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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無罪제조기」李載滿 변호사

『누명 쓴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이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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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당사자들밖에 모릅니다. 변호사는 정황을 보고 숨은그림찾기 하듯 실체적 진실을 맞춰야 합니다. 퍼즐을 빨리 맞추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李載滿 변호사
1952년 서울 출생. 배재高·연세大 정치외교학과·同 행정대학원 졸업.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4기 수료. 1995년 변호사 개업. 한국장애인협회 고문변호사, 연세大 법학연구소 자문위원, 세계스포츠선교회 법률고문,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연세大 법무대학원 초빙강사.
연예인 性폭력사건 해결사
  피의자가 구속되고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난 형사사건이 2심에서 無罪(무죄)로 뒤집힐 확률은 1만 건 중 1건 정도라고 한다. 그 어려운 관문을 여러 차례 통과하여 「無罪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변호사가 있다.
 
  개그맨 출신 사업가 朱炳進(주병진)씨 강간치상 사건을 맡아 무죄판결을 받아낸 李載滿(이재만·54) 변호사다. 그는 이후 가수 편승엽-길은정 사건, 가수 구창모 폭행사건, 메이저리거 김병현 선수의 초상권 침해사건에서 승소했고, 최근 개그맨 權寧燦(권영찬·37세)씨의 강간치상 사건을 무죄로 이끌어 냈다.
 
  권영찬씨는 지난해 「서울 여의도 某 호텔에서 한 여성을 강간치상했다」는 혐의로 피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선고를 받았다가 지난 6월8일 2심에서 「유죄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주병진 사건과 유사한 권영찬 사건에서 무죄를 이끌어 내 李변호사에게 「연예인 性폭력사건 해결사」라는 별명까지 따라다닌다.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건너편에 위치한 이재만법률사무소에서 李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당사자들밖에 모릅니다. 나머지는 정황을 보고 숨은그림찾기 하듯 맞춰야 합니다. 퍼즐을 빨리 맞추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록 속에 해결책 있어
 
개그맨 주병진
  李변호사는 『모든 해답은 기록에 다 나와 있다』고 했다.
 
  『1심 기록을 자세히 보면서 유리한 자료와 불리한 자료를 구별한 뒤 불리한 것에 대해서는 현장조사와 주변 사람을 탐문해서 증거를 찾아내야죠. 불리한 걸 다 삭제하면 유리한 것만 남습니다. 기록 안에 답이 다 있지만 수사기록만 갖고 하면 재판에서 집니다. 수사기록에서 불리한 걸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 과정이 복잡합니다』
 
  사건을 맡으면 사건 현장을 찾아가서 철저하게 조사하는 그를 주변에서는 「형사 콜롬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1심에서 유죄판결 받은 사건을 맡았을 때 「무죄 확신」을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질문을 하면 감이 옵니다. 제가 검사 입장에서 추궁할 때 본인이 일관되게 진술하면 「죄가 없겠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그러면서 기록을 차분히 보면 의심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쫓기면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수사관이나 법원이 조작된 증거에 속을 수 있습니다. 의뢰인에 대한 무죄확신이 있어야 검찰과 싸우고 법원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李변호사는 변호사의 역할을 두 가지로 정의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죄만큼의 형량을 받게 하고, 죄 없는 사람은 벌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을 변론하는 게 물론 어렵죠. 죄가 있다는 검사와 「왜 생사람 잡느냐」고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의자가 구속된 사건을 뒤집기는 힘들다고 한다. 피의자가 구속될 정도면 유죄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李변호사는 주병진·권영찬 사건은 우리나라의 달라진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경우라고 소개했다.
 
