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장래가 유고슬라비아, 예멘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韓美 군사 동맹관계는 오늘, 그리고 미래의 우리 운명에 대단히 중요한 국제적 안전장치이다
韓美 군사 동맹관계는 오늘, 그리고 미래의 우리 운명에 대단히 중요한 국제적 안전장치이다
同盟이란 최고도의 友好관계
세계에는 지금 2백개가 넘는 국가가 존재한다. 이 모든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과 모종의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국가간의 상호작용은 크게 갈등과 협력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국제관계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갈등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원래 국가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위적인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無政府(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들의 이해가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는 마지막 방법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이다. 국제관계는 권위적인 정치구조가 확립된 국내정치와는 그 작동 원리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국제정치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학술적으로 가장 진전된 분야가 바로 국가들의 갈등, 즉 전쟁에 관한 분야인 것이다.
그러나 국제관계가 모두 전쟁과 갈등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들은 서로 협력하며, 협력하는 나라들은 사이가 좋은 나라들이다. 사이가 좋으니까 협력할 수 있고, 또 협력하다 보니 사이가 더욱 좋아지게 된다. 국제관계는 이처럼 갈등관계와 우호관계, 그리고 아예 무관심한 관계 등 수없이 다양한 모습의 상호작용이 나타나는 곳이다.
협력관계 아래 놓인 나라들을 友好國(우호국)이라 하지만 협력관계 중에서도 가장 긴밀한 협력관계에 놓인 나라들을 우리는 同盟國(동맹국:allies)이라 부른다. 동맹국이란 「공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함께 군사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를 것을 약속한 나라」를 말한다. 그러니 同盟관계란 우호관계 중에서도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의미하게 된다. 동맹을 맺은 국가들은 경제, 사회, 정치, 문화에서의 협력관계에 있는 나라라기보다 국가권력의 궁극적인 수단인 군사력에서 협력하기를 약속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同盟이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관계다. 국제협력과 국제갈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작동하는 곳이 同盟의 영역이다. 동맹은 공통의 敵國(적국)이 존재함으로써 형성되고, 공통의 敵國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없을수록 동맹은 더욱 공고하게 된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그 역사가 45년에 이르는 국제정치의 대표적인 양자적 동맹관계다. 韓美 동맹은 한국전쟁이라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 發芽(발아)되어, 한국전쟁의 종료와 더불어 성립, 1954년부터 그 효력이 발생한 순수한 방위 동맹이다. 韓美 동맹이 작동하는 경우란 오로지 외부의 적이 침략을 감행한 이후부터라는 말이다.
전쟁 抑止에 성공한 韓美 동맹
물론 외부의 적을 「북한」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韓美 동맹관계가 북한을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은 없다. 韓美 동맹은 동맹 결성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완전히 성공한 동맹이다. 한반도는 그동안 살얼음 같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긴 했지만 1953년 휴전 이래 이제껏 북한의 남침을 성공적으로 抑止(억지)했기 때문이다.
韓美 동맹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抑止했다는 사실 이외에 더욱 큰 차원에서의 전략적 목표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즉 한국은 韓美 동맹의 파트너로서 미국과 함께 세계적 차원의 冷戰(냉전)에 동참했고, 미국이 冷戰에서 승리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한국은 冷戰의 당당한 승전국의 일원인 것이다.
또한 韓美 동맹은 한국의 경제발전에도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세계 최하위권의 極貧(극빈)국가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산업국가, 무역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미국과의 군사 동맹은 한국을 미국의 경제체제와 연계시키게 되었고, 자유주의 진영으로 편입된 한국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냉전시대와 미국과의 동맹관계라는 특수한 맥락 아래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쟁의 위험을 항상 안고 살았지만, 韓美 동맹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파탄 상태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한국인들이 기댈 수 있는 심리적인 언덕이기도 했다.
