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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친박연대’의 탄생에서 소멸까지

출범 때 격려했던 박근혜 전 대표, 소멸엔 默言

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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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부도 모른 친박연대와 한나라당의 합당
⊙ “청와대 정무라인과 합당 문제 놓고 이야기 나눈 것은 사실이다”(노철래 미래희망연대 원내대표)
⊙ “6·2 지방선거 앞두고 여권이 벌인 정치공작. 합당 발표 전 보고받지 못했다”(이규택 공동대표)
⊙ 이규택 대표 등 탈당 후 미래연합 창당 준비 중: “친박연대의 정신 잇겠다” 선언
⊙ 분당파, 합당파 서로 朴槿惠 전 대표 마음잡기 경쟁
2008년 3월 24일 대구에 내려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동대구역에서 마중 나온 친박연대 의원,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난 4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미래희망연대 1차 전당대회가 열렸다. 이날 전당대회에는 미래희망연대 대의원 128명 중 91명이 출석해 만장일치로 한나라당과의 통합을 의결했다. 전당대회를 시작한 지 30분 만이었다. 지난 2월 12일 친박연대에서 미래희망연대로 당명(黨名)을 바꾼 지 50여 일 만이었고, 친박연대가 탄생한 지 2년이 갓 지난 시기였다.
 
  전당대회에 참석한 한 대의원은 이런 탄식을 내뱉었다.
 
  “조그만 집을 허물어도 정리하는 데 며칠씩 걸리는데 명색이 제3당이라는 정당이 이렇게 순식간에 없어진다니….”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 대의원의 말대로 친박연대가 이날 순식간에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두 당의 법적인 합당은 한나라당이 전당대회를 열어 미래희망연대와의 합당을 의결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6월 말이나 7월 초에 열릴 예정이다. 그때까지 미래희망연대는 법적으로 정당이다.
 
  엄밀히 말해 두 당의 합당은 한나라당으로의 ‘흡수’다. 합당이 미래희망연대라는 정당의 소멸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희망연대가 소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전신인 친박연대의 출발이 한나라당으로 돌아오기 위한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서 돌아오라”
 
  친박연대의 출발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가 서청원(徐淸源), 홍사덕(洪思德), 김무성(金武星), 이규택(李揆澤), 엄호성(嚴虎聲) 의원 등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를 지지했던 친박(親朴) 성향의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비롯됐다.
 
  공천 탈락 직후인 2008년 3월 14일 홍사덕, 김무성, 이경재(李敬在), 엄호성 등 친박계 의원 10여 명은 서울 여의도에서 도시락 오찬을 겸해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공천 학살’ 문제에 대해 대책회의를 했다. 이날 박근혜 전(前) 한나라당 대표가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다는 사실이 외부로 공개됐다.
 
  같은 날 저녁 김무성, 이해봉(李海鳳), 김태환(金泰煥), 엄호성, 유기준(兪奇濬), 김재원(金在原) 등 7명의 친박 의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일식집에서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친박연대와 김무성 의원을 주축으로 한 친박 무소속 연대로 나누어서 출마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흘 후인 3월 17일, 서청원, 홍사덕, 이규택, 엄호성 의원, 김노식(金魯植)씨 등이 여의도 일식집에 모여, 서청원, 이규택 의원을 공동대표로 하고 선거대책본부장은 홍사덕 의원이, 정책위의장은 엄호성 의원이, 사무총장은 김노식씨가 맡기로 하는 등 신당 창당에 대한 밑그림을 완성했다. 이때까지 서청원, 홍사덕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이었고, 이규택 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 미래한국당에 입당한 상태였다.
 
  3월 19일 서청원, 홍사덕 의원 등은 한나라당을 탈당, 다른 탈당자들과 함께 대거 미래한국당에 입당했다. 미래한국당은 2007년 9월 정근모(鄭根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대선 출마를 위해 급조했던 참민주연합이 모태다. 참민주연합이 2008년 3월 미래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칭했지만 사실상 활동을 멈춘 상태였다.
 
