 노출시켰을 것이다. 지금은 ‘인구 보너스’기간이 끝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복지확충은 자칫 경제성장 제로시대를 만들어 실업자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 지금은 무상복지 시리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를 유지하는 틀 마련이 중요하다.
국민의 부담이 뒤따르지 않는 무상복지란 있을 수 없는 속임수에 불과할 따름이다. 엄청난 추가재정이 소요되는 무상복지의 부담은 미래의 젊은 층에 돌아갈 것이다. 투표권 없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맡기는 것이 과연 조상으로서 해야 할 올바른 짓인지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과 2008년의 경제위기를 어렵게 넘기고 2010년도에는 경제성장률이 6.1%가 될 것으로 잠정 추계돼 지난 8년 이래 최고의 실적이 예상된다. 우리나라가 아직 6%대의 고도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인구구조 측면에서 볼 때 아직은 생산가능 인구가 피부양 인구의 증가율보다 더 높은 ‘인구 보너스’ 기간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의 유키코 교수는 일본이 ‘인구 보너스’ 기간이 끝난 1990년 직후에 버블이 붕괴해 곧바로 제로성장 시대를 맞았음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도 인구 걱정을 해 본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해 ‘인구 보너스’ 기간이 2015년이면 끝이 난다. 그리고 2006년부터 이미 노동력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30~40대 연령층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7년 이후에는 생산가능 인구(15~64세 인구)가 감소할 것이며, 2018년부터는 총인구가 감소할 전망이다.
2018년부터 총인구 감소…‘제로성장’우려
유키코 교수는 “기술대국이었던 일본도 ‘인구 보너스’기가 끝나자 이렇게 어려움이 닥쳤는데, 서울대 공대 대학원의 정원 미달 사태 등을 보고 기초과학력의 향상과 기술혁신에 의한 성장을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러면서 FTA에 의한 경제 연계 강화, 중국이나 일본과의 FTA 체결을 통한 서비스업의 확장, 연금·건강보험의 개인 부담 경감, 재정규율을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외국인 학자의 눈에도 한국이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여 이에 대비하는 정책을 서두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복지논쟁이나 하는 꼴이 한심하게 비치는 것 같아 민망할 따름이다.
물론 지표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비 지출이 OECD 평균의 38% 수준으로 한참이나 뒤져 복지지출의 증가 요구가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현상만 볼 수 없는 것이 복지비 지출의 증가속도이다. <표 1>에서 경제성장률과 비교한 복지비 지출의 증가 배수를 보면 유럽 복지국가들이 경제의 황금기(1960~75년)에 복지를 확충하던 속도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 증가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서구 복지국가들이 복지 확충기에 경제성장 속도보다 2.3배나 많은 복지비 지출을 늘렸는데 우리나라는 1997~2004년 경제위기 때 이미 2.6배, 2006~2030년의 전망치가 2.57배로 서구 복지국가들보다 더 빠른 증가 속도를 보이는 점이다. 이와 같이 빠른 복지비 지출은 <표 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복지비가 GDP 대비 5%에서 15%에 이르는 기간을 서구 복지국가보다 더욱 단축해 국가의 부담 속도를 훨씬 빠르게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유념해야 할 것은 비록 복지비 지출은 낮다 하여도 조세부담률이 우리 주변의 경쟁국들보다 높아 복지비 지출만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2005년 기준으로 조세부담률을 비교하면 우리는 18.9%로 주변국인 일본(17.7%, '06), 중국(16.8%), 대만(14.1%), 싱가포르(13.0%), 홍콩(12.7%)보다 높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외면하고,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대학 반값 등록금과 같은 주장을 펴면서 부유세를 신설하거나, 소득세 감세를 부자 감세라고 비난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주장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주장이 정책화되었을 때 그 부담을 져야 할 20대나 10대의 젊은 세대들이 포퓰리즘적 선동에 휘말려 들고 있는 점이다.

