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俗의 일은 神學 공부한 神父들이 관여하기엔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천주교는 보편교회다.
이스라엘이나, 교황청이 있는 로마나, 아마존 원주민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과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 “세상에는 감춰진 진실들이 많아. 우리 사제단은 어떤 정권이든 권력기관에 대해 신뢰를 가져
보지 못해… KAL기 폭파사건은 아직도 의문. 김현희씨가 하필 왜 지금 나오나? 음모가 있는 거야.”
(김인국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 성경말씀에서 한 구절 떼고, 그럴듯한 말과 거짓 주장을 섞어서 하는 선동은 대단히 위험”
(故 지학순 주교 변호인 임광규 변호사)
尹柱翰 자유기고가
천주교는 보편교회다.
이스라엘이나, 교황청이 있는 로마나, 아마존 원주민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과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 “세상에는 감춰진 진실들이 많아. 우리 사제단은 어떤 정권이든 권력기관에 대해 신뢰를 가져
보지 못해… KAL기 폭파사건은 아직도 의문. 김현희씨가 하필 왜 지금 나오나? 음모가 있는 거야.”
(김인국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 성경말씀에서 한 구절 떼고, 그럴듯한 말과 거짓 주장을 섞어서 하는 선동은 대단히 위험”
(故 지학순 주교 변호인 임광규 변호사)
尹柱翰 자유기고가
- 2009년 2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용산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에서 사제단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촛불을 들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현 시국은 사제단이 창설된 1974년을 연상시키는 독재 상황입니다.”
지난 2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집전한 ‘용산 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에서 사제단 대표 전종훈 神父(신부)가 한 말이다. 사회를 맡은 김인국 신부는 “대통령이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고 공권력은 국민을 敵(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맡겼던 권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얻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이 천주교를 대표하는 것인가” “천주교의 정치적 性向(성향)이 뭔지 의문이다” “정치에도 개입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 단체인지 궁금하다”고 했고, “방송에서 천주교 사제들의 촛불시위라고 나와도 천주교 측에서 반론이 없는 것을 보니 천주교를 대표하는 단체인 것 같다”고 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대운하 사업,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의 10월維新(유신)을 반대하던 池學淳(지학순) 주교를 비롯한 관련자 180여 명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른바 민청학련(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이다. 1976년에는 명동성당에서 3·1운동 기념미사를 집전하고 개신교와 합동으로 기도회를 개최하면서 유신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했다.
1980년에는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을 발표했고, 1987년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조작되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眞犯(진범) 따로 있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하며 주목 받았다.
사제단은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金泳三(김영삼), 金大中(김대중), 盧武鉉(노무현) 등 역대 정권에서 일어난 정치·사회적 주요 사건에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내며 현실정치에 관여했다.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미국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위대의 폭력이 절정에 달할 즈음 사제단은 ‘시국미사’를 개최했다. 사제단을 비롯한 종교계가 개입하면서 시위의 폭력양상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불법시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종교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불법·전문 시위꾼들을 보호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천주교 교회법에 의하면 성전이 아닌 곳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는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교회법 제300조는 “단체가 가톨릭(천주교)의 명칭을 사용할 때는 관할권자(주교회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제단은 관할권자의 허가를 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교회법 위반이다. 교회법 294조에 따르면 사제들의 단체구성은 주교회의의 인준에 의해 성립된다. 사제단은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역시 교회법을 위반했다.
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일몰 후 집회행위는 위법이다. 사제단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집전하고 도로를 점거한 채 행진을 벌인 행위는 교회법과 사회법을 둘 다 위반한 셈이다. 경찰은 ‘천주교’와 ‘사제단’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사제단의 행위를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제단은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가 광우병 논란으로 비화되기 전인 2008년 4월 1일에도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제목은 ‘인간의 무지와 교만이 빚어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었다. 사제단은 이명박 정권을 성서의 유다에 비유하며 ‘성장의 이름으로 강과 산을 건설 대기업들에게 팔아 넘기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강을 파헤치는 것은 하느님의 혈맥을 파괴하는 것’ ‘강에 콘크리트를 붓는 것은 하느님의 몸에 독극물을 퍼붓는 것’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성명서 말미에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계획에 저항하는 무서운 죄악임을 엄중히 선고하며 이를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고 돼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교회법 위반한 임의단체
공식적으로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기구는 천주교 주교회의다. 主敎(주교)는 교황에 의해 임명되며 일정 敎區(교구)를 관할하는 고위 성직자다.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12명의 제자들의 사명을 계승하며 특히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모든 주교들을 대표하는 책임자로서 使徒(사도) 베드로를 계승한다.
천주교에서 사제는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신부 등 수도자를 제외한 모든 성직자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주교직의 아래에 있는 平司祭(평사제)만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평사제를 이름과 함께 호칭할 때는 ‘○○○ 신부’라고 한다.
천주교회에서 주교와 신부의 관계는 상당히 엄격하다. 모든 신부들은 주교에 의해 敍品(서품)되며 교회법 제273조에 따라 교황 및 각자의 소속 직권자(주교)에게 존경과 順命(순명)을 표시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의 사목지침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는 것이 신부들의 직무다.
한국 천주교회에는 약 4300명의 사제가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소속된 사제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청계광장 미사 등 최근 활동 등으로 추정해 볼 때 실제로 활동하는 인원은 100명 내외인 것으로 보인다. 사제단은 2003년 11월 3일 “KAL機(기) 폭파범 김현희는 전두환 정부가 조작한 가짜”라고 주장하며 KAL기 폭파사건 재조사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부 115명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현 대표인 전종훈 신부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빌딩 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무실 앞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라는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사제단은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그간의 삶과 역사를 성찰하고 ‘지금 그리고 여기’의 교회에 대한 반성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과 반성의 결과물이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라고 밝혔다.
사목연구원의 활동은 3500여 회원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연구원의 ‘이사진’과 운영·기획위원은 대부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로 구성돼 있다. 1970~80년대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천교구 김병상 신부가 이사장을 맡고 있고,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宋基寅(송기인) 신부가 부이사장, 咸世雄(함세웅) 신부가 원장을 맡고 있다.
그 밖에 이사를 지냈거나 현재 이사로 활동중인 문정현·심용섭·안충석·양홍·황상근·양승규·이강우 신부 등은 대부분 사제단 초기부터 활동해온 ‘사제단 1세대’로 분류된다. 실질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운영·기획위원은 사제단의 총무인 김인국 신부를 비롯해 김홍진·나승구·맹제영·이강서·이영우·정진호·김일희·김정대·김정용·맹제영·최승정 신부 등 ‘사제단 2세대’의 젊은 신부들로 구성돼 있다.
사목연구원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증언자료집 <암흑 속의 횃불>을 발간하고, 후원회 소식지인 <기쁨과 희망>을 발행한다. 이 연구원은 또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등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사회 懸案(현안)에 관여해 왔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몸, 사목연구원은 머리”
사목연구원은 2007년 10월 29일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주최한 ‘민주화 여정과 한국교회’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는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교회가 쇄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목연구원 관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이 몸이라면 연구원은 머리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사목연구원을 포함한 정의구현사제단 사무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직원에게 “사제단의 대표인 全鍾勳(전종훈) 신부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신부님이 어디 계신지는 알 수 없다”며 “3월에 열리는 오체투지에는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부는 司牧(사목)지역에 상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전종훈 신부는 2008년 8월 21일 소속 교구인 서울대교구로부터 安息年(안식년) 발령을 받은 상태다. 전 신부를 만나기 위해 전 소속 본당인 서울대교구 수락산 성당에 문의했으나 “전 신부의 현 소재나 연락처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정의구현사제단 관계자에게 사제단의 규모나 정례회의, 교구별 회원분포 등에 대해 묻자, “月刊朝鮮의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사제단 홈페이지에 있는 조직도에 따르면, 사제단 지도부는 대표, 총무, 자문위원회 및 감사, 통일·홍보·교육위원장, 사무처장, 실무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로사제들로 구성된 顧問團(고문단)도 있다. 사제단은 각 지방 교구와 수도회에 대표와 총무를 두고 매월 정기회합도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직을 수행했거나 정의구현사제단의 핵심역할을 하는 인사로는 咸世雄(함세웅), 文正鉉(문정현), 文奎鉉(문규현) 신부 등이 있다.
