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와 기생 : 월간조선

대체로 인간들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한쪽이 점잖고 품위 있는 행동을 취하면, 다른 쪽도 점잖고 품위 있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한쪽이 거칠고 사납게 나오면, 다른 쪽도 거칠고 사납게 나온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얘기가 성립될 수 있다.

우리네 사회에서는 스스로는 올바르게 처신하는데, 상대방이 잘못해서 자기까지 욕을 먹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상대방이 잘못해서 자기가 욕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못했기에 욕을 얻어먹는다. 자기의 잘못은 숨기고, 상대방의 잘못은 들춰내는 것이 인간의 이기적인 심성이다. 말하자면 너의 잘못이 나의 기쁨으로 이어질 때, 너의 잘못은 부각되고 부풀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선비와 기생 관계는 복잡미묘하고 이상야릇하다. 선비와 기생의 관계는 상호의존 관계지만, 서로 간의 의존도는 판이하다. 이를테면 선비의 기생에 대한 의존도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이지만, 기생의 선비에 대한 의존도는 총체적이고 전면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비는 기생을 여흥이나 놀이의 수단으로 보고 있지만, 기생은 선비를 삶의 기반 내지 생활의 발판으로 본다.

절실하게 말하자면 선비는 기생이 없으면 쓸쓸하고 재미없을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활동하고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다. 그러나 기생은 선비가 없으면 존재 의미를 잃게 되고 생활 터전을 상실한다. 이러하기에 선비와 기생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의존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선비들의 기생 비판

신윤복의 <美人圖(미인도)>.

기생에 대한 선비의 의존도보다는 선비에 대한 기생의 의존도가 훨씬 높기에, 양자는 차등관계에 있다. 기생에 비하면 선비는 대체로 우월적 입장에 서 있는 반면에, 기생은 선비와 견주면 언제나 열등한 입장에 서 있다. 이렇듯 입장의 우열관계는 상대에 대한 비평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기생에 대한 선비의 비판은 자유로운 반면, 선비에 대한 기생의 비평은 제한적이고 절제될 수밖에 없다. 선비는 기생을 가볍게 보고 마구잡이로 몰아붙일수 있지만, 기생은 선비를 함부로 대하거나 막말을 할 수 없다.

우선 선비들의 기생에 대한 비판의 소리부터 들어보기로 하자. 鄭炳說(정병설)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지은 <나는 기생이다>라는 책을 보면, 선비의 기생에 대한 비판은 막힘이 없고 무절제하다.

“大極(대극)이 無極(무극)으로 세상이 창조될 때 子時(자시)에 하늘을 열고 丑時(축시)에 땅이 났도다. 사람이 태어난 후 남녀가 혼인함은 음양의 섞임이요 하늘의 이치거늘, 乍陰乍陽(사음사양) 너희 무리 창기라 이름하여 호객을 미혹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니, 그 죄를 생각하면 千死萬死(천사만사)가 가볍도다. 金玉(금옥) 아닌 애물이요, 쓰지 못할 꽃이로다. 영웅이 몸 망치고 장부가 눈물 짜니, 어이하여 너의 수단 그다지 공교한가.”

이에 반해 기생들의 선비에 대한 비판은 우회적이고 절제심을 잃지 않고 있다. 위의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글의 원제목은 ‘서울 호걸이 양한당에 모여 수삼명기와 더불어 기생방의 맛을 논다’에 나오는 얘기인데, 한 남자가 기생을 두고 남자는 물론 나라까지 망치는 요물이라고 비판하자, 기생 옥소가 역대 기생들 가운데 지조와 재주가 있는 이와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한 이들을 소개하며 ‘기생 요물설’과 ‘기생 망국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佳人(가인), 즉 예쁜 기생이 없다고 불평하지 말라. 그렇다면 선비들 중에는 才子(재자), 즉 멋쟁이는 어디 있느냐? 당신네들만이 우리네(기생)를 비판하지 말라.우리도 너희들을 비판할 수 있다. 남성에게 갖은 모멸과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은 기생이 스스로 받은 것을 선비들에게 되돌려 줄 차례다.”

