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해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의 人脈·파벌·철학 : 월간조선

지난 6월 5일 오전 10시40분 서울 김포공항 입국장. 귀공자 타입의 60대 중년신사가 나타났다. 나는 그 신사와 악수를 나눈 후 대기하고 있던 9인승 카니발 승합차에 함께 올랐다. 승용차는 30여 분 뒤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에 도착했다.

60대 신사는 지난 8월 31일, 54년 만에 일본 자민당 정권을 붕괴시키고 정권교체를 이뤄낸 주인공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1) 일본 총리였다. “야당 당수가 되면 제일 먼저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5월 야당 대표가 된 직후 첫 번째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날 金炯旿(김형오) 의장과 환담한 후 오후 3시 李明博(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청와대를 향했다. 청와대 방문 때도 승합차 카니발을 이용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 대통령과 환담을 나눈 후 35분 동안 獨對(독대)했다. 예정된 독대 시간은 15~20분이었다. 하토야마 대표가 일본 총리라면 몰라도 야당 당수가 대통령을 독대하는 것은 외교상 드문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의 만남은 매우 우호적이고 따뜻했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예감이 충만했다. 좋은 일에는 吉兆(길조)가 있듯 하토야마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

첫 시작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일본 민주당 이치무라 고우치로 중의원(3선)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치무라 의원은 “일본의 ‘전략적 한일의원 연맹’ 소속 의원들이 訪韓(방한)해서 대통령을 예방할 수 있도록 교섭해 달라. 평소 알고 있던 루트를 통해 한 차례 이 대통령 예방을 부탁했지만 확답을 듣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순탄치 않았던 하토야마 대표 訪韓

知韓派인 하토야마 대표는 지난 6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나는 여러 루트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면담 가능성을 타진했고, 연맹의 대표격인 하토야마 의원이 온다면 이 대통령과 면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이치무라 의원에게 “하토야마 간사장이 올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치무라 의원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치무라 의원은 히토쓰바시(동경상대) 웅변부 동아리에서 나와 활동을 함께했던 절친한 친구다. 이치무라 의원은 내게 私的(사적)으로 “이 대통령과의 면담이 당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부탁을 여러 차례 해왔다.

그런데 지난 5월 일본 정국에서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총선을 앞둔 지난 5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가 선거자금 문제로 사퇴했다. 그가 물러나면서 하토야마 간사장이 대표로 추대됐다. 야당 당수가 됐으니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는 자격은 된 셈이다. 그러면서 민주당에선 6월 5일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내게 재차 전달해 왔고, 면담 시간은 청와대에 일임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盧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한 것이다. 자살 당일 오전 8시30분경 일본 오다치 민주당 참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토야마 대표가 방한하는 데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두 시간 후 오다치 의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와 “하토야마 대표의 첫 방문국이 한국이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선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의 분위기를 계속 모니터링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하토야마 대표의 핵심 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인사는 “하토야마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허락하신 날짜(6월 5일)에 맞추어 갈 예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하토야마 대표가 정권을 잡기 불과 두 달 전, 결과적으로 매우 적절한 타이밍에 양국 지도자의 면담이 성사됐다.

하토야마 총리가 한국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이산가족의 슬픈 가족사를 목격하면서였다.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 초년생일 때 혼자 한국의 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하토야마 총리는 한국전쟁에서 헤어졌던 이산가족을 만났다. 그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현실을 눈으로 보면서 남북한이 갈라진 것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한국에 대해 더 애정을 갖고 일본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토야마 총리가 또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특수성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과 우호를 돈독히 해서 중국과 협력하는 게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토야마 총리는 한국을 일본과 역사·문화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호사카 유지 교수에게 독도 공부

필자는 지난 2005년 당시 민주당 간사장이었던 하토아먀 총리와 첫 인연을 맺었다. 나는 그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그의 곁을 지켰다. 그가 공식 일정이건 비공식 일정이건 한국을 잠시 왔다 갈 때도 항상 그와 함께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2005년 이후 다섯 차례 방한했다. 그의 방문은 늘 조용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방한 일정 중 하나는 2006년 공식·비공식 외교 채널이 단절되다시피 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때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등 한일 간 가장 민감한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시기였다.

한국 언론은 벌떼처럼 고이즈미의 신사참배 장면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고 교과서 왜곡과 독도 이슈를 규탄하는 성명을 게재했다.

