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政街 소식] ‘미국판 뉴라이트’ 티파티 운동 : 월간조선

“위 셸 오버컴(We Shall Overcome)~, 위 셸 오버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해 온 의료보험개혁법안 논의가 한창이던 3월 20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건물 안에서는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법안을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든 한 무리의 시민들이 리버럴들이 즐겨 부르는 운동 가요를 열창했다. 티파티(Tea Party) 운동가들이었다. 방만한 경제 운영을 비판하며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티파티 운동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극(極)과 극으로 갈린다.

리버럴 진영은 티파티 운동을 격렬하게 비난한다. <뉴욕 타임스>는 2월 16일 특집 기사를 통해 티파티를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오스 키퍼스(Oath Keepers)와 같은 무장 민병대(民兵隊) 조직이 들끓는 극우(極右)세력의 온상처럼 묘사했다. 전국서비스업노동조합 대표인 앤디 스턴(Andy Stern)은 티파티를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비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티파티는 공화당과 우파(右派) 로비 단체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보수(保守) 진영은 정반대의 입장이다. 토크쇼 진행자인 글렌 벡(Glenn Beck)은 직접 ‘9·12 운동’이라는 티파티 운동을 이끌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수주의 로비 단체인 미국보수주의연맹 회장인 데이비드 킨(David Keene)은 “기존 보수 단체들은 공화당의 박수부대로 전락했다”며 “티파티야말로 보수주의의 미래”라고 치켜세운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인 마이클 스틸(Michael Steele)도 “티파티는 공화당의 가장 든든한 동지”라고 치하했다.

‘큰 정부’에 대한 반감

티파티 운동은 1773년 영국정부의 독단적인 과세정책에 반대해 일어났던 보스턴 티파티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티파티가 미국 국민 다수(多數)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2월 12~15일 여론조사기관인 오피니언 리서치(Opinion Research)사(社)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중 35%는 티파티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부정적으로 본다고 한 응답자는 19%였다. 라스무센(Rasmussen)사가 3월 28일 행한 조사 결과도 유사하다. 응답자 중 52%가 ‘티파티가 현역 의원들보다 국정(國政) 현안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고 한 이는 30%에 그쳤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는 시민운동이 이러한 열성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티파티가 급성장한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째, ‘큰 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뿌리 깊은 반감(反感)이다. 미국에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정부의 크기와 역할의 확대를 반대하는 독특한 정치 문화가 있다. 이런 정서의 기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73년 보스턴 시민들은 영국이 독단적으로 세금을 신설한 데 반발, 티파티를 하겠다고 모여 영국으로부터 수입한 차(茶)를 바다에 버리며 영국 정부의 전횡(專橫)에 항거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정부에 대한 불신(不信)은 그대로 남았다. 국민을 탄압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연방정부가 대규모 정규군(正規軍)을 보유하는 것조차 반대했다. 정부 기관의 숫자나 권한도 최소화했다.

이러한 정치 문화는 역사를 통해 주기적(週期的)으로 분출되어 왔다. 19세기 초반에는 중앙은행 폐지 운동으로 나타났다. 1828년 대선(大選)에서 승리한 앤드루 잭슨은 1791년에 알렉산더 해밀턴 등의 주도로 설립된 뒤 1816년 재(再)설립인가를 받은 중앙은행을 폐지하려 했다. 중앙은행은 국부(國富)를 하나의 기관에 집중시키고 가진 자를 더욱 부유하게 하며, 지역 간 빈부(貧富)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특권층에 대한 반감과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을 함께 묶은 잭슨의 주장은 국민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었다. 1833년 중앙은행은 문을 닫아야 했다.

릭 샌텔리, ‘제2의 티파티 운동’ 제창

‘제2의 보스턴 티파티 운동’을 제창한 릭 샌텔리.