포퓰리즘… 소수 독재자의 전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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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쿠바 방문 당시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왼쪽)과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차베스는 연간 20만 채의 집을 지어 주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
포퓰리즘에는 우파와 좌파 포퓰리즘이 있다. 우파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경우가 히틀러의 파시즘이다. 히틀러는 독일인 마음에 깃들어 있는 반유대인 감정과 이민족 범죄에 대한 선동적 우려를 자극하여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포퓰리즘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선 토지를 가진 소수의 독재자들이 전횡하다 20세기 산업화의 물결로 몰락한 뒤에 산업자본가와 도시노동자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개혁가와 다양한 계층의 민족주의 정치가들이 한 사람의 권위적인 지도자를 추종하는 가운데 포퓰리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스트들로는 페루의 아프리스모(Aprismo), 브라질의 제툴리오 바르가스,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메넴, 멕시코의 라소로 카르데나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 포퓰리즘은 기술발전에 따른 산업화 단계에서 산업자본가와 노동조합 근로자 계층과의 결탁을 통하여 유지됐다.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에 대해 하나의 계보를 그릴 수는 없으며 정치적 이념도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다.
1930~4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은 브라질 바르가스에서 볼 수 있는데 권위적인 정략과 파시즘적인 배경을 깔고 독재적인 지도력 속에 이루어졌었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의 페론은 노동자 계급과 밀착된 포퓰리즘을 보여주었으며, 1960년대 브라질에서 등장한 포퓰리즘은 좌편향적인 형태를 보였으나 곧 군부에 의해 축출되고 1970년대는 군부 독재에 의한 선동정치(demagogy)로 기존 질서를 위협했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등장한 메넴에 의한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면서 구조조정을 하는 등의 형태로 등장해 ‘신(新)포퓰리즘’이라고 불리고 있다. 2000년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포퓰리즘 형태를 보이고 있다.
포퓰리즘은 인기영합주의 혹은 민중주의로 번역된다. 포퓰리즘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은 사회의 양극화로 빈곤층을 자극하여 정치적인 힘을 모을 수 있을 때이며, 포퓰리즘은 정치적인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의’니 ‘제3의 길’이니 하는 구호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기회주의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상층부, 기득권층 또는 엘리트층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최대한 활용한다.
둘째, 아주 단순하게 사회를 ‘적과 우리 편’으로 구분하고 적대주의를 조장한다.
셋째, 지도자에 대한 열광을 기초로 집단주의적 사고를 조장한다. 전통적인 사회단체 및 이익단체를 배격하고 혈연중심의 전통적인 공동체를 선양한다.
넷째, 선동적, 비합리적 및 반지성적인 유권자 정서를 활용한다. 따라서 사회적 불안감·공포감은 과장되고,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집단에 대한 억압 경향은 강화된다.
다섯째, 한편으로는 정치적 참여의 집적(集積) 형태를 선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질서를 요구하고 그러한 지도자를 지향한다.
‘페론’, 물량공세식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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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과 에바. 선심성 정책과 사탕발림이 페론 포퓰리즘의 본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페론은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근로자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물량공세를 펴 나갔었다. 또 언론자유를 통제하고 외국 산업의 배제와 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페론이 집권했던 당시 아르헨티나는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경제력을 갖춘 농업국이었으며,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인구가 대거 도시 근로자로 전락하면서 이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페론은 근로자들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의 정책으로 근로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페론은 집권 후 연간 20% 이상의 임금인상을 단행하여 노동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했다. 이로 인하여 페론은 1955년 실각했다가 1973년 재집권할 수 있었다.
