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 잃지 않는 高銀貞씨
高銀貞(고은정·29·여)씨는 東京 가와구치(川口) 지역 주택가에 위치한 「公團(공단) 맨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다다미가 깔린 두 개의 방과 주방이 있는 15평형이다. 정부 소유의 임대 아파트라 방세가 싸서 독신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高씨의 방에는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조촐한 살림이지만 컴퓨터만큼은 최신형이다. 高씨는 일본 PDS社의 직원이다. 일본의 여신 전문 금융회사인 ACOM社의 고객 데이터 업그레이드를 위해 파견 근무 중이다.
高씨는 오전 7시쯤 일어나 NHK의 아침 방송을 켜 놓는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일본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다. 도시락을 싸는 것은 중요한 아침 일과다.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 모자라서다.
東京과 요코하마가 맞닿은 카마타(蒲田)역에 위치한 ACOM社 시스템개발센터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시스템개발팀의 전체 직원은 50명, 이 가운데 외국인은 두 명뿐이다.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 오전 9시40분까지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한다. 오후 7시까지 일한다. 保安(보안) 때문에 퇴근 시간 이후 남아서 일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근무 시간 안에 할당량을 소화해야 한다.
낯선 땅, 빡빡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高씨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무역 아카데미의 「IT 마스터」
高씨는 취업은 했지만 일에 만족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무역협회의 「무역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1년짜리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통신기술) 마스터」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리고 나서 일자리를 찾아 2002년 8월 일본으로 건너왔다.
『대구 계명大를 졸업하고 바로 대구의 한 대기업체에 입사했어요. 2년쯤 다니다 보니 특별한 기술이 없어 승진하는 데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뭔가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때 무역 아카데미에서 국내 최초로 「.NET」 과정을 개설한 걸 알았어요. 그때가 2001년 7월이었어요』
―「무역 아카데미」 과정이 무척 어렵다고 하던데.
『다시 高3으로 돌아갔어요. 밤늦게까지 프로젝트 작업을 하다가 지쳐 강의실 바닥에 그대로 누운 채 잠을 잘 때가 많았어요. 침낭은 필수품이에요. 최초로 실시된 「.NET」 교육이다 보니 우리말로 되어 있는 교재가 없어서 영어로 된 원서를 사다가 교재로 사용했습니다』
―「무역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게 일본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무역협회가 「.NET」 과정 기술자를 최초로 양성했으니까요. 지금도 「무역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2기생들이 「.NET」 분야를 석권하고 있어요. 「IT 마스터」 과정이 두 달 정도 남았을 때까지도 일본에는 「.NET」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어요. 일본이 한국보다 프로그램 기술이 2년 정도 늦은 편이라 아직도 자바(Java·홈페이지 제작용 프로그램)를 많이 쓰거든요』
高씨와 현재 같은 아파트에 사는 趙蓮美(조연미·25)씨는 진로를 정하지 못하다가 대학 선배인 高씨의 권유로 「무역 아카데미」의 IT 교육 과정에 들어갔다. 趙씨는 「니텟츠ELEX」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한다.
타국에서 함께 살면서 정이 들어 두 사람은 이제 친자매나 다름없다.
지난 7월28일 오후 9시, 신주쿠 번화가에 있는 한 선술집에 「IT 마스터」 과정 출신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일본 敎報정보통신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金赫(김혁 33)씨, 일본의 유명 IT 기업인 키스코社에서 일하는 金大洪(김대홍·32)씨, 高銀貞씨와 趙蓮美씨였다. 무역협회의 「IT 마스터」 과정을 거쳐 일본에 취업한 이들이 220명쯤 된다고 한다.
金赫씨는 일본 생활이 2년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는 IT 교육을 받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무렵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눈을 낮추어서 일자리를 일단 구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이, 비전이 없고 자기 발전이 없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IT 분야가 유망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마침 「무역 아카데미」에서 「IT 마스터」 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전단지가 눈에 띈 겁니다. 저는 결혼한 상태였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하던 일과 무관한 분야를 공부한다는 게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공부하는 편이 더 늦은 다음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이 일본에 취업한 이유는 비슷하다. 높은 임금이 가장 큰 매력이었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욕이 강했다.