기생의 존재적 모순

선비들은 기생을 위험한 존재로, 인생을 망치는 요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 존재나 역할을 온통 부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체로 선비들은 나랏일에 골몰하다가 골치 아픈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逃避機制(도피기제)로 기생을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 같다. 특히 골치 아픈 일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번민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소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생과의 만남을 시도했던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조선 후기 민중의 아픔을 가장 많이 이해한 학자로 알려진 燕岩(연암) 朴趾源(박지원)조차 어린 기생과의 잠자리를 별로 문제 삼지 않았을 정도로 기생과의 접촉은 당시의 관행이었다. 박지원은 안현 현감을 지낼 때 벗인 朴齊家(박제가)가 자기 고을에 들르자, 열세 살 난 어린 기생을 데리고 자게 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이 선비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해도, 어린 기생(명선)으로서는 스스로를 짐승으로 여기게 만들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기생 명선은 극도의 모욕과 수치 속에서도 그것을 하나의 기회로 보고 있었다. 잠자리를 스스로의 일생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의 만남으로 여겼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생의 존재적 모순과 그녀가 운명에 순응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만한 일이라면 한 남자의 일생을 그르친 것도 아니고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간 일도 아니니까, 흠잡을 일도 아니고 호된 비판을 받아야 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선비들의 잘못으로 기생의 일생을 망친 일은 수없이 많고, 뼈를 깎는 아픔일지라도 다반사로 넘겨 버리지만, 기생 때문에 선비가 손해 본 일은 요란스럽게 떠들어대고 입 놀림에 오르내린다.

실상 따지고 보면 기생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남자(선비) 스스로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인데도, 그 책임을 기생에게 돌리려는 현상마저 없지 않다. 스스로의 오판으로 일생을 망쳤는데, 마치 기생 때문에 일생을 그르친 것으로 뒤집어씌우는 사례 한 가지를 들어보자.

꽃봉오리 같은 그녀의 유방을 본 후에…

언제 적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조의 宗親(종친)으로 烏成君(오성군)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酒色(주색)으로 일생을 보낸 무절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향락 생활로 젊은 시절을 보낸 오성군은 80세 고령의 늙은이가 되어서 지난날을 조용히 돌이켜 볼 때가 있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물어보기를 “젊은 시절 오직 술과 여자로 일관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자의 유혹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가 아니면 천성이 여자를 좋아한 때문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그 영감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본시 어릴 적부터 20세가 될 때까지 계집아이처럼 얌전하기만 했지. 혹시 누가 쳐다봐도 나는 공연히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었다네. 어느 날 아는 친구가 나를 속이고 유인하는 바람에 그 친구를 따라가 보았더니 그 집은 기생이 있는 술집이었네. 시끄러운 노랫소리, 오가는 술잔을 보고 심기가 불편해서 나는 즉각 되돌아 나오려고 했으나, 기생들이 애교를 떨며 만류하는 바람에 그만 되돌아 나올 용기를 잃고 말았지.

더욱이 어여쁜 기생 하나가 나의 눈을 응시하면서 입고 있던 저고리를 벗지 않겠나. 우윳빛 같은 속살과 꽃봉오리 같은 그 여인의 유방을 본 나는 그만 정신이 몽롱해져서 결국 그 여인과 잠자리를 함께하고 말았다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오로지 주색에 빠져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 친구 때문에 보게 된 그 여인의 젖가슴 때문일세.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나를 본보기로 삼아 청소년들을 가르쳐서 유흥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는 일일세.”

참으로 한심스러운 변명이고, 자기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비열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름지기 올곧은 선비라면 자기가 잘못 살아온 데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할 터인데, 스스로의 잘못된 삶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그것도 어린 기생에게 돌리려는 작태는 비굴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편, 기생의 교활하고 간사한 속성을 밝혀주는 일화들도 수없이 많다. 기생은 그 속성으로 보아 교활하고 간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나의 중평이다. 기생을 교활하고 간사하게 인식하고 있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직업상 기생은 선비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할 처지에 있으니, 교활하고 간사하게 처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聽琴賞蓮(청금상련)>.

