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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대한민국이 읽어야 할 두 상소(上疏)

율곡과 남명에게 대한민국의 앞날을 묻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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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맞아 두 직언(直言)을 싣는다. 하나는 율곡 이이 선생이 선조에게 올린 만언봉사(萬言封事)다. 1만2000자가 넘는 원문은 200자 원고지 240장으로, 핵심이 결론인 ‘충간(忠諫)’이다. 율곡이 상소를 올린 것은 1574년 1월이었다. 선조는 ‘상소 중의 상소’로 꼽히는 이 글을 읽고도 율곡이 제시한 나라 살릴 길을 따르지 않았다.
 
  두 번째는 남명 조식 선생이 1555년 11월 경상남도 단성현감 자리를 자신에게 제수한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단성소)다. 율곡의 상소로부터 18년 후, 남명의 상소로부터 37년 후 조선은 임진왜란을 맞았고 7년의 전쟁 끝에 나라는 급격히 멸망(滅亡)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두 상소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만언봉사
 
  살펴보건대, 지금의 시사(時事)는 날로 그릇되어 가고 있고 백성들의 기력은 날로 소진(消盡)되어 가고 있으며 그것은 권세 있는 간신들이 세도를 부렸을 적보다도 더 심한 듯하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권세 있는 간신들이 날뛰던 시절에는 조종(祖宗)들의 남겨 주신 은택이 어느 정도 다하지 않고 남아 있어서 조정의 정치는 혼란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의 힘은 어느 정도 지탱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조종들이 남기신 은택은 이미 다하고, 권세 있는 간신들이 남겨 놓은 해독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어서 훌륭한 논의(論議)가 비록 행해진다 하더라도 백성들의 힘은 바닥이 나 버렸습니다. 비유를 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창 젊었을 적에 술에 빠지고 여색(女色)을 즐기어 그 해독이 많겠으나, 혈기가 강성한 때문에 몸에 손상이 가는 줄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그 해독이 노쇠함을 따라 갑자기 나타나 비록 근신하며 몸을 보양한다 해도 원기(元氣)가 이미 쇠퇴하여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의 시사(時事)는 실로 이와 같으니, 10년이 못 가서 화란이 반드시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도 열 간(間)의 집과 백 묘(百畝)의 전답을 자손에게 물려주면 자손은 또 그것을 잘 지키어 선조들에게 욕되지 않게 할 것을 생각합니다.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는 조종 백 년의 사직(社稷)과 천 리의 봉강(封疆)을 물려받으셨는데, 화란이 닥쳐오려 하고 있음을 어찌하시겠습니까.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해결책을 구한다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해도 아주 엉뚱한 결과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며, 능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구제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는 권세를 거두어 잡으시고 사리(事理)에 밝으시며, 시국을 구원할 능력이 있으심에리까.
 
  소신(小臣)은 나라의 두터운 은총을 받아 백 번 죽는다 해도 보답하기 어려운 정도이니, 진실로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고 도끼로 목을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신은 피하지 않겠습니다. 더욱이 지금 전하께서는 언로(言路)를 넓게 열어 놓고 의견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시기에 그 수교(手敎)를 내리심이 간절하십니다.
 
  신이 만약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실로 전하를 배반하는 셈이 되겠기에, 충정(衷情)에 격동되는 바를 극진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앓고 난 끝이라서 정신은 흐릿하고 손은 떨리어 글이 속되고 한 말이 중복되었으며 자획도 겨우 이루어 놓은 터이라 볼 만한 것이 못 되었습니다. 비록 그러나 글 뜻은 먼 듯하면서도 실은 가까운 것이고, 그 계책은 어리석은 듯하면서도 실은 절실한 것이니, 비록 삼대(三代)의 제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로 왕정(王政)의 근본이어서 그대로 시행하면 효과가 드러날 것이며 왕정을 회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자세히 보시고 익히 검토하시며 찬찬히 궁구하고 깊이 생각하시어 성상의 마음속에 취하고 버릴 것을 결정하신 다음, 널리 조정의 신하들에게 물으시어 가부를 의논한 후에 이를 받아들이거나 물리치신다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전하께서 신의 계책을 채택하신다면 그것을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기시고, 정성으로 그것을 시행하며 확신으로 그것을 지키시되, 습속을 따르고 전례나 지키려는 의견들로 인하여 바뀌어지지 말고, 올바른 것을 그르다 하며 남을 모함하는 말로 인하여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시어 3년이 지나도 나라가 발전이 없고, 백성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지 못하며, 군대가 정예화되지 않는다면, 신을 기망한 죄로 다스리시어 요상한 말을 하는 자들의 훈계가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신의 진언(進言)이 지나칠 정도로 과격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황송함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단성소
 
  임금이 사람을 쓰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깊은 산과 커다란 못 어느 곳에 있는 것이든 재목을 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가져다가 커다란 집을 짓는 일을 이룩하는 것은 훌륭한 목수가 하는 것이지 나무가 스스로 참여할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전하의 국사(國事)가 그릇된 지 이미 오랩니다. 나라의 기틀은 이미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전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컨대 큰 나무가 백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에게 파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는 지가 오랩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가운데 충성된 뜻 있는 신하와 일찍 일어나 밤 늦도록 공부하는 선비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형세가 극도에 달하여 지탱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관(小官)들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大官)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오직 뇌물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입니다. 고깃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오라 내신(內臣)들은 파당(派黨)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외신(外臣)들은 향리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리떼처럼 날뛰면서 가죽이 다 닳아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깊이 생각해 보면 탄식만 길게 나올 뿐, 낮이면 하늘을 우러르기 수차례였고 눈물과 한숨을 누를 길 없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 지가 오랩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고 보면,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밖의 소식이 막힌 깊은 궁궐 안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나이 어린 선왕(先王)의 한 외로운 자식일 뿐입니다. 저 많은 천재(天災)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무엇으로 막고,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또 제가 요즈음 보건대 변방에 일이 있어 여러 대신들이 밥도 제때에 먹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신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20년 전부터 이 일이 생겼던 것을 전하의 영명(靈明)하심에 힘입어 이제야 발각된 것이요,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평소 조정에서는 재물로 사람을 임용하니 재물만 모이고 민심이 흩어져 결국 쓸 만한 장수도 없게 되고 성안의 병사 한 사람 남아 있지 않기에 이르렀으니 적이 무인지경으로 쳐들어온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대마도 왜노가 향도와 남몰래 짜고 만고에 끝없는 치욕스러운 짓을 하였건만 왕의 신령한 위엄이 떨치지 못하여 마치 절하듯 하였습니다. 이는 옛 신하를 대우하는 의리가 혹 주나라 예법보다 엄하면서 원수를 총애하는 은덕이 도리어 망한 송나라보다 더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세종께서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시고 성종께서 북벌하신 일을 보아도 어디에도 오늘날과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근위병을 불러 모으고 나랏일을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정치나 형벌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전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방촌(마음)의 사이에서 말이 땀을 흘리는 것처럼 노력하여 만 마리의 소가 밭을 갈아야 하는 너른 땅에서 공을 거두는 그 기틀은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입니다.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 달려 있고 사람을 쓰는 것은 몸으로써 하고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로써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쓰는 데에 몸으로써 하신다면 유악 안에 있는 사람은 사직을 보위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아무 일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저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을 눈으로만 뽑으신다면 잠잘 때 이외에는 모두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 이 경우에도 앞뒤가 막힌 보잘것없는 저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른 날 전하께서 왕천하의 지경에 이르도록 덕화를 베푸신다면 저는 마구간의 말석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그 마음과 힘을 다해서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이니 어찌 임금을 섬길 날이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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