  『두 사건은 조작된 겁니다. 그동안 사회 통념상 여자가 「강간당했다」고 하면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여자가 자기 인생을 걸고 강간당한 사실을 밝히고 고소할 정도면 그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이제 달라졌습니다. 누구든 마음먹고 덤비면 내 가족도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우선 두 사람 다 술을 마시고 방심한 게 문제였습니다. 연예인, 연예인 사업가, 언론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노리는 「꽃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방송인이면서 사업가였던 주병진씨와 마찬가지로 권영찬씨도 개그맨이면서 PC방 체인점 사업을 하고 있었다. 李변호사는 『술에 취한 남자를 대상으로 여성이 정교하게 거짓말을 하면 밝히기 어렵다』고 한다.
 
  『아무리 정교해도 가짜로 만든 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허점이 있습니다. 허점을 찾아내어 밝히면 다행이지만, 못 밝히면 죄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됩니다』
 
 
  개그맨 권영찬 사건
 
개그맨 권영찬
  두 사람이 합의하에 호텔에 투숙했더라도 나중에 여자가 피해를 당했다고 말을 바꾸면 걸려들 수 있다고 한다. 권영찬씨 사건이 그런 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A양(21)은 PC방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사건 바로 전날인 2005년 6월4일 A양이 권영찬씨에게 『심심하다』고 전화를 하여 만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여 3차에 걸쳐 10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다음날인 6월5일 새벽 5시30분경 권영찬씨와 A양이 함께 호텔에 투숙했다. 하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性관계를 갖지 못했다고 權씨는 주장했다.
 
  그러나 A양은 『처녀인 자신이 다섯 차례 강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권영찬씨는 강간치상범으로 구속되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2심을 맡은 李載滿 변호사는 사건이 일어난 새벽 5시30분에 두 사람이 투숙한 호텔을 세 번 방문하고 탐문수사를 하여 여러 가지 사실을 밝혀 냈다.
 
  A양은 자신이 숫처녀이며 『사건 당일 4시간 동안 다섯 차례 강간당하면서 계속 몸부림치고 울부짖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섯 차례나 강간당하면서 필사적으로 반항한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상처가 없었다. 바지와 팬티는 전혀 찢어지지 않았고, 『다섯 차례 강간당하고 처녀성을 잃었다』고 하면서도 『걷기 힘들었다』는 등의 진술이 없었다.
 
  권영찬씨는 사건당일 오전 9시경 A양과 함께 호텔을 나와 집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그 사이에 A양은 누구에게도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다.
 
  A양은 그날 오후 2시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휴대폰에 경쾌한 댄스음악을 다운받았다. 강간당한 사람이 댄스음악을 다운받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하자 A양은 기분전환을 위해 한 일이라고 했다. A양은 그날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그날 오후에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카드로 결제한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사건 이후인 6월22일 A양은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권영찬 일행과 술 마신 사진을 올리고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는 글을 남겼다. 이런 정황이 재판부를 움직여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호텔에 끌고 들어간 게 아니라 함께 들어갔는데도 강간죄가 성립되나요.
 
  『A양은 「택시비가 없어서 따라갔다」며 「들어갈 때 연예계에 대한 얘기만 하기로 해놓고 강제로 옷을 벗겼다」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말을 바꾸면 남자는 죄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로 둔갑
 
  ─여자가 누명을 씌우려고 소리지르고 일부러 상처를 내면 꼼짝없이 당하겠군요.
 
  『남자가 낸 상처와 자기가 만든 상처는 다르기 때문에 그것도 조사를 잘 하면 밝혀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정말 나쁜 마음을 먹고 다른 남자가 와서 상처를 만들어 주고 간다든지, 다른 교묘한 방법을 쓰면 강간미수로 걸릴 수 있지요』
 
  요즘 들어 법조인을 속이는 이중인격적인 범죄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아울러 범죄수법이 점점 정교하고 대담해지고 있으며 소송이나 법적 분쟁이 사회 全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절도·강도·폭행 사건이 만연했으나 요즘은 인터넷상의 각종 신종범죄와 함께 이권과 명예, 인기 등을 둘러싼 교묘한 위증과 명예훼손이 큰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일반인이 무고하게 당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으며, 사건 당사자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李변호사는 무죄판결을 받은 「노랑머리 사건」과 「초등학생 강간사건」을 예로 들었다. 노랑머리 사건은 사법연수원 문제로 출제되고 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노랑머리 사건」
 
  2001년 중년 남자가 李載滿 변호사를 찾아와 특수강도로 구속되어 있는 아들 B군의 변론을 의뢰했다. B군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려고 휴학한 상태에서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구치소를 찾아갔을 때 B군은 李변호사를 보자마자 말은 안 하고 울기만 했다.
 