金大洪씨는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까지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곤욕이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일하려면 언어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내가 맡은 분야야 잘 알지만, 회의에 들어가면 전체적인 프로젝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회사에서 혼자 일하고 있을 때 전화가 오면 받기가 망설여졌어요. 고객의 문의전화에 잘못 답했다가는 회사에도 累(누)가 될 수 있고…』
趙蓮美씨는 『예상과 다른 쪽의 일을 하게 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처음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생각하고 왔는데, 다른 일을 맡게 되니까 적응이 잘 안 됐어요. 전화로 고객을 상대하기에는 日語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한국에 돌아가 버릴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일본은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가 가미된 「임베디드(Embedded)」 분야가 강세다. 일본은 산업 및 군사용 제어기기, 디지털 정보 家電기기, 자동센서 장비 등의 기능을 다양화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소프트웨어 쪽은 한국이 2년 정도 앞서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뿌리를 내려야죠』
네 사람의 계획은 조금씩 달랐다.
『5~6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일본에서 쌓은 시스템 엔지니어 경험을 살려 봐야죠. 한국에서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趙蓮美)
『일본에서 데이터 베이스 구축 분야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자리가 잡히면 IT 인력 파견 회사를 차리고 싶어요. 한국에 갈 생각이 없어요. 일본의 비즈니스 환경이 한국보다 좋고, 사람을 사귀고 인맥을 구축하는 일에 자신이 있거든요』(高銀貞)
『일본에서 계속 일할 생각입니다. 일본의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金大洪)
『어떻게든 일본에 뿌리를 내려야죠. 아이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 키우고 싶어요』(金赫)
네 사람의 연봉은 각각 400만 엔(한화 4000만원) 안팎이다. 동일 직종의 한국 기업체 급여와 비교하면 2배에 가까운 임금이다. 金大洪씨는 『일본이 생활비가 비싸다고 하지만, 교통비를 제외하면 다른 것은 한국과 물가가 비슷해 급여에 만족한다』며 『잔업수당이 일한 시간만큼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에 수입이 짭짤하다』고 했다.
金赫씨는 『눈에 보이는 차별은 없지만, 일본인 직원들에 비해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문성을 더 키우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본에 불어닥친 「배용준 열풍」으로 한국인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눈빛이 달라진 게 이들에게는 큰 힘이다. 집을 구하거나, 회사를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高銀貞씨가 일하는 PDS社는 지난 5년간 연속 흑자를 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기업에 파견해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관리해 준다.
지난해 4억 엔의 매출을 달성한 이 회사의 대표는 한국인 朴鍾吉(박종길·41)씨다.
52명의 직원과 10명의 계약직 직원이 모두 한국인이다. 皇宮(황궁) 뒤편 치요다(千代田)구의 사무실에서 朴사장을 만났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1991년부터 삼보컴퓨터의 일본 주재원으로 일했습니다. 일본의 철강회사인 NKK의 프로세스 컴퓨터의 엔진 부분을 제조·납품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995년에 PDS社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인의 급한 성미와 IT 분야는 찰떡궁합
―한국인 프로그래머로만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기 힘들지 않나요.
『일본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인의 우수성이 보이더군요.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면 한국이 일본을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굉장한 순발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 분야에서는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가」보다는 「앞으로 주어진 일을 잘해 낼 역량이 충분한가」가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은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 일을 처리하는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속도와 순발력이 한국인의 강점이라는 말이군요.
『그것뿐이 아니죠. 창조적인 생각, 일에 대한 의지, 자신감 등이 있습니다. 한 가지 기술의 수명이 몇 년이 채 안 될 정도로 급변하는 IT 분야는 급한 한국인의 성미에 잘 들어맞습니다. 고객이 요구하는 납기를 반드시 지킨다는 점에서도 우리가 앞섭니다』
朴사장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한 고객이 우리 회사와 일본 회사에 동시에 제안을 했어요. 일본 회사는 납기를 지키지 못했지만 우리는 연일 철야작업으로 기일을 지켰습니다. 품질 면에서도 고객을 만족시켰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우수성 아닐까요』
―직원 중에 「무역 아카데미」 IT 마스터 과정 출신이 몇 명이나 됩니까.
