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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도희윤이 전하는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北 내부 혁명조직원의 이야기

김일성 父 김형직의 점괘, 앞으로 北 지도자 될 증손자 비운에 죽게 될 것

글 :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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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父 김형직, 사람의 관상, 점 봐
⊙ 아들 김일성 때 나라가 번창하지만, 손자 대에 가선 국력이 쇠퇴, 증손자 대에 망한다는 점괘
⊙ 거사 위해 평양으로 들어간 후 연락 끊긴 아우, 그의 가족 찾기 위해 사비 탈탈 털은 도희윤
⊙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후원금도 끊겨, 제2의 反김정은 세력 연락 끊임없는데도 지원 불가능”
⊙ 北 해커, 도 대표 집요하게 공격…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 있는 듯
⊙ 아우에게 들은 정치범수용소라 불리는 ‘농장관리소’의 충격적 실상

도희윤
1967년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리베르타스 대표, 한국자유회의 사무총장, 뉴라이트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편집자 註]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을 통해 북한의 반(反)체제 세력을 지원해 내부 붕괴를 유도했다는 사실을 《월간조선》이 특종 보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북한 인권 및 통일 전문가인 도 대표는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의 일원 1명과 오랜 기간 연락을 주고받았다.
소위 ‘박근혜 통일 프로젝트’에 참여한 조기철씨가 본지 신년 호에 단독 인터뷰를 함에 따라 ‘박근혜의 북한 혁명조직 지원’은 재확인됐다. 청와대에 국정원장 특수활동비를 상납해 국고를 손실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이병호 국정원장(2015년 3월~2017년 6월 재임)이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에 ‘북한 혁명조직 지원’ 사실을 밝힌 데 이어 실제 작전에 투입된 인물이 나타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통일 프로젝트’는 또다시 이슈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월간조선》은 조기철씨 인터뷰와 함께 도 대표가 거사를 앞두고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를 공개한다. 도 대표는 “아우의 마지막 이야기는 세상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라고 했다. 도 대표는 혁명조직원을 ‘아우’라 불렀다. 이 아우는 ‘북한판 10·26’ 계획이 들통나면서 북한 당국에 붙잡혔다. 모진 고문 끝에 잔인하게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월간조선》
  悲報 5년 후…
 
  북한 주민들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기로 결심했던 ‘아우’를 생각하며 《월간조선》에 첫 기고문을 게재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필자의 아우가 암흑의 땅, 북한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 평양으로 돌아간 지 7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그의 비보(悲報)를 접한 지도 어언 5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우리 아우와 그 가족들이 겪었을 엄청난 고통에 비해 어떤 노력과 성과가 있었을까. 사기 탄핵, 체제 탄핵 와중의 일이었지만 여전히 사악한 세력은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아스팔트 위에서의 아우성은 변함이 없으며, 백신 패스에 두려워 갇혀 있는 동물원의 짐승처럼 서 있는 스스로가 몹시 부끄러워지는 일상이다. 그래도 뭔가는 해야겠다. ‘아우’가 함께해 주리라.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은 일종의 관상가 혹은 점쟁이
 
도희윤 대표가 북한의 내부 혁명조직원인 김씨(메신저상 이름은 최이상, 도 대표는 그를 아우로 호칭)에게 처음으로 보낸 메신저의 캡처 이미지. 사진=도 대표 제공
  아우가 2016년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기 전 필자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준 게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는 마지막 말이었다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아우의 마지막 이야기는 세상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스스로 위안도 되고 다시금 용기를 내어보자는 차원에서 처음 세상에 내보인다.
 
  “형님, 통일되면 결코 북이 가난한 지역으로 오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꼭 남기고 가려고 합니다. 김일성이 죽은 다음 그의 방에 금고가 있었는데 열쇠가 없이 잠가져 있었습니다. 몇 달 지나서 아들 김정일의 지시로 금고를 강제로 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나 보았답니다. 큰 금고 안에 사진 하나와 종이 한 장이 있었는데, 사진은 1945년 김일성과 김책이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 뒷장에 ‘진짜 전우는 김책이다. 1945년 쏘련군 군정이 나보다 나이나 항일시기 직책이 높았던 김책에게 북한의 수령 자리를 권했는데, 김책이 나를 자기보다 낫다며 양보하여 수령이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더랍니다. 그리고 종이는 오래된 것인데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아시지요. 김형직이 한의원을 했는데 사람의 관상도 보고 점도 쳤답니다. 김형직이 김일성에게 써준 가문의 팔자인데, 한문으로 ‘김일성은 임금이 될 거다’라고 했다더군요. 그다음은 ‘김일성이 임금이 되어 나라가 번창해지고, 아들 대에 가선 국력이 쇠퇴해지며, 손자 대에 가선 망하여 손자가 비운에 죽게 될 거다’라는 점괘였다더군요. 김형직이 써준 점괘를 김일성이 고이 보관했는데, 결국 김책이 임금이 되게 해주고 후에 ‘한 장의 사진’이라는 노래도 만들고 굉장했습니다. 그러니 전혀 무근거한 소리 같지는 않습니다.”
 
