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은 동양의 영국, 한국은 동양의 프랑스가 되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자』
『한국인은 일본인의 사과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구로다) 『일본 지식인은 한국을 차별해야 직성이 풀리는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許文道)
『한국인은 일본인의 사과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구로다) 『일본 지식인은 한국을 차별해야 직성이 풀리는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許文道)
國家主義者들의 對面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서구화에 성공한 日本, 그리고 그 일본에 가장 가까이 위치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朝鮮(조선)의 20세기는 友好보다 反目(반목)과 憎惡(증오)로 점철된 시대이기도 했다.
月刊朝鮮은 21세기 韓日間 새로운 관계 모색을 위해 知日派 논객으로 일본 사회에서 유명한 許文道(허문도·59) 전 통일원 장관과 知韓派(지한파) 논객으로 잘 알려진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58·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씨를 초빙해 對談을 진행했다. 평소 이 두 사람은 말과 글로써 각각 自國의 國益을 수호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國家主義者(국가주의자)라 할 만하다. 許文道 전 장관은 朝鮮日報 동경특파원, 駐日 대사관 공보관을 역임하는 등 12년간 일본에 체류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구로다 가쓰히로 지국장은 지금까지 17년간 한국에 체류해 오면서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 등 17권의 한국 관련 책을 출판한 한국 전문가이다. 대담은 1999년 12월7일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서울의 한 시내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이 힘이 있어야 얕보지 않는다』 (구로다 가쓰히로)
許文道 『최근 일본에 머물면서 오사카의 중심가에 위치한 한국인이 경영하는 술집에 갔습니다. 그 집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요즘은 일본 사람들로부터 나쁜 소리는 듣지 않지요?」하고 물었더니 요즘도 술집에 와서 노골적으로 「조센진은 글러먹었다」고 막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자세히 캐물으니 일본인의 60~70代(대)는 거의 그런 인식을 하고 있다는군요. 오히려 50代 이하로 내려갈수록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가」 하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60~70代란 1920~1930年代에 출생한 사람들이지요.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뒤 한국 사람들을 노예 부리듯 할 때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韓日 우호를 가로막는 이 세대가 빨리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듣고 있던 구로다 지국장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고개를 약간 숙이며 한 손으로 안경테를 잡아 고쳐 쓰고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는 유창한 한국말을 약간 느릿한 어조로 시작했다.
구로다 가쓰히로 『우선 일본 사회에 그런 점이 남아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우리 언론도 여론을 잘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고치려면 기본적으로는 특히 본국(한국)에 있는 한국 사람과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잘 되어야, 그래서 나라가 힘이 생겨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남의 나라 사람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노력 없이 일본 사람들에게만 이건 안되겠다, 고쳐야겠다고 아무리 설득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이죠.
저는 일본인들이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편견, 차별의 문제는 한국인 스스로 노력하면 당연히 없어지는 것이란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지난 20년 사이에 대한민국이 고도성장을 했고 올림픽이다 뭐다 해서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이유는 일본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란 점입니다. 그것도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나무랐기 때문에 좋아진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열심히 살아오면서 나라를 발전시켰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朝鮮 通信使의 차별의식과 현대 일본인의 차별의식
許장관은 구로다 지국장의 주장에 대해 『한국이 좋아지면 좋아진 만큼 한국 사람들을 좋게 본다는 말은 뭐, 당연한 것이고』라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는 즉시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許文道 『문제는 일본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심성에 있다고 봐요. 한 20~30년간 韓日 문제를 다루는 일본의 논객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은 옆사람과 자신과의 다른 점을 반드시 차별구조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심성을 갖고 있어요. 오늘 이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구로다 『그건 이해하기 힘들지요? 장관님께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백년 전, 근대화 이전까지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중국 문화권에서 우등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朝鮮通信使(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둘러보고 와서 쓴 보고서가 많이 남아 있지요. 그걸 보면 당시 조선 사람들 역시 우리 일본인들을 하나의 미개인, 문화가 뒤떨어진 민족이라고 보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중국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 시대가, 세계사가 변해서 서양문명이 아시아 문화권까지 들어와 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이 먼저 서양문명을 받아들였고 오늘날에는 그것이 하나의 가치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서양 문명의 기준에서 볼 수밖에 없고, 한국이 우리(일본)보다 뒤떨어졌다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런 인식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許 『그런데, 옆사람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옆사람은 이런 이런 식으로 산다는 것과는 다르지요. 일본 논객들이 뭔가 옆사람이 자기보다 못하다는 것을 찾아내 인식해야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식으로만 對韓(대한) 인식을 하는 한 현실적으로는 어떤 문제와 상관없이 兩(양) 국민의 마음속에는 갈등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21세기는 어차피 韓日 우호관계로 가야 합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은 우리만큼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차피 비슷한 얼굴, 가까운 이웃, 게다가 따지고 보면 비슷한 젓가락 문화권에 유사한 사고방식이어서 함께 살지 않으면 둘 다 피곤해지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겁니다. 21세기에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상호간의 이해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노력해서 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서로가 고쳐야 할 과제를 발견하고 노력하면 진짜 친구가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구로다 『장관님,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일본 사람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한 차별구조가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이죠?』
許文道 『차별구조 속에서 상대를 인식하는 인식성향이 있다…』
『일본은 문화 상대주의까지 왔는데…』 (구로다)
구로다 『그런데 우리 일본 사람들이 단순히 「우리와 한국 사람들이 다르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들이 못된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일본 사람들의 의식이 폐쇄적이고, 국가가 폐쇄적인 측면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일본 사람 자체가 의식이 다양화되고 다른 문화를 비교 문화적 관점에서 평가합니다.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멸시하거나 천시하지 않고, 다른 만큼 그 존재에 대한 가치 인정을 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거예요. 문화 상대주의라 할까 뭐 그런 수준까지 온 겁니다. 우리와 다르다 해서 비판한다는 지적은 시대 흐름을 볼 때, 안 맞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또 하나는 그렇다면, 무엇이 許장관에게 차별구조로 비쳐졌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게 있어요.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똑같이 지향하는 가치가 있을 것 아닙니까. 예를 들면, 자본주의다, 민주주이다, 자유주의다, 또는 환경이다, 인권이다 하는 등의 이런 가치가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결국 「서양 근대화」죠. 그걸 기준으로 우리 일본 사람들이 이만큼 진보해 왔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 사람들은 이런저런 것을 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 세계가 안타깝게도 서양문명 중심으로 되어 있어요. 아마 21세기도 마찬가지로일 가능성이 크지요. 그렇다면 그걸 기준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許文道 『서양화, 근대화라든지 간에 일본에게 우리가 뒤진 점이 많아요. 그런데 한국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만, 출발이 늦어져서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다는 인식과, 한국은 이런저런 식으로 해서 현재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탁 내뱉듯이 인식하고 쓰는 것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구로다 상이 쓰는 글을 봐도 그렇고, 일본 우파 지식인들이 쓴 글을 봐도 그렇습니다. 뭔가 한국을 잘 아는 일본 우파 지식인들의 글에서는 「이거 약간 웃기는 구석이 있다」는 표현을 즐기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許 전 장관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구로다 지국장은 연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비아냥거린다 이거죠?』라고 확인해 주었다. 許 전 장관의 말이 더욱 강한 톤으로 변했다.
『한국을 투시하는 일본인의 수준이 높다』 (許文道)
許文道 『예를 들면, 일본서 유학하던 무렵, 일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느낀 겁니다만, 이 친구가 새로 나온 마크2란 차를 샀어요.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나는 이제야 네 차와 수준 차이를 두게 됐다」고 기뻐하는 겁니다. 친구간에도 상하 인간관계에 있어서 縱的(종적)인 관계로, 차별적인 구조로 인식하는 겁니다. 한국에는 그런 어법이 없어요. 차이를 두게 되었다는 식의 어법. 일본인들에게는 이웃간에도 그런 식의 인식이 있어요.
과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 먹을 것을 두고 싸워야 했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한쪽이 먹게 되면 다른 한쪽이 굶게 되는 시대였지요. 그러나 21세기는 더 이상 獨食(독식)할 수 없는, 그래서 함께 잘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 지식인들은 그 前 시대가 남긴 인식방식을 여지없이 갖고 가려고 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자꾸 합리화하려 하지 말고(구로다 지국장이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서로를 위하는 인식방식을 개발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구로다 지국장의 손이 許 전 장관의 말문을 막으려 몇 번 들어 올려졌다), 예를 들면 (구로다 지국장은 「장관님 잠깐만」하고 도중에 끼어 들었지만 許 전 장관은 무시했다) 한국 사람들이 日王(일왕)이라 했다고 해서 여러 가지 글로 쓰는데 그런 식으로 보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참다 못한 구로다 지국장은 許 전 장관의 말이 끝나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도록 재빨리 말을 시작했다.
구로다 『그런데 비슷한 면은 한국측에도 있다는 것이죠. 공개적으로는 말 안하지만 구석구석에서 일본 욕하고 비판하고 그러지요. 재미삼아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대학가에서 읽히는 책들 보세요. 일본사람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다 웃기지도 않는 책들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괜찮은 책이지만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고, 일본이 있네 없네 하면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책들이 엄청 많이 나와 있지요. 스포츠 신문을 보면 일본 정복을 주제로 한 책 광고가 자주 나옵니다. 매일 연재되는 만화나 소설도 일본 정벌전쟁이 주제입니다. 또….
이건 지구상의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지역일수록 서로가 잘 보이니까 재미있게 농담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하는 거지요. 특별히 韓日간에만 그런 점이 있다든지, 일본 사람에게만 그런 성향이 있다는 건 아니잖습니까. 제대로 모르는 말이에요. 그건 당연히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해서…』
許文道 『맞긴 하지만, 거기에 내가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도가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도보다 더 심해요. 그리고 한국의 눈(目·지식인의 수준을 의미)이 일본 사회를 투시하는 정도보다 일본의 눈이 한국 사회를 투시하는 정도가 훨씬 높습니다. 이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술좌석에서 일본인들을 비판하는 사소한 말까지 일본 사회에 전달되는 정도니까요. 여기 우리 구로다 상은 그중 챔피언에 속하지요』
許 전 장관의 공격은 계속됐다.
『우리 구로다 상은 일본 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입장에 있거든(구로다 지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안경을 벗어 렌즈를 마구 문지르기 시작한다. 절대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단호함이 안경 벗은 얼굴에 배어 있다). 뭐, 내가 서두에 말했다시피 일본인 전체가 아니라 60~70代의 일본인이 그렇다는 거지요. 우리 구로다 상도 내일 모레 60代가 되니까…』
구로다 지국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許 전 장관은 여유를 찾은 듯 느긋하게 말을 계속했다.
