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대통령 비서실장의 조언 - 성공한 대통령의 조건 : 월간조선

대통령의 成敗(성패)는 그의 자질과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前者(전자)의 경우 평생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일조일석에 없던 자질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後者(후자)는 대통령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등은 사람을 잘 써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비서실장으로 9년3개월 동안 朴正熙 대통령을 보필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李明博(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人事(인사)에 관해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1969년 내가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朴正熙 대통령은 이미 집권 9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5·16혁명 동지 등 신세를 졌던 이들에 대한 배려도 軍政(군정) 기간을 거치면서 일단락 지은 상태였다. 5년 單任(단임)으로 측근, 大選(대선) 유공자 등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는 새 대통령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국가통치자로서 리더십의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을 때, 朴正熙 대통령은 『改閣時(개각시)에는 국방·내무·법무·무임소 장관 외에는 비서실장이 적임자를 물색해 複數(복수) 추천하도록 하라』고 했다.

나는 적임자를 추천하기 위해 非(비)공식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때 民情(민정)수석비서관과 총무수석비서관은 참석시키지 않았다.

민정수석비서관을 배제한 것은 그가 경찰첩보를 관장하기 때문이었다. 대통령비서실이 대통령의 인사에 경찰첩보를 참고한다고 알려지면, 민정수석실로 學緣(학연)·地緣(지연)을 동원해 경쟁자를 끌어내리거나 자기를 추켜올리는 첩보가 들어갈 것을 우려해서였다.

수석비서관이 장관으로 나갈 경우에는 다른 수석비서관이 「○○○수석은 이번에 장관으로 나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추천했다. 내가 朴正熙 대통령에게 직접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관 후보는 수석비서관들과 논의 후 朴대통령에게 複數 추천

1969년 10월21일 朴正熙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는 金正濂 실장.

나를 비롯한 수석비서관들은 朴대통령의 연두 초도순시 등 대통령이 참석하거나 주재하는 각종 회의나 현장 순시 등을 통해 관계 부처의 장·차관 및 고위 공무원들의 능력과 인품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장관 추천時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해당 분야에 필요한 실력을 가졌는지 ▲정치적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평판이 깨끗한지 등이었다. 병역이행 여부도 중요한 요소였다. 그 밖에 재산관계나 私생활 등은 따지지 않았다.

비서실에서 추천한 장관 후보자는 90% 정도 받아들여졌다. 이는 朴正熙 대통령이 수출진흥확대회의나 월례경제동향보고회의 등을 통해 장관 후보자의 자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관 후보자는 대개 두 명을 추천했는데, 부득이 單數(단수)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과학기술처 장관의 경우 적임자가 보이지 않아 계속해서 崔亨燮(최형섭) 장관을 單數 추천했다. 朴대통령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崔장관은 1971년부터 1978년까지 과기처 장관으로 재직했다.

1975년 崔圭夏(최규하) 내각이 출범을 앞두고 朴正熙 대통령은 후보자 명단을 작성해 보라고 지시하면서, 『특히 의료보장제도 실시, 勞使(노사)문제, 근로자 권익옹호와 처우개선 등 어려운 현안들을 안고 있는 보건사회부 장관 인선에 각별히 신경을 써 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정치·경제·사회적 식견이 높고, 넓고 균형 잡힌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추진력이 강한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석비서관 및 장관 몇 사람과 상의해 본 결과 당시 국회의원이던 申鉉碻(신현확)씨를 單數로 천거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정말 훌륭한 적임자를 추천했다』며 기뻐했다.

차관 이하 인사는 장관이 全權 행사

비서실에서 장관 후보자로 추천했는데 朴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로 金滿堤(김만제)씨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나는 당시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으로 있던 그를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두 차례 추천했다. 첫 번째 추천 때 朴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다른 후보자를 낙점했다. 두 번째 추천 때 朴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실장, KDI 원장 자리는 장관이나 부총리 못지않게 중요한 자리요』