여우보다 더 간사한 기생 이야기

武官(무관) 출신인 鄭好信(정호신)이란 사람이 평양에 있는 어느 기생을 좋아했는데, 평안도 병마절도사인 김 아무개도 그 기생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기생은 정호신에게 정을 주면서 그를 잊지를 못했다. 정호신이 공무로 가끔 병마절도사의 군영으로 들르면, 그 기생은 틈을 내어 몰래 빠져 나와 정겹게 어울리곤 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병마절도사가 그 기생에게 다그치자, 기생은 칼로 자기 손가락을 찍으며, 그런 사실이 없음을 맹세하니, 보는 이들이 민망하게 여기면서도 어떻게 저토록 지독할까 탄식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소문을 전해들은 정호신은 혀를 차며 말하기를 “기생은 요물이다. 더 이상 내가 숨길 수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병마절도사를 찾아 뵙기를 청하여 그간의 일들을 샅샅이 아뢰면서 그 기생을 중죄로 다스리게 했다. 정호신은 정직한 사람으로 칭찬 받았지만, 기생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앞서도 밝혔듯이 기생들의 교활하고 간사한 처신술과 연관되는 일화들은 수없이 많다. 실상 기생들은 교활하고 간사한 처신술 때문에, 세인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지탄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柳夢寅(유몽인)은 <於于野談(어우야담)>에서 정호신의 일화와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어우야담>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南袞(남곤)이란 사람이 관찰사가 된 후 마음에 드는 기생이 있었다고 한다.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와서도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하므로 그 기생이 살고 있는 고을의 수령이 그 기생의 행장을 꾸려서 남곤에게로 보내자, 남곤은 기쁘게 맞이하며 그녀를 첩으로 삼았다. 어느 날 남곤이 취중에 하인 한 명을 데리고 첩이 살고 있는 집의 뒷문으로 느닷없이 들어갔더니, 잘생긴 남자 한 사람이 다른 문으로 빠져나가기에 남곤이 자리에 앉지도 않고 첩에게 ‘저 문으로 방금 나간 손님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런데 기생 출신의 남곤의 첩은 거짓으로 놀라는 체하면서, 눈물을 떨구며 대답하기를 ‘대감께서 저를 버려도 좋습니다만, 다른 문으로 나간 손님이라니 어인 말씀입니까’라고 하면서, 단도를 빼어서 자기 손가락 하나를 벴다고 한다. 남곤이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娼妓(창기)가 두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모름지기 나무랄 일이 못 된다. 하지만 그런 흔적을 은폐하려고 사람으로서는 차마 하기 어려운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옳은가’라고 했다. 결국 그 기생은 다음날 그 집에서 나와 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참으로 간악하고 요사스러운 여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생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러한 것은 아닐 터인데, 몇몇 간악하고 요사스러운 기생들 때문에 모든 기생이 욕을 얻어먹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만든다.

지금부터는 세인들에게 호평을 받은 기생들과 얽힌 얘기들을 적어 보기로 하자. 우리네 역사 속에서 ‘기생’이라고 불렸던 여인들이 몇 명이나 될지 헤아려 보기 어려울 듯싶다. 하고많은 기생들 중에는 세인들로부터 호평을 듣고, 칭찬 받을 만한 여인들도 많다. 원래 인간들은 兩面性(양면성)을 지니는 것이므로 미움을 산 기생들이 있는가 하면 귀여움을 받은 기생들도 있게 마련이다.

“외국의 미천한 역관이 어찌 대국 재상 따님의 몸을…”

중국 기생과의 인연으로 ‘宗系辨誣(종계변무·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로 잘못 기록된 중국측 기록을 바로잡기 위한 우리 조정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했던 사건)를 마무리 지은 홍순언과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중국 기생과 얽힌 사연이니, 우리 사정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음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러나 중국 기생이라고 해서 우리네 기생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 이 글에서 언급해도 별 잘못은 없을 듯싶어 소개해 보기로 한다.

홍순언은 조선 선조 때 사람으로 본관은 南陽(남양)이고 직업은 譯官(역관)이었다. 그는 중인으로 양반도 아니고 선비도 아니었다. 언젠가 그는 사신을 수행해서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갔을 때, 돈을 두둑이 갖고 妓館(기관·기생을 두고 영업하는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더니, 절세의 미인이 소복을 하고 앉았는데, 눈물을 머금은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히 서려 있지 않은가.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다고 느낀 홍순언은 부드러운 말씨로 그 기생에게 “어떤 사연이 있어서 기관에 나왔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의 아버지는 중국 조정의 兵部尙書(병부상서·조선의 병조판서에 해당)였는데 나라에 죄를 짓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겠는데 장례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서 이 몸을 이곳에 팔았습니다. 이 몸을 한번 허락한다면 저는 평생 절개를 지키겠습니다.”

기생의 말을 듣자마자, 홍순언은 즉각 뜰 아래로 내려가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어찌 외국의 한낱 미천한 역관이 대국의 재상 따님의 몸을 더럽히겠습니까”라고 한 후, 갖고 있던 돈을 건네주고 그냥 돌아 나왔다. 그는 이 얘기를 동료들에게 했다가 조롱과 비웃음만 샀다. 하지만 홍순언은 한 번도 후회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홍순언은 역시 역관의 신분으로 사신을 따라 중국 베이징을 향해 떠났는데, 중국 땅에 들어서자마자 중국의 禮部(예부) 측이 “일행 중에 홍순언이 있느냐”고 계속 물어왔다.

