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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박정희의 길 문재인의 길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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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칠레 정부는 연금(年金)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칠레의 연금제도는 공적(公的) 연금 관련 법률이 20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중구난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말 연금 관련 부담은 GDP 대비 10%, 정부 지출 대비 25%에 달했습니다.
 
  개혁의 필요성은 이미 1960년대부터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존 제도 내에서 특혜를 누리던 노조, 연금관리공단 경영자, 정치인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 때문에 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했습니다. 1973년 쿠데타로 피노체트 군사 정권이 들어섰지만, 혹독한 철권을 휘두르던 군정에 있어서도 연금개혁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연금을 자손들이 지불하는 건 부당”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서려 하지 않을 때 총대를 메고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을 맡고 있던 호세 피녜라였습니다. 그는 “편견에 얽매인 허구의 약속은 이제 그만하자”면서 “연금 문제가 시한폭탄이 되지 않게 하려거든 하루빨리 진정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의 개혁방안은 “국가가 사회보장적 기능을 감당하되 최저 연금저축액에 대한 의무만 규정하고, 국민들이 어떻게, 어디에 개별적으로 연금을 저축할 것인가는 국민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피녜라의 연금개혁안이 상정되자 대통령자문위원회 멤버이던 한 장성은 “지금 논의되고 있는 개혁안이 국가권력의 손발을 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느냐”고 비판했습니다. 반면에 다른 장성은 “우리가 내일 받게 될 연금을 우리 자손들이 지불해야 하다니 부당하질 않소!”라며 개혁에 찬성했습니다.
 

  결국 후자(後者)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피녜라의 연금개혁안은 실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도입된 연금제도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들어선 좌파 정권하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2006년 초당적으로 구성된 정부 위원회는 피녜라가 마련한 연금제도가 대체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다만 연금 수급액이 지나치게 낮은 점 등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지자 2020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연금제도 개혁을 약속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호세 피녜라의 동생입니다).
 
  칠레 군정의 통치자들은 총칼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후손들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하고 연금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반면에 말끝마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문재인(文在寅) 정권은 잠시 연금개혁을 논의하는 시늉을 하다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에 대해 반발이 나오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서 덮어버렸습니다.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냐?”
 
  돌이켜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매사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싫어할 일, 정치적으로 폼 나지 않는 일들은 한사코 외면했습니다. 그가 45%라는, 1987년 이후 최고의 지지율을 자랑하면서 퇴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인기와 국가의 미래를 맞바꾸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은 1977년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했습니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확보하고 복잡한 세제(稅制)를 정비하기 위한 ‘세제개혁’이었습니다. 6년여의 논의 끝에 부가가치세제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기존 개별소비세제 아래서 과세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사업자들이 손해를 본다’ ‘물가상승이 우려된다’는 등 비판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당인 공화당조차 제9대 국회의원 총선을 1년여 앞둔 마당에 부가가치세 도입을 강행했다가는 역풍(逆風)을 맞을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결국 부가가치세 도입을 두 주 앞두고 당정(黨政)협의회가 열렸습니다. 난상토론 끝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김용환 재무부 장관에게 “부가가치세를 지금 꼭 도입해야 하느냐?”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김 장관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박 대통령은 예정대로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는 내가 걱정할 테니, 장관은 경제를 잘 챙기도록 하시오.”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 공화당은 의석수에서는 야당인 신민당보다 앞섰지만, 득표율에서는 1.1% 뒤졌습니다. 사실상의 패배였습니다. 공화당, 중앙정보부, 언론은 여당 패배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부가가치세제 도입을 꼽았습니다. 기가 살아난 신민당은 이듬해 5·30 전당대회에서 ‘선명야당’을 기치로 내건 김영삼(金泳三) 의원을 총재로 선출했습니다. 그로 인해 야기된 정치적 긴장은 결국 부마사태를 거쳐 10·26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가 부가가치세 도입이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한 덕분에 이후 정권들은 세수(稅收) 걱정 않고 국가재정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처와 슈뢰더의 개혁
 
  “피노체트 정권의 연금개혁, 박정희 정권의 세제개혁은 절대권력을 가진 권위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민주국가의 정권은 개혁과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을 강행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과거 중남미나 북아프리카의 독재 정권에서 보듯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포퓰리즘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의심의 여지없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영국의 대처 정권은 노동개혁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여 ‘영국병(英國病)’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수정당 출신인 대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회민주당 출신인 독일의 슈뢰더 정권은 연금 및 노동개혁(하르츠개혁)에 도전해 성공했습니다. 물론 그 대가로 대처는 세상을 떠난 지금도 지독하게 저주를 받고 있고, 슈뢰더는 정권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 덕분에 영국과 독일은 되살아났습니다.
 
 
  노동·교육·연금개혁 주창하고 나선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과거로의 퇴행(退行)”이라며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민주당의 이런 주장은 전교조·민노총 등 지지 세력을 의식한 것이겠지요.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3·9대선에서 0.7%라는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을 정도로 지지 기반이 약합니다. 국회에서는 야당이 의석의 3분의 2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고, 시민단체, 노동단체, 언론도 정권에 호의적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이 노동·교육·연금개혁을 힘 있게 밀어붙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어려움을 모르지 않겠지요. 하지만 일단 화두(話頭)를 제시한 것만으로도 윤석열 대통령은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뗐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감연히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인기(지지율)를 위해서라면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도 외면했습니다. 노동·교육·연금개혁 등 3대 개혁을 주창하고 나선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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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jlee020    (2023-01-20) 찬성 : 20   반대 : 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지난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한 일이 많으니, 업적에 대해 정리해 놓은 내용이 아주 많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곳 커피숍에 전시된 박정희 대통령 가족을 형상화한 뜨게 인형과 개인의 짧은 메모였습니다. 박정희 아카데미 7기 이선숙씨가 만든 작품이랍니다. 글도 이선숙씨가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가족 다섯 분을 태어난 해의 동물 모양으로 형상화했더군요. 앙증맞게 흰 뜨게 동물 인형을 만들어서 진열해 두었습니다. 글은 대통령님, 수많은 세월 어깨에 짊어지셨던 우리 국민들 이제 내려놓으시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녀분들 지켜주세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 지금도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을 보호해달라고 기원합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자식이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이선숙님의 기원처럼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제는 자식들을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나라와 국민을 박 대통령의 어깨에서 내려놔 드려야 합니다.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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