이후 나는 다시 金滿堤씨를 추천하지 않았고, 그는 1971년부터 1979년까지 장기간 KDI 원장으로 재직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비서실에서 장관 후보자를 추천하면, 임명 전에 국무총리와 상의했다. 丁一權(정일권) 국무총리나 崔圭夏 국무총리의 경우는 『좋습니다』라며 동의했다. 유일한 예외는 金鍾泌(김종필) 국무총리였다. 그는 朴대통령에게 『문교부 장관으로 閔寬植(민관식),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尹?榮(윤주영)씨를 쓰고 싶다』고 했고, 朴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朴대통령은 차관 인선時에는 원칙적으로 해당 부처 장관의 의견을 존중했다. 장관이 차관감으로 특정 인물을 의중에 두고 있지 않을 경우에는 대통령이 장관과 상의해 임명했다. 1급(차관보·실장) 이하 인사는 전적으로 장관에게 일임했다.

서기관 승진부터 차관까지의 인사권을 확실하게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관의 令(영)이 섰다. 장관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으면 출세가 보장되므로 공무원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이렇게 장관에게 인사권을 보장하는 대신, 밑에서 잘못이 있으면 함께 책임지도록 했다.

주요 청장의 경우는 朴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징세를 담당하는 국세청장, 밀수를 단속하는 관세청장, 物流(물류)를 관장하는 철도청장과 해운항만청장, 노사분규를 담당하는 노동청장 등이 그러했다.

軍인사의 경우 국방장관이 各軍(각군) 참모총장을 대동하고 보고를 올려 재가받되, 비서실은 일절 배석하지 않았다. 법무부·검찰 인사時에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과 함께 대통령을 방문해 보고한 후 결재를 받았는데, 이때도 비서실은 일절 배석하지 않았다.

道지사나 경찰국장의 인사는 내무부 장관이 사전에 보고했는데, 이때 나는 내무부나 경찰 관계는 잘 모르기 때문에 담당 수석비서관으로 하여금 대신 배석하도록 했다.

외교관 인사의 경우 駐美(주미)·駐日(주일)·駐유엔 대사는 대통령이 지명했다. 기타 주요 국가 대사는 외무부 장관의 의견을 많이 참작해 결정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한번 능력을 인정한 사람은 오랫동안 썼다. 崔亨燮 과학기술처 장관은 7년6개월, 吳源哲(오원철) 경제제2수석비서관은 8년, 金寅煥(김인환) 농촌진흥청장은 11년5개월(1980년6월까지 근무해 총 재직기간은 12년1개월), 孫守益(손수익) 산림청장은 5년8개월 동안 재직했다. 南悳祐(남덕우) 前 총리는 朴대통령 시절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9년3개월 동안 일했다.

수석비서관 인사는 실장에게 일임

朴正熙 대통령은 나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면서 수석비서관 인사를 일임했다. 그 후 나는 수석비서관 인사를 할 때면, 「○○○을 △△수석으로 쓰겠습니다」라고 보고만 드렸다. 수석비서관 후임을 충원할 때에는 행정부內에서 충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수석비서관 인사 때 朴正熙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적이 한 번 있었다. 丁一權 국무총리가 물러나면서 朴대통령에게 『총리비서실장을 했던 洪性澈(홍성철)씨를 대통령비서실에서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따라 洪性澈씨는 정무비서관으로 잠시 근무하다가 곧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승진했다.

내가 朴대통령에게 수석비서관 추천을 부탁한 경우가 있었다. 나는 경제관료 출신이어서 언론계 사정에 어두웠다. 朴대통령께 『공보수석비서관으로 누구를 써야 할지 자신이 없습니다』고 말씀드렸다. 朴대통령은 『그럼 尹胄榮씨를 쓰시오』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尹胄榮씨와는 만나 본 적이 없었다.

尹胄榮씨를 만나 그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그는 비서실에서 일하는 데 동의하면서 『부대변인 자리를 신설, 金聖鎭(김성진·후일 공보수석비서관, 문화공보부 장관 역임) 동양통신 부국장을 데려왔으면 한다』고 했다. 경제부 기자 출신인 金聖鎭 부국장의 능력은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尹胄榮씨의 얘기를 전했더니, 朴대통령은 『부대변인이 왜 필요합니까?』 했다. 나는 『尹胄榮씨가 선거를 앞두고 外信(외신)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朴대통령은 『그래요?』 했다. 그것으로 승낙이 됐다.