『일본인도 피해의식이 있다』 (구로다)
『그렇게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의 한국인觀(관)을 갖고 있어요. 식민지 시대의 한국 사람들이란 일본 우파 지식인들이 잘 파악했듯이 자주성이 없고 주체의식이 없고 타율적인 집단 속에 묻혀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정상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적할 것들이야 너무 많지요. 한국이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그 무렵엔 오늘날 일본의 60~70代 지식인들, 특히 한국을 잘 안다는 우파 지식인들은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점점 더 목청이 높아진다). 왕자처럼, 귀족처럼 군림할 수 있었던 그런 유년시절이란 모든 인간에게 마음의 고향이거나 失樂園(실낙원) 같은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60~70代 지식인들은 잊을 수 없는 그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회귀본능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요. 내 충분히 이해하지』
구로다 지국장은 도저히 수긍 못하겠다는 듯 가만 듣고만 있었다.
『뭐, 「한국에 대해서 잘 안다」 「충분히 이해한다」하면서 객관적으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을 따라가 보면 결국은 어린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에 결론이 맺혀 있는 겁니다.
오늘날 일본의 論爭史(논쟁사)에 일본 좌파 논객들은 잊혀진 존재들입니다. 우파 논객들이 석권해버린 지 오래되었거든요. 그래서 일본 우파 논객들이 갖고 있는 한국관이 일본의 對韓 인식을 리드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술자리서 던지는 사소한 말까지 공개적으로 끌어냅니다. 그러니 일본 국내에서는 당장 反韓감정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예들이 많은데…』
구로다 지국장이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발언권을 잡았다. 구로다 지국장은 설득조의 톤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본의 공식 과거사 반성, 일본도 지쳤다』 (구로다)
구로다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본 사람들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의외로 한국 사람들로부터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는 恨(한)도 갖고 있어요』
사회자 『 피해의식과 한을 일본 사람들도 갖고 있다구요?』
구로다 『예. 우리 같은 50대 이하는 戰後(전후)세대에 속하는데, 우리는 어떤 식으로 교육을 받아 왔느냐 하면, 일본 근대사는 다 잘못돼 있다, 한반도에서는 나쁜 짓을 했다, 일본 근대사는 모두 어두운 역사,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식의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이름하여 自虐史觀(자학사관)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이 교육 덕분에 戰後세대 일본인들에게는 「우리가 한국 사람들에게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심어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 일본이 옛날에 어떤 나쁜 짓을 했다, 그 때문에 항상 미안하다. 아니, 미안해야만 한다」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만나면 그같은 의미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측은 1965년 韓日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30여년 동안 계속, 언론도 외교도 「반성하라」 「사과하라」고 해 왔어요. 덕분에 일본 사람들은 몇십 년 동안 「반성하라」 「사과하라」는 말을 들어 오면서 피해의식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당하고 있다는 거예요.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만 하면 한국측은 「안된다」 「무슨 속셈인지 밝혀라」 「군국주의이다」는 식의 계속적인 비난만 해 온 겁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한풀이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최근에 들어와서 발표되는 우파 지식인들의 말과 글 속에서도 분명 그런 욕구가 드러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이만큼 커지고 잘 살게 되고 올림픽도 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와 있으면서 새삼 과거에 집착한 약자 행세를 하느냐」 이거예요. 「우리 일본은 물론 과거가 있기는 하지만, 왜 계속 사과하라며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대느냐, 우리에게 惡意(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도 하고 싶은 말을 하자」는 그런 심정이 있다는 거예요』
許 전 장관이 『아, 다 좋은데』라며 구로다 지국장의 말을 끊으려 했지만 구로다 지국장은 이번에도 양 손을 내저으며 하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 잠깐만요. 그리고요, 한국의 이름있는 거물급 정치인들도 「어떤 국민이든 그토록 오랫동안 사과하라, 반성하라는 말을 계속 들어 오면 넌덜머리가 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데 수긍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너무 과거 집착적이라 할까요, 너무 지나치다는 겁니다(웃음)』
구로다 지국장의 웃음엔 만족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한국측에 해 온 사과와 반성의 기록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로다 지국장의 말 대로 여러 번 하다 보면 피해의식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외교통상부의 자료에 따르면 해방 후 최초의 공식 사과는 1965년 2월20일 시이나 外相(외상)에 의해 최초로 言明(언명)되었다. 이후 1998년 10월 현재까지 총 26회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진정한 사과 한 적 없다』 (許文道)
許文道 『아, 그 얘기를 받아서 내가 이런 얘기 좀 할게요. 일본 입장으로서는 「과거에 대해 사과하라고 너무 그렇게 해 오니, 우리 이거 뭐 동네 북도 아니고 말이지, 만만하면 맨날 사과하라는 소리나 하고. 韓日 관계가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 정치인들이 사과나 하고 그러니 답답하다. 일본 국민들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이거 아닙니까. 일본인들로서는 속이 더 상하지요』
구로다 지국장도 수긍하는 웃음을 띠었다. 許文道 전 장관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 왔느냐는 겁니다. 일본어에는 「나카나오리(仲直り:관계 회복, 화해라는 의미-注)」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지금까지 일본이 「나카나오리」를 위해 사과해 온 것이 아니고, 외교적 차원에서 한국이 자꾸 악악대니까 일본의 首相(수상)은 악역을 대표한 역할만 해 온 겁니다.
이런 말이 옳은지는 그 다음 수순을 보면 확연해집니다. 수상이 사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고위각료가 「우리가 한국에 뭘 잘못했나. 근대화시켜 주었는데. 사과는 무슨 사과냐」라고 否定(부정)해 버립니다. 그 사과에 물을 타버리는 것이죠. 다시 사과할 필요를 일본 스스로가 자꾸 만들어 온 겁니다. 그리고는 우리 때문에 피해의식을 가졌다고 또 하소연하면서 한국을 차별적으로 인식하려 하고…』
구로다 『아니, 그런 점에서라면…』
許文道 『아니, 아니, 내 얘기를 들어보라구요』
구로다 『그럼 길게 얘기하지 마시고…』
許文道 『허허, 그래요, 그래.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왜 맨날 옛날 얘기만 하며 과거만 문제 삼느냐고 하지만, 그만큼 일본은 필요 이상으로 눈을 감고 사는 민족입니다.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선 현재나 미래가 있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가 과거와 현재에 대해 조화를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대해서 일본도 짚을 것은 짚어야 하고 한국도 맨날 과거만 얘기하지 않아야 할, 서로가 되짚어 볼 것들이 있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스스로가 먼저 진정한 「나카나오리」를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거 뭐, 피해다 자학이다 하는데, 자기들이 제대로 사회과학적인 인식을 통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고 자기들 스스로 自虐史觀이라고 하는 겁니다. 요즘 일본인들에게는 「이거 너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우리 일본인들 내면에 지나치게 정신분열적인 자학증세가 있어서 이런 역사관을 갖는 것이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해졌어요.
한국에게 경제발전도 하고 올림픽도 하고 그래서 선진국 문턱에 섰으니 여유를 가지라고 일본측은 말합니다만, 그 몇 배로, 열 배 스무 배로 일본은 성장해 있습니다. 일본이야말로 한국에 대해 열 배 백 배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나라가 되어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 문제만 나오면 일본이 오히려 과거문제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질 못하는 겁니다. 제발 21세기에는 일본이 현재의 덩치에 적합하게, 일일이 한국 사람들 술좌석에서 내뱉는 말들까지 사사건건 답하는 모습에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일본 過去史 否定 발언 총 34회
이쯤에서 이번엔 외교통산부의 「일본 정부 인사 및 政街(정가)의 過去史(과거사) 관련 부정적 발언」 기록을 살펴보자. 최초의 과거사 부정 발언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1951년 제1차 한일회담 직전에 일본 국회에서 한 연설에서였다. 그는 『이번 한일 회담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에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 국적을 주지 않는 것이며, 이민족인 소수 민족은 뱃속의 벌레로서 일본이 이것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韓日회담의 목적이다』고 했다.
이후 1998년 2월 현재까지 총 34회에 걸친 과거사 부정 발언이 계속되어 왔다.
구로다 『거, 뭐. (許장관의 말씀이)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 사과와 반성이 문제인데요.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몇 차례 사과와 반성을 했지요. 그런데 망언 비슷한 말이 나왔을 때 무얼 보고 그것이 일본 전체의 의견으로 판단하는 것이냐는 겁니다. 일개 각료가 망언한 것이 일본 전체의 인식인 듯 말씀하시는 게, 무얼 보고 그렇게 판단하시는 거냐는 거죠.
