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한 節制美
1999년 4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하나비」(기타노 다케시·감독·주연)가 일본 영화로는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그후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7편의 일본 영화는 일본 文化에 친숙한 기성세대보다 오히려 청년세대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어 재미있다. 그 일곱 편 중의 하나인 「鐵道員」(철도원·후루야타 야스오 감독 연출)은 한국의 젊은 관객들을 감동시킨 일본의 기성세대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 주연으로 나온 다카쿠라 켄(高創 建)은 1987년 미국과 합작한 영화 「블랙 레인」에서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와 열연했고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영화 「鐵道員」은 짧은 머리에 과묵한 연기로 일본인들에게 국민배우로 사랑받는 다카쿠라 켄이 1957년 데뷔 이후 202번째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무대는 하얀 눈이 덮인 일본 北海道(북해도) 구석의 호로마이(幌舞) 驛(역)이다. 실제로는 北海道의 이쿠도라(幾寅) 驛을 모델로 촬영했고 이쿠도라 역은 이 사실을 홍보하며 이제는 관광자원으로 삼고 있다. 일본의 국영기업이던 國鐵이 구조조정을 거쳐 민간회사 JR로 재편성되던 1987년 무렵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일본 철도는 1948년부터 1987년까지 國鐵이 운영하면서 60조엔의 부채를 안게 됐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일본 정부는 이 무렵 「국철 청산 사업단」에 의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약 1600km의 구간을 폐쇄한 바 있다.
「鐵道員」의 무대는 폐광이 되어버린 작은 광산도시의 마지막 역이다. 광부들도 떠나고 젊은이들은 집단취업차 도시로 나가버린 한적한 시골. 가장 큰 고객이었던 통학생들조차 없어지자 철도 당국은 그나마 기동차 한 대만을 운행해 오던 것도 포기한다. 廢線(폐선)의 시기를 정년퇴임과 함께 맞이하는 사람은 주인공인 사토 오토마츠(다카쿠라 켄 役) 驛長.
그는 아버지의 代를 이어 철도원이 되었고 기관사를 거쳐 말년에는 한적한 시골 역의 역장으로 근무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제 시간에 나와 不動자세로 열차를 기다리고 서 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떠나는 열차 뒤를 향해 『후부 요시(後部 良好)!』, 『신고 요시(信號 良好)!』 라고 외치며 원칙대로 최종 점검을 한다.
그는 업무에 대한 성실성 때문에 감기에 걸린 어린 딸을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죽게 했고, 부인이 병실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社則에 따라 교대 근무자를 기다리다 임종을 놓친다.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차가 구내로 들어오면 무표정한 얼굴로 깃발을 들어 올리고, 손님들을 끝까지 안내한 뒤 자식의 시체를 맞이한다. 부인(시즈에)이 죽은 뒤에 병원에 도착해 부인의 시신 앞에서도 오열을 터뜨리기는커녕 울음을 애써 참는다.
보다 못한 부인의 친구가 『시즈에를 위해 울어 줄 수 없겠어요?』라고 하자 그는 『나는 철도원이니까요. 집안 일로 울 수 없습니다』라며 입술을 깨문다. 영화는 이런 무뚝뚝한 남자가 평생 죽은 부인과 자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안고 산다는 이야기를 「비장감」과 「節制美」로서 보여주고 있다. 구조는 그렇게 간결하다. 하지만 1시간 30분 동안 영화는 관객의 가슴을 흠뻑 적시게 만들어 버린다.
이 영화는 1997년 일본의 베스트 셀러 작가 아사다 지로(淺田 次郞)의 同名소설이 원작이다. 그는 140만 부가 팔린 이 소설로 제117회 나오키 文學賞을 탔다. 영화는 1999년에 일본에서 개봉되어 4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월4일 개봉되어 지금은 비디오로 出市(출시)되었다.
