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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강원도의 반란

“되는 일 없다. ‘물 먹어봐라’는 생각뿐이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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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기업도시 둘 다가 원주로 지정됐는데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고 있어요. 세종시에 온통 관심이 쏠려 이쪽(원주)은 다 죽는다는 반대여론이 높았었죠. 대규모 국책사업에 강원도가 별로 없어요. 4대강 사업도 강원도와 전혀 관계가 없고 ‘동해안 경제자유구역’ 지정도 몇 년째 질질 끌면서 해결이 안되고 있습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역시 원주가 지정될 줄 모두 알았는데 충북 오송과 대구가 가로챈 것 아닙니까. 원주에 모든 의료 인프라가 다 깔려 있는데…”(염돈민 강원발전연구원 부원장)

⊙ “강원도 단단히 화났어. 역대 정권도 다 서자 취급을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지”(태백의 한 시민)
⊙ “이제 정부를 믿질 않는다. 그래서 정부에 요구하지 말고 우리끼리 똘똘 뭉쳐 민심을 전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유석연 원주시의원)
⊙ “고기가 안 잡혀 어민들이 난리입니다. 중국배가 동해안 어족의 씨를 말려요. 예년과 비교해 어획량이
    절반도 안됩니다. 각종 민원을 달래기에도 바빠요. 고성군도 금강산 관광 때문에 하루 몇십 건씩
    폐업하는 가게가 많다고 하더군요”(강원도 공무원 김진희씨)
춘천시 전경. 요즘 강원도의 민심이 어수선하다. 타시도보다 ‘빈곤화’와 ‘배제’의 불만이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호남에 버금갈 정도로 정부정책에 비판적이다.
  “대체 왜들 그런대? 강원도가 어쨌다고 여기까지 왔어? 우리 하곤 아무 관계없는 소리야. 여기 가난한 사람들은 일없어요. 좀 알고 떠들라고 해.”
 
  지난 10월 5일 춘천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노동자 풍의 한 사내는 대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태백에서 볼 일이 있어 왔다는 그는 “강원도가 단단히 화났어. 역대 정권도 다 서자 취급을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지. 강원도 광부들이 탄광촌 사택 비우고 떠날 때도 마찬가지야.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졌어?”라고 했다.
 
  기자는 멀어져 가는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강원도 민심이 요즘 어떠냐”고 괜히 말을 붙인 걸 후회하면서, 한편으론 왜 강원도를 알기 위해 찾아온 객(客)을 다짜고짜 나무랄까 속으로 따져 보았다. 그의 뒷모습에서 1980년 사북사태 때 광부들의 함성 같은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게 강원도의 진짜 민심일까, 생각했다.
 
  지난 6·2지방선거와 7·28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의 민심은 민주당 손을 들었다. 그동안 강원도는 대개는 집권정당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한나라당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도지사는 물론 기초단체장 및 광역기초의원까지 강원도 내 18개 시·군에 고루 당선자를 냈다. 기초단체장은 한나라당 10명·민주당 4명·무소속 4명, 광역의원은 한나라당 20명·민주당 12명·무소속 6명, 기초(시·군)의원은 한나라당 87명·민주당 36명·무소속 21명 등으로 각각 당선됐다. 여전히 한나라당 출신이 다수지만 민주당의 약진은 이변이다. 또 7·28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전국적으로는 승리하고도 강원도에서만큼은 또다시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향후 강원도의 정치 지형이 6·2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야도(野道) 강원’으로 변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강원 민심은 어둡다. 지난 9월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의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강원ㆍ제주도민의 62.7%가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호남(66.7%)과 비슷했다.
 
  강원도, 낙동강의 발원지이자 태백산이 온몸으로 하늘을 떠받치는 곳. 신비로운 수목의 길과 온갖 미생물, 산짐승과 들짐승, 동해의 파도가 속삭이는 ‘한반도의 허파’가 아닌가. 그런 천혜의 ‘착한’ 강원도가 단단히 화가 났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대한 강원도민의 기억
 
강원도 춘천 동내면 거두리의 한 조립식 가옥.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춘천에서 25개월간 칩거하며 권토중래를 꿈꾸던 곳이다.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지난 10월 3일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당선된 손학규(孫鶴圭) 대표가 25개월 동안 ‘칩거’했다는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로 향했다. 택시기사는 손 대표가 춘천에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기자는 택시 안에서 민주당 강원도당에 전화를 걸어 손 대표가 머문 곳의 주소를 물어보았다.
 
  거두리로 가는 동안 택시기사에게 강원도 민심이 어떤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이름을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 힘만 믿고 밀어붙여 노무현(盧武鉉) 때처럼 이광재(李光宰)가 된 것 아닙니까. 하도 밀어붙이니까 도지사를 바꾸면 조금 나아질 것 같아 그랬던 거지요. 역대 대통령 후보마다 강원도를 살린다고 했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면 홀대받아 온 곳이 강원도지요.”
 