장관님을 포함해서 한국 언론들이 특히, 망언을 두고 일본 전체의 여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나 일본 사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들은 「이 망언이야말로 일본 전체의 생각이다」라고 의도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그 의도 속에는 진정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는 한국인의 본심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진정 일본인들이 사과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섭섭해 합니다』
사회자 『왜 섭섭해 한다고 보십니까』
許文道 『아니, 그건…』
구로다 『왜냐하면…』
許文道 『글쎄, 내 말 좀 …』
구로다 『이건 저…』
노근리 사건의 美國측 대응자세
사회자 『어쩔 수 없이 제가 끼어들겠습니다. 비교정치학적 사례가 될 것으로 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6·25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사건이 최근 보도되었습니다. 노근리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가해자인 미국측의 대응 행태는 피해 당사국인 한국과 한국민의 입장에서는 흡족한 것은 아닙니다만, 일본이 지난 수십년간 대응해 온 것과는 매우 다른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치적인 쇼」라고 해도,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고 사과하고 눈물까지 흘리고 돌아간 미국측 대응태도를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들은 돌아 간 뒤에도 지금까지 이 사실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이나 망언으로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있습니다』
許文道 『일본이 미국처럼 태도를 취해 왔다면 별 문제 없었을 겁니다. 일본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가 그만큼 복잡하게 되어 왔지요』
『사과 否定하는 정치적 수요가 일본 국내에 山積』 (許文道)
구로다 『노근리 사건과 비교하면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해질 것 같네요. 제 견해는 「한국 사람은 아직까지 일본에게 사과를 받을 만한 여유가 없다, 그래서 계속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말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 심리가 있다는 겁니다. 결국 한국측도 진정으로 사과받는 정신적, 물질적 여유를 갖출 때 이 문제는 일본과 상관없이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죠. 저와 같은 시각도 필요할 것입니다』
許文道 『내가 보기에 일본은 진짜 사과를 아직 한번도 안했다고 봅니다. 일본 정부가 사과하면 얼마 안 가서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 각료 내에서 튀어나옵니다. 발언한 각료는 일단 韓日관계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 각료는 정치적으로 마이너스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실수, 정치적 마이너스를 되풀이하는 겁니까.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자꾸 칭얼대니까 어쩔 수 없이 총리나 首相이 사과했지만, 그 다음 순간에 그 사과를 부정해야 속이 시원한 「정치적인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過去史를 부정하는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각에서 물러나면 다음에 국회의원 선거에 얼마든지 다시 도전해 당선될 수 있단 말이지요. 외국에 대해서는 「우리도 한국에 사과했다」는 모양새를 갖추었으니 이제 국내 정치적 수요를 위한 발언을 하자는 식으로 사과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진정한 「나카나오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제2차 대전을 촉발시킨 독일은 敗戰(패전) 후 아데나워 首相 시대부터 인접 국가인 프랑스에 대해 무척 진지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일본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독은 「우리가 너희에게 잘못했다. 철강 산업을 함께 해도 좋고, 武力(무력)을 함께 해도 좋다」고까지 했습니다. 프랑스로 하여금 「서독은 정말 우리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그리고 서독이 유럽의 一員(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행태들을 일본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과는 어디까지나 사과하는 쪽이 윤리적인 입장에서의 자의성을 갖고 해야 합니다. 일본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해야 형 노릇을 할 수 있겠다」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 전체를 보고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일본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한국이 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非폭력적인 설욕을 하는 겁니다. 구로다 상이 강조하는 경제라든지 하이테크 기술이라든지 그 어떤 것으로 일본에 대해 설욕하지 않고서는 일본 사람이 한국인을 진정한 동반자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설욕해서 가르쳐 줘야』 (許文道)
사회자 『설욕할 준비가 안됐다는 얘깁니까』
許文道 『그렇지요. 자꾸 사과하라고 해 봤자 겉으로는 해 놓고 뒤에 가서 딴소리 픽픽 하는데, 이제는 조르지 말자는 겁니다.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잖습니까. 저쪽은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설욕을 해서 알게 해 주는 방법뿐입니다』
답답했던 속마음을 다 털어버린 許 전 장관이 엽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구로다 『한 군데만 집중하면 안되지만, 장관님께서 아까 서독과 프랑스 예를 들면서 서독이 잘했고 일본이 잘못했다고 하시는데, 한국이 프랑스였다면 우리가 얼마나 서로 행복했을까요. 그런 비교에 대해서 저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韓日 관계는 아주 특수한 관계입니다』
許文道 『유태인과 독일 문제를 韓日 관계에 비추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프랑스와 서독을 비교하는 것은 말이 된다는 겁니다』
구로다 『독일 문제와 일본과는 전혀,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許文道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구로다 『(許장관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일 관계는 독일과 프랑스처럼 소박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日帝 때의 日鮮同祖論(일선동조론·일본이 선배)이란 말이 있었지요. 지금은 다 죽어버린, 쓸 수 없는 말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韓日同祖論(한일동조론)이란 말이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선배다」 「일본 황실도 백제 후손이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프랑스와 서독 간의 관계와 전혀 다른 묘한 근친 의식입니다』
일본의 朝鮮學 연구
許文道 『내가 이야기할게요. 프랑스와 서독 간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2차대전 이후 아데나워가 드골에게 취했던 정책, 역대 서독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취했던 정책들을 말하려는 겁니다. 그들은 프랑스인들의 不信(불신)을 없애면서 나토의 일원이 되었고, 프랑스의 동의를 얻어내 통일까지 해냈습니다. 이 정책들은 일본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솔직히 일본이 많이 모자라지요. 일본은 우리 보고 「옛날 같으면 남한 정도는 깔고 앉았다」는 식입니다.
또 日鮮同祖論이 어떻게 변해 왔느냐도 볼 필요가 있어요. 오늘날 일본은 백년, 백오십년 전 서양문화의 세례를 받고서 발전했지만, 그 전의 천몇백년 동안은 중국문화라기보다도, 일종의 국제문화 속에서 일본이 수혜자 입장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문화란 대륙 쪽이 중심을 이루었고 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 이동해 온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國名(국명)을 붙인 「中國문화」식 개념이 아닌 보편적 문화, 문화 그 자체였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불교는 4세기 말에 한국에 와서 6세기 초 백제 聖王(성왕)때 일본으로 건네줍니다. 이 대목을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에 왔다」고 씁니다. 중국은 나라이고, 한국은 조선반도라는 하나의 지명, 묘한 다리일 뿐입니다. 거기엔 한국 사람들이 만든 「국가」라는 묘사를 건너뛰어 버립니다. 또 「중국에서 직접 왔다」는 것을 찾으려 애씁니다.
일본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한반도와 관계없이 중국으로부터 직접 문화를 전수 받았는가를 찾기 위해 골몰하고 집요하게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엔 하다하다 지쳤는지(일동 웃음) 다시 새로운 史觀(사관)이 과학적 인식의 힘을 얻게 되면서 중국 본토 直來說(직래설) 같은 학설들이 논파당하니까 집어치웠지요. 쌀만 해도 그것이 양자강 유역에서 왔다느니 대만 유역에서 왔다느니 상당기간 동안 뭐, 재료 찾고 난리 치다가 요새 와서 겨우 조금 여유 있게 대강 뭐 한국 남부에서 온 것 같다는 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구로다 『장관님, 최근 일본의 새로운 연구결과를 못 보신 것 같은데, 1970~1980년대까지는요, 지금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반도 전래사관이랄까, 문명·문화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일본 문화의 뿌리는 한반도에서 왔다는 설이 유행했습니다.
이른바 야요이 문화(彌生文化: BC 250~AD 250년께 일본 선사시대 문화-注) 시기에 한국과 연관지은 연구가 많았습니다. 「일본 속의 조선문화」란 말과 함께 그걸 구경하러 관광단도 많이 보내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이 1980년대까지의 주류가 된 것입니다. 그 前 시대의 문화는 조몬 문화(繩文文化:BC 3천년~BC 250년까지 일본의 가장 오랜 문화시기-注)에 해당하지요.
1980년대의 일본의 고유문화 연구는 한반도에 영향을 많이 받은 내용들이 主 연구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와서는 너무 한반도 到來史觀(도래사관)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비판이 등장하면서 다시 조몬시대 연구가 시작된 겁니다. 일종의 수정 조몬주의가 도래한 것이죠』
許文道 『그래서 내가 저…』
구로다 『(틈을 주지 않은 채) 그 쌀이 한국에서 넘어왔다는 것은 소수파예요』
許文道 『그러니까 내 말은 저…』
구로다 『古代(고대) 쌀의 화석을 분석해서 과학적으로 보니 순 중국産(산)이더라 (고소하다는 듯한 웃음) 이 말입니다』
許文道 『그러니까 기묘하게, 기묘하게…』
구로다 『DNA 분석 등 학문적으로 밝혀진 거란 말입니다』
『百濟의 對 新羅 감정이 日本人에게 전이됐다』 (許文道)
許文道 『바로 그 학문이란 객관성의 이름을 빌려서 기묘하게 한반도와 관계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일본 과학자들의 사명이야. 이 정도로 말이지, 반도와 먼 것, 관계없는 것을 찾는 것』
구로다 『허허헛-』
許文道 『그래, 여기서 내가 좀더 하면 일본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게 될 것 같아 더 안하겠는데(그러나 許 장관은 할 말 다 해버린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일본의 그런 대륙문화라는 게 야요이 문화든 뭐든 간에 미개한 문화 아니오. 거기에 선진문화를 갖고 있던 반도 사람들 상당한 부분들이 건너가서 열등문화를 갖고 있던 사람들을 올라타고 형성한 것이 오늘의 일본 사람들 아니오. 일본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구로다 『그래서 조몬화 된 것이지요』
許文道 『조몬화가 아니라, 조몬화는 잊어버리고…』
구로다 『어떤 시기라고 확연하게 구분할 수는 없어요』
許文道 『물론 모든 것이 그렇지. 하루하루가 다 안 그렇겠어요. 그런데 새로운 접합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뭔가 저놈하고 다른데, 관계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증명하면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살아나는데… 하는 속성이 오늘날 한일 관계에도 어려운 대목으로 남아 있습니다.
征韓論(정한론)은 보통 일본 근대 國學(국학)으로부터 나오지요. 日本書記(일본서기)가 뭡니까. 백제가 망해서 상류층 지식인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서기를 편찬해 냈는데, 그들은 신라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장치를 日本書記라는 史書(사서) 속에 만들어 갔지요. 신라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백년 지나고 오백년 지나고 천년 지나니까, 백제 사람들이 신라 사람들에게 갖고 있던 유감, 그것이 오늘날 일본 사람들 속에 그대로 유전된 겁니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신라 같은 것은 완전히 우리가 갖고 놀았는데…」하는 인식이 후세에는 식민사관, 침략사관의 자료가 되는 등 복잡한 배경이 있습니다.
내 얘기는 그런 배경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다 보면 이제 서로가 이해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한쪽만이 살아서는 안되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으니까, 또 일본이 어쨌든 간에 지금은 한국보다 열 발이나 앞서 있으니까, 이제는 좀 일본이 여유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겁니다』
『요즘도 일장기 지운 채 방영하는 한국, 이해 못해』 (구로다)
구로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봤더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孫基禎(손기정) 선수가 금메달 땄던 움직이는 기록필름을 방영했어요. 봤더니 일장기가 있어야 할 유니폼에 일장기가 없어요. 일제시대에 東亞日報(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사진이 실렸을 때에는 사건이 되었지만, 그 당시 기록필름에 찍혀 있는 일장기를 오늘날에도 없애고 방영하는 겁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일제시대의 사건은 이해를 하고 그럴 수 있고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60년도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기록필름에서까지 일장기를 없앤다는 사실을 보면서 「야, 이것이 한국인의 역사관이구나」 하는 (웃음) …허탈했어요』
許文道 『아니, 아니, 그것은…』
구로다 『한국 사람들이…』
許文道 『그러니까…』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푸하하하』하고 웃어 버렸다.
許文道 『아니, 그게 일제하에서 많은 위험부담을 각오하고 일장기를 지운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요새 아무런…(許 전 장관은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돌멩이 하나 집어 던질 놈 없는 데서 기록 필름을 지운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못난 짓입니다.