한국 청년들의 感動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의 주된 관객층은 20~30代라고 한다. 이들이 본 감동깊은 장면은 대개 다음과 같은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장인정신을 우린 과연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나 역시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오토마츠처럼 내 직업에 대한 장인 정신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답은 노(No)였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오토마츠의 삶이 아름답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인 diain@yahoo.co.kr)」
「특히 오토役을 연기한 다카쿠라 켄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완고하고 절제된 표정이 만들어 내는 어찌할 수 없는 쓸쓸함과 회한. 그가 모든 감정을 참아내고 자신의 신념에 찬 차디찬 표정을 만들어 내면 만들어 낼수록 더욱 보는 이의 눈가를 적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좋은 영화 한 편.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상 속에 가슴 한구석이 저려 오는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는 영화이다(김휘주 proust2@netsgo.com)」
「여하간 이런 감동적인 영화를 단지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니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막기보다 그 이면에 감추어진 모습을 보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원 codante@unitel.co.kr)」
「자본주의적인 성공의식이 무엇인가? 한 자리나 해야 하고, 큰 재산이나 모으든지, 사건을 쳐서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자만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적인 보통의 의식에 대해서 이 작품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이름 한 번 못 날리고 한 평생 살아왔지만 부끄럼 없이 충성된 삶을 살아오던 모든 이들에게 자기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해 준다. 세계는 巨匠과 영웅들만의 것이 아니다. 세계는 순수하고 아름답게 자기의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다 떠난 모든 이들의 것이며 그들의 역사로 유지된다(김한수 K7arong@ netsgo.com)」
우리가 잃어버린 滅私奉公이란 정신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어른의 이야기에서 감동받은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관―공직자의 가치관 때문이다. 鐵道員은 公職者이다. 철도 공무원 오토마츠 驛長의 가치관은 다름아닌 「滅私奉公(멸사봉공)」이었다. 한국의 개발연대, 혹은 개발독재로 폄하되어온 시대만 해도 공직사회에는 「滅私奉公」이 상식이던 때가 있었다. 公益을 위해 私益을 희생하는 것이 善이던 한국 공직사회의 저변에는 영화 「鐵道員」처럼 「비장감」과 「절제의 美德」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부하가 쏜 총을 맞고도 『난 괜찮아』라고 마지막 말을 내뱉은 朴正熙 대통령에서부터 전방을 지키다 인민군과의 총격전에 전사한 군인들, 京釜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순직한 77명의 근로자들, 교단에서 과로로 숨져간 교사들…까지.
오늘날 청년세대들에게 기를 못 펴는 우리의 기성세대는 鐵道員의 사토 오토마츠 역장 못지않은 「피와 땀과 눈물」로 GNP 80달러의 후진국을 貿易高 세계 11위까지 끌어 올리는 民族史의 기적을 일궈낸 主役들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시대를 제대로 보려는 正直性과 眞正性을 잃고 이웃 나라 영화를 통해서만 감동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영화 「鐵道員」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만한 단초가 될 것이고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이 비극이건 희극이건 상관없이, 흘러간 역사의 殘影이란 점에서 이젠 담담하게 볼 만한 영화이다. 늦은 밤, 가족과 함께 화장지로 눈물을 훔치고 나면 世代간의 마음의 거리도 훨씬 좁혀지게 될 아름다운 한 편의 이 영화를 권한다.●
이 영화에 주연으로 나온 다카쿠라 켄(高創 建)은 1987년 미국과 합작한 영화 「블랙 레인」에서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와 열연했고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영화 「鐵道員」은 짧은 머리에 과묵한 연기로 일본인들에게 국민배우로 사랑받는 다카쿠라 켄이 1957년 데뷔 이후 202번째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무대는 하얀 눈이 덮인 일본 北海道(북해도) 구석의 호로마이(幌舞) 驛(역)이다. 실제로는 北海道의 이쿠도라(幾寅) 驛을 모델로 촬영했고 이쿠도라 역은 이 사실을 홍보하며 이제는 관광자원으로 삼고 있다. 일본의 국영기업이던 國鐵이 구조조정을 거쳐 민간회사 JR로 재편성되던 1987년 무렵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일본 철도는 1948년부터 1987년까지 國鐵이 운영하면서 60조엔의 부채를 안게 됐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일본 정부는 이 무렵 「국철 청산 사업단」에 의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약 1600km의 구간을 폐쇄한 바 있다.
「鐵道員」의 무대는 폐광이 되어버린 작은 광산도시의 마지막 역이다. 광부들도 떠나고 젊은이들은 집단취업차 도시로 나가버린 한적한 시골. 가장 큰 고객이었던 통학생들조차 없어지자 철도 당국은 그나마 기동차 한 대만을 운행해 오던 것도 포기한다. 廢線(폐선)의 시기를 정년퇴임과 함께 맞이하는 사람은 주인공인 사토 오토마츠(다카쿠라 켄 役) 驛長.
그는 아버지의 代를 이어 철도원이 되었고 기관사를 거쳐 말년에는 한적한 시골 역의 역장으로 근무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제 시간에 나와 不動자세로 열차를 기다리고 서 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떠나는 열차 뒤를 향해 『후부 요시(後部 良好)!』, 『신고 요시(信號 良好)!』 라고 외치며 원칙대로 최종 점검을 한다.