  『폐부를 찌르는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울더군요. 모두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데 변호사가 와서 「뭐가 억울하냐」고 하니까 펑펑 운 거죠. 우는 것만 보고도 무죄심증이 가더군요』
 
  사건의 개요는 B군이 친구와 함께 밤에 여고생을 폭행하고 돈 3만여원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만난 여고생은 단정하고 조신한 스타일이어서 겉으로 볼 때는 거짓말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여고생은 서른 살 된 남자와 20代 초반의 남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어느 날 약속을 이중으로 하여 한쪽과 약속을 못 지키게 되자 엉겁결에 노랑머리 8명에게 당하고 돈을 빼앗겼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애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B군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지목되어 구속되었던 것이다.
 
  『사건 현장이라는 빈집에 가보니, 동네 개들이 짖고 앞집 담이 낮아 내부가 훤히 보였습니다. 8명이 본드를 마시고 소리를 질렀다는데 동네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고생은 빼앗겼다는 3만원이 「지갑을 찾아 주고 사례로 받은 돈」이라고 했는데, 지갑 주인을 어렵게 찾아 알아보니 돈을 준 게 아니라 답례로 치킨 한 마리 사 주었다고 하더군요. 계속 그런 증거를 찾고, 현장검증을 한 끝에 노랑머리 B군은 무사히 풀려나게 되었죠』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B군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李변호사의 지시에 따라 온갖 증거를 수집하러 다녔다.
 
  2004년 초등학생 5학년 남자아이가 2학년짜리 여자아이를 성폭행했다고 해 여자아이 측 부모가 남자아이 측 부모를 고소했다. 1심에서 「남자아이 측 부모가 여자아이 측 부모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李변호사가 2심을 맡았는데 현장에 가보니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다고 한다.
 
  여자아이가 세 명의 남자아이에게 학교 화장실에서, 그것도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1년 동안 수차례 강간당했다는 게 사건 요지였다. 화장실 벽면 아래 부분에 19cm 정도 높이의 공간이 틔어 있어서 그곳에서 성폭행을 하면 옆 화장실에 있는 아이들이 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더구나 자율학습 시간에는 아이들이 계속 드나들기 때문에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1년여 동안 만났다는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1심에서 패소판결이 난 이 사건도 여러 증거를 수집해 2심에서 승소했다.
 
 
  무죄 밝혀져도 만신창이 돼
 
  李載滿 변호사는 『三人成虎(삼인성호)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세 사람만 말을 맞추면 한 사람의 범죄자를 조작해 낼 수 있습니다. 무고사건이나 사기사건의 가해자들은 말을 수시로 바꾸고 문서를 조작하는가 하면 심지어 돈으로 증인을 포섭하여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냅니다. 큰 이권을 둘러싼 사건의 경우 매우 치밀하고 지능적이며 조직적으로 범죄가 구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지은 사람을 죄만큼의 형량을 받게 하는 「유죄사건」은 대개 서류 한 번 내고 법정에 한 번 가면 끝이지만, 누명을 뒤집어쓴 「무죄사건」은 경우에 따라 재판이 10번 이상 계속된다. 보통 2~3년을 끌면서 서류도 많이 내야 하고, 사건현장에도 여러 차례 가야 한다.
 
  당연히 무죄사건이 10배나 힘들지만 그렇다고 10배의 수임료를 받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힘든 무죄사건을 그만 맡으라』고 한다.
 