  제15대 4·9총선을 불과 20여 일 앞둔 상태에서 물리적으로 신당 창당이 어렵게 되자, 방치돼 있던 정당에 입당해 당명을 바꾸기로 계획했던 것이다.
 
 
  4·9 총선에서 14명 당선 돌풍
 
2008년 4월 23일 서울 여의도 친박연대 당사에서 전지명 대변인(왼쪽에서 두 번째)의 생일을 축하하는 서청원(맨 왼쪽) 대표와 이규택(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표. 맨 오른쪽은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엄호성 전 의원이다. 서 대표는 영어의 몸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지금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미래한국당에 입당한 친박계 인사들은 입당 당일인 19일, 선관위에 당명변경에 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당명은 ‘친박연대’였다.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정당이라는 의미였다.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아이디어로 낸 사람은 서청원 대표로 원래 생각했던 당명은 ‘미래친박연대’였다고 한다. 노철래(盧喆來) 친박연대 원내대표의 증언이다.
 
  “당명 아이디어는 서청원 대표가 냈어요. 처음에는 미래친박연대라고 했는데 선관위가 ‘미래’ 자는 떼고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서 미래를 없애고 친박연대로 당명을 정했던 거죠.”
 
  이규택 전 친박연대 공동대표 역시 “친박연대라는 당명은 서청원 대표의 아이디어”라고 인정했다.
 
  선관위는 3월 21일 미래한국당이 요청한 ‘친박연대’로의 당명 변경을 승인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특정 정치인을 지칭하는 단어를 당명으로 사용하는 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한시적(限時的)인 정당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듯 친박연대나 친박 무소속 연대 출마자들은 “살아서 박근혜 대표에게 돌아가게 해 달라”를 구호처럼 외쳤다.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재입당하겠다는 것이었다.
 
  선거 20여 일을 앞두고 급조된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친박연대는 4·9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구에서 6명의 당선자를 냈고 정당지지도 13%를 얻어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이끄는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제3당으로 우뚝 섰다. 이에 따라 비례대표도 8석을 얻어 총 14명의 당선자를 냈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12명의 당선자를 냈다.
 
  영광은 잠시였다. 한나라당으로의 복당 문제를 놓고 입장이 갈리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친(親)서청원계와 친홍사덕계의 갈등이 노출되기도 했다. 지역구에 당선된 의원들이 한나라당에 복당한 후 대부분의 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은 당사(黨舍)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최고위원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당이 활력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분당
 
  2009년 5월에는 서청원 공동대표를 비롯, 김노식, 양정례 비례대표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일도 벌어졌다. 서청원 공동대표는 비례대표 후보로부터 특별당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서청원 대표가 구속된 후 친박연대는 “서 대표의 사면과 구속에만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재 친박연대에는 8명의 비례대표 의원만 남아 있다.
 
  친박연대의 내홍이 본격적으로 표면화한 것은 한나라당과 조건 없는 합당을 제안한 서 공동대표의 옥중 서신 때문이다. 서 대표는 지난 3월 24일 당원들에게 보내는 옥중 서신을 통해 “‘미래희망연대는 6월 2일 지방선거에 보수를 지지하는 국민의 승리를 위해 한 사람의 후보도 공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고 당부하면서, “한나라당과 합당 문제는 모두 한나라당에 맡기자”고 말했다.
 