“사제단은 천주교회 전체 중 소수 중의 소수”
천주교 주교회의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필자는 현재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으로 재직 중인 제주교구 교구장 姜禹一(강우일·베드로·63) 주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24명의 회원과 8명의 준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강우일 주교는 자신의 답변이 주교회의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강 주교와의 일문일답.
―삼성 비자금 폭로, 촛불집회 관련 시국미사 개최, 대운하 비판 등 최근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활발합니다. 주교님께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이 발표한 일련의 성명서를 읽어본 적 있으십니까.
“아니오.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사제단은 대운하 사업을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주교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부분은 저도 분명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낱말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본적인 뜻은 대운하에 반대한다는 건데 그것 자체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다만 표현의 과격성 때문에 그러는 건데, 사람의 감정이 격해지다 보면 그런 표현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교회법전에 따르면 사제들의 허가 없는 단체결성이 교회법 294조, 295조를 위반하고 있고, 허가 없이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부분은 교회법 300조를 위반하고 있습니다.
“認准(인준)을 못 받은 거죠. 주교님들이 인준을 하려고도 안 하고….”
―그러나 주교회의의 침묵이 곧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긍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요. 정의구현사제단이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고…. 주교님들이 오랜 세월 동안 대화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만 결론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게 우리 집안문제인데 대외적으로 공표해서 사제들을 비판하는 것도 주교들이 할 일이 아니죠. 사제들은 주교들한테 아들과 같아요. 아버지가 아들하고 견해차이가 있다고 해서 제3자한테 고발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 천주교회 전체 중에서도 소수 중의 소수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견해가 분분할 때가 많이 있어 왔습니다. 특히 정치·사회적인 부분에서는 견해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주교님들도 의견을 공적으로 표하는 것은 삼가고 있죠.”
―사제들의 정치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나 생존권이 위협받는 단계라면 종교인들도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2차 공의회에서 발표된 현대사목헌장에도 그런 점들이 명시돼 있어요. 다만 쓸데없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까지 성직자들이 나서서 개입해서는 안 되겠죠.”
10년 공부 후에도 35%가 탈락하는 사제의 길
성직자로서 가톨릭 사제의 권위는 여타 종교에 비해 훨씬 공고한 편이다. 사제가 되는 것을 천주교에서는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으로 ‘聖召(성소)를 받는다’고 표현한다. 故(고) 金壽煥(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신부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고 싶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는 말로 사제가 되는 것을 표현한 바 있다.
사제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본당활동 등을 통해 靈性(영성)과 인성을 검증 받는다.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신학교 내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1학년은 외출이 금지되고 2학년부터는 월 1회 외출이 허가된다. 3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독방을 쓸 수 있다.
신학교는 대개 13~14학기를 이수해야 한다. 1~2학년은 신학, 성서입문, 철학을, 3~4학년은 신학의 주요과목을 배운다. 5~6학년에는 교회의 교리와 신학지식을 연구하고 성직의 입문인 副祭敍品(부제서품)을 받으며, 1년 뒤에는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고 ‘새 사제학교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사제가 되기까지 군 생활을 포함해 약 1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10년 공부를 마친 후에도 중도 포기 등으로 탈락하는 인원이 매년 평균 35%에 달한다. 졸업 후에는 더 힘든 忍苦(인고)의 삶이 남아 있다. 천주교 사제는 평생 동안 독신·금욕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서품된 사제는 천주교회 안에서 강력하고 고유한 권한을 가진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제만이 미사집전이나 고해, 세례 등 각종 성사 집행을 할 권리를 허락 받는다. 사제의 어깨가 무거운 만큼 신도들의 존경과 신뢰도 강하다.
가톨릭 교리는 “최고 성직자인 교황이 교리의 머리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공적으로 사도좌에서 장엄하게 선언할 때는 그르침이 없다”고 가르친다. 이를 ‘교황의 無謬性(무류성)’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제의 언어는 신중해야 하고, 그만큼 사제의 언어는 존중 받는다는 말이다. 무류성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신앙과 도덕, 교리 문제 판단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기타 영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필자는 취재과정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胎動(태동)하는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한 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故(고) 池學淳(지학순) 주교의 변론을 담당했던 林炚圭(임광규·72) 변호사였다.
임 변호사는 고 지학순 주교가 담당하던 원주교구의 신자였다. 지학순 주교는 대만에서 있었던 주교회의에 참석하고 유럽 국가들을 순방한 후 귀국하던 1974년 7월 6일,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 혐의로 김포공항에서 체포돼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다. 소위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된 젊은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였다. 임광규 변호사는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변호인단을 구성해 그를 변호했다. 임 변호사의 말이다.
“그때는 젊은 신부들이 고마웠습니다. 당시 저는 본당 사제와 함께 각 교구를 찾아다니면서 신부님들께 ‘지학순 주교님을 위해 나서달라’고 호소하고 다녔을 때니까요.”
“세속은 신학을 배운 사제들에게는 너무 복잡”
―어떤 계기로 지학순 주교를 변호하게 됐습니까.
“사건이 있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죠. 지학순 주교님이 종종 불러서 저한테 법률 자문을 구했어요. 지 주교님이 구속되자 원주교구의 사무국장 신부가 찾아와 부탁하더군요. 당시 제 목표는 단순했습니다. ‘지학순 주교가 명예롭게 석방되는 것’이었죠. 천주교회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학순 주교의 변호를 맡으면서 고초도 겪으셨을 텐데요.
“제가 당시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었는데 거기서 느닷없이 해직됐죠. 첫 재판 때는 당시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바람에 참석도 못했어요.”
―정의구현사제단과 언제부터 행보를 달리했습니까.
“지학순 주교님과 한국 천주교회의 명예가 어느 정도 지켜졌다고 판단된 시점에서 그만뒀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신부들에게 ‘世俗(세속)은 신학을 배운 신부들이 관여하기에 너무나 복잡하다. 사회활동은 일반 국민들한테 맡겨두자. 이만 됐으니 자만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자’고 권유했지요. 현재 원주교구 주교인 김지석 주교(당시 신부) 역시 같은 말을 했죠. 그런데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젊은 신부들이 반대하더군요. 그때 행동을 같이했던 젊은 신부들이 지금은 많이 (정의구현사제단을) 떠났습니다. 요즘 세상은 그때보다 더 복잡해요. 현대 사회는 워낙 정보가 범람해서 취사선택조차 쉽지 않아요.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할 사회가 아니에요. 젊은 사제들이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데 기여한 점은 인정합니까.
“기여한 부분도 있죠. 그런데 유신은 국민이 다 반대했던 겁니다. 그때 이뤄낸 성과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정의구현사제단은 대운하 관련 성명을 통해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고 했습니다.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용어 하나를 가지고 트집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용어 하나라니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창세기)’고 했습니다. 말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겁니다. 저는 주교님의 말씀이 대운하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밝힌 거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교님들이 외부 언론에 말씀하실 때는 항상 조심스러워 하십니다. 양쪽을 다 보듬으시려는 거죠.”
“진실과 허위를 교묘하게 섞은 선동이 더 위험”
―최근 정의구현사제단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제단이 최근 시국미사를 하면서 발표한 성명서를 봅시다. 언어가 너무 황당해요. 마음이 황폐해졌다는 겁니다. ‘국민의 힘으로 되찾자’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혁명을 하자’는 말을 교묘하게 한 것뿐이에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힘으로 이동됩니다. 이명박 정부도 국민의 힘으로 세워진 정부예요. 4년이 지나면 다시 심판대에 서게 될 거고요. 한마디로 국법질서를 뒤집어엎고 혁명을 하자는 건데, 혁명을 하려면 폭력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국가보안법 완전 철폐를 꾸준하게 주장하고 있어요. 만일 국가보안법에 문제가 있으면 손을 보면 되는 거예요. 무좀이 있는 발을 치료하지 말고 잘라내자는 것과 같은 얘기죠.”
―사제단은 북한에서 미사를 여는 등 ‘민족의 평화통일’도 꾸준히 주장합니다.