그 시절 하토야마 총리는 “한일 관계를 복원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당시 與黨(여당)인 열린우리당과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물론 열린우리당도 이 제의를 거절했다. 그런데도 하토야마 간사장은 한국과의 대화 채널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토야마 총리는 비록 민주당 간사장이었지만 與野(여야)를 뛰어넘어 大(대)아시아의 우애관계 지향을 지론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이런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그런 끈질긴 구애 노력 덕에 2006년 5월 4일 韓明淑(한명숙) 총리와의 면담이 성사됐다. 한 총리는 한국을 대표해 하토야마 간사장에게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문제 등을 거론하며 강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하토야마 간사장은 “모든 영토문제는 역사로부터 시작되는데,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 때 하토야마 간사장은 KBS와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 국회 내에 ‘독도연구회’를 만들 생각이 있다”고 했다.

당시 필자는 하토야마 간사장에게 독도 문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 관계를 이해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독도 문제에 정통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를 소개해줬다. 하토야마 간사장과 호사카 교수가 만나는 자리에는 오다치 모토유키 참의원, 데라다 마나부 중의원 등도 참석했다.

하토야마 간사장은 바쁜 일정 와중에도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호사카 교수의 독도 관련 설명을 1시간30분 동안 경청했다. 하토야마 간사장은 호사카 교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공부 잘했습니다”라며 고마워했다.

義人 이수현 묘지 참배하기도

하토야마 간사장은 2006년 4월 10일에도 한국을 방문했다. 부산 동서대 일본연구소의 초청으로 학생들에게 ‘일본 민주당의 외교정책과 한일관계 전망’에 대해 특별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 500여 명은 그의 강의를 경청했다.

당시 강의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고이즈미 내각이 아시아를 무시하는 외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점점 더 고립 상태로 빠지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우정을 깊이 해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52~54대 일본 총리를 역임했던 하토야마 이치로의 ‘友愛(우애)정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행동으로 ‘우애론’을 실천했다. 그는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한국인 이수현씨의 묘비가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동서대 강연을 하기 전 이수현씨 묘지를 찾아가 참배했다.

필자는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가 진정으로 가슴이 따뜻한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토야마 총리의 인간적인 매력이 향후 한일관계 개선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진심 어린 행동으로 조용히 설득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개인성향과 정치적 소신의 절묘한 어울림, 자연스레 우러나는 리더십이 하토야마 총리를 오늘의 성공으로 이끈 열쇠가 아니었을까?

하토야마 총리의 개인적 성향을 보여주는 이야기 중 하나는 그의 부인에 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관련해 유머를 남겼는데, “다른 사람들은 미혼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아내를 고르지만 나는 이 세상 모든 여자 중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했다.

이 유머는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 여사가 유부녀 상태에서 하토야마를 만났고, 그 후 전 남편과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한 것에 대한 변호일 것이다. 하토야마 미유키 여사는 일본 내 정치인의 아내 중 드물게 리버럴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다.

미유키 여사는 재미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기로 유명하고, 다소 엉뚱한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미유키 여사는 일본 여성들이 선망하는 ‘다카라즈카’ 극단(여배우들이 남장을 하고 전통 경극을 하는 일본 내에서 가장 유명한 전통 극단)의 배우 출신이다.

배우 출신 미유키 여사, 韓流스타 이병헌의 팬

하토야마 대표(왼쪽)가 아내 미유키(가운데), 아들 기이치로(오른쪽)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예술가 부인의 영향 탓이겠지만 하토야마 부부는 韓流(한류)에도 관심이 크다. 하토야마 총리가 김형오 의장을 만났을 때도 “나와 집사람은 한류스타 이병헌을 좋아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미유키 여사의 방에는 이병헌 등 한류 스타의 사진이 붙어 있다고 한다.

하토야마의 기질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하토야마 집안의 형제들은 전부 도쿄대로 진학했다. 현재 정치를 하고 있는 그의 두 동생도 모두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미래가 ‘엔지니어링의 시대’라고 믿고 공학부를 선택했다고 한다. 고교 시절 대학 입시를 위한 모의고사가 있었는데, 이 시험에서 그는 기대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보통 입시생들 같으면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다시 한 번 도전했겠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다시는 그 모의고사를 보지 않은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정치철학을 아우르는 모토는 ‘우애정신’(Fraternity)이다. 지난 9월 일본의 대표적인 시사월간지 9월호에 기고한 ‘나의 정치철학’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철학과 지향점을 분명히 밝혔다(필자는 이 글을 한글로 번역해 하토야마 홈페이지에 올렸다).