그런데 냉전 종료 이후, 또는 이미 그 이전부터 韓美 관계에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호관계 중의 우호관계라는 동맹관계가 무색해지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韓美 양국은 서로 『과연 진정한 동맹국인가』라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너무 자주 처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그러했지만 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의 바깥 모습은 오늘날 韓美 동맹관계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우호국 중의 우호국인 동맹국의 수도에 주재하는 대사관이 최악의 敵性(적성)국가에 주재하는 대사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군사요새처럼 되어 버린 서울 미국 대사관의 풍경은 외교 관례상으로 보더라도 예외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국민들은 冷戰 종료의 국제적인 계기가 되었던 88 서울올림픽에서 미국과 경기하는 소련 선수단을 응원함으로써 미국을 놀라게 했고,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못하다』는 내용의 취임사를 읽은 金泳三(김영삼) 대통령 역시 미국을 경악케 했다.
미국이 한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요격망 설치를 요구했을 때 『못쓰는 무기를 한국에 팔아먹는다』고 항의하는 데모도 있었다. 우리가 「못쓰는 무기」라고 주장한 바로 그 무기체제를 미국은 駐韓(주한) 美 공군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 놓았다. 美製(미제) 무기보다 러시아製가 더 좋다는 황당한 내용의 기사들이 신문에 자주 보도되고 있으며, 결국 天下의 고물 러시아제 무기를 가져다 놓고 쓸 수 없어 고철로 내버려 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냉전이 끝났으니 미국은 필요없다?
冷戰 이후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이제 冷戰이 끝났으니 미국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치 않은 국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듯하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 캠퍼스에 나부꼈던 구호로만 본다면 미국은 오히려 한국이 겪은 모든 고통의 근원이며 철저히 거부되어야만 할 철천지 원수의 나라인 것이다. 이처럼 사상적으로 틀린, 그리고 국제정치학적으로 보아도 잘못된 우리의 생각은 韓美 동맹을 금가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冷戰이 끝났으니 미국은 필요없는 나라가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궁극적으로 우호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될, 더욱 중요한 국가로 부상한 것이 현실이다. 이웃 일본은 안보 및 경제에서 「오로지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21세기에 대처하려는 것이 일본의 전략처럼 보인다. 이는 脫冷戰(탈냉전) 시대의 미국은 냉전시대의 미국보다 더욱 영향력 있고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나온 행동인 것이다.
일부 배타적, 공상적 민족주의자들은 「한국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한국이 앞으로 세계의 주도국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이 처한 위치는 地政學的(지정학적)으로 세계 최악의 위치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자. 주변국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이웃으로 접하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는 國力의 기본적 요소에서 한국과 비교되기 힘든 强大國(강대국)들이다. 중국은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 러시아는 영토가 제일 넓은 나라, 일본은 제조 기술이 세계 제1위인 나라들이다. 지리적으로 東北亞(동북아) 국가는 아니지만 그 힘이 이 지역에 미치고 있는 미국은 세계 유일 超强大國(초강대국)이며, 미국의 지위는 21세기 초반 수십 년 동안 (적어도 20년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韓美 군사동맹체제 분쇄가 北의 제1목표
冷戰이 끝난 후 全 세계 방방곡곡에서 전쟁의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코소보 인종 대학살 사태로 인한 나토(NATO)軍의 유고슬라비아 공습만을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 방방곡곡에는 유고슬라비아 이외에도 수십 개의 국제분쟁이 진행 중에 있다.