“평화통일, 물론 해야죠. 그런데 사제단은 민족의 화해를 주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와 화해합니까. 김정일하고 해야 하는데 히틀러나 헤롯왕 같은 독재자와 우리가 무슨 화해를 하자는 겁니까. 대상이 잘못됐죠. 더구나 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천주교와 배치됩니다. 유대인들은 말하자면 선택받은 민족이죠. 그러나 천주교는 보편교회로서 세계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열려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그런 의미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아요.
북한사회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종교는 ‘김일성 父子敎(부자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剝製(박제)나 다름없어요.”
―정의구현사제단은 남미에서 태동된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방신학은 여러 가지 측면이 많은데요. 해방신학을 논할 때 주로 인용되는 신학자가 구티에레즈입니다. 교황청에서는 이런 부류들에 대해 ‘성경을 마르크시즘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계급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죠. 이 검증 작업을 담당했던 분이 라칭거 추기경(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입니다. 해방신학은 신학과 세속 양쪽에 방패를 둘러치고 있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도 훈령을 발표해서 해방신학을 경계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가장 위험한 것은 진실과 허위를 교묘하게 섞은 겁니다. 100% 거짓은 사실 별로 위험하지 않아요. 그러나 성경말씀에서 한 구절 떼고, 그럴듯한 말과 거짓 주장을 교묘하게 섞어서 하는 선동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천주교 대표인 것처럼 사기치고 있다”
서강대 총장과 이사장을 지낸 朴弘(박홍) 신부에게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박홍 신부와의 일문 일답이다.
―사제단이 최근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되면서 한국 천주교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임의단체예요. 가톨릭의 공적 기구가 아닙니다. 이슈에 따라서 숫자가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죠. 과거 1970~80년대 독재가 있을 때는 독재에 항거하고 예언자적인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옛날에 잘했던 것을 다 까먹고 있어요.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고 도리어 남한에 있는 좌경들 앞잡이나 해요. 그래서 가톨릭에 대한 위신이 떨어져 가고 있어요.”
―평신도나 비신자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을 천주교의 대표입장인 양 받아들입니다.
“대표가 아닌데 대표인 것처럼 사기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국회의원이 있고 국회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정치한다’고 선언하면 국회의원이 됩니까. 교회 안에도 그런 게 많아요.”
―사제단이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기죠. 또 일부 언론에서 맞장구를 쳐 주니 기를 쓰고 나오잖아요. 교회법에 의하면 사제단은 불법단체입니다.”
―미국 쇠고기 파동과 용산참사에 대해 시국미사를 열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할 때나 안 할 때나 마구 해요. 미사가 뭔지 아는 사람이면 그렇게 못하게 돼 있다는 거 다 알아요. 한국 가톨릭은 사기 치기 좋게 돼 있어요. 한국의 종교기자들이 그런 것들 좀 알면서 (보도)해야 되는데….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늦을리스트’예요.”
―정의구현사제단의 반미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남한은 미 제국주의 식민지이니까 법을 지킬 필요가 없고, 한국전쟁도 유엔군이 안 왔으면 통일됐다는 식입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박홍 신부는 “사상적으로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공산주의식 종교정책이 있어요. 종교를 이용해서 남한을 적화통일시키려는 시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천주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북의 전략에 말려들어간 사람들이 있어요.”
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에 참가하지 않는 신부들에게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제3자적 의견을 물었다. 대구대교구는 비교적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적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대교구 대곡성당의 보좌신부로 재직 중인 이억수(필립보·34) 신부에게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질문했다. 이억수 신부는 2005년 6월 29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참가하는 신부 비율이 지역별로 다릅니까.
“정의구현사제단에 참여하시는 신부님들은 전라도나 경북 안동지역에 많아요. ‘지역색깔’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픔이 많은 지역, 사회적 약자가 많은 지역이죠.”
―정의구현사제단에 관심이 많습니까.
“물론이죠. 사제단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사제라면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약자들의 편에 관심이 있고 신경을 쓰게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하는 역할도 있죠. 방법의 차이일 수 있겠네요.”
“반대만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지 의문”
―정의구현사제단의 행동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방법적인 부분에서 변질된 면이 있다고 봐요. 예전 군사독재 시대에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을 보호하던 방법들이 있었죠. 지금도 물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방법적인 부분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아니면 아니다’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관철시키려하니까 문제죠.”
―정의구현사제단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
“예전 같은 경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판단할 수 있었죠. 억압 받는 부분들이 확실히 보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좀 상황이 달라요. 무조건 정부가 하는 걸 반대해서 소수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혹은 ‘반대’만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정의예요. 사제라면 스스로 진실을 바라보는 눈이 있는지 自問(자문)해야 합니다. 진실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쪽 편만 드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권력 앞에 서면 우리 개인은 다 약자예요. 그렇다고 해서 ‘정권을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큼직한 사건들에만 이름을 걸고 나설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어요.”
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김인국 신부와 어렵게 통화할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현재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숫자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전주교구만 해도 신부님 대부분이 사제단 회비를 내주세요. 활동을 못해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기본 정신에 동의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관계자에 따르면 사목연구원이 사제단의 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두 단체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사제단은 교황청이 발표한 2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의 정신에 따라 모였고, 사목연구원은 그 정신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시국미사 때 발표한 성명서를 보면 ‘국민의 힘으로 되찾자’라는 문구가 있던데 정확히 무엇을 되찾자는 건가요.
“주권의 문제죠. 작년에는 검역주권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주권은 국민들의 것입니다. 사제들의 판단에는,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주권을 위임했는데 그 권력을 국민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쓰고 있다는 징표들이 전방위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니까요. ‘정권을 파탄내자, 빼앗아 오자’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일 뿐”
―성명서를 보면 마치 경찰이 살인을 하도록 의도한 것처럼 왜곡된 부분이 있습니다.
“개별사안을 놓고 보면 그런 논란거리들이 생기죠. 물론 경찰들이 죽이러 갔겠어요. 그건 아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권력이 개입했기 때문에 그런 불행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이 정권은 사과를 안 해요. 불행한 사태를 저질러 놓고도….”
―사고는 불법으로 건물을 점거한 전문 시위꾼들이 화염병을 사용해 발생한 것 아닙니까. 아무튼 그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金碩基(김석기)씨가 그만뒀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거기 올라가서 불에 타 죽었다고 생각해 봐요. 김석기가 나가는 것을 보고 사과라고 여기겠어요.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나가지만 공권력이 무시당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말하면서 나갔다고요.”
―사제단은 과거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고, ‘조선가톨릭교협회’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장충성당이나 ‘조선가톨릭교협회’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한 위장단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향적으로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자들한테 ‘당신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겠죠.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장충성당에 있는 교우들과 명동성당에 있는 교우들은 다릅니다. 그 사람들이 신앙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에요.”
―예전에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돼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만, 사제단은 왜 북한정권의 과오에 대해 침묵합니까.
“남측과 북측 중에서 어디가 더 인권국가일까요. 물으나 마나 한 소리예요. 반세기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손가락질만 해 왔어요. 이것은 사랑의 길이 아닙니다. 방편적으로 허물을 지적하는 거보다는, 알면서도 ‘도와줄 게 없는가’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누구나 아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죠. 안 그래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까지 나가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의 문제는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북한의 틀린 점을 얘기하기 전에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싶은 겁니다.”
“김현희씨가 하필 왜 지금 나옵니까”
―북한은 핵무기까지 만들었고, 최근에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우주발사체까지 쏠 태세입니다.
“햇볕정책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정당화시킨 거죠. 이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포용정책이 아닙니다. 핵무기는 北美(북미)간의 모순 때문에 생긴 겁니다. 아프리카만도 못한 북한을 왜 그렇게 미국이 못살게 굽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은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했습니다.
“KAL기 폭파 외에도, 세상에는 감춰진 진실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 사제단은 어떤 정권이든 권력기관에 대해 신뢰를 가져보지 못했어요. 당시 KAL기 폭파의 문제는 국민적 의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단만의 의혹이 아니었어요. 권력기관과 연관된 의혹일수록 어떤 단체도 시비를 걸기가 참 어려워요.