그런데 또 그것을 지적하는 일본 사람들의 행태는 일종의 못난 마음을 아프게 부각시키는 행위라구(구로다 지국장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만약 일본인이라면 「아, 한국 사람들이 일본과의 관계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보고 접어 두어야 하는 장면이야. 그걸 갔다가 말이지 (드디어 구로다 지국장도 자신의 발언이 許 전 장관을 흥분시켰다는 승리감에,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許 전 장관의 손짓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아직도 고따위로 하고 있구나 하는, 확실히 조롱의 측면이 있는 것이라구』
『역사를 함부로 바꾸는 사람들과 韓日 양국의 공통 인식이 가능할까…』 (구로다)
구로다 『어디까지나 역사의 기록인데 과연 그렇게 하는 방법이 옳은 방법인가…』
許文道 『아, 뭐 그것은 마. 그대로 놓고…』
구로다 『하여튼 역사에 대한 생각, 역사관이라 할까요. 그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과거사에 대해서 日帝(일제), 5共, 6共 등에 대한 역사관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을 지워버리면 그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된다는 식인데, 역사가 너무 불쌍합니다』
한국에 오래 머문 기자답게 구로다씨는 최근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비롯한 문민통치자들의 역사 해석에까지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許文道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요』
구로다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그런 식으로 역사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과연 일본 사람들과 역사를 공유한다고 할 때 같은 인식이 성립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許文道 『사람은 말이지요, 이렇게 아팠던 과거를 정말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그것을 직시합니다. 그것을 피하려고 들지 않아요. 하지만 아팠던 과거를 직시하려면 더 아프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개인차가 있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모조리 비위가 안 맞으면 다 때려부수는 것이 아니듯이(웃음)』
사회자 『중앙청 철거도 기록영화에서 일장기를 지운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까』
『일본은 한국인의 주체성을 말살했다는 점을 인식해야』 (許文道)
구로다 『심정이라고 할까요, 뭐 논리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許文道 『나는 그것을 옮겨서 활용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이미 제가 文公部(문공부) 차관 시절에 公的으로 최초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 싶은데, 1982년 당시 유럽 여행을 해 보니까 首都(수도)란 어떤 이념의 구현체였습니다. 英國은 빅토리아 광장에서 의사당까지, 프랑스는 개선문에서 루브르 박물관까지, 미국은 링컨 센터에서 의사당까지 선진국의 모든 수도는 국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념을 구현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보게 된 거죠. 우리는 경복궁과 남대문을 잇는 것이 한국이란 나라의 이념을 잇는 형상인 셈인데, 그 사이에 총독부가 들어앉은 것은 맥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제외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못난 역사든 잘난 역사든 역사는 역사니까, 그것을 옮겨서 건물 자체는 좋은 것이니까, 이리저리 활용하는 것은 좋은 것인데…』
구로다 『저는 다른 각도로 말해 볼게요. 서울을 보면 現代와 中世는 있지만 近世는 없어요. 실제로 대한민국 역사를 볼 때 近世가 있었잖습니까. 그런데 안 보인다는 겁니다. 불행하게도 近世라는 것이 일제시대라는 점도 있지요. 그렇다면 이것도 역사는 역사이니까 이것을 남기고 직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안 보이게 해 버리고 나면 역사가 바로 섰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겁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보면 그것이 아주 안타깝습니다. 물론 서울역, 시청, 한국은행 등이 남아 있지만, YS정권의 슬로건인 「역사 바로 세우기」가 외국인이 보기에는 좀 아쉽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許文道 『그걸 떠나서, 소위 한국적인 것의 어떤 에센스, 아이덴티티를 깨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말살시켜 놓고 總督府(총독부)를 勤政殿(근정전) 앞에, 숨이 콱 막히게 세워 놓는다는 것은 명백하게 우리가 그 의도를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近世가 아니라 超現代가 그 안에 있다 하더라도 일단 그것을 제외시켜야 하는 겁니다. 일단 한국이 주체적인 나라가 되어가려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다가 近世와 관계된 것들이 없어진다더라도 할 수 없는 거지.
또 우리의 근세란 강화도 수호조약이 출발입니다. 아이덴티티가 없는 한, 시대란 어떤 의미에서는 무의미한 겁니다. 그것은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구로다 지국장은 許 전 장관의 이런 주장에 침울한 표정이 되어 항변했다.
구로다 『뭐, 그래도 그 나름대로 수천만 한국 민족들이 열심히 살았던 것이잖아요』
『노예로 만들어 놓고 협력이라니…』(許文道)
許文道 『한국 사람들이 살았던 게 아니고 남의 운명을 살았던 거지요. 한국 사람들이 식민지 시대를 살았다는 겁니다. 평소 구로다 상은 「한국 사람들이 식민지 시대에 협력을 하며 살았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도 일본이 한국에만 했던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논지를 펴왔는데, 協力(협력)이란 주체들이 확실할 때 가능한 말입니다. 노예에게 협력이 어딨어요. 노예는 노예적인 적응만 있을 뿐, 노예가 주인 말 잘 들었다 해서 「협력 잘했다」고 합디까? 노예적인 상태를 만들어 놓고, 그때 협력 한 것 아니냐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인식입니다』
구로다 『노예였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는 거예요』
許文道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게 있어요…』
구로다 『또 하나, 또 하나, 저기… 협력이란 문제는 우리가 협력받은 입장 아닙니까. 받은 입장에서 볼 때는 자의든 타의든 협력은 협력이다 이겁니다』
許文道 『아니, 그 협력이란 말은 어떤 식의 주체가 있어야 협력이 성립된다니까』
구로다 『…』
난감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注-對談후 구로다씨는 이 부분을 보충해 보내주었다. 구로다 지국장이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일본 통치가 바로 한국인의 일본화였다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이었지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했는지 하나의 불가사의입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민족을 일본인화하려 했다니…』). 許 전 장관은 攻勢(공세)를 멈추지 않고 勝機(승기)를 단단히 움켜 쥐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許文道 『노예가 주인 말 들었다고 협력이라 할 수 없다고』
구로다 『아니…』
許文道 『아니,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의 주체성을 없애버렸다는 인식이 없어요. 그것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모르는 겁니다. 그걸 제쳐두고 「한국 사람들이 그때는 어땠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 찾고 하는데, 한국이 없는데 무슨 한국 사람들 찾고 있어요? 한국을 논하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결여된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이건 아주 중대한 겁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고등교육시켜 주고, 다리 놔 주고, 길을 닦아 주고, 뭐 잘한 것도 있지 않느냐』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한국 사람이란 주체는 깡그리 없어진 상황 속에서 백 번을 한들 그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할 주체가 없는데 무슨 생색을 내느냐 이말입니다.
일본이 한국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근저에서부터 말소시키려 했다는 데 대한 일본 사람들의 의식이 없어요. 그점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걸 접고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어요. 물론 한국 쪽에서도 좀더 명확하게 일본으로부터 그런 식의 인식을 하도록 제기해 오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좌우간 우리가 그런 것을 되풀이하지 않는 세기를 맞기 위해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여서 이렇게 한 겁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21세기에 한일 양국의 목표는 EU(유럽연합) 정도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한 노력에는 이와 같은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한국인이 배워야 할 일본인의 세 가지 장점
안색이 어두워진 구로다 지국장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말을 했다.
구로다 『저, 마감시간이 되어서…』
許文道 웃음(득의만만함이 배어 있었다)
구로다 『나중에 추가하지요』
(注-구로다 지국장의 추가된 원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여튼 일본인화라는 일제의 큰 착각은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교훈입니다. 그런데 일본인화하려 한 한국인의 주체성에 대해서는 아까 언급된 兩國民간의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일제의 착각을 유발한 원인의 하나라고 봅니다. 그만큼 우리 兩 민족은 묘한 사이란 것이지요』)
許장관은 아예 마무리를 짓자는 투였다. 바쁘다고 일어서는 구로다 지국장의 옷소매를 끌어당겨 앉힌 뒤 할 말을 계속했다.
許文道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현재 韓日 양쪽의 왕복 무역고가 4백억 달러에서 5백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겁니다. 나는 21세기, 한 2020년 정도가 되면 우리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韓日관계, 특히 양국의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옛날 조선과 한국을 연구한, 편견적 사고에 젖어 글을 쓰는 사람들의 책 따위는 읽지 않고 비즈니스로 만나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연간 5백억 달러 정도를 만들어 내면, 원초적인 사고방식에서 한국과 일본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금방 가까워질 겁니다. 시간이 좀더 가서 왕복 무역고가 천억 달러선까지 되면 韓日관계는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때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가 터널로서 연결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 시대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장점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본인들의 백화점 점원식의 「戰術的(전술적) 친절」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인은 상대가 조금 좋다 싶으면 있는 대로 품을 다 열어요. 그것이 전술적인지 모르고 있다가 자기가 기대한 만큼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마구 화를 내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국제화시대에는 안되는 겁니다.
둘째는 일본인들의 「근로의 密度(밀도)」에 따라가야 합니다. 현재 한국인들의 평균적인 근로의 밀도는 일본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봅니다. 또 근로의 밀도에 있어서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평균적인 일본인보다 3분의 1 정도밖에 못 미칩니다.
마지막으로는 일본인들의 「現金的(현금적) 인간형」, 즉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닮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걸 두고 우리가 일본 사람들에게 돈에 너무 민감하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편견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되고, 자본주의적 인간화의 길은 어차피 한국 사람들도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런 시대를 대비해서라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세 가지 점을 목표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구로다 지국장은 차분하게 마지막 말을 정리했다.
金玉均의 꿈
구로다 『21세기엔 韓日관계가 EU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일본 경제 관료들로부터 「한일 경제동맹」이란 말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말까지 나온 데는 그 배경이 있어요. EU(유럽연합)도 NAFTA(北美자유무역지대)도 있고 국제사회에서는 G7 국가 그룹도 있고, 일본도 G7 국가에 속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고립되는 중입니다. 그래서 아시아 지역에서도 경제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과 일본이 파트너를 찾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상황을 알게 된 것이지요.
아시아에서 일본의 파트너는 한국밖에 없다는 결론엔 쉽게 도달했습니다. 일본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21세기엔 한국을 파트너로 삼아야겠다는 겁니다. 아직 논의에 미치는 선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말씀하신 것이 아주 맞는 말이란 겁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마무리 말씀을 드리자면, 평소에 제가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할 때면 마지막에 마무리 짓는 말이 있어요. 그 말씀을 한 번 드리고 떠날까 합니다.
「약 1백년 전 한반도에는 金玉均(김옥균)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서 근대 혁명가라고 소개하지요. 그리고 金玉均이 남긴 말을 인용합니다.