‘큰 정부’에 대한 반대 정서는 대공황(大恐慌)의 한복판에서도 고개를 들었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민주당 정권은 공황을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경제부흥청 등 수십 개의 정부기관을 신설하는 등 연방정부의 크기와 권한을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전체 국가소득 대비 세금의 비율은 1921년 11.6%에서 1932년 21.1%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수천여 개의 납세자연맹(Taxpayers League)이 조직됐다. 이들은 세율을 낮추거나 세금을 폐지하고 정부 지출 규모를 줄이라고 요구했다.

근래 티파티 운동이 등장한 배경에도 정부의 크기와 권한을 늘리려는 오바마 정부의 시도가 있었다. 오바마는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을 통과시켰고, GM과 크라이슬러를 사실상 국유화(國有化)했다.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의 혈세(血稅)를 이용하여 AIG 등 파산 위기의 금융기관들을 구하려 했다. 정부 규제를 대폭 늘리는 한편 심각한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약 1조 달러가 소요되는 의료개혁을 강행, ‘큰 정부’에 대한 반대정서를 불러일으켰다.

반대 집회는 지난해 2월부터 산발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 2월 10일에는 플로리다주(州) 포트 마이어스에서 방만한 예산을 성토하는 집회가 개최됐다. 6일 뒤에는 시애틀에서 경기부양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큰 정부’에 반발하는 운동이 티파티라는 이름을 갖고 전국으로 번지게 된 데는 짤막한 동영상(動映像)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 2월 19일 경제전문 뉴스 채널인 CNBC의 릭 샌텔리(Rick Santelli)는 시카고 선물(先物)거래소에서 생중계로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제2의 보스턴 티파티를 열자”고 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거래소 직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고 환호한 것이다.

샌텔리 동영상은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우파 인터넷 뉴스 포털인 드러지 리포트(Drudge Report)는 동영상을 즉각 속보(速報)로 보도했다. 몇 시간 뒤에는 ‘시카고 티파티 닷 컴(ChicagoTeaParty.com)’이라는 웹사이트가 만들어졌다. 다음 날에는 미국판 싸이월드인 페이스북(Facebook)에 티파티 사이트가 등장했다. 이어 ‘티파티 패트리어트(Tea Party Patriots)’,‘티파티 익스프레스(Tea Party Express)’, ‘티파티 네이션(Tea Party Nation)’ 등 전국 단위의 티파티 단체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났다.

좌파의 운동기법 援用

티파티 익스프레스 집회 참가자가 ‘나는 오바마 나라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쓴 선전물을 머리에 쓰고 있다. 선전물 옆에는 티팩이 하나 달려 있다.

이들은 작년 2월 27일, 40여 개 도시에서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세금 자진 신고 마감일인 4월 15일과 9·11테러 기념일 하루 뒤에도 대규모 옥외(屋外) 집회를 열었다. 워싱턴 DC에서 열린 9·12 집회에는 120만명(경찰추산)이 참여해서 정부정책을 성토했다.

티파티가 급격하게 확산된 두 번째 요인은 이들이 좌파(左派)의 운동방법론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 우파 운동가들은 좌파 운동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운동방법을 채택해 왔다. 우파는 대중집회 대신 차분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선호했다. 이는 우파가 법과 질서를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리버럴이나 급진주의자들을 모방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티파티 운동가들은 다르다. 이들은 1960년대 빈민 운동가들과 일부 뉴 레프트 운동가들이 성전(聖典)처럼 여기던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Rules for Radicals)’을 비롯한 사울 앨린스키 (Saul Alinsky)의 저서들을 탐독한다.

앨린스키의 이론을 티파티 운동에 적용시키려 하는 노력의 선봉에는 하원(下院) 공화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딕 아미(Dick Armey)가 1984년에 설립한 ‘프리덤워크스(Freedom Works)’가 있었다. 프리덤워크스는 평범한 시민들을 전문 운동가로 만들었다. 시민들로 하여금 불의(不義)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하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무력감(無力感)을 딛고 일어서 기성(旣成) 정치인들과 정부, 이익 단체들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줬다. 나아가 다른 시민들을 조직할 수 있는 기법을 전수했다.