그 문제는 근본적으로 조사될 수 없어요. 안기부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에 원래 자료에 접근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자료를 폐기하고….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제단은 세상의 심판자가 아니라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뿐입니다.”
―KAL기 사건의 경우, 김현희씨를 비롯해 관련 당사자들의 주장이 들어맞고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기관도 조사를 통해 북한에 의한 테러사건이라는 게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정권에 봉사한 정보·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이 바탕이 돼 있는 거죠. 진실이라는 게 저절로 드러난 적이 없어요. KAL기 사건도 삼성 비자금 사건과 같아요. 엄청난 비자금을 받았는데 당사자들은 다 무죄잖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만한 진실을 밝힐 수 사회적 역량이 안 됐어요. 우리 사회에 양심이 어디 있어요.
사제들은 ‘이거는 상당한 의혹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이런 이야기가 유족들한테서 나왔고요. 자라 보고 놀란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게 자라든지 솥뚜껑인지 모르겠지만, 유가족들을 이해시킬 만큼 진상조사를 해야지요. 흡족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를 발표했을 때 국민들이 얼마나 승복했느냐를 생각해 보세요. 김현희씨가 하필 왜 지금 나옵니까? 그것도 음모가 있는 거야. 이승복 이야기하고 같아요. 그게 진실인지 누가 알아요.”
“현장은 우리의 聖所입니다”
―법원조차도 이미 결론을 냈지 않았습니까.
“KAL기 사건은 거짓이라는 인상이 너무 많은 사건 중의 하나라서…. 세상의 진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한테 왜 결과를 못 믿느냐고 하지 말고 유족들이 이해할 만한 결과를 내야 할 거 아닙니까. 사제들은 영적으로 숙고한 후 현실 문제에 발언을 합니다.”
―사제단의 발언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제들은 양심에 따라 얘기합니다. 양심이 틀렸다고 하면 할 말이 없어요. 이명박도 양심에 따라서 대운하를 파는 거고.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살아온 삶의 무게를 비교해 보라는 거죠. 사제단이 창립부터 오늘까지 역사에서 강자편에 선 적은 없어요.”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정권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냈더군요.
“잘한 거는 잘했다고 해야지. 사제단은 그때도 늘 불편하게 살았어요.”
―사제단은 미군 철수 등 反美(반미)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명서를 보면 증오나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미군 문제가 사실 특별하죠. 우리 사회에서 미군 문제는 금기였어요. 미군 문제를 거론하면 누구나 다 과격한 사람이 됩니다. 미군 문제는 ‘삶의 현장’의 문제예요. 동네사람들이 미군 때문에 고생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또 깊이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분단 문제와도 연관돼 있고…. 표현이 처절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대운하 관련 성명서에는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과격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죠. 저희도 순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요. 근데 우리가 쓰는 성명서는 서재에서 쓰는 게 아니라 상당부분 현장에서 쓰는 글들이에요. 지나친 표현이 있을 수 있어요. 현장에서 보면 그렇게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일거예요. 우리나라가 토건사회가 돼 버렸는데, 사람들 망치고 경제 망치는 거예요. 같은 예산이라도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한국사회가 많이 변했는데 운동방식은 과거 군사 정권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변할 리가 없어요. 사제단의 운동방식은 기도하는 거예요. 지금도 기도하는 것뿐이에요. 거리에 나갔다는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현장은 우리의 聖所(성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처럼요. 사제들이 어떻게 성당 안에만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제단의 활동이 사회의 갈등을 줄이기보다는 확산하는 것 같습니다.
“이쪽도 아우르고 저쪽도 끌어안는 그런 이야기는 사실 너무 편한 거예요. ‘철거민도 잘못했고 경찰도 잘못했다’고 하는 양비론을 하기에는…. 현장에 서면 다릅니다.”
―사제단이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얘기는 뭡니까.
“사회에 종교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성직자들은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고민을 심각히 합니다. 삼성 사건 때 국가기관의 오염상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권력기관 하나라도 살아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수도 있었어요. 일제히 오염됐습니다. 당시에는 ‘언론이라도 살아있다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러다가 최후에 가진 질문은 ‘종교라도 살아있다면’이었습니다.”
사제단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정의구현사제단은 분명 군부독재 체제를 몰아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은 사제단의 일부 사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변화했고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과거 군사정권처럼 총칼로 집권한 정권이 아니다. 타도의 대상이 되기에는 200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이 너무 많은 지지를 해줬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경제규모 세계 11위로 당당히 건국 60주년을 맞이할 때, 북한 김정일 정권은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주민들을 餓死(아사)의 구렁텅이로 몰고 있다. 그런 독재정권에 대해 사제단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며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천주교의 라틴어 공식명칭은 ‘에클레시아 카톨리카 로마나’(Ecclesia Catholica Romana, 로마 가톨릭교회)다.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두루 따르는, 모두를 포함한’의 의미로 쓰였던 고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유래했다. 천주교회(가톨릭)를 ‘보편교회’라고 지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편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고 부활한 이스라엘이나, 교황청이 있는 로마나, 아마존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문명과 격리되어 살아온 원주민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다.
취재과정에서 필자는 과연 정의구현사제단이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정작 촛불집회에 참가조차 못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등불이었듯이, 정의구현사제단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진정한 사제들의 모임이 되길 바란다.⊙
▣ 선언문으로 본 정의구현사제단의 행적
1974년 지학순 주교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정의구현사제단은 1988년 대통령 직선제에 의해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활동 양상이 변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88년 7월 4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우리의 기도와 선언’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1989년 6월 6일에는 임진각과 평양 장충성당에서 ‘통일염원미사’를 봉헌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2000년 8월 2일 ‘불평등한 SOFA 전면개정과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위한 우리의 선언’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매향리 사격장이 폐쇄되고 미군이 물러가는 진정한 민족통일의 그 날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로 결단하고자 한다’며 미군철수를 촉구했다.
사제단은 2001년 2월 6일 ‘나라의 현실을 걱정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제단은 ‘경제위기 극복을 과제로 시작한 금융·기업분야의 구조조정과 남북협력 정책과 화해시대의 개막’ 등을 김대중 정부의 업적으로 규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 만의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시대적 기대와 민주적 방식의 개혁에 대한 한계성의 절감과 박탈감에서 오는 무관심과 허무주의의 만연을 불러와, 가치관의 전도현상과 국민 결속력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사제단은 선언문 중간에 ‘이런 국가적 위기의 문제가 야기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중심적 주체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진행됨으로써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성향의 정당과 언론과 집단 이기주의의 완강한 저지를 뚫고 나갈 힘을 갖추지 못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힘은 국민 대다수의 열망에서 오는 것이지 부당하게 선동된 여론과 정당의 다수 의석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제단은 선언문 말미에 ‘국가보안법 철폐·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부패방지법 제정’을 주장했다. 사제단의 시국선언문이 나온 뒤, 2001년 5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2001년 7월 24일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북한 인권에는 침묵하고 유령 종교단체에 對北지원
사제단이 2002년 2월 18일 발표한 ‘한(조선)반도 평화선언’라는 성명서는 이례적으로 ‘한반도’라는 단어 사이에 괄호로 ‘조선’이라는 용어를 병기 표기했다. 성명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한(조선)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방안이다. 자신들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간섭하려고 하는 제국주의 추종자들(부시 정권)의 부당한 간섭과 방해책동을 막아 한(조선)반도가 자주 주권국가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중략)
남북 사이의 이질성을 확대 재생산시켜 갈등을 부추기는 조선일보의 논조를 비판하고 그 논조를 따르는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예외 없이 비판한다. 언론이 북의 고려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제(남북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대중적 논의를 통해 한(조선)반도에 필요한 방안을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사제단은 2002년 6월 13일에는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효순·미선양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사제단은 10월 21일 ‘SOFA 개정 촉구 및 효순이, 미선이 추모미사’를 열었고, 11월 4일에는 ‘한반도 평화실현·불평등한 소파 개정·미군장갑차 희생 여중생 사건 해결 촉구 시국기도회’를 개최했다. 12월 2일에는 ‘살인미군 회개 촉구를 위한 생명평화단식기도회’를 열였다. 2002년 大選(대선)이 무르익던 때였다.