페론의 집권 초기에는 농업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유럽대륙으로 막대한 곡물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여 복지확대의 종잣돈으로 썼다. 그러다 유럽이 전후 복구를 이루면서 식량생산이 증가하고 미국과 영국이 아르헨티나산 농축산물의 수입을 제한함에 따라 수출이 줄고, 국제곡물가격도 하락하여, 경제가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여기에 더하여 페론은 경제독립을 위해 수입대체 산업을 추진했는데, 수입대체 과정에서 자본재 수입의 증가가 필연적이었다. 1940년대 후반 곡물수출의 부진으로 외화획득은 어려워지는데, 자본재 수입의 증가로 외환 사정이 악화했다. 외환 사정의 악화로 복지지출이 어려워지자 페론은 화폐 발행을 통해 부족한 재정을 충당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1944년 이후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경기도 침체해 장기간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사정도 점차 악화했다. 그러나 정부재정의 부족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를 더 이상 해 줄 수 없게 되자 노동자의 반발까지 불러일으키게 됐다. 더구나 가톨릭 성당이 과격 노동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한다는 혐의로 가톨릭을 탄압하자 가톨릭도 등을 돌리게 되어 페론은 1955년 군부 쿠데타로 정권에서 축출됐다.
1990년대 이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도 페론에 뒤지지 않는 포퓰리즘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판매한 대금으로 정부 조직과는 별도의 12개 분야 빈민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빈민촌에 병원을 설립하고 쿠바로부터 2만명의 의사를 받아들여 무료진료 사업을 벌였고, 문맹퇴치 사업도 병행했다. 이 사업들은 일부 수혜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기득권층은 배제해 사회 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차베스는 반미(反美)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외국에도 통 큰 선심을 쓰기도 한다.
재정이 악화되자 돈을 찍어대
포퓰리즘에서는 권력자가 국가 시스템을 무시하고 국민을 직접 상대하면서 국가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정책보다는 감성에 호소해 정치를 구사하기 때문에 국가발전에 치명적인 손해를 미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포퓰리즘의 폐해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데 있다. 포퓰리즘은 대중을 위해 지나친 분배나 복지에 치중함에 따라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고 실질임금을 떨어뜨린다.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하여 화폐발행을 통하여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저성장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또한 기득권층과 빈민 또는 근로자층 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사회를 분열시키는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도 노무현(盧武鉉) 시대를 포퓰리즘이 지배하던 시대라고 하는 이유의 하나가 2%의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일류대 출신과 그렇지 않은 자, 서울 강남과 그 외 지역 등과 같이 사회의 갈등을 조장했으며, 대중과의 인기영합을 위해 부동산에 대한 과중한 세금이나, 혁신도시나 기업도시와 같은 정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제1차 대전 후 세계 7대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어떻게 망해 갔는가. 페론은 노동자들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과도한 임금인상, 주거와 의료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복지확충으로 인한 엄청난 재정지출은 물론 금융, 통신, 철도, 전기, 항공 등 주요산업을 국유화시켜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재정이 악화하자 페론은 돈을 찍어댔다. 임금은 올랐지만, 만성적인 악성 인플레이션이 근로자를 더욱 빈곤으로 몰고 갔다. 인플레이션은 장래의 성장동력과 국가경쟁력까지 소진시켰던 것이다. 페론시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그 폐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949년에는 31.1%, 1952년 38.7%로 그 이후 1955년 축출될 때까지 지속됐다.
페론이 재집권한 1973년에도 61.2%였고, 페론 사망 후 부인이 대통령을 이어받은 뒤인 1975년 182.9%, 1976년에는 444.0%라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나타냈다. 또한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해 군부와 노동자의 대결을 부추김으로써 사회적 갈등까지 야기했다.
물론 다른 평가도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추락한 것은 페론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에 희생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페론 집권 시기인 1949년부터 1976년까지(2차집권 포함) 국민총생산은 127%의 성장을 기록했고, 개인소득은 232% 증가했으며, 부의 재분배로 국민의 60%를 차지했던 극빈 서민들이 국가소득의 33%를 배분받았던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27년간 127% 성장이란 결코 높은 성장률이라 할 수 없으며 그간 엄청난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실질소득은 떨어졌고 가난의 평준화를 초래했다고 하겠다.