하토야마 정치철학의 핵심인 ‘우애’는 형제애나 우정 등 인간적 감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8세기 프랑스혁명 당시 상공업 부르주아들이 기치로 내걸었던 ‘자유·평등·박애’의 정신 중 ‘박애’를 말하는데, 하토야마 가문이 ‘우애’로 재해석한 것. 서양에 박애정신이 있다면, 동양에는 우애라는 개념이 있는 셈이다.

박애주의는 1930년대 유럽이 나치 파시즘과 쇼비니즘(자유 이념의 극단적 형태), 공산주의(평등 이념의 극단적 형태) 등으로 갈라져 혼란스러울 당시, 오스트리아 정치인 쿠덴호페 칼레르기가 처음 제창했다. 오늘날 유럽통합의 밑거름이 되었던 칼레르기의 ‘박애주의 사상’을 하토야마의 할아버지이자 1955년 자민당 정권의 초대 수상인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52~54대 총리대신)가 일본어로 번역, 전파시킨 것이다.

정치인 아버지 아래서 2세 정치인으로 정치를 시작한 하토야마 이치로는 2차대전 후 맥아더의 군정 시절 5년간 정계에서 추방된다. 바로 이 시기에 하토야마 이치로가 탐독한 책이 칼레르기의 <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Totalitarian State Against Man·1935년)>이다.

이 책에 감동한 하토야마 이치로는 일본어로 번역했고, 패전 후 미국식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세력과 이에 극단적으로 맞서는 무정부, 사회주의 세력에 맞설 제3의 정치철학으로 ‘우애사상’을 내놓았다. 하토야마 이치로는 이 책에서 “우애가 없는 자유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부르고 (우애가 없는) 평등은 폭정을 부른다. 자유와 평등은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이지만 원리주의에 빠지면 참화로 이어진다.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하는 이념이 우애다”라며 ‘우애정신’을 주창했다.

사람이 꽃보다 존중받을 유일한 존재

하토야마 유키오(오른쪽) 대표는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만든 자민당을 침몰시켰다. 뒤쪽은 유키오의 아버지 이치로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모르지만 당시 하토야마 이치로는 당권파로서 관료파의 수장격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45·48·49·50·51대 총리대신)와 정치적 대결을 벌이는데, 요시다 시게루는 54년간의 자민당 정권이 붕괴될 때 그 씁쓸한 장면을 首長(수장)으로서 지켜본 아소 다로 전 수상의 외할아버지다.

1955년 요시다 시게루를 이기고 자민당 정권의 초대 수상이 된 하토야마 이치로. 2009년 8월 할아버지의 정치철학을 계승해 할아버지가 만든 자민당 정권을 붕괴시킨 손자 하토야마 유키오. 이들 祖孫(조손) 사이의 정치적 핏줄의 연계성은 숙명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1965년 제정된 자민당 기본헌장 제1장에는 ‘인간은 항상 그 자체가 목적이며 결코 수단이어서는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사람이 꽃보다 존중받을 유일한 존재’라는 인간존중 사상은 다름아닌 ‘우애정신’의 핵심 테제다. 하토야마 총리는 자민당을 부정한 후 탈당하고 자민당의 창당 정신을 부활해 낸 셈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2009년 오늘날 상황은 미국식 글로벌리즘 시장경제에 농락당하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도의와 절도를 상실한 금융자본주의, 시장만능주의가 인간의 존엄을 도리어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불어 사는 우애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권교체를 해야만 한다’는 명분이 자연스레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5.7%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실업률, 15~24세 청년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백수 상태라는 현실, 젊은 자살자 급증, 자민당 독주의 政經(정경)유착과 부패, 관료 주도의 경직된 사회, 자원배분의 심각한 왜곡 현상 등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우애정신’으로 극복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8월 총선 과정에서 보듯 민주당 초선 출마자들의 주장은 일본 유권자들의 민심을 흔들었고, 戰後(전후) 사상 초유의 선거혁명을 이끌어냈다.

