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美食의 세계] 세계 요리계의 혁명아와 이단자들

‘요리의 帝王’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美食의 戰國시대를 연 3인의 巨匠 페랑 프왕·알렉산드르 듀멘느·앙드레 피크. ‘누벨 퀴진’ 시대를 개막한 레이몽 올리비에, 그의 후예인 미셸 블라스와 알랭 뒤카스…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편집자 주>
쓰지 요시키는 일본 내 프랑스 요리 연구의 1인자로 알려진 쓰지 시즈오의 장남이다. 쓰지 시즈오는 1960년 現(현) 쓰지노그룹교의 전신인 쓰지조리사 전문학교를 설립, 프랑스 요리를 연구하며 프랑스 요리의 巨匠(거장)들을 다수 일본에 초청해 강습회를 여는 등 일본에 프랑스 요리를 보급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쓰지 시즈오가 오사카에 설립한 쓰지노그룹교는 일본 최대(재학생 수 기준)의 조리학교로, 창립 50년을 맞은 2009년 현재 학생 수 3000여 명, 전임교수진 400여 명, 졸업생 12만여 명에 이른다.
쓰지 요시키는 영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에서 예술사를 공부한 후 세계 각지의 유명 레스토랑을 섭렵하며 스타 요리사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부친 작고(1993년) 후 쓰지노그룹교의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국내의 피디피와인주식회사와 제휴해 요리학교 ‘츠지원’을 열었다. 저서로 <미식진화론> <미식의 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지난 4월 3일 츠지원 1주년 축하행사를 위해 訪韓(방한)한 쓰지 요시키는 “경제상황이 위기일수록 미식 연구의 본질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며 미식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쓰지 요시키 日 쓰지노그룹校 교장
⊙ 1964년 오사카 출생.
⊙ 英 페티스칼리지 중고교, 美 롱아일랜드大 졸업.
⊙ 現 쓰지노그룹교 교장, 학교법인 쓰지요리학관 이사장.
  지난해부터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美食(미식)’을 논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미식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경제위기는 인간의 음식문화를 제대로 생각해 볼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언젠가부터 미식은 ‘세계를 움직이는 문화 코드’가 됐기 때문이다. 힘겨운 경제상황일수록 미식의 본래 의미를 되짚어 보고 문화로서의 희망을 확인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식이라면 화려한 프랑스 王政(왕정)시대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미식의 역사는 1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미식의 세계가 어떻게 발전돼 왔고 현재 어떤 모습이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스페인의 저명한 미식 저널리스트 파우 아레노스의 분류를 중심으로 프랑스 미식의 역사와 조류를 살펴보자.
 
  왕과 귀족의 권력이 강했던 프랑스의 요리는 어느 나라의 요리보다 화려하고 풍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계화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 것은 1900년대 초반으로, 근대 프랑스 요리의 역사는 100여 년에 불과하다.
 
  영국에서 활약한 프랑스 출신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는 프랑스 요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19세기까지의 프랑스 요리를 체계화시키고 재구성한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주방 조직을 근대화한 것이다.
 

 
  ‘요리의 帝王’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이전의 프랑스 주방은 요리장의 지시에 따라 여러 명의 요리사가 특별한 질서 없이 움직이는 구조였는데, 에스코피에는 조리법에 따라 담당을 두고 구역을 지정하는 등 주방 조직을 효율화했다. 또 주문부터 제조, 제공까지의 과정도 조직화해 손님들은 이전보다 빠르게, 맛이 살아있는 상태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50여 년간 갈고 닦아온 요리실력은 물론,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발휘해 ‘프랑스 요리의 제왕’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영국 런던의 사보이 호텔과 칼튼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62년간 일했고, 프랑스 요리가 해외에서 명성을 얻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192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에스코피에의 사망 후 프랑스 요리의 제왕 자리는 세 명의 요리사가 물려받았다. 페랑 프왕, 알렉산드르 듀멘느, 앙드레 피크가 그 주인공이다. 이 세 명은 그동안 프랑스 요리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벗어나 리옹과 부르고뉴 등 지방에 레스토랑을 열고 미식의 全國(전국)시대를 열었다.
 
