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특집] 미국發 금융위기의 원인분석<br>‘그린스펀 독트린<超저금리 정책>’이 뇌관 역할 : 월간조선

온 나라가 미국發(발) 금융위기의 파도에 힘겨워하고 있다. 최대의 피해자는 不況(불황)의 늪에 빠진 대다수 국민들이지만 李明博(이명박) 정부 역시 큰 피해자다. 左派(좌파) 정책 10년의 그늘에서 벗어나 성장의 고삐를 쥐려던 이명박 정부는 시작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무능한 정부’로 매도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좌파 지식인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맞아 이명박 정부와 新(신)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에 나서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30년간 세계를 풍미해 왔던 ‘신자유주의의 終焉(종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지지해 왔던 많은 지식인들과 언론도 이번 사태를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한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월스트리트는 신자유주의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바로 그 월스트리트가 이번 사태의 진원지 아닌가. 월스트리트의 주역인 금융사들이 정부 구제금융을 요청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항복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자초지종을 잘 살펴보면 그 원인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임을 알 수 있다. 위기의 원인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정부개입 주의다.

1990년대의 소위 ‘신경제’는 새 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저물어 가고 있다.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은 늘어날 조짐을 보였다. 그린스펀이 이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그 대책으로 金利(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증가를 택했다.

그린스펀, 新경제 몰락 막으려 超저금리 정책 시행

FRB는 금리 목표를 2001년 1월 6.5%에서 2003년 6월 1%까지 낮췄다. 역사적인 超(초)저금리였다. 시중은행들이 FRB로부터 그렇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결과 시중에는 流動性(유동성)이 넘쳐났다. 2000년 12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유동성은 30%나 증가했다.

은행은 돈으로 넘쳐났고 어떻게든 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물가 상승분을 고려했을 때 FRB의 기준 금리 1%는 마이너스의 실질금리를 뜻했다. 다시 말해 FRB로부터 돈을 빌려다 再(재)대출하지 않는 은행은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는 셈이었다.

은행들은 저마다 대출 금리를 낮췄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모기지(mortgage: 주택저당대출) 금리가 7~8%에서 4~6%로 낮아졌다. 늘어난 유동성을 소화하기 위해 저마다 대출처를 찾아 나섰다. 대출심사 기준을 완화해서 과거 같으면 대출을 받지 못할 사람에게도 대출을 내주기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평소 같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주택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주택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집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집값 거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라는 두 모기지 전담 금융기관의 운영방식은 더욱 위험한 주택대출을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 이 두 기관은 미국의 몇 안 되는 公共(공공)과 민간의 합작 기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두 기업이 최악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왔다. 이익이 날 때는 본인들이 취하고, 손실이 나면 정부가 補塡(보전)해 주는 것이다. 그런 구조에서 위험한 대출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低(저)소득층의 주택보유율을 높이겠다는 정책 목표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로의 대출을 확대하게 했다.

이런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위험 자산의 유동화였다. 흔히 파생금융상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금융기관들이 헤지펀드들에게 위험한 자산, 즉 떼일 가능성이 있는 대출의 떼일 위험을 떠넘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서 운전에 조심을 덜 하듯이 파생금융상품도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돈 떼일 가능성을 덜 무서워하게 만들었다.

거품의 붕괴-서브프라임 사태

이런 요인들이 겹쳐서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주택 대출이 이루어졌다. 그런 대출을 서브프라임 대출이라고 한다. 급기야 소득도, 직업도, 재산도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소위 ‘닌자’ 대출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 결과 미국 소비자들의 주택보유율은 64%에서 69%로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정한 행복이었다.

풍부한 달러 유동성은 미국의 집값을 높였지만 다른 물가도 올리기 시작했다. 對外的(대외적)으로도 달러 가치의 하락을 불러와 油價(유가), 곡물 가격 등 달러로 표시된 모든 상품의 가격을 높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통화당국으로서는 저금리정책을 무한정 유지할 수 없다. FRB도 2005년부터 기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고, 미국의 시중금리도 높아져 갔다.