金聖鎭씨는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던 柳赫仁(유혁인)씨를 정무비서관으로 추천했다. 후일 金聖鎭씨는 공보수석비서관, 柳赫仁씨는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는데, 나는 공보나 정무 관계 일은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朴대통령이 내게 수석비서관 인사를 일임한 것처럼 나는 각 수석비서관들에게 비서관·행정관 인사를 일임했다.

내가 내건 조건은 세 가지였다.

▲2~3년 뒤에는 원래 직급으로 原(원) 소속부처로 복귀한다 ▲소관부처의 엘리트 공무원을 기용하라 ▲병역을 마쳤어야 한다 등이었다.

2~3년 주기로 순환근무토록 한 것은 비서실 직원들이 비서실 근무 중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비서실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은 원 소속 부처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언행을 조심하고 업무에 충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 비서실 인사時에는 수석비서관이나 그 이하 비서관, 행정관을 막론하고 병역이행 여부를 철저히 따졌는데, 이는 朴正熙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내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 등으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 가운데 33명이 朴正熙~金大中 대통령 시절 장관을 지냈다. 그만큼 나와 함께 일한 비서실 직원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으며, 그들과 함께 일했던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少數정예주의로 비서실 운용

청와대 대통령 서재 앞뜰에서 朴正熙 대통령과 나란히 선 金正濂 실장.

나는 「청와대 비서실이 너무 비대해지고, 자격 없는 사람들이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되면 반드시 말썽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철저히 少數(소수)정예주의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朴대통령 시절 청와대 직원은 기능직까지 합쳐서 227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金泳三 대통령 시절에는 377명, 金大中 대통령 시절에는 405명으로 늘어나더니 盧武鉉 대통령 시절에는 531명에 달했다.

청와대 비서실만 팽창한 것이 아니다. 朴正熙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 비서실 직원은 20명 이내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53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내가 청와대 비서실의 少數정예주의를 추구한 또 다른 이유는 비서실의 역할을 확인과 애로 타개, 調整(조정)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서관들이 각 부처의 얘기를 듣고 전문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했다.

반면에 盧武鉉 정부에 들어와서는 청와대비서실 조직이 너무 비대해졌다. 부서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자기들이 뭔가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현재 청와대에는 경제 분야만 해도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비서관, 경제보좌관 등이 있다.

이들은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각 부처와 정부 산하 기관에 내려 보내 검토를 지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들은 대개 이미 각 부처에서 검토했다가 현실성이 없어 폐기된 것이기 쉽다. 청와대 비서실의 「한건주의」 때문에 일선 부처 공무원들은 사기가 많이 죽었다고 한다.

현재 청와대비서실 직제를 보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직책과 타이틀은 밖에서 볼 때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명실상부한 것이 좋다.

총리실과의 관계에 있어, 나는 수석비서관들에게 청와대에 보고되는 사항, 대통령 지시 사항은 총리비서실장에게 알려 주도록 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비서실을 운영하면서 필요할 때는 조직을 만들었다가 그 필요성이 없어지면 자리를 없애는「日沒主義(일몰주의)」를 적용했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外債(외채)문제가 심각할 때에는 外資(외자)관리수석비서관, 1970년대 초·중반 관광산업진흥을 추진할 때에는 이를 담당하는 경제제3수석비서관을 두었다가 임무를 마친 후에는 직제를 폐지했다.

나는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수석비서관들에게 『비서실은 국정 전반의 파악과 확인, 각 부처의 애로사항 해결 및 부처 간 윤활유 역할에 주력하고, 대통령에 대한 건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강조했다.

나는 『비서실 직원들은 장막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임을 강조하면서 ▲청와대 직함이 적힌 명함을 찍지 말 것 ▲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봉투를 외부로 가지고 나가지 말 것 ▲외부 강연이나 칼럼 기고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같이 일을 못 한다』고 경고했다.

내가 재무부와 상공부 장·차관으로 일하면서 청와대 비서실이 利權(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내가 실장이 되기 전에는 수석비서관 가운데는 장관급도 있었으나, 내가 실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차관급~1급으로만 운용했다. 이는 대통령수석비서관의 경우 그 직책만으로 영향력이 막강한데, 거기에 계급까지 높으면 위계질서상 폐단이 생기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朴正熙 대통령에게도 배려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대통령비서실장이 됐을 때 청와대 비서실에는 5·16혁명 주체, 대구사범 동창, 문경초등학교 교사 시절 朴대통령의 제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경력관리를 위해 청와대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공화당에 얘기해 그들이 공천을 받게 해주었다.