  거두리 상동농협농산물집하장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렸다. 마을 어귀에서 밭일을 하는 농부에게 손 대표가 머문 집을 물었다. 소로(小路)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집이 나왔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닭장에는 손 대표가 직접 키웠다는 토종닭이 보였고 풀어놓은 개들이 왕왕 짖어댔다. 집 뒤로 대룡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박광운(朴光雲)씨는 “손 대표가 강원도에 연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원래 그 집 주인은 손 대표의 조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거두리의 마을주민들. 이홍연(사진 오른쪽)씨는 “TV에서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 대표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처음 손 대표가 이 마을에 왔을 때, 왜 왔냐고 경계를 했어요. 정치 쇼가 아닌지 의심했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지켜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손 대표가 머물던 집 아래에 말기암 환자들이 머무는 무료요양소가 있는데 손 대표 부부가 묵묵히 봉사활동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서울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제외하면 찾아오는 이도 없었어요. 세상과 절연해 외로움을 견뎠다고 생각했어요.”
 
  일흔여섯의 마을 노인 이홍연(李鴻淵)씨는 “TV에서 손학규씨가 민주당 대표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고 했다.
 
  “2년간 수양 삼아 이곳에 계셨는데 야당의 수장이 됐다고 하니 마을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반가워했어요. 주민과 큰 교류는 없었지만 마을 행사가 있으면 꼭 오셔서 막걸리 잔을 건네곤 했어요. 우리 같은 농민과 친하게 지냈으니 농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정치를 해주면 진짜 좋겠네요.”
 
손학규 대표의 집 아래 암환자 요양소가 있다. 사진 왼쪽부터 ‘기쁨의 집’ 요양소 최선자·박상운씨와 박창덕 목사. 이들은 “손 대표가 여러 차례 방문해 말기암 환자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머물던 집 바로 아래에 말기암 환자들의 거처가 있었다. 기자는 손 대표의 칩거생활을 듣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기쁨의 집’은 오갈 데 없는 말기암 환자들이 마지막 머무는 곳이었다. 환자들은 대개 이곳에서 5~6개월 정도 머무르다 세상과 이별한다고 했다. 한국호스피스협회 강원지회장인 박상운(朴商運)씨와 ‘기쁨의 집’ 총무부장 최선자(崔仙子)씨는 “손 대표가 이곳에 여러 차례 오셔서 환자들의 손을 잡기도 하고 지인들을 통해 쌀과 김치, 과일과 금일봉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혼자 등산을 많이 했고 생각이 많은 듯 보였어요. 손학규라는 정치인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정치를 하면 좋은 정치를 하리라 믿어요.”
 
  기자가 춘천에 가서 들어보니, 지난 지방선거에서 손 대표는 이광재 지사의 당선을 위해 강원도 시·군을 수차례 누볐다고 한다. 당이 필요로 할 때는 기꺼이 ‘외출’을 감행한 셈이다. 그 덕분인지 이 지사와 손 대표는 이후에도 끈끈한 유대를 맺었고 그런 인연은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힘을 발휘했다.
 
 
  “민심은 본래 비타협적”
 
김기남 강원도의회 의장.
  춘천시 중앙로 강원도의회를 향했다. 김기남(金箕男) 도의회 의장은 경남 진주에서 개최된 전국체전에 참석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다. 의회 앞에는 승합차가 시동을 걸어둔 상태였다. 김경호 의장비서관은 “춘천에서 진주까지 버스로 5시간이 걸린다”고 귀띔했다.
 
  김 의장은 “민심은 본래가 비타협적이다. 삶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소리는 정직하고 비타협적”이라고 했다.
 
  “6·2지방선거나 7·28재선거는 강원도가 변방으로 밀리고 천대받고 살아온 것에 대한 소외감 때문이지, 꼭 이명박 대통령이 싫어서 부표(否票)를 던진 것은 아닙니다. 누가 싫어서가 아니라 소외감이 작용한 것입니다. 강원도민이 하도 답답해서, 반(反)정부라기보다 답답한 마음이 많았던 것이죠.”
 
  강원도는 오랫동안 ‘빈곤화’와 ‘배제’의 고통에 시달려 왔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을 밑돌고 ‘국토균형개발’에서도 영호남에 밀려왔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지자체 재정난 원인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도 내 18개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21%(전국 평균 52.2%)였다. 특히 삼척과 태백, 홍천, 횡성, 영월, 평창,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양양 등 12개 시·군은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이라는 게 인구를 보고 배분합니다. 강원도 인구가 150만명밖에 안되지만 면적은 전국대비 16.8%로 경북 다음으로 넓어요. 인구비율로만 따져 재정을 배분하는 것은 소아병적 사고입니다.”
 