『모두 열 명입니다. 「무역 아카데미」 출신들이 처음 우리 회사에 입사한 것은 2002년 8월입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아주 우수한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채용할 계획입니다. 1년이나 되는 긴 교육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니만큼 아주 근성이 있어요. 도전정신이 있고, 창의성이 뛰어나요. 그들은 Java나 MS 계열의 관련 자격증을 대여섯 개씩 따 놓았어요. 지금부터 한 3년 정도 지나면 지금까지의 경험과 능력이 결합하여 더욱 큰일을 잘 해낼 겁니다』
―일본 정착에 힘들어하지 않나요.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3개월 정도는 회사 숙소에 머물게 합니다. 매년 한 번씩 일본어능력시험에 응시하도록 회사에서 비용을 대고 있습니다. 400점 만점인데 300점 이상이 될 때까지 계속 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PDS社의 올해 매출 목표는 6억 엔. 朴사장은 『3년 이내에 10억 엔 매출을 달성한 뒤 도쿄證市에 회사를 상장시키겠다』고 했다.
우메보시(梅干)는 매실을 절여 만든 일본의 대표적인 보존식품이다.
우메보시를 김치와 함께 버무려 먹기를 좋아한다는 우부가타 코이치(生方行一·61)씨. 그는 자신의 식습관처럼 한국과 일본을 한데 묶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 電機정보네트워크」에서 고문직을 맡고 있는 그는 인력 채용을 담당하고 있다. 미쓰비시 電機정보네트워크는 일본 「미쓰비시 電機」가 자본금 22억 엔으로 설립한 IT 기업이다. 직원 수는 3000명이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15명의 한국인을 채용했다. 이 중 한국무역 아카데미 출신이 7명이다.
우부가타氏는 『일본의 젊은 戰後세대들이 노력도 하지 않고 편하게만 살아가려고 하는 반면, 한국 젊은이들은 강인한 정신과 활기찬 자세를 갖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 출신들은 중국이나 인도 출신의 IT 인력과는 달리 일본어 실력이 우수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한국 IT 기술자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하고 늘 노력하며 예의가 바르다는 것입니다』
미쓰비시 電機정보네트워크는 직원을 채용할 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우부가타氏가 한국을 방문하여 일본어 필기시험과 적성검사를 실시한다. 이렇게 1차 선발된 인원을 일본에 초청, 회사 임원들과 두 차례 면접을 한다.
우부가타氏는 『일본 기업들이 全세계에서 IT 엔지니어 인력을 채용하는 만큼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시장 공략을 시도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高씨의 방에는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조촐한 살림이지만 컴퓨터만큼은 최신형이다. 高씨는 일본 PDS社의 직원이다. 일본의 여신 전문 금융회사인 ACOM社의 고객 데이터 업그레이드를 위해 파견 근무 중이다.
高씨는 오전 7시쯤 일어나 NHK의 아침 방송을 켜 놓는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일본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다. 도시락을 싸는 것은 중요한 아침 일과다.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 모자라서다.
東京과 요코하마가 맞닿은 카마타(蒲田)역에 위치한 ACOM社 시스템개발센터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시스템개발팀의 전체 직원은 50명, 이 가운데 외국인은 두 명뿐이다.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 오전 9시40분까지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한다. 오후 7시까지 일한다. 保安(보안) 때문에 퇴근 시간 이후 남아서 일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근무 시간 안에 할당량을 소화해야 한다.
낯선 땅, 빡빡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高씨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무역 아카데미의 「IT 마스터」
高씨는 취업은 했지만 일에 만족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무역협회의 「무역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1년짜리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통신기술) 마스터」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리고 나서 일자리를 찾아 2002년 8월 일본으로 건너왔다. 『대구 계명大를 졸업하고 바로 대구의 한 대기업체에 입사했어요. 2년쯤 다니다 보니 특별한 기술이 없어 승진하는 데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뭔가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때 무역 아카데미에서 국내 최초로 「.NET」 과정을 개설한 걸 알았어요. 그때가 2001년 7월이었어요』
―「무역 아카데미」 과정이 무척 어렵다고 하던데.