사신 일행이 베이징에 도착하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옛날에는 기생 신분이었던 그 여인이 지금은 중국 조정의 禮部尙書(예부상서)인 石星(석성)의 후실이 돼 있었다. 홍순언은 의외의 일이었지만, 내심으로 매우 기뻐했다. 왜냐하면 이번 기회에 이른바 ‘宗系辨誣(종계변무)’를 매듭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바로 그 문제를 관장하고 있는 부서가 예부이고, 예부상서가 다름 아닌 石星(그 기생의 주인)이었던 만큼 기대를 가져볼 법도 했다.

신윤복의 <月夜密會(월야밀회)>.

信義를 버리지 말아야

이러한 기대는 적중했다. 당시 예부상서 석성은 끔찍이 사랑하는 후실의 은인에게 은혜를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바로 홍순언이 베푼 선행 때문에 선한 보답이 이루어짐으로써 수백 년 내려오던 조선 조정의 두통거리가 속 시원히 해결된 것이었다.

한편 석성의 후실이 된 그 여인은 홍순언을 불러서 옛 은혜에 대해 새삼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의 뜻을 표했고, 비단 한 자락에 ‘大報緞(대보단)’이라는 글자를 손수 수놓아서 선물했다고 한다.

중국으로 갔던 사신들과 함께 홍순언이 귀국하자, 당시 선조 임금은 매우 기뻐하면서 이 사실을 종묘에 고하는 한편 홍순언을 唐陵君(당릉군)에 봉했다. 홍순언이 기생에게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에 안겨진 영광이었고, 중인의 신분이었던 사람이 당릉군에 봉해져 당당한 양반으로 상승했으며, 선비로 행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생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趙雲逵(조운규)의 일화 등 선행을 베푼 기생들도 수없이 많다. 여기서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한 老妓(노기)와 얽힌 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우야담>에 ‘三空一余(삼공일여)’라는 말이 나온다. 노기가 되면 세 가지는 사라지고 한 가지만 남는다는 뜻이다. 사라지는 세 가지는 재산과 몸과 명성이고, 남아있는 한 가지는 甘言(감언)이라 했다. 노기에게는 ‘달콤한 말 재주’ 이외에는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한 노기의 삶을 통해 얻어낸 하나의 체험담인데, 모름지기 기생은 감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기생이 세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얻어먹는 것은 숱한 감언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기생이라 하더라도 감언을 늘어놓지 않으면 세인들에게 욕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기는 후배 기생들에게 결단코 자기 전철을 밟지 말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기는 기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德目(덕목)으로 信義(신의)를 제시했다. 기생에게 여염집 규수와 같은 절개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신의만은 저버리지 말아야 하고, 신의만 지킨다면 자연히 절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세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생의 절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동패낙송>에 실려 있는 노기와 관계되는 일화 한 가지만 더 소개해 보자.

“퇴기는 말하기를 ‘저는 본래 천한 몸이라, 선달님을 위해 혼자 살며 수절하기는 어렵습니다. 남의 집에 일시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선달님이 우리 고을의 원님으로 오시면 당장 달려가서 뵙겠습니다’라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 후 퇴기는 홀아비 군관에게 가서 살림을 살아주었다. 그러나 전에 사귀던 우하형이 퇴기가 살고 있는 고을의 원님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간 함께 살았던 군관과 작별하고, 당장 우하형에게로 달려갔다. 군관은 퇴기의 알뜰한 살림살이에 감복해 함께 살기를 애원했지만, 퇴기의 뜻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하형에게로 간 퇴기는 원님의 집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그를 조종해서 더 높은 벼슬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하형의 자손들은 그 퇴기의 은공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퇴기는 나이를 먹으면서 신중하고도 신의 있게 살았던 것 같다. 신중했던 점은 무조건 절개를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다른 데 가서 의탁하고 있다가 당신이 우리 고을의 원님으로 오시면 달려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이기도 하고, 또 자기를 다시 만나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고을 원님으로 오라는 충고의 뜻도 깃들어 있었다. 참으로 현명하고 신의 있는 여인이었다.