프리덤워크스의 노력은 지난해 여름에 있었던 민주당 의원들의 국정보고(國政報告) 타운홀 미팅에서 결실을 맺었다. 과거에는 묵묵히 의원들의 보고를 듣고만 있었던 시민들이 돌변, 공세적(攻勢的)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반정부 플래카드를 들고 행사에 참여했고, 의사진행 발언을 이용해 미팅의 진행을 방해했다. 질의 응답 시간을 요구한 뒤 의원들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에는 야유를 보냈다. 이들의 공격을 받은 의원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미팅에 참여한 시민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러한 체험은 티파티 운동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인터넷 활용에도 적극적

티파티 패트리어트 회원들이 ‘이미 충분히 세금을 냈다(Taxed Enough Already)’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티파티는 인터넷이 리버럴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2008년 대선(大選) 당시 조 로스파스(Joe Rospars)와 크리스 휴즈(Chris Hughes)가 이끄는 오바마 선거본부의 인터넷팀은 온라인 선거운동의 신기원(新紀元)을 이룩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300여만 명으로부터 5억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을 모았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킹 기법을 이용하여 선거 조직을 꾸려냈다. ‘마이버락오바마 닷 컴(MyBarackObama.com)’이라는 네트워킹 사이트를 통해 3만5000개의 선거 조직을 만들고 약 20만 개의 오프라인 지지 모임을 열었다.

티파티도 그에 못지않게 활발한 온라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각종 행사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 기성 언론들이 티파티 행사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티파티 익스프레스’가 만든 동영상 사이트인 ‘티파티 익스프레스 TV’는 수십만 명의 고정 시청자를 자랑한다. 로저 사이먼(Roger Simon) 등이 2005년 설립한 온라인 언론 매체인 ‘파자마스 미디어(Pajamas Media)’ 소속의 ‘파자마스 TV’는 2009년 4월 15일 시위를 12시간 동안 중계해 화제를 모았다. ‘파자마스TV’는 200여 명의 시민 기자를 앞세워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문자로 행사를 보도했다.

네드 라이언(Ned Ryun)이 2008년에 설립한 ‘아메리칸 머저리티(American Majority)’는 온라인 운동방법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공직 출마자들에게 선거운동 요령을 가르치고 일반 시민들과 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중 운동가들을 육성해 온 머저리티는 티파티 멤버들을 위해 ‘애프터 더 티파티 닷 컴(AfterTheTeaParty.com)’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물론 온라인 네트워킹 사이트인 플럭(Plurk)과 닝(Ning), 사진 공유사이트인 플리커(Flickr)를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시키고 있다.

티파티는 전자민주주의(電子民主主義)의 새 장(章)을 열기도 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紙)에 따르면 티파티 패트리어트는 1994년 중간선거를 위해 공화당 의원들이 만든 ‘미국과의 약속(Contract with America)’에 버금가는 공약집인 ‘미국으로부터의 약속(Contract from America)’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4월 15일 공개를 목표로 ‘더 컨트랙 닷 오르그(thecontract.org)’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36만여 개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뒤 인터넷 투표로 10개항의 최우선 공약을 선정하고 있다. 좌파 이론가들이 21세기형 민주주의 이상형(理想型)으로 삼아온 ‘온라인 집단지성(集團知性)’의 힘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스캇 브라운 당선에 결정적 기여

티파티 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된 스캇 브라운.