  서 대표는 또 서신에서 “친박연대의 창당정신은 ‘살아서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태생부터 한시적 정당이었다”며 “더 이상 밖에 남아 보수의 분열로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면 국민들도 등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의 한나라당과 무조건 합당 제의는 이규택 공동대표 등의 반발을 불러 왔다. 이 대표는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이며 구시대적인 밀실 야합”이라고 반대하면서 심대평(沈大平) 무소속 의원이 추진하는 국민중심연합과의 합당 추진을 선언했다. 이 대표가 곧바로 국민중심연합과의 합당추진 중단 의사를 밝히는 등 당 내분이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3월 31일 당 대표직을 내놓았다. 당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과의 합당이 결의된 후인 4월 6일에는 탈당해 미래연합 창당을 선언했다. 분당을 선택한 것이다. 이 대표는 미래연합 창당 후 6·2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고 자신은 경기도지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 등 서울지역 총선 후보자와 비례대표 후보들이 2008년 3월 31일 서울 중랑구 면목역 인근 공원에서 열린 합동유세에서 손을 맞잡고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합당은 청와대와 노철래 의원의 합작품
 
  친박연대와 한나라당과의 합당 합의는 양당 주요 지도부가 배제된 가운데, 박형준(朴亨埈) 청와대 정무수석, 정병국(鄭柄國) 한나라당 사무총장, 서청원 대표의 대리인 격인 노철래 원내대표 등 3인이 극비리에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연대 이규택 대표가 서 대표의 옥중서신 내용을 접한 시각은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3월 24일 오전 9시30분이었다. 최고위원회의가 열리기 30분 전 노철래 원내대표가 국회정론관에서 기자들에게 서 대표의 옥중서신을 이미 공개한 후였던 것이다. 이 대표의 말이다.
 
  “한나라당과의 합당 협의는 저를 비롯한 당 지도부 모르게 추진됐어요. 그래서 제가 비민주적이고 밀실 야합 정치라고 말한 겁니다. 지난 3월 초쯤 한나라당과의 합당 교섭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노철래 의원으로부터 들었지만 그 협상 내용이 무언지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구속돼 있는 서 대표는 법적으로 보면 대표 자격이 없어요. 실제 제가 당 대표인데 노 의원이 서 의원한테 오가며 저한테는 일언반구 없이 합당을 진행한 겁니다. 설마 합당 문제를 저 모르게 하랴, 했는데 그렇게 하고 말았어요. 정말 서운했습니다.”
 
  ―합당 과정에서 청와대 관계자도 논의에 참여했다고 하던데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박형준 수석, 정병국 사무총장, 서청원 대표가 논의를 했다고요. 노 의원은 서청원 대표의 심부름을 했던 거고요.”
 
  ―서 대표가 왜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서둘렀다고 보십니까.
 
  “그 이유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잖아요? 두 가지라고 보는데 하나는 서 대표가 감옥생활이 힘드니까 하루빨리 나오고 싶은 게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고도의 공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권이 공작을 벌여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위험해지니까 인기상승 중인 우리 친박연대를 파괴하려고 한 거죠. 우리 정당사에서 당 대 당 통합을 할 때 당내의 논의를 거치지도 않고, 당 지도부가 모르는 상태에서 합당이 추진된 적이 있나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친박연대에는 박근혜라는 화두를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서청원 살리기에 몰두하는 자화상만 발견할 수 있었다”며 친박연대를 탈당한 후 미래연합 창당을 준비 중인 석종현 전 정책위의장도 “당 간부로서 한나라당과의 합당추진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면서, “미래연합이 친박연대의 정통성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택, 법무부장관에게서 대표 석방 부탁 전화
 
친박계 인사들이 2008년 3월 1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미래한국당 입당 선언을 하고, 당명을 가칭 ‘친박연대’로 바꿔 4·9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전용원 전 의원, 이규택 의원, 서청원 전 의원, 홍사덕 전 의원, 엄호성 의원.
  노철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과의 합당 협의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과의 합당 협의를 위한 창구로 저를 내세운 분이 이 대표입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사무총장이 창구였는데, 우리 당 사무총장은 원외라 현역의원이면서 원내대표인 제가 창구가 된 겁니다. 장광근 사무총장 시절부터 논의가 시작됐고, 정병국 의원이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그 바통을 이어받아서 합당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대표는 협상 내용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사실과 달라요. 중요 사안을 보안에 부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간보고가 안 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 대표 본인이 심대평씨하고 합당을 추진했으니까 제가 한나라당과 합당을 추진하고 있는 걸 몰랐다고 해야겠죠. 한나라당과 합당을 추진하고 있는 걸 다 아는 이 대표가 심대평씨와 합당을 추진했다면 심대평씨가 보기에 어떻겠습니까. 몰랐다고 해야겠죠.”
 