당연히 변동금리 모기지로 주택 대출을 받은 소비자들의 부담이 늘었고, 특히 상환능력도 없이 단순히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 때문에 대출을 끼고 집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기 시작하면서 집값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집값이 떨어지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내놔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갔다.

2006년 말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붕괴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모기지 증권과 파생상품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에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한다. 주택 가격 하락이 지속되자 급기야 많은 가구들에서 주택 가격이 대출총액 밑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속출했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상환을 포기하고 압류를 선택하는 소비자들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택 가격 하락의 여파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모기지를 제공한 모든 금융기관으로 퍼져 나갔다. 모기지 전담 기업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물론, 그들에게 돈을 댄 수많은 기업들에서 부실채권이 발생했다. 언제 어떤 금융기관에 부도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작은 정부를 국가 운영 원리의 핵심으로 삼는 사조를 말한다. 거기에 ‘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시대를 풍미해온 현대의 자유주의를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분하기 위함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이름은 흄이나 애덤 스미스, 칼 포퍼 같은 사람들의 사상에 붙여진다.

자유주의가 풍미하던 유럽의 지식세계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과 카를 마르크스, 엥겔스 이후 급속도로 사회주의화되어 갔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과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에서 비롯된 세계적 불경기는 세계 지식세계를 사회주의로 완벽하게 물들였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회주의의 격랑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유럽에서는 하이에크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학파이고, 미국에서는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학파다. 이들의 노력과 시대적 운이 작용한 결과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가 등장하고,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나와서 그동안 좌파 정책으로 힘겨워진 경제를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西歐(서구) 좌파의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였던 소련이 붕괴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대정신은 자유주의 쪽으로 옮아간다.

사람들은 대처와 레이건의 개혁을 고전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해서 ‘신자유주의 개혁’이라고 부른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영국과 미국을 넘어 뉴질랜드, 캐나다, 칠레 등으로 퍼져나간다. 1980년대 이후의 세계 질서에서 신자유주의는 대세를 이루어 왔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앞에 ‘신’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자유주의는 모두 자유주의로서 개인적 자유와 개인적 책임, 작은 정부를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대적 상황에 맞게 외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民營化(민영화)와 규제완화, 긴축통화정책 같은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에는 정부의 기능 자체가 작았기 때문에 민영화라는 말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국유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으며, 그 이름을 민영화라 부르게 되었다. 규제완화 역시 그렇다. 좌파정권의 득세 이후 수많은 규제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우파조차도 거미줄 같은 규제들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린스펀의 超저금리 정책이 위기 원인

미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팔기 위해 내놓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주의 정책에서 빼놓기 쉬운 것이 건전한 통화정책이다. 돈을 풀거나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거품 붕괴가 와서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하이에크나 미제스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프리드먼이 이자율 조정정책이 아니라 국민소득 성장률에 기초한 준칙주의 통화정책을 제안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IMF가 구제금융을 줄 때 高(고)금리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은 건전한 자유주의적 통화정책의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 1%의 超(초)저금리와 5%가 넘는 高(고)금리로의 파도타기 식 통화정책은 금융위기를 예비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신자유주의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이번 사태가 시장의 실패인지 아니면 정부의 실패인지를 찾는 것과 같다. 이탈리아의 두 경제학자인 보우리와 가이소의 지적대로 이번 사태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일부 소비자의 무분별한 주택 구입 행태.
2.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의 등장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느슨한 대출 심사.
3. FRB의 초저금리 정책.

이 중에서 앞의 두 가지 원인은 2000년대 이후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늘 있어 왔던 문제였다. 소비자들 중에는 늘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파생금융상품도 어제 오늘 생긴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의 궁극적 원인은 바로 세 번째 것이다. 소위 ‘신경제의 후퇴’라는 불황을 막기 위해 그린스펀은 1%라는 역사적 초저금리 정책으로 全(전)세계에 유동성을 쏟아 부었고, 그것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주택가격 상승을 불러온 것이다. 그러다 금리를 높이자 주택가격은 급락했고, 주택 대출을 받은 소비자들은 부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파생금융상품이 없더라도 큰 차이가 없다. 1과 2는 3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FRB가 비난 받아야

‘그린스펀 독트린’이라는 통화정책은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자산 가격 거품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거품이 꺼졌을 때나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통화당국은 가격 거품을 잡을 수도 없고, 잡아서도 안 되며, 단지 거품이 꺼진 후 희생자들을 구제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그린스펀 독트린이다.