셋째, 티파티 운동가들은 공화당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티파티는 이미 후보가 결정되었을 때는 독자(獨自) 후보를 내지 않고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게 된 데는 지난해 11월에 범한 패착이 한몫했다. 11월 3일에 열린 뉴욕 연방하원의원 보궐(補闕)선거에서 티파티는 무소속 후보를 지지했다. 공화당 후보였던 디디 스카자파바(Dede Scozzafava)가 오바마 경제정책을 찬성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판(誤判)이었다. 보수 성향 유권자의 표가 갈리면서 민주당의 빌 오웬스(Bill Owens)가 어부지리(漁父之利)로 당선된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티파티의 선거전략은 올해 1월 19일에 있었던 매사추세츠 연방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티파티는 ‘티파티 후보’를 자임(自任)한 조 케네디(Joe Kennedy) 대신 공화당 후보인 스캇 브라운(Scott Brown)을 밀었다. 이들은 브라운을 위해 온라인 모금운동을 전개, 1월 11일 하루 동안만 목표 액수의 두 배인 130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그 뒤로도 수백만 달러의 실탄을 모금, 브라운이 TV와 라디오, 인터넷에 정치 광고를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보스턴 지역 티파티 운동(Greater Boston Tea Party) 멤버 중 절반 이상이 선거 운동 자원(自願)봉사에 참여했다. 그러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을 뒤엎고 브라운이 민주당 후보인 마사 코클리(Martha Coakley)를 앞서기 시작했다. 백악관의 정치참모들이 총출동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바마의 막판 지원 유세도 소용없었다. 브라운은 1972년 이래 단 한 번도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을 배출한 적이 없는 매사추세츠에서 승리를 만끽했다.

그렇다고 해서 티파티가 맹목적으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식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후보 경선(競選)에 나선 인물 중에서 자신들의 입장에 가장 가까운 후보를 지지한다. 이러한 전략의 힘은 현재 진행 중인 연방상원선거 후보경선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켄터키의 경우, 딕 체니 전(前) 부통령 등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주(州)국무장관 출신의 트레이 그레이슨(Trey Grayson)이 정치 신인인 랜드 폴(Rand Paul)에게 맥을 못추고 있다.

맹목적으로 공화당 후보 지지 안 해

스캇 브라운을 지지하는 티파티 운동가가 보스턴 티파티 사건 당시의 복장을 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폴이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열세였던 판세를 뒤집고 4월 초(初) 현재 여론 조사에서 15퍼센트나 앞서게 된 데는 티파티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그럴만도 했다. 폴은 에너지부·교육부·상무부 폐지와 재정건전성 제고(提高)를 공약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 선심성 예산 편성 관행을 뿌리 뽑고, 균형재정 유지를 헌법 수정(修正)조항으로 못박아 넣겠다고 다짐했다. 티파티에 있어서는 이상적인 후보였다.

플로리다주 경선에서도 티파티의 선거전략이 맹위를 떨쳤다. 켄터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때 후보 경선은 하나마나인 듯 보였다. 선두주자였던 찰리 크리스트(Charlie Crist)는 현직 주지사일 뿐 아니라 지난 대선 때에는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거물이었다. 반면 그의 경쟁 상대인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의 경력은 주 하원의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3분기를 거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루비오가 크리스트를 크게 앞서나갔다. 티파티가 루비오 지지를 선언하고 크리스트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크리스트가 버림을 받은 것은 그가 환경규제정책인 캡 앤드 트레이드(Cap and Trade) 정책과 구제금융 등 오바마의 ‘큰 정부’ 아젠다를 전폭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루비오는 상원에 입성(入城)하면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무효화시키겠다고 약속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게 되자 공화당 지도부까지 티파티에 대한 구애(求愛)에 나섰다. 이들은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티파티가 공화당을 지원해 준다면 법안 심의 과정과 결과를 온라인과 TV로 공개하고, 정부 예산으로 의원들의 이름을 딴 공공(公共)건물이나 시설을 만드는 악습(惡習)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다짐했다.

티파티 운동의 독자 정치세력화는 미지수

<타임>지는 작년에 ‘올해의 인물’로 티파티운동을 선정했다.