2003년 11월 3일 ‘김현희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천주교 신부 115인 선언’이 발표됐다. 북한의 사주를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한 김현희가 “안기부에 의해 조작된 가짜”라는 주장이었다.
사제단은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결성을 위한 전국 사회단체 대표자 회의(3월17일)’ ‘탄핵무효선언, 국회의원 193명 참회촉구 종교인 기자회견(3월22일)’ 등을 열며 탄핵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삼성 비자금 폭로 주도
정의구현사제단은 2007년 10월 29일 金勇澈(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삼성의 비자금 관련 비리를 폭로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정의구현사제단과 한 시사주간지와 함께 삼성그룹 비자금을 폭로했다. 사제단은 10월 29일에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가진 첫 번째 기자회견을 비롯해 네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그룹과 검찰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삼성과 검찰·언론·국세청·재경부·금감원의 회개를 거듭 호소하며 기도합니다’ 등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 변호사는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희생을 감수하고 사회악을 고발하는 정의의 사도’로 추앙 받았다.⊙
지난 2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집전한 ‘용산 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에서 사제단 대표 전종훈 神父(신부)가 한 말이다. 사회를 맡은 김인국 신부는 “대통령이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고 공권력은 국민을 敵(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맡겼던 권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얻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이 천주교를 대표하는 것인가” “천주교의 정치적 性向(성향)이 뭔지 의문이다” “정치에도 개입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 단체인지 궁금하다”고 했고, “방송에서 천주교 사제들의 촛불시위라고 나와도 천주교 측에서 반론이 없는 것을 보니 천주교를 대표하는 단체인 것 같다”고 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대운하 사업,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의 10월維新(유신)을 반대하던 池學淳(지학순) 주교를 비롯한 관련자 180여 명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른바 민청학련(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이다. 1976년에는 명동성당에서 3·1운동 기념미사를 집전하고 개신교와 합동으로 기도회를 개최하면서 유신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했다.
1980년에는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을 발표했고, 1987년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조작되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眞犯(진범) 따로 있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하며 주목 받았다.
사제단은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金泳三(김영삼), 金大中(김대중), 盧武鉉(노무현) 등 역대 정권에서 일어난 정치·사회적 주요 사건에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내며 현실정치에 관여했다.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미국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위대의 폭력이 절정에 달할 즈음 사제단은 ‘시국미사’를 개최했다. 사제단을 비롯한 종교계가 개입하면서 시위의 폭력양상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불법시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종교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불법·전문 시위꾼들을 보호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천주교 교회법에 의하면 성전이 아닌 곳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는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교회법 제300조는 “단체가 가톨릭(천주교)의 명칭을 사용할 때는 관할권자(주교회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제단은 관할권자의 허가를 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교회법 위반이다. 교회법 294조에 따르면 사제들의 단체구성은 주교회의의 인준에 의해 성립된다. 사제단은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역시 교회법을 위반했다.
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일몰 후 집회행위는 위법이다. 사제단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집전하고 도로를 점거한 채 행진을 벌인 행위는 교회법과 사회법을 둘 다 위반한 셈이다. 경찰은 ‘천주교’와 ‘사제단’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사제단의 행위를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제단은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가 광우병 논란으로 비화되기 전인 2008년 4월 1일에도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제목은 ‘인간의 무지와 교만이 빚어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었다. 사제단은 이명박 정권을 성서의 유다에 비유하며 ‘성장의 이름으로 강과 산을 건설 대기업들에게 팔아 넘기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강을 파헤치는 것은 하느님의 혈맥을 파괴하는 것’ ‘강에 콘크리트를 붓는 것은 하느님의 몸에 독극물을 퍼붓는 것’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성명서 말미에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계획에 저항하는 무서운 죄악임을 엄중히 선고하며 이를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고 돼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교회법 위반한 임의단체
공식적으로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기구는 천주교 주교회의다. 主敎(주교)는 교황에 의해 임명되며 일정 敎區(교구)를 관할하는 고위 성직자다.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12명의 제자들의 사명을 계승하며 특히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모든 주교들을 대표하는 책임자로서 使徒(사도) 베드로를 계승한다.
천주교에서 사제는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신부 등 수도자를 제외한 모든 성직자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주교직의 아래에 있는 平司祭(평사제)만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평사제를 이름과 함께 호칭할 때는 ‘○○○ 신부’라고 한다.
천주교회에서 주교와 신부의 관계는 상당히 엄격하다. 모든 신부들은 주교에 의해 敍品(서품)되며 교회법 제273조에 따라 교황 및 각자의 소속 직권자(주교)에게 존경과 順命(순명)을 표시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의 사목지침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는 것이 신부들의 직무다.
한국 천주교회에는 약 4300명의 사제가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소속된 사제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청계광장 미사 등 최근 활동 등으로 추정해 볼 때 실제로 활동하는 인원은 100명 내외인 것으로 보인다. 사제단은 2003년 11월 3일 “KAL機(기) 폭파범 김현희는 전두환 정부가 조작한 가짜”라고 주장하며 KAL기 폭파사건 재조사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부 115명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현 대표인 전종훈 신부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빌딩 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무실 앞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라는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사제단은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그간의 삶과 역사를 성찰하고 ‘지금 그리고 여기’의 교회에 대한 반성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과 반성의 결과물이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라고 밝혔다.
사목연구원의 활동은 3500여 회원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연구원의 ‘이사진’과 운영·기획위원은 대부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로 구성돼 있다. 1970~80년대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천교구 김병상 신부가 이사장을 맡고 있고,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宋基寅(송기인) 신부가 부이사장, 咸世雄(함세웅) 신부가 원장을 맡고 있다.
그 밖에 이사를 지냈거나 현재 이사로 활동중인 문정현·심용섭·안충석·양홍·황상근·양승규·이강우 신부 등은 대부분 사제단 초기부터 활동해온 ‘사제단 1세대’로 분류된다. 실질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운영·기획위원은 사제단의 총무인 김인국 신부를 비롯해 김홍진·나승구·맹제영·이강서·이영우·정진호·김일희·김정대·김정용·맹제영·최승정 신부 등 ‘사제단 2세대’의 젊은 신부들로 구성돼 있다.
사목연구원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증언자료집 <암흑 속의 횃불>을 발간하고, 후원회 소식지인 <기쁨과 희망>을 발행한다. 이 연구원은 또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등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사회 懸案(현안)에 관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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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7월 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마친 사제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
“정의구현사제단은 몸, 사목연구원은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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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삼성비자금 진상규명을 위한 종교인·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 신부가 사건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목연구원을 포함한 정의구현사제단 사무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직원에게 “사제단의 대표인 全鍾勳(전종훈) 신부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신부님이 어디 계신지는 알 수 없다”며 “3월에 열리는 오체투지에는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부는 司牧(사목)지역에 상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전종훈 신부는 2008년 8월 21일 소속 교구인 서울대교구로부터 安息年(안식년) 발령을 받은 상태다. 전 신부를 만나기 위해 전 소속 본당인 서울대교구 수락산 성당에 문의했으나 “전 신부의 현 소재나 연락처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정의구현사제단 관계자에게 사제단의 규모나 정례회의, 교구별 회원분포 등에 대해 묻자, “月刊朝鮮의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사제단 홈페이지에 있는 조직도에 따르면, 사제단 지도부는 대표, 총무, 자문위원회 및 감사, 통일·홍보·교육위원장, 사무처장, 실무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로사제들로 구성된 顧問團(고문단)도 있다. 사제단은 각 지방 교구와 수도회에 대표와 총무를 두고 매월 정기회합도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직을 수행했거나 정의구현사제단의 핵심역할을 하는 인사로는 咸世雄(함세웅), 文正鉉(문정현), 文奎鉉(문규현) 신부 등이 있다.
“사제단은 천주교회 전체 중 소수 중의 소수”
천주교 주교회의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필자는 현재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으로 재직 중인 제주교구 교구장 姜禹一(강우일·베드로·63) 주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24명의 회원과 8명의 준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강우일 주교는 자신의 답변이 주교회의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강 주교와의 일문일답.
―삼성 비자금 폭로, 촛불집회 관련 시국미사 개최, 대운하 비판 등 최근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활발합니다. 주교님께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이 발표한 일련의 성명서를 읽어본 적 있으십니까.