이후 내가 사임할 때까지 朴正熙 대통령이 사단장 시절 헌병부장이던 金詩珍(김시진)씨가 민정수석비서관, 軍시절 당번병이 부속실 직원, 운전병이 전용차 운전기사로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地緣(지연)이나 學緣(학연), 혹은 軍시절의 인연을 가지고 비서실에서 근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행정부 하는 일에 간섭 안 해

일은 행정부에서 해야 한다. 행정부가 일을 척척 밀고 나가야 나라가 잘된다. 盧武鉉 정부의 경우를 보면 각종 회의는 많았지만, 정책을 발표한 후 팔로업(follow up)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주무부서에서 반대하는데 청와대에서 정책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청와대와 행정부 간에 이견이 있을 때에는 담당 수석비서관과 주무장관이 토론을 벌여 결정했다. 두 사람 사이에 의견조정이 안 되면 내게 가져왔다.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관계 장관회의나 黨政협의회의에서 다루어졌다. 이 자리에는 국무총리·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관련 장관, 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 관련 국회 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비서실장과 관련 수석비서관은 이 회의에 배석했지만 발언은 하지 않았다. 이는 청와대 비서실이 행정부가 하는 일에 나서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그런 자리에서 발언한 것은 1977년 6월13일 부가가치세 도입 관련 당정회의 때뿐이었다.

부가가치세는 1971년부터 6년여에 걸친 준비작업 끝에 그해 7월1일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입시기가 다가오자 중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일었다.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던 공화당에서 반대가 심했다. 국무회의에서는 시행연기론이 강력히 제기됐다.

당정협의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朴正熙 대통령은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金龍煥(김용환) 재무부 장관과 崔珏圭(최각규) 농수산부 장관은 찬성, 張禮準(장예준) 상공부 장관은 반대였다. 崔圭夏 국무총리는 연기를 주장했다. 심지어 7년 전 재무부 장관으로 부가가치세 도입을 선도했던 南悳祐(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까지 연기를 주장했다. 회의의 흐름은 연기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나는 그런 회의에서 발언하지 않던 前例(전례)를 깨고 『한 말씀 드리겠다』고 나섰다. 나는 부가가치세 도입 연기 주장을 반박하면서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결국 당초 원안대로 부가가치 세제를 도입하기로 단안을 내렸다.

朴대통령이 결재한 서류 많지 않아

대통령은 思索(사색)시간이 많아야 한다. 朴正熙 대통령은 세심하게 국정을 챙겼지만, 회의나 서류결재 등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만의 사색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덕분에 국가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첫째, 朴正熙 대통령은 회의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1주일에 네 번 정도 중요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 때면 朴대통령은 사전에 관련 안건을 읽고 그 내용을 숙지한 후 회의에 나왔다. 주무장관의 설명을 듣고 난 후 朴대통령은 참석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참석자가 의견을 개진하는 동안 朴대통령은 그 내용을 메모했다.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면 朴대통령은 다시 주무장관의 의견을 물었다. 그 과정에서 대개 문제해결 방안이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의가 자유토론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朴대통령은 참석자들을 차례로 지명해서 발언하게 했다. 때문에 회의는 衆口難防(중구난방)식으로 흐르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운영되었다. 대개 2시간 정도 회의를 하면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둘째, 대통령이 직접 결재하는 서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경우 차관회의에서 결론이 났고, 중요한 현안들만 국무회의에 올라갔다.

주요 현안에 대해 보고할 때에는 口頭(구두)보고를 많이 활용했다. 내가 대통령께 먼저 요점을 보고하면, 배석한 수석비서관들이 보충설명을 했다.

셋째, 朴대통령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효율적으로 했다. 朴正熙 대통령의 일과는 오전 9시에 관저에서 집무실로 내려오면 시작됐다(당시 청와대는 2층에 대통령 관저, 1층에 집무실이 있었다).