티파티가 미국 정가(政街)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지만,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영구히 자리 잡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미국에서 대중운동이 정치권을 뒤흔든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세기 초반 이래 세 차례에 걸친 신앙대각성(信仰大覺醒·Great Awakening) 운동이 있었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는 거대 기업집단에 반대하는 포퓰리스트 운동이 전개됐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주의 주장이 관철된 이후 사라져 갔다. 티파티도 이들의 전철(前轍)을 밟을 여지가 없지 않다.

일부 급진 세력 때문에 티파티의 이미지가 퇴색될 수도 있다. 조지 W. 부시의 연설문 작성 비서였던 마이클 거슨(Michael Gerson)의 지적과 같이 티파티는 폭력을 불사하는 민병대 조직, 오바마가 미국인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음모론자들, 그리고 존 버치 소사이어티(John Birch Society)와 같은 인기에 편승하려는 극우단체들과 명백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티파티를 극단주의자의 모임으로 몰아가려는 리버럴 진영의 선전 공세에 말려들게 될 것이다.

한편 티파티의 공화당 경선 개입 전략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정치 뉴스레터인 ‘쿡 정치 리포트(Cook Political Report)’의 발행인인 찰리 쿡(Charlie Cook)은 “티파티의 공화당 후보 경선 전략은 후보들을 지나치게 우경화(右傾化)시킬 수 있다”면서 “그럴 경우 공화당 후보는 선거의 향방을 결정할 중도(中道)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쿡의 경고가 들어맞는다면 티파티는 지난해 뉴욕 보궐선거에서 범한 실책(失策)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한국 보수운동, 티파티 운동에서 배워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보수 운동 진영은 티파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도 재정건전성 구현을 운동의 핵심 의제로 삼을 만하다. 공(公)기업 부채(負債)까지 고려할 경우 나라 살림이 심각한 상황에 처했지만, 각종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선심 사업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티파티 운동가들이 채택한 유연한 운동방법론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우파운동가들은 언제까지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참전용사들에게 의지할 것인가? 한국의 우파운동가들도 참신하고 감성적인 좌파의 선전선동기법이나, 인터넷 활용기법을 적극적으로 따라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의 우파운동가들도 보수 여당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진보 야당이 밉기 때문에, 보수 여당을 비판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 여당이 철학과 비전을 방기(放棄)한 채 표류할 경우, 우파운동가들은 이들을 비판하고 바로잡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티파티 운동은 한국의 보수우파 운동이 한층 더 성숙하고 발전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 변신 중인 미국 보수주의

티파티 운동은 미국 보수주의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08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보수주의는 다른 나라의 보수주의와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낙태와 동성 연애 그리고 종교 문제 등 이른바 ‘가치 문제’를 크게 중시했다. 하지만 티파티 운동이 대두되며 가치 문제의 중요성이 재평가되고 있다. 대다수의 티파티 운동 단체들과 운동가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재정건전성 유지와 작은 정부 구현이다. 티파티 패트리어트는 ‘재정건전성(財政健全性), 작은 정부, 그리고 자유 시장 추구’를 모토로 삼는다. ‘국민들로부터의 약속’의 최우선 공약 후보 목록에 올라온 이슈 중에서도 동성 연애나 낙태 문제는 찾기 힘들다. 변화는 2월 중순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보수주의자 정치행동회의(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 연례 모임에서도 잘 드러났다. 티파티 운동가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참가자 숫자가 예년에 비해 1000명 이상 늘어난 가운데 전미총기협회(全美銃器協會·National Rifle Association)와 패밀리 리서치 카운슬(Family Research Council) 등 가치 문제를 중시하는 단체의 연사들은 과거와 같은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반면 티파티 단체 대표들은 물론이고 케이토 재단(Cato Institute)과 조세개혁운동(租稅改革運動·Americans for Tax Reform) 모임 등 경제문제에 중점을 둔 보수 단체들의 연사들은 큰 환영을 받았다. 이러한 추세가 정착된다면 티파티는 미국 보수 정치 사상사에도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