“아니오.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사제단은 대운하 사업을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주교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부분은 저도 분명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낱말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본적인 뜻은 대운하에 반대한다는 건데 그것 자체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다만 표현의 과격성 때문에 그러는 건데, 사람의 감정이 격해지다 보면 그런 표현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교회법전에 따르면 사제들의 허가 없는 단체결성이 교회법 294조, 295조를 위반하고 있고, 허가 없이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부분은 교회법 300조를 위반하고 있습니다.
“認准(인준)을 못 받은 거죠. 주교님들이 인준을 하려고도 안 하고….”
―그러나 주교회의의 침묵이 곧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긍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요. 정의구현사제단이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고…. 주교님들이 오랜 세월 동안 대화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만 결론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게 우리 집안문제인데 대외적으로 공표해서 사제들을 비판하는 것도 주교들이 할 일이 아니죠. 사제들은 주교들한테 아들과 같아요. 아버지가 아들하고 견해차이가 있다고 해서 제3자한테 고발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 천주교회 전체 중에서도 소수 중의 소수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견해가 분분할 때가 많이 있어 왔습니다. 특히 정치·사회적인 부분에서는 견해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주교님들도 의견을 공적으로 표하는 것은 삼가고 있죠.”
―사제들의 정치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나 생존권이 위협받는 단계라면 종교인들도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2차 공의회에서 발표된 현대사목헌장에도 그런 점들이 명시돼 있어요. 다만 쓸데없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까지 성직자들이 나서서 개입해서는 안 되겠죠.”
10년 공부 후에도 35%가 탈락하는 사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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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광규 변호사. |
사제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본당활동 등을 통해 靈性(영성)과 인성을 검증 받는다.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신학교 내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1학년은 외출이 금지되고 2학년부터는 월 1회 외출이 허가된다. 3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독방을 쓸 수 있다.
신학교는 대개 13~14학기를 이수해야 한다. 1~2학년은 신학, 성서입문, 철학을, 3~4학년은 신학의 주요과목을 배운다. 5~6학년에는 교회의 교리와 신학지식을 연구하고 성직의 입문인 副祭敍品(부제서품)을 받으며, 1년 뒤에는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고 ‘새 사제학교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사제가 되기까지 군 생활을 포함해 약 1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10년 공부를 마친 후에도 중도 포기 등으로 탈락하는 인원이 매년 평균 35%에 달한다. 졸업 후에는 더 힘든 忍苦(인고)의 삶이 남아 있다. 천주교 사제는 평생 동안 독신·금욕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서품된 사제는 천주교회 안에서 강력하고 고유한 권한을 가진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제만이 미사집전이나 고해, 세례 등 각종 성사 집행을 할 권리를 허락 받는다. 사제의 어깨가 무거운 만큼 신도들의 존경과 신뢰도 강하다.
가톨릭 교리는 “최고 성직자인 교황이 교리의 머리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공적으로 사도좌에서 장엄하게 선언할 때는 그르침이 없다”고 가르친다. 이를 ‘교황의 無謬性(무류성)’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제의 언어는 신중해야 하고, 그만큼 사제의 언어는 존중 받는다는 말이다. 무류성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신앙과 도덕, 교리 문제 판단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기타 영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필자는 취재과정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胎動(태동)하는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한 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故(고) 池學淳(지학순) 주교의 변론을 담당했던 林炚圭(임광규·72) 변호사였다.
임 변호사는 고 지학순 주교가 담당하던 원주교구의 신자였다. 지학순 주교는 대만에서 있었던 주교회의에 참석하고 유럽 국가들을 순방한 후 귀국하던 1974년 7월 6일,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 혐의로 김포공항에서 체포돼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다. 소위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된 젊은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였다. 임광규 변호사는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변호인단을 구성해 그를 변호했다. 임 변호사의 말이다.
“그때는 젊은 신부들이 고마웠습니다. 당시 저는 본당 사제와 함께 각 교구를 찾아다니면서 신부님들께 ‘지학순 주교님을 위해 나서달라’고 호소하고 다녔을 때니까요.”
“세속은 신학을 배운 사제들에게는 너무 복잡”
―어떤 계기로 지학순 주교를 변호하게 됐습니까.
“사건이 있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죠. 지학순 주교님이 종종 불러서 저한테 법률 자문을 구했어요. 지 주교님이 구속되자 원주교구의 사무국장 신부가 찾아와 부탁하더군요. 당시 제 목표는 단순했습니다. ‘지학순 주교가 명예롭게 석방되는 것’이었죠. 천주교회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학순 주교의 변호를 맡으면서 고초도 겪으셨을 텐데요.
“제가 당시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었는데 거기서 느닷없이 해직됐죠. 첫 재판 때는 당시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바람에 참석도 못했어요.”
―정의구현사제단과 언제부터 행보를 달리했습니까.
“지학순 주교님과 한국 천주교회의 명예가 어느 정도 지켜졌다고 판단된 시점에서 그만뒀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신부들에게 ‘世俗(세속)은 신학을 배운 신부들이 관여하기에 너무나 복잡하다. 사회활동은 일반 국민들한테 맡겨두자. 이만 됐으니 자만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자’고 권유했지요. 현재 원주교구 주교인 김지석 주교(당시 신부) 역시 같은 말을 했죠. 그런데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젊은 신부들이 반대하더군요. 그때 행동을 같이했던 젊은 신부들이 지금은 많이 (정의구현사제단을) 떠났습니다. 요즘 세상은 그때보다 더 복잡해요. 현대 사회는 워낙 정보가 범람해서 취사선택조차 쉽지 않아요.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할 사회가 아니에요. 젊은 사제들이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데 기여한 점은 인정합니까.
“기여한 부분도 있죠. 그런데 유신은 국민이 다 반대했던 겁니다. 그때 이뤄낸 성과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정의구현사제단은 대운하 관련 성명을 통해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고 했습니다.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용어 하나를 가지고 트집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용어 하나라니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창세기)’고 했습니다. 말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겁니다. 저는 주교님의 말씀이 대운하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밝힌 거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교님들이 외부 언론에 말씀하실 때는 항상 조심스러워 하십니다. 양쪽을 다 보듬으시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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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7월 23일 지학순 주교(왼쪽)의 양심선언 현장에 함께한 김수환 추기경. |
“진실과 허위를 교묘하게 섞은 선동이 더 위험”
―최근 정의구현사제단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제단이 최근 시국미사를 하면서 발표한 성명서를 봅시다. 언어가 너무 황당해요. 마음이 황폐해졌다는 겁니다. ‘국민의 힘으로 되찾자’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혁명을 하자’는 말을 교묘하게 한 것뿐이에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힘으로 이동됩니다. 이명박 정부도 국민의 힘으로 세워진 정부예요. 4년이 지나면 다시 심판대에 서게 될 거고요. 한마디로 국법질서를 뒤집어엎고 혁명을 하자는 건데, 혁명을 하려면 폭력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국가보안법 완전 철폐를 꾸준하게 주장하고 있어요. 만일 국가보안법에 문제가 있으면 손을 보면 되는 거예요. 무좀이 있는 발을 치료하지 말고 잘라내자는 것과 같은 얘기죠.”
―사제단은 북한에서 미사를 여는 등 ‘민족의 평화통일’도 꾸준히 주장합니다.
“평화통일, 물론 해야죠. 그런데 사제단은 민족의 화해를 주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와 화해합니까. 김정일하고 해야 하는데 히틀러나 헤롯왕 같은 독재자와 우리가 무슨 화해를 하자는 겁니까. 대상이 잘못됐죠. 더구나 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천주교와 배치됩니다. 유대인들은 말하자면 선택받은 민족이죠. 그러나 천주교는 보편교회로서 세계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열려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그런 의미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아요.
북한사회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종교는 ‘김일성 父子敎(부자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剝製(박제)나 다름없어요.”