  아우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통일이 되면 형님을 만나 뵐 수 있겠지요. 후에 북한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면 이 동생이 잘 싸우는 줄 알아주십시오. 일심을 바쳐 싸우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제 자식놈 꼭 부탁드립니다.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가면 마음 의지할 분은 형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서울 가면 큰아버지가 계시니 마음 외로울 때마다 의지하거라, 이렇게 일러 보내려고 합니다.”
 
  이후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도희윤 “북한 주민들에게도 행복을 꼭 만들어 주세요.”
 
  아우 “예, 형님께서도 건강히 지내십시오. 평양에 가서도 라디오로 형님 목소리 들을 겁니다.(당시 도희윤 대표는 한민족방송 라디오에 출연 중이었다-편집자 주) 흥분되니 타이핑도 제대로 안 되네요. 하하.”
 
  도희윤 “예, 그럽시다. 더욱 열심히 방송할게요. 아우님이 항상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방송하겠습니다.”
 
  아우 “라디오에서 형님 목소리 들으며 형님과 있었던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 추억할 겁니다.”
 
  도희윤 “예, 저도 그렇습니다.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행복했고 앞으로 더 행복합시다. 아우님 가족 모두 꼭 다시 봅시다. 제가 금강산 갔을 때 ‘다시 만나요’라는 노래가 그렇게 슬펐습니다. 어찌나 그 노래가 슬프고 좋은지요…. 꼭 다시 만납시다.”
 
  아우 “그만 들어가세요. 형님께서 들어가셔야….”
 
  도희윤 “예, 들어갑니다. 건강 지키시고, 안녕히….”
 
  아우와의 대화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평양으로 들어간 아우는 그 뒤에도 몇 차례 위성 전화로 필자를 찾았다. 그러나…. 결말은 비극이었다.
 
 
  김정은 제거 작전
 
북한은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가 김성일씨를 돈과 물건으로 매수, 최고수뇌부에 대한 암살 작전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사진=북한 ‘우리민족끼리’ 캡처
  북한 김정은에게 있어 2021년은, 무엇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라는 또 다른 괴물의 탄생으로 김정은 스스로 독재자요, 공산 전체주의자이며, 북한 사회가 지구상 가장 악랄한 파시즘 체제라는 것을 증명했던 한 해였다고 할 것이다.
 
  북한의 아우와 필자가 가장 염두에 둔 투쟁은 바로 북한 내부를 향한 ‘외부정보 유입’이라는 상식적인(?) 목표였었다. 이것으로 주민들을 의식화시키고 나아가 공산 세습 독재에 저항하는 시작점을 형성한다는 데 일치된 견해였었다. 물론 아우가 필자와는 별도로 진행한 소위 ‘김정은 제거 작전’은 아우의 조직이 직접 추진하려 했던 과업이기도 했다.
 
  지금 그렇게 북한 노예 해방을 맹세했던 필자의 ‘아우’는 지구상에 없다.
 
  북한 당국의 해외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서 아우와 필자를 보도한 이후, 아우와 남은 가족들의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었다. 그렇게 찾은 아우와 그 가족들의 소식은 비극 그 자체였지만, 이런 필자의 노력을 알기라도 하듯, 북에서 또다시 필자와 연계하기를 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나마 단체의 생명줄이 되어주던 약간의 후원금마저 끊어진 지 오래된 상태에서, 쥐꼬리만큼 남아 있던 아파트 담보대출금을 비상금 삼아 자그마한 실오라기 하나라도 찾기 위해 성급히 나선 필자에게 돌아온 것은 북한 해커들의 공격이었고, 충성자금 마련에 눈먼 협잡꾼들의 모략뿐이었다. 어렵사리 아우와 남은 가족의 소식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세상을 향해 언급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첫 번째 성명서

 
  쉽지 않았던 교신의 과정을 겪고, 아우는 필자에게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목소리라며 ‘성명서’ 내용을 보내왔었다. 성명 전문을 인터넷 뉴스 등을 통해 공개한 바 있지만, 아우의 조직이 알리고자 했던 핵심의 일부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민들이고 참다운 인권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성명서는, 북한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북한 사회 특성에 대해,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이해를 돕는 차원으로 문을 연다.
 
  다음은 성명서 내용이다.
 