  『1심에서 유죄판결 난 사건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 월드컵 토고戰에서 역전골을 넣었을 때처럼 짜릿합니다. 즐겁고 보람 있지만 「이겼다, 승리했다」는 기분이 드는 건 아닙니다. 가해자로 둔갑한 피해자의 억울함이 풀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하게 되지요.
 
  인생 전체가 걸린 위험한 고비에서 「억울함이 안 풀리면 자살하겠다」는 얘기를 들어 보십시오. 변호사도 막중한 압박감을 느낍니다. 무죄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입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검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변호인이 찾아서 알려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무죄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무조건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많다고 한다.
 
  『무죄가 밝혀져도 이미 상처가 너무 깊어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합니다. 함정 속에 꽂아 놓은 죽창에 온몸이 찔려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죠. 알려진 사람일수록 상처를 더 크게 받습니다. 미끼에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평소에 주변정리를 잘 해야 합니다』
 
 
  39세에 고시 합격한 늦깎이 인생
 
   李載滿 변호사는 33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39세에 사법시험을 통과했다. 삼수하여 대학을 들어간데다 연세大 정외과에 다닐 때는 行試(행정고시·행시)를 공부했다. 행정대학원에 다닐 때까지 합쳐 行試를 세 번 봤다가 떨어졌다. 대학원 마치고 27세에 뒤늦게 입대했다. 30세에 제대하여 다시 行試를 준비하다가 司試(사시·사법고시)로 전환하여 6년 만에 합격한 것이다.
 
  『신림동 고시촌에 환갑 넘은 사람도 있고,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있으니 위안은 됐지만 나이 들면서 점점 초조해졌지요. 1차에 붙고 2차에서 늘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갑갑했어요. 「나이는 자꾸 들어 가는데 시간낭비 하는 거 아닌가」, 「내 능력 밖의 일이 아닌가」 그런 우려도 했지요. 심신이 지쳤을 때 합격했습니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 학원에 나가 고시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아 그에게 배운 사람들이 합격하여 인사를 오는 경우가 많았다. 고시촌에서 그의 별명은 「바윗돌」이었다. 자리에 앉으면 안 움직인다고 하여 생긴 별명이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와 변호사가 되었을 때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는 막연히 「약자의 편에 서서 힘없는 자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면서 강자나 약자의 편이 아닌 공평해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을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지요. 합격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봉우리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한때 「사법시험 나이를 제한하자, 삼진아웃제를 하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만약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합격 못 했겠네요.
 
  『아마 그런 제도를 만들긴 힘들 겁니다. 누구든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하면 합격하기까지 6~7년은 걸립니다.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런 제도가 생기면 안 되지요』
 
  1992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5년에 개업했다. 사법연수원 동기로 한나라당 元喜龍(원희룡) 의원, 羅卿瑗(나경원) 의원, 열린당 李相珉(이상민) 의원, 盧官圭(노관규) 순천시장 등이 있다.
 
  元喜龍 의원과 띠동갑이라며 대충 자신이 남들보다 12년 늦게 출발한 셈이라고 했다. 41세에 결혼해 이듬해 아들을 낳았는데 고등학교 동창생은 그해 외손녀를 봤다고 한다.
 
  ─나이가 많아서 판사나 검사로 갈 생각을 안 한 건가요.
 
  『검사는 35세, 판사는 40세 넘으면 발령을 안 내립니다. 판검사로 가려면 사법연수원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경쟁에 돌입해야 합니다. 대개 20代들이 그 대열에 끼죠』
 
  ─예전에는 판검사들이 변호사 개업할 때 전관예우가 있었는데, 바로 개업했으니 힘들었겠습니다.
 