복지 포퓰리즘을 걱정하면, 그 반론으로 유럽 국가들은 복지국가를 유지하고도 선진국으로 남아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복지 포퓰리즘을 강조하는 것은 복지확충을 하지 않기 위한 핑곗거리로 삼기 위함이라고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유럽 복지국가가 등장하게 된 과정과 오늘의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근대 복지국가는 1942년 영국에서 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시작된다. 그 이듬해 처칠 수상이 모든 계층과 모든 목적을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강제적인 국민보험을 발표하면서 복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복지제도가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의 경제재건을 위하여 ‘마셜 플랜’에 의한 원조와 나토 창설로 군비 부담을 덜어 줌에 따라 유럽 각국의 경제가 살아나면서부터이다.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경제의 황금기를 맞이하면서 근로자 중심의 사회보험제도를 전 국민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복지제도를 확충했다. 이 당시 유럽은 경제성장과 함께 인구도 1% 내외로 적정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과잉인구로 인한 부담이나 저성장 인구에 기인하는 복지제도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와 뒤이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의 장기침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전환되면서 나타난 구조적 실업에 따른 복지비 지출이나 인구 고령화로 인한 연금이나 의료보험과 같은 복지비 지출의 증가 등의 요인이 겹쳐 1980년대 들어 복지국가론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유럽의 복지 수술…모럴해저드 해소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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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3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대학생들이 차베스 대통령의 ‘새 대학법’에 대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새 대학법은 대학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블레어 정부는 사후적 복지지출이 중심이던 복지국가 개념을 버리고 사전적인 사회투자가 중요함을 강조하였으며, 복지국가를 경쟁국(competition state) 개념으로 바꾸면서 전통적인 소득보호와 같은 정책을 버리고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교육이나 훈련과 같은 데 선제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회투자론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택했다.
블레어는 전통적으로 영국 노동당이 시장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던 태도를 버리고, 시장을 인정하여 보수당 정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최근 영국의 캐머런 정부는 10년 이내에 복지급여 수급자들을 근로를 통해 없애고, 연간 775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육아수당 지급을 2013년부터 중단하며, 철도보조금을 중단하여 기차요금을 인상하고 대학 등록금은 올해부터 3배나 올리는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
영국의 사례는 다른 유럽 국가들인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으로 번져,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는 사회투자형 복지제도의 도입을 촉진했다. 독일은 실업급여를 놓칠까봐 재취업을 하지 않는 장기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2003년부터 실업급여와 기초생활급여를 통합했으며, 건강보험의 급여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네덜란드는 근로 무능력자가 아니면 직업훈련을 받아야만 생계비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실업자들의 모럴 해저드를 없애는 노력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늦추고, 연금의 100% 수급시작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개혁을 단행했다. 최근에는 복지 왕국이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복지를 축소하는 수술에 나서고 있다.
국민부담 늘리지 않는 무상복지는 속임수
서구 복지국가들이 개혁에 나서는 이유는 1960년대 식의 복지제도를 유지할 경우 복지제도의 존속 여부는 물론 국가경제의 쇠퇴로 이어질 우려 때문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적자 상태임에도 복지개혁을 하지 못한 관계로 경제가 파탄의 위기에 빠졌으며, 이웃 일본도 민주당이 집권을 위해 아동수당 지급, 고교 무상교육,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로 재정이 더욱 악화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구조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어 복지확충을 하지 않아도 복지지출의 자연증가 속도가 빨라 제도의 존속은 물론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단계에 이르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던 1970년대부터 복지를 확충해 왔더라면 아마 복지수준은 지금보다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구증가율이 너무 높아 복지확충보다 증가하는 인구에게 일자리를 주는 일이 급하여 압축성장에 매진했던 것이다. 만약 1970년대에 경제성장보다 복지확충에 매달렸더라면 최고의 복지인 고용에서 많은 문제를 노출시켰을 것이다. 지금은 ‘인구 보너스’기간이 끝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복지확충은 자칫 경제성장 제로시대를 만들어 실업자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 지금은 무상복지 시리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를 유지하는 틀 마련이 중요하다.
국민의 부담이 뒤따르지 않는 무상복지란 있을 수 없는 속임수에 불과할 따름이다. 엄청난 추가재정이 소요되는 무상복지의 부담은 미래의 젊은 층에 돌아갈 것이다. 투표권 없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맡기는 것이 과연 조상으로서 해야 할 올바른 짓인지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