우리나라 주변은 어떤가. 바로 우리의 북쪽에서는 북한판 富國强兵論(부국강병론)인 「강성대국」 건설 계획이 착착 진행중에 있으며, 이를 빌미로 일본 역시 군사 强國의 길로 나가고 있다. 중국의 군사 현대화는 벌써 오래 전에 시작된 계획이다. 자유와 독립을 유지하려는 어떤 국가라도 富國强兵은 당연한 행동 원칙이다. 왠지 우리나라에는 이같이 「오래된 진리」를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韓美 동맹을 통해 동원되는 미국의 힘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抑止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억지 기능은 한국이 스스로 핵무장을 하지 않는 한 달성할 수 없는 고도의 전략적인 가치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은 집요하게 韓美 동맹의 전쟁 抑止 기능을 저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韓美 동맹이 억지력을 발휘하는 한 북한은 자신의 목표, 즉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을 도저히 이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만 매달리며 미국하고만 대화를 하겠다는 지난 수년간의 태도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韓美 동맹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韓美 동맹의 전쟁 억지 기능을 약화시키려는 목표 아래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북한은 미국을 통해 우선 생존을 확보하고, 미국의 힘을 중립화시킨 후,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마지막 대결을 감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라는 변수가 배제된다면 자신들이 궁극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이 공허한 것이든 아니든, 그것은 전쟁 발발을 誘因(유인)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믿음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韓美 동맹관계를 굳건하게 지속시키는 일이다. 韓美 동맹, 駐韓 미군이라는 안보 전략적 代案은 지난 45년 동안 성공적인 것임이 증명된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분단=부러진 단도·부러진 망치
韓美 동맹은 21세기에도 가장 효과적인 한반도 안보의 수단이 될 것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통일이 된 이후라도 미국은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써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은 東北亞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세력으로, 駐韓 미군이 없을 경우 東北亞에는 군비증강 경쟁이 야기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대단히 합리적인 견해라고 생각된다. 통일 후의 한국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한국 안보의 전략적 동반자는 미국이어야 하며,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맹국도 아닌 나라의 군대가 우리 땅에 주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21세기에도 한국의 동맹국이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만이 주변 강대국 중에서 한국의 통일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통일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한다. 중국과 일본은 특히 한반도의 地政學的 중요성을 인식하여 현 분단상태의 지속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통일된 한반도가 만약 대륙세력(중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 「한반도는 일본의 심장을 겨냥하는 단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중국 사람들은 통일된 한반도가 해양세력(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될 경우 「한반도는 중국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망치」라고 인식한다. 분단 상태의 한반도는 중국 및 일본 사람들에게 부러진 단도, 부러진 망치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위에서 제시한 이유로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마음으로부터 지원하고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 세력이라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은 한반도 통일의 과정과 결과가 한국 주도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하는 세력이라는 점이다.
東아시아에서의 세력 균형을 對 東北亞 정책의 기초로 삼고 있는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과정에 개입할 수밖에 없고,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제기하는 駐韓 미군, 韓美 군사동맹에 관한 일체의 주장들은 모두 미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大戰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셋째로 韓美 동맹은 통일의 과정이 폭력화함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방편이다. 북한이 만약 붕괴 위기에 놓인다면, 그 붕괴 과정은 소위 말하는 「소프트 랜딩」이라기보다 폭발적인 상황을 동반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한반도의 전쟁을 최대한 억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사력과, 韓美 동맹의 약속에 의해 증원되어 올 미국의 군사력인 것이다. 韓美 동맹은 한반도의 통일과정이 전쟁으로 비화됨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用美의 지혜
마지막으로 駐韓 미군 군사력은 한반도를 넘어 東北亞를 안정시키는 세력이다. 미군이 주둔할 경우 우리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군사력에 1대 1의 반응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국 군사력은 러시아, 중국, 일본간의 군비 증강도 완화시킬 것이다.
모든 국가들은 自國(자국)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방법은 남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특히 동맹관계란 自國의 주권을 약간 양보함으로써 국가안보를 보다 확실하게 보장받는 방법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19세기 말엽에도 주변 강대국 중 어느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일본에 의존해야 한다는 개화파,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수구파, 그리고 친러파 등이 있었고 중국인 황준헌은 「조선은 미국, 중국, 일본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策略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에 우리가 협력하고 의지할 수 있는 세력은 역시 미국이다. 우리는 어차피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안보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중국, 일본, 러시아는 모두 한반도에 영토적 이익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다. 즉 그들은 한반도 영토 그 자체에 관심이 너무 많은 나라라는 점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인 이해가 그다지 많지 않은 나라다. 게다가 미국이 지향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가치는 바로 한국이 이제까지 택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키려는 이데올로기다. 이처럼 한국의 영토에 직접적인 이익관계를 가지지 않은, 그리고 정치 사상적인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은 한국이 국가 주권을 염려하지 않고 국가안보에서 협력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論據(논거)가 된다.