未忘의 사랑

앞서 언급한 옥소라는 기생은 손님들을 다섯 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첫째, 불쌍하여 동정심이 드는 남자는 ‘愛夫(애부)’이고, 둘째, 돈 많고 풍채 좋아 인기 있는 남자는 ‘情夫(정부)’ 이며, 셋째,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잘 만나지 못하는 남자는 ‘未忘(미망)’ 이고, 넷째, 여자를 지성으로 섬기는 남자는 ‘和姦(화간)’이며, 다섯째, 기생에게 미혹된 바보 같은 남자는 ‘痴愛(치애)’라는 것이다.

옥소의 남성 분류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방향에 따라 셋으로 나누고 있다. 우선 애부와 정부는 기생이 사랑하는 남자이고, 미망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며, 그리고 화간과 치애는 기생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가리키고 있다. 애부는 동정심으로 사랑하고, 정부는 돈이나 풍채 등 세속적인 인기 때문에 사랑하며, 화간은 순정으로 사랑하고, 치애는 기생에게 미혹되어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사랑이다.

1936년에 발간된 잡지 <三千里(삼천리)> 제8권 제4호에 여고 출신 인텔리 기생·女優(여우)·카페 여급 등 남성들을 많이 상대하는 여성들을 모아 ‘남성을 엇더케 보나요?’ ‘돈 잘 쓰는 손님의 종류는?’ ‘엇든 사내가 기질에 맞는가?’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좌담회 기사를 실었다. 여기서 나온 말들이 옥소의 얘기와 비슷했다고 한다.

선비와 기생 사이의 사랑의 유형도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진정한 사랑은 애부와 정부의 사랑도 아니고 화간과 치애의 사랑도 아니다. 그러면 선비와 기생간의 사랑도 서로가 사랑하는 미망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어느 한편만이 사랑하는 짝사랑일 때나 이해관계로 맺어지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 선비와 기생 간의 사랑도 일방적이거나 조건이 붙어 있을 때는 진정한 사랑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선비와 기생 사이에 이루어진 진정한 사랑은 강원도 감사로 있던 朴信(박신·1362~1444)과 강릉 기생 紅粧(홍장) 사이에 이루어진 사랑쯤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 사이의 사랑은 서로간 똑같이 아끼는 交互的(교호적)인 사랑이었고,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는 사랑이었으니, 순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윤복의 <舟遊淸江(주유청강)>.

선비와 기생의 아름다운 사랑

박신이 강원도 감사로 있을 때, 그는 강릉 기생 홍장을 몹시 사랑했다. 그런데 박 감사가 도내 여러 고을을 순시하고 강릉으로 다시 오자, 강릉 부윤 조운홀은 거짓으로 “홍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박신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파하면서 눈물마저 흘렸다. 당황한 조운홀은 박신 감사를 찾아와 경포대로 뱃놀이하러 가자고 권했다. 그때 조운홀은 홍장을 불러 예쁘게 꾸미고 호화로운 놀잇배도 준비해서 處容(처용)을 닮은 관리 한 사람을 골라서 놀잇배에 홍장을 태우도록 미리 일러두었다.

박신 감사가 조운홀을 따라 경포대로 나가니, 미인을 실은 놀잇배가 호수 위에 둥실 떠 있는데, 그 위에 채색으로 단장한 편액이 하나 걸려 있는데, 그 편액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있었다.

‘태평성대 신라에서 조용하게 늙은 이 몸(新羅聖代老安詳)/ 천년 세월 흘렀건만 풍류는 그대로일세(千載風流尙未忘)/ 관찰사 경포대 뱃놀이 왔으나(觀察使華遊鏡浦)/ 놀잇배에 홍장을 어이 차마 태우리(蘭舟不忍載紅粧)’.

관찰사 일행이 천천히 포구로 들어가 바닷가를 거닐면서 조운홀이 박신 감사에게 “이곳에 전해오는 신선 이야기가 있지요. 지금도 달 밝은 저녁이면 신선들이 나와 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박신은 “산천과 풍경이 이렇듯 아름다운데, 어찌 신선이 없겠는가”라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 홍장이 있었다. 이렇게 되자 좌석에는 웃음꽃이 피어서 이날 놀이는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일화를 알고 나서 재미있었다기보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강도를 확인해보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홍장이 죽었다고 했을 때 박신이 받을 아픔을 고려하지 않고 며칠이나 속였다는 사실은 장난치고는 너무 몰인정하지 않았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춘향전>에서 이몽룡 어사가 옥에 갇힌 춘향이를 만나서 신분을 속인 것은 스스로의 직분 때문이었으니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서로 간의 애정을 시험해보기 위해 상대방이 죽었다고 속인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다른 한편, 세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 육체적인 관계를 초월한 깨끗한 사랑이었다고 일컬을 만한 일화이기에 여기에 덧붙여 소개한다. 이 일화의 주인공들은 江界府使(강계부사)였던 李敬懋(이경무·1728~1799)와 그 고을의 기생 巫雲(무운)이다. 이들은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서로 간에 정을 나누며 살았다. 육체적인 관계를 끊고서도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했던 관계였던 것이다.