춘천 중앙시장 전경. 상인들은 “이광재 지사가 당선되자마자 도지사 직무가 정지됐을 때 깜짝 놀랐다.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최근 엄기영(嚴基永) 전 MBC 사장이 춘천으로 주소를 옮겼다. 이광재 도지사가 당선과 함께 직무정지 판결을 받고 나서의 일이다. 엄씨의 춘천행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온다. 춘천사람들도 다소 미묘하고 복잡한 시선이다. 김 의장은 엄 전 사장의 춘천고 6년 선배이기도 하다.
 
  “신문 보고 주소를 옮긴 것을 알았어요. 어쨌거나 6·2선거에서 이 지사가 당선되자마자 직무정지를 당하고 권한대행체제로 도정이 운영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직무정지가 풀렸지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에 따라 재선거를 치를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강원도는 다시 한 번 죽을 쑤는 셈이 돼요. 물론 행정이 흔들리는 것은 없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도정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요.”
 
  엄씨의 춘천행을 도지사 재선거를 위한 행보로 이해하는 눈치였다. 기자는 김 의장을 만나기 전 춘천중앙시장에 들러 상인들을 만났다. 한 상인은 “이광재 지사가 당선되자마자 직무가 정지됐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전혀 그 사실을 몰랐고 선거 내내 이슈화가 안됐다”고 했다.
 
  이 지사는 지난 9월 2일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강원지사 직에 복귀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아 7월 1일 도지사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된 지 두 달만이었다. 그러나 향후 대법원 상고심은 여전히 강원 도정의 최대 불안요소다.
 
  김 의장의 말이다.
 
  “지방선거에서 이 지사 쪽이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고 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씨 역시 이야기를 안 꺼냈어요. 그분 입장에서는 ‘야비하다. 원주고 후배인데 모질게 할 수 있느냐’며 얘기를 안 꺼냈죠. 양쪽에서 서로 말이 없으니 시골사람들이 모를 수밖에요. 지금 와서 그 얘기를 하면 ‘그게 무슨 얘기냐’며 화들짝 놀랍니다.”
 
 
  춘천ㆍ원주ㆍ강릉의 미묘한 小지역주의
 
원주시 전경. 원주는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2010년 4월 현재 30만8441명. 급성장하고 있으나 정부에 대한 반감도 가장 짙은 곳이다.
  강원도의 간판도시 춘천, 원주, 강릉은 지역 분위기가 서로 다르다. 춘천은 도청 소재지가 있는 강원도의 수도지만 인구는 원주가 더 많다. 원주 인구는 2010년 4월 현재 30만8441명에 이른다. 이 중 7만여 명 정도만 원주가 뿌리고, 23만여 명은 외지인이다. 대개 강릉ㆍ속초ㆍ동해ㆍ삼척 등 동해안 지역에서 이주했다고 한다. 원주가 급성장하면서 춘천과 강릉권 사람들은 같은 강원도지만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낀다. 또 강릉권의 현안에 대해 춘천이나 원주가 느끼는 절박함은 강도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3개 권역이 소(小)지역주의로 뭉쳤다는 이야기를 취재 도중 들을 수 있었다.
 
  강원발전연구원 염돈민(廉?玟) 부원장은 “강릉과 원주, 춘천이 조금씩 정서가 다르다. 소외감이 제일 큰 곳이 강릉”이라고 했다.
 
  “강릉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동해안 쪽 기반산업마저 상당히 붕괴되고 있어요. 고기가 안 잡혀 수산업이 위태롭고 금강산 관광이 망가져 관광산업도 위협받고 있어요. 춘천과 원주권 빼고 중심권 기능이 약해지니까 강원도 전체가 침체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강원도에서 가장 급성장 중인 원주에 반MB 정서가 부각되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요.”
 
  원주는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절묘한 선택을 했다. 지난 2006년 기초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대 민주당 의석비율은 20대 2였다. 그러나 지난 6·2선거에서는 11대 11로 ‘황금분할’을 택했다. 또 원주시장과 원주시의회 의장 모두 한나라당에서 민주당 출신으로 바뀌었다.
 
  염 부원장은 “정서적으로 원주는 상지대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상지대가 예민한 현안에 걸려 있는 것 아시죠?”라고 물었다.
 
  상지대는 오랫동안 학내 분규로 몸살을 앓은 곳이다. 상지대를 좌파들이 장악한 대학으로 보는 시각이 드셌던 것도 사실이다. 현 정부 들어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구 재단 측에 정이사를 과반 이상 배정하자 또다시 학내 갈등이 불거졌다.
 