  『판검사 하다가 변호사 개업 하면 처음에는 의뢰인이 몰리지요.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한 경우는 갈수록 인맥이 넓어집니다. 20년 지나면 다 비슷해지죠』
 
  李변호사는 1995년에 개업하여 5년 만에 주병진 사건을 맡았다. 李변호사가 일반에게 알려진 건 주병진 사건 때부터였고, 편승엽·구창모·권영찬 등 연예인들이 연이어 찾으면서 유명세를 더하게 되었다.
 
 
  「편승엽-길은정」 사건
 
  주병진 사건 이후 민감한 性폭력사건에 대한 문의와 의뢰가 많아진 편이라고 한다. 가수 편승엽 사건의 경우 처음에 길은정씨 쪽에서 의뢰한 줄 알고 만났다고 한다.
 
  『당시 편승엽씨 평판이 워낙 나빴잖아요. 전화로 「길은정씨 아시죠」라고 해서 그쪽 의뢰인인 줄 알고 만났어요. 편승엽씨 쪽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안 만났을지도 몰라요.
 
  편승엽씨가 자기는 고소하고 싶지 않으나 자녀가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가정이 풍비박산났다며 명예회복만 하면 만족한다고 하더군요. 그는 「내가 승소할 경우 길은정씨가 처벌받느냐」고 물어보더군요.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고소를 취하하면 처벌받지 않는다고 알려줬죠. 「주변에서 권해 찾아왔지만 길은정씨가 처벌받는 건 원치 않는다」고 하더군요.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신뢰가 가서 시작했습니다』
 
  「소문이 좋지 않은 연예인의 변론을 맡지 말라」는 주변의 반대가 많았지만 李변호사는 대화와 현장탐문을 통해 무죄를 확신하면 사건을 맡는다. 하지만 조폭사건·마약사건은 아무리 거액을 준다고 해도 맡지 않는다. 기독교인인 그는 목사들 간의 고소사건과 같은 법조인이 연루된 사건도 거절한다.
 
 
  편승엽이 무죄를 받기까지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서로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가주 편승엽(사진 위), 가수 길은정.
  편승엽-길은정 사건의 경우 여성단체 대표가 「여자를 학대한 인권에 관한 문제」로 몰아갔다. 李변호사는 사건을 맡은 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쌍방 명예훼손에 관한 건이다. 형사고소하고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야 할 시점에 여성단체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스스로 판단하여 사람을 매도하는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쐐기를 박았다.
 
  2002년 10월 길은정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편승엽씨와의 결혼에 관해 글을 쓰면서 시작된 사건은 재판으로 이어져 1년 9개월간 공방을 주고 받았다. 2004년 7월7일 재판부가 길은정씨에게 「편승엽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7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틀 후인 7월9일 오후 편승엽씨가 길은정씨에 대한 민·형사상의 모든 소송을 취하하여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변호사 12년차면 사건 해결이 처음보다 쉬워졌을 것 같습니다.
 
  『항상 어려워요. 유형은 비슷할지 몰라도 똑같은 사건은 없어요. 조금만 방심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계속 관련 법조문에서 손을 떼지 않고 기록을 늘 읽어봅니다. 기록 자체가 생물처럼 움직입니다. 재판 절차와 법정에 서는 일은 익숙해졌지만 사실관계를 밝히는 건 여전히 어려워요』
 
  李변호사는 무죄가 난 사건에 대해 「변호사가 검사를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변호인은 검사와는 다른 법률적 신분의 장점을 활용하여 지능적인 범죄자들을 찾아내 법의 정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변호인도 검사와 마찬가지로 범죄자의 증거조작을 파헤치고 위증을 밝혀 내는 법조업무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법 앞에서 평등한 인간 권리 신장에 기여하는 일이죠』
 
  한 해에 변호사가 1000명씩 쏟아지면서 변호사 1만人 시대를 맞았다. 대통령과 서울시장 모두 변호사 출신으로 사회 곳곳을 변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요즘 전체 사건 수는 늘었으나 변호사에게 의뢰하는 수임 사건 수는 줄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을 참고하여 사건 당사자가 자신을 변호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변호사 1만人 시대
 
아내 조항씨와 함께.
  ─본인이 스스로 재판에 임해서 이기는 비법이 있을까요.
 