  1930~50년대에 활약한 이들은 농촌과 어촌 등 지방에서 구할 수 있는 싱싱한 식재료를 이용해 프랑스의 풍성한 음식문화를 증명해냈다. 또 지방의 고유 요리법을 참조해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해냈으며 이를 세련되게 만들어 프랑스 요리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이들 요리사 외에도 프랑스 미식의 발전을 주도한 것이 <미슐랭 가이드>다. 20세기 들어 자동차 시대가 개막되면서 자동차 관광이 일상화됐고, 프랑스의 타이어회사 미슐랭은 여행과 미식을 연계한 맛집 가이드북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슐랭 가이드>는 현재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레스토랑 가이드다. 스타 요리사들의 탄생과 미슐랭 가이드의 등장은 프랑스 요리의 세계화를 빠르게 진행시켰다.
 
 
  누벨 퀴진 시대
 
미슐랭 가이드 뉴욕판.
  페랑 프왕 등 ‘3인 거장’의 시대가 지나고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까지 프랑스 요리에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요리사들이 기존의 화려하고 복잡한 요리법에서 벗어나 맛이 진한 소스를 줄이고 재료 원래의 맛을 살리는 새로운 요리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누벨 퀴진(새로운 음식이라는 뜻)의 요람기’라 불리는 이 시기를 이끌어간 요리사는 레이몽 올리비에다. 레이몽 올리비에는 당시 요리인으로서는 드물게 매스컴에 빈번하게 등장해 프랑스 요리를 홍보했다. 이 시기부터 매스컴이 미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많은 요리사와 미식평론가들이 새로운 요리법을 제안했다.
 
  이 시기의 젊은 요리사들은 창의적인 개혁정신을 갖고 매스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미식 저널리스트인 앙리 고에와 크리스찬 미요는 1973년 ‘누벨 퀴진’이라는 단어를 만들기에 이른다.
 
  누벨 퀴진은 화려하고 맛이 농후한 프랑스 고전요리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것으로,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가벼운 조리법을 뜻한다. 누벨 퀴진은 전 세계에 성경처럼 퍼져 나갔다. 세계의 요리에 프랑스 요리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 가지의 이즘
 
  1980년대 이후 누벨 퀴진은 다섯 갈래로 나눠진다. 스타 요리사를 중심으로 5개의 ‘이즘(ism: 主義)’이 나타나게 된 것. 이 시기에 등장하는 요리사들은 ‘누벨 퀴진 2세대’로 불리며, 이들은 누벨 퀴진이 추구했던 소재의 기발한 조합이나 외국 요리 흉내 등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지나친’ 누벨 퀴진의 가벼움과 무비판적 흉내를 재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섯 가지의 ‘이즘’은 다음과 같다. ▲조엘 로부숑의 완벽주의 ▲자크 막심과 자크 토레스의 개념주의 ▲피에르 가니에르의 가니에리즘 ▲미셸 블라스의 자연파주의 ▲알랭 뒤카스의 지중해주의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현대 프랑스 요리의 거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요리사들이다.
 
  이 중 필자가 가장 관심을 둔 요리사가 미셸 블라스와 알랭 뒤카스다. 미셸 블라스는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누벨 퀴진의 회오리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독보적인 요리인이다. 그는 접시를 하나의 캔버스로 여기고 요리를 통해 자연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미셸 블라스는 일류 레스토랑에서 수업받은 경험은 없다.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일부 요리법을 물려받은 것 외에는 책을 통해 독학으로 요리를 익혔다. 그는 가족과의 유대감에서 감동을 느끼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요리라는 형태로 표현한다.
 
  미셸 블라스의 등장은 조엘 로부숑보다 10년 늦었지만 그는 당시의 요리계에 작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향초와 야생초 전문가로서 생태학과 약학에 조예가 깊었던 블라스는 자연의 향기가 살아있는 재료에 지성과 통찰력을 발휘해 요리를 창조해냈다.
 
  알랭 뒤카스는 프랑스 남서부의 샬로스에서 태어나 유명 요리사인 알랭 샤펠에게 2년간 師事(사사)했다. 뒤카스는 샤펠로부터 하나의 접시에 여러 가지 요리를 담아내는, 어떤 의미에서는 고전적인 요리 수법을 전수받았다.
 