「그 당시 金玉均은 <일본이 동양의 英國이 된다면 우리(조선)는 동양의 프랑스가 되자>는 말을 했다. 나는 지금도 이 말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동양의 英國과 프랑스가 되지 못했다. 우리 서로 그렇게 되지 못한 깊은 배경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 韓日 양국민이 서로가 경험했던 과거를 교훈삼아 다가올 백년대에 동양의 英國과 프랑스 사이가 되면 어떻겠는가. 백년 전에 한국에서는 이런 꿈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끝맺습니다』
許文道 『그것은 金玉均 자신이 꿈처럼 생각하고 한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가 EU정도로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구체적인 現實味(현실미)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의 선에서 오늘 우리가 상호 이해의 방식을 피차 조금 조정해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왜놈」, 「조센진」이라고 인식해 왔던, 서로 어려워서 아둥바둥하고 살아오면서 가졌던 인식을 두 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의지를 갖고 조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구로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사회 『좋은 對談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月刊朝鮮은 21세기 韓日間 새로운 관계 모색을 위해 知日派 논객으로 일본 사회에서 유명한 許文道(허문도·59) 전 통일원 장관과 知韓派(지한파) 논객으로 잘 알려진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58·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씨를 초빙해 對談을 진행했다. 평소 이 두 사람은 말과 글로써 각각 自國의 國益을 수호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國家主義者(국가주의자)라 할 만하다. 許文道 전 장관은 朝鮮日報 동경특파원, 駐日 대사관 공보관을 역임하는 등 12년간 일본에 체류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구로다 가쓰히로 지국장은 지금까지 17년간 한국에 체류해 오면서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 등 17권의 한국 관련 책을 출판한 한국 전문가이다. 대담은 1999년 12월7일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서울의 한 시내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이 힘이 있어야 얕보지 않는다』 (구로다 가쓰히로)
許文道 『최근 일본에 머물면서 오사카의 중심가에 위치한 한국인이 경영하는 술집에 갔습니다. 그 집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요즘은 일본 사람들로부터 나쁜 소리는 듣지 않지요?」하고 물었더니 요즘도 술집에 와서 노골적으로 「조센진은 글러먹었다」고 막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자세히 캐물으니 일본인의 60~70代(대)는 거의 그런 인식을 하고 있다는군요. 오히려 50代 이하로 내려갈수록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가」 하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60~70代란 1920~1930年代에 출생한 사람들이지요.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뒤 한국 사람들을 노예 부리듯 할 때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韓日 우호를 가로막는 이 세대가 빨리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듣고 있던 구로다 지국장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고개를 약간 숙이며 한 손으로 안경테를 잡아 고쳐 쓰고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는 유창한 한국말을 약간 느릿한 어조로 시작했다.
구로다 가쓰히로 『우선 일본 사회에 그런 점이 남아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우리 언론도 여론을 잘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고치려면 기본적으로는 특히 본국(한국)에 있는 한국 사람과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잘 되어야, 그래서 나라가 힘이 생겨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남의 나라 사람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노력 없이 일본 사람들에게만 이건 안되겠다, 고쳐야겠다고 아무리 설득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이죠.
저는 일본인들이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편견, 차별의 문제는 한국인 스스로 노력하면 당연히 없어지는 것이란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지난 20년 사이에 대한민국이 고도성장을 했고 올림픽이다 뭐다 해서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이유는 일본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란 점입니다. 그것도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나무랐기 때문에 좋아진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열심히 살아오면서 나라를 발전시켰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朝鮮 通信使의 차별의식과 현대 일본인의 차별의식
許장관은 구로다 지국장의 주장에 대해 『한국이 좋아지면 좋아진 만큼 한국 사람들을 좋게 본다는 말은 뭐, 당연한 것이고』라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는 즉시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許文道 『문제는 일본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심성에 있다고 봐요. 한 20~30년간 韓日 문제를 다루는 일본의 논객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은 옆사람과 자신과의 다른 점을 반드시 차별구조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심성을 갖고 있어요. 오늘 이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구로다 『그건 이해하기 힘들지요? 장관님께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백년 전, 근대화 이전까지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중국 문화권에서 우등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朝鮮通信使(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둘러보고 와서 쓴 보고서가 많이 남아 있지요. 그걸 보면 당시 조선 사람들 역시 우리 일본인들을 하나의 미개인, 문화가 뒤떨어진 민족이라고 보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중국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 시대가, 세계사가 변해서 서양문명이 아시아 문화권까지 들어와 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이 먼저 서양문명을 받아들였고 오늘날에는 그것이 하나의 가치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서양 문명의 기준에서 볼 수밖에 없고, 한국이 우리(일본)보다 뒤떨어졌다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런 인식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許 『그런데, 옆사람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옆사람은 이런 이런 식으로 산다는 것과는 다르지요. 일본 논객들이 뭔가 옆사람이 자기보다 못하다는 것을 찾아내 인식해야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식으로만 對韓(대한) 인식을 하는 한 현실적으로는 어떤 문제와 상관없이 兩(양) 국민의 마음속에는 갈등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21세기는 어차피 韓日 우호관계로 가야 합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은 우리만큼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차피 비슷한 얼굴, 가까운 이웃, 게다가 따지고 보면 비슷한 젓가락 문화권에 유사한 사고방식이어서 함께 살지 않으면 둘 다 피곤해지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겁니다. 21세기에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상호간의 이해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노력해서 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서로가 고쳐야 할 과제를 발견하고 노력하면 진짜 친구가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구로다 『장관님,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일본 사람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한 차별구조가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이죠?』
許文道 『차별구조 속에서 상대를 인식하는 인식성향이 있다…』
『일본은 문화 상대주의까지 왔는데…』 (구로다)
구로다 『그런데 우리 일본 사람들이 단순히 「우리와 한국 사람들이 다르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들이 못된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일본 사람들의 의식이 폐쇄적이고, 국가가 폐쇄적인 측면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일본 사람 자체가 의식이 다양화되고 다른 문화를 비교 문화적 관점에서 평가합니다.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멸시하거나 천시하지 않고, 다른 만큼 그 존재에 대한 가치 인정을 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거예요. 문화 상대주의라 할까 뭐 그런 수준까지 온 겁니다. 우리와 다르다 해서 비판한다는 지적은 시대 흐름을 볼 때, 안 맞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또 하나는 그렇다면, 무엇이 許장관에게 차별구조로 비쳐졌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게 있어요.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똑같이 지향하는 가치가 있을 것 아닙니까. 예를 들면, 자본주의다, 민주주이다, 자유주의다, 또는 환경이다, 인권이다 하는 등의 이런 가치가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결국 「서양 근대화」죠. 그걸 기준으로 우리 일본 사람들이 이만큼 진보해 왔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 사람들은 이런저런 것을 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 세계가 안타깝게도 서양문명 중심으로 되어 있어요. 아마 21세기도 마찬가지로일 가능성이 크지요. 그렇다면 그걸 기준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許文道 『서양화, 근대화라든지 간에 일본에게 우리가 뒤진 점이 많아요. 그런데 한국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만, 출발이 늦어져서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다는 인식과, 한국은 이런저런 식으로 해서 현재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탁 내뱉듯이 인식하고 쓰는 것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구로다 상이 쓰는 글을 봐도 그렇고, 일본 우파 지식인들이 쓴 글을 봐도 그렇습니다. 뭔가 한국을 잘 아는 일본 우파 지식인들의 글에서는 「이거 약간 웃기는 구석이 있다」는 표현을 즐기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許 전 장관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구로다 지국장은 연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비아냥거린다 이거죠?』라고 확인해 주었다. 許 전 장관의 말이 더욱 강한 톤으로 변했다.
『한국을 투시하는 일본인의 수준이 높다』 (許文道)
許文道 『예를 들면, 일본서 유학하던 무렵, 일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느낀 겁니다만, 이 친구가 새로 나온 마크2란 차를 샀어요.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나는 이제야 네 차와 수준 차이를 두게 됐다」고 기뻐하는 겁니다. 친구간에도 상하 인간관계에 있어서 縱的(종적)인 관계로, 차별적인 구조로 인식하는 겁니다. 한국에는 그런 어법이 없어요. 차이를 두게 되었다는 식의 어법. 일본인들에게는 이웃간에도 그런 식의 인식이 있어요.
과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 먹을 것을 두고 싸워야 했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한쪽이 먹게 되면 다른 한쪽이 굶게 되는 시대였지요. 그러나 21세기는 더 이상 獨食(독식)할 수 없는, 그래서 함께 잘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 지식인들은 그 前 시대가 남긴 인식방식을 여지없이 갖고 가려고 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자꾸 합리화하려 하지 말고(구로다 지국장이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서로를 위하는 인식방식을 개발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구로다 지국장의 손이 許 전 장관의 말문을 막으려 몇 번 들어 올려졌다), 예를 들면 (구로다 지국장은 「장관님 잠깐만」하고 도중에 끼어 들었지만 許 전 장관은 무시했다) 한국 사람들이 日王(일왕)이라 했다고 해서 여러 가지 글로 쓰는데 그런 식으로 보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참다 못한 구로다 지국장은 許 전 장관의 말이 끝나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도록 재빨리 말을 시작했다.
구로다 『그런데 비슷한 면은 한국측에도 있다는 것이죠. 공개적으로는 말 안하지만 구석구석에서 일본 욕하고 비판하고 그러지요. 재미삼아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대학가에서 읽히는 책들 보세요. 일본사람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다 웃기지도 않는 책들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괜찮은 책이지만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고, 일본이 있네 없네 하면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책들이 엄청 많이 나와 있지요. 스포츠 신문을 보면 일본 정복을 주제로 한 책 광고가 자주 나옵니다. 매일 연재되는 만화나 소설도 일본 정벌전쟁이 주제입니다. 또….
이건 지구상의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지역일수록 서로가 잘 보이니까 재미있게 농담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하는 거지요. 특별히 韓日간에만 그런 점이 있다든지, 일본 사람에게만 그런 성향이 있다는 건 아니잖습니까. 제대로 모르는 말이에요. 그건 당연히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해서…』
許文道 『맞긴 하지만, 거기에 내가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도가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도보다 더 심해요. 그리고 한국의 눈(目·지식인의 수준을 의미)이 일본 사회를 투시하는 정도보다 일본의 눈이 한국 사회를 투시하는 정도가 훨씬 높습니다. 이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술좌석에서 일본인들을 비판하는 사소한 말까지 일본 사회에 전달되는 정도니까요. 여기 우리 구로다 상은 그중 챔피언에 속하지요』
許 전 장관의 공격은 계속됐다.
『우리 구로다 상은 일본 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입장에 있거든(구로다 지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안경을 벗어 렌즈를 마구 문지르기 시작한다. 절대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단호함이 안경 벗은 얼굴에 배어 있다). 뭐, 내가 서두에 말했다시피 일본인 전체가 아니라 60~70代의 일본인이 그렇다는 거지요. 우리 구로다 상도 내일 모레 60代가 되니까…』
구로다 지국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許 전 장관은 여유를 찾은 듯 느긋하게 말을 계속했다.