『다시 高3으로 돌아갔어요. 밤늦게까지 프로젝트 작업을 하다가 지쳐 강의실 바닥에 그대로 누운 채 잠을 잘 때가 많았어요. 침낭은 필수품이에요. 최초로 실시된 「.NET」 교육이다 보니 우리말로 되어 있는 교재가 없어서 영어로 된 원서를 사다가 교재로 사용했습니다』
―「무역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게 일본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무역협회가 「.NET」 과정 기술자를 최초로 양성했으니까요. 지금도 「무역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2기생들이 「.NET」 분야를 석권하고 있어요. 「IT 마스터」 과정이 두 달 정도 남았을 때까지도 일본에는 「.NET」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어요. 일본이 한국보다 프로그램 기술이 2년 정도 늦은 편이라 아직도 자바(Java·홈페이지 제작용 프로그램)를 많이 쓰거든요』
高씨와 현재 같은 아파트에 사는 趙蓮美(조연미·25)씨는 진로를 정하지 못하다가 대학 선배인 高씨의 권유로 「무역 아카데미」의 IT 교육 과정에 들어갔다. 趙씨는 「니텟츠ELEX」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한다.
타국에서 함께 살면서 정이 들어 두 사람은 이제 친자매나 다름없다.
지난 7월28일 오후 9시, 신주쿠 번화가에 있는 한 선술집에 「IT 마스터」 과정 출신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일본 敎報정보통신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金赫(김혁 33)씨, 일본의 유명 IT 기업인 키스코社에서 일하는 金大洪(김대홍·32)씨, 高銀貞씨와 趙蓮美씨였다. 무역협회의 「IT 마스터」 과정을 거쳐 일본에 취업한 이들이 220명쯤 된다고 한다.
金赫씨는 일본 생활이 2년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는 IT 교육을 받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무렵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눈을 낮추어서 일자리를 일단 구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이, 비전이 없고 자기 발전이 없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IT 분야가 유망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마침 「무역 아카데미」에서 「IT 마스터」 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전단지가 눈에 띈 겁니다. 저는 결혼한 상태였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하던 일과 무관한 분야를 공부한다는 게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공부하는 편이 더 늦은 다음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이 일본에 취업한 이유는 비슷하다. 높은 임금이 가장 큰 매력이었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욕이 강했다.
金大洪씨는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까지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곤욕이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일하려면 언어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내가 맡은 분야야 잘 알지만, 회의에 들어가면 전체적인 프로젝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회사에서 혼자 일하고 있을 때 전화가 오면 받기가 망설여졌어요. 고객의 문의전화에 잘못 답했다가는 회사에도 累(누)가 될 수 있고…』
趙蓮美씨는 『예상과 다른 쪽의 일을 하게 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처음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생각하고 왔는데, 다른 일을 맡게 되니까 적응이 잘 안 됐어요. 전화로 고객을 상대하기에는 日語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한국에 돌아가 버릴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일본은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가 가미된 「임베디드(Embedded)」 분야가 강세다. 일본은 산업 및 군사용 제어기기, 디지털 정보 家電기기, 자동센서 장비 등의 기능을 다양화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소프트웨어 쪽은 한국이 2년 정도 앞서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뿌리를 내려야죠』
네 사람의 계획은 조금씩 달랐다. 『5~6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일본에서 쌓은 시스템 엔지니어 경험을 살려 봐야죠. 한국에서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趙蓮美)
『일본에서 데이터 베이스 구축 분야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자리가 잡히면 IT 인력 파견 회사를 차리고 싶어요. 한국에 갈 생각이 없어요. 일본의 비즈니스 환경이 한국보다 좋고, 사람을 사귀고 인맥을 구축하는 일에 자신이 있거든요』(高銀貞)
『일본에서 계속 일할 생각입니다. 일본의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金大洪)
『어떻게든 일본에 뿌리를 내려야죠. 아이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 키우고 싶어요』(金赫)
네 사람의 연봉은 각각 400만 엔(한화 4000만원) 안팎이다. 동일 직종의 한국 기업체 급여와 비교하면 2배에 가까운 임금이다. 金大洪씨는 『일본이 생활비가 비싸다고 하지만, 교통비를 제외하면 다른 것은 한국과 물가가 비슷해 급여에 만족한다』며 『잔업수당이 일한 시간만큼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에 수입이 짭짤하다』고 했다.
金赫씨는 『눈에 보이는 차별은 없지만, 일본인 직원들에 비해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문성을 더 키우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본에 불어닥친 「배용준 열풍」으로 한국인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눈빛이 달라진 게 이들에게는 큰 힘이다. 집을 구하거나, 회사를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高銀貞씨가 일하는 PDS社는 지난 5년간 연속 흑자를 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기업에 파견해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관리해 준다.