  ―합당에 청와대가 관여했다고 하던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박형준 수석을 잘 알아요. 정무수석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도 만나야 하잖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과의 합당 이야기도 나왔겠죠. 고민을 같이했지만 청와대 지시는 아니에요.”
 
  ―한나라당 정몽준(鄭夢準) 대표도 사전에 몰랐다고 하던데요.
 
  “그랬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문제는 제가 언급하기 그렇습니다.”
 
  ―이 대표 측에서는 노 대표의 역할은 서 대표의 대리인 역할이었다고 하던데요.
 
  “누구의 대리인이라? 글쎄요. 서청원 대표에게도 그때그때 면회를 가서 보고한 건 맞습니다. 최근에 서 대표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 대표가 사전에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이죠.”
 
  친박연대를 만들면서 동지의 길을 걷던 서청원, 이규택 두 사람은 이번 합당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규택 대표는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서청원 대표가 감옥에 재수감됐을 때 서 대표의 부인이 우리 당사로 찾아와서 바깥에 나가 있는 나를 불렀어요. 당사로 들어오라는 거예요. 저녁에 분당에 있었는데 제가 당사로 갔어요. 법무부 장관에게 남편의 석방을 요청하는 전화를 그 자리에서 걸라는 거예요. 그 앞에서 바로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부탁을 했죠. 제가 정치를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물론 그 일 때문에 서 대표와 멀어진 건 아닙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은 어디로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친박연대 관계 인사들의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이들의 애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친박연대 전지명(全芝命) 대변인과 관련된 사건이다.
 
  미디어 관련 3개 법이 처리된 이후인 2009년 7월 31일 전 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미디어법과 관련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와 관련, “박 전 대표가 원칙에 반하는 그런 판단을 하실 분이 아닌데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누군가 옆에서 판단을 흐리게 한 사람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전 대변인의 발언 직후 친박연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전 대변인의 발언이 박 전 대표가 잘못했다고 밝힌 것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발언 반나절 만에 전 대변인은 사퇴했고 한 달여가 흐른 뒤에 대변인에 복귀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표에 대해 말 한 번 잘못했다고 공당 대변인의 목을 반나절 만에 자를 만큼 박 대표에 대한 이들의 충정은 열정적인 것이다.
 
  이들이 지지하는 박근혜 전 대표가 친박연대 창당 과정이나 창당 이후 당무에 관여한 흔적은 없다.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적도 없다. 총선을 앞두고 서청원 공동대표가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보고한 일은 있지만, 박 전 대표는 그때도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고 “알아서 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다만 서 대표가 1번으로 정한 후보에 대해서는 “그 사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요”라고 했다. 그래서 비례대표 1번이 바뀌었다.
 
  친박연대가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결의한 후에도 이와 관련한 박근혜 전 대표의 반응은 일절 없다. 한나라당과의 합당과 신당 창당으로 갈라선 두 진영에서만 이른바 ‘박심(朴心)’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규택 대표는 박심의 향배에 대해, “전혀 모른다. 다만 박근혜 대표의 철학이 원칙, 정도, 신뢰인데 우리는 그 길로 가면 되는 것 아닌가”라면서 “분명한 것은 서 대표 측이 가는 길은 원칙, 정도, 신뢰에서 한참 벗어난 길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무심(無心)이 박심(朴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 ‘친박연합’이라는 정당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정당 명칭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친박연합이 박 전 대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당인데도 명칭과 활동이 박 전 대표와 상당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암묵적으로 지원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인 듯하다.
 
  이규택 대표 측이 탈당 후 준비 중인 미래연합에 대한 정당 명칭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박 전 대표 측이 낼지, 내지 않을지 여부로 박심의 향배를 알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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