  염 부원장은 “조심스런 얘기지만 상지대가 원주 쪽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며 “게다가 노무현 정부 때 혁신도시, 기업도시로 지정됐지만 MB정부 들어 자꾸 흔들리니 박탈감이 컸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기업도시 둘 다가 원주로 지정됐는데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고 있어요. 세종시에 온통 관심이 쏠려 이쪽(원주)은 다 죽는다는 반대여론이 높았었죠. 대규모 국책사업이 강원도가 별로 없어요. 수질개선이나 자전거 도로 사업비가 조금 있을 뿐입니다. 4대강 사업도 강원도와 전혀 관계가 없고 ‘동해안 경제자유구역’ 지정도 몇 년째 질질 끌면서 해결이 안되고 있습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역시 모두 원주가 지정될 줄 알았는데 충북 오송과 대구가 가로챈 것 아닙니까. 원주에 모든 의료 인프라가 다 깔려 있는데….”
 
 
  강원도, 無장관 無수석 시대
 
강릉시 전경. 강릉시민들은 원주, 춘천은 물론 속초, 동해보다 더 낙후됐다고 말한다. 시민들은 “인구가 점점 줄고 산업기반도 낙후돼 ‘다른 사람을 뽑아 보자는 심리가 작용했다’”고 말했다.
  염 부원장은 정치논리에 의해 강원도가 소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대로 두면 큰일이 난다”고 걱정했다.
 
  “원주-강릉 복선전철 역시 줄려고 해서 강원도에 줬나요? 질질 끌며 얼마나 애를 먹였나요. 지금은 그나마 사업이 확정됐지만, 해주려면 흔쾌히 해주든가, 그렇게 속을 썩였는데요. 그것도 찔끔 해주고…그래서 지난 선거 때 본때를 보여주자, 하는 심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수도권의 팽창에 대해 느끼는 강원도의 소외감과 박탈감은 이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태백ㆍ영월ㆍ정선과 같은 곳을 지원하는 폐광지역특별법은 한시법이거든요. 2015년인가 끝이 납니다. 강원랜드의 독자적인 지위라는 게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데, 부정적 영향이 크지만, 그나마 그것 가지고 밥 벌고, 지역경제가 돌아가는데 점점 불안요소가 되니, 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지요.
 
  수도권 규제도 대부분 다 풀리고 남은 게 몇 개 없어요. 경기도 내 대학입지규제 정도입니다. 그래서 구리, 남양주 쪽에는 대학이 없어 원주나 충청권이 덕을 봤어요. 수도권이 커지면 강원도가 얻는 혜택이 있겠지만 수도권 인접지에 불과합니다. 최근 속초에 있는 동우대학이 원주(문막)로 이사를 간다고 선언했어요. 강원도 전체로 볼 때, 도내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원주는 강원도 동해안 인구를 빨아들이는 것이지, 수도권 인구를 흡인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속초가 난리 났어요. 지역 대학이 사라지니 속초 경제도 타격이 아닙니까.”
 
  ―왜 현 정부 와서 그런 불만이 반정부 심리로 촉발됐다고 보나.
 
  “그게 반 한나라당 정서인지, 친 야당정서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강원도 소외론이 팽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봐요. 지난 정부는 그래도 지방분권에 신경 쓰고 푼돈도, 목돈도 나눠줬는데, 현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편다면서 수도권 규제만 풀었잖아요.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현 정부는 지방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국토를 시장논리, 경쟁논리로 바라보니까, 서울과 강원도를 경쟁하라고 하면 경쟁이 됩니까?”
 
  한 공무원은 6·2선거 당시 이광재 후보와 이계진 후보의 확연히 다른 행보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선거를 앞두고 도청 공무원들이 평일에 체육대회를 했어요. 경기가 없는 몇몇 부서는 천막 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데 이계진씨가 왔어요. 그는 대뜸 ‘경기는 안 하고 술판을 돌리나. 왜 평일에 경기를 하나’라고 했어요. 공무원끼리 쑥덕였어요. ‘저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도지사 다 된 것처럼 말해?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말이야 백번 옳지만, 나중에 지사가 돼 고치면 될 것 아닙니까? 이광재 지사는 달랐어요. 고생한다면서 공무원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거든요.”
 
  또 적잖은 공무원이 김진선(金振?) 전임 지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원일보 논설위원 출신의 최수영(崔秀永) 전 강원도 서울사무소장의 말이다.
 
  “김 전 지사가 지닌 도정 12년의 자산을 그냥 사장시키는 것이 강원도민에 대한 예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가 동계올림픽 유치의 열망이 있다면 역할을 줘야 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어요. 해외에서는 김 전 지사를 ‘올림픽 거버너’라고 부릅니다. 임기는 끝났지만 그가 지닌 국제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해요. 도민들은 요즘 ‘강원도 사람, 무(無)장관 무수석 시대’라는 말을 합니다. 위무한답시고 차관 4명을 강원출신으로 앉혔지만 사실 차관은 에이스 공무원이 하는 자립니다.”
 