  “수령은 육체적으로만 보통 인간이지 뇌수 능력은 이 세상 천재들을 다 합쳐도 따르지 못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수령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는 수령만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수령이 지정해주는 사람이 다음번 수령으로 국가를 지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과 인품을 지닌 수령이 국가를 지도해야지 다른 사람이 국가 지도자로 될 수 없다는 것이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입니다. 인류 력사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수령이 김일성이고 수령의 안목으로 보고 판단한 다음번 수령이 아들 김정일이고 또 그 다음번 수령이 손자 김정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정치범수용소와 련좌죄 처벌이 없어지고 려행과 직업 선택 종교활동과 신앙생활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나라가 외국의 침략 세력에게 점령당할 리 없고, 3대에 걸쳐 내려오는 유일적 령도체계가 무너진다고 해서 국권이 침해당할 리 없습니다. 김정은과 그 추종 세력은 세습 정권과 국권 인민들의 운명을 억지로 하나의 생존공동체로 결합시키면서 보편적 인권에 대한 증오감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가문도 정견과 신앙,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가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명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문의 세습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들이 헌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기만과 사기로 점철된 역사의 장본인이 바로 공산 전체주의 세력들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또 성명서는 “작년 12월 유엔총회에서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에 회부할 데 대한 결의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되자, 전국적 범위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이를 배격하는 연설들과 시위들을 벌렸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결정이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인권범죄들을 중지시키고,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에 기소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채택되였다는 것은 숨기고, 국제사회가 (우리의 체제를 전복하여 우리의 생명인 사회주의를 없앰으로써 우리 주민 모두를 죽이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주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주민들을 기만 선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유엔총회 결정에 격분하여 토론하던 주민들 자신이 정치범수용소와 련좌죄 때문에 공포에 떨던 사람들이고, 무보수 의무로동으로 고통을 겪던 사람들인데, 그것을 없애자는 결정에 분노하여 전쟁까지 하자고 말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김정은과 그 추종세력이 마음 놓고 주민들에 대한 인권유린행위를 자행하지 못하도록 국제적 압력이 계속 진행되여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김정은 정권의 반인권적 범죄행위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우리나라 주민들의 투쟁에 의하여 종식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투쟁할 것이며 국제사회는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줄 것을 희망합니다.(2015년 1월 1일)”로 끝을 맺었다.
 
 
  반디 선생의 《고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해온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아우 김성일씨. 사진=북한 ‘우리민족끼리’ 캡처
  아우가 맨 처음 위와 같은 성명서 혹은 집필을 하고 싶다면서 꺼내든 이야기가 바로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알려진 반디 선생의 《고발》이었다. 필자가 이를 입수하여 전 세계 언어권으로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며 먼저 물어왔다.
 
  그리고 그 책을 PDF 파일로도 받아볼 수 있느냐며, 필자에게 그것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고발》에 대해 형식적으로만 알고 있던 아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한 충격을 받은 자신의 심정을 ‘감상문’의 형식으로 다시 필자에게 보내왔었다.
 
  다음은 ‘아우’가 직접 쓴 《고발》 소설집의 ‘감상문’이다. 북한인 최초로 반체제 원고에 대한 감상문을 외부 세계로 보내온 것이어서, 향후 한반도의 통일 역사에서 큰 울림으로 남을 것임을 확신한다.
 
  도진(刀盡)이라는 필명으로 보내온 감상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반디의 고발을 세 번째로 읽어본다. 읽어볼수록 그 의미가 깊은 소설이라는 게 안겨 온다. 얼핏 보고 나면 고발은 7편으로 된 내가 사는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 계층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로 북한 실상에 대한 고발로 느껴진다.
 
  수령만을 위한 독재체제에 분노로 사람보다 먼저 소설을 탈북시킨 탈북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읽고 또 읽어보노라면 소설에는 북한 실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철학이 담겨 있다. 반디의 소설을 북과 남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보게 된다면 독자들의 생각은 각기 다를 것이라고 본다. 북한의 독자들인 경우 우리가 당하는 실상 그대로 담은 작품, 목숨을 내건 탈북으로 출판된 항거의 소설로 인식될 것이다.”
 
  아우의 반디 선생 《고발》에 대한 애착은 사실 깊고도 크다. 아우가 필자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게 된 것도 여기에 있다. 수많은 인권 운동가 중 유독 필자와 연결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단순히 북한 주민과 탈북인들의 인권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꿈을 지원해줄 수 있는 세력으로서 필자를 평가했던 것 같다. 내부의 저항을 외부에 알림과 동시에 다시 내부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서 말이다.
 
  아우는 자신의 감상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반디의 비판 정신, 항거 정신을 따라 배워야 한다. 반디의 작품은 이 땅의 매문(賣文) 문필가들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세습 독재하에서 신음하는 2천만 인민들에게, 독재정권의 창시자이며 봉건 조선을 재건한 김일성의 실체를 바로 알려주는 투쟁의 시작을 말이다.”
 
