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만화를 原作으로 삼은 영화
오늘날 한국의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의 심중을 잘 이해할 만한 방법은 없을까.
비디오 대여점에서 한국 영화 「비트」(Beat-「때리다」란 의미, 우노 필름 제작)를 빌려다 114분만 할애해 보길 권한다.
이 영화는 1997년 상반기에 개봉되어 당시 35만명이란 최고 관객 동원을 기록하면서 침체기에 머물렀던 한국 영화를 일깨운 작품이었다. 액션 장르의 영화로 18세 미만 관람不可(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내용은 막 열아홉 살이 된 소년의 스물 한 살 때까지 이어지는 반항의 궤적을 사실적, 역동적으로 담아낸 秀作(수작)이다. 이때문에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액션 장르 영화라기보다 청소년 성장물로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영화 「비트」는 1997년부터 이듬해 말까지 만화 주간지 「영챔프」에 연재했던 만화 「비트」를 原作(원작)으로 삼고 있다. 만화가들 사이에서 데생 실력이 최고로 꼽히는 허영만씨와 은둔의 스토리 작가 박하씨가 공동작업한 만화 「비트」는 잡지에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고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영화제작에 들어간 경우다.
활자매체인 책을 통해서만 인문적 교양을 쌓았던 기성세대들은 만화와 영화 같은 시각 영상 매체를 오락물로 간주해 버리는 先入見(선입견)이 있다. 1895년 영화가 발명된 이래(만화도 비슷한 시기에 우리에게 소개됐다) 1세기를 거치면서 만화와 영화는 長足(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오늘날 두 매체는 종래의 문학만이 담당하던 인문 교양적 기능을 포함하여 오락적 기능에서 정치적 선동 기능에 이르기까지 상업주의를 발판으로 거대하게 성장했다. 그 결과 40代 이하의 청장년층에게 만화와 영화는 한 권의 책에 버금가는 정보 오락 교양의 공급처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 「신세대」의 동의어로 쓰이는 「영상세대」, 「만화세대」란 용어는 「책 읽기를 싫어하는 세대」란 의미가 포함된다. 책을 통해서만 인문 교양을 섭렵해야 했던 기성세대의 젊은 시절은 만화와 영화의 기능이 통속의 범주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작품 「비트」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 만화와 영화라는 두 줄기 문화 산업이 우리 사회에서 핀 꽃이기도 하다.
영화 「비트」는 김성수 감독, 김형구 촬영감독, 이강산 조명감독이 팀워크를 이뤄 당시의 한국 영화로서는 탁월한 스타일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 보통 영화가 1000컷 미만으로 촬영되는 데 비해 이 영화는 무려 1542컷으로 세분하여 촬영, 편집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빠르다」는 실감을 느끼게 했다.
패싸움 장면은 흐릿한 「스텝 프린팅 기법」을 이용하기도 했고 주인공의 動線(동선)을 따라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찍는 「들고 찍기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폭력의 실감보다 주인공의 움직임이 실감난다. 애정 장면에서는 독백과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을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접근하게 만든다.
여기에 정우성, 임창정, 유오성, 고소영 등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력이 20代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다. 助演(조연)인 「환규」역을 맡았던 임창정은 열아홉 살 반항기 많은 청소년들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밤마다 서울 화양리 등 중 고등학생들이 모인 곳을 돌아다니며 이들의 행동과 말투, 욕설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덕에 배우 임창정은 이 작품을 통해 탁월한 조연배우로 주목받았다.
꿈 없는 아웃사이더들의 고독
이 영화는 잘 생긴 외모와 달리 타고난 싸움꾼이자 고독한 아웃사이더(Outsider)인 주인공 이민(정우성 役)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아직 꿈이 없었다. 열아홉 살이 되었지만 내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태수와 어울려 다니며 툭하면 싸움질을 벌였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들은 엄밀히 반항과 무관한 기성정치 세력의 후보군에 불과하다. 오늘날 운동권으로 통칭되는 청년집단은 일면 체제에 반항하는 젊은 층이란 점에서 청년문화의 범주에 들기도 하지만, 이들이 또 하나의 이념을 견지하고 기성세대와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청년문화와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심야에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소년들이 이 땅의 순수한 청년문화의 주역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기성세대로부터 소외받는 이유는 같은 세대이면서도 일찍부터 정치화되어버린 운동권 세력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비트」는 주인공 이민과 함께 태수(유오성 役), 환규(임창규 役), 로미(고소영 役) 등 네 사람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모두가 高3인 이들은 가정, 학교, 제도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는 데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부유층 집안의 외동딸 로미의 경우는 내신 1등급의 서울대학교 지망생이었지만 친구가 成績(성적) 비관으로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병원 신세를 진다. 상류층 부모답게 이 여학생의 부모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며 격려하지만, 로미는 꺾여진 날개를 다시 펼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의 기대와 격려를 향한 저항으로 家出(가출)을 선택해 주인공 민과 동거한다. 로미는 애인인 민과의 애정관계가 안정될수록 다시금 向學(향학)의 꿈을 키운다.