 
  동계올림픽 3修 도전이 ‘물 먹어봐라’ 심리 낳아
 
강원대 신문사 기자들. 하초희 편집국장(오른쪽)과 허용찬 기자. 기자들은 “지난 6·2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기사를 많이 썼고 학생들의 분위기도 과거와 달랐다”고 말했다.
  기자는 강원대를 찾아 학생들을 만났다. 대학축제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강원대신문사 하초희 편집국장(사회학3)은 “어느 때보다 6·2선거 열기가 높았고 대학신문에서도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기사를 많이 썼었다”며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진보적 성향이 높고 그게 표심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 국장은 또 “연말쯤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된다고 하는데, 춘천 출신 한승수(韓昇洙) 전 총리 덕을 본 게 아닌가 하는 게 강원도 민심”이라고 했다.
 
  대학신문사 기자인 임동주(사회학2)씨와 허용찬(기계응용학2)씨도 “대학 내 선거독려 캠페인이 활성화됐고 비록 학생수 미달로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는 안됐지만 선거분위기는 과거와 달랐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강원대 동물생명과학대학 성경일(成慶一) 교수를 만났다. 성 교수는 “한나라당이 6·2선거와 같은 공천을 하면 영원히 민심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맥없이 깨지게 만든 공천, 지역 인재를 키우지 못한 한계, 도민의 공감대가 없는 평창 동계올림픽 3수(修) 도전 등이 복합 작용해서 ‘물 먹어봐라’는 심리가 작용했다”며 “민심이반이 이제 시작인지 모른다. 고착화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지난 8월 6일자 <강원도민일보> 시론에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3수 도전과 관련해 의문을 던졌다.
 
  <강원도에는 해결해야 할 굵직굵직한 현안이 많다. 2018 동계올림픽, 알펜시아 리조트, 원주~강릉 복선전철, 수도권~속초 간 고속철, 동해안 경제자유특구 지정, 여기에 일부 지자체의 대형 리조트 사업 등이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대형사업으로 경제성장과 행복, 즉 ‘더 많이’와 ‘더 나은’이라는 것을 기대한다.
 
  대형사업들이 진정으로 도민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인지, 행복은 고사하고 정말 지역 경제활성화에 얼마나 오랫동안 기여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규모경제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대형사업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규모가 성공과 이윤을 보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강원대 성경일 교수.
  계속해서 성 교수의 말이다.
 
  “동계올림픽이 평창과 강원도,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올림픽이 지역 간 컨센서스를 모은 것인지 반문하고 싶어요. 동계올림픽 여론은 철저히 만들어진 것입니다. 올림픽을 유치하면 사회간접자본이 단기간에 투입돼 각종 산업과 지역발전을 보장한다는 논리를 댑니다. 물론 단기 효과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몬트리올 올림픽, 한일 월드컵 및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최 후 이들 도시가 재정압박 문제로 후유증을 앓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는 “피상적으로 올림픽이 강원도를 살린다고 뻥 튀겨 얘기하지 말고 지역이 발전한다면 정확히 어떻게 발전하게 되며, 전체 강원 도민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리조트 사업이나 교통망 사업도 타 시도와 차별화된 전략이 무엇인가를 수립한 후에 지역주민의 행복한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나라당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요. ‘당신들이 이기려면 머리 깎고 백배사죄하는 모습을 보여라’고요. 마음 다독인다고 장관자리 몇 개 주고, 몇 푼 예산 나눠주는 식으로는 민심을 달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강원도를 찾아와 현재 민심을 들어보세요.”
 
 
  원주의 민심이반
 
상지대 분규사태는 원주의 정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맨위 사진은 구 재단의 복귀를 환영하는 현수막, 가운데는 반대하는 현수막, 아래는 ‘보수 진보 정치놀음 관심없다’는 학생들의 현수막.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요즘 원주는 울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표정관리하기에 바빴었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동서울-춘천-원주-안동-대구를 거쳐 부산을 잇는 중부 내륙의 물류거점으로 부상했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로 공장 짓기가 어려워지자 원주 일대로 공장들이 몰려들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로 지정되면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 30만명이 넘었다. 내심 ‘세계적인 의료기기 클러스터’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분위기가 반전됐다. 인구증가가 정체됐고 기업ㆍ혁신도시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첨단의료복지단지 지정도 오송과 대구에 빼앗겨 버렸다. 원주 출신 이계진씨가 6·2선거에서 고향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고 그의 의원직 반려로 치러진 7·28보궐선거도 민주당 박우순 후보가 당선됐다.
 
  기자는 택시를 타고 학내분규를 다시 겪고 있는 상지대로 향했다. 택시기사는 “이계진이 마음을 놓은 것 같다. 이광재 쪽은 선거운동 마지막까지 뛰더라”며 “6·2선거 2~3일 전 한 여자손님이 탔는데 ‘괜히 한나라당이 밉다’고 하더라”고 했다.
 
  상지대 캠퍼스 역시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대학건물 한쪽에는 ‘김문기 사학비리세력의 학원찬탈 결사 저지’라는 대형 현수막이 요란하게 걸려 있었다. 또 ‘상지학원 김문기 설립자 학원복귀를 지지해 주신 원주시민께 감사드린다’는 현수막도 볼 수 있었다.
 