하토야마 총리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즉 개인이 못하면 이웃이 돕고 이웃이 못하면 동네가 돕고 동네가 못하면 지자체가 돕고 지자체가 못하면 국가가 도우며 동심원적으로 우애정신을 펼쳐 나가는 우애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내 파벌 잘 조화시켜야

그는 또 “우애정신은 민족감정이라는 장벽이 가로놓인 對(대)한국, 대중국 외교 관계를 풀어나갈 핵심사상이며,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내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나카소네 전 수상도 하토야마 정권 등장 후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언론에 발표했을 정도로 하토야마 정권의 동북아 정책은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힘이 실리고 있다.

하토야마의 우애정치가 전개되는 데 넘어야 할 산과 계곡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산은 당내 파벌들의 이합집산 가능성이다. 독도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는 “하토야마 같은 정치인이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으로서는 어마어마한 행운이며 민감한 한일 간 이슈를 부드럽게 풀 수 있는 큰 기회”라면서도 “일본 내부에서 재정적자 폭이 커질 수밖에 없는 분배정책이 실패하면 파벌 간 이합집산과 정계개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필자 역시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지금 일본 내부에 조성된 우애정신의 에너지가 더 큰 힘으로 작용해 하토야마 정권을 건실히 지탱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일본 정계에는 한국보다 더 복잡한 파벌과 계보가 있다. 민주당에도 계보와 파벌이 있다. 민주당 내 파벌은 오자와 이치로처럼 자민당 다케시타파 출신의 보수파 다크호스에서부터 요코미치 다카히로 같은 진보좌파까지 다양하다.

일본의 파벌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하토야마 총리는 최대 파벌인 오자와 이치로와 협력해 앞으로 정국을 운영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리버럴한 파벌, 좌파와도 동거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최대 파벌은 아니지만 특유의 ‘우애정신’으로 주변국의 지지와 대중적 지지를 함께 얻어 나간다면 균형과 조화 속에 오래 가는 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존중해야 일본이 발전한다

하토야마는 거미줄같이 얽힌 민주당 계보와 파벌 속에서 정치를 헤쳐나가야 한다. 그는 이제 본격적인 정치 시험대에 섰다.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다행스럽게 그는 탄력적이고 글로벌 시각을 갖고 있다. 이는 각종 토론회와 공개된 연설에서 드러났다.

하토야마가 주창하는 우애사상은 동심원적으로 퍼져 나가는, 에너지 파장과 같은 효력을 발생할 것이다. 그는 “내가 못하면 가족, 가족이 못하면 동네, 동네가 못하는 건 지방자치, 지방자치가 못하는 건 국가 등으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실현시켜 나가면 된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을 동심원의 중심에 넣고 볼 때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라는 것이 하토야마의 입장이다. 그는 한국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에 한국을 가장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의 우애사상에 의하면, 한일관계 개선은 일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 단위를 뛰어넘어 전체적인 우애사회 건설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우애사상의 핵심 개념은 ‘인격 존중’이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인간, 인격을 존중해야 하며, 그것을 매개로 상호존중, 상호이해, 상호부조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 사회를 대하는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하토야마 총리는 우애사상을 밑바탕에 깔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5월 26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수상이 “하토야마의 우애 외교는 북한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단호하게 경제 제재조치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총리는 “가치관이 서로 다른 나라끼리 서로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외교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중국을 통해 북한의 문호를 개방시키도록 국제사회가 공조해야 한다”며 당사국은 물론 국제 사회의 노력 부족을 지적했다.

그의 외교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식의 군사전략적, 통상전략적 판단을 기초로 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소위 ‘진실한 외교’라고 볼 수 있다. ‘전략보다 사랑과 우애를 상위에 둔다’는 개념이다.

하토야마의 성공이 한국의 이익

8·30 총선에서 압승한 후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와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이 마주보며 크게 웃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리버럴한 개인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보수로 분류된다. 과거 보수 정치인들과 다른 점은 ‘국제성’이 깃들어 있는 정치철학이다. 일국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심지어 북한도 포함하는 이웃나라의 가치관과 이익까지 생각하는 폭넓은 동심원적 국제성의 철학이다.

필자는 히토쓰바시 대학 시절에 하토야마 총리의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가 정권을 물려 주었던 이시바시 단잔 수상(55대 총리대신)의 ‘小亞論(소아론)’에 대해 공부했고, 그의 정치 사상에 관해 논문을 썼다.