  그는 요리에는 그곳의 지리적·문화적 특징이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에 따라 그의 레스토랑은 ‘향토성’에 의해 운영됐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는 언제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중해에 있다면 지중해의 재료를, 파리에 있다면 파리에 어울리는 것을, 도쿄에 있다면 도쿄에 맞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카스는 간결하고 명확한 판단력에 의거해 전략을 세우는 전략가였고, 우수한 인력을 이용하고 투입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탁월한 관리능력을 갖고 있었다. ‘레스토랑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레스토랑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방식은 오늘날 요리사나 레스토랑 오너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테크노 이모셔널

 
  최근의 프랑스 요리계에는 누벨 퀴진 2세대를 잇는 ‘누벨 퀴진 3세대’ 그룹과, 지금까지의 프랑스 요리 맥락과는 다른 조류를 만들어 낸다는 ‘테크노 이모셔널’ 그룹 등 두 가지의 요리 조류가 있다. 누벨 퀴진 3세대는 이제 ‘전통’이 된 누벨 퀴진을 지속적으로 키워가는 요리사들로, 근현대 프랑스 요리의 정통파라고 할 수 있다.
 
  ‘테크노 이모셔널’그룹은 과거의 요리와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요리사로는 ‘엘 불리’(스페인의 레스토랑으로 미슐랭 가이드에서 1위를 수차례 차지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의 페랑 아드리아가 있다. 페랑 아드리아는 에스푸마(거품기), 파코제트(냉동분쇄기), 다양한 응고제 등 새로운 조리도구를 사용했으며,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식감과 기발한 맛과 향을 배합, 독창적인 요리를 만들어내 요리계에 충격을 주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스페인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지에서 이같은 경향의 요리를 선보이는 일류 요리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고도화된 정보사회에서 이 같은 요리 조류는 과거 프랑스 요리가 세계에 전파되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세계로 퍼졌다.
 
  파우 아레노스는 이러한 요리를 ‘테크노 이모셔널’이라고 명명했으며, “새로운 기술이나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미각과 후각뿐만 아니라 오감 전체에 호소하는, 마음을 흔드는(이모셔널) 요리”라고 정의했다. 이른바 ‘분자 요리’로 불리는 이 조류는 100여 년간 프랑스 미식이 걸어온 길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라도 할 듯 유행병처럼 번져나갔다.
 
  프랑스 요리 100년사를 살펴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조류가 생겨나면 과거의 요리 조류가 쇠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시대의 요리사나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유행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식문화 발전을 위해 요리사와 소비자, 평론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요리인은 요리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물론, ‘진짜 요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즉 요리법과 요리 조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도 수준을 높여야 한다. 요리를 먹는 사람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요리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 평론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예술의 세계에서도 고도의 평론문화는 문화 발전을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 프랑스 요리의 성과 역시 100여 년 동안 탁월한 미식 평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현재 세계의 경제문제, 식량문제, 환경문제 등으로 볼 때 미식계가 어려운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인류에게 미식문화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해 볼 때가 왔다고 본다.
 
  유럽 최대의 농업국가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한 폐허가 됐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어 모든 농산물이 최악의 수확을 거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해에 포도농사는 최고의 풍작으로, 이해 생산된 와인은 20세기에서 손꼽히는 최고 빈티지(와인 생산 연도)의 와인이 됐다. 戰禍(전화)와 경제위기에서도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될 ‘미식의 문화’는 계속되고 있다. ⊙
 

  ▣ ‘누벨 퀴진의 十誡(십계)’
 
  1) 불필요한 복잡함을 배제한다.
  2) 조리시간을 단축한다.
  3) 시장의 요리를 존중한다(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한다).
  4) 메뉴의 품목을 축소한다.
  5) 육류의 장시간 숙성을 배제한다.
  6) 지나치게 농후한 소스는 쓰지 않는다.
  7) 지방요리(파리의 화려한 요리에 대비되는 요리)로 회귀한다.
  8) 기술을 적극적으로 혁신한다.
  9) 몸에 좋은 식사요법을 탐구한다.
  10) 부단한 창조력을 발휘한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