「Let It Be-내버려 두려무나」
원작가 박하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생 중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 하지 못하고 좌절합니다.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운동권 문화를 만든다고 하지만 이들은 인사이더(Insider)들입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진학한 이들보다 인간적으로 덜 됐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우정과 의리 같은 기초적인 가치관에 더욱 적극적인 세대입니다.
선진국에서는 공부만이 아닌 작은 기술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갈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천대받고 살라는 식이지요. 거기에다 각종 압박이 가해집니다. 성장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청년들이 안타깝죠』
이 영화엔 청년문화의 상징물인 오토바이가 자주 등장한다. 오토바이로 시속 250km에 도달하면 전방은 하나의 점으로만 보이고 주변 풍경은 공기의 굴절에 의해 희미하게 일그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주인공 이민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면서 이런 독백을 한다.
『속도감이 최고에 도달하면 세상이 고요해지고 하나의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하지만 저 소실점은 다가갈수록 더 멀어져버리지』
탈출하고 싶은 현실과 다가서고 싶은 꿈과의 괴리. 요즘 젊은이들의 오토바이타기는 주인공의 독백에서 묻어나오는 탈출욕구의 대리표현일 것이다. 영화 「비트」는 열여덟 살에서 스물한 살에 이르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겪는 좌절과 고독과 반항을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내버려두라)」에 담아 하나로 묶어냈다.
올드 팝송이 주제가로 사용된 데에도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원작자 박하씨는 『내버려 두라는 말처럼 이들에게 절실한 것도 없을 것』이라고 選曲(선곡)한 이유를 말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한국 영화 「비트」(Beat-「때리다」란 의미, 우노 필름 제작)를 빌려다 114분만 할애해 보길 권한다.
이 영화는 1997년 상반기에 개봉되어 당시 35만명이란 최고 관객 동원을 기록하면서 침체기에 머물렀던 한국 영화를 일깨운 작품이었다. 액션 장르의 영화로 18세 미만 관람不可(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내용은 막 열아홉 살이 된 소년의 스물 한 살 때까지 이어지는 반항의 궤적을 사실적, 역동적으로 담아낸 秀作(수작)이다. 이때문에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액션 장르 영화라기보다 청소년 성장물로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영화 「비트」는 1997년부터 이듬해 말까지 만화 주간지 「영챔프」에 연재했던 만화 「비트」를 原作(원작)으로 삼고 있다. 만화가들 사이에서 데생 실력이 최고로 꼽히는 허영만씨와 은둔의 스토리 작가 박하씨가 공동작업한 만화 「비트」는 잡지에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고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영화제작에 들어간 경우다.
활자매체인 책을 통해서만 인문적 교양을 쌓았던 기성세대들은 만화와 영화 같은 시각 영상 매체를 오락물로 간주해 버리는 先入見(선입견)이 있다. 1895년 영화가 발명된 이래(만화도 비슷한 시기에 우리에게 소개됐다) 1세기를 거치면서 만화와 영화는 長足(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오늘날 두 매체는 종래의 문학만이 담당하던 인문 교양적 기능을 포함하여 오락적 기능에서 정치적 선동 기능에 이르기까지 상업주의를 발판으로 거대하게 성장했다. 그 결과 40代 이하의 청장년층에게 만화와 영화는 한 권의 책에 버금가는 정보 오락 교양의 공급처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 「신세대」의 동의어로 쓰이는 「영상세대」, 「만화세대」란 용어는 「책 읽기를 싫어하는 세대」란 의미가 포함된다. 책을 통해서만 인문 교양을 섭렵해야 했던 기성세대의 젊은 시절은 만화와 영화의 기능이 통속의 범주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작품 「비트」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 만화와 영화라는 두 줄기 문화 산업이 우리 사회에서 핀 꽃이기도 하다.