다가올 21세기, 한국은 통일을 이룩하여 현대적인 민주, 산업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장래가 오늘의 유고슬라비아, 예멘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韓美 군사 동맹관계는 오늘, 그리고 미래의 우리 운명에 대단히 중요한 국제적 안정장치인 것이다. 미국을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이용한다는 用美(용미)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세계에는 지금 2백개가 넘는 국가가 존재한다. 이 모든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과 모종의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국가간의 상호작용은 크게 갈등과 협력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국제관계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갈등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원래 국가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위적인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無政府(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들의 이해가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는 마지막 방법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이다. 국제관계는 권위적인 정치구조가 확립된 국내정치와는 그 작동 원리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국제정치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학술적으로 가장 진전된 분야가 바로 국가들의 갈등, 즉 전쟁에 관한 분야인 것이다.
그러나 국제관계가 모두 전쟁과 갈등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들은 서로 협력하며, 협력하는 나라들은 사이가 좋은 나라들이다. 사이가 좋으니까 협력할 수 있고, 또 협력하다 보니 사이가 더욱 좋아지게 된다. 국제관계는 이처럼 갈등관계와 우호관계, 그리고 아예 무관심한 관계 등 수없이 다양한 모습의 상호작용이 나타나는 곳이다.
협력관계 아래 놓인 나라들을 友好國(우호국)이라 하지만 협력관계 중에서도 가장 긴밀한 협력관계에 놓인 나라들을 우리는 同盟國(동맹국:allies)이라 부른다. 동맹국이란 「공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함께 군사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를 것을 약속한 나라」를 말한다. 그러니 同盟관계란 우호관계 중에서도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의미하게 된다. 동맹을 맺은 국가들은 경제, 사회, 정치, 문화에서의 협력관계에 있는 나라라기보다 국가권력의 궁극적인 수단인 군사력에서 협력하기를 약속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同盟이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관계다. 국제협력과 국제갈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작동하는 곳이 同盟의 영역이다. 동맹은 공통의 敵國(적국)이 존재함으로써 형성되고, 공통의 敵國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없을수록 동맹은 더욱 공고하게 된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그 역사가 45년에 이르는 국제정치의 대표적인 양자적 동맹관계다. 韓美 동맹은 한국전쟁이라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 發芽(발아)되어, 한국전쟁의 종료와 더불어 성립, 1954년부터 그 효력이 발생한 순수한 방위 동맹이다. 韓美 동맹이 작동하는 경우란 오로지 외부의 적이 침략을 감행한 이후부터라는 말이다.
전쟁 抑止에 성공한 韓美 동맹
물론 외부의 적을 「북한」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韓美 동맹관계가 북한을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은 없다. 韓美 동맹은 동맹 결성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완전히 성공한 동맹이다. 한반도는 그동안 살얼음 같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긴 했지만 1953년 휴전 이래 이제껏 북한의 남침을 성공적으로 抑止(억지)했기 때문이다.
韓美 동맹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抑止했다는 사실 이외에 더욱 큰 차원에서의 전략적 목표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즉 한국은 韓美 동맹의 파트너로서 미국과 함께 세계적 차원의 冷戰(냉전)에 동참했고, 미국이 冷戰에서 승리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한국은 冷戰의 당당한 승전국의 일원인 것이다.
또한 韓美 동맹은 한국의 경제발전에도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세계 최하위권의 極貧(극빈)국가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산업국가, 무역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미국과의 군사 동맹은 한국을 미국의 경제체제와 연계시키게 되었고, 자유주의 진영으로 편입된 한국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냉전시대와 미국과의 동맹관계라는 특수한 맥락 아래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쟁의 위험을 항상 안고 살았지만, 韓美 동맹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파탄 상태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한국인들이 기댈 수 있는 심리적인 언덕이기도 했다.
그런데 냉전 종료 이후, 또는 이미 그 이전부터 韓美 관계에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호관계 중의 우호관계라는 동맹관계가 무색해지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韓美 양국은 서로 『과연 진정한 동맹국인가』라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너무 자주 처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그러했지만 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의 바깥 모습은 오늘날 韓美 동맹관계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우호국 중의 우호국인 동맹국의 수도에 주재하는 대사관이 최악의 敵性(적성)국가에 주재하는 대사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군사요새처럼 되어 버린 서울 미국 대사관의 풍경은 외교 관례상으로 보더라도 예외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국민들은 冷戰 종료의 국제적인 계기가 되었던 88 서울올림픽에서 미국과 경기하는 소련 선수단을 응원함으로써 미국을 놀라게 했고,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못하다』는 내용의 취임사를 읽은 金泳三(김영삼) 대통령 역시 미국을 경악케 했다.