『일본인도 피해의식이 있다』 (구로다)
『그렇게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의 한국인觀(관)을 갖고 있어요. 식민지 시대의 한국 사람들이란 일본 우파 지식인들이 잘 파악했듯이 자주성이 없고 주체의식이 없고 타율적인 집단 속에 묻혀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정상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적할 것들이야 너무 많지요. 한국이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그 무렵엔 오늘날 일본의 60~70代 지식인들, 특히 한국을 잘 안다는 우파 지식인들은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점점 더 목청이 높아진다). 왕자처럼, 귀족처럼 군림할 수 있었던 그런 유년시절이란 모든 인간에게 마음의 고향이거나 失樂園(실낙원) 같은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60~70代 지식인들은 잊을 수 없는 그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회귀본능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요. 내 충분히 이해하지』
구로다 지국장은 도저히 수긍 못하겠다는 듯 가만 듣고만 있었다.
『뭐, 「한국에 대해서 잘 안다」 「충분히 이해한다」하면서 객관적으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을 따라가 보면 결국은 어린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에 결론이 맺혀 있는 겁니다.
오늘날 일본의 論爭史(논쟁사)에 일본 좌파 논객들은 잊혀진 존재들입니다. 우파 논객들이 석권해버린 지 오래되었거든요. 그래서 일본 우파 논객들이 갖고 있는 한국관이 일본의 對韓 인식을 리드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술자리서 던지는 사소한 말까지 공개적으로 끌어냅니다. 그러니 일본 국내에서는 당장 反韓감정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예들이 많은데…』
구로다 지국장이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발언권을 잡았다. 구로다 지국장은 설득조의 톤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본의 공식 과거사 반성, 일본도 지쳤다』 (구로다)
구로다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본 사람들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의외로 한국 사람들로부터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는 恨(한)도 갖고 있어요』
사회자 『 피해의식과 한을 일본 사람들도 갖고 있다구요?』
구로다 『예. 우리 같은 50대 이하는 戰後(전후)세대에 속하는데, 우리는 어떤 식으로 교육을 받아 왔느냐 하면, 일본 근대사는 다 잘못돼 있다, 한반도에서는 나쁜 짓을 했다, 일본 근대사는 모두 어두운 역사,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식의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이름하여 自虐史觀(자학사관)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이 교육 덕분에 戰後세대 일본인들에게는 「우리가 한국 사람들에게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심어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 일본이 옛날에 어떤 나쁜 짓을 했다, 그 때문에 항상 미안하다. 아니, 미안해야만 한다」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만나면 그같은 의미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측은 1965년 韓日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30여년 동안 계속, 언론도 외교도 「반성하라」 「사과하라」고 해 왔어요. 덕분에 일본 사람들은 몇십 년 동안 「반성하라」 「사과하라」는 말을 들어 오면서 피해의식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당하고 있다는 거예요.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만 하면 한국측은 「안된다」 「무슨 속셈인지 밝혀라」 「군국주의이다」는 식의 계속적인 비난만 해 온 겁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한풀이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최근에 들어와서 발표되는 우파 지식인들의 말과 글 속에서도 분명 그런 욕구가 드러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이만큼 커지고 잘 살게 되고 올림픽도 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와 있으면서 새삼 과거에 집착한 약자 행세를 하느냐」 이거예요. 「우리 일본은 물론 과거가 있기는 하지만, 왜 계속 사과하라며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대느냐, 우리에게 惡意(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도 하고 싶은 말을 하자」는 그런 심정이 있다는 거예요』
許 전 장관이 『아, 다 좋은데』라며 구로다 지국장의 말을 끊으려 했지만 구로다 지국장은 이번에도 양 손을 내저으며 하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 잠깐만요. 그리고요, 한국의 이름있는 거물급 정치인들도 「어떤 국민이든 그토록 오랫동안 사과하라, 반성하라는 말을 계속 들어 오면 넌덜머리가 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데 수긍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너무 과거 집착적이라 할까요, 너무 지나치다는 겁니다(웃음)』
구로다 지국장의 웃음엔 만족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한국측에 해 온 사과와 반성의 기록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로다 지국장의 말 대로 여러 번 하다 보면 피해의식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외교통상부의 자료에 따르면 해방 후 최초의 공식 사과는 1965년 2월20일 시이나 外相(외상)에 의해 최초로 言明(언명)되었다. 이후 1998년 10월 현재까지 총 26회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진정한 사과 한 적 없다』 (許文道)
許文道 『아, 그 얘기를 받아서 내가 이런 얘기 좀 할게요. 일본 입장으로서는 「과거에 대해 사과하라고 너무 그렇게 해 오니, 우리 이거 뭐 동네 북도 아니고 말이지, 만만하면 맨날 사과하라는 소리나 하고. 韓日 관계가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 정치인들이 사과나 하고 그러니 답답하다. 일본 국민들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이거 아닙니까. 일본인들로서는 속이 더 상하지요』
구로다 지국장도 수긍하는 웃음을 띠었다. 許文道 전 장관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 왔느냐는 겁니다. 일본어에는 「나카나오리(仲直り:관계 회복, 화해라는 의미-注)」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지금까지 일본이 「나카나오리」를 위해 사과해 온 것이 아니고, 외교적 차원에서 한국이 자꾸 악악대니까 일본의 首相(수상)은 악역을 대표한 역할만 해 온 겁니다.
이런 말이 옳은지는 그 다음 수순을 보면 확연해집니다. 수상이 사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고위각료가 「우리가 한국에 뭘 잘못했나. 근대화시켜 주었는데. 사과는 무슨 사과냐」라고 否定(부정)해 버립니다. 그 사과에 물을 타버리는 것이죠. 다시 사과할 필요를 일본 스스로가 자꾸 만들어 온 겁니다. 그리고는 우리 때문에 피해의식을 가졌다고 또 하소연하면서 한국을 차별적으로 인식하려 하고…』
구로다 『아니, 그런 점에서라면…』
許文道 『아니, 아니, 내 얘기를 들어보라구요』
구로다 『그럼 길게 얘기하지 마시고…』
許文道 『허허, 그래요, 그래.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왜 맨날 옛날 얘기만 하며 과거만 문제 삼느냐고 하지만, 그만큼 일본은 필요 이상으로 눈을 감고 사는 민족입니다.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선 현재나 미래가 있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가 과거와 현재에 대해 조화를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대해서 일본도 짚을 것은 짚어야 하고 한국도 맨날 과거만 얘기하지 않아야 할, 서로가 되짚어 볼 것들이 있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스스로가 먼저 진정한 「나카나오리」를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거 뭐, 피해다 자학이다 하는데, 자기들이 제대로 사회과학적인 인식을 통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고 자기들 스스로 自虐史觀이라고 하는 겁니다. 요즘 일본인들에게는 「이거 너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우리 일본인들 내면에 지나치게 정신분열적인 자학증세가 있어서 이런 역사관을 갖는 것이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해졌어요.
한국에게 경제발전도 하고 올림픽도 하고 그래서 선진국 문턱에 섰으니 여유를 가지라고 일본측은 말합니다만, 그 몇 배로, 열 배 스무 배로 일본은 성장해 있습니다. 일본이야말로 한국에 대해 열 배 백 배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나라가 되어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 문제만 나오면 일본이 오히려 과거문제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질 못하는 겁니다. 제발 21세기에는 일본이 현재의 덩치에 적합하게, 일일이 한국 사람들 술좌석에서 내뱉는 말들까지 사사건건 답하는 모습에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일본 過去史 否定 발언 총 34회
이쯤에서 이번엔 외교통산부의 「일본 정부 인사 및 政街(정가)의 過去史(과거사) 관련 부정적 발언」 기록을 살펴보자. 최초의 과거사 부정 발언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1951년 제1차 한일회담 직전에 일본 국회에서 한 연설에서였다. 그는 『이번 한일 회담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에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 국적을 주지 않는 것이며, 이민족인 소수 민족은 뱃속의 벌레로서 일본이 이것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韓日회담의 목적이다』고 했다.
이후 1998년 2월 현재까지 총 34회에 걸친 과거사 부정 발언이 계속되어 왔다.
구로다 『거, 뭐. (許장관의 말씀이)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 사과와 반성이 문제인데요.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몇 차례 사과와 반성을 했지요. 그런데 망언 비슷한 말이 나왔을 때 무얼 보고 그것이 일본 전체의 의견으로 판단하는 것이냐는 겁니다. 일개 각료가 망언한 것이 일본 전체의 인식인 듯 말씀하시는 게, 무얼 보고 그렇게 판단하시는 거냐는 거죠.