이시바시 단잔은 전쟁 전부터 일본의 식민정책을 반대했고 중·일·미·소 평화동맹을 주창한 선각자였다. 필자가 20대 일본 유학생 시절부터 한일관계 개선과 교섭에 적극 나서고 활약한 것은 이시바시 단잔의 ‘우애 사상’에 의한 것이었다. 하토야마 총리와의 인연도 결국 그렇게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前後(전후)가 아니라 이미 메이지유신 때부터 잘못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국수주의와 정경유착과 부패로 얼룩진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일본도 한때 자유주의자들이 통렬하게 군국주의를 비판했던 다이쇼 데모크라시(대정시대) 시대가 있었지만 결국 군국주의 세력이 득세했다. 그리하여 이상은 높았지만 속물적 현실과 타협하며 국민들과 이웃 나라를 짓눌러온 역사가 반복됐다.

하지만 21세기 우애의 시대가 다가오며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필자는 극단적 자유, 평등주의가 초래한 혼돈의 시대가 물러가고 하토야마가 주창하는 ‘우애’가 넘치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하토야마의 우애사상, 우애정치, 우애혁명이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작하는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하토야마 우애사상의 첫 시험대가 바로 한일관계다. 아마 한국으로부터는 “정치적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며 오해도 받고, 일본에서는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하다”며 비판을 받을 것이다.

더구나 스펙트럼이 다양한 민주당 내부에서의 견제와 비판에 하토야마의 이상이 꺾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어떤 경우이건 힘겹게 분투할 하토야마 총리를 위해 계속 直言(직언)할 것이다. 한국 측에도 하토야마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킬 것이며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는 과감히 조언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의 출범은 한일관계를 새롭게 다질 수 있는 기회다.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고, 애정과 관심이 큰 하토야마 총리가 일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총리가 될 수 있도록 한국이 도와야 한다. 아직까지 일본 정치권에서 자신을 떠받쳐줄 파벌을 갖지 못한 하토야마 총리가 향후 일본 정국을 순탄하게 이끌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 하토야마 총리의 주요 발언

▲ “동북아가 상호 우애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미래의 목표이며,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와 한국 관련 역사 교과서 문제를 사과하고 청산해야 한다.” (2006년 부산 동서대 특별강의에서)

▲ “일본열도는 일본인만의 것이 아니다. 출생률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열도를 외국인들에게 개방해야 한다. 그런 걸 안 하면 해외에서 존경받을 수 없다. 미래에 일본의 땅을 지킬 수도 없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외국 사람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월 17일 일본 TV 토론에서)

▲ “일본인이 가장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왜 다른 나라 사람에게 지방 참정권을 갖게 하는 것조차 허용을 안 하는지, 적어도 한국은 벌써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4월 18일 한 방송 토론회에서)

▲ “사랑이 테마다. 외국인 참정권은 반드시 부여되어야 한다.” (4월 24일 민주당 본부 기자회견에서)

▣ 일본민주당의 파벌과 계보

민주당 의원들의 출신 성분은 크게 네 갈래다. 자민당·일본사회당·민사당 출신 국회의원 그룹과 8·30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그룹이다. 이들이 형성하고 있는 파벌은 다시 아홉 계파로 나뉜다.

이 중 최대그룹은 8·30 총선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오자와 이치로가 공천권을 행사해 당선된 120여 명을 포함한 ‘일신회’다. 이번 선거에서 120여 명으로 늘어 최대 파벌이 됐다. 이 숫자는 자민당 의원 숫자보다 많다.

일신회는 오자와 이치로와 자유당 때부터 함께했던 10여 명의 결속력이 강한 그룹과 오자와 정치학교 출신들, ‘8·30 오자와 칠드런’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실용적인 정치철학을 지향한다.

하토야마 총리 그룹은 2002년 9월 ‘하토야마 정권을 실현하는 會(회)’로 발족된 것이 원류로, 하토야마 개인 사무실에서 매주 회합을 가진다. 개인들이 회식비를 나눠서 낼 정도로 투명성을 강조한다. 이념적으로 자유보수 성향이다. 민사협회 세력과 가깝다.