미국이 한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요격망 설치를 요구했을 때 『못쓰는 무기를 한국에 팔아먹는다』고 항의하는 데모도 있었다. 우리가 「못쓰는 무기」라고 주장한 바로 그 무기체제를 미국은 駐韓(주한) 美 공군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 놓았다. 美製(미제) 무기보다 러시아製가 더 좋다는 황당한 내용의 기사들이 신문에 자주 보도되고 있으며, 결국 天下의 고물 러시아제 무기를 가져다 놓고 쓸 수 없어 고철로 내버려 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냉전이 끝났으니 미국은 필요없다?
冷戰 이후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이제 冷戰이 끝났으니 미국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치 않은 국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듯하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 캠퍼스에 나부꼈던 구호로만 본다면 미국은 오히려 한국이 겪은 모든 고통의 근원이며 철저히 거부되어야만 할 철천지 원수의 나라인 것이다. 이처럼 사상적으로 틀린, 그리고 국제정치학적으로 보아도 잘못된 우리의 생각은 韓美 동맹을 금가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冷戰이 끝났으니 미국은 필요없는 나라가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궁극적으로 우호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될, 더욱 중요한 국가로 부상한 것이 현실이다. 이웃 일본은 안보 및 경제에서 「오로지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21세기에 대처하려는 것이 일본의 전략처럼 보인다. 이는 脫冷戰(탈냉전) 시대의 미국은 냉전시대의 미국보다 더욱 영향력 있고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나온 행동인 것이다.
일부 배타적, 공상적 민족주의자들은 「한국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한국이 앞으로 세계의 주도국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이 처한 위치는 地政學的(지정학적)으로 세계 최악의 위치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자. 주변국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이웃으로 접하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는 國力의 기본적 요소에서 한국과 비교되기 힘든 强大國(강대국)들이다. 중국은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 러시아는 영토가 제일 넓은 나라, 일본은 제조 기술이 세계 제1위인 나라들이다. 지리적으로 東北亞(동북아) 국가는 아니지만 그 힘이 이 지역에 미치고 있는 미국은 세계 유일 超强大國(초강대국)이며, 미국의 지위는 21세기 초반 수십 년 동안 (적어도 20년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韓美 군사동맹체제 분쇄가 北의 제1목표
冷戰이 끝난 후 全 세계 방방곡곡에서 전쟁의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코소보 인종 대학살 사태로 인한 나토(NATO)軍의 유고슬라비아 공습만을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 방방곡곡에는 유고슬라비아 이외에도 수십 개의 국제분쟁이 진행 중에 있다.