 
  정치범수용소라 불리는 ‘농장관리소’
 
김성일씨가 혁명조직 작전 수행을 위해 평양으로 넘어가 도 대표에게 찍어 보낸 사진. 김일성 광장 주변인데 김씨의 집 근처였다고 한다. 사진=도 대표 제공
  아우는 필자가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로 불리는 ‘농장관리소’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고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관리소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친한 친구 한 명이 재직했었다며 그곳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형님, 관리소 근무 자체가 비밀이어서 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이따금 그때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는데, 관리소 출신이라는 탈북인들이 말하는 내용을 들으면 많이 다르다는 것인데, 형님께서 제가 뚱정권(김정은)을 비호한다고 오해하실까 봐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우선 관리소 수용자들의 집은 1렬식으로 놓여 있다고 하더군요. 그 앞에 기관총을 설치한 망루가 있는데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고, 가족들이 따로따로 갈라져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농장과 축산을 하는 구역이고 거기서 술이나 기타 식료품을 생산한다고 들었습니다. 친구의 말로는 거기서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봉쇄 구역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면, 1차 봉쇄선으로 전기 철조망이 있고 전기 철조망을 넘어서면 약 5미터 앞에 족창구역이 있습니다. 족창구역은 두 개의 쇠가시 로라(롤러)가 겨우 발 하나 들어갈 정도로 설치되어 있어 한번 사람이 발을 디디면 다시 돌아 나오지 못하는 곳을 뜻합니다. 족창지역을 지나면 잔디구역이 나옵니다. 7센티 간격으로 대못을 박아 놔 절대 도망가지 못합니다. 대못을 피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잔디와 함께 박혀 있어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잔디구역을 지나면 모래판 구역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함정구역이라고 합니다. 모래판 구역을 지나면 다시 가시잡관목 구역이 나오는데 여기엔 지뢰가 매설돼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마지막으로 전기 철조망이 있다고 합니다. 도저히 나갈 수 없는 데가 바로 농장관리소입니다.”
 
 
 
암흑으로 변한 대한민국, 다시 세워야

 
북한 해커 그룹이 도 대표의 휴대폰을 해킹하기 위해 보낸 북한 제작 스파이앱 캡처. 도 대표는 아우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재산 대부분을 썼다. 도 대표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후원도 끊겨 활동하는 데 애로가 많다고 한다.
  아우가 보내오는 글을 읽는 순간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게 진정 지구에 존재하는 시설물이 맞는지 만약 사실이라면 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와 이런 대화를 나눈 지 꼬박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북한 인권, 정치범수용소, 반디, 고발 등등의 단어와 활동은 그 세월만큼 똑같이 멈춰 섰었다. NGO(비정부기구)들의 목적 의식적 활동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근근이 지속되었지만, 피해 당사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은 마치 배터리의 수명을 다한 시계추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이 잃어버린 10년이라 한탄했지만, 문재인 정권 5년은 아우의 표현대로 북한처럼 암흑의 땅이 되어버렸다. 북한 주민을 향한 노예해방투쟁이 암흑이었다면, 탈원전·태양광 사업은 광명천지가 되었고, 화천대유의 대장동 프로젝트는 눈먼 돈 잔치로 흐느적거렸다. 이제 이 더러운 놀음을 멈추게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은 일갈했다.
 
  “사자머리의 마도로스 파이프가 지껄였다던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이 땅에 뿌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 따위였단 말인가.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그리고 혁명동지 ‘아우’도 부르짖었다.
 
  “서울에서 ‘북인권유엔사무소’가 설치되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더군요. 그게 간첩입니다. 북한 간첩. 민주주의 혜택 아래 대놓고 김정은을 지지하니 참 자유가 좋긴 좋습니다만, 그래서 적당히 정치범수용소 하나쯤 운영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반드시 두 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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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사람    (2021-12-25) 찬성 : 0   반대 : 6
아래 김진이란 인간은 도희윤을 경험 적도 없으면서 꼴통 같은 글을 써 놨구만. 그러니까 너같은 인간 때문에 보수가 수구꼴통이란 소리를 듣는거야. 도희윤이는 탈북자들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이란 것을 너만 모르지.
ㅂ ㅅ
  김진    (2021-12-19) 찬성 : 3   반대 : 2
헐뜻고 비방하는 댓글다는놈들이 간첩이지요. 꼭 하는짓이 문재명스러워요.
북한자유를 위해 계속 힘써주세요. 홧팅입니다.
  도학수    (2021-12-19) 찬성 : 1   반대 : 3
별다른 직업도 없이 후원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 도희윤을 월간조선에서는 늘 잘 다뤄주네요. 탈북자들 세계에서는 도희윤에 대한 평판이 별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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