지난해 4억 엔의 매출을 달성한 이 회사의 대표는 한국인 朴鍾吉(박종길·41)씨다.
52명의 직원과 10명의 계약직 직원이 모두 한국인이다. 皇宮(황궁) 뒤편 치요다(千代田)구의 사무실에서 朴사장을 만났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1991년부터 삼보컴퓨터의 일본 주재원으로 일했습니다. 일본의 철강회사인 NKK의 프로세스 컴퓨터의 엔진 부분을 제조·납품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995년에 PDS社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인의 급한 성미와 IT 분야는 찰떡궁합
―한국인 프로그래머로만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기 힘들지 않나요. 『일본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인의 우수성이 보이더군요.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면 한국이 일본을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굉장한 순발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 분야에서는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가」보다는 「앞으로 주어진 일을 잘해 낼 역량이 충분한가」가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은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 일을 처리하는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속도와 순발력이 한국인의 강점이라는 말이군요.
『그것뿐이 아니죠. 창조적인 생각, 일에 대한 의지, 자신감 등이 있습니다. 한 가지 기술의 수명이 몇 년이 채 안 될 정도로 급변하는 IT 분야는 급한 한국인의 성미에 잘 들어맞습니다. 고객이 요구하는 납기를 반드시 지킨다는 점에서도 우리가 앞섭니다』
朴사장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한 고객이 우리 회사와 일본 회사에 동시에 제안을 했어요. 일본 회사는 납기를 지키지 못했지만 우리는 연일 철야작업으로 기일을 지켰습니다. 품질 면에서도 고객을 만족시켰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우수성 아닐까요』
―직원 중에 「무역 아카데미」 IT 마스터 과정 출신이 몇 명이나 됩니까.
『모두 열 명입니다. 「무역 아카데미」 출신들이 처음 우리 회사에 입사한 것은 2002년 8월입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아주 우수한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채용할 계획입니다. 1년이나 되는 긴 교육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니만큼 아주 근성이 있어요. 도전정신이 있고, 창의성이 뛰어나요. 그들은 Java나 MS 계열의 관련 자격증을 대여섯 개씩 따 놓았어요. 지금부터 한 3년 정도 지나면 지금까지의 경험과 능력이 결합하여 더욱 큰일을 잘 해낼 겁니다』
―일본 정착에 힘들어하지 않나요.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3개월 정도는 회사 숙소에 머물게 합니다. 매년 한 번씩 일본어능력시험에 응시하도록 회사에서 비용을 대고 있습니다. 400점 만점인데 300점 이상이 될 때까지 계속 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PDS社의 올해 매출 목표는 6억 엔. 朴사장은 『3년 이내에 10억 엔 매출을 달성한 뒤 도쿄證市에 회사를 상장시키겠다』고 했다.
우메보시(梅干)는 매실을 절여 만든 일본의 대표적인 보존식품이다.
우메보시를 김치와 함께 버무려 먹기를 좋아한다는 우부가타 코이치(生方行一·61)씨. 그는 자신의 식습관처럼 한국과 일본을 한데 묶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 電機정보네트워크」에서 고문직을 맡고 있는 그는 인력 채용을 담당하고 있다. 미쓰비시 電機정보네트워크는 일본 「미쓰비시 電機」가 자본금 22억 엔으로 설립한 IT 기업이다. 직원 수는 3000명이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15명의 한국인을 채용했다. 이 중 한국무역 아카데미 출신이 7명이다.
우부가타氏는 『일본의 젊은 戰後세대들이 노력도 하지 않고 편하게만 살아가려고 하는 반면, 한국 젊은이들은 강인한 정신과 활기찬 자세를 갖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 출신들은 중국이나 인도 출신의 IT 인력과는 달리 일본어 실력이 우수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한국 IT 기술자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하고 늘 노력하며 예의가 바르다는 것입니다』
미쓰비시 電機정보네트워크는 직원을 채용할 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우부가타氏가 한국을 방문하여 일본어 필기시험과 적성검사를 실시한다. 이렇게 1차 선발된 인원을 일본에 초청, 회사 임원들과 두 차례 면접을 한다.
우부가타氏는 『일본 기업들이 全세계에서 IT 엔지니어 인력을 채용하는 만큼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시장 공략을 시도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