우리나라 주변은 어떤가. 바로 우리의 북쪽에서는 북한판 富國强兵論(부국강병론)인 「강성대국」 건설 계획이 착착 진행중에 있으며, 이를 빌미로 일본 역시 군사 强國의 길로 나가고 있다. 중국의 군사 현대화는 벌써 오래 전에 시작된 계획이다. 자유와 독립을 유지하려는 어떤 국가라도 富國强兵은 당연한 행동 원칙이다. 왠지 우리나라에는 이같이 「오래된 진리」를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韓美 동맹을 통해 동원되는 미국의 힘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抑止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억지 기능은 한국이 스스로 핵무장을 하지 않는 한 달성할 수 없는 고도의 전략적인 가치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은 집요하게 韓美 동맹의 전쟁 抑止 기능을 저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韓美 동맹이 억지력을 발휘하는 한 북한은 자신의 목표, 즉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을 도저히 이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만 매달리며 미국하고만 대화를 하겠다는 지난 수년간의 태도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韓美 동맹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韓美 동맹의 전쟁 억지 기능을 약화시키려는 목표 아래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북한은 미국을 통해 우선 생존을 확보하고, 미국의 힘을 중립화시킨 후,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마지막 대결을 감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라는 변수가 배제된다면 자신들이 궁극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이 공허한 것이든 아니든, 그것은 전쟁 발발을 誘因(유인)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믿음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韓美 동맹관계를 굳건하게 지속시키는 일이다. 韓美 동맹, 駐韓 미군이라는 안보 전략적 代案은 지난 45년 동안 성공적인 것임이 증명된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분단=부러진 단도·부러진 망치
韓美 동맹은 21세기에도 가장 효과적인 한반도 안보의 수단이 될 것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통일이 된 이후라도 미국은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써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은 東北亞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세력으로, 駐韓 미군이 없을 경우 東北亞에는 군비증강 경쟁이 야기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대단히 합리적인 견해라고 생각된다. 통일 후의 한국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한국 안보의 전략적 동반자는 미국이어야 하며,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맹국도 아닌 나라의 군대가 우리 땅에 주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21세기에도 한국의 동맹국이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만이 주변 강대국 중에서 한국의 통일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통일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한다. 중국과 일본은 특히 한반도의 地政學的 중요성을 인식하여 현 분단상태의 지속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통일된 한반도가 만약 대륙세력(중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 「한반도는 일본의 심장을 겨냥하는 단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중국 사람들은 통일된 한반도가 해양세력(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될 경우 「한반도는 중국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망치」라고 인식한다. 분단 상태의 한반도는 중국 및 일본 사람들에게 부러진 단도, 부러진 망치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위에서 제시한 이유로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마음으로부터 지원하고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 세력이라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은 한반도 통일의 과정과 결과가 한국 주도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하는 세력이라는 점이다.
東아시아에서의 세력 균형을 對 東北亞 정책의 기초로 삼고 있는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과정에 개입할 수밖에 없고,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제기하는 駐韓 미군, 韓美 군사동맹에 관한 일체의 주장들은 모두 미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大戰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셋째로 韓美 동맹은 통일의 과정이 폭력화함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방편이다. 북한이 만약 붕괴 위기에 놓인다면, 그 붕괴 과정은 소위 말하는 「소프트 랜딩」이라기보다 폭발적인 상황을 동반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한반도의 전쟁을 최대한 억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사력과, 韓美 동맹의 약속에 의해 증원되어 올 미국의 군사력인 것이다. 韓美 동맹은 한반도의 통일과정이 전쟁으로 비화됨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用美의 지혜
마지막으로 駐韓 미군 군사력은 한반도를 넘어 東北亞를 안정시키는 세력이다. 미군이 주둔할 경우 우리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군사력에 1대 1의 반응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국 군사력은 러시아, 중국, 일본간의 군비 증강도 완화시킬 것이다.
모든 국가들은 自國(자국)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방법은 남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특히 동맹관계란 自國의 주권을 약간 양보함으로써 국가안보를 보다 확실하게 보장받는 방법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19세기 말엽에도 주변 강대국 중 어느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일본에 의존해야 한다는 개화파,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수구파, 그리고 친러파 등이 있었고 중국인 황준헌은 「조선은 미국, 중국, 일본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策略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에 우리가 협력하고 의지할 수 있는 세력은 역시 미국이다. 우리는 어차피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안보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중국, 일본, 러시아는 모두 한반도에 영토적 이익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다. 즉 그들은 한반도 영토 그 자체에 관심이 너무 많은 나라라는 점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인 이해가 그다지 많지 않은 나라다. 게다가 미국이 지향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가치는 바로 한국이 이제까지 택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키려는 이데올로기다. 이처럼 한국의 영토에 직접적인 이익관계를 가지지 않은, 그리고 정치 사상적인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은 한국이 국가 주권을 염려하지 않고 국가안보에서 협력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論據(논거)가 된다.
다가올 21세기, 한국은 통일을 이룩하여 현대적인 민주, 산업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장래가 오늘의 유고슬라비아, 예멘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韓美 군사 동맹관계는 오늘, 그리고 미래의 우리 운명에 대단히 중요한 국제적 안정장치인 것이다. 미국을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이용한다는 用美(용미)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