장관님을 포함해서 한국 언론들이 특히, 망언을 두고 일본 전체의 여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나 일본 사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들은 「이 망언이야말로 일본 전체의 생각이다」라고 의도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그 의도 속에는 진정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는 한국인의 본심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진정 일본인들이 사과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섭섭해 합니다』
사회자 『왜 섭섭해 한다고 보십니까』
許文道 『아니, 그건…』
구로다 『왜냐하면…』
許文道 『글쎄, 내 말 좀 …』
구로다 『이건 저…』
노근리 사건의 美國측 대응자세
사회자 『어쩔 수 없이 제가 끼어들겠습니다. 비교정치학적 사례가 될 것으로 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6·25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사건이 최근 보도되었습니다. 노근리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가해자인 미국측의 대응 행태는 피해 당사국인 한국과 한국민의 입장에서는 흡족한 것은 아닙니다만, 일본이 지난 수십년간 대응해 온 것과는 매우 다른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치적인 쇼」라고 해도,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고 사과하고 눈물까지 흘리고 돌아간 미국측 대응태도를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들은 돌아 간 뒤에도 지금까지 이 사실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이나 망언으로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있습니다』
許文道 『일본이 미국처럼 태도를 취해 왔다면 별 문제 없었을 겁니다. 일본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가 그만큼 복잡하게 되어 왔지요』
『사과 否定하는 정치적 수요가 일본 국내에 山積』 (許文道)
구로다 『노근리 사건과 비교하면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해질 것 같네요. 제 견해는 「한국 사람은 아직까지 일본에게 사과를 받을 만한 여유가 없다, 그래서 계속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말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 심리가 있다는 겁니다. 결국 한국측도 진정으로 사과받는 정신적, 물질적 여유를 갖출 때 이 문제는 일본과 상관없이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죠. 저와 같은 시각도 필요할 것입니다』
許文道 『내가 보기에 일본은 진짜 사과를 아직 한번도 안했다고 봅니다. 일본 정부가 사과하면 얼마 안 가서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 각료 내에서 튀어나옵니다. 발언한 각료는 일단 韓日관계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 각료는 정치적으로 마이너스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실수, 정치적 마이너스를 되풀이하는 겁니까.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자꾸 칭얼대니까 어쩔 수 없이 총리나 首相이 사과했지만, 그 다음 순간에 그 사과를 부정해야 속이 시원한 「정치적인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過去史를 부정하는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각에서 물러나면 다음에 국회의원 선거에 얼마든지 다시 도전해 당선될 수 있단 말이지요. 외국에 대해서는 「우리도 한국에 사과했다」는 모양새를 갖추었으니 이제 국내 정치적 수요를 위한 발언을 하자는 식으로 사과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진정한 「나카나오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제2차 대전을 촉발시킨 독일은 敗戰(패전) 후 아데나워 首相 시대부터 인접 국가인 프랑스에 대해 무척 진지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일본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독은 「우리가 너희에게 잘못했다. 철강 산업을 함께 해도 좋고, 武力(무력)을 함께 해도 좋다」고까지 했습니다. 프랑스로 하여금 「서독은 정말 우리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그리고 서독이 유럽의 一員(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행태들을 일본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과는 어디까지나 사과하는 쪽이 윤리적인 입장에서의 자의성을 갖고 해야 합니다. 일본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해야 형 노릇을 할 수 있겠다」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 전체를 보고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일본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한국이 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非폭력적인 설욕을 하는 겁니다. 구로다 상이 강조하는 경제라든지 하이테크 기술이라든지 그 어떤 것으로 일본에 대해 설욕하지 않고서는 일본 사람이 한국인을 진정한 동반자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설욕해서 가르쳐 줘야』 (許文道)
사회자 『설욕할 준비가 안됐다는 얘깁니까』
許文道 『그렇지요. 자꾸 사과하라고 해 봤자 겉으로는 해 놓고 뒤에 가서 딴소리 픽픽 하는데, 이제는 조르지 말자는 겁니다.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잖습니까. 저쪽은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설욕을 해서 알게 해 주는 방법뿐입니다』
답답했던 속마음을 다 털어버린 許 전 장관이 엽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구로다 『한 군데만 집중하면 안되지만, 장관님께서 아까 서독과 프랑스 예를 들면서 서독이 잘했고 일본이 잘못했다고 하시는데, 한국이 프랑스였다면 우리가 얼마나 서로 행복했을까요. 그런 비교에 대해서 저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韓日 관계는 아주 특수한 관계입니다』
許文道 『유태인과 독일 문제를 韓日 관계에 비추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프랑스와 서독을 비교하는 것은 말이 된다는 겁니다』
구로다 『독일 문제와 일본과는 전혀,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許文道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구로다 『(許장관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일 관계는 독일과 프랑스처럼 소박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日帝 때의 日鮮同祖論(일선동조론·일본이 선배)이란 말이 있었지요. 지금은 다 죽어버린, 쓸 수 없는 말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韓日同祖論(한일동조론)이란 말이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선배다」 「일본 황실도 백제 후손이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프랑스와 서독 간의 관계와 전혀 다른 묘한 근친 의식입니다』
일본의 朝鮮學 연구
許文道 『내가 이야기할게요. 프랑스와 서독 간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2차대전 이후 아데나워가 드골에게 취했던 정책, 역대 서독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취했던 정책들을 말하려는 겁니다. 그들은 프랑스인들의 不信(불신)을 없애면서 나토의 일원이 되었고, 프랑스의 동의를 얻어내 통일까지 해냈습니다. 이 정책들은 일본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솔직히 일본이 많이 모자라지요. 일본은 우리 보고 「옛날 같으면 남한 정도는 깔고 앉았다」는 식입니다.
또 日鮮同祖論이 어떻게 변해 왔느냐도 볼 필요가 있어요. 오늘날 일본은 백년, 백오십년 전 서양문화의 세례를 받고서 발전했지만, 그 전의 천몇백년 동안은 중국문화라기보다도, 일종의 국제문화 속에서 일본이 수혜자 입장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문화란 대륙 쪽이 중심을 이루었고 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 이동해 온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國名(국명)을 붙인 「中國문화」식 개념이 아닌 보편적 문화, 문화 그 자체였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불교는 4세기 말에 한국에 와서 6세기 초 백제 聖王(성왕)때 일본으로 건네줍니다. 이 대목을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에 왔다」고 씁니다. 중국은 나라이고, 한국은 조선반도라는 하나의 지명, 묘한 다리일 뿐입니다. 거기엔 한국 사람들이 만든 「국가」라는 묘사를 건너뛰어 버립니다. 또 「중국에서 직접 왔다」는 것을 찾으려 애씁니다.
일본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한반도와 관계없이 중국으로부터 직접 문화를 전수 받았는가를 찾기 위해 골몰하고 집요하게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엔 하다하다 지쳤는지(일동 웃음) 다시 새로운 史觀(사관)이 과학적 인식의 힘을 얻게 되면서 중국 본토 直來說(직래설) 같은 학설들이 논파당하니까 집어치웠지요. 쌀만 해도 그것이 양자강 유역에서 왔다느니 대만 유역에서 왔다느니 상당기간 동안 뭐, 재료 찾고 난리 치다가 요새 와서 겨우 조금 여유 있게 대강 뭐 한국 남부에서 온 것 같다는 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구로다 『장관님, 최근 일본의 새로운 연구결과를 못 보신 것 같은데, 1970~1980년대까지는요, 지금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반도 전래사관이랄까, 문명·문화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일본 문화의 뿌리는 한반도에서 왔다는 설이 유행했습니다.
이른바 야요이 문화(彌生文化: BC 250~AD 250년께 일본 선사시대 문화-注) 시기에 한국과 연관지은 연구가 많았습니다. 「일본 속의 조선문화」란 말과 함께 그걸 구경하러 관광단도 많이 보내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이 1980년대까지의 주류가 된 것입니다. 그 前 시대의 문화는 조몬 문화(繩文文化:BC 3천년~BC 250년까지 일본의 가장 오랜 문화시기-注)에 해당하지요.
1980년대의 일본의 고유문화 연구는 한반도에 영향을 많이 받은 내용들이 主 연구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와서는 너무 한반도 到來史觀(도래사관)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비판이 등장하면서 다시 조몬시대 연구가 시작된 겁니다. 일종의 수정 조몬주의가 도래한 것이죠』
許文道 『그래서 내가 저…』
구로다 『(틈을 주지 않은 채) 그 쌀이 한국에서 넘어왔다는 것은 소수파예요』
許文道 『그러니까 내 말은 저…』
구로다 『古代(고대) 쌀의 화석을 분석해서 과학적으로 보니 순 중국産(산)이더라 (고소하다는 듯한 웃음) 이 말입니다』
許文道 『그러니까 기묘하게, 기묘하게…』
구로다 『DNA 분석 등 학문적으로 밝혀진 거란 말입니다』
『百濟의 對 新羅 감정이 日本人에게 전이됐다』 (許文道)
許文道 『바로 그 학문이란 객관성의 이름을 빌려서 기묘하게 한반도와 관계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일본 과학자들의 사명이야. 이 정도로 말이지, 반도와 먼 것, 관계없는 것을 찾는 것』
구로다 『허허헛-』
許文道 『그래, 여기서 내가 좀더 하면 일본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게 될 것 같아 더 안하겠는데(그러나 許 장관은 할 말 다 해버린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일본의 그런 대륙문화라는 게 야요이 문화든 뭐든 간에 미개한 문화 아니오. 거기에 선진문화를 갖고 있던 반도 사람들 상당한 부분들이 건너가서 열등문화를 갖고 있던 사람들을 올라타고 형성한 것이 오늘의 일본 사람들 아니오. 일본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구로다 『그래서 조몬화 된 것이지요』
許文道 『조몬화가 아니라, 조몬화는 잊어버리고…』
구로다 『어떤 시기라고 확연하게 구분할 수는 없어요』
許文道 『물론 모든 것이 그렇지. 하루하루가 다 안 그렇겠어요. 그런데 새로운 접합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뭔가 저놈하고 다른데, 관계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증명하면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살아나는데… 하는 속성이 오늘날 한일 관계에도 어려운 대목으로 남아 있습니다.
征韓論(정한론)은 보통 일본 근대 國學(국학)으로부터 나오지요. 日本書記(일본서기)가 뭡니까. 백제가 망해서 상류층 지식인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서기를 편찬해 냈는데, 그들은 신라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장치를 日本書記라는 史書(사서) 속에 만들어 갔지요. 신라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백년 지나고 오백년 지나고 천년 지나니까, 백제 사람들이 신라 사람들에게 갖고 있던 유감, 그것이 오늘날 일본 사람들 속에 그대로 유전된 겁니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신라 같은 것은 완전히 우리가 갖고 놀았는데…」하는 인식이 후세에는 식민사관, 침략사관의 자료가 되는 등 복잡한 배경이 있습니다.
내 얘기는 그런 배경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다 보면 이제 서로가 이해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한쪽만이 살아서는 안되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으니까, 또 일본이 어쨌든 간에 지금은 한국보다 열 발이나 앞서 있으니까, 이제는 좀 일본이 여유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겁니다』
『요즘도 일장기 지운 채 방영하는 한국, 이해 못해』 (구로다)
구로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봤더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孫基禎(손기정) 선수가 금메달 땄던 움직이는 기록필름을 방영했어요. 봤더니 일장기가 있어야 할 유니폼에 일장기가 없어요. 일제시대에 東亞日報(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사진이 실렸을 때에는 사건이 되었지만, 그 당시 기록필름에 찍혀 있는 일장기를 오늘날에도 없애고 방영하는 겁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일제시대의 사건은 이해를 하고 그럴 수 있고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60년도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기록필름에서까지 일장기를 없앤다는 사실을 보면서 「야, 이것이 한국인의 역사관이구나」 하는 (웃음) …허탈했어요』
許文道 『아니, 아니, 그것은…』
구로다 『한국 사람들이…』
許文道 『그러니까…』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푸하하하』하고 웃어 버렸다.
許文道 『아니, 그게 일제하에서 많은 위험부담을 각오하고 일장기를 지운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요새 아무런…(許 전 장관은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돌멩이 하나 집어 던질 놈 없는 데서 기록 필름을 지운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못난 짓입니다.