이경무의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士直(사직)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금위대장·훈련대장을 거쳐 형조판서의 직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가 강계부사로 있을 때, 그 고을에 있던 기생 무운은 용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재능까지 곁들여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서울에 살고 있는 成進士(성진사)라는 사람이 우연히 강계에 왔는데, 무운이 그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나서는 그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성진사와 헤어지고 난 다음, 무운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몸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서는 쑥으로 뜸을 떠서 종기가 난 것처럼 만들어 놓고 몹쓸 병이 걸렸다고 둘러대며 자기 몸을 지켜왔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이경무가 그 고을의 부사로 와서 무운을 불러다 보고서는 가까이 하려고 했더니, 무운이 종기가 난 곳을 풀어 보이면서 “첩에게 이런 종기가 있어서 감히 사또를 가까이서 모실 수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이경무는 “그렇다면 너는 내 가까이서 잔심부름이나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날부터 무운은 낮이면 잔심부름을 하다가 밤이면 자기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이렇게 하기를 4~5개월이 지나자, 어느 날 밤 무운은 자기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이경무에게 아뢰기를 “오늘 밤에는 사또를 잠자리에서 모실 수 있겠나이다”고 했다. 그러니 이경무는 “네 몸에 몹쓸 병이 있다고 했는데, 어찌 그런 말을 꺼내는가”라고 되물었다. 무운의 회답은 다음과 같았다.

“첩이 성진사를 위해 수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일부러 쑥으로 뜸을 떠서 종기가 난 것처럼 꾸며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또를 모시고 몇 달 동안 사또의 動靜(동정)을 살펴보았는데, 참으로 훌륭한 대장부셨습니다. 첩이 아무리 식견이 없는 비천한 기생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사또를 흠모하며 존경하는 마음이 없겠나이까?”

신윤복의 <雙劍對舞(쌍검대무)>.

사랑하기 때문에 몸을 허락하지 않아

그러자 이경무는 빙긋이 웃으면서 “네 마음이 그러하다면 오늘부터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 후에도 이경무는 전처럼 대해주며 유달리 가까이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임기가 차서 이경무는 서울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무운이 따라 나서기를 원하니, 이경무는 말하기를 “나에게는 본처와 첩까지 있으니, 너를 데리고 가는 것은 편안치 못하겠구나”라고 하니, 무운은 굳은 표정으로 “만약 그러시다면 나는 수절하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경무는 다시 비웃는 투로 “네가 말하는 수절은 성진사를 위함이냐,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이냐”고 물었다. 무운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더니 즉시 短刀(단도)를 가져다가 왼쪽 손가락을 내리치는 것이었다. 이경무가 깜짝 놀라며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그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운은 이경무를 그냥 돌려보내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이경무가 훈련대장이 되어 성곽과 보루를 보수하거나 정비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어느 날 무운이 찾아와서 뵙기를 청했다. 이경무가 기뻐하며 만나보고 그녀와 거처를 함께 하면서 밤에 그녀를 가까이 하려고 했더니, 있는 힘을 다해 완강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경무가 괴이쩍게 여겨 그 까닭을 물었더니 무운은 대답하기를 “사또를 위해서 수절하기 때문입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경무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되묻기를 “나를 위해 수절한다면, 어찌 나마저 거절한단 말인가”라고 했더니, 무운의 답변은 “그 뜻은 이미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감히 사또의 명령을 따를 수 없나이다”라는 것이었다. 1년 동안 거처를 함께하면서도 서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 뒤 이경무의 처가 죽자, 무운이 상가로 달려와 장례를 치른 뒤에 되돌아갔으며, 이경무가 죽었을 때도 역시 그렇게 했다.

이러한 방식의 애정관계도 있을 수 있는 걸까.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는 일은 실로 드물고 희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몸을 허락하는 것이 기생들의 일반적인 현상인데, 사랑하기 때문에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칭찬 받아야 할 일일 듯싶어 소개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