그는 업무에 대한 성실성 때문에 감기에 걸린 어린 딸을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죽게 했고, 부인이 병실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社則에 따라 교대 근무자를 기다리다 임종을 놓친다.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차가 구내로 들어오면 무표정한 얼굴로 깃발을 들어 올리고, 손님들을 끝까지 안내한 뒤 자식의 시체를 맞이한다. 부인(시즈에)이 죽은 뒤에 병원에 도착해 부인의 시신 앞에서도 오열을 터뜨리기는커녕 울음을 애써 참는다.
보다 못한 부인의 친구가 『시즈에를 위해 울어 줄 수 없겠어요?』라고 하자 그는 『나는 철도원이니까요. 집안 일로 울 수 없습니다』라며 입술을 깨문다. 영화는 이런 무뚝뚝한 남자가 평생 죽은 부인과 자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안고 산다는 이야기를 「비장감」과 「節制美」로서 보여주고 있다. 구조는 그렇게 간결하다. 하지만 1시간 30분 동안 영화는 관객의 가슴을 흠뻑 적시게 만들어 버린다.
이 영화는 1997년 일본의 베스트 셀러 작가 아사다 지로(淺田 次郞)의 同名소설이 원작이다. 그는 140만 부가 팔린 이 소설로 제117회 나오키 文學賞을 탔다. 영화는 1999년에 일본에서 개봉되어 4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월4일 개봉되어 지금은 비디오로 出市(출시)되었다.
한국 청년들의 感動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의 주된 관객층은 20~30代라고 한다. 이들이 본 감동깊은 장면은 대개 다음과 같은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장인정신을 우린 과연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나 역시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오토마츠처럼 내 직업에 대한 장인 정신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답은 노(No)였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오토마츠의 삶이 아름답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인 diain@yahoo.co.kr)」
「특히 오토役을 연기한 다카쿠라 켄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완고하고 절제된 표정이 만들어 내는 어찌할 수 없는 쓸쓸함과 회한. 그가 모든 감정을 참아내고 자신의 신념에 찬 차디찬 표정을 만들어 내면 만들어 낼수록 더욱 보는 이의 눈가를 적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좋은 영화 한 편.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상 속에 가슴 한구석이 저려 오는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는 영화이다(김휘주 proust2@netsgo.com)」
「여하간 이런 감동적인 영화를 단지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니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막기보다 그 이면에 감추어진 모습을 보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원 codante@unitel.co.kr)」
「자본주의적인 성공의식이 무엇인가? 한 자리나 해야 하고, 큰 재산이나 모으든지, 사건을 쳐서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자만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적인 보통의 의식에 대해서 이 작품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이름 한 번 못 날리고 한 평생 살아왔지만 부끄럼 없이 충성된 삶을 살아오던 모든 이들에게 자기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해 준다. 세계는 巨匠과 영웅들만의 것이 아니다. 세계는 순수하고 아름답게 자기의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다 떠난 모든 이들의 것이며 그들의 역사로 유지된다(김한수 K7arong@ netsgo.com)」
우리가 잃어버린 滅私奉公이란 정신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어른의 이야기에서 감동받은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관―공직자의 가치관 때문이다. 鐵道員은 公職者이다. 철도 공무원 오토마츠 驛長의 가치관은 다름아닌 「滅私奉公(멸사봉공)」이었다. 한국의 개발연대, 혹은 개발독재로 폄하되어온 시대만 해도 공직사회에는 「滅私奉公」이 상식이던 때가 있었다. 公益을 위해 私益을 희생하는 것이 善이던 한국 공직사회의 저변에는 영화 「鐵道員」처럼 「비장감」과 「절제의 美德」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부하가 쏜 총을 맞고도 『난 괜찮아』라고 마지막 말을 내뱉은 朴正熙 대통령에서부터 전방을 지키다 인민군과의 총격전에 전사한 군인들, 京釜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순직한 77명의 근로자들, 교단에서 과로로 숨져간 교사들…까지.
오늘날 청년세대들에게 기를 못 펴는 우리의 기성세대는 鐵道員의 사토 오토마츠 역장 못지않은 「피와 땀과 눈물」로 GNP 80달러의 후진국을 貿易高 세계 11위까지 끌어 올리는 民族史의 기적을 일궈낸 主役들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시대를 제대로 보려는 正直性과 眞正性을 잃고 이웃 나라 영화를 통해서만 감동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영화 「鐵道員」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만한 단초가 될 것이고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이 비극이건 희극이건 상관없이, 흘러간 역사의 殘影이란 점에서 이젠 담담하게 볼 만한 영화이다. 늦은 밤, 가족과 함께 화장지로 눈물을 훔치고 나면 世代간의 마음의 거리도 훨씬 좁혀지게 될 아름다운 한 편의 이 영화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