  『처음에 변호사협회나 무료법률상담소, 법률구조공단 등지에서 무료 상담을 철저히 받아서 소송에 임해야 합니다. 非전문가에게 자문을 하거나 떠도는 얘기에 귀기울이면 안 됩니다. 인터넷에 있는 많은 자료를 정확히 분석해야 합니다. 잘못 분석하면 재판에서 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소장을 낸 뒤 상대방 답변이 들어오면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상담을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변호사를 선임하기에는 액수가 적은 간단한 사건은 직접 하더라도 인생이 걸린 중대한 사건은 본인이 소송하면 나중에 비용이 더 들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더라도 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기에게 유리한 자료와 불리한 자료를 솔직하게 다 얘기해야 합니다. 유리한 것만 얘기하여 변호사를 속여도 다른 자료가 나오면 재판에서 지게 됩니다. 또한 증거를 찾기 위해 가족들이 발벗고 나서야 합니다』
 
  ─앞으로 변호사가 더 많아질 텐데 그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현재 소송업무만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점점 늘어나면 세무사·관세사·변리사·법무사가 하는 일을 변호사가 하게 되겠죠.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서 하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예방법학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철저하게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체제가 될 겁니다. 부동산 매매 계약은 물론 개인 간에 돈을 주고받는 것까지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시대가 오겠죠. 개인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변호사가 많아지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무엇이든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테니 사람들이 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할 겁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변하겠지만 情이 넘치는 사회는 기대하기 어렵겠죠. 예전에는 변호사 수가 적었으니 법조 일만 해도 바빴지만, 수가 많아지면 각 분야로 뻗어 나가겠죠.
 
  미국 CEO들은 대개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변호사가 특정 직업군이 아니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자격증이 될 겁니다』
 
  李변호사는 경제인들의 구속으로 기업운영에 지장을 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 사전에 변호사를 통한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야 유명변호사가 될 텐데, 어떤 비결이 있을까요.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성실하게 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분석에 의해 상대방의 허위진술을 밝혀 내려면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사건을 맡으면 전략적으로 순서를 잘 짜서 철저한 계획 아래 진행해야 합니다.
 
  순서가 잘못되면 같은 증거라도 효력이 약해집니다. 유리한 증거를 찾았더라도 결정적일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성실과 노력, 경험이 무기
 
연세大 행정대학원 시절.
  李변호사는 성실함과 경험에 이어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인 사고가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 없이 자신을 과신하면 실패합니다. 선입견으로 유죄심증을 예단하면 안 되겠죠. 그러면 필요한 얘기는 듣고 필요 없는 얘기는 안 듣게 됩니다.
 
  당연히 의뢰인의 무죄주장이 귀에 안 들어오고 그로 인해 증거 찾는 노력도 덜하게 되겠죠. 舊시대적인 고집불통, 非합리적인 사고, 쓸데없는 권위는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준에 맞는 사고를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李변호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일하고, 토요일은 휴식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일요일은 교회에 갔다가 오후에 등산을 한다.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서울 충신교회와 춘천에 있는 중앙교회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글로벌 기준에 맞는 사고해야 성공
 
  오지마을에 있는 시골 교회를 종종 찾아가 법률상담을 한다. 李변호사는 아침마다 기도와 묵상을 하는데, 그때 매듭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증으로는 분명히 조작인데 아무리 해도 안 풀릴 때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평소 걸어다니면서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누명 쓴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과연 왜 그랬을까」 계속 생각하면 상대방의 거짓말이 딱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李변호사는 앞으로 「휴먼 리스크 관리 전문 로펌」을 구상하고 있다.
 
  『사건이 터진 후 너무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합니다. 일반인들을 법률 마인드로 提高(제고)할 수 있는 교육도 겸할 계획입니다』 ●
 
  사진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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