  행정학부에 재학 중인 학생은 “학생의 80~90% 이상이 구 재단의 복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깊이 있는 내막을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솔직히 대학을 두고 또다시 멱살잡이하는 데 화가 난다. 학생들이 대학의 주인 아니냐. 대학 발전을 위한다면서 싸우는 사람들의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상지대 대학원생 박석미(朴晳美)씨는 이렇게 말했다.
 
  “비리 재단으로 퇴출됐던 분이 다시 학교를 되찾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이 대학을 단지 재산 정도로 여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요. 대학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할까요? 그럼,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단지 자기 재산을 되찾겠다는 차원이라면 상지대 학생들이 환영할 수 없어요. 과거 좌파정부에 있었던 강만길ㆍ한완상ㆍ김성훈씨 등이 총장으로 오면서 좌파대학으로 비친 부분이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죠. 또 교수 중에서도 이념적 성향을 가진 분이 있지요. 그럼 그런 좌파성향 교수가 다른 대학에는 없나요? 서울대는 없나요? 연세대, 고려대는 없나요? 다 있잖아요. 교수들 일부는 또 구 재단 쪽 사람들과 관련된 이도 많아요. 그런저런 갈등이 다 지역정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어요.”
 
  대학을 이리저리 거닐다 눈에 띄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한방의료공학과 학생들이 쓴 것이었다.
 
  <보수 진보 정치놀음 관심없다. 우리는 민주적 정이사를 원한다.>
 
 
  첨복단지를 대구에 뺏긴 데에도 화나
 
원주시의회 신수연, 유석연 의원(왼쪽부터).
  기자는 다시 원주시의회로 향했다. 시의원들이 보는 민심을 듣기 위해서다. 공교롭게도 이날 민관 체육대회에 참석하느라 의원 대부분이 자리를 비웠다. 한참을 기다려 민주당 유석연(劉錫演)ㆍ신수연(辛壽蓮)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원주가 고향인 유 의원은 공직자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6·2선거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시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세종시 때문에 원주의 기업도시 준비가 엉망이고, 영세한 기업만 돌다리를 두드리는 식이니 원주 경제가 말이 아니다”고 했다.
 
  “첨단의료복지단지에 기대를 많이 했어요. 이명박 대통령도 원주 문막을 찾아 의료기기에 관심을 많이 보였잖아요. 그런데 대구로 왜 갔나요? 월등히 원주가 낫지만 대구로 간 것은 대통령 입김 때문이 아닌가요? 그래도 내심 춘천 출신의 한승수 전 총리가 챙겨주겠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도둑맞은 격이 되니까 불신이 증폭된 것입니다.”
 
  ―그래도 원주가 춘천, 강릉보다 훨씬 발전했잖아요?
 
  “원주는 교육과 군사,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원주가 커야 강원 전역에 물결이 입니다. 그런데 원주 발전이 정체되니까 불신이 계속되는 겁니다. 또 춘천은 한 전 총리 때문인지 서울과 춘천 간 전철이 연결되는데, 인구가 제일 많은 원주는 연결이 안돼 화가 난 것입니다.”
 
  현재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는 지난해 7월 개통됐다. 또 경춘선 복선전철은 오는 12월 개통을 앞두고 있다. 경춘선 복선화 사업이 시작된 지 꼭 13년 만의 일이다. 당초 2004년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예산배정이 늦어져 6년을 끌다 개통되게 됐다.
 
  유 의원은 “원주는 교통망 확충이 안돼 꽉 막혀 있으니 답답하다. 서울-원주가 전철이 안되니 불신이 계속 될 것이다. 이제 정부를 믿질 않는다. 그래서 정부에 요구하지 말고 우리끼리 똘똘 뭉쳐 민심을 전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주장했다.
 
  곁에 있던 민주당 신수연 의원은 조금 다른 해석을 했다. 그녀는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다. 그녀는 스스로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원주는 너무 사업을 방만하게 벌인 게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민심이) 돌아섰다고 생각을 안 합니다. 선거기간 중 4대강이 어떻다는 얘기는 별로 안 한 것 같아요. 보수성향의 원주정서도 크게 달라졌다고 보진 않아요. 아무래도 지난 선거의 돌풍은 이광재 효과, 그러니까 강원도가 낳은 인물을 키우자는 생각이 강했다고 봐요. 그동안 강원출신 인사가 중앙에서 천대받았잖아요. 그러나 이광재라는 인물은 강원을 위해 뭔가 해줄 것 같은 기대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광재 효과의 실체는 무언가요. 이계진씨가 네거티브 선거를 했다면 표심이 달라졌을까요?
 