주택 가격이 오를 때는 人爲的(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겠지만, 나중에 값이 떨어져 부도가 나면 구제금융을 주겠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는 말이다. 이런 원칙이 지배하는 한 투자자들은 위험한 투자를 감행하는 것이 이익이다.

은행들이 무책임하게 행동하게 만든 데에는 두 모기지 公(공)기업의 구조도 큰 몫을 했다. 정부와 민간 합작기업인 이 두 기업은 이익이 나면 본인들이 취하고 손실이 나면 정부가 책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손실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됨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비난 받아야 할 것은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FRB의 널뛰기 식 금리정책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통화정책을 불황 탈출의 수단으로 쓰지 말라는 자유주의적 통화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금융위기의 해소수단으로 극단적인 정부 개입을 택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라는 두 모기지 전담 금융기관을 國有化(국유화)시켰고, 다른 민간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7000억 달러라는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은 금리변동으로 인한 주택가격 하락이다. 금융기관을 국유화하고 구제금융을 제공한다 해서 주택 가격 하락세가 멈출 리는 없다. 금리가 다시 낮아지지 않는 한 주택가격은 나름대로의 힘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그대로 놔둔 셈이 되어 사태의 조기 해결을 방해할 수 있다. 일본의 경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1980년대 말 부동산 거품이 붕괴됐을 때 일본은 그 뒤처리를 시장에 맡기는 대신 구제금융을 택했다. 그것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었고, 돈이 제대로 흘러 다니지 못함을 뜻한다. 그 결과는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나타났다. 즉 구제금융은 사태의 신속한 해결을 방해해서 불황을 장기화시킨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의 금융산업은 정부 규제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고,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투자가 잘못되면 정부가 도와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를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돈이 있음에도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하지 않는 상황을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출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신호는 없다.

구제금융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었을 때 미국과 세계의 株價(주가)가 同伴(동반)폭락한 것은 구제금융의 절실함을 증명해주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아니더라도 증시에 7000억 달러가 추가로 유입된다면 주가는 언제든지 오를 것이다.

실패한 금융사는 파산시켰어야

최선의 해결책은 고통스럽지만 투자를 잘못한 금융기관들이 파산하게 놔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투자를 잘못한 경영자와 주주들에게서 그 기업을 인수하게 되는 다른 투자자들에게로 주인만 바뀔 뿐이다. 지금도 이미 노무라를 비롯한 많은 일본 기업들이 인수 의사를 비치고 있지 않은가. 미국에서도 구제금융은 미국 경제를 살리기보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을 구해주는 수단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이명박 정부의 금융선진화 정책을 저지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我田引水(아전인수)라고밖에 할 수 없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FRB의 통화정책 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떠나서라도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아직도 너무 낙후되어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직접적 도화선이 됐던 계기가 한보와 기아에 대한 부실대출임을 기억할 것이다. 담보 없이는 제대로 대출도 할 수 없던 우리 금융의 허약체질은 금융기관들에게 자유도, 책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금융기관의 자율권이 늘어난 결과 예전보다는 많이 금융기관다워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선진국의 금융기관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골드만삭스의 예측에 의하면 2050년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은 8만1400달러로 세계 2위가 된다. 지난 50년간 우리의 국민소득이 83달러에서 2만달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업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40년 후 골드만삭스의 예측이 실현되려면 금융과 같은 서비스업에서도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나와야 한다.

삼성전자 같은 금융기업이 등장하기 위해 정부규제가 필요할까 아니면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경쟁하고 책임지게 하는 것이 필요할까. 답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