―정의구현사제단은 남미에서 태동된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방신학은 여러 가지 측면이 많은데요. 해방신학을 논할 때 주로 인용되는 신학자가 구티에레즈입니다. 교황청에서는 이런 부류들에 대해 ‘성경을 마르크시즘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계급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죠. 이 검증 작업을 담당했던 분이 라칭거 추기경(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입니다. 해방신학은 신학과 세속 양쪽에 방패를 둘러치고 있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도 훈령을 발표해서 해방신학을 경계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가장 위험한 것은 진실과 허위를 교묘하게 섞은 겁니다. 100% 거짓은 사실 별로 위험하지 않아요. 그러나 성경말씀에서 한 구절 떼고, 그럴듯한 말과 거짓 주장을 교묘하게 섞어서 하는 선동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천주교 대표인 것처럼 사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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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 신부(전 서강대 총장). |
―사제단이 최근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되면서 한국 천주교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임의단체예요. 가톨릭의 공적 기구가 아닙니다. 이슈에 따라서 숫자가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죠. 과거 1970~80년대 독재가 있을 때는 독재에 항거하고 예언자적인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옛날에 잘했던 것을 다 까먹고 있어요.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고 도리어 남한에 있는 좌경들 앞잡이나 해요. 그래서 가톨릭에 대한 위신이 떨어져 가고 있어요.”
―평신도나 비신자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을 천주교의 대표입장인 양 받아들입니다.
“대표가 아닌데 대표인 것처럼 사기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국회의원이 있고 국회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정치한다’고 선언하면 국회의원이 됩니까. 교회 안에도 그런 게 많아요.”
―사제단이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기죠. 또 일부 언론에서 맞장구를 쳐 주니 기를 쓰고 나오잖아요. 교회법에 의하면 사제단은 불법단체입니다.”
―미국 쇠고기 파동과 용산참사에 대해 시국미사를 열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할 때나 안 할 때나 마구 해요. 미사가 뭔지 아는 사람이면 그렇게 못하게 돼 있다는 거 다 알아요. 한국 가톨릭은 사기 치기 좋게 돼 있어요. 한국의 종교기자들이 그런 것들 좀 알면서 (보도)해야 되는데….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늦을리스트’예요.”
―정의구현사제단의 반미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남한은 미 제국주의 식민지이니까 법을 지킬 필요가 없고, 한국전쟁도 유엔군이 안 왔으면 통일됐다는 식입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박홍 신부는 “사상적으로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공산주의식 종교정책이 있어요. 종교를 이용해서 남한을 적화통일시키려는 시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천주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북의 전략에 말려들어간 사람들이 있어요.”
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에 참가하지 않는 신부들에게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제3자적 의견을 물었다. 대구대교구는 비교적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적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대교구 대곡성당의 보좌신부로 재직 중인 이억수(필립보·34) 신부에게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질문했다. 이억수 신부는 2005년 6월 29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참가하는 신부 비율이 지역별로 다릅니까.
“정의구현사제단에 참여하시는 신부님들은 전라도나 경북 안동지역에 많아요. ‘지역색깔’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픔이 많은 지역, 사회적 약자가 많은 지역이죠.”
―정의구현사제단에 관심이 많습니까.
“물론이죠. 사제단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사제라면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약자들의 편에 관심이 있고 신경을 쓰게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하는 역할도 있죠. 방법의 차이일 수 있겠네요.”
“반대만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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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 |
“방법적인 부분에서 변질된 면이 있다고 봐요. 예전 군사독재 시대에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을 보호하던 방법들이 있었죠. 지금도 물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방법적인 부분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아니면 아니다’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관철시키려하니까 문제죠.”
―정의구현사제단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
“예전 같은 경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판단할 수 있었죠. 억압 받는 부분들이 확실히 보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좀 상황이 달라요. 무조건 정부가 하는 걸 반대해서 소수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혹은 ‘반대’만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정의예요. 사제라면 스스로 진실을 바라보는 눈이 있는지 自問(자문)해야 합니다. 진실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쪽 편만 드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권력 앞에 서면 우리 개인은 다 약자예요. 그렇다고 해서 ‘정권을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큼직한 사건들에만 이름을 걸고 나설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어요.”
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김인국 신부와 어렵게 통화할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현재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숫자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전주교구만 해도 신부님 대부분이 사제단 회비를 내주세요. 활동을 못해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기본 정신에 동의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관계자에 따르면 사목연구원이 사제단의 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두 단체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사제단은 교황청이 발표한 2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의 정신에 따라 모였고, 사목연구원은 그 정신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시국미사 때 발표한 성명서를 보면 ‘국민의 힘으로 되찾자’라는 문구가 있던데 정확히 무엇을 되찾자는 건가요.
“주권의 문제죠. 작년에는 검역주권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주권은 국민들의 것입니다. 사제들의 판단에는,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주권을 위임했는데 그 권력을 국민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쓰고 있다는 징표들이 전방위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니까요. ‘정권을 파탄내자, 빼앗아 오자’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일 뿐”
―성명서를 보면 마치 경찰이 살인을 하도록 의도한 것처럼 왜곡된 부분이 있습니다.
“개별사안을 놓고 보면 그런 논란거리들이 생기죠. 물론 경찰들이 죽이러 갔겠어요. 그건 아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권력이 개입했기 때문에 그런 불행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이 정권은 사과를 안 해요. 불행한 사태를 저질러 놓고도….”
―사고는 불법으로 건물을 점거한 전문 시위꾼들이 화염병을 사용해 발생한 것 아닙니까. 아무튼 그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金碩基(김석기)씨가 그만뒀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거기 올라가서 불에 타 죽었다고 생각해 봐요. 김석기가 나가는 것을 보고 사과라고 여기겠어요.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나가지만 공권력이 무시당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말하면서 나갔다고요.”
―사제단은 과거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고, ‘조선가톨릭교협회’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장충성당이나 ‘조선가톨릭교협회’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한 위장단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향적으로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자들한테 ‘당신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겠죠.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장충성당에 있는 교우들과 명동성당에 있는 교우들은 다릅니다. 그 사람들이 신앙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에요.”
―예전에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돼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만, 사제단은 왜 북한정권의 과오에 대해 침묵합니까.
“남측과 북측 중에서 어디가 더 인권국가일까요. 물으나 마나 한 소리예요. 반세기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손가락질만 해 왔어요. 이것은 사랑의 길이 아닙니다. 방편적으로 허물을 지적하는 거보다는, 알면서도 ‘도와줄 게 없는가’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누구나 아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죠. 안 그래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까지 나가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의 문제는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북한의 틀린 점을 얘기하기 전에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싶은 겁니다.”
“김현희씨가 하필 왜 지금 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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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1월 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김현희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 신부 115인 선언’이 열렸다. |
“햇볕정책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정당화시킨 거죠. 이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포용정책이 아닙니다. 핵무기는 北美(북미)간의 모순 때문에 생긴 겁니다. 아프리카만도 못한 북한을 왜 그렇게 미국이 못살게 굽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은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했습니다.
“KAL기 폭파 외에도, 세상에는 감춰진 진실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 사제단은 어떤 정권이든 권력기관에 대해 신뢰를 가져보지 못했어요. 당시 KAL기 폭파의 문제는 국민적 의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단만의 의혹이 아니었어요. 권력기관과 연관된 의혹일수록 어떤 단체도 시비를 걸기가 참 어려워요.
그 문제는 근본적으로 조사될 수 없어요. 안기부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에 원래 자료에 접근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자료를 폐기하고….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제단은 세상의 심판자가 아니라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뿐입니다.”
―KAL기 사건의 경우, 김현희씨를 비롯해 관련 당사자들의 주장이 들어맞고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기관도 조사를 통해 북한에 의한 테러사건이라는 게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정권에 봉사한 정보·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이 바탕이 돼 있는 거죠. 진실이라는 게 저절로 드러난 적이 없어요. KAL기 사건도 삼성 비자금 사건과 같아요. 엄청난 비자금을 받았는데 당사자들은 다 무죄잖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만한 진실을 밝힐 수 사회적 역량이 안 됐어요. 우리 사회에 양심이 어디 있어요.
사제들은 ‘이거는 상당한 의혹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이런 이야기가 유족들한테서 나왔고요. 자라 보고 놀란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게 자라든지 솥뚜껑인지 모르겠지만, 유가족들을 이해시킬 만큼 진상조사를 해야지요. 흡족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를 발표했을 때 국민들이 얼마나 승복했느냐를 생각해 보세요. 김현희씨가 하필 왜 지금 나옵니까? 그것도 음모가 있는 거야. 이승복 이야기하고 같아요. 그게 진실인지 누가 알아요.”