  “그래도 근소한 차이로 이겼을 겁니다. 지금의 차이보다 조금은 더 줄어들 수 있지만 그래도 이광재 지사가 이겼을 겁니다. 저는 이번에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며 이 지사와 10분 정도밖에 얘기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짧은 대화 속에 ‘저 사람과 일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백이나 정선, 평창 같은 곳에 가보세요. 서민이 사는 시장부터 분위기가 다릅니다. 과거 강릉은 민주당 후보를 내려 해도 사람이 없어 공천을 못했어요.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자를 못 낸 곳이 수두룩해요. 하지만 이겼어요. 그 비결은 이광재입니다.”
 
 
  한나라당 당직자도 이광재 후보 찍어
 
강릉 중앙시장 전경. 시장번영회 강신환 회장은 “지난 지방선거 때 시장은 한나라당, 도지사는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강릉을 향했다. 동해안 도시들은 원주, 춘천과 또 분위기가 다르다. 동해와 삼척은 경북과 가까워 경상도 어투가 많이 배어 있고 바닷가 성향 때문인지 드세다는 얘기도 한다. 또 속초와 고성은 한 생활권으로 묶이고 양양은 ‘강원도의 하와이’라 불릴 정도로 지역정서가 구별된다. 똘똘 뭉치기로 ‘양양’만 한 곳이 없다.
 
  강릉은 유서 깊은 강릉향교가 먼저 연상될 정도로 유교적 분위기가 강하다. 씨족 분위기가 강해 과거엔 강릉사람끼리만 혼인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강릉 김씨, 강릉 최씨, 강릉 박씨의 파워가 아직도 드세다.
 
  강릉중앙시장에 가보니, 뭔가 살아 꿈틀대는 싱싱한 느낌이 들었다. 시장이 마치 갯벌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중앙시장은 좌판이 500개고 상인이 430여 명에 이르는 강릉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이다.
 
  “이건 000이에요. 비싸데요. 한 마리 3000원 나가요. 요샌 잘 안 잡혀요. 이거는…, 그놈은 000이고, 요놈은 이름이 뭐더라?”
 
  강원도 방언이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 한 상인에게 경기를 물었더니 금세 얼굴이 굳어졌다.
 
  “저는 강릉 토박이입니다. 아시다시피, 어족이 줄고 고기가 안 잡힌다고 합니다. 옛날엔 어땠냐고요? 한참 잘나갈 때는 강릉의 유동인구가 20~30%가 된다고 할 정도였어요. 사시사철 막 잡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대형마트가 생기고 어족도 줄어 점점 살기가 힘듭니다. 정부 대책이란 것도 없습니다.”
 
  중앙시장에서 건어물 상회를 운영 중인 강신환(姜信?) 시장번영회 회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시장은 한나라당 후보, 도지사는 이광재 지사를 찍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나라당 강원도당 강릉시 운영위원이다. 한나라당 당직자가 민주당 후보를 찍은 셈이다.
 
  “강릉이 원주ㆍ춘천은 물론 속초ㆍ동해보다 더 낙후되지 않았나 싶어요. 과거엔 동해나 삼척으로 가려면 강릉을 꼭 거쳤는데 지금은 바로 빠져나가니 강릉의 이점이 없어요. (상권이) 심각합니다. 게다가 친절봉사 교육을 하려 해도 상인들이 죄다 고령입니다. 물건 파시다가 돌아가실 정도입니다.”
 
  ―이광재 지사를 찍었다면서요.
 
  “네. 지난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출신 강릉시장의 득표율이 거의 80%나 됐는데, 민주당 이광재 지사는 54%가 나왔어요. 참 웃기지 않나요? 저도 이 지사를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났는데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누구든 그분과 5분을 얘기하면 그쪽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4~5번 만났던 이계진씨를 모처에서 만났더니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요. 황당하더라고요.”
 
  ―이광재 효과의 실체는 뭡니까.
 
  “지방선거 막판에 의회 의장이 찾아와 도와달라는 걸 ‘안 한다’고 했어요. 다른 분은 다 돕지만 도지사만큼은 안 된댔어요. 보통 정치인이 시장에 와서 상인을 만나면 비늘 따던 손을 안 잡으려 하잖아요. 그리고 의례적인 몇 마디 하고, 횡 하니 가버리는데 이 지사는 중앙시장에 와서 상인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나눠요. 깜짝 놀랐어요.”
 
강릉향교의 전찬택 전교.
  이번에는 강릉향교를 찾았다. 때마침 안동향교에서 수십 명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전찬택(全燦鐸) 전교(典敎)가 강릉향교의 유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강릉향교는 대성전에 21위, 동무(東?-문묘 안에 여러 유학자를 배향하던 동쪽 행각)에 58위, 서무에 57위로 모두 136위를 봉안하고 있어 전국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강릉 하면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이 떠오른다. 허균과 허난설헌, 매월당 김시습, 김동명, 황금찬 시인이 모두 이 고장 출신이다.
 