그런데 또 그것을 지적하는 일본 사람들의 행태는 일종의 못난 마음을 아프게 부각시키는 행위라구(구로다 지국장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만약 일본인이라면 「아, 한국 사람들이 일본과의 관계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보고 접어 두어야 하는 장면이야. 그걸 갔다가 말이지 (드디어 구로다 지국장도 자신의 발언이 許 전 장관을 흥분시켰다는 승리감에,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許 전 장관의 손짓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아직도 고따위로 하고 있구나 하는, 확실히 조롱의 측면이 있는 것이라구』
『역사를 함부로 바꾸는 사람들과 韓日 양국의 공통 인식이 가능할까…』 (구로다)
구로다 『어디까지나 역사의 기록인데 과연 그렇게 하는 방법이 옳은 방법인가…』
許文道 『아, 뭐 그것은 마. 그대로 놓고…』
구로다 『하여튼 역사에 대한 생각, 역사관이라 할까요. 그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과거사에 대해서 日帝(일제), 5共, 6共 등에 대한 역사관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을 지워버리면 그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된다는 식인데, 역사가 너무 불쌍합니다』
한국에 오래 머문 기자답게 구로다씨는 최근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비롯한 문민통치자들의 역사 해석에까지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許文道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요』
구로다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그런 식으로 역사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과연 일본 사람들과 역사를 공유한다고 할 때 같은 인식이 성립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許文道 『사람은 말이지요, 이렇게 아팠던 과거를 정말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그것을 직시합니다. 그것을 피하려고 들지 않아요. 하지만 아팠던 과거를 직시하려면 더 아프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개인차가 있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모조리 비위가 안 맞으면 다 때려부수는 것이 아니듯이(웃음)』
사회자 『중앙청 철거도 기록영화에서 일장기를 지운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까』
『일본은 한국인의 주체성을 말살했다는 점을 인식해야』 (許文道)
구로다 『심정이라고 할까요, 뭐 논리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許文道 『나는 그것을 옮겨서 활용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이미 제가 文公部(문공부) 차관 시절에 公的으로 최초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 싶은데, 1982년 당시 유럽 여행을 해 보니까 首都(수도)란 어떤 이념의 구현체였습니다. 英國은 빅토리아 광장에서 의사당까지, 프랑스는 개선문에서 루브르 박물관까지, 미국은 링컨 센터에서 의사당까지 선진국의 모든 수도는 국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념을 구현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보게 된 거죠. 우리는 경복궁과 남대문을 잇는 것이 한국이란 나라의 이념을 잇는 형상인 셈인데, 그 사이에 총독부가 들어앉은 것은 맥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제외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못난 역사든 잘난 역사든 역사는 역사니까, 그것을 옮겨서 건물 자체는 좋은 것이니까, 이리저리 활용하는 것은 좋은 것인데…』
구로다 『저는 다른 각도로 말해 볼게요. 서울을 보면 現代와 中世는 있지만 近世는 없어요. 실제로 대한민국 역사를 볼 때 近世가 있었잖습니까. 그런데 안 보인다는 겁니다. 불행하게도 近世라는 것이 일제시대라는 점도 있지요. 그렇다면 이것도 역사는 역사이니까 이것을 남기고 직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안 보이게 해 버리고 나면 역사가 바로 섰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겁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보면 그것이 아주 안타깝습니다. 물론 서울역, 시청, 한국은행 등이 남아 있지만, YS정권의 슬로건인 「역사 바로 세우기」가 외국인이 보기에는 좀 아쉽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許文道 『그걸 떠나서, 소위 한국적인 것의 어떤 에센스, 아이덴티티를 깨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말살시켜 놓고 總督府(총독부)를 勤政殿(근정전) 앞에, 숨이 콱 막히게 세워 놓는다는 것은 명백하게 우리가 그 의도를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近世가 아니라 超現代가 그 안에 있다 하더라도 일단 그것을 제외시켜야 하는 겁니다. 일단 한국이 주체적인 나라가 되어가려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다가 近世와 관계된 것들이 없어진다더라도 할 수 없는 거지.
또 우리의 근세란 강화도 수호조약이 출발입니다. 아이덴티티가 없는 한, 시대란 어떤 의미에서는 무의미한 겁니다. 그것은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구로다 지국장은 許 전 장관의 이런 주장에 침울한 표정이 되어 항변했다.
구로다 『뭐, 그래도 그 나름대로 수천만 한국 민족들이 열심히 살았던 것이잖아요』
『노예로 만들어 놓고 협력이라니…』(許文道)
許文道 『한국 사람들이 살았던 게 아니고 남의 운명을 살았던 거지요. 한국 사람들이 식민지 시대를 살았다는 겁니다. 평소 구로다 상은 「한국 사람들이 식민지 시대에 협력을 하며 살았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도 일본이 한국에만 했던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논지를 펴왔는데, 協力(협력)이란 주체들이 확실할 때 가능한 말입니다. 노예에게 협력이 어딨어요. 노예는 노예적인 적응만 있을 뿐, 노예가 주인 말 잘 들었다 해서 「협력 잘했다」고 합디까? 노예적인 상태를 만들어 놓고, 그때 협력 한 것 아니냐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인식입니다』
구로다 『노예였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는 거예요』
許文道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게 있어요…』
구로다 『또 하나, 또 하나, 저기… 협력이란 문제는 우리가 협력받은 입장 아닙니까. 받은 입장에서 볼 때는 자의든 타의든 협력은 협력이다 이겁니다』
許文道 『아니, 그 협력이란 말은 어떤 식의 주체가 있어야 협력이 성립된다니까』
구로다 『…』
난감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注-對談후 구로다씨는 이 부분을 보충해 보내주었다. 구로다 지국장이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일본 통치가 바로 한국인의 일본화였다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이었지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했는지 하나의 불가사의입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민족을 일본인화하려 했다니…』). 許 전 장관은 攻勢(공세)를 멈추지 않고 勝機(승기)를 단단히 움켜 쥐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許文道 『노예가 주인 말 들었다고 협력이라 할 수 없다고』
구로다 『아니…』
許文道 『아니,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의 주체성을 없애버렸다는 인식이 없어요. 그것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모르는 겁니다. 그걸 제쳐두고 「한국 사람들이 그때는 어땠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 찾고 하는데, 한국이 없는데 무슨 한국 사람들 찾고 있어요? 한국을 논하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결여된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이건 아주 중대한 겁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고등교육시켜 주고, 다리 놔 주고, 길을 닦아 주고, 뭐 잘한 것도 있지 않느냐』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한국 사람이란 주체는 깡그리 없어진 상황 속에서 백 번을 한들 그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할 주체가 없는데 무슨 생색을 내느냐 이말입니다.
일본이 한국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근저에서부터 말소시키려 했다는 데 대한 일본 사람들의 의식이 없어요. 그점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걸 접고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어요. 물론 한국 쪽에서도 좀더 명확하게 일본으로부터 그런 식의 인식을 하도록 제기해 오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좌우간 우리가 그런 것을 되풀이하지 않는 세기를 맞기 위해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여서 이렇게 한 겁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21세기에 한일 양국의 목표는 EU(유럽연합) 정도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한 노력에는 이와 같은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한국인이 배워야 할 일본인의 세 가지 장점
안색이 어두워진 구로다 지국장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말을 했다.
구로다 『저, 마감시간이 되어서…』
許文道 웃음(득의만만함이 배어 있었다)
구로다 『나중에 추가하지요』
(注-구로다 지국장의 추가된 원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여튼 일본인화라는 일제의 큰 착각은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교훈입니다. 그런데 일본인화하려 한 한국인의 주체성에 대해서는 아까 언급된 兩國民간의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일제의 착각을 유발한 원인의 하나라고 봅니다. 그만큼 우리 兩 민족은 묘한 사이란 것이지요』)
許장관은 아예 마무리를 짓자는 투였다. 바쁘다고 일어서는 구로다 지국장의 옷소매를 끌어당겨 앉힌 뒤 할 말을 계속했다.
許文道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현재 韓日 양쪽의 왕복 무역고가 4백억 달러에서 5백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겁니다. 나는 21세기, 한 2020년 정도가 되면 우리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韓日관계, 특히 양국의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옛날 조선과 한국을 연구한, 편견적 사고에 젖어 글을 쓰는 사람들의 책 따위는 읽지 않고 비즈니스로 만나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연간 5백억 달러 정도를 만들어 내면, 원초적인 사고방식에서 한국과 일본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금방 가까워질 겁니다. 시간이 좀더 가서 왕복 무역고가 천억 달러선까지 되면 韓日관계는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때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가 터널로서 연결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 시대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장점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본인들의 백화점 점원식의 「戰術的(전술적) 친절」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인은 상대가 조금 좋다 싶으면 있는 대로 품을 다 열어요. 그것이 전술적인지 모르고 있다가 자기가 기대한 만큼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마구 화를 내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국제화시대에는 안되는 겁니다.
둘째는 일본인들의 「근로의 密度(밀도)」에 따라가야 합니다. 현재 한국인들의 평균적인 근로의 밀도는 일본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봅니다. 또 근로의 밀도에 있어서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평균적인 일본인보다 3분의 1 정도밖에 못 미칩니다.
마지막으로는 일본인들의 「現金的(현금적) 인간형」, 즉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닮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걸 두고 우리가 일본 사람들에게 돈에 너무 민감하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편견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되고, 자본주의적 인간화의 길은 어차피 한국 사람들도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런 시대를 대비해서라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세 가지 점을 목표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구로다 지국장은 차분하게 마지막 말을 정리했다.
金玉均의 꿈
구로다 『21세기엔 韓日관계가 EU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일본 경제 관료들로부터 「한일 경제동맹」이란 말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말까지 나온 데는 그 배경이 있어요. EU(유럽연합)도 NAFTA(北美자유무역지대)도 있고 국제사회에서는 G7 국가 그룹도 있고, 일본도 G7 국가에 속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고립되는 중입니다. 그래서 아시아 지역에서도 경제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과 일본이 파트너를 찾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상황을 알게 된 것이지요.
아시아에서 일본의 파트너는 한국밖에 없다는 결론엔 쉽게 도달했습니다. 일본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21세기엔 한국을 파트너로 삼아야겠다는 겁니다. 아직 논의에 미치는 선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말씀하신 것이 아주 맞는 말이란 겁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마무리 말씀을 드리자면, 평소에 제가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할 때면 마지막에 마무리 짓는 말이 있어요. 그 말씀을 한 번 드리고 떠날까 합니다.
「약 1백년 전 한반도에는 金玉均(김옥균)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서 근대 혁명가라고 소개하지요. 그리고 金玉均이 남긴 말을 인용합니다.
「그 당시 金玉均은 <일본이 동양의 英國이 된다면 우리(조선)는 동양의 프랑스가 되자>는 말을 했다. 나는 지금도 이 말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동양의 英國과 프랑스가 되지 못했다. 우리 서로 그렇게 되지 못한 깊은 배경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 韓日 양국민이 서로가 경험했던 과거를 교훈삼아 다가올 백년대에 동양의 英國과 프랑스 사이가 되면 어떻겠는가. 백년 전에 한국에서는 이런 꿈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끝맺습니다』
許文道 『그것은 金玉均 자신이 꿈처럼 생각하고 한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가 EU정도로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구체적인 現實味(현실미)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의 선에서 오늘 우리가 상호 이해의 방식을 피차 조금 조정해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왜놈」, 「조센진」이라고 인식해 왔던, 서로 어려워서 아둥바둥하고 살아오면서 가졌던 인식을 두 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의지를 갖고 조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구로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사회 『좋은 對談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