나는 매일 오전 8시에 30분간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대통령께 보고할 내용과 현안들을 챙겼다. 대통령이 집무실에 도착했다는 부속실의 연락이 오면 나는 집무실로 들어가 주요 사항들에 대해 口頭보고를 하고 서류를 올렸다.

이어 의전수석비서관이 그날의 행사, 회의일정에 대해 보고했다. 의전수석은 면담 희망자에 대해 보고하면서, 면담 용건을 적은 메모를 대통령 책상 위 메모함에 놓았다. 이때 朴대통령이 밤새 생각했던 중요한 문제가 있거나, 실장의 주요 국정보고를 받는 도중 회의를 소집하거나 관계 장관을 부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일정 변경이나 추가가 이루어졌다.

접견자는 대통령이 직접 결정

흔히 「人의 장막」이라 하여, 대통령 비서실의 측근들이 대통령과 바깥 사람들의 만남을 차단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비서실장으로 있는 동안, 朴正熙 대통령이 누구를 만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비서실장이나 의전수석비서관이 아니라 朴대통령 자신이었다.

아침 보고 때 의전수석비서관이 면담 용건을 적은 메모를 대통령 책상 위 메모함에 놓고 나오면, 朴대통령은 집무시간 틈틈이 그 메모를 살펴본 후 접견 여부를 결정했다.

朴대통령은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국무총리의 면담 요청은 최우선적으로 배려했다.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은 사전 허가 없이 언제든 보고할 수 있었지만, 경호실장의 보고는 내가 재임하는 기간 중에는 극히 드물었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의 주요 수사보고, 보안사령관의 긴급보고는 당일 청취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여당인 공화당의 당무보고도 우선 순위가 높았다.

각 부처 장관들의 용건을 명시한 면담 희망에 대해서는 용건의 완급에 따라 시일이 조절되었지만, 朴대통령은 꼭 보고를 들었다. 사회지도층 인사나 朴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분들의 면담신청은 용건이 명백할 경우 직접 접견하거나,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담당 비서관들이 만나 면담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직접 접견 여부를 결정했다.

각 부처 장관이나 사회지도층 인사 등이 대통령을 면담하고자 할 때에는 그 이유가 뚜렷해야 했다. 예컨대 체신부 장관이 대통령을 면담하고자 할 경우 면담 사유를 「체신업무 보고」라 하면, 대통령을 만나기 어려웠다. 「전화선 증설 실정과 문제점에 관한 보고」라는 식으로 면담 요청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했다.

대통령의 하루 일과는 보통 오후 6시에 朴대통령이 2층 관저로 올라가면 끝났다. 하지만 시국 현안이 있을 때면, 朴正熙 대통령이 일과 후 특별보좌관이나 수석비서관들과 막걸리를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거대한 대통령자문기구들을 두는 대신 명망과 실력을 갖춘 각계 인사들을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해 활용했다. 朴鍾鴻(박종홍·교육문화), 咸秉春(함병춘·국제정치), 朴振煥(박진환·농업경제), 金溶植(김용식·외교), 林芳鉉(임방현), 崔圭夏(외교), 金東祚(김동조·외교), 徐鍾喆(서종철·국방), 李用熙(이용희·국제정치), 金瓊元(김경원·국제정치), 申秉鉉(신병현·경제), 申斗泳(신두영·사정), 金永駿(김영준·사정)씨 등 쟁쟁한 분들이 당시 特補(특보)로 활약했다. 특히 행정부 외부에서 特補를 영입할 때에는, 원로 철학자였던 朴鍾鴻 교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40代 전후의 젊고 실력 있는 인사들을 영입하려 애썼다.

비서실장은 경제관료 출신이 좋을 듯

얘기가 길었지만, 대통령 당선자에게 특히 다음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비서실은 소수 정예로 운영하라.

둘째, 행정부 일에 간섭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각종 위원회를 줄여라.

셋째, 사람을 잘 써라. 특히 장관과 비서실 인사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비서실장 인사와 관련해서 조언한다면, 실무경험이 풍부한 경제관료 출신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경제와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李明博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살리기」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고, 본인이 CEO출신으로 경제나 경제계 인사들에 대해 잘 알겠지만, 경제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능력 있는 실무 경제관료 출신이 비서실장으로 보좌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