  강릉농공고 교장을 역임한 전 전교는 “강릉은 성곽도시로 문호를 개방하는 데 익숙지 않다. 동해안 북쪽은 함경도 문물, 남쪽은 경상도 문물을 받아들였다. 성곽사람끼리만 근친혼을 많이 해 혈족, 씨족 사상이 강하다”고 했다. 그는 정선 전씨 강릉지구회 종친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전씨에게 강릉 민심을 물었더니 “경기도 나빠지고 되는 일도 없고, 지역 정치인의 실적도 뚜렷한 게 없다. 기왕에 뽑아 놓으면 중간에 임기를 못 마치고 그만 둬서 인물에 대한 갈망이 컸다”고 했다. 그 역시 시장은 한나라당, 도지사는 민주당을 찍었다고 했다.
 
  “강원도가 소외받고 있고 그중에서도 영동이 더 발전이 안되고 있어요. 원주나 춘천은 기업도시다, 혁신도시다, 도로가 새로 나고 전철이 뚫리는데 영동은 계속 나빠지기만 합니다. 인구도 점점 줄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소외받느니 다른 사람을 뽑아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어요. 이 지사는 젊은 사람으로서 패기와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치는 문외한이지만 그렇게 마음이 기울었어요. 또 이광재 지사는 강릉향교를 찾아왔지만, 이계진씨는 오지 않았어요.”
 
  ―이광재 지사가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아셨나요?
 
  “이쪽 주민들은 이 지사가 재판받은 사실을 몰랐어요. 나중에 그런 얘기가 나오니 ‘그럼 왜 그런 사람을 공천했느냐’고 해요.”
 
  “정부가 강원도에 대해 홀대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계속 서자 취급하면 강원도 민심이 돌아설 것이라고들 말한다. 또 이제는 극단까지 왔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고기가 안 잡혀 동해안이 아우성”
 
  기자는 택시를 타고 주문진항을 찾았다. 강원도가 뭘 먹고 살지 공무원 얘기를 듣고 싶었다. 강원도 환동해출장소 김진희 기획총괄과장은 “고기가 안 잡혀 동해안이 아우성”이라고 했다. “어획량이 줄고 유동인구는 떠나고 중국 어선들이 동해안까지 고기를 싹쓸이해 경기가 엉망”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강원도의 총생산(GRDP)은 7조5000억원으로 전국 16개 시도 중 대전, 광주, 제주 다음으로 강원도가 취약하다. 1인당 지역 내 총생산은 2007년 기준 1718만원으로 8번째다. 강릉ㆍ동해ㆍ속초·삼척ㆍ고성ㆍ양양 등 6개 시·군이 바다를 끼고 있는 독특한 환경을 지닌다. 중국 동북3성과 극동러시아와의 환동해 경제권 형성에 동해 바다는 엄청난 자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동해안의 비전과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 교통인프라도 약하다. 겨울이 길고 산악지형이 많은 계절ㆍ지형적 한계도 있다.
 
  “강원도가 동해안에 기업유치를 하려 해도 잘 안됩니다. 물류비가 많이 드니 투자를 안 합니다. ‘동해안 경제자유구역’ 지정해 기업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문턱이 높아요. 정부가 높은 기준부터 정해 놓고 안 된다고 하는데, 일단 지정을 해놓으면 업체들이 면세가 돼 수도권 기업이 올 게 아닙니까. 시·군 단위에서 ‘오십시오, 오십시오’ 해서 기업이 오겠습니까.”
 
  ―이 지사를 찍었나요?
 
  “하하하, 강원도가 낙후되고 인사에서도 배제됐잖아요. TV 토론에서 이 지사는 현안을 두루 꿰고 있었지만 이계진씨는 그저 두루뭉술하게 얘기했어요. 이 지사는 환동해출장소에 당선 전에도 오고, 후에도 왔어요. 이계진씨는 보지 못했어요.”
 
  김 과장은 이 지사가 된 뒤 업무가 더 늘었다고 했다. “내년도 예산을 어느 사업에 집중 투자할지 결정하는데, (이 지사가) 아는 것도 많고 발이 넓어서 공무원이 골치 아프다”고 귀띔했다.
 
  “동해안 어항들의 가장 큰 민원은 유류비입니다. 배를 출항하려면 유류비가 많이 드는데 유류 보조비율을 올려달라는 민원이 끊이질 않아요. 또 고기잡이 선원을 구하기 힘들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서 조업을 하다 사고를 당하는 이가 많아요. 또 고기가 안 잡혀 해마다 감척을 하는데, 어민 입장에는 실거래가의 60~70%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김 과장은 예산이 빠듯해 어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그런 어민의 불만들이 정부 비판 쪽으로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고기가 안 잡혀 어민들이 난리입니다. 중국배가 동해안 어족의 씨를 말려요. 예년과 비교해 어획량이 절반도 안됩니다. 각종 민원을 달래기에도 바빠요. 고성군도 금강산 관광 때문에 하루 몇십 건씩 폐업하는 가게가 많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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