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테니스의 전설적 스타 크리스 에버트는 1980년대 말 뜻밖의 방문을 받은 일이 있다.
생면부지의 꼬마 흑인 여자 어린이 두명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을 찾아와 『윔블던 트로피를 구경시켜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어린이들은 은쟁반 트로피를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TV 해설가로 변신한 에버트는 2000 윔블던 준결승에서 자매를 다시 만났다. 바로 흑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비너스(20)와 세레나 윌리엄스(19)자매가 그들이다.
지난 7월6일 밤 영국 올 잉글랜드 클럽에서 벌어진 자매의 경기는 지난 1884년 윔블던 여자단식이 시작된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경기였다. 백인의 전유물이라던 테니스에서 벌어진 흑인 자매의 준결승 대결, 그것도 가장 화려한 무대인 윔블던이었다. AP통신은 이를 「역사적인 경기」라고 불렀다.
에버트는 美 NBC TV 해설도중 자매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에 세레나는 US오픈에서, 비너스는 윔블던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동생 세레나는 99 US오픈 챔피언에 올랐고 비너스는 2000윔블던에서 동생을 누르고 결승까지 진출, 결국 우승컵을 거머쥐어 테니스의 새 역사를 썼다. 흑인의 윔블던 우승은 지난 1958년 알테아 깁슨 이후 42년만의 일이다.
비너스는 테니스 엘리트들과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동갑내기 라이벌인 마르티나 힝기스는 열성 어머니의 계획에 따라 성공의 계단을 착착 밟아온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힝기스는 6세 때 이미 오버해드 스매싱을 자유롭게 구사한 천재 소녀였고 주니어 서키트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비너스도 열성 아버지의 뜻에 의해 어릴 때부터 라켓을 잡은데까지는 일치한다. 그러나 비너스의 부친 리처드는 『어린 소녀가 너무 일찍 돈맛을 봐선 안된다』는,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워 딸의 주니어대회 진출을 막았다. 결국 비너스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어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비너스가 힝기스처럼 주니어대회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투신했다면 벌써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몇 개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너스가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것은 부친이 우연히 시청하던 TV 테니스 경기에서 우승자가 수표를 받아드는 모습을 본 뒤였다고 한다. 부친은 아내 오러신에게 『우리 딸들도 테니스를 시키자』고 즉석 제의했고 자매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비너스는 동생 세레나와 함께 악명높은 빈민가인 캘리포니아 콤튼의 아스팔트 코트에서 라켓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당시 비너스는 아버지가 연습을 중간에 그만두려고 하면 울면서 매달릴 만큼 테니스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번은 총격전에 휘말려 죽을 고비도 넘겼다. 집단 세력다툼을 벌이던 갱단이 자매가 연습중이던 아스팔트 코트에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던 것. 자매는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비극을 면했지만 참으로 기막힌 환경에서 자라난 셈이다.
자매는 테니스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정규교육과 인연을 끊는 동료들과 달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지금도 언니 비너스는 대학에서, 동생은 고교에서 숙제와 씨름을 한다. 비너스-세레나 자매가 라이벌 마르티나 힝기스와 설전을 벌일 때마다 『무식하다』며 면박을 주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특히 언니 비너스는 자신의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으며 외국어에 능통한 수재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리처드는 『언젠가 내 딸 둘이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맞붙게 될 것』이라 장담하고 다녔다.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라 오히려 예언이었던 셈이다.
비너스와 세레나는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 비너스와 세레나 모두 시속 190㎞에 육박하는 강서브를 갖고 있으며 흑인 특유의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지난해 윔블던 챔피언인 강타자 린지 대븐포트는 『우리 동료 선수들은 윌리엄스 자매의 테크닉이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의 힘과 스피드에다 기술까지 겸비한다면 사실상 당해낼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실토한 바 있다. 두 자매가 그랜드슬램 결승전 자매대결이라는 현대 테니스 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 것 같다.●
생면부지의 꼬마 흑인 여자 어린이 두명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을 찾아와 『윔블던 트로피를 구경시켜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어린이들은 은쟁반 트로피를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TV 해설가로 변신한 에버트는 2000 윔블던 준결승에서 자매를 다시 만났다. 바로 흑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비너스(20)와 세레나 윌리엄스(19)자매가 그들이다.
지난 7월6일 밤 영국 올 잉글랜드 클럽에서 벌어진 자매의 경기는 지난 1884년 윔블던 여자단식이 시작된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경기였다. 백인의 전유물이라던 테니스에서 벌어진 흑인 자매의 준결승 대결, 그것도 가장 화려한 무대인 윔블던이었다. AP통신은 이를 「역사적인 경기」라고 불렀다.
에버트는 美 NBC TV 해설도중 자매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에 세레나는 US오픈에서, 비너스는 윔블던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동생 세레나는 99 US오픈 챔피언에 올랐고 비너스는 2000윔블던에서 동생을 누르고 결승까지 진출, 결국 우승컵을 거머쥐어 테니스의 새 역사를 썼다. 흑인의 윔블던 우승은 지난 1958년 알테아 깁슨 이후 42년만의 일이다.
비너스는 테니스 엘리트들과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동갑내기 라이벌인 마르티나 힝기스는 열성 어머니의 계획에 따라 성공의 계단을 착착 밟아온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힝기스는 6세 때 이미 오버해드 스매싱을 자유롭게 구사한 천재 소녀였고 주니어 서키트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비너스도 열성 아버지의 뜻에 의해 어릴 때부터 라켓을 잡은데까지는 일치한다. 그러나 비너스의 부친 리처드는 『어린 소녀가 너무 일찍 돈맛을 봐선 안된다』는,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워 딸의 주니어대회 진출을 막았다. 결국 비너스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어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비너스가 힝기스처럼 주니어대회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투신했다면 벌써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몇 개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너스가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것은 부친이 우연히 시청하던 TV 테니스 경기에서 우승자가 수표를 받아드는 모습을 본 뒤였다고 한다. 부친은 아내 오러신에게 『우리 딸들도 테니스를 시키자』고 즉석 제의했고 자매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비너스는 동생 세레나와 함께 악명높은 빈민가인 캘리포니아 콤튼의 아스팔트 코트에서 라켓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당시 비너스는 아버지가 연습을 중간에 그만두려고 하면 울면서 매달릴 만큼 테니스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번은 총격전에 휘말려 죽을 고비도 넘겼다. 집단 세력다툼을 벌이던 갱단이 자매가 연습중이던 아스팔트 코트에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던 것. 자매는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비극을 면했지만 참으로 기막힌 환경에서 자라난 셈이다.
자매는 테니스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정규교육과 인연을 끊는 동료들과 달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지금도 언니 비너스는 대학에서, 동생은 고교에서 숙제와 씨름을 한다. 비너스-세레나 자매가 라이벌 마르티나 힝기스와 설전을 벌일 때마다 『무식하다』며 면박을 주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특히 언니 비너스는 자신의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으며 외국어에 능통한 수재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리처드는 『언젠가 내 딸 둘이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맞붙게 될 것』이라 장담하고 다녔다.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라 오히려 예언이었던 셈이다.
비너스와 세레나는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 비너스와 세레나 모두 시속 190㎞에 육박하는 강서브를 갖고 있으며 흑인 특유의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지난해 윔블던 챔피언인 강타자 린지 대븐포트는 『우리 동료 선수들은 윌리엄스 자매의 테크닉이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의 힘과 스피드에다 기술까지 겸비한다면 사실상 당해낼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실토한 바 있다. 두 자매가 그랜드슬램 결승전 자매대결이라는 현대 테니스 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