영화 「비트」는 김성수 감독, 김형구 촬영감독, 이강산 조명감독이 팀워크를 이뤄 당시의 한국 영화로서는 탁월한 스타일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 보통 영화가 1000컷 미만으로 촬영되는 데 비해 이 영화는 무려 1542컷으로 세분하여 촬영, 편집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빠르다」는 실감을 느끼게 했다.
패싸움 장면은 흐릿한 「스텝 프린팅 기법」을 이용하기도 했고 주인공의 動線(동선)을 따라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찍는 「들고 찍기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폭력의 실감보다 주인공의 움직임이 실감난다. 애정 장면에서는 독백과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을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접근하게 만든다.
여기에 정우성, 임창정, 유오성, 고소영 등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력이 20代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다. 助演(조연)인 「환규」역을 맡았던 임창정은 열아홉 살 반항기 많은 청소년들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밤마다 서울 화양리 등 중 고등학생들이 모인 곳을 돌아다니며 이들의 행동과 말투, 욕설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덕에 배우 임창정은 이 작품을 통해 탁월한 조연배우로 주목받았다.
꿈 없는 아웃사이더들의 고독
이 영화는 잘 생긴 외모와 달리 타고난 싸움꾼이자 고독한 아웃사이더(Outsider)인 주인공 이민(정우성 役)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아직 꿈이 없었다. 열아홉 살이 되었지만 내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태수와 어울려 다니며 툭하면 싸움질을 벌였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들은 엄밀히 반항과 무관한 기성정치 세력의 후보군에 불과하다. 오늘날 운동권으로 통칭되는 청년집단은 일면 체제에 반항하는 젊은 층이란 점에서 청년문화의 범주에 들기도 하지만, 이들이 또 하나의 이념을 견지하고 기성세대와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청년문화와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심야에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소년들이 이 땅의 순수한 청년문화의 주역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기성세대로부터 소외받는 이유는 같은 세대이면서도 일찍부터 정치화되어버린 운동권 세력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비트」는 주인공 이민과 함께 태수(유오성 役), 환규(임창규 役), 로미(고소영 役) 등 네 사람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모두가 高3인 이들은 가정, 학교, 제도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는 데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부유층 집안의 외동딸 로미의 경우는 내신 1등급의 서울대학교 지망생이었지만 친구가 成績(성적) 비관으로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병원 신세를 진다. 상류층 부모답게 이 여학생의 부모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며 격려하지만, 로미는 꺾여진 날개를 다시 펼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의 기대와 격려를 향한 저항으로 家出(가출)을 선택해 주인공 민과 동거한다. 로미는 애인인 민과의 애정관계가 안정될수록 다시금 向學(향학)의 꿈을 키운다.
「Let It Be-내버려 두려무나」
원작가 박하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생 중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 하지 못하고 좌절합니다.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운동권 문화를 만든다고 하지만 이들은 인사이더(Insider)들입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진학한 이들보다 인간적으로 덜 됐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우정과 의리 같은 기초적인 가치관에 더욱 적극적인 세대입니다.
선진국에서는 공부만이 아닌 작은 기술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갈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천대받고 살라는 식이지요. 거기에다 각종 압박이 가해집니다. 성장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청년들이 안타깝죠』
이 영화엔 청년문화의 상징물인 오토바이가 자주 등장한다. 오토바이로 시속 250km에 도달하면 전방은 하나의 점으로만 보이고 주변 풍경은 공기의 굴절에 의해 희미하게 일그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주인공 이민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면서 이런 독백을 한다.
『속도감이 최고에 도달하면 세상이 고요해지고 하나의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하지만 저 소실점은 다가갈수록 더 멀어져버리지』
탈출하고 싶은 현실과 다가서고 싶은 꿈과의 괴리. 요즘 젊은이들의 오토바이타기는 주인공의 독백에서 묻어나오는 탈출욕구의 대리표현일 것이다. 영화 「비트」는 열여덟 살에서 스물한 살에 이르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겪는 좌절과 고독과 반항을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내버려두라)」에 담아 하나로 묶어냈다.
올드 팝송이 주제가로 사용된 데에도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원작자 박하씨는 『내버려 두라는 말처럼 이들에게 절실한 것도 없을 것』이라고 選曲(선곡)한 이유를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