舊(구) 민정당 출신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정권전략연구회’는 하타 쓰토무가 수상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는 보수 원로들의 집합소가 됐다. 정치베테랑들이 많은 것이 특징. 파벌 중 13~14선 의원들 숫자 비중이 큰 편이다. 오자와, 하토야마, 민사협회와 더불어 보수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능운회는 센코구 요시토(사회당 출신·6선 중의원)를 간판으로 마에하라 세이지, 에다노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됐다. 사키가케 멤버가 1999년 무렵 결성했던 高朋會(고붕회)가 전신이다. 외교 방위 정책에 있어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주장하는 매파이기도 하며 親美(친미) 보수 성향이 강하다.

화제회는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 의원들 중심으로 결성된 ‘마쓰시타 정경숙 입지회’가 그 출발이다.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들은 보수계 신당을 구상했으며 2002년에 대표격인 노다 요시히코가 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석패한 후 노다를 중심으로 연구모임을 계속해 왔다. 첫 모임은 1996년 ‘지사의 회’로 발족해 2006년에는 지금의 화제회로 이름을 바꿨다. 이 명칭은 百花齊放(백화제방·모두가 꽃을 피우자)이란 뜻이다. 능운회와 함께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민사협회는 1994년 신진당 결성과 더불어 해산한 민사당 소속 의원들이 결성한 그룹이다. 이 그룹은 1989년 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 발족에 따라 해산한 ‘全(전)일본 노동총동맹’에 가입했던 노동조합이 신진당에 입당한 민사당 의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파벌이다.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전국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다. 특히 자동차, 전력 등 노조 출신들이 많다.

국가형태연구회는 2000년에 사회민주연합 동료였던 간 나오토, 에다 사쓰키가 중심이 돼 발족했다. 현재 참의원 의장인 에다 사쓰키가 실질적인 대표다. 민주당 내에서 리버럴한 성향에 속하는데 舊(구) 일본 사회당과 민주개혁연합 출신자들이나 시민운동가들이 중심이다. 인간관계가 끈끈한 것이 특징이다. 리버럴회와 신정국간담회와 정책적으로 공조하는 경우가 많다.

리버럴회는 자위권 관련 헌법개정에 반대하는 젊은 의원그룹이다. 2004년 8월 민주당 내 ‘젊은 평화헌법수호 의원’들이 모여 만들었으며 발족 당시는 50여 명이었고 현재 40여 명의 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신정국간담회는 1998년 민주당에 보수계 의원들이 대거 합류할 당시 당이 우경화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던 요코미즈 다카히로를 중심으로 한 정국간담회가 전신이다. 2002년 노동조합 출신이 아니면서도 리버럴한 생각을 갖고 있는 의원들을 포함해 요코미즈 회장 체계로 再(재)발족했다.

국가형태연구회나 리버럴회와 공동보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국가 안보 면에서 오자와 그룹을 포함한 우익보수계와 공조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마에하라가 이끄는 능운회와 하토야마 그룹, 정권전략연구회, 민사협회 등 新(신)보수그룹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 민주당내 親韓성향의 인사들

▲ 데쓰카 요시오(手塚仁雄): 1966년생. 와세다대학 재학시절부터 웅변회 활동. 26세 도쿄도의원을 거친 3선 중의원. 학생 때부터 한국을 방문했으며 在日한국인참정권을 위해 가장 애쓰는 인물.

▲ 와시오 에이이치로(鷲尾英一郞): 1977년생.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재선 중의원. 니가타 지역구인 관계로 납치문제에 깊이 관여. 최근 하토야마 총리의 특사로 통일부 관계자와 접촉. 앞으로 대북 관련 일에 관여할 것으로 예상. 공인회계사.

▲ 가자마 나오키(風間直樹): 1966년생. 게이오대 국제정치학과 졸업. 참의원 와시오 의원과 같은 니가타 지역구로 미쓰이물산 시절 알게 된 한국 지인 다수. 오마에 겐이치 사무실에도 근무. 미국, 유럽, 아시아 사정에 밝은 국제파.

▲ 기마타 요시타케: 1965년생. 히토쓰바시 대학 시절 한일학생회의 초대 일본측 위원장. 경단련을 거쳐 재선 참의원. 크리스천으로 한국기독교인과 교류. 정근모 전 과기부장관과 아주 가까움. 현재 상하이박람회를 지원하는 의원으로도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