“현장은 우리의 聖所입니다”
―법원조차도 이미 결론을 냈지 않았습니까.
“KAL기 사건은 거짓이라는 인상이 너무 많은 사건 중의 하나라서…. 세상의 진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한테 왜 결과를 못 믿느냐고 하지 말고 유족들이 이해할 만한 결과를 내야 할 거 아닙니까. 사제들은 영적으로 숙고한 후 현실 문제에 발언을 합니다.”
―사제단의 발언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제들은 양심에 따라 얘기합니다. 양심이 틀렸다고 하면 할 말이 없어요. 이명박도 양심에 따라서 대운하를 파는 거고.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살아온 삶의 무게를 비교해 보라는 거죠. 사제단이 창립부터 오늘까지 역사에서 강자편에 선 적은 없어요.”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정권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냈더군요.
“잘한 거는 잘했다고 해야지. 사제단은 그때도 늘 불편하게 살았어요.”
―사제단은 미군 철수 등 反美(반미)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명서를 보면 증오나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미군 문제가 사실 특별하죠. 우리 사회에서 미군 문제는 금기였어요. 미군 문제를 거론하면 누구나 다 과격한 사람이 됩니다. 미군 문제는 ‘삶의 현장’의 문제예요. 동네사람들이 미군 때문에 고생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또 깊이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분단 문제와도 연관돼 있고…. 표현이 처절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대운하 관련 성명서에는 ‘신앙의 이름으로 단죄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과격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죠. 저희도 순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요. 근데 우리가 쓰는 성명서는 서재에서 쓰는 게 아니라 상당부분 현장에서 쓰는 글들이에요. 지나친 표현이 있을 수 있어요. 현장에서 보면 그렇게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일거예요. 우리나라가 토건사회가 돼 버렸는데, 사람들 망치고 경제 망치는 거예요. 같은 예산이라도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한국사회가 많이 변했는데 운동방식은 과거 군사 정권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변할 리가 없어요. 사제단의 운동방식은 기도하는 거예요. 지금도 기도하는 것뿐이에요. 거리에 나갔다는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현장은 우리의 聖所(성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처럼요. 사제들이 어떻게 성당 안에만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제단의 활동이 사회의 갈등을 줄이기보다는 확산하는 것 같습니다.
“이쪽도 아우르고 저쪽도 끌어안는 그런 이야기는 사실 너무 편한 거예요. ‘철거민도 잘못했고 경찰도 잘못했다’고 하는 양비론을 하기에는…. 현장에 서면 다릅니다.”
―사제단이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얘기는 뭡니까.
“사회에 종교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성직자들은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고민을 심각히 합니다. 삼성 사건 때 국가기관의 오염상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권력기관 하나라도 살아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수도 있었어요. 일제히 오염됐습니다. 당시에는 ‘언론이라도 살아있다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러다가 최후에 가진 질문은 ‘종교라도 살아있다면’이었습니다.”
사제단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정의구현사제단은 분명 군부독재 체제를 몰아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은 사제단의 일부 사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변화했고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과거 군사정권처럼 총칼로 집권한 정권이 아니다. 타도의 대상이 되기에는 200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이 너무 많은 지지를 해줬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경제규모 세계 11위로 당당히 건국 60주년을 맞이할 때, 북한 김정일 정권은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주민들을 餓死(아사)의 구렁텅이로 몰고 있다. 그런 독재정권에 대해 사제단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며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천주교의 라틴어 공식명칭은 ‘에클레시아 카톨리카 로마나’(Ecclesia Catholica Romana, 로마 가톨릭교회)다.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두루 따르는, 모두를 포함한’의 의미로 쓰였던 고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유래했다. 천주교회(가톨릭)를 ‘보편교회’라고 지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편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고 부활한 이스라엘이나, 교황청이 있는 로마나, 아마존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문명과 격리되어 살아온 원주민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다.
취재과정에서 필자는 과연 정의구현사제단이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정작 촛불집회에 참가조차 못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등불이었듯이, 정의구현사제단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진정한 사제들의 모임이 되길 바란다.⊙
▣ 선언문으로 본 정의구현사제단의 행적
1974년 지학순 주교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정의구현사제단은 1988년 대통령 직선제에 의해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활동 양상이 변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88년 7월 4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우리의 기도와 선언’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1989년 6월 6일에는 임진각과 평양 장충성당에서 ‘통일염원미사’를 봉헌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2000년 8월 2일 ‘불평등한 SOFA 전면개정과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위한 우리의 선언’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매향리 사격장이 폐쇄되고 미군이 물러가는 진정한 민족통일의 그 날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로 결단하고자 한다’며 미군철수를 촉구했다.
사제단은 2001년 2월 6일 ‘나라의 현실을 걱정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제단은 ‘경제위기 극복을 과제로 시작한 금융·기업분야의 구조조정과 남북협력 정책과 화해시대의 개막’ 등을 김대중 정부의 업적으로 규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 만의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시대적 기대와 민주적 방식의 개혁에 대한 한계성의 절감과 박탈감에서 오는 무관심과 허무주의의 만연을 불러와, 가치관의 전도현상과 국민 결속력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사제단은 선언문 중간에 ‘이런 국가적 위기의 문제가 야기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중심적 주체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진행됨으로써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성향의 정당과 언론과 집단 이기주의의 완강한 저지를 뚫고 나갈 힘을 갖추지 못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힘은 국민 대다수의 열망에서 오는 것이지 부당하게 선동된 여론과 정당의 다수 의석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제단은 선언문 말미에 ‘국가보안법 철폐·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부패방지법 제정’을 주장했다. 사제단의 시국선언문이 나온 뒤, 2001년 5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2001년 7월 24일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북한 인권에는 침묵하고 유령 종교단체에 對北지원
사제단이 2002년 2월 18일 발표한 ‘한(조선)반도 평화선언’라는 성명서는 이례적으로 ‘한반도’라는 단어 사이에 괄호로 ‘조선’이라는 용어를 병기 표기했다. 성명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한(조선)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방안이다. 자신들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간섭하려고 하는 제국주의 추종자들(부시 정권)의 부당한 간섭과 방해책동을 막아 한(조선)반도가 자주 주권국가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중략)
남북 사이의 이질성을 확대 재생산시켜 갈등을 부추기는 조선일보의 논조를 비판하고 그 논조를 따르는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예외 없이 비판한다. 언론이 북의 고려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제(남북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대중적 논의를 통해 한(조선)반도에 필요한 방안을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사제단은 2002년 6월 13일에는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효순·미선양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사제단은 10월 21일 ‘SOFA 개정 촉구 및 효순이, 미선이 추모미사’를 열었고, 11월 4일에는 ‘한반도 평화실현·불평등한 소파 개정·미군장갑차 희생 여중생 사건 해결 촉구 시국기도회’를 개최했다. 12월 2일에는 ‘살인미군 회개 촉구를 위한 생명평화단식기도회’를 열였다. 2002년 大選(대선)이 무르익던 때였다.
2003년 11월 3일 ‘김현희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천주교 신부 115인 선언’이 발표됐다. 북한의 사주를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한 김현희가 “안기부에 의해 조작된 가짜”라는 주장이었다.
사제단은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결성을 위한 전국 사회단체 대표자 회의(3월17일)’ ‘탄핵무효선언, 국회의원 193명 참회촉구 종교인 기자회견(3월22일)’ 등을 열며 탄핵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삼성 비자금 폭로 주도
정의구현사제단은 2007년 10월 29일 金勇澈(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삼성의 비자금 관련 비리를 폭로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정의구현사제단과 한 시사주간지와 함께 삼성그룹 비자금을 폭로했다. 사제단은 10월 29일에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가진 첫 번째 기자회견을 비롯해 네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그룹과 검찰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삼성과 검찰·언론·국세청·재경부·금감원의 회개를 거듭 호소하며 기도합니다’ 등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 변호사는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희생을 감수하고 사회악을 